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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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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새끼가 주장하는 북방계 지배층 타령이

쥬신=조선=여진 타령하는 일본인들의 만선사관을 그대로 가져온 주장을 제외하면 환빠 민족주의자들이 말하는 우월한 북방계 기마민족으로서 중국을 쳐 밟고 일본의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는 개소리와는 약간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삼한 타령은 그런 것과 약간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런데 고구려 등 한반도 이외의 영토를 가졌던 고대 국가를 한국사라고 인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내가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삼한 이후의 한반도 이외의 영토를 가지지 못했던 국가만 한국사로 인정하고 삼한을 진정한 한국의 시조로서 받들어 악랄하고 야만적인 북방의 퉁구스 지배층들이 조작한 역사를 깨부수자고 그러는데

이런 주장은 일견 진보적인 탈민족주의로 보이기 때문에 여기 새끼들의 지지를 얻은 것 같은데

그게 과연 진보적인 탈민족주의일까?

도대체 왜 삼한의 기상을 되찾아야 하는 걸까? 그러한 주장은 혹시 국뽕이 아닐까?

애초에 그 개새끼 주장대로라면 삼한이 실존했는지도 의문이 아닌가

정사는 전부 서울과 도쿄의 북방계 엘리트들과 측천무후 같은 악마들이 자기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철저히 조작한 허구이고 날조인데 그 엘리트들이 쓴 정사에만 나오는 삼한의 존재는 과연 믿을 수 있나

삼한 유적이라고 나오는 것들도 무슨 문자로 삼한이라고 써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삼한 유적인지 아닌지 알게 뭔지

도대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삼한의 혼을 어떻게 되찾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북방계 지배층이 실존했다고 하더라도 북방계 지배층이 침략해서 한반도에 살았으면 한국 역사지 한국 역사가 아니어야 할 이유는 뭐냐

영국은 게르만과 일절 관계 없는 켈트족 역사고 프랑스는 로마제국이나 라틴과는 일절 관계 없는 골족 역사인가

도대체 삼한의 정체성을 가지고 단결해야 할 정당성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고 이런 것은 국뽕이 아닌가 한다

정사가 다 똥무더기 속의 쓰레기일 뿐인데 삼한도 없다고 하고 고구려도 없다고 하고 신라, 고려, 조선 다 없다고 하지 도대체 왜 삼한의 정통성만을 되찾자는 국뽕이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혹시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있냐

그리고 나는 고구려가 한국 역사라고 한 적 없다. 고구려가 퉁구스 만주족 역사라고 하는 것이 개소리라고 했을 뿐이고 그냥 민족사로서는 소멸된 민족이라고 하고 중국의 지역사로 하면 되지 않나.

이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되도 않게 고구려는 북방 기마민족 퉁구스 만주족이라는 증명도 안되는 헛소리 하지 말고






  • 아무튼 삼한이라고해야 그저 중국에 의책을 받으려 몰려다니던 미개인들 무리였던 것 같지만.

    아무튼 미개한인들은 그런 보잘것 없는 미개인들이 URI의 기층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오천년북방계단일선민족국민국뽕마약을 끊어야 하는.

  • 17.10.29

    2. 민주주의와 파시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11차 총회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파시즘, 부르조아 민주주의, 노골적인 파시즘적 형태 사이의 모순들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된 오류들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주 시급하다. 이 스탈린주의 철학의 핵심은 아주 명확하다: 맑스주의가 절대모순의 존재를 부정하므로 모순 심지어는 상대적 모순을 일반적으로부정한다. 이러한 오류는 속류 급진주의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만약 부르조아 계급 지배의 형태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조금의 모순도 없다면 이 두 지배형태는 당연히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논리라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사민주의는 파시즘과 동일하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은 사민주의를 사회파시즘(social fascism)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social)”라는 수식어는 왜 붙었는지 아직까지도 설명이 없다.

    (저자 주: 변증법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형이상학자들은 똑같은 추상어에 종종 서로 직접 모순되는 2개 이상의 명칭을 붙인다. 그래서 “민주주의” 일반과 “파시즘” 일반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구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유로 인해 중국, 인도, 스페인 등지에 “노동자 농민의 독재”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독재가 아닙니까? 아니다. 자본가 독재는 혹시 아닙니까?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습니까? 민주적 독재가 있다! 우주 어느 구석에 완전히 무계급 민주주의 사회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11차 총회의 결정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면 “민주적 독재”는 왜 ... 파시스트 독재와 다른가?

    오직 순수하게 순진한 사람만이 이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스탈린주의자들이 진지하고 정직한 해답을 내릴 것을 기대할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몇 개 더되는 고르고 고른 수식어를 제시할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동양 혁명의 운명은 바로 이 문제에 달려있다.)

    그러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총회의 결정에 따라 사물의 성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정말이지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이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또는 맑스주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 두 체제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계급들의 지배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똑같은 계급 즉 부르조아 계급의 상이한 지배방식일 뿐이다. 의회민주주의 방식과 파시즘 방식을 지지하는 피억압 피착취 계급은 각각 다르다. 그리고 이 두 방식은 서로 날카롭게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의회-부르조아 체제를 주로 대표하는 사민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반면 파시즘은 소자본가 계급의 지지를 얻고 있다. 노동자 대중조직의 지지 없이는 사민당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노동자 조직을 전멸시키지 않을 경우 파시즘은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없다. 의회는 사민당의 주요 활동무대이다. 파시즘은 의회 체제가 분쇄된 후 성립한다. 의회 체제와 파시즘 체제는 각기 다른 지배방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독점부르조아 계급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한가지에 의존하여 사회를 지배한다. 그러나 사민당이나 파시스트들에게는 지배계급의 지배방식 선택이 중요하다. 아니 이것 이상이다. 이들에게 이 선택은 정치적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다.

    지금 부르조아 독재의 “정상적인” 경찰력과 군대는 의회라는 연막술을 가지고도 사회질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 이제 파시즘 체제를 선택할 때가 된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자본주의는 얼이 빠진 소자본가 대중과 탈계급적이고 사기가 침체된 룸펜노동자 계급 그리고 금융자본에 의해 절망과 광증에 빠진 수많은 인민이 들고 일어나게 만든다. 부르조아 계급은 파시즘에게 소임을 철저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일단 내전이라는 방식을 택한 이상 독점부르조아 계급은 내전 이후 상당 기간 계급 평화가 유지되기를 원한다. 이제 파시즘은 소자본가 계급을 자신의 주요 공격무기로 활용하여 반대세력을 제압하면서 철저히 일을 수행한다. 파시즘이 승리한 후 금융자본은 강철 바이스처럼 직접 그리고 즉시 모든 주권기관, 집행-행정-교육에 관한 모든 국가행정력, 군대-지방자치단체-대학-학교-언론-노동조합-협동조합 등을 장악한다. 파시즘 체제가 도래하면 무쏠리니가 정한 유형에 따라 통치 형태와 방법이 변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사소하다. 정말 중요한 파시즘 체제의 특징은 이것이다: (ㄱ) 노동자 조직이 괴멸된다; (ㄴ) 노동계급은 파편화 된다; (ㄷ)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조직 형성을 막는 행정체제가 대중 깊숙히 침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와 파시즘 체제 사이에 과도기가 존재할 수도 있다. 이 과도기는 전자와 후자의 특징을 결합한다. 바로 이것이 서로 상극인 사회체제가 뒤바뀔 때 나타나는 과도기의 일반 법칙이다. 심지어는 부르조아 계급이 사민당과 파시즘 모두에게 의지하는 시기도 있다.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마지막 몇 달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경우에 속한다. 당시 케렌스키는 부분적으로 소비에트에 의존하면서도 한편으로 코르닐로프와 음모를 꾸몄다. 현재 독일의 브뤼닝 정권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정권은 두 화해할 수 없는 진영 사이에서 외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기다란 작대기 대신 긴급 포고령으로 균형을 유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사민당은 자신의 역할을 소진하기 직전에 있으며 공산당이나 파시즘 가운데 어느 쪽도 정권을 장악할 태세에 있지 않다. 브뤼닝 정권은 이러한 과도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오랫동안 파시즘에 대해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파시즘의 근본 개념들이 널리 남용되는 현상에 대해 여러 차례 항의한 바 있다. 코민테른 제 6차 대회 때에 에르콜리(주 13)는 지금 “트로츠키주의적”이라고 낙인찍힌 바로 그 견해를 파시즘 이론으로 완성하고 있었다. 당시 에르콜리는 파시즘을 가장 철저하고 비타협적인 반동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체제는 테러행위의 잔혹함, 다수 노동자와 농민의 살해, 다양한 형태의 잔인한 고문의 대대적 자행, 법정의 가혹한 판결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모든 형태의 독립적 대중조직을 체계적으로 괴멸시키는 것에 의존한다.” 이 점에 있어서 에르콜리는 절대적으로 옳다. 파시즘의 핵심 성격과 임무는 모든 노동자조직을 철저히 탄압하고 이들 조직의 부활을 저지하는 데에 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 목적이 경찰력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다: 노동계급이 약화될 때 절망하고 있는 소자본가 계급을 이용하여 노동계급을 억누른다. 파시즘의 이름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한 것은 바로 이 특수한 자본주의 반동체제이다.

    에르콜리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파시즘과 사민당의 관계에 대한 모든 문제들은 파시즘과 노동자 조직의 존재가 양립 불가능하다는 명제 속에 전부 들어있다. 지금까지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 존재한 다른 모든 반동체제와 파시즘을 명확히 구별시키는 것은 바로 이 관계이다. 파시즘은 사민당과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며 사민당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사민당의 모든 합법적 존재수단을 박탈하며 사민당 인사들의 국외 망명을 강요한다.”

    이것은 코민테른의 주요 기관지에 발표된 그의 논문 내용이다! 이 글이 발표된 직후 마누일스키는 몰로토프의 귀에 거창한 “제 3기” 사상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프랑스, 독일, 폴란드는 “혁명적 공세의 선두”에 배치되었다. 권력장악이 임박한 임무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봉기에 직면하면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은 반혁명 세력이므로 파시즘과 사민당을 구별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고 주장되었다. 사회파시즘론이 제창되었다. 그러자 코민테른의 관료들은 다시 줄을 서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에르콜리는 진리가 아무리 귀중해도 몰로토프가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서둘러 입증했다. 그리고 ... 에르콜리는 사회파시즘론을 옹호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1930년 2월 이렇게 선언했다: “이탈리아 사민당은 즉시 파시스트 일당으로 변모한다.” 공산주의 관료들만큼 빨리 아첨꾼이 되기도 힘들 것이다.

    예상한 바와 같이 “제 3기” 이론과 이 이론의 적용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반혁명 작태라고 선언되었다. 그러나 노동계급 전위를 값비싸게 희생시킨 잔혹한 경험들은 이 영역에서도 180도 전환을 강요했다. “제 3기” 이론과 몰로토프 자신은 코민테른에서 연금을 받고 은퇴했다. 그러나 사회파시즘론은 제 3기의 유일하게 잘익은 과실로 뒤에 남았다. 이 이론은 변경될 수가 없었다. 몰로토프만이 제 3기 이론에 묶여있었다. 그러나 스탈린 자신은 사회파시즘론이라는 그물에 걸려들어 완전히 포박되었다.

    적기지(紙)는 스탈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으로 사회파시즘론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파시즘은 사민당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존하는 부르조아 계급의 군사조직이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사민당은 파시즘의 온건한 분파이다.” 일반화를 시도할 때 스탈린은 두 번째 문장으로 첫 번째 문장을 반박하고 첫 번째 문장에서 전혀 도출되지 않는 두 번째 문장을 결론으로 삼는다. 부르조아 계급이 사민당에 기대고 파시즘이 이 계급의 군사조직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기서 나오는 유일한 결론은 파시즘 뿐 아니라 사민당도 대부르조아 계급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사민당이 어떻게 파시즘의 “분파”가 될 수 있는 지는 이해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심오한 것은 역시 스탈린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파시즘과 사민당은 적이 아니라 쌍둥이다. 그러나 쌍둥이들도 가장 처절한 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동맹 세력들이 반드시 같은 날 같은 부모에게서 날 필요는 없다. 스탈린의 사상은 변증법은 고사하고 형식논리마저 결여하고 있다. 그의 사상이 갖는 힘은 아무도 감히 그의 사상에 도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스탈린을 그대로 모방하여 베르너 허쉬(주 14)는 이런 내용으로 강연한다: “‘계급적 내용’으로 보아서는 민주주의와 파시즘은 차이가 없다.”([인터내셔널] 1932년 1월)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은 “유기적 과정” 즉 “서서히” 그리고 “피를 흘리지 않고” 진행되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논리는 모든 사람을 황당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 사이비 지도자들은 황당함에 익숙하도록 우리를 길들여 놓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가 없다. 당연히 이 말은 파시즘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도 부르조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1932년 1월 이전에 이 정도는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계급들과의 명확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민주적” 체제가 존속되는 동안 부르조아 계급은 주로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는다. 노동계급은 개량주의자들에 의해서 족쇄가 채워진다. 이러한 체제는 영국 보수당 뿐 아니라 노동당 정권 하에서도 가장 완성된 형태를 띤다. 파시즘의 최소한 첫 단계에서 자본은 소자본가 계급의 지지를 구한다. 소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의 조직을 파괴한다. 이탈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두 체제는 “계급적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가? 이 질문이 지배계급에 대해서만 제기된다면 차이는 없다. 만약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모든 계급들의 입장과 상호관계를 고려한다면 차이는 대단히 엄청나다.

    수십 년에 걸쳐 노동자 계급은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활용하고 이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아성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지 즉 노동조합, 정당, 교육-스포츠 클럽, 협동조합 등을 건설했다. 노동계급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가 아니라 오직 혁명의 길을 통해서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이론과 경험에 의해서 이미 증명되었다. 그리고 부르조아 국가 내의 이러한 노동자 민주주의 요새는 혁명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 2 인터내셔널의 업적은 자신이 여전히 진보적인 역사적 임무를 수행한 시대에 바로 이러한 요새들을 건설한 것에 있다.(주 15)

    파시즘의 기본적이고 유일한 임무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모든 기관들을 그 기초까지 깡그리 파괴하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노동계급에게 “계급적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 고상한 이론가들은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시즘이 부르조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사실을 선언한 후 허쉬는 자기 주인인 스탈린주의자들과 똑같이 자기도 한가지 사소한 일을 간과하고 있다: 파시즘에서 노동계급의 지위. 역사적 과정 대신 이들은 공허하고 추상적인  사회학 개념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계급 전쟁은 사회학이라는 성층권이 아니라 역사라는 토양 위에서 전개된다.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출발점은 추상적 민주국가가 아니라 살아있는 노동자 조직이다. 노동자 조직은 노동계급의 과거 투쟁 경험을 전부 응축하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의 이행은 “유기적인” 그리고 “점진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는 말에는 오직 한가지 의미 밖에 없다: 조금의 소동이나 싸움도 없이 노동계급은 자신의 모든 물질적 성과들 즉 주어진 생활수준, 사회입법, 시민적 정치적 권리들 뿐 아니라 이것들이 성취된 기본적 무기 즉 노동자 조직도 박탈당할 수 있다. 파시즘으로의 “피를 흘리지 않는” 이행은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무서운 노동계급의 굴복을 의미할 뿐이다.

    베르너 허쉬의 이론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스탈린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 아니라 공산당의 선동 내용 전체를 일반화시키는 데에도 이용된다. 브뤼닝 정권과 히틀러 정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을 증명하기 위해 공산당의 주요한 자원들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텔만과 레멜러는 허쉬의 이론이 볼셰비키 정책의 정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독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파시즘이 승리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사고는 코민테른의 지부인 각국 공산당 내부에서 열렬히 선전되고 있다. 프랑스의 정기간행물 [볼셰비즘 노트](Cahiers du Bolshevisme)는 이렇게 말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실제로는 브라이트샤이트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들은 그 유명한 사민주의 이론인 ‘차선책’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브뤼닝은 히틀러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보다 브뤼닝 치하에서 굶주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크(주 16)보다는 그뢰너에 의해 총살되는 것이 한없이 더 좋다는 것이다.” 이 글은 제대로 평가하자면 꽤 어리석은 문구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문구는 아니다. 다만 불행하게도 코민테른 지도자들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자들은 히틀러와 브뤼닝 두 정권을 속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브뤼닝 정권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바라본다면 논쟁의 여지없이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자랑스러운 바이마르 헌법에서 남아있는 것은 뼈다귀와 껍데기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 사실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가 처한 문제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조건 만이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반동세력의 “정상적인” 경찰력이 언제 어디서 파시즘으로 대체될 지를 파악할 수 있는 믿을만한 유일한 조건이다.

    브뤼닝이 히틀러보다 “더 나은”지(어쩌면 더 나아 보이는 지)는 우리에게 전혀 관심사항이 아니다. 파시즘이 아직도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면 현존하는 노동자 조직들의 명단만 보면 된다. 파시즘이 승리하기에는 아직도 거대한 장애물과 세력이 남아 있다.

    현 브뤼닝 정권은 관료적 독재체제 또는 좀더 확정적으로 말하자면 군대와 경찰력으로 유지되는 부르조아 독재체제이다. 노동계급 조직과 파시즘에 붙은 소자본가 계급 조직은 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노동자들이 소비에트로 단결되고 공장위원회가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면 현 상황을 이중권력(dual power)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분열되어 있으며 노동계급 전위의 전술이 무기력한 상황이므로 이중권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파시즘을 격퇴시킬 능력이 있는 강력한 노동계급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료적 국가기구는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브뤼닝의 독재체제는 보나파르트 체제(주 17)의 우스꽝스러운 형태이다. 그의 정권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체제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의 새로운 안정의 시작이 아니라 낡은 안정의 때 이른 붕괴를 상징한다. 극소수 부르조아 계급의 직접적 지지만을 받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민당에 의해 관용되고 있으며 파시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브뤼닝은 종이쪽지 위에 포고령을 천둥처럼 선언할 뿐 진짜 천둥을 내릴 수 없다. 그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의회를 해산할 수 있으며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하는 몇몇의 포고령을 발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탄절 휴전을 선언하고 이때를 틈타 몇몇 수작을 부릴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백 개 정도의 모임을 해산시키고 열댓 개의 신문을 폐간시키고 농촌의 약사에 걸맞게 히틀러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이상 큰일을 벌이기에는 그의 팔이 너무 짧다.

    현재 브뤼닝은 노동자 조직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 권력을 히틀러에게 넘겨줄 결정을 하지 않았으며 독자적으로 노동자 조직을 싹쓸이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승리를 지독히 두려워하고 있는 한에서만 그는 파시스트들을 용인하고 감싸안고 있다. 그의 정권은 이행기의 단명한 정권으로 커다란 재앙의 전조이다. 주요 진영들이 아직 자신들의 힘을 실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권은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본격적인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공공연한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관료적 무기력의 독재가 공백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브뤼닝과 히틀러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현명한 신사 양반들은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 조직이 존재하든 파괴되든 차이가 없다. 이 급진적인 체하는 허풍 밑에는 가장 지저분한 수동성이 숨어있다: 어쨌든 패배는 피할 수 없다! 프랑스 스탈린주의자들의 정기간행물이 필자의 글을 인용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읽어 보라. 이들은 이 문제를 히틀러나 브뤼닝 가운데 누구 밑에서 굶어 죽는 것이 나은 가하는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는 어떻게 싸워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에 있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관료적 독재체제가 파시즘 체제로 대체되기 전 즉 노동자조직이 괴멸되기 전에 진짜 싸움이 개시되어야 한다. 계급 투쟁을 시작하고 격화시키고 확대하는 것을 통해서 전면전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전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한참동안 치러야할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적의 승리를 미리 선언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바로 여기에 전략적 열쇠가 있다; 바로 여기에 싸움을 준비할 작전기지가 있다. 생각을 할 줄 아는 모든 노동자 더욱이 모든 공산주의자는 브뤼닝과 히틀러가 같다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공허하고 썩어빠진 허풍을 간파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놈들은 혼란 그 자체이다!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난관이 두려워서 네놈들은 우아하게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 네놈들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수건을 던져 기권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패배했다고 선언한다. 네놈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분열되어 있으며 개량주의자들에 의해 약화되어 있으며 전위의 동요로 혼란에 빠져있다. 그러나 아직도 괴멸되지 않았으며 그 역량도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 아니다. 독일 노동계급은 강력하다. 이들의 혁명적 에너지가 투쟁의 결전장으로 나아갈 때는 가장 낙관적인 예상도 한없이 능가하는 전과를 올릴 것이다.

    브뤼닝 정권은 미래를 준비하는 정권이다. 즉 파시즘의 승리 아니면 노동계급의 승리를 준비하는 정권이다. 이 양대 진영이 싸움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브뤼닝 정권은 준비기의 정권이다. 브뤼닝과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것은 싸움이 있기 전의 상황과 패배 후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 즉 미리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싸움 한 번도 하지 않고 항복할 것을 호소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이것을 원치 않는다. 물론 스탈린주의 관료집단 역시 이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좋은 의도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히틀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을 것이다. 우리는 정책의 객관적 의미, 방향, 경향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스탈린-마누일스키-텔만-레멜러의 정책은 수동적이며 겁에 질려있으며 주저하고 있으며 굴복하고 있으며 무기력하게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상황의 열쇠는 공산당의 손에 있으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이 열쇠를 혁명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대문을 잠그기 위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이 점을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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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7 게임 데프트와 정제승 코치의 할리갈리 대결, 그 승자는? Hatfelt 2017.11.07 7
266 게임 혁규의 플레이에 몹시 실망한 KT 관계자들 Hatfelt 2017.11.06 13
265 게임 팀원들의 암울한 상태에 분노한 울프의 샤우팅 Hatfelt 2017.11.06 6
264 게임 화면송출 까먹은 마타의 허겁지겁 사운드 방송 Hatfelt 2017.11.06 14
263 역사 한국인을 북방 유목민과 동일시해서 인종적 우월감을 억지로 만드는 것도 이제 끝이다. Uriginal 2017.10.02 149
262 역사 반탁이고 찬탁이고 이승만이고 김구고 그딴게 뭔 상관인지 2 Uriginal 2017.09.21 161
261 역사 한국인은 몽골 및 퉁구스 등 북방의 유목민과 일절 관계 없다 1 Uriginal 2017.09.18 137
260 국뽕 진지하게 구체적 계획이 있고 이런새끼는 모르겠는데 징징 거리는새끼들은 진짜 욕먹어야함 3 간장공장공장장 2017.09.12 188
259 역사 한국 새끼들이 북방과 기마민족을 동경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1 Uriginal 2017.09.11 126
258 정보 결국 결론은 location이더라. 3 베스트프렌드 2017.09.09 194
257 역사 한국에선 영원히 끝나지 않을 명언.png 5 file 좆같은헬조선인들은가스실이답 2017.09.09 294
256 정보 이 나라는 타이트한 고소법 폐지하지 않는 한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 2 grooip 2017.09.09 65
255 역사 한국인은 유목민과 일절 관계 없다고 언제까지 가르쳐야 하냐. Uriginal 2017.09.07 58
254 역사 기마민족설은 전체주의와 일절 관계 없다 3 Uriginal 2017.09.03 98
역사 존 이 개새끼가 우기는 역사를 검증하는 글 2 Uriginal 2017.09.02 114
252 언어 언어의 이해와 반복의 중요성 (글 또 씀 스크롤 압박주의... -_-) 16 file 박군 2017.08.30 520
251 역사 여기 새끼들 전형적인 조선인 아닌가. 5 Uriginal 2017.08.28 151
250 역사 여기 새끼들 역사관이 딱 김운회의 범쥬신론 수준 아닌가 2 Uriginal 2017.08.27 49
249 역사 여기 새끼들의 역사관은 이런 것 아닌가 14 Uriginal 2017.08.24 131
248 역사 이것을 보고도 북방계 알타이 타령이 국가적 국뽕 주입 사업과 관계가 없다고 짖어대는 새끼 있나 보자 3 Uriginal 2017.08.21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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