헬조선


Uriginal
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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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수 2
댓글 3








English / Middle Korean / Evenki / Jurchen / Manchu

me / na / bi / bi / bi
thou / nə / si / ʃi / si
eyes / nun / esa / jɑʃi / jasɑ
mouth / ip / amŋa / ɑnggɑ / ɑnggɑ
hands / sɔn / ŋala / ŋɑlɑ / gɑlɑ
body / mɔm / beye / bәje / bəje
father / abi / amin / ɑmin / ɑmɑ
mother / əmi / әnin / әnin / әnin
land / nar / guruŋ / gurun / gurun
name/ - / gerbi / gəbu / gəbu
day / nar / inigi / inəŋgi / inəngi
dog / kak / ŋinakin / indɑxon / indɑxʊn
sun / kai / ʃigun / ʃigun / ʃun
wate / mɨrr / muu / mukə / mukə
tree / lamɔ / mo / mo /mo
wind / pɑram / әdin / әdun / әdun
river / kər(ɑm) / bira / bira / bira
gold / - / altan / ɑltʃun / ɑisin
one / kɑt(na) / әmuŋ / әmu / әmu
two / tu(pur) / dʒuur / dʒuə / dʒuwə
three / səi / ilaŋ / ilan / ilan
four / ləi / digiŋ / duin /duin
five / tɑ(sɯt) / toŋ / ʃundʒɑ / sundʒɑ
six / jə(sɯt) / niŋuŋ / niŋgu / ningu
seven / nir(kup) / nadan / nɑdɑn / nɑdɑn
eight / njət(ərp) / dʒabkoŋ / dʒɑkun / dʒɑqʊn
nine / ɑkɔp / jəgiŋ / ujәwun / ujun
ten / jər / dʒaaŋ / dʒuɑ / dʒuwɑn

 

 

보다시피 한국어는 퉁구스어(만주어≒여진어, 에벤키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Delingsvald에 의하면 오히려 일본어가 퉁구스어나 몽골어와 유사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쪽에 물어 보기를 바라고

아무튼 혐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인종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에벤키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로 한반도의 토템폴인 솟대와 장승이 에벤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인데

삼국지 동이전 마한을 보면 소도에 관련된 기록에서 솟대와 장승으로 보이는 것이 언급되는데

http://www.nfm.go.kr/Data/daPub_view.nfm?seq=53

이것을 봐도 솟대와 장승이 한반도 남부에서 90% 이상 발견되는 것을 알 수 있고 삼한과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Alexander Vovin에 의하면 한반도 남부에는 일본어가 사용되었다고 하고 위만에 찬탈된 조선 유민이 유입되었다고 해도 일반 민중은 일본인에 가까운 사람이었거나 일본 문화를 유지한 집단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한반도 남부에 살던 일본인이 퉁구스와 문화적, 언어적 유사성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일본인이야말로 에벤키와 비슷한 집단이었을지도 모르고 한국인은 에벤키와 일절 관계 없는 중국티베트계통이 아니었나 하지만

이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 HellSenJing
    17.06.08
    지옥에서 족속 따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
    남의 눈치나 보고 역시 헬센징 스럽구나!!
  • Uriginal
    17.06.09
    한국인이 에벤키와 동족이라는 것은 한국 새끼들이 민족적 자부심 불어 넣으려고 어떻게는 북방 민족과 관련성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인데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인종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것이 한심하다는 것이지만
  • 코민테른 강령 초안-근본적 비판


    서문

    강령 초안 즉,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코민테른의 전체 활동을 확정할 기본 문서가 제5차 대회 이후 4년이 지나 열리는 제6차 대회 소집을 불과 몇 주 앞두고 발표되었다. 첫 번째 초안이 바로 제5차 대회 이전에 발표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강령 초안 발표의 이런 지연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제5차 대회 이후 벌써 몇 년이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초안은 그 전체 구조에서 첫 번째 초안과 다르다. 또 최근 몇 년의 발전을 개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제6차 대회에서 이 초안을 채택하는 것보다 더 경솔하고 무모한 짓은 없을 것이다. 사전에 신문지상을 통한 진지하고 과학적인 비판이나, 코민테른의 모든 정당들 내에서 광범한 토론도 거치지 않은 이 초안에는 급히, 게다가 무성의하게 쓴 흔적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초안을 받고 이 글을 보내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며칠 동안, 우리는 강령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문제들만을 숙고했다.

    시간 부족 때문에, 우리는 강령에서 언급된 많은 중요한 문제들, 즉 지금은 화급을 다투는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미래에는 이례적으로 중요해질지도 모르는 문제들을 전혀 고찰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현재 전념하고 있는 강령의 이 부분들에 비해 이 문제들을 비판할 필요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우리는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새로운 초안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덧붙여야 한다. 우리가 강령의 첫 번 째 초안조차 입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두세 가지 다른 경우에서처럼, 초안을 다루면서 우리는 기억에 의존해야만 했다. 모든 인용은 원문에서 따왔으며, 주의 깊게 검토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1장 I 국제혁명의 강령인가 일국사회주의의 강령인가?

    제6차 대회의 안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강령 채택 건이다. 강령의 성격은 오랫동안 인터내셔널의 상(相)을 결정하고 확립시킬 것이다. 강령의 중요성은 강령이 일반적인 이론적 개념을 정식화하는 방식에 있지 않다(결국, 강령은 ‘성문화’(成文化)의 문제, 즉 확고하게, 그리고 결정 적으로 획득해온 진실과 일반 법칙에 대한 간결한 해설로 귀결된다). 강령의 중요성은 훨씬 더 큰 정도로 지난 시기, 특히 매우 많은 사건과 오류가 있었던 지난 5년간의 혁명투쟁이라는 정치적 경험과 세계경제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문제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코민테른의 운명은一말 그대로의 의미에서一이런 사건, 오류, 논쟁들이 강령에서 해석되고 판단되는 방식에 달려 있다.


    1. 강령의 일반적 구조

    세계경제와 세계정치가 금융자본의 헤게모니 아래에 있는 제국주의의 시대인 우리 시대에는 단 하나의 공산당도 오로지 또는 주로 자국의 조건과 발전 경향에서 유래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강령을 마련할 수 없다. 이것은 소련이라는 영역 안에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당에게도 완전히 적용할 수 있다. 1914년 8월 4일, 일국적 강령의 영원한 죽음을 알리는 조종이 울렸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당은 자본주의의 최고의 발전과 붕괴의 시대인 현 시대의 성격에 일치하는 국제적 강령에만 기초를 둘 수 있다. 국제공산주의 강령은 결코 일국적 강령의 총합이 아니며, 그 공통된 특징의 혼합물도 아니다. 국제적 강령은 그 모든 관계와 모순을 전체적으로 볼 때, 즉 그 개별적 부분들이 서로 적대적으로 상호의존하고 있는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체제의 조건과 경향에 대한 분석에서 직접 나와야 한다. 현 시대에 노동자계급의 일국적 정세 판단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큰 정도로 세계적 정세 판단에서 나와야 하고, 또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니다. 여기에 공산주의의 국제주의와 온갖 종류의 민족적 사회주의 사이의 기본적이고 주요한 차이가 있다.

    이런 생각에 입각하여 우리는 올해 1월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코민테른의 강령을 기초하는 임무에 착수해야 한다(부하린의 강령은 코민테른의 일국 지부의 조악한 강령이지 세계 공산당의 강령이 아니다).’(〈프라브다〉지, 1928년 1월 15일자)

    우리는 미국 문제가 충분한 규모로 세계와 용어의 가장 직접적인 의미에서 유럽 정치의 문제로 나타난 1923-24년 이래로 이런 생각을 계속 주장해왔다.

    새로운 강령을 제시하면서 〈프라브다〉지는 공산주의 강령은 ‘중심 원리의 취지에서뿐만 아니라 구조상의 특색인 국제주의에서도 국제 사회민주주의의 강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프라브다〉지, 1928년 5월 29일자).

    이 다소 애매한 정식화에는 분명히 우리가 앞에서 말했으며, 이전에는 단호히 거부된 생각이 표현되어 있다. 부하린이 제출한 첫 번째 강령 초안을 파기한 것은 환영받을 수밖에 없다. 진지한 의견 교환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으며, 실제로 강령의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초안은 사회주의를 향한 한 나라의 추상적인 발전을 단조로운 도식적 방식으로 기술했다. 반면에, 새로운 초안은 불행히도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일관성이나 연속성 없이 세계경제 전체를 그 개별적 부분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초로 간주하려고 한다.

    발전 수준이 서로 다른 나라와 대륙을 상호의존과 적대의 체제로 연결하면서, 발전의 서로 다른 단계를 평준화하는, 동시에 즉시 이들 사이의 차이를 부추기면서, 그리고 한 나라를 다른 나라에 가차 없이 대치시키면서 세계경제는 개별 국가와 대륙의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강력한 실체가 되어왔다. 이 기본적 사실만으로도 세계 공산당이라는 생각은 최고의 현실성을 지닌다. 초안이 서문에서 아주 정확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세계경제 전체를 사적 소유에 기초하여 일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발전 단계로 이끌면서, 제국주의는 ‘세계경제의 생산력 발전과 민족-국가적 장벽 사이의 모순을 극도로 긴박하게 악화시킨다.’

    지난 제국주의 전쟁 중에 처음으로 인류에게 생생하게 드러난 이 명제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은 채, 우리는 세계정치와 혁명투쟁의 주요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향해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다.

    유일하게 올바른 이 입장을 정반대 성격을 가진 경향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초안은 가장 끔찍한 모순들의 각축장으로 바뀌어버렸다. 따라서 그 근본적인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의 원칙적 의의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새로운 초안에서 강령의 축 자체가 급진적으로 이동한 것을 환영했을 것이다.


    2. 미국과 유럽

    다행히도 폐기된 첫 번째 초안을 특징짓자면, 우리가 기억하는 한은 첫 번째 초안에서 미국이라는 이름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핵심적 문제들은一바로 이 시대의 성격 때문에, 그 추상적, 이론적 단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 역사적 단면에서도 검토되어야 한다一첫 번째 초안에서 자본주의 국가 ‘일반’에 대한 생기 없는 도식으로 해소되어 버렸다. 그러나 새로운 초안은一물론 이것은 중요한 일보전진이다一이제 ‘세계의 경제적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했다’, ‘“달러공화국”이 세계의 착취자로 변모했다’, 마지막으로 북미와 유럽 자본주의, 주로 영국자본주의 사이의 경쟁(초안은 막연하게 ‘갈등’이라고 말한다)이 ‘세계적 갈등의 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정세의 이런 기본적 사실과 요인들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한 규정을 담고 있지 않는 강령이 국제 혁명당의 강령과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는 것은 오늘날 이미 아주 분명하다.

    불행히도, 우리가 방금 지적한 현대 시대에 세계 발전의 본질적인 사실과 경향들은 초안 원문에서는 단지 개별적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말하자면, 초안의 전체 구조와 어떤 본질적인 관련도 없이, 그리고 전망 또는 전략에 대한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 채 이론적 위로로서 초안에 접붙여져 있다.

    독일공산당의 항복, 따라서 독일 노동자계급이 패배한 1923년 이후, 유럽에서 하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역할은 전혀 평가되지 않았다. 사회 민주주의의 ‘부활’뿐만 아니라 유럽의 ‘안정화’, ‘정상화’, ‘평온화’의 시기도 미국이 유럽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첫 번째 조치와 밀접한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관련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불가피하게 더욱 진전될 미국의 확장적 발전, 유럽의 시장 자체를 포함하여 유럽의 자본시장 축소가 과거의 모든 격동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극심한 군사적, 경제적, 혁명적 격동을 수반한다는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미국의 더욱 냉혹한 압력이 자본주의 유럽을 세계경제에서 끊임없이 협소화시킬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유럽에서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군사적 충돌이라는 격렬한 발작을 동반하며 엄청나게 격화시킬 것임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계급들뿐만 아니라 국가들도 배급량이 충분하게 늘어나는 경우보다는 불충분하게 줄어드는 경우, 훨씬 더 격렬하게 싸우기 때문이다.

    초안은 국가적 적대라는 유럽의 내적 혼란이 끊임없이 더욱 중앙집중화하는 북미공화국에 대한 일체의 진지하고 성공적인 저항도 가망 없게 만든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럽소비에트 합중국 건설을 통해 유럽의 혼란을 해결하는 것이 노동자혁명의 첫 번째 임무 가운데 하나라는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노동자혁명은(명확하게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보다는 유럽에서 훨씬 더 바짝 다가와 있다. 따라서 노동자혁명은 북미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미국의 국제적 권력과 여기에서 비롯하는 불가항력적인 팽창이야말로 미국이 자기 구조의 토대 안에 세계 전체의 화약고, 즉 동방과 서방 사이의 모든 적대, 기존 유럽의 계급투쟁, 식민지 대중의 봉기, 그리고 모든 전쟁과 혁명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그리고 이것은 동일한 세계 문제의 중요한 양상이기도 하다)도 언급한 적이 없다. 한편으로, 이것은 지구 곳곳의 ‘질서’ 유지에 언제나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북미 자본주의를 현대의 기본적인 반(反)혁명 세력으로 변모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이미 지배적이며 여전히 확장하고 있는 세계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거대한 혁명적 폭발의 토대를 닦는다. 세계 관계의 논리는 이런 폭발의 시기가 유럽 노동자혁명의 폭발에 크게 뒤처질 수 없음을 가리킨다.

    미국-유럽의 상호관계의 변증법에 대한 우리의 설명은 최근에 아주 다양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는 유럽에 존재하는 모순을 평화주의적으로 부정하고,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 이론을 수용함에 따라, 다른 많은 죄를 지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여기서 기껏해야 실제 사태의 진전과 그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전혀 모르는 데서 기인하는 이런 ‘비난’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정식화에 반대하는 그 비열한 싸움에 (말이 나서 하는 말인데, 강령 초안의 기초자가) 힘을 허비한 것보다, 가장 중요한 이 세계 문제를 혼란스럽게 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허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정식화는 사태의 경과를 통해 완전히 확증되었다.

    최근에도 주요한 공산주의 기관지들에서 미국의 임박한 상업, 산업 위기를 언급하면서 미국 헤게모니의 의미를一신문지상에서一최소화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왔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국의 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것이며, 얼마나 심각할 것인가라는 특별한 문제를 검토할 수 없다. 이것은 국면의 문제이지 강령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 위기의 불가피성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현재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규모를 고려할 때, 바로 다음번의 위기가 대단히 극심하고 격렬할 것이라는 것이 어림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로부터 미국의 헤게모니가 제한되거나 약화될 것이라고 결론 내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결론은 결국 가장 엄청난 전략적 오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은 정반대다. 위기의 시대에 미국의 헤게모니는 급성장기에 비해 더 철저하게, 더 노골적으로, 더 무자비하게 작동할 것이다. 미국은 주로 유럽을 희생하여 자신의 병폐와 곤경을 모면하고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이 곤경과 병폐가 아시아, 캐나다, 남미, 호주에서 발생하든 유럽 자체에서 발생하든, 또는 평화적으로 일어나든 전쟁을 통해 일어나든가를 불문하고 말이다.

    만약 미국이 개입한 첫 시기에 유럽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효과를 발휘했으며, 그 효력이 현재에도 상당정도 남아있음에 따라 일시적으로 반복되거나 더 강해질 수도 있다면(특히 노동자계급이 또 다시 패배하는 경우에는), 미국의 정책, 특히 자국이 경제적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때의 전반적인 노선은 전 세계적으로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심원한 격동을 낳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명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앞으로 10년 사이에도 지난 10년 사이 에 못지않게 혁명적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중요한 결론을 끌어낸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알지 못한 채 그 움직임에 속지 않기 위해 사태발전의 원동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 10년 사이에 혁명적 상황의 주요한 원천이 제국주의 전쟁의 직접적 결과에 있었다면, 전후의 두 번째 10년 사이에 일어난 혁명적 격변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유럽과 미국의 상호관계일 것이다. 미국 내의 주요한 위기가 새로운 전쟁과 혁명의 경보를 알릴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혁명적 상황은 많이 있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국제당인 코민테른의 성숙도와 투쟁 역량, 그 전략적 입장과 전술적 방법의 올바름에 달려 있다.

    코민테른의 강령 초안에서는 이런 경향의 생각을 밝히는 표현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와 같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저널리스트가 무심결에 한 말로 은근슬쩍 넘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연히 지면 부족을 구실로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아니라면, 강령의 어떤 것에 지면을 허용해야 하는가? 게다가 강령 초안에서는 삭제하면 강령을 적어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전반적인 문필의 산만함과 수많은 반복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나치게 많은 지면이 2차적이거나 3차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3. 유럽소비에트합중국 슬로건

    새로운 강령 초안에서 유럽소비에트합중국 슬로건을 생략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슬로건은 꽤 오랜 내부 투쟁을 거친 뒤에 1923년 코민테른의 지지로 채택되었다. 혹시 강령 기초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바로 1915년 레닌의 입장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먼저 레닌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레닌은 전쟁 초기에 유럽합중국슬로건에 대해 주저했다. 슬로건은 본래 당시 당의 중앙기관지인 〈소치알 데모크라트〉(Sotsial Demokrat, 사회민주주의자)의 테제에 포함되었다가 레닌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런 사실 자체는 여기에 관련된 문제가 원칙에 따라 그 슬로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전술적 판단의 문 제, 즉 주어진 상황에 입각하여 그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비교 검토하는 문제 일 뿐임을 나타낸다. 말할 필요도 없이, 레닌은 자본주의 유럽합중국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했다. 나 또한 오로지 유럽에서 노동자 독재의 미래 국가 형태로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제출하면서 이 문제 에 접근했다.

    나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 ‘자본가 정부들 사이의 합의를 통해 위로부터 어느 정도 완성된 유럽의 경제적 통합을 이룬다는 것은 공상이다. 이 길을 따라서는 사태가 부분적인 타협이나 미봉책을 뛰어넘어 진척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문화 일반의 발전을 위해서도 놀랄만한 이익이 따를 유럽의 경제적 통합만이 제국주의의 보호무역주의와 그 도구인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유럽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임무가 되고 있다.’(트로츠키, ‘평화 강령’(The Peace Program), 《전집》, 제3권 제1부, 85쪽, 러시아어판)

    더 나아가 ‘유럽합중국은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노동자계급 독재一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 一의 한 형태를 의미한다.’(앞의 책, 92쪽)

    그러나 당시에 레닌은 쟁점에 대한 이런 정식화에서도 일정한 위험을 간파했다. 단 한 나라에서도 노동자 독재를 경험한 적이 없고, 심지어 사회민주주의의 좌익 내에서도 이 쟁점에 대해 이론적으로 명료하지 않은 당시에, 유럽합중국 슬로건은 적어도 유럽 대륙 전체에서 동시에 노동자 혁명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레닌은 바로 이런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레닌과 나 사이에는 근소한 차이도 없었다. 당시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단 한 나라도 그 투쟁에서 다른 나라들의 투쟁을 기대하며 “기다려서는” 안 된다. 국제적 차원의 기회주의적인 나태 행위가 이에 견줄 만한 국제적 차원의 행동을 대체하지 못하도록 이 기본적 생각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 유익하고 또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투쟁을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선도적 행동이 다른 나라들의 투쟁을 촉진할 것이라는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일국적 근거에 입각하여 투쟁을 시작하고 계속해야 한다.’(앞의 책, 89~90쪽)

    그 뒤에 나오는 내 말을 스탈린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에서 ‘트로츠키주의’의 가장 불합리한 점, 즉 혁명의 내적인 힘과 외부의 지원 가능성에 대한 ‘신념 부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것이(다른 나라들에서 혁명의 진전이一트로츠키)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컨대, 혁명 러시아가 보수적인 유럽에 직면해 버틸 수 있다거나, 사회주의 독일이 자본주의 세계에 고립된 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망이 없을 것이다(이는 역사적 경험과 이론적 고찰을 통해 모두 입증된다).’(앞의 책, 90쪽)

    이것과 두세 가지 유사한 인용에 기초하여, 제7차 전원회의는 이 ‘근본적 문제’에 대해 ‘레닌주의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입장을 고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트로츠키주의’를 규탄하는 선언을 작성했다. 따라서 잠깐 멈추고, 레닌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1918년 3월 7일, 그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멸망할 것이라는 점은 절대적 진실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레닌, 《전집》, 제15권, 132쪽, 러시아어(구)판)

    1주일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세계 제국주의는 승리를 거두며 전진 하는 사회주의 혁명과 공존할 수 없다.’ (앞의 책, 175쪽)

    몇 주 뒤인 4월 23일, 레닌은 또 이렇게 말했다 : ‘우리의 후진성이 우리를 앞으로 나서게 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봉기한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때까지 버틸 수 없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다.’(앞의 책, 187쪽, 트로츠키의 강조)

    그러나 이런 말은 모두 혹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위기의 예외적인 영향에 따른 것은 아닐까? 결코 아니다! 1919년 3월에 레닌은 또다시 이렇게 반복했다: ‘우리는 단지 한 국가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국가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와 소비에트 공화국의 병존이 어느 정도 갈 것인지는 상상할 수도 없다. 결국 어느 한 쪽이 승리할 것임에 틀림없다.’(레닌, 《전집》, 제16권, 102쪽)

    1년 뒤인 1920년 4월 7일, 레닌은 이렇게 반복한다 : ‘국제적 차원에 서 보자면, 자본주의는 지금도 군사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미에서도 소비에트 권력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이런 기본적인 고려에서 시작해야하며, 이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레닌, 《전집》, 제17권, 102쪽)

    레닌은 1920년 11월 27일, 이권 문제를 다루면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지금 전쟁 이라는 무대에서 평화라는 무대로 옮겨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을 잊은 적이 없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나란히 존재하는 한, 우리는 평온하게 살아갈 수 없다一결국 어느 한쪽 이 승리자가 될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나 소비에트공화국이나 둘 중 하나의 부고가 울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전쟁 중의 일시적 소강상태에 지나지 않는다.’(앞의 책, 398쪽)

    그러나 계속된 소비에트공화국의 생존이 혹시 레닌으로 하여금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고, 10월 혁명의 ‘내적인 힘에 대한 자신의 신뢰 부족’을 단념하게 한 것인가?

    1921년 7월에 열린 코민테른 제3차 대회에서 레닌은 러시아공산당의 전술에 대한 테제 속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 ‘극도로 위태롭고 불안정하지만, 그렇더라도 사회주의공화국이 자본주의의 포위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상태가 조성되었다. 물론 오랫동안은 아니지만 말이다.’

    게다가 1921년 7월 5일, 레닌은 대회의 한 회의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밝혔다 : ‘세계혁명의 지원이 없다면 노동자혁명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혁명 이후는 물론이고 심지어 혁명 이전에도, 우리는 혁명이 즉시 또는 적어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후진국들과 좀 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비에트 체제를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국제혁명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레닌, 《전집》, 제18권 제1부, 321쪽)

    이 말들은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국제주의 정신에 충만한가! 그리고 아류들의 잘난 체하는 거짓말들과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가!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물을 권리가 있다 : 레닌의 이 모든 말이 다가오는 러시아의 혁명 또는 다가오는 사회주의 독일이 ‘자본주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다면’ 홀로 버틸 수 없다는 1915년의 내 신념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시간이라는 요인은 내 가정은 물론이고 레닌의 예상과도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一일정한 순간에는 아마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가 부적격하고 파렴치한 발언에 기초하여 처리한 것처럼, 이 생각을 비난하기보다는 코민테른 강령에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는 1915년에 유럽소비에트합중국 슬로건을 옹호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 불균등 발전법칙은 본질적으로 이 슬로건과 충돌하는 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나라와 대륙들의 역사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본질적으로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서로에 대해 불균등하게 발전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역사적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 적어도 검토되고 있는 역사적 시기 중에, 미국이 유럽을 능가한 것처럼, 유럽 국가들 가운데 단 한 나라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아주 월등히 앞서 나아가도록 운명 지어져 있지 않다. 미국이 불균등성에 관한 하나의 척도라면, 유럽은 다른 하나의 척도다. 지리적, 역사적 조건들이 유럽 국가들 사이의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미리 결정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이 이를 뿌리칠 길이 없다. 현대의 유럽 부르주아 정부들은 한 대의 수레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살인자들 같다. 이미 말한 것처럼, 유럽의 혁명은 결국에는 미국에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면한 역사의 전진에서 직접적으로는 독일의 혁명이 미국에 비해 프랑스에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역사적으로 발전된 관계에서 유럽소비에트연방 슬로건의 정치적 생명력이 나온다. 우리는 그 상대적 생명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연방은 소비에트연방 이라는 대교(大橋)를 가로질러 아시아로 확대된 다음, 세계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이룰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제2의 획기적 사건이나 제국주의 시대 이후의 위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우리는 그에 일치하는 정식도 찾아낼 것이다.

    유럽합중국문제에 대한 1915년 레닌과 우리의 차이가 제한적, 전술적인 것이었으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성격의 것이었음을 더 많은 인용을 통해 별 어려움 없이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전개된 사태의 경과가 이를 가장 잘 증명한다. 1923년에 코민테른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지금 강령 초안의 기초자가 주장하려는 것처럼,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1915년에 원칙적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코민테른이 1923년에는 도저히 이를 채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불균등 발전법칙은 이 몇 년 사이에 그 유효성을 잃지 않았다.

    앞에서 요약한 대로,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혁명과정의 역학 관계를 전체적으로 볼 때 나온다. 국제혁명은 그 모든 구체성, 말하자면, 그 발생 순서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일반적인 역사적 개요로 완전히 선명해지는 상호 연관된 과정으로 간주된다. 이 일반적인 역사적 개요가 이해되지 않으면, 올바른 정치적 대응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발전이 일어나고, 심지어 완성된다는 신념에서 시작하면, 문제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현재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완벽하게 수립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세계와 이 나라의 상호관계가 세계 자본가계급의 ‘중립화’에 기초하여 수립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론’이 있다(스탈린). 만약 혁명적-국제주의가 아니라 이런 본질적으로 개량주의적-일국적 관점이 채택된다면, 유럽합중국 슬로건의 필요성은 사라지거나, 아니 적어도 줄어든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슬로건은 중요하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슬로건에는 사회주의가 고립된 상태에서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럽 국가의 노동자계급에게는 정말로 소련에 비해 더 큰 정도로一그러나 그 차이는 단지 정도의 차이 일 뿐이다一혁명을 이웃 나라로 전파하고, 무기를 들고 이웃 나라의 봉기를 지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질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자체로는 계급을 움직일 수 없는 이런 국제적 연대는 어떤 추상적 배려에서가 아니라, 레닌이 수백 번이나 밝힌 사활적 중요성一 즉, 적시에 국제혁명의 지원이 없다면, 우리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一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소비에트합중국 슬로건은 노동자혁명의 역학관계에 일치한다. 노동자혁명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이웃 나라로 전해지며, 특히 유럽 무대에서는 가장 강력한 외부의 적으로부터 혁명을 방어하고, 경제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도 이웃 나라들 사이의 가장 긴밀한 유대를 필요로 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가장 최근에 이 슬로건을 채택하도록 자극을 준 루르 위기 시기 이후에도 이 슬로건이 유럽 공산당들의 선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하자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의를 제기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노동자 국가, 소비에트 등과 같은 슬로건, 즉 혁명 직전 시기의 모든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에 대한 해명은 제5차 대회의 잘못된 정치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1923년 말 이후, 유럽대륙에서 혁명운동이 쇠퇴해왔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단지 그 시기 동안에만 받은 인상에 강령의 기초를 두는 것이 왜 치명적인가 하는 이유이다. 모든 편견에도 불구하고, 유럽소비에트합중국 슬로건이 바로 1923년에 채택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에 독일에서는 혁명적 폭발이 예견되었으며, 유럽 국가의 상호관계 문제가 대단히 긴급한 성격을 띠었다. 유럽, 좀 더 확실히 말하면, 세계 위기의 모든 새로운 격화는 주요한 정치적 문제들을 표면화시키고,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흡인력을 지니기에 충분할 만큼 가파르다. 따라서 이 슬로건을 거부하지 않은 채, 강령에서 한마디 말없이 무시하는 것, 즉 ‘비상시에’ 쓰기 위해 어딘가에 보관해두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원칙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는 경우, 유보조항을 다는 정책은 쓸데없는 짓이다.


    4. 국제주의의 기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초안은 세계경제와 그 내적 경향에 입각하여 설명을 시작하려고 한다一이는 인정받을 만한 시도이다. 이런 까닭에 〈프라브다〉지가 우리와 민족적-애국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사이에 원칙 상의 기본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올바르다. 노동자계급 국제당의 강령은 그 개별적 부분들을 지배하는 세계경제를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에만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세계 발전의 주요한 경향을 분석하는 데서, 초안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적절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대단히 일면적이어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기에 이른다.

    초안은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법칙을 자본주의 발전의 주요하고 거 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법칙으로 자주, 그것도 항상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언급한다. 하나의 근본적인 오류를 포함하여 초안의 많은 오류는 이론적으로 불균등 발전법칙에 대한 일면적이고 잘못된 비(非)마르크스주의적, 비(非)레닌주의적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초안은 첫째 장에서 ‘경제적, 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무조건적인 법칙이다. 이 불균등성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더욱 더 가속화 되고 심화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올바르다. 이런 설명은 문제에 대한 스탈린의 최근 설명을 부분적으로 배격한다. 스탈린의 최근 설명에 따르면, 레닌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균등 발전법칙에 대해 마르크스와 앵겔스 모두 몰랐다. 1925년 9월 15일, 스탈린은 앵겔스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불균등 발전법칙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을(!!) 때’에 쓴 것이기 때문에 트로츠키가 엥겔스의 어떠한 말을 인용할지라도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아무리 믿기 힘들지라도, 초안 기초자 가운데 한 사람인 스탈린은 여러 번 반복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초안의 내용은 이 점에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이 기본적 오류의 교정을 차치한다면, 불균등 발전법칙 에 대해 초안이 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일 면적 이고 부적절한 채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우선, 인류의 전체 역사가 불균등 발전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각각 심각한 내적 모순을 지닌, 다른 발전 단계에 있는 인류의 다양한 부위를 발견한다. 도달한 수준에서 매우 차이가 심하고, 다양한 시기를 거치는 동안 인류의 서로 다른 부위에서 나타나는 발전 속도상의 현저한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출발점 구실을 한다, 자본주의는 대물림된 불균등성에 대해 점진적으로만 지배력을 얻는 데, 독자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이를 깨뜨리고 개조한다. 선행한 경제체제와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선천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경제적 확장을 목표로 한다. 새로운 영토로 침투하고,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며, 자급자족적인 지역적, 일국적 경제를 금융상의 상호관계 체계로 개조시키려고 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들의 화해를 가져오며, 가장 발달한 국가와 가장 후진적인 국가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균일화한다. 이런 주요한 과정이 없다면, 처음엔 영국과 유럽, 그 다음엔 유럽과 미국의 상대적 평준화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식민지의 산업화, 인도와 영국사이의 격차 축소, 코민테른 강령뿐만 아니라 그 존재 자체도 기초를 두고 있는, 앞에서 열거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결과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여러 나라들을 서로 경제적으로 더욱 밀접하게 끌어당기고, 그 발전 단계를 평준화함으로써 자신만의 방식, 즉 항상 자신의 성과를 해치는 무정부적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 나라를 다른 나라에, 산업의 한 부문을 다른 부문에 대립시키며, 세계경제의 몇몇 부분을 발전시키는 반면에, 다른 부분의 발전을 방해하고 지연시킨다. 이 두 기본적인 경향의 상호관계一둘 다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생긴다一야말 로 우리에게 역사적 과정의 현존하는 구조를 설명해준다.

    제국주의는 보편성, 침투성, 기동성, 그리고 제국주의의 추진력인 금융자본을 아주 빠른 속도로 구성하는 덕분에 이 두 경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제국주의는 비할 데 없이 더 빠르게, 더 철저히 개별 국가와 대륙을 하나의 실체로 잇는다. 그러면서 서로 가장 긴밀하고 가장 불가결한 의존관계에 이르게 하고, 그 경제적 방식, 사회 형태, 발전 수준을 더욱 동일하게 만든다. 동시에 대단히 적대적인 방식으로, 호랑이가 달려들 듯, 후진국과 후진지역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이 ‘목표’를 달성한다. 그 결과인 세계경제의 통합과 평준화는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그리고 발작적으로 탈이 난다. 불균등 발전법칙에 대한 이러한 변증법적이고 전적으로 기계적이지 않은 이해야말로 제6차 대회에 제출된 강령 초안이 피하지 못한 근본적 오류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불균등 발전법칙에 대한 강령 초안의 일면적 평가를 지적한 직후, 기초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따라서 국제 노동자혁명을 반드시 하나의, 동시다발적인, 보편적 행동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에서 사회주의의 승리가 처음에는 몇몇 나라, 아니 심지어 고립된 일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실현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국제혁명은 동시다발적인 행동일 수 없다. 당연히 10월혁명을 겪고 성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10월혁명은 후진국의 노동자계급이 선진국 노동자계급이 ‘실제로 전면에 나서기를’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역사적 필연성의 압력을 받아 쟁취한 것이다. 이런 한계 안에서 불균등 발전법칙을 언급하는 것은 완전히 올바르며 아주 적절하다. 그러나 결론의 후반부一즉, 사회주의의 승리가 ‘고립된 일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실현가능하다는 공허한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요점을 입증하기 위해 강령 초안은 단순히 이렇게 주장한다: ‘이 사실에서 … 결론 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균등 발전법칙에서 당연히 이런 결론이 나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당연히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사실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만약 역사적 과정이 몇몇 나라가 불균등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서로 독립적으로, 서로 격리된 채 발전하는 그런 것이었다면, 불균등 발전법칙에서 일개 자본주의 국가에서一처음에는 가장 발전된 나라에서, 그 다음에는 발달 정도에 따라, 더 후진적인 나라들에서一의 사회주의 건설 가능성은 의문의 여지없이 당연한 결론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은 관습적인 생각, 이를테면, 전전(戰前) 사회민주주의 대오 속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보통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회 애국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이루는 생각이다. 물론 강령 초안은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쪽으로 기울고 있다.

    강령 초안의 이론적 오류는 불균등 발전법칙에서 이 법칙이 뜻하지도 않고, 또 뜻할 수도 없는 것을 추론하려고 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양한 나라들의 불균등하거나 산발적인 발전은 이 나라들 사이에서 증대하는 경제적 유대와 상호의존성을 끊임없이 교란시키지만 어떤 경우에도 제거하지는 않는다. 이 나라들은 4년간의 지옥 같은 대학살(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바로 다음날, 석탄, 빵, 석유, 화약, 바지 멜빵을 서로 교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강령 초안은 문제를 마치 역사적 발전이 산발적 도약에 기초해서만 나아가는 것처럼 가정한다. 반면에, 이런 도약을 일으키고, 이런 도약이 나타나는 경제적 토대는 초안 기초자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거나, 강제적으로 제거된다. 이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옹호할 유일한 목적으로 이렇게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심지어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한편으로, 불균등성, 즉 산발적인 역사적 발전은 시대 전체 내내 여러 국가가 잇따라 혁명적 흐름에 가담하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혁명을 확산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몇몇 나라의 유기적 상호의존은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을 배제하는 국제적 분업을 향해 발전해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말이 문제에 대한 유일하게 올바른 정식화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국적 토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지만,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마르크스주의 원칙이 이중삼중으로 옳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가 이런 적대적 경향들 모두를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며, 격화시키는 현대 시대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이 점에서 레닌은 단지 이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 자신이 정식화하고 답한 것을 발전시키고 구체화했을 뿐이다.

    우리 당의 강령은 10월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뒷받침한 국제적 조건에 전적으로 기초를 두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강령의 이론적 부분 전체를 발췌하기만 하면 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음을 지적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우리 당의 제8차 대회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된 포드벨스키(Podbelsky)가 강령의 몇몇 정식이 러시아혁명에만 관계 된 것이라고 암시하자, 레닌은 당 강령 문제에 대한 결론적인 발언(1919년 3월 19일)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포드벨스키는 임박한 사회혁명에 대해 말한 단락에 이의를 제기했다. … 그의 주장은 명백히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강령은 사회혁명을 세계적 규모로 다루기 때문이다.’(레닌, 《전집》, 제16권, 131쪽)

    여기서 레닌이 거의 같은 때에 우리 당이 국제혁명의 당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그 이름을 러시아공산당에서 공산당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앙위원회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레닌의 제안에 찬성했다. 그렇지만 그는 제3 인터내셔널 창설을 고려하여 이 문제를 대회에 상정하지는 않았다. 이런 입장이 당시에는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암시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의 증거다. 이것이 당강령이 이 ‘이론’을 비난하지 않고 단지 배제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러나 2년 뒤에 채택된 공산주의청년동맹의 강령은 청년들을 국제주의 정신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노동자혁명 문제에 대한 세상물정 모르는 환상과 일국적 편협함을 직접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얘기할 것이다.

    새로운 코민테른 강령 초안은 문제를 아주 다르게 제기한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1924년 이후 강령 기초자들의 수정주의적 진화와 조화를 이뤄, 초안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국사회주의 문제가 설명되는 방식은 초안 전체의 성격을 마르크스주의 문서로 볼 것인지 수정주의 문서로 볼 것인지를 결정한다.

    물론 강령 초안은 문제에 대한 공산주의적 정식화와 개량주의적 정식화의 차이를 조심스럽게, 고집스럽게, 따로따로 제시하고, 강조하며,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보증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수많은 마르크스주의 기계 장치와 설비를 갖췄으며, 심지어 과적재 하기까지 했지만, 주(主)돛은 일부러 모든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의 바람으로 부풀어 오르도록 세워져 있는 배 위 에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어처구니없는 경험으로부터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계급투쟁과 당의 강령적 문서 사이의 강력한 변증법적 상호의존을 이해한다. 그리고 새로운 수정주의 돛은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의 모든 안전장치를 쓸모없게 만든다는 우리의 주장을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코민테른의 발전과 운명을 결정할 이 기본적인 문제를 훨씬 더 자세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5. 당의 이론적 전통

    앞서의 인용문에서 강령 초안은 초안의 원문과 1915년 레닌의 글 사이의 표면상의, 그리고 순전히 어구상의 유사점을 보증하기 위해 ‘한 나 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레닌의 이 글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 중에 범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무자비하게 악용되었다. 초안은 다른 곳에서도 레닌의 말을 인증이라고 ‘일컬으며’ 같은 방법에 의지한다. 이것이 과학적인 ‘초안의 방법론’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헌의 풍부한 자원과 보배 같은 레닌의 저작에서一초안 기초자들은 레닌이 말하고, 쓰고, 수행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당 강령과 공산주의 청년동맹의 강령도 무시하면서, 문제가 명확히 제기된 10월혁명(얼마나 명확한가!) 시기 중에 모든 당 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표명한 견해들도 무시하면서, 강령의 기초자인 스탈린과 부하린 스스로가 1924년까지 말한 것도 무시하면서一1924년 말이나 1925년 초에 이른바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는 급박한 투쟁에 대처하려고 만들어낸 민족사회주의 이론을 두둔하기 위해 통틀어 두 인용문만이 레닌에게서 인용되고 있다. 하나는 레닌이 1915년에 쓴 유럽합중국에 대한 글에서, 다른 하나는 1923년에 쓴 협동조합에 대한 미완성 유저(遺著)에서 인용한 것이다. 각각 몇 줄의 이 두 인용문에 모순되는 모든 것一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의 총체一은 간단히 파기해버렸다. 인위적으로 발췌되었으며, 조잡하게, 그것도 모방적으로 곡해한 이 두 인용문은 그 정치적 결과라는 관점에서 볼 때 속박 받지 않는 새롭고 완전히 수정주의적인 이론의 기초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지금 마르크스주의의 나무줄기에 만약 접붙여지면, 가차 없이 해독을 끼쳐 나무 전체를 죽일 완전히 이질적인 가지를 스콜라 철학과 궤변이라는 방법을 통해 접붙이려는 시도를 목격하고 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선언했다 (처음이 아니다) :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문제는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레닌이 처음으로 당에 제기했다.’(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 의사록, 14쪽, 트로츠키의 강조)

    따라서 이것은 일국사회주의의 문제가 1915년 이전에는 언급된 적이 없었다는 자백이다. 그런고로 스탈린과 부하린은 노동자혁명의 국제적 성격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와 당의 전통 전체를 감히 침해하지는 않는다. 이를 명심하자.

    그렇지만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 자신이 이전에 말했던 것과 대비해서 레닌이 1915년에 ‘처음으로’ 무엇을 말했는지 살펴보자. 
    1915년에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경제적, 정치적 불균등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법칙이다. 따라서 우선 몇몇, 아니 심지어 일개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사회주의의 승리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나라의 승리 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자국에서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 다른 나라의 피억압 계급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그 나라들에서 자본가에 대항한 봉기를 일으키며, 만일의 경우에는 착취 계급과 이들의 정부에 대항하여 군사력도 불사하면서 나머지 자본주의 세계에 반기를 들 것이다.’(레닌, 《전집》, 제13권, 133쪽, 1915년 8월 23일. 트로츠키의 강조)

    레닌이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이었는가? 노동자계급의 독재를 수립한다는 의미에서만 사회주의는 일단 한 나라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와 대립될 것이다. 노동자 국가는 공격을 격퇴하고, 자신의 혁명적 공세를 취할 수 있기 위해 먼저 ‘자국에서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즉, 자본가들에게서 빼앗은 공장들의 운영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전부다. 이미 입증된 것처럼, 이러한 ‘사회주의의 승리’는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세계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초의 노동자 국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국에서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거나, ‘일관되게 사회주의적 유형’의 신뢰를 창출해야 했다. 따라서 레닌은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로 자급자족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그것도 후진국에서 건설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다만 그는 훨씬 더 현실적인 것, 즉 노동자 국가가 존재한 그 첫 시기 중에 10월혁명이 우리나라에서 성취한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혹시 증거를 필요로 하는가? 댈 수 있는 증거가 너무 많아서 가장 알맞은 증거를 고르는 것이 유일한 어려움이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테제(1918년 1월 7일)에서 레닌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서는 일정 기간,적어도 몇 달이 필요하다…’(레닌, 《전집》, 제15권, 64쪽)고 말했다. 

    같은 해, 즉 1918년 초에 레닌은 부하린을 겨냥한 ‘좌익적 유치함과 소부르주아적 경향에 대하여’(On Left Wing Childishness and Petty Bourgeois Tendencies)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를 테면, 국가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서 6개월 안에 수립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성취이자 사회주의가 1년 안에 확실히 수립되어 무적이 될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보장일 것이다.’(레닌, 《전집》, 제15권 제2부, 263쪽, 트로츠키의 강조)

    레닌은 어떻게 ‘사회주의의 확실한 수립’을 위한 기간을 그렇게 짧게 정할 수 있었는가? 그가 이런 말로 표현한 물질-생산적이고 사회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가 만약 1918년 4월 29일에 레닌이 소비에트정부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에 대한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떠올린다면, 이 문제는 즉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 ‘더 고도로 발전할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사회주의로의 완전한 이행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좀처럼 어렵다.’(앞의 책, 240쪽)

    1919년 12월 3일, 농촌꼬뮌/아르텔(Artel:촌락공동체) 대회에서 레닌은 훨씬 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자식들, 아마도 우리 손자들이 사회주의를 수립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레닌, 《전집》, 제16권, 398쪽)

    이 두 경우 중 어느 쪽의 레닌이 옳았는가? 그가 1년 안에 ‘사회주의의 확실한 수립’에 대해 말했을 때인가, 아니면 그가 ‘사회주의 체제 수립’을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 손자들에게 맡겼을 때인가?

    레닌은 두 경우 모두에서 옳았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히 다르고, 비교할 수도 없는 사회주의 건설의 두 단계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우에 ‘사회주의의 확실한 수립’을 통해 레닌이 의도한 것은 1년, 심지어 ‘몇 달’ 안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즉 그는 계급이 폐지되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모순이 제거될 것이라는 뜻으로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국가에 맡겨진 공장과 제분소의 생산을 회복하고, 그 결과 도시와 농촌 사이의 생산물을 교환할 가능성을 확신한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이었다. 기간의 짧음 자체는 본질적으로 온전한 견해를 이해하기 위한 확실한 수단이다.

    물론 이 기본적 임무를 위해서도 1918년 초에는 기간이 너무 짧게 설정되었다. 이것은 레닌이 코민테른 제4차 대회 때 ‘우리는 그때 지금보다 더 어리석었다’고 말하면서 자조했던 순전히 실무적인 ‘오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총체적 전망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졌지만, 12개월 안에, 그것도 후진국에서 완전한 ‘사회주의 체제’를 세울 수 있다고 잠시도 믿지 않았다.’ 이 주요 목표이자 최종 목표一사회주의 사회의 건설一의 달성을 레닌은 우리 자신,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손자들 세 세대에게 맡겼다.

    레닌이 1915년의 글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아니라 소련에서 이미 실현된 훨씬 더 기본적인 임무로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를 말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레닌의 말대로 권력을 장악한 노동자당이 3대에 이를 때까지 혁명전쟁을 ‘연기’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도달해야 했을 것이다.

    1915년의 인용문에 관한 한, 이것이 새로운 이론의 주요 지주인 것은 유감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더욱 더 애석한 것은 레닌이 이 구절을 러시아에 적용해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러시아와 대조를 이루는 유럽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는 유럽합중국 문제를 다룬 인용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레닌의 입장 전체에서 나온 것이다. 몇 달 뒤인 1915년 11월 20일, 레닌은 특별히 러시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계급의 임무는 명백히 실제 상황으로부터 나온다. 이 임무는 전제정권에 대항하는 대담하고 영웅적이며 혁명적인 투쟁이다(1912년 1월 [프라하]협의회의 슬로건들一‘세 마리의 고래’: 민주공화국, 8시간노동일, 농민을 위한 토지 몰수一옮긴이). 이 투쟁은 모든 민주적인 대중들, 즉 맨 먼저 농민을 끌어들일 것이다. 동시에, 국수주의에 반대하여 수행되어야 하는 가 차 없는 투쟁은 유럽의 노동자계급과 동맹하여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싸우는 투쟁이다. … 전쟁 국면은 농민을 포함하여 소부르주아 계급을 왼쪽으로 밀어내는 경제적, 정치적 요소들을 강화시켰다. 그러는 가운데 러시아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승리할 수 있는 절대적 가능성의 객관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서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충분히 무르익었다는 점은 전쟁 이전에 모든 선진국들의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인정 했던 것이다. (레닌, 《전집》, 제13권, 212쪽 이하, 트로츠키의 강조)

    이렇게 레닌은 1915년에 분명히 러시아의 민주주의 혁명과 서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말했다. 레닌은 소탈하게 마치 자명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러시아와 다른 서유럽에서는 러시아와 대조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령 초안 기초자들인 새로운 이론의 창시자들은 자신들이 다른 수많은 구절과 레닌 저작 모두를 무시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정직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이 인용문一많은 것 가운데 하나인一을 간단히 무시 한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들은 이를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서유럽을 언급한 다른 구절을 냉큼 붙들고, 이 구절이 담을 수도 없고 담지도 않은 의미를 이 구절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 구절이 언급하지도 않은 러시아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새로운 이론을 세운다.

    10월혁명 직전에 이 문제에 대한 레닌의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1917년 2월혁명 뒤 스위스를 떠나면서 레닌은 스위스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러시아는 농민국가이며,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다. 사회주의가 러시아에서 즉시 승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봉건 귀족과 지주들에게 광대한 토지가 맡겨져 있는 나라의 농민적 특성은 1905년 혁명의 경험에 기초하여 러시아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의 거대한 전진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혁명을 세계사회주의 혁명의 서막으로, 세계사회주의 혁명을 향한일보로 만들 수 있다. …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힘만으로 승리를 거둬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은 세계사회주의 혁명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고, 어떤 점에서는 세계사회주의 혁명의 개시 같은 요소를 제공할 수 있다. 러시아혁명은 자신의 주요하고 가장 믿을만한 동맹세력인 유럽과 미국의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이 결정적인 전투로 들어서는 문제를 촉진할 수 있다. (레닌, 《전집》, 제14권 제2부, 407쪽 이하)

    이 몇 줄에 문제의 모든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지금 우리에게 납득시키려는 것처럼, 만약 전쟁과 반동의 시기인 1915년에 레닌이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이 임무를 성취하고 나서 부르주아 국가들에 대해 선전포고할 수 있도록 단독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1917년 초, 즉 2월혁명 이후에 레닌이 어떻게 후진적 농민국가 러시아가 자신의 힘만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단언적으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조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레닌에 대해 일말의 존경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더 많은 인용문을 덧붙이는 것은 불필요할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성격에 의해 결정된 레닌의 정치적, 경제적 견해의 전체적 개요를 말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제들을 다룰 별책(別冊)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자급자족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레닌은 이런 주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레닌의 또 다른 글인 ‘협동조합에 대하여’(On Cooperation)를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강령 초안이 레닌의 이 유작을 광범하게 인용, 즉 이 글의 목적과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몇몇 표현을 이용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에트공화국의 노동자들이 ‘자국에서 … 사회주의의 완전한 건설을 위해 필요 충분한 모든 물질적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트로츠키의 강조) 강령 초안의 5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와병 중에 레닌이 구술하고 그의 사후에 출판된 글이 정말로 소비에트 국가가 독자적으로 완전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물질적인 전제조건, 즉 무엇보다도 생산적인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면, 사람들은 레닌이 무심결에 잘못 구술했거나, 속기사가 레닌의 말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실수했다고 추측해야만 할 것이다. 어쨌든 어느 쪽의 추측도 레닌이 급속한 두 번의 발작으로 마르크스주의나 자신이 평생에 걸쳐 설파한 사상을 포기했다는 추측보다는 더 그럴 듯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렇게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미완성 글이지만 뛰어난 ‘협동조합에 대하여’는 마찬가지로 뛰어난 그의 마지막 시기의 다른 글들과 사상적으로 일관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글은 서방과 동방의 혁명 사슬에서 10월혁명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논하고 있는 미완성 책의 한 장을 이루고 있다. 이 글은 레닌주의를 수정하려는 자들이 너무도 경솔하게 레닌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레닌은 ‘상업에 종사하는’ 협동조합들은 노동자 국가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올바른 정책을 통해 사적인 농민의 이해를 사회주의의 경로를 따라 보편적인 국가적 이해와의 융합을 지도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레닌은 이 반박의 여지가 없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한다.

    모든 대규모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국가권력,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있는 국가권력, 수백만 영세소농들과 노동자계급의 동맹, 농민과의 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력 담보 등一실제로 이것이 우리가 이전에는 장사꾼으로만 취급하고, 어떤 관점에서 보면 신경제정책 하에서 지금도우리가 이렇게 대하는 것이 정당하기도 한 협동조합, 오로지 협동조합들에게만 필요한 전부 가 아닐까? 이것이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전부가 아닐까? 이것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아직 아니지만, 이를 위해 필요 충분한 전부이다. (레닌, 《전집》, 제18권 제2부, 140쪽)

    최종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문구[‘오로지 협동조합들에게만’(?)]가 포함된 구절의 원문은 우리에게 이 글이 구술 작성된 교정되지 않은 초안임을 반박할 수 없이 증명한다. 글의 대의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원문의 몇몇 단발적인 단어들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더 용납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이 글의 정신만이 아니라 인용된 구절의 자구(字句)도 강령 초안의 기초자들이 오용하고 있는 것처럼, 이를 오용할 권리를 누구에게도 부여하지 않는다. ‘필요 충분한’ 전제조건에 대해 말하면서, 레닌은 이 글에서 자신의 주제를 엄격히 한정한다. 글에서 그는 우리의 토대인 소비에트 체제를 전제조건으로 하면서, 새로운 계급적 격변 없이 원자화되고 분산된 농민 기업을 통해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글은 전적으로 소규모 사적 상품경제에서 집단경제로 이행하는 사회-조직적 형태를 다루고 있지, 그 이행의 물질적-생산적 조건을 다루고 있지 않다. 유럽의 노동자계급이 오늘 승리를 거두고 그 공업기술로 우리를 도우러 왔더라도, 레닌이 사적 이해와 사회적 이해를 조화시키는 사회-조직적 방법으로 제기한 협동조합의 문제는 여전히 그 중요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을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존재하기만 하면, 협동조합은 전기를 포함하여 선진 기술을 통해 수많은 농민 기업을 재조직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길을 가리켜준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기술을 대체할 수 없고, 그런 기술을 창출하지도 못한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레닌은 단지 필요 충분한 전제조건 일반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조건들을 명확히 열거했다. (1) ‘모든 대규모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국가권력’(교정되지 않은 구절) (2)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있는 국가권력’ (3) ‘수많은 … 농민들과 노동자계급의 동맹’ (4) ‘농민과의 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력 담보’가 그것이다. 이런 순전히 정치적인 조건들을 열거한 뒤에서야一여기서 물질적 조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一레닌은 자신의 결론에 이른다. 즉 ‘이것’(앞서 말한 모든 것)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 ‘필요 충분한 전부’라는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필요 충분한 전부’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레닌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이것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아직 아니다.’ 왜 아닌가? 비록 이것이 충분하다고 할지라도, 정치적 조건들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레닌은 ‘단지’ 이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전제조건의 커다란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단지’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레닌도 문화가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문화적이기 위해서는一그는 수정주의자들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一일정한 물질적 토대가 필수적이다.’(앞의 책, 145쪽) 덧붙여 말하자면, 레닌이 특별히 국제사회주의 혁명 문제와 연결지어 전력 사용 문제를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쇠퇴하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강력한 세계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후진적인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나선 나라의 부단하고 비타협적인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투쟁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필요 충분한’ 정치적(이지만 물질적이지는 않은) 전제조건을 고려하면, 우리는 문화투쟁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국제적 차원에서 우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면, 나는 우리의 무게중심을 문화 사업으로 옮겨야 할 것이라고 밝힐 준비가 되어 있다.[레닌은 이 글 끝 부분에서 각별한 역점을 두어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앞의 책, 144쪽)

    정말로 그의 모든 다른 저작을 제쳐놓고 ‘협동조합에 대하여’만 분석 해보더라도, 이것이 레닌의 실제 생각이다. 우리가 ‘필요 충분한’ 전제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레닌의 말을 의식적으로 따온 다음, 여기에다 기본적인 물질적 전제조건을 덧붙이는 강령 초안 기초자들의 방식이 조작이 아니라면, 달리 뭐라고 할 수 있는가? 정확히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우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투쟁 중에, 즉 국제 노동자혁명과의 관련 속에서 여전히 획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레닌은 분명히 삽입구로 물질적 전제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새로운 이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지주가 처한 실정이다.

    우리는 여기서 1905년부터 1923년까지 레닌이 매우 단정적으로 주장하고 되풀이한 수많은 글과 연설들을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 : 세계혁명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 특히 후진국에서 자본가계급을 경제적으로 패배시킬 수는 없다,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임무는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임무이다一이로부터 레닌은 새로운 일국적 반동적 유토피아를 보급하는 자들에게는 ‘비관적’일지 모르지만, 혁명적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충분히 낙관적인 결론을 끌어냈다. 우리는 이 점에서 초안 기초자들이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필요 충분한’ 전제조건을 만들어낼 목적으로 직접 선택한 구절들에만 논의를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구조 전체가 손을 대자마자 산산이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논평도 필요치 않고, 잘못된 해석도 허락지 않을, 레닌의 논점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진술 가운데 적어도 하나를 제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상황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같지 않으며, 러시아에는 소수의 산업노동자들과 압도적 다수의 소농이 있다고 우리의 많은 저술, 모든 연설, 출판물 전체에서 강조해왔다. 이러한 나라에서 사회혁명은 두 가지 조건에 따라서만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첫째 조건은 적시에 하나 이상의 선진국들의 사회혁명으로 지원을 받는 것이다. … 둘째 조건은 독재를 수립하거나, 국가권력을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대다수 농민 사이의 합의이다. … 우리는다른 나라들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농민과의 합의만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레닌, 《전집》, 제18권 제1부, 137쪽 이하, 트로츠키의 강조)

    우리는 이 구절이 충분히 교훈적이기를 바란다. 첫째, 레닌은 자신이 제기한 견해가 ‘우리의 많은 저술, 모든 연설, 출판물 전체에서’ 발전해온 것이라고 글에서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둘째, 레닌이 이런 관점을 파악한 것은 10월혁명 2년 전인 1915년이 아니라, 4년 뒤인 1921년이었다.

    레닌에 관한 한, 우리는 감히 문제가 충분히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물어볼 것은 이것이다 :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강령 초안 기초자들의 과거 견해는 무엇이었는가?

    이 점에 대해, 스탈린은 1926년 11월에 이렇게 말했다 : ‘일국사회주의의 승리는 그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하며, 이 임무는 한 나라의 힘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당은 항상 출발점으로 삼았다.’(〈프라브다>지, 1926년 11월 12일자)

    우리는 당이 결코 이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다. 반대로 레닌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많은 저술, 모든 연설, 출판물 전체에서’ 당은 반대 입장에서 시작했다. 반대 입장은 소련공산당 강령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스탈린 자신은 ‘사회주의가 한 나라의 힘으로 건설될 수 있다’는 이런 잘못된 관점에서 ‘항상’ 시작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확인해보자. 

    1905년 또는 1915년에 이 문제에 대한 스탈린의 견해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알 길은 전혀 없다. 이에 대한 어떠한 문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4년에 스탈린은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나라에서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타도하고 노동자 정부를 세우는 것은 아직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의 주요한 임무一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一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몇몇 선진국 노동자계급의 협력 없이도 이 임무를 성취할 수 있는가?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최종적 승리 에 이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이는 불가능하다. 자본가계급을 타도하는 것은 한 나라의 노력으로도 충분하다一우리 혁명의 역사가 이를 확증한다.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한 나라의 노력, 특히 러시아 같은 농업국가의 노력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몇 선진국 노동자계급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 대체로 이것이 노동자혁명에 대한 레닌주의 이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스탈린, 《레닌과 레닌주의》, 40쪽 이하, 러시아어판, 1924) *영국공산당(CPGB)이 영어로 출판한 《레닌주의의 이론과 실제》, 45~46쪽

    ‘레닌주의 이론의 전형적인 특징’이 여기서 꽤 정확히 설명되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스탈린 책의 이 구절은 그 이후 판에서 정반대로 읽히도록 바뀌었다. 즉 ‘레닌주의 이론의 전형적인 특징’은 1년도 안 돼 … 트로츠키주의로 선포되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는 1924년판이 아니라 1926년 판에 기초하여 자신의 결정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스탈린의 실정이다. 이보다 더 유감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사태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에 대해서만큼 유감스럽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를 감수했을지도 모른다.

    희망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적어도 강령 초안의 실제 기초자인 부하린은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실현 가능성으로부터 ‘항상 시작했다’는 것이다. 확인해보자.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해 부하린이 1917년에 말한 것이다 :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 후진국 러시아에서도 이 기관차에 없어서는 안 될 기관사는 노동자계급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더 이상 부르주아 사회의 소유관계라는 틀 안에 머물 수 없다. 이들은 권력과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일정에 올라 있는’ 이 임무는 ‘일국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은 오직 세계 노동자 혁명이라는 파성퇴(破城槌)로만 부술 수 있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극복 할 수 없는 장벽’임을 주의하라一트로츠키)과 부딪친다.
    (부하린, 〈러시아의 계급투쟁과 혁명〉, 3쪽 이하, 러시아어판, 1917) 

    그는 이렇게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레닌의 입장이 1915년에 ‘바뀐’ 것으로 주장된 2년 뒤인 1917년에 부하린이 신봉한 견해였다. 그러나 혹시 10월혁 명이 부하린을 다르게 가르친 것은 아닐까? 다시 확인해보자.

    1919년에 부하린은 코민테른의 이론지에 ‘러시아의 노동자 독재와 세계혁명’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썼다.

    다양한 나라의 부르주아 그룹들의 상호의존과 함께 현존하는 세계경제와 그 부분들 사이의 관련 때문에, 몇몇 문명국가들에서 어느 쪽의 결정적 승리가 없다면 한 나라의 투쟁도 끝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트로츠키의 강조)

    당시에는 이것이 ‘자명하기’까지 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가 가능할지 어떨지 하는 문제가 마르크스주의와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의 전전(戰前) 문헌에서 여러 번 제기되었다. 필자들 대부분은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럼 1915년에 레닌은 어떠했는가? - 트로츠키] 이로부터 누구도 결코 한 나라에서 혁명을 시작하고 권력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는다.

    바로 그렇다! 같은 글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생산력의 상승기는 몇몇 주요 국가들에서 노동자계급의 승리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계혁명의 전면적인 진전과 소비에트 러시아와 산업국가들의 강력한 경제적 동맹의 결성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부하린, ‘러시아의 노동자 독재와 세계혁명’, 〈공산주의인터내셔널〉, 제5권, 614쪽, 1919년)

    생산력의 상승, 즉 진정한 사회주의의 발전은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한 뒤에야 비로소 우리나라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부하린의 주장은 실제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의 비난을 포함하여,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모든 비난이 근거로 들고 있는 주장과 똑 같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부하린이 자신의 건망증을 구세주 삼아 고발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나란히 또 다른, 그것도 비극적인 상황이 있다. 즉 비난당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똑같은 기본사상을 수십 차례 표명한 레닌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닌의 입장이 1915년에 ‘바뀐’ 것으로 주장된 6년 뒤이자, 10월혁명 4년 뒤인 1921년에 레닌이 이끈 중앙위원회는 부하린이 지도한 위원회가 작성한 공산주의청년동맹의 강령을 승인했다. 이 강령의 4절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소련에서 국가권력은 이미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있다. 세계자본주의에 맞서 영웅적 투쟁을 벌인 3년 동안 노동자계급은 소비에트 정부를 유지, 강화해 왔다. 러시아는 엄청난 천연 자원을 소유하고 있지만,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소부르주아 인구가 우세한 후진국이다. 우리는 지금 발전기에 들어선 세계 노동자혁명을 통해서만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다.

    공산주의청년동맹 강령(우연한 글이 아니라 강령이다!)의 이 한 단락은 당이 ‘항상’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 한 나라에서, 게다가 바로 러시아에서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초안 기초자들의 시도를 우스꽝스럽고 정말 파렴치하게 만든다. 만약 당이 ‘항상’ 그렇게 생각 했다면, 부하린은 왜 공산주의청년동맹의 강령에 이러한 단락을 끼워 넣었는가? 이때 스탈린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는가? 레닌과 중앙위원회 전체는 어떻게 이러한 이론(異論)을 승인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내의 누구도 이런 ‘실없는 말’을 알아채거나, 이에 항의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당, 당의 역사, 코민테른을 철저히 조롱하는 사악한 농담 같지 않은가? 이제 이를 멈추게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수정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당신들이 감히 레닌과 당의 이론적 전통 뒤에 숨겠다는 것인가!

    ‘트로츠키주의’를 비난하는 결의문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에서 자신의 짧은 기억력을 안전판으로 삼은 부하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트로츠키 동지의 연속혁명론에서는一트로츠키 동지는 현재도 이 이론을 제기한다一우리 경제의 후진성 때문에 세계혁명이 없다면 우리가 불가피하게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발견된다.’
    (의사록, 115쪽)

    나는 제7차 전원회의에서 내가 1905~06년에 정식화한 연속혁명론의 결함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당연히 나는 근본적이고, 레닌적이었으며, 나를 레닌에게로 이끈 데다, 내가 레닌주의에 대한 현재의 수정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게 한 이 이론의 어느 것도 포기할 생각을 해본 적 이 없다.

    연속혁명론에는 두 가지 기본적 명제가 있었다. 첫째,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후진적 이지만,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수중으로 권력을 이전시킬 수 있는 혁명을 선진국 노동자계급에 앞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수많은 자본주의 적들에게 포위된 후진국의 노동자 독재에 들이닥칠 모순에서 벗어날 방법은 세계혁명의 무대에서 발견될 것이다. 첫 번째 명제는 불균등 발전법칙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두 번째 명제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적, 정치적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의존한다. 내가 지금도 연속혁명론의 이 두 기본적 명제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부하린의 말은 옳다. 오늘날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렇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이 명제들이 이론적으로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통해, 실천적으로는 10월혁명의 경험을 통해 완전히 확인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6. 어떤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인가?

    예로 든 인용문들로도 과거와 현재의 스탈린과 부하린의 이론적 입장을 충분히 규정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방식의 특성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이들 자신이 1925년까지 했던 말(이 경우에는 레닌과도 완전히 일치한다)과 대단히 비슷한 주장을 반대파가 작성한 문건에서 선택하고 나서, 스탈린과 부하린이 이런 인용문에 기초하여 ‘사회민주주의적 일탈’ 이론을 구축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10월혁명과 국제혁명의 관계라는 중심적 문제에서 반대파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오토 바우어(Otto Bauer)와 같은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정말로 1924년에서야 인쇄기가 발명되었으며, 1924년 이전에 일어난 모든 일은 결국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도박은 건망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제4차 대회에서 10월혁명의 본질 문제에 대해 오토 바우어와 제2인터내셔널의 다른 속물들에게 앙갚음을 했다. 중앙위원회가 승인한,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 NEP)과 세계혁명의 전망에 대한 보고에서 나는 당시 우리 중앙위원회의 견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오토 바우어의 입장을 평가했다. 이 보고는 대회에서 어떤 반대에도 부딪치지 않았으며, 나는 이것이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부하린 자신에 관한 한, 그는 ‘레닌과 트로츠키를 포함하여 많은 동지들이 이에 대해 이미 말했기’ 때문에 문제의 정치적 측면을 명백히 하기를 거부했다. 바꿔 말하면, 부하린은 당시 내 연설에 동의했다. 이것이 제4차 대회에서 내가 오토 바우어에 대해 말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은 한편으로 격식을 차린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특히 유럽에서는 그 유용성을 잃었으며, 역사 발전의 제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승리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을 표한다. 이런 어리석고 우쭐대기 좋아하는 정신 착란자들이 가장 비참하고 진부한 모순에 처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신경제정책은 특정한 시공간이라는 명확한 상황에 맞게 고안된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포위 속에 있으며, 분명히 유럽의 혁명적 발전에 의지하는 노동자 국가의 조치다. … 시간과 같은 요소는 정치적 예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가 실제로 유럽에서 앞으로 100년이나 5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 따라서 소비에트 러시아가 자신의 경제정책에서 이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인정하면,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유럽에서 노동자 혁명이 붕괴하고, 자본주의 부활의 새 시대가 등장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근거에서 이것이 인정되어야 하는가? 만약 오토 바우어가 오스트리아의 현대생활에서 자본주의 부활의 어떤 기적적인 징후를 발견했다면, 러시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기적도 보지 못했고, 기적을 믿지도 않는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만약 유럽의 자본가계급이 몇 십 년 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세계적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성기가 아니라, 유럽의 경제적 정체와 문화적 쇠퇴를 의미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과정이 소비에트 러시아를 나락으로 끌어당길지도 모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때 소비에트 러시아가 ‘민주주의’ 단계를 거쳐야 할지, 다른 어떤 형태로 퇴락할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슈펭글러(Spengler)의 철학을 채택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명확히 유럽의 혁명적 발전을 기대한다. 신경제정책은 단지 그 발전 속도에 맞추는 것일 뿐이다. (레온 트로츠키, ‘사회민주주의 비판에 대하여’, 《코민테른의 첫 5년》, 491쪽.)

    문제에 대한 이런 정식화는 우리를 강령 초안을 평가 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즉 제국주의 시대에는 그 민족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가를 포괄하고 종속시키는 세계의 발전 경향 전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한 나라의 운명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가들은 세계 전체로부터,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소련을 제외한다. 이들은 고립된 국가인 소련에 경제적 ‘성숙도’라는 단조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이들은 소련이 독자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나설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노동자 국가는 자본주의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강령 초안 기초자들은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과 같은 이론적 입장을 채택하고, 이들의 형이상학적 방법론을 고스란히 인계한다. 이들은 또한 실재하는 세계와 제국주의 시대를 ‘추상한다.’ 이들은 고립적 발전이라는 허구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단조로운 경제적 기준을 세계혁명의 일국적 양상에 적용한다. 그러나 이들이 내리는 ‘평결’은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과 다르다. 강령 기초자들의 ‘좌익주의’는 이들이 사회민주주의적 평가를 거꾸로 뒤집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조하더라도 제2인터내셔널 이론가들의 입장은 여전히 쓸모가 없다. 사람들은 유치원의 실습 같은 바우어의 평가나 예언을 정말 무시하고 있는 레닌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 처한 실정 이다. 우리가 아니라 강령 초안 기초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이 바우어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야 한다.

     

    7. 세계경제에 대한 소련의 의존

    일국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현 예언자들의 선구자는 다름 아닌 헤르 폴마르(Herr Vollmar)였다. 1878년에 폴마르는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The Isolated Socialist State)라는 제목의 글에서 선진국 영국의 노동자계급보다 훨씬 더 원숙한 노동자계급을 거느린 독일에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 전망을 서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스탈린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잘 몰랐던 불균등 발전법칙에 대해 여러 군데에서 단호하고도 꽤 분명하게 언급한다. 이 법칙에 기초하여 폴마르는 1878년에 반박할 수 없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미래에도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을 지배 적인 조건 속에서, 모든 문명국들에서 사회주의가 동시에 승리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예견 할 수 있다.’

    폴마르는 이 생각을 더욱 진전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 ‘따라서 우리는 고립된 국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비록 유일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내가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우리가 ‘고립된 국가’라는 용어를 노동자 독재 아래에 있는 국가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면, 폴마르는 마르크스와 앵겔스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앞서 인용한 1915년 글에서 레닌이 표명한 반박할 수 없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순전히 폴마르 자신의 생각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 생각은 우리의 일국사회주의 이론 주창자들의 설명처럼 그렇게 일방적이고 그릇되게 정식화된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설명에서, 폴마르는 동시에 훨씬 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과 훨씬 더 낮은 생산비를 갖추고 있다는 이점 때문에 사회주의 독일이 세계자본주의 경제와 활발하게 경제적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명제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설명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평화공존이라는 전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발전할수록 꾸준히 자신의 놀랄 만한 생산적 우수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까닭에, 세계혁명의 필요성은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 사회주의는 시장에서 상품을 더 싼 값으로 판매함으로써 자본주의에 승리할 것이다.

    첫 번째 강령 초안의 기초자이자, 두 번째 초안의 기초자 가운데 한 명인 부하린은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완전히 고립된 자급자족 경제라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궤변으로 점철된 스콜라주의의 결정판인 ‘우리 혁명의 성격과 소련에서 성공적인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에 대하여’(〈볼셰비키〉, 19~20호, 1926년)라는 제목의 부하린의 글에서는 모든 추론이 고립된 경제의 범위 내에서 수행 된다. 중요한 논거 이자, 유일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의의 건설을 위해 “필요 충분한 전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중에는 사회주의 건설이 더 나아 갈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을 리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서 매해 전년도와 비교해 사회주의 경제 부문이 현저한 우위를 점하며 발전하고, 사회화된 경제 부문이 사적 자본주의 부문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이러한 원동력을 겸비한다면, 우리는 힘의 우위 속에서 매번 다음 새해를 시작할 것이다.’

    이런 추론은 나무랄 데 없다 : 따라서 ‘우리가 필요 충분한 전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입증되어야 하는 점에서 부터 시작하는 부하린은 들어가는 입구도 나오는 출구도 없는 완전한 자급자족적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세운다. 스탈린뿐만 아니라 부하린도 외부 환경, 즉 세계 전체에 관한 한, 간섭의 각도에서만 이를 생각하고 있다. 부하린이 자신의 글에서 국제적 요인을 ‘추상’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경우, 그는 세계시장이 아니라 군사적 간섭을 염두에 둔다. 부하린은 자신의 설명 전체에서 정말로 세계시장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 시장을 추상할 필요가 없다. 이 도식에 맞게 부하린은 제14차 러시아 당 대회에서 만약 우리가 간섭 때문에 방해받지 않는다면, ‘비록 거북이의 속도로라도’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옹호했다. 두 체제 사이의 부단한 투쟁의 문제, 사회주의는 오직 최고의 생산력에만 기초할 수 있다는 사실, 한마디로 증대하는 생산력에 기초하여 한 사회 구조의 다른 사회구조로의 대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역학一이 모든 것이 완전히 말소되었다. 혁명적, 역사적 변증법은 낮은 기술체계 위에 세운, 일국적 경계 안에서 ‘거북이의 속도로’ 발전하며, 오직 간섭에 대한 두려움으로만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자급자족적 사회주의라는 아주 인색한 반동적 유토피아로 대체되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에 대한 이런 파렴치한 희화화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우리의 견해에 대한 이런 규정이 앞서 인용된 부하린의 글에서 처음으로 일반적으로 제기되고 ‘구체화되었다.’ 역사는 우리가 폴마르의 일국사회주의 이론의 조악한 재탕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에 빠졌다고 기록할 것이다. 

    만약 러시아가 세계경제의 사슬에서 하나의 고리一가장 약한 고리지만 그렇더라도 하나의 고리인一가 아니었다면, 제정 러시아의 노동자계급은 10월에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국제적 분업 체계로부터 소비에트공화국을 차단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땅거미가 질 때에야 날아오르는 영리한 올빼미처럼, 우리 산업의 세계 산업에 대한 의존이 고정자본의 3분의 2로 구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존 고정자본을 어느 때보다도 많이 소진한 우리 산업이 세계시장과의 관계를 다시 맺고 확대하는 것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조짐을 보인 순간에, 또 대외무역 문제가 우리의 경제 지도자들에게 최고의 문제로 떠오른 순간에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불쑥 나타났다.

    레닌이 당에 말할 기회를 가진 마지막 대회인 제11차 대회에서 그는 당이 또 다른 시험에 견뎌야 할 것이라고 시기적절하게 경고했다 : ‘우리가 종속되어 있고, 결부되어 있으며, 따라서 벗어날 수 없는 러시아와 세계시장이 가할 시험…’

    가장 최근의 우리 대외무역 수치가 우리의 경제계획을 위한 수치의 중심이 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큼 고립된 ‘완전한 사회주의’ 이론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은 없다. 산업을 포함하여 우리 경제의 ‘가장 골치 아픈 약점’은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입 무역이다. 사슬의 저항력은 언제나 그 가장 약한 고리를 통해 측정되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계획 규모는 수입의 규모에 맞춰진다.

    〈계획경제〉(국가계획위원회의 이론지)에서 우리는 계획의 체계를 다룬 기사를 볼 수 있다

    …올해 우리의 관리 수치를 작성하는 데서, 우리는 방법론적으로 수줄과 수입 계획을 전체 계획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했다 : 우리는 다양한 산업 부문, 결과적으로 산업 일반과 특히 신규 산업체 건립 등등에 대한 우리의 계획에서 이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1927년 1월, 27쪽)

    이런 방법론적 접근에 대해 국가계획위원회는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리 수치는 경제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지만 이런 관리 수치는 이미 세계경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더 강해져서 고립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자본주의 세계는 우리에게 그 수출입 수치를 통해 자신들이 군사적 간섭과는 다른 설득 수단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 생산성과 사회체제 전체의 생산성이 시장에서 가격의 상관관계로 측정된다는 점에서, 아마도 소비에트 경제에 가장 큰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은 군사적 간섭이라기보다는 값이 더 싼 자본주의 상품의 침략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회주의 혁명은 단지 ‘자국’ 자본가계급에 대한 고립된 경제적 승리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 ‘전 세계에 임박한 사회주의 혁명은 결코 단지 자국 자본가계급에 대한 각국 노동자계급의 승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레닌, 《전집》, 제16권, 388쪽, ‘1919년’) 여기에는 두 사회체제 사이 의 경쟁과 사활적 투쟁이 관련되어 있다. 한 체제는 후진적인 생산력을 바탕으로 이제 막 건설에 나선 반면에, 다른 체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훨씬 더 위력적인 생산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세계시장에 대한 우리의 의존을 고백(레닌은 세계시장에 우리가 종속되어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하는 속에서 ‘비관주의’를 발견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 따라 세계시장에 직면해 자신의 옹졸한 소부르주아적 소심함과, 세계경제를 피해 덤불 뒤에 숨거나 자신만의 자원으로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 하는 세상모르는 낙관주의의 비참한 꼴을 드러내고 만다.

    새로운 이론은 소련이 군사적 간섭 때문에 붕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경제적 후진성 때문에 붕괴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괴상한 생각을 으레 존중해왔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국을 방어하려는 근로대중의 준비성은 이 국가를 공격하려는 자본주의 노예들의 준비성보다 훨씬 더 클 것이므로, ‘군사적 간섭이 왜 우리를 재앙적 위험에 처하게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적(enemy)은 기술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부하린은 오직 군사 기술적 측면에서만 생산력의 우위를 인정한다. 그는 포드(Ford)사의 트랙터가 크뢰조(Creusot)사의 총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총은 가끔씩만 작 동할 것이지만, 트랙터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다. 게다가 트랙터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총이 자기를 후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최초의 노동자 국가이자, 세계 노동자계급의 일부이며, 세계 노동자계급과 함께 세계 자본에 의존해 있다. ‘관계들’이라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중립적이며, 관료적으로 거세당한 단어는 몹시 번거롭고 위험한 이런 ‘관계들’의 성격을 숨길 목적에서만 유포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시장 가격으로 생산하고 있었다면, 세계시장에 대한 우리의 의존은 이미 의존이라고 할 것도 없이 지금보다 훨씬 모질지 않은 성격의 의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대외무역 독점 자체는 우리 의존의 심각성과 위험성의 증거이다.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에서 독점의 결정적 중요성은 바로 우리에게 불리한 현재의 역관계 때문이다. 그러나 대외무역의 독점은 단지 세계시장에 대한 우리의 의존을 통제할 뿐 제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소비에트공화국이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포위되어 있는 고립된 변방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완전한 경제적 독립과 우리에게 닥친 위험의 소멸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환상이고 유토피아주의 일 것이다.’(레닌, 《전집》, 제17권, 409쪽. 트로츠키의 강조)

    따라서 주요한 위험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자본주의 경제 안의 ‘고립된 변방’이라는 소련의 객관적 처지로부터 발생한다. 그렇지만 이런 위험은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작용에 달려 있다. 물론 궁극에 가서는 두 번째 요소, 즉 세계경제 전체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사회주의 체제의 생산성이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성에 항상 뒤처지는 일, 그래서 결국에는 틀림없이 사회주의공화국의 붕괴로 이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일어난다면 어떤 특별한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요구되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독자적으로 산업적 기반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는 이런 새로운 국면에서 우리 경제를 훌륭히 꾸려나간다면, 우리의 노동생산성도 증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국가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생산성이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빨리 증대할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가? 이 문제에 대해 똑똑히 대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속도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거북이의 속도’라는 어처구니없는 철학은 고사하고)는 맥 빠진 주장을 위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러나 두 체제의 경쟁이 라는 문제에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 자체야말로 우리를 세계경제와 세계 정치의 무대, 즉 소비에트공화국(이따금 인터내셔널에 대한 지원을 보증하는 자급자족적인 소비에트공화국은 절대로 아닌)을 포함하여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행동과 결정을 위한 무대로 이끈다.

    소련의 국가경제를 평하면서 강령 초안은 소련의 국가경제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발전 속도를 능가하는 속도로 대규모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두 체제의 발전 속도를 병치하려는 이런 시도를 우리는 강령 기초자들이 우리의 발전과 세계의 발전 사이의 비교지수라는 문제 자체를 딱 잘라 거부했던 시기와 비교해볼 때 원칙적인 진일보라고 인정해야 한다. 스탈린은 ‘국제적 요소를 억지로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부하린은 ‘거북이의 속도로라도’ 사회주의를 건설하자고 말했다. 바로 이 노선에 따라 몇 년 동안에 걸쳐 원칙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형식적으로는 이 노선에 따라 우리가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단지 경제 발전 속도사이의 비교를 본문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보려고 한다면, 초안의 다른 부분에서 자본주의 세계와 어떠한 관련도 없이 국내 관계만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산업의 충분한 최소한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또한 어떤 나라가 독자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도 똑같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문제는 두 체제 사이, 두 세계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이 투쟁에는 우리의 복구 기간의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명백하고 기본적인 사실이 그대로 남아있다. 즉,

    국제적 차원에서 보자면, 자본주의는 지금도 군사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미에서도 소비에트 권력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이런 기본적인 고려에서 시작해야하며, 이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레닌, 《전집》, 제17권, 102쪽)

    서로 다른 발전 속도 사이의 상호관계라는 문제는 미래의 미해결 문제로 남는다. 이것은 오직 실제로 스미치카(smychka:노농동맹 또는 농민과의 제휴-옮긴이)를 이루려는, 곡물 수집을 확실히 하려는, 수출입을 증대시키려는 우리의 능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이 투쟁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인인 우리의 내부적 성공은 물론이고 세계 자본주의의 운명, 그 침체, 고양, 붕괴, 즉 세계경제와 세계혁명의 추이에도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일국적 틀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투쟁의 무대에서 결정된다.

     

    8. ‘일국사회주의’라는 반동적 유토피아 이론의 원인으로서 생산력과 일국적 경계 사이의 모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국사회주의 이론의 기초는 한편으로 레닌의 글 몇 줄에 대한 궤변적 해석과, 다른 한편으로 ‘불균등발전법칙’에 대한 형식적 해석으로 요약된다. 문제의 인용문뿐만 아니라 역사법칙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정반대의 결론, 즉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그리고 1925년까지의 스탈린과 부하린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다다른 결론에 이른다.

    자본주의의 불균등하고 산발적인 발전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비(非)동시적이고, 불균등하며 산발적인 성격이 나온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여러 나라들의 극심한 상호의존의 긴장상태로부터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각도에서 다시 한 번 강령의 내용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해보자. 우리는 이미 서문에서 이런 글을 읽어 알고 있다: ‘제국주의는 … 세계경제의 일국적 생산력 발전과 민족-국가적 장벽 사이의 모순을 이례적인 정도로 악화시킨다.’

    우리는 이미 이 명제가 국제 강령의 근본 원리라기보다 정확히는 근본 원리가 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동적 이론인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선험적으로 배제, 거부, 일소하는 것이 바로 이 명제다. 왜냐하면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생산력 발전의 기본적 경향뿐만 아니라 이 발전을 통해 이미 달성한 물질적 성과도 비타협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다. 생산력은 일국적 경계에 저촉한다. 이 때문에 대외무역, 사람과 자본의 수출, 영토의 점령, 식민지 정책, 지난 제국주의 전쟁이 발생한 것이고, 또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생산력은 오래 전에 일국적 경계를 넘어섰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는 가장 발달한 생산력, 농업을 포함하여 생산과정에 전력과 화학을 응용하고, 현대 과학기술의 최고 요소들을 결합, 일반화하고, 최대한 발전시키는 것에 입각해서만 건설할 수 있다. 마르크스 이후 우리들은 항상 자본주의는 자신이 낳았으며, 1914년 전쟁이 보여준 것처럼, 부르주아 사적 소유권의 외피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의 민족적 틀도 갈기갈기 찢으려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경향에 대처 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말해왔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로부터 최고로 발달한 생산력을 인계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즉시 이를 진척시켜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하며,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경험해본적이 없는 발전 상태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 그렇다면 어떻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아래에서 맹렬히 극복하려고 한 일국적 범위로 생산력을 후진시킬 수 있는가? 아니면 혹시 일국적 경계가 너무 좁고, 결과적으로 일국사회주의 이론의 한계도 너무 제한적이라서 이것에 맞게 우리가 ‘구속받지 않는’ 생산력 이라는 견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또한 우리 스스로를 이를테면, 억제되고 길들여진 생산력, 즉 경제적으로 후진적인 공업기술 수준으로 한정해야 하는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러 산업 부문에서 우리는 즉시 발전을 방해받을 것이고, 현재의 보잘것없는 기술 수준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급락할 것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은 부르주아 러시아를 분리할 수 없는 결합력으로 세계경제와 연결시키고, 국경을 탈피해버린 생산력을 위해 자신의 영토 확장을 노린 부르주아 러시아를 결국 제국주의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이런 생산력을 물려받고 복구시키느라 노동자 국가는 수입과 수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령 초안이 현대 자본주의의 기술이 일국적 경계에 저촉한다는 테제를 기계적으로 내용에 집어넣은 다음, 마치 이런 저촉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이 문제다. 초안 전체는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와 레닌으로부터 취한 기존의 혁명적 테제들과 이런 혁명적 테제들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기회주의자와 중도주의자들의 결론을 혼합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안에 담겨있는 유리된 혁명적 문구에 현혹되지 않고 그 주요 경향이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우리는 이미 ‘고립된 일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강령 초안 1장의 일부분을 인용한 바 있다. 이 생각은 4장에서 더욱 더 조야하고 뚜렷하게 정식화된다. 

    ‘세계 노동자계급의 독재(?)는 … 개별 국가들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결과로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 무렵에는 새로 수립된 노동자공화국이 이미 존재하는 노동자공화국들과 연방을 이룰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말을 단순히 노동자계급 독재의 또 다른 표현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우리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불분명하지 않게 정식화되어야 하는 일반적인 주장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초안 기초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사회주의의 승리는 정말로 권력 장악과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이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국제적 분업에 기초한 세계사회주의 경제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무정부주의적 경향의 자급자족적 사회주의 공동체들의 연방에 도달할 것이다. 여기서 유일한 차이는 이 공동체들이 현재의 민족국가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낡고 통상적인 문구를 써서 절충적으로 새로운 정식을 감추려는 혼란한 충동에서, 강령 초안은 다음과 같은 테제에 의지한다.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세계적 승리와 그 세계 권력을 강화시킨 뒤에만, 세계사회주의 경제의 집중적 건설을 위한 긴 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4장)

    이론적 차폐물로 사용된 이 가정은 실제로는 단지 기본적인 모순을 폭로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 테제를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의 시대가 적어도 몇몇 선진국에서 노동자계급의 승리 이후에만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면, 이는 정말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이론에 대한 거부이며, 따라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입장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강령 초안의 여러 부분에 깃들어 있는 스탈린과 부하린의 새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도달할 것이다 : 세계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세계적 승리까지, 수많은 개별 국가들은 각국에서 완전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그 결과로 아이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블록으로 구조물을 쌓는 방식을 본떠, 이 사회주의 국가들로 세계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할 것이다. 실제로 세계사회주의 경제는 일국사회주의 경제들의 총합이 결코 아닐 것이다. 세계사회주의 경제는 그 기본적 측면에서 앞선 자본주의의 발전 전체가 만들어온 세계적 분업의 토양 위에서만 구체화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세계사회주의 경제는 많은 개별 국가들에서 ‘완전한 사회주의’를 건설한 다음이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릴 세계 노동자혁명의 폭발과 격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세워질 것이다.

    최초의 노동자 독재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은 자급자족적인 ‘완전한 사회주의’에 어느 정도나 가까운가가 아니라 독재 자체의 정치적 안정성과 미래의 세계사회주의 경제의 요소를 준비하는 데서 거둔 성공에 의해 측정될 것이다.

    이 수정주의적 견해는 5장에서 되도록이면 더욱 더 분명하게, 따라서 더욱 더 조잡하게 표현된다. 이 5장에서 초안 기초자는 자신들이 왜곡하고 있는 레닌의 유고한 줄 반 뒤에 숨어서 소련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 ‘… 나라 안에 봉건 지주와 자본가계급의 타도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완전한 건설을 위해 필요 충분한 물질적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떤 환경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예사롭지 않은 역사적 이점을 획득했는가? 이 점에 대한 답을 우리는 초안 2장에서 찾을 수 있다 : ‘제국주의 전선은 그 가장 약한 고리인 제정러시아에서 [1917년 혁명에 의해] 끊어졌다.’(트로츠키의 강조)

    이것은 레닌의 뛰어난 정식이다. 그 의미는 러시아가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후진적이고 경제적으로 가장 약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의 지배계급은 나라의 불충분한 생산력에 견딜 수 없는 짐을 지움에 따라 맨 먼저 붕괴하게 되었다. 따라서 불균등하고 산발적인 발전은 가장 후진적인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이 맨 먼저 권력을 잡게 했다. 우리는 이전에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장 약한 고리’의 노동자계급은 선진국 노동자계급에 비해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에서 가장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배웠다. 권력을 잡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깨닫지만, 우리가 우리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훨씬 전에 권력을 잡는다면 선진국의 노동자계급은 우리를 능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국제적 분업에 기초하여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지점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우리를 격려할 것이다. 이것이 과감히 10월혁명에 나섰을 때의 우리의 생각이었다. 당은 이런 생각을 신문과 집회를 통해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밝혔다. 그러나 1925년부터 이와 정반대되는 생각으로 대체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이제 우리는 과거 제정러시아가 ‘가장 약한 고리’였다는 사실이 제정러시아의 상속인인 소련 노동자계급에게 모든 약점과 함께 더도 덜도 말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건설’을 위한 자국적 전제조건을 가진 더할 나위 없는 이점을 제공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행한 영국은 필요한 원료를 공급하고, 생산품을 처분하기 위해 거의 전 세계를 필요로 하는 생산력의 과잉 발전 때문에 이런 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영국의 생산력이 좀 더 ‘절제’되고, 산업과 농업의 상대적 균형이 유지되었다면,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해군을 통해 외국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고립된’ 섬 에서 완전한 사회주의를 건설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령 초안은 4장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다 : 1)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미국, 독일, 영국 등)’ 2) ‘자본주의가 중간 정도 발전한 국가들(1917년 이전의 러시아, 폴란드 등)’ 3) ‘식민지와 반(半)식민지 국가들(중국, 인도 등)’

    ‘1917년 이전의 러시아’가 현재의 미국보다 현재의 중국에 훨씬 더 가깝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만약 초안의 다른 부분과 관련하여 이 부분이 잘못된 결론의 근원 구실을 한다는 사실만 아니었더라면, 이 도식적 구분에 대해 어떤 진지한 반대도 삼갔을 것이다. 초안에서는 ‘중간 수준’의 나라들이 독자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산업의 충분한 최소한도’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되고 있으므로, 이것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사실이다.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식민지와 반(半)식민지 국가들뿐이다. 나중에 살펴볼 것처럼, 이는 바로 강령 초안이 다른 장에서 이 나라들을 특징 짓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국가의 천연자원, 국가 안에서 산업과 농업의 상호관계, 세계경제 체제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같은 다른 조건들을 떼어낸 채, 이 기준으로만 사회주의 건설 문제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틀림없이 엄청난 오류와 모순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방금 영국에 대해 말했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라는 점이 틀림없는 영국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섬의 경계 안에서 성공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이 없다. 만약 봉쇄된다면 영국은 정말 몇 달 안에 질식당할 것이다.

    확실히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다면, 더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엄청난 이점이다. 전쟁 중에 부르주아 독일이 입증한 것처럼, 고도로 발달한 생산력은 경제 활동이 봉쇄망으로 포위되어 있을 때조차도 그에 예외적인 유연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일국적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이 선진국들에게 전반적인 퇴보, 생산력의 대대적인 축소 즉, 사회주의의 임무와 정반대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강령 초안은 현재의 생산력과 일국적 경계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이라는 기본적 테제를 잊고 있다. 그런데 이 테제로부터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이 낮은 생산력보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더 작은 장애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비록 상반되는 이유, 즉 낮은 생산력이 사회주의 건설의 토대 구실을 하기에는 불충분하지만, 이 토대가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에는 부적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일지라도 말이다. 불균등 발전법칙은 바로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잊혀진다.

    사회주의의 건설 문제는 단지 한 나라의 산업적 ‘성숙’이나 ‘미성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미성숙은 불균등 그 자체다. 소련에서 몇몇 산업 부문은 가장 기본적인 국내의 필요를 만족시키기에도 대단히 불충분 하다(특히 기계 제작). 반대로 다른 산업 부문은 대규모의 수출 증진 없이는 현재의 조건 아래에서 발전할 수 없다.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목재, 석유, 망간 같은 가장 중요한 산업 부문들이 후자에 속한다. 반면에, 만약 ‘과잉’(상대적으로) 부문이 수출할 수 없다면, ‘불충분한’ 산업 부문조차 진정으로 발전할 수 없다. 유토피아나 아틀란티스에서가 아니라 현세의 우리 경제라는 구체적인 지리적, 역사적 조건에서 고립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른 부문의 ‘과잉’ 발전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몇몇 부문의 불충분한 발전에 의해서도 여러 나라에 걸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것은 대체로 현대의 생산력이 일국적 경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 전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소유의 부르주아적 형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계에 대한 생산력의 반란이었다. 제국주의 전쟁은 생산력이 민족국가의 한계 안에 배길 수 없게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우리는 항상 자본주의가 자체 발전하는 생산력을 통제할 수 없으며, 오직 사회주의만이 자본주의 국가의 경계를 벗어난 생산력을 더 고도의 경제적 연합체 속에 결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립된 국가로 되돌아가는 모든 길은 막혀 있다. …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 의사록, 트로츠키의 연설, 100쪽)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면서 강령 초안은 이중, 삼중, 사중의 오류를 저지른다. 초안은 소련의 생산력을 과장한다. 또한 다양한 산업 부문의 불균등 발전법칙에 눈을 감고, 국제적 분업을 무시하며, 결정적으로 제국주의 시대에 고유한 가장 중요한 모순인 생산력과 민족-국가적 장벽 사이의 모순을 잊고 있다.

    분석되지 않은 주장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론을 옹호하는 부하린의 또 하나의 명제일 뿐만 아니라 일반화된 명제를 상기하는 일이 남아 있다.

    부하린은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상호관계는 소련에 현존하는 관계보다 더 양호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만약 후진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소련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마찬가지로 세계경제 차원에서도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은 형식적 사고의 고전적 예로 변증법에 관한 모든 교과서에 실릴만하다.

    우선,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세력관계가 소련 내부의 상호관계와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꽤 그럴 듯하다. 그러나 세계혁명은 산술 평균 방식에 따라서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일국혁명도 마찬가지다. 그 한 예로, 10월혁명은 노동자와 농민의 상호관계가 러시아 전체의 평균과 일치하는 지역을 선택한 것이 아 니라, 노동자들의 페테르부르크에서 맨 먼저 일어났으며, 자기 입장을 견고히 지켰다. 페테르부르크에 뒤이어 모스크바가 혁명정부와 혁명군대를 수립한 다음, 몇 년 동안 변경의 자본가계급을 타도해야 했다. 그리고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의 결과로서만, 소련의 경계 안에서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현재의 상호관계가 수립되었다. 혁명은 산술 평균 방식에 따라서 발생하지 않는다. 혁명은 덜 양호한 부문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일국적, 세계적 영역 모두의 결정적 부문에서 스스로를 견고히 할 때 까지는 자신의 완전한 승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둘째로, ‘평균적인’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상호관계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계급전쟁이 존재한다. 소련은 노동자 농민의 세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에 포위되어 있다. 자본가계급이 전 세계적으로 타도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만으로는 아직 소련 내에서, 그리고 전 세계 에서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상호관계도, 평균적인 과학기술 수준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은 즉시 완전히 다른 가능성과 다른 비중을 획득할 것이고, 이는 현재의 가능성, 비중과 정말로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셋째로, 모든 선진국의 생산력이 어느 정도 일국적 경계를 벗어났더라도, 부하린에 따르면, 모든 나라의 생산력을 전체적으로 고려해볼 때 지구의 한계를 넘어서고, 따라서 사회주의는 태양계 차원에서만 건설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평균적인 비율에 근거한 부하린식의 주장이 모든 정치 입문서 에 실려야 한다고 반복한다. 물론 지금과 같이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식적 궤변과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완전한 대립의 증거로 실려야 한다는 것이다.

     

    9. 문제는 오직 세계혁명의 무대에서만 풀 수 있다

    새로운 이론은 간섭만 없다면 사회주의가 민족국가에 기초하여 건설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로부터 (강령 초안의 모든 화려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간섭을 피할 목적으로 외국 자본가계급에 대한 협력 정책을 추구할 수 있고, 또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사회주의 건설을 보증할, 즉 주요한 역사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민테른에 속한 당들의 임무는 보조적인 성격을 띤다. 이들의 임무는 소련을 간섭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지, 권력 장악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인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사고의 객관적 타당성의 문제다.

    [스탈린은 이렇게 말한다] 견해 차이는 당이 이런 [내부] 모순과 있을 수 있는 대립을 우리 혁명의 내적인 힘에 기초하여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트로츠키와 반대파 동지들은 이런 모순과 대립을 ‘오직 세계적 차원에서만, 세계 노동자혁명의 무대에서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있다.(〈프라브다〉지, 262호, 1926년 12월 12일자)

    그렇다. 이것이 바로 차이다. 민족적 개량주의와 혁명적 국제주의 사이의 차이를 이보다 더 잘, 그리고 더 정확하게 표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기본적으로 세계적 모순의 반영인 우리의 내부적 어려움, 장애물, 모순들이 ‘세계 노동자혁명의 무대’에 등장하는 일 없이 ‘우리 혁명의 내적인 힘’으로 그냥 해결될 수 있다면, 인터내셔널은 얼마간은 보조적 기구이자 얼마간은 장식적 기구일 것이다. 또 그 대회는 4년마다 한번, 10년마다 한번, 또는 아예 안 열릴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가 다른 나라의 노동자계급이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을 군사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더라도, 이 도식에 따르면, 인터내셔널은 평화주의의 도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계혁명의 기구라는 인터내셔널의 주요한 역할은 불가피하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반복하건대, 이것은 누군가의 계획적인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반대로, 강령의 여러 대목들은 그 기초자들의 의도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가장 나쁜 주관적인 의도보다 수천 배나 더 위험한 새로운 이론적 입장의 내적 논리로 부터 나온다.

    실제로 스탈린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에서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히고, 옹호할 만큼 대담해졌다.

    우리 당은 노동자계급을 희롱할(!) 권리가 없다. 당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에 대한 확신 부족(!)은 권력의 포기와 집권당인 우리 당의 입장으로부터 야당의 입장으로 넘어가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한다.(의사록, 제2권, 10쪽, 트로츠키의 강조)

    이것은 우리가 일국적 경제의 빈약한 자원에 대해 확신할 권리만 있을 뿐, 감히 국제 노동자계급이라는 무한한 자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신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국제혁명 없이 꾸려 나갈 수 없다면, 권력을, 그것도 우리가 국제혁명을 위해 장악한 10월 권력을 넘겨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철저하게 잘못된 정식에서 시작할 경우 보게 될 일종의 이론적 붕괴다!

    소련의 경제적 성공이 세계 노동자혁명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를 이룬다고 말하는 경우, 강령 초안은 부정할 수 없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론의 정치적 위험은 세계사회주의의 두 가지 수단, 즉 우리의 경제적 성공과 세계 노동자혁명에 대한 잘못된 비교 평가에 있다. 승리를 거둔 노동자혁명이 없다면,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과 전 세계의 노동자들은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경제 건설이라는 수단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올바른 지도부가 없다면, 노동자 독재는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몰락은 국제혁명에 꽤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계와 자본주의 세계 사이의 주요한 역사적 투쟁의 결론은 두 번째 수단, 즉 세계 노동자혁명에 달려 있다. 소련의 거대한 중요성은 세계혁명의 저항 기지라는 데 있는 것이지, 세계혁명과 관계없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추정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 없이 오만한 어조로, 전혀 근거도 없이 부하린은 여러 차례 우리에 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업의 전제조건, 출발점, 충분한 토대, 심지어 일정한 성공이 이미 존재한다면, 이를 넘어 모든 것을 ‘뒤죽박죽 되게 할’ 한계가 어디에 있는가? 그런 한계는 없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전원회의 의사록, 116쪽)

    이것은 틀린 기하학이지 역사적 변증법이 아니다. 몇몇 경우 그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국제적일 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한계, 경제적이고 군사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끔찍한 ‘한계’는 세계자본주의의 진지하고 장기적인 안정화와 새로운 호황으로 판가름이 날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세계무대로 이동한다. 자본가계급이 혼자 힘으로 자본주의의 성장과 자본가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보증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가 처해 있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 의지한 채, 이러한 가능성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혁명적 수다에 불과할 것이다. ‘정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은 없다’(레닌). 유럽 국가들에서 지금의 불안정한 계급 균형은 바로 그 불안정성 때문에 무기한 계속될 수 없다.

    스탈린과 부하린이 현재 노동자 대중의 적극적인 공감이 우리를 간섭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에, 다른 나라 노동자계급의 ‘국가적’ 원조 없이도, 즉 자본가계급에 대한 그 나라 노동자계급의 승리 없이도 소련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원칙적인 오류의 결과 전체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는 유럽노동자계급의 봉기를 방해했기 때문에, 노동자 대중의 적극적인 공감이 소비에트공화국을 구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시기 동안, 유럽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 국가에 대한 전쟁을 대규모로 수행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런 세력관계가 여러 해 동안, 이를테면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수립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발전 곡선 전체를 그 작은 부분 가운데 하나를 통해 판단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근시안적인 것이다. 자본가계급이 자기 나라를 확고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동시에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한 상황은 조만간에 어떤 식으로든 급격히 해결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독재에 유리하게든, 아니면 인민대중의 등을 타고, 식민지 인민의 뼛골을 빼고 … 아마도 우리 자신의 뼛골을 빼내 진지하고 장기적인 자본주의의 안정화에 유리하게든 말이다. ‘정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은 없다!’ 유럽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패배와 혁명 지도부의 오류를 통해서만 자신의 중대한 모순에서 벗어나는 영속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도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노동자계급이 혁명 중에 현재의 불안정한 균형에서 벗어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경우에만(물론 거대한 격변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전망을 포함하여)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호황이 없게 될 것이다.

    1920년 7월 19일, 코민테른 제2차 세계대회에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이제는 혁명정당들이 충분히 의식적이고, 조직적이며, 피착취 대중과의 충분한 접촉과 혁명의 성공과 승리를 위해 위기를 활용할 수 있는 결단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실천 활동을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레닌, 《전집》, 제17권, 264쪽)

    그렇지만 유럽과 세계의 투쟁 추세에 직접 좌우되는 우리의 내적 모순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전망에 기초한 올바른 국내 정책에 의해 합리적으로 조절되고 완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계급 모순을 극복할 경우에만 최종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이는 유럽의 혁명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불가능하다. 스탈린의 말이 맞다. 차이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적 개량주의와 혁명적 국제주의 사이의 근본적 차이다.

     

    10. 일련의 사회애국주의적 중대 실수인 일국사회주의 이론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집요하게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획득한 성과를 과대평가한다. ‘소련에서 사회주의는 이미 90% 실현되었다’라는 뜻의 스탈린의 진술보다 더 반(反)사회주의적이고 반(反)혁명적인 주장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진술은 특별히 자기도취적인 관료들에게 한 말 같다. 이런 식이면 근로대중이 보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은 구제불능으로 나빠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들이 차지해온 종속적 지위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낮은 문화적 수준을 고려한다면, 소련의 노동자계급은 웅대한 성공을 쟁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이상이라는 척도로 보면 이런 업적은 극히 작은 규모이다. 혁명 11년 동안에 가난, 불행, 실업, 빵 배급 줄, 문맹, 갈 곳 없는 아이들, 주벽, 매춘이 자기들 주위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아는 노동자, 농업 노동자, 빈농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서는 달콤한 거짓말이 아니라 냉혹한 진실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사회주의가 90% 실현되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적 수준,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이 사회주의보다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그것도 후진적 이고 비(非)문화적인 자본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가장 발달한 나라들의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때에만 우리가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의 길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경제적 노력이라는 단기적 수단과 국제 노동자투쟁이라는 장기적 수단 두 가지를 다 사용하여 끈기 있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우리는 이미 90% 실현되었다는 사회주의에 대한 스탈린주의자의 빈말 대신에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레닌의 말을 전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비관주의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짓을 팽개친다면, 만약 우리가 이를 악물고, 우리의 있는 힘을 다 모으고, 전력을 쏟는다면, 만약 우리가 구원은 우리가 들어서 있는 국제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따라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러시아(가난의 땅)는 그러한 땅(풍요의 땅)이 될 것 이다.(레닌, 《전집》, 제15권, 165쪽)

    우리는 코민테른의 저명한 지도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어야 했다 : 물론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근거가 없지만, 힘든 조건 속에서 애 쓰고 있는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강령에서 그 계급적 태도 결정의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도덕적 위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론적 파탄의 깊이를 재기는 어렵다. 모순된 사실에서 위안을 받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권에나 어울린다. 그런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우리 당은 일국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적으로 국제혁명에 방향을 맞춘 강령을 가지고 영웅적 시기를 지나왔다. 공산주의청년동맹은 후진적인 러시아 혼자서, 자신만의 힘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힌 강령적 기치 아래 내전, 기아, 추위, 힘겨운 주말노동, 전염병, 보잘 것 없는 배급량에 대한 배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치른 수많은 희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당과 공산주의청년동맹원들은 전선에서 싸우거나 원목을 철도역으로 힘들여 운반했다. 이런 원목으로 일국 사회주의를 건설하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국제혁명의 대의에 복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요새가 굴복하지 않는 것이 국제혁명에서 불가결해졌으며, 모든 추가 원목은 소비에트 요새에 중요했다. 이것이 우리가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쓴 방법이다. 시대가 변했고, 상황이 바뀌었지만(아직까지 그리 급격하지는 않지만), 원칙적인 접근은 지금도 충분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 노동자, 빈농, 열성당원, 청년 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진리가 처음으로 선포된 1925년 이전까지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통해 자신들에게는 새로운 진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위에 앉아 대중을 깔보는 관리, 혼란을 원치 않는 말단 관리자, 모든 것을 덜어주고 위로하는 방책의 엄호 하에 군림하려는 기구 신봉자들은 새로운 진리가 필요하다. 이 사람들은 무지한 인민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필요하고, 위안이 되는 교리 없이는 인민들을 대할 수 없다고 생각 한다. 이 사람들은 또한 특권적인 지위, 군림하고 명령할 권리, ‘회의론자들’과 ‘신념이 부족한’ 자들의 비판을 면할 필요 때문에 ‘90%의 사회주의’라는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기를 죽이고 열정을 앗아간다는 취지의 불평과 비난은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개량주의자들이 항상 혁명가들에게 퍼부어온 비난과 이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량주의자들은 이렇게 말 했다 : ‘당신들은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는 그 운명을 실제로 개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은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욕을 앗아간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경제적 이익과 의회주의적 개량을 위해 싸운 것은 정말로 혁명주의자들의 지도를 받을 때뿐이었다.

    세계자본주의의 생지옥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소비에트공화국의 운명, 따라서 자신의 운명도 전적으로 국제혁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노동자는 우리가 이미 90%로 추정되는 사회주의를 획득했다고 말하는 노동자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소련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주의를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는가?’ 여기에서도 개량주의적 태도는 언제나처럼 혁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개량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미 인용한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다루고 있는 1915년의 글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일국적 경계 안에서 사회혁명이라는 전망에 접근하는 것은 사회애국주의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동일한 일국적 협소함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바이앙(Vaillant)은 죽는 날까지 프랑스가 사회혁명의 약속된 땅이라고 여겼는데, 바로 이런 관점에서 그는 끝까지 조국 방어를 표방했다. 렌쉬(Lensch) 일당(일부는 위선적으로, 나머지는 진심으로)은 독일의 패배는 무엇보다도 사회혁명의 토대 파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대체로 사회애국주의에는 가장 저속한 개량주의와 함께, 자국의 산업적 수준 때문이든 ‘민주적’ 형태나 혁명적 승리 때문이든, 자국이 인류를 사회주의 또는 ‘민주주의’ 쪽으로 인도할 요구를 받았다고 여기는 민족적, 혁명적 메시아주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더 발전한 일개 국가의 경계 안에서 실제로 승리를 거둔 혁명을 상상할 수 있다면, 조국 방어 강령과 함께 이 메시아주의도 다소 상대적인 역사적 정당성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유대를 약화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혁명의 일국적 토대를 보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실제로 혁명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은 일국적 토대 위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현재의 전쟁에서처럼 그렇게 극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는 지금의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상호의존 아래에서는 혁명이 일국적 토대 위에서 완료될 수 없다. 혁명에서 유럽 노동자계급 쪽의 공동 행동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시 결정할 이 상호의존은 유럽합중국 슬로건으로 표현된다.(트로츠키, (전집》, 제3권 제1부, 90쪽 이하)

    1915년 논쟁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시작하는 스탈린은 내가 이 점 에서 레닌이 ‘일국적 편협함’에 지배를 받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을 보여 주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을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레닌과 논쟁하면서 나는 항상 오직 이데올로기적 고려에 따랐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위의 경우는 레닌과 전혀 관계가 없다. 1915년 글이 실명까지 거론하며 이런 비난을 퍼부은 대상들은 바이앙, 렌쉬 등이다. 1915년은 사회애국주의가 법석을 떨고, 이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이 압박을 가한 해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었다.

    앞서 말한 구절에서 제기된 근본적 문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올바르게 정식화되었다 : 일국사회주의의 건설 구상은 사회애국주의의 구상이다.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애국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가장 강력한 당인 자신들의 당에 대한 정당한 충성심으로서 시작되었다. 고도로 발전한 독일의 과학 기술, 독일 인민의 뛰어난 조직적 자질에 기초하여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자신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준비를 했다. 우리가 대체로 완고한 관료들, 출세주의자들, 의회주의 사기꾼들, 정치적 도둑놈들을 제쳐 놓는다면, 일반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회애국주의는 바로 독일 사회주의의 건설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수많은 일반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수백만의 일반적인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이 호엔쫄레른 왕가나 자본가계급을 방어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위한 일국적 차원의 ‘필요 충분한’ 전제조건으로서 독일의 산업, 독일의 철도와 고속도로, 독일의 과학 기술과 문화, 특히 독일 노동자계급의 조직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비슷한 과정이 프랑스에서도 발생했다. 게드(Guesde), 바이앙, 그리고 이들과 함께 가장 뛰어난 수천 명의 평당원들, 수많은 평범한 노동자들은 혁명적 전통, 영웅적 노동자계급, 고도로 문명화되고 유연하며 재능 있는 인민을 가진 프랑스가 바로 사회주의의 약속된 땅이라고 믿었다. 노련한 게드와 파리꼬뮌 전사 바이앙, 그리고 이들과 함께 수많은 진지한 노동자들은 은행가나 불로소득자를 보호하려고 싸우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의 창조력과 토양을 방어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믿었다. 이들은 전적으로 일국사회주의 이론에서 시작했으며, 이런 생각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시킨 국제적 연대가 ‘일시적’일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사회애국주의자들과 이렇게 비교하면 자본가 국가에 대한 애국주의는 배신인 반면에, 소비에트 국가에 대한 애국주의는 혁명적 의무라고 주장하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성숙한 혁명주의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논쟁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말을 하면 할수록, 이 명백한 가정은 점점 더 계획적인 거짓말의 형식적 차단막으로 변한다.

    혁명적 애국주의는 계급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는 당 조직과 노동조합에 대한 충성심으로 시작해서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상승한다. 권력이 노동자의 수중에 있을 때에는 언제나 애국주의가 혁명적 의무가 된다. 그러나 이 애국주의는 혁명적 국제주의의 분리될 수 없는 일부여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도 국제적 투쟁으로서 수행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 와서 느닷없이 사회주의 사회의 목표가 한 나라의 힘만으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인터내셔널에 대한 치명적 타격이다.

    계급의 근본적 목표는 부분적인 목표에 비해 훨씬 더 일국적 수단을 통해서나 일국적 경계 안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불요불굴의 신념이 바로 혁명적 국제주의의 핵심을 이룬다. 그렇지만 만약 궁극적 목표가 한 나라 노동자계급의 노력으로 일국적 경계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국제주의의 중추는 꺾여버렸을 것이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론은 승리를 거둔 노동자계급의 애국주의와 부르주아 국가 노동자계급의 패배주의 사이의 내적 관련성을 훼손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권력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향해 나아가느냐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임무를 일국적 임무로 보는가 국제적 임무로 보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만약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람들은 권력 장악 이후는 물론이고 그이전에도 그런 이론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가 후진적인 러시아의 일국적 경계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선진국 독일에서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일 독일공산당 지도자들은 이 이론을 제기할 것이다. 강령 초안이 이들에게 그렇게 할 권한을 준다. 모레는 프랑스당이 자기 차례라고 나설 것이다. 사회애국주의의 노선을 따라서 코민테른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다. 특정 자본주의 국가가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의 독자적 건설을 위해 ‘필요 충분한’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몇몇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당은 노스케(Noske)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1914년 8월 4일에 바로 이와 똑같은 문제에 빠진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와 본질적인 의미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공화국과 관련한 애국주의는 혁명적 의무이기 때문에 소련의 존재 자체가 사회애국주의에 대비한 보장책이라는 주장을 낳는 경우, 이런 올바른 생각의 일면적 적용에서는 일국적 편협함이 나타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오직 소련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중심적 문제에 대해 강령에서는 국제적 태도를 통해서만, 또한 아직까지 감춰져 있지만 레닌의 인터내셔널 강령에 자신의 이론적 둥지를 틀려고 하는 사회애국주의의 불법거래에 대한 가차 없는 거부를 통해서만 부르주아 국가와 관련된 노동자계급을 패배주의의 입장으로 이끌 수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길로 복귀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너무 늦지 않다. 이 복귀는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발전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구원으로 통할 이런 복귀를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코민테른 제6차 대회에 이 강령 초안 비판을 제출한다.

     

    2장 I 제국주의 시대의 전략과 전술

    1. 강령 초안 중심 장(章)의 완전한 파산

    코민테른의 강령 초안에는 혁명 전략 문제를 다룬 장이 있다. 그 의도는 매우 올바르고, 제국주의 시대에 노동자계급의 국제 강령의 목표와 정신에 부합한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정착된 혁명 전략 개념은 처음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군사 용어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개념은 결코 우연히 정착하지 않았다. 전쟁 전에 우리는 노동자당의 전술에 관해서만 말했다. 이런 생각은 일상적 요구와 임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당시의 일반적인 노동조합, 의회주의적 방식에 그만그만할 정도로 들어맞는 것이었다. 전술 개념은 계급투쟁의 각각의 당면 임무나 각 부문에 복무하는 체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반하여 혁명 전략은 각 행동의 결합, 일관 성, 성장을 통해 반드시 노동자계급을 권력 장악으로 이끌 통합적인 행동체계를 포함한다.

    혁명 전략의 기본적 원칙은 마르크스주의가 계급투쟁에 기초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임무를 노동자계급의 혁명정당에 처음으로 제시한 이래 자연스럽게 정식화되었다. 그렇지만 제1인터내셔널은 이런 원칙들을 정확히 말하면, 이론적으로만 정식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것도 여러 나라의 경험 속에서 부분적으로만 검증할 수 있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시대는 ‘운동이 전부이며, 궁극적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베른슈타인의 악명 높은 표현을 좇는 방식과 전망으로 지도되었다. 바꿔 말하면, 전략적 임무는 당시의 문제를 다룬 부분적 전술들과 함께 일상적 ‘운동’ 속에서 용해되어 사라져버렸다. 오직 제3인터내셔널만이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 전략을 제대로 복구시켰으며, 전술 체계를 이에 완전히 종속시켰다. 제3인터내셔널이 어깨를 기대고 있는 앞선 두 인터내셔널의 매우 귀중한 경험 덕분에, 그리고 현 시대의 혁명적 성격과 10월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경험 덕분에, 제3인터내셔널의 전략은 곧바로 정력적인 전투성과 가장 광범한 역사적 시야를 획득했다. 동시에,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첫 번째 10년은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뿐만 아니라 1918년부터 시작된 노동자계급의 가장 큰 패배의 파노라마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전략과 전술 문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코민테른 강령에서 중심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실제로 강령 초안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재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 아래 코민테른의 전략과 전술을 다룬 장은 거의 의미도 없는 가장 근거가 박약한 장 가운데 하나다. 동양을 다루고 있는 6장의 한 절은 정말로 단지 이미 저지른 오류를 일반화하고, 새로운 오류에 대한 준비로만 이루어져 있다.

    6장을 소개하는 절은 무정부주의, 혁명적 조합주의, 구조적 사회주의, 길드 사회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순전히 《공산당 선언》을 문학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은 당시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변종들에 대한 재치 있고 간결한 설명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정책을 과학적으로 수립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10주년을 맞은 지금, 코르넬리센(Comelissen), 아르투로 라브리올라(Arturo Labriola), 버나드 쇼(Bernard Shaw) 또는 좀 덜 알려진 길드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에 대한 산만하고 무기력한 비판에 착수하는 것은 정치적 요구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문학적인 박식함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류의 마음의 안정은 아마도 강령이 아니라 선전물 분야에서나 적합할 것이다.

    그 말의 본래 의미에서, 전략적 문제에 관한 한, 강령 초안은 다음과 같은 초보적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 계급의 대다수에 대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 …
    근로대중 일반의 광범한 부위 에 대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 …
    특히 노동조합을 획득하는 일상적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광범한 부위의 빈농을 획득하는 것 또한(?) 커다란 중요성이 있다 …

    그 자체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런 평범한 말들은 여기서 그냥 돌아가며 적시될 뿐이다. 즉, 이 말들은 역사적 시대의 특성과 어떤 관련도 없이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형태로도 별 어려움 없이 제2인터내셔널의 결의문에 끼워 넣을 수 있다. 여기서 강령의 중심 문제는 ‘구조적’ 사회주의와 ‘길드’ 사회주의를 다루는 구절에 비해 훨씬 더 짧은 도식적인 단 한 구절에서 아주 무미건조하고 대수롭지 않게 검토되고 있다. 이것은 혁명적 전복 전략, 무장봉기 그 자체로 가는 조건과 방법, 그리고 권력 장악 一 이 모든 것이 우리 시대의 생생한 경험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현학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여기서 핀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소비에트공화국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투쟁, 이탈리아의 9월시기, 독일의 1923년 사태, 영국 총파업 등등이 단조로운 연대순 형태로 열거된 것에 지나지 않은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노동자계급의 전략을 다룬 6장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와 세계혁명 발전의 첫 단계’를 다룬 2장에서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여기서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전략적 경험이 아니라 단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표현으로, 객관적 사건으로서만 접근한 것이다. 그 자체로 필요한 혁명적 모험주의(폭동주의)에 대한 거부가 예컨대, 에스토니아의 봉기, 또는 1924년 소피아 대성당 폭격, 또는 최근의 광동(廣東) 봉기 등은 혁명적 모험주의의 영웅적 발현인가, 아니면 거꾸로 노동자계급의 혁명 전략에서 나온 계획된 행동인지 여부에 답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강령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폭동주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초미의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는 강령 초안은 외교관의 직분에 충실한 것일 뿐, 공산주의 전략에 관계되는 문서가 아니다. 

    강령 초안이 노동자계급의 혁명 투쟁 문제를 이렇게 추상적이고 초역사적으로 정식화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는 대단히 적극적인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대체로 학문적이고, 현학적이며, 설교적으로 다루는 부하린 식의 방법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 쉽게 이해되는 이유 때문에 강령 초안 기초자들은 대체로 지난 5년간의 전략적 교훈들을 너무 중실하게 다루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당연히 혁명적인 행동강령은 이런 아주 중요한 시기에 일어난 모든 사태와 아무 관련도 없는 정언명제들을 모은 것일 뿐인 것이라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강령이 과거의 사태를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강령은 이런 사태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이런 사태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하며, 이런 사태를 망라해야 하고, 이런 사태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위상 때문에 강령은 노동자계급 투쟁의 모든 주요한 사실과 코민테른 내부의 이데올로기 투쟁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강령 전체에 대해서도사실이라면, 특히 전략과 전술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사실일 것 이다. 이 점에서 레닌의 말 속에서 이미 획득한 것 외 에도, 지금까지 놓쳐 왔지만 만약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획득한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전위에게는 진부한 문구의 목록이 아니라 행동 교범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전후 시대, 특히 지도부의 비참한 오류로 점철된 최근 5년의 투쟁 경험에 밀착하여 ‘전략’을 다룬 장의 문제들을 검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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