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Uriginal
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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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나한테 반발하는 새끼들 보면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이 사이트의 다수설을 안 따르고 무슨 네임드 타령하는 좆목질에 동참을 안 하니까 그게 아니꼬워서 그러는 것 같은데

하나의 주장만 따르고 한 사람의 영도자만 따르라는 여기 새끼들 태도가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조선인 그 자체 아닌가

내가 국뽕 주장한 것도 아니고 한국의 전체주의,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의 근원이 북방계 알타이에 대한 한국 새끼들의 집착에서 시작된다는 주장일 뿐인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는데 교주 몇마리가 엉겨붙어서 개지랄을 시작하니까 그 추종자 잡어새끼들도 우르르 몰려와서 발악을 하는 것을 보니 전체주의적 조선인 맞는 것 같다

여기도 처음부터 조선 사이트에서 조선인들이 조선하는 곳이었을 뿐이다






  • ㅋㅋㅋㅋㅋ 이 놈은 언제쯤 자신을 알게될것인가?
    이제 자기가 찐따인 것을 좀 헤아릴 때가 된 것 같은데...
  • Uriginal
    17.08.29
    존 리아퉁구스 이 개새끼들 똥꼬 안 빨면 찐따 논리 지렸고
    그 씨발 새끼들 똥꼬나 쳐 빨러 꺼져 이 국뽕 새끼야
  • ㅋㅋㅋㅋ 이 새끼는 그냥 자기 자신이 하는 행동과 태도 자체가 스스로가 븅신임을 입증한다는 것을 이렇게나 모를수가 있을까?

     
    정말 나도 인생 살아오면서 븅신샠기들 많이 봤지만
    인터넷 븅신 중에서 이 새끼가 최고다.
  • Uriginal
    17.08.29
    응 아님.
    응 너 죠센징.
  • 17.10.29

    3 역사와 인민전선

     

    1

    우리는 인민전선이 그 내용상 계급협조주의 또는 연립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계급협조주의와 연립정부와 관련된 역사적 교훈은 인민전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교훈을 세밀하게 살펴보지는 않겠지만, 간략하게나마 언급하는 것은 필요하다.

    계급협조주의 정책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평화롭고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조직과 교육을 통해, 다수 인민을 사회주의를 지지하게 만들 수 있고, 그 다음엔 투표를 통해 사회주의 사회가 도입될 수 있다고 주장된다. 1917년의 전쟁, 러시아 혁명 그리고 히틀러의 등장으로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우스꽝스러운 망상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은 제2인터내셔널 직후의 세계 개량주의 정당들을 지배해 왔고, 지금까지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계급협조주의 영향은 세계 노동운동에 퍼져 있다. 왜냐하면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계급협조주의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여전히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19세기의 몇 십 년 동안 그리고 1914년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는 대단히 발전했다. 반복적인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생산은 늘 새로운 높이까지 나아갔다.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는, 계급투쟁의 격화를 피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에게 상당한 양보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개량주의자는 최소한 특정층의 노동자들(이른바 ‘노동귀족’)에게 사회보장, 값싼 시영주택, 오락문화시설 등 일정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고, 추악한 정부 부패를 일소하는 ‘깨끗한 정부’ 캠페인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양보조치들은, 노동자권력을 향한 혁명적 계급투쟁을 포기한 대가로, 부르주아지가 개량적 노동계급 지도부를 통해 제공하는 뇌물이었다. 이 뇌물은 프롤레타리아 독립을 희생한 대가로 수용되는 것이었고, 그 외의 다른 무엇이 될 수 없었다. 계급협조주의 정책은 노동자들을 자기 계급의 독립적 힘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부르주아 국가를 통해 부르주아지에 옭아매었다. 개량주의 지도자가 노동계급 내의 부르주아 하수인이 되는 것은 결국 필연이었다.

    1914년에 그 결과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쟁이 터졌을 때, 개량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을 편들 것인가 맞설 것인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인가 사회애국주의인가의 선택에 직면했다. 그들의 과거 정책들이 온통 각 나라에서 ‘자기의’ 부르주아지에 얽매어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개량주의자들은 전쟁 편으로 넘어갔고, 대중들을 전쟁 도살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같은 과정이 1920년대 전후(戰後) 시기 동안 재현되었고, 파시즘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지배계급이 결심하자 그 과정은 히틀러에 대한 투항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계급협조주의는 항상 반혁명적이고 반맑스주의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쇠퇴기에 들어선 지금에는, 박약했지만 한때 먹혔던 구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생산은 더 이상 확장되지 않으며 점점 고갈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더 이상 대중에게 의미 있는 양보를 할 처지에 있지 않다.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와 ‘특권’은 반드시 하나씩하나씩 회수되어야 한다.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사회보장은 깎여나가야 한다. 계급협조주의 방법은 더 이상 작은 뇌물조차 제공할 수 없다. 오직 날카롭고 전투적인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들은 일상적 요구와 기초 권리를 방어해낼 수 있다. 새로운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여는 파시즘의 진전은 계급협조주의 체제를 위한 마지막 ‘정당성’마저 산산이 부수고 있다.

     

    2

    연립정부는 의회와 정부 영역에서 수행되는 계급협조의 일반적 정책일 뿐이다. 연립정부 참여를 통해 또는 이른바 ‘노동정부’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아래에서 정부부처를 맡음으로써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부르주아 국가를 운영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들이 자본주의의 정치적 집행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회피할 방도는 없고,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의도와 소망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는지는 정치 현실에 어떤 관련도 없다. 맑스주의에 따르면, 이 국가, 정부 조직은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이고, 그것은 지배계급의 통치를 보장하고 그 통치가 기초한 기본 사회관계를 지탱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다. 노골적인 부르주아 정당이 집권하고 있거나 대중들이 부르주아 정당들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그리고 대중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국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국가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 노동계급 정당들을 정부 내로 끌어들인다. 그러면 노동계급은 권력을 향한 투쟁에서 이탈하고, 그 지도자들에게 속아 부르주아 국가가 자신들의 정부가 되었다고 믿는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 하수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작업을 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배를 유지한다.

    연립정부 또는 ‘노동당’ 정부의 온전한 의미는, 1932년 8월 독일 부르주아지가 히틀러를 권좌에 앉히기 6개월 전 발간된 독일산업연맹(독일 거대 자본가들의 조직)의 내부회보에 수록된 눈에 띄는 논문에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논문은 독일 자본주의 운영권을 나치즘에 넘길 시간이 되었느냐 여부를 논의한다. (Brown Book of the Hitler Terror에서 따온) 인용구를 길게 소개하려 한다. 단지 지금의 초점을 명확히 하기 때문이 아니라, 파시즘의 본성과 의미에 관련된 전반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독일 자본주의 형성의 문제는 지도적 부위 즉, 산업을 통제하는 자본가들이 너무 작아서 혼자서는 통치를 유지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에 규정된다. 대단히 위험한, 노골적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관점에서 그에 속하지 않는 다른 부위들과 연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 부위는 인민에 지배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며 그리하여 국가의 특별한 마지막 방어자가 된다. 전쟁 이후 첫 번째 시기에서 부르주아 통치의 이 마지막 또는 ‘최종의’ 방어자는 사회민주당이었다.

    “국가사회당은 독일 자본주의 통치에 대중적 지지를 제공한 사회민주당의 뒤를 이었다…. 사회민주당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금까지 국가사회당이 가지고 있지 못한, 특별한 면허장을 가지고 있었다. 순수 정치력에 더해 최초의 노동자 정당이라는 성격에 힘입어, 사회민주당은 조직 노동을 통제하고 혁명 에너지를 마비시켜서 자본주의 국가에 꽉 붙들어 매는 데에 지속적이고 훨씬 더 가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 이후 자본주의 정권 재구성의 첫 시기에, 노동계급은 임금, 성취물과 사회정치적 수단들에 따라 나뉘어 있었고, 사회민주당은 그것들을 이용하여 혁명운동을 우회시킬 수 있었다…. 혁명이 사회정치적 수단으로 굴절되는 것은 공장과 거리의 투쟁이 의회와 내각으로 이전되는 것과 상응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위로부터의’ 타협으로 굴절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 관료 그리고 그들이 지도하는 노동자 부위는 자본주의 국가 그리고 그 통치기구 참여에 긴밀히 매이게 된다. 최소한 이러한 수단들을 통해 방어할 전쟁 후 성과들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노동자들의 그 지도부를 따르는 한.

    “이러한 분석은 4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1. ‘차악’ 정책은 단지 전술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본질이다.

    “2. 노동조합 관료를 국가에 ‘위로부터’ 연결시키는 끈들은 그들을의 맑스주의로 연결시키는 끈보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으로 연결시키는 끈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이는 관료들을 끌어들이려는 부르주아 국가와 연계되어 있다.

    “3. 정치적 견지에서 노동조합 관료와 사회민주당은 의회주의와 더불어 운명공동체이다.

    “4. 독점자본주의를 위한 자유주의 정책의 가능성은 노동계급의 분화를 향한 자동적 작동원리의 존재에 좌우된다. 자유주의 사회 정책을 도입하는 자본주의 정권은 단지 온전한 의회주의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사회민주주의로 하여금 충분한 성과를 가지게 해야 한다. 이 성과를 끝장내는 자본주의 정권은 의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희생시킨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대체물을 만들어야 하고 억압 정책으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처한 이 이동 과정은, 경제 위기가 언급한 성과들을 필연적으로 훼손해왔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이 성과가 소멸되고, 노동계급의 분화를 낳는 원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노동계급이 공산주의를 향해 움직이고, 자본주의 통치는 군사독재라는 비상한 단계로 나아가는 때에 그렇다…. 노동계급의 분화와 통제라는 이전 방법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때, 전과 다른 그리고 보다 직접적 방법에 의해서만 이 엄중한 시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때 국가사회당의 임무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사회민주당이 이전에 노동계급을 자유주의 정책으로 끌어들였던 것처럼, 만약 국가사회당이 노동조합을 억압정책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한다면, 국가사회주의는 자본주의 통치의 미래를 위한 본질적 기능 수행자가 될 것이고 국가와 사회 체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국가사회당 지도부 아래 노동조합 흡수에 맞서서 종종 추진되던 국가자본주의나 사회주의적 발전의 위험은 사실상 이와 같은 방법들로 회피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통치의 재구축 사이에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가차 없는 법칙을 회피할 길은 없다. 노동자정당이 연립정부에 들어가거나 부르주아 국가에 기초하여 노동자정부를 구성하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관리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위의 인용이 묘사했던 것처럼, 평화로운 시기에 그들은 노동자들의 에너지를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평화로운 길로 인도한다.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연립 또는 노동당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대영제국에 수립된 두 노동당 정권도 유사하다. 둘 중 어느 것도 사회주의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영국 금융자본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을 수행해야 했고, 인도와 관련해서는 보수당의 극단적 정책을 수행하기까지 했다. 바로 이전 인민전선 시기에 코민테른 이론가 중 한 명이 쓴 내용을 환기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노동당이 영국 제국주의 관리자가 되었을 때, 맥도널드 ‘노동’ 정부는 보수당이 통과한 법을 허용하고 광부노동자들에 맞서 그 법을 실행했고 광산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법을 보증했다. 영국 부르주아지의 관리자를 두 번째 맡았을 때, 독일 사회민주당이 자기 부르주아지의 강령을 수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 문제에서 부르주아의 노선을 즉각 받아들였다. 전력을 다해 노동자를 희생시켜 자본주의 합리화를 촉진했다. 평화중재자들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섬유산업의 이익을 위해 전체 섬유노동자들의 임금을 가혹하게 삭감하는 것을 허용했다. 빠르게 진행된 산업 합리화는 유례없이 많은 실업자를 낳았고 실업수당을 깎는 것은 물론 선원과 공무원의 임금을 삭감했다.” (벨러 쿤, 제2인터내셔널의 소멸)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온다. 자본주의 관리자로서, 자본주의가 공격당할 때 연립정부 또는 노동당정부는 반드시 자본주의를 방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부는 부르주아 제국주의 전쟁을 반드시 옹호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전복할지 모르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위협에 맞서서, 혁명을 분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전쟁 직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혁명적 노동자들을 총으로 쏘아 쓰러뜨렸던 자들은 바로 사회민주당 의회주의자들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의 피는, 그들이 문자 그대로 쏘아죽였다는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증명한다.

    연립정부나 노동당정부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위해 항상 복무하는 이유는,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기구와 작동원리는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봉건 사회가 붕괴되면서 바로 그 목표를 위해 형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오직 자본주의 소유관계와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위해 수립되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권력을 정치적으로 집행하고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직 부르주아 국가를 통째로 분쇄하고, 역사 사회적으로 다른 뿌리에 기초한 국가를 수립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러시아혁명 이래로 소비에트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 국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노동자와 농민의, 소비에트 또는 평의회 또는 위원회에 기초한 국가이다. 정확하게 어떤 형태의 국가가 특정한 나라에 들어설 것인가를 미리 점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완전히 분쇄한 오직 그와 같은 정치 구조만이 노동자의 권력을 수호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부르주아 국가가 노동자들에 의해 이용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고전적 증거는 맑스와 엥겔스의 파리 코뮌 분석과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발견된다. 『국가와 혁명』은 인민전선 정책에 맞선 바로 지금의 논쟁처럼 읽힌다.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를 인용한다.

    “코뮌을 통해서 특히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즉, ‘노동계급은 기존 국가기구를 쉽사리 장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휘두를 수도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레닌은 계속 말한다.

    “맑스의 생각은 노동계급은 ‘기존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타도해야 하며, 단순히 기존국가를 장악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레닌은 ‘기존 국가기구’를 대체할 국가의 기본 형태에 대해 말한다. 이 팸플릿의 상당한 양을 차지하는, 카우츠키에 대한 레닌의 모든 공격은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데에 이용할 가능성을 카우츠키가 수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우츠키는 레긴, 다비드, 플레하노프, 포트레소프, 체레텔리, 체르노프 등과 즐거운 친교를 맺어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국가권력 안에서의 힘의 균형의 이동’이나 ‘의회 내에서 다수석을 차지한다’든지 그리고 ‘의회를 정부의 지배자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목표란 그들 기회주의자들에게 전반적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으로, 부르주아적 의회제 공화국의 한계 내에서 모든 것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기회주의자들과 결연히 단절할 것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는 힘의 균형을 이동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코뮌의 형식을 이어받는 민주공화국이나 또는 노동자 · 병사 대표자 소비에트와 같은 공화국을 위하여,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를 위하여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부르주아적인 의회제도를 파괴하기 위한 투쟁을 우리와 더불어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제2인터내셔널의 개량주의자들을 향해 전면포화를 퍼붓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기존 국가기구를 타도할 행동을 해야 하고, 그 타도된 국가 대신에 새로운 것을 대체해야 할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사회의 사회주의적 재조직의 기초를 정치적 지배를 통해서 다져야 할 시기가 가까웠다는 생각을 노동자의 마음속에 새겨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은 대중들에게 그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설교하면서 기회주의로 빠져나갈 수천 개의 구멍을 마련해 두는 방식으로 ‘권력의 획득’을 묘사했었다.”

     

    3

    가장 최근, 인민전선 정부의 결정적 사례는 1917년 러시아의 케렌스키 임시정부이다. 케렌스키 정부는 모든 점에서 진정한 인민전선 정부의 정의에 맞아떨어진다. 그 속에 노동자와 농민의 모든 정당들이 있었다. 물론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볼셰비키였다. 그 정부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1917년 8월, 당시 파시스트인 코르닐로프 군대의 공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레닌의 정책은 단 한 순간도 임시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러시아에 도착하던 순간부터, 그는 어떤 형태로든 임시정부에 그와 같은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레닌이 도착했을 때, 그들 가운데 스탈린이 있었다.)에 맞서 싸웠다. 레닌의 정책은 국가권력을 소비에트로 넘겨야 한다는 데에 기초해 있었고, 최종적으로 임시정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통해 성취될 수 있었다. 그 임시정부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을 위해 파괴되어야 했다.

    레닌 정책에 대한 결정적 시험대는 코르닐로프가 반혁명을 시도한 8월이었다. 그러나 코르닐로프의 공격목표가 표면적으로는 케렌스키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에 어떤 지지도 보내지 않는다는 레닌의 정책은 요지부동이었다. 볼셰비키는 코르닐로프의 당면한 위험에 맞서 독립된 계급 정책을 추구했고, 임시정부에 조금도 의존하지 않았으며 임시정부와 그 정책에 종속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와 농민을 자신의 영향 아래 두기 위해 노력했다. 임시정부가 혁명과 노동자들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그리고 실제로 코르닐로프와 협정하는 과정에서 케렌스키는 배신을 시도했다.), 코르닐로프의 패퇴 이후에 혁명은 계속 전진하여 정부를 전복하고 소비에트에 권력을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트로츠키는 “볼셰비키당의 지도를 받아 코르닐로프에 대항한 대중이 한 순간도 케렌스키를 신뢰하지 않은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투쟁은 그만큼 더 결연하고 헌신적이었다….”라고 『러시아 혁명사』에서 말한다. 근무가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수병들이 감옥에 갇힌 크론슈타트 수병들, 트로츠키, 라스콜니코프 그리고 기타 인물들을 면회한 수병들이 “정부 장관들을 체포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케렌스키를 코르닐로프를 쏠 총 받침대로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케렌스키와 결판지을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6월과 7월에 이 수병들은 혁명 전략에 대해서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두 달의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은지를 진단하고 의식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임시정부 체포라는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진행하는 방향을 스스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7월 전반부에 이들은 두들겨 맞고 비난과 비방을 당했다. 그런데 8월말에는 코르닐로프 병력에 대항해 겨울궁전을 방어하는 믿음직한 투사가 되었다. 그리고 10월말에는 오로라 순양함에서 겨울궁전을 포격할 것이다.”

    레닌의 정책과 스탈린주의자와 오늘날 스페인 사회주의자들 사이엔 얼마나 깊은 골이 있는가? 그것은 혁명적 맑스주의와 개량주의 배신만큼의 골이다. (계속 이어짐)

     

     

    4장 인민전선으로 중간계급을 전취할 수 있는가?

    1

    인민전선을 옹호하는 주된 논거 가운데 한 가지는, 파시즘의 맹공에 맞선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동맹을 인민전선을 통해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논거가 사실이라면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

    중간계급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계급들 사이의 사회집단이다. 중간계급의 범주를 정확하게 구획하는 것은 어렵지만, 농민·소규모자영농·가게주인·자영업자들과 여러 전문직노동자·독립수공업자·예술가·지식인·하급관리자 등을 포괄한다. 온전히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도 아닌 이 집단은, 생산수단에 대한 모호한 관계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를 보호하고 방어하려 하고 어떻게든 경제적 지위를 높이려 애쓴다. 그러나 이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자신들의 이해를 충족할 독립적 정치노선을 수립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자본주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강령만 존재한다. 제3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된 강령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계급은 두 기초 계급의 사회 강령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자본주의가 안정적이고 진보적일 때, 의문의 여지없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자본주의의 물질적 혜택을 가능한 한 많이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독점 제국주의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점점 중간계급의 물질적 기초를 침해한다. 가게주인은 체인점의 고용인으로, 자영농은 소작농이나 농업노동자로 변하고, 다양한 범주의 전문직노동자는 임노동자로 전락하고,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정부나 기업 또는 광고회사의 임금을 받는 처지가 되며, 영세기업인은 거대 트러스트에 의해 사업에서 쫓겨나고, 세금은 점점 무거워진다. 중간계급은 가냘프고 성과 없는 저항을 한다. 그들은 반독점법을 요청하고 농자금대출의 탕감을 애걸하며 체인점 반대법안과 소규모 사업의 보호를 청원하고 그들보다 낮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세금을 떠넘기려 한다. 이 모든 불평은 쓸모가 없다. 자본주의의 냉혹한 발전은 독점의 확장과 중간계급의 더 가혹한 분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 위기가 심화되면, 중간계급의 불만과 동요가 자라나 요동치기 시작한다. 중간계급은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고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린다. 무망한 사상과 이론들, 환상을 좇는 집단과 운동과 당은, 중간계급 이론가들의 소망과 허위의식과 꿈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그런 류들이 이 나라에 여럿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상향 운동, 타운센드플랜[Townsend: 대공황기에 노인연금을 주자는 Frances Townsend가 제기한 법안, 채택되지는 않음], 휴이 롱[Huey Long: (1893~1935) ‘부 재분배 운동’을 주도하다가 암살당한 미국 정치가], 시골로 돌아가기 운동[back-to-the-land: 시골로 돌아가 농사지으며 평등하게 살아가자는 운동], 휴머니즘[평등하게 살자는 1930년대 기독교 운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됨], 신봉건주의[neo-feudalism: 자본주의의 폐해를 벗어나 봉건사회의 문화를 되살리자는 운동], 유니온파티[Union Party: 맑스주의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보다는 급진정책을 제기한 미국정당 1936년 창립] 등. 중간계급은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자신들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결국 그들은 반드시, 전체가 됐든 아니면 그 일부가 됐든, 궁극의 선택 앞에 서게 된다.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 두 기본 계급과 강령 중 하나에 줄을 서고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중간계급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그들을 어떻게 획득할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해결책을 갈구하고 탈출구를 찾지만 그들 자신의 것은 없다. 자기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사이비 해결책을 점점 역겨워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에게 똑똑한 목소리로 탈출구와 해결책이 있다고 말하는, 대담하고 결의에 차고 박력 있는 지도자를 향해 급격히 돌아서고 그것을 추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외에 어떤 길이 있겠는가? 그들은 소심하고 겁먹고 주저한다. 그런 그들이기에 소심하고 주저주저하는 지도부를 대안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그들을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뜨려 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할 것을 찾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허위의식을 부추기는 지도부와 강령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편견의 쓴 맛을 충분히 맛 봐 왔다. 그들은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사상을 갈구한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은 오직 노동계급이 그 동맹의 주도권을 쥘 때, 그 동맹이 명확하고 솔직한 프롤레타리아 강령 즉, 사회주의를 위한 노동자권력을 주저없이 내걸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그 반대로, 노동계급이 자기 강령을 숨기고 중간계급의 허위의식에 양보하는 한편, 명확하고 확고한 지도력을 부르주아지나 그 대표자들이 제공한다면, 중간계급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고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나아갈 준비가 분명히 되어 있고 진정성이 있는 부르주아지 편으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

    이러한 결론은 매일의 경험을 통해 거듭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결부된 대규모 파업 거의 대부분은 그 객관적 교훈이다. 부르주아지의 나팔수인 신문들은, 항상 파업 참가자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만약 파업에 전투적으로 임하면, 특히 폭력이 있으면, 이른바 ‘공중(즉, 중간계급)’[public: 원저자가 괄호 안에 ‘중간계급’이라고 말한 것처럼, public은 이 문맥에서 '중간계급' 또는 ‘중간계급을 포함한 사회구성원’을 뜻함. 노동운동 내의 ‘국민파’라고 할 때의 ‘국민’과 비슷한 개념. 하지만 ‘국민’이라는 말이 몰계급적일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적 허위개념이므로 약간 낯설지만 공공대중의 줄임인 공중이라고 번역함]이 적대적으로 되고 동조자들이 파업으로부터 멀어져 갈 것이다.” 모든 파업에서 반복되는 이 ‘정감어린’ 충고의 출처는 그 충고를 의심하도록 만들기 충분하다. 실제로는 완전히 정반대 일이 일어난다. 전투적으로 싸우는 파업노동자들을 대할 때, 그들이 승리하기를 진짜로 원하고 진지할 때, ‘공중’은 그 파업노동자들 편에 선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공중은 항상 이기는 편에 서고자 한다. 파업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믿고 승리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볼 때, 그에 합당한 결론을 끌어낸다. 파업이 참패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한, 상황을 바꾸는 것은 폭력 때문이 아니다. 그 폭력이 공중의 도덕적 감정을 건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가 그들의 권리를 논리적 힘뿐만 아니라 물리적 힘으로도 지켜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중간계급이 그들 편에 서게 되는 또 하나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결국 그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비타협적인 전투성을 보여준, 1934년 톨레도 오토라이트 파업과 미니애폴리스의 트럭운전자 파업은 이 방법이 최소한 ‘공중’의 충분한 지지를 끌어낸다는 것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이다.

    파업노동자들이 개량주의 지도부 아래에서 흔들리고 물러서고 투쟁을 거부할 때, 공중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다른 편으로 넘어간다.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파업참가자들이 스스로 확신이 없고,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아채면, 공중은 어디에 서야할지를 명확히 아는 자본가들 편이 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간계급은 물론 진실과 정의를 사랑한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기 지갑과 삶이 걸리면 사정이 달라진다. 진실과 정의의 발견을 조심스러워하고, 누가 이기는 편인지를 알아내려고 주의 깊게 살핀다.

    대공황에서 같은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혁명의 경험은 어떻게 중간계급을 견인할 수 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러시아혁명에서 누가 중간계급(대표적으로 농민)의 지지를 얻었는가? 임시정부에 참여한 인민전선 정당들이 전혀 아니었다.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은 중간계급과 함께 시작했다. 그들은 중간계급의 허위의식에 맞춰 자신들의 강령과 정책을 작성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1917년의 혁명 진행 과정에서 그들은 중간계급을 잃었다. 압도적 다수의 농민들은 볼셰비키 편으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들은 진짜배기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반혁명에 맞선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나 폭력을 무서워하는 중간계급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날카롭고 양보 없는 태도로, 사회주의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프롤레타리아 강령을 볼셰비키는 내걸었다. 그리고 중간계급은 바로 그 강령의 깃발 아래 서는 것에 자신들의 운명을 걸었다.

     

    2

    우리는 이제 인민전선 사상이 중간계급에 대한 태도 면에서 맑스주의와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간계급을 노동계급 편으로 전취하기는커녕, 인민전선은 노동자들을 중간계급의 허위의식에 복종시킨다. 중간계급 스스로 내던지기 시작한 그 중간계급의 환상에 기초한 강령을 수용하고, 중간계급 정치가들의 지도부를 수용한다. 혁명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노동자의 독립적 계급투쟁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포기한다. 인민전선을 통해 일시적이고 피상적으로 성취된 그 ‘동맹’은 어떤 의미 있는 시간도 버텨내질 못한다. 탈출구를 찾던 중간계급이, 그들 자신의 탈출구는 없다는 것과 인민전선 정책을 수용한 프롤레타리아가 사회주의적 대안의 제출을 꺼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중간계급은 파시스트 참주선동을 움켜쥘 준비가 되는 것이다. 파시스트는 겸손을 떨거나 부드럽게 접근하지 않는다. 폭력을 쓰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저주하며 ‘진짜 혁명’을 외친다. 피와 강철과 폭력의 종교를 설파하고 공공연하게 권력의지를 내보인다. 파시스트 사상이 거짓일지라도, 그 지도부는 확고하고 결의에 차서 그것들을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지도부가 더 확고하고 더 결의에 찬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간계급은 파시스트를 따를 것이다.

    바로 이 일이 독일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독일공산당의 자살적 종파주의와 결합한) 독일사민당의 계급협조주의 정책이 독일 중간계급을 히틀러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내준 장본인이다. 중간계급이 바이마르공화국으로부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안 바로 그 때, 사회민주당은 바이마르공화국을 방어하자고 외쳤다. 하지만 히틀러는 ‘혁명’을 외쳤고, 절실한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랐다. 바로 이것이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프랑스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점점 위기에 빠져들던 프랑스의 절망적 중간계급에게 민주주의를 목숨을 바쳐 방어하라고 인민전선은 가르친다. 그 결과로, 블룸 정부[사회당 당수 레옹 블룸이 수상이 된 1936~1937년의 인민전선 정부,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1934-1936) 참조]가, 그들을 수십 년 동안 궁지로 몬, 이전의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차리고 있다. 파시스트 진영으로 점점 더 많이 넘어가고 있다. 파시스트는,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의 강령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주저없이 말한다. 그들은 변화를 요구하고 약속한다. 도대체 어떤 성격의 것이 될지 모르지만, 그들은 ‘혁명’을 말한다.

     

    3

    중간계급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하층 일부를 전취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맑스주의는 항상 인식해왔고, 인식한다. 사실 맑스주의는, 비프롤레타리아 사회집단의 지지 없이, 반제국주의 식민지 봉기의 지원 없이, 노동계급은 승리할 수 없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천명해 왔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이 동맹은 오직 노동계급의 독립적 지도부의 기초 아래, 오직 계급투쟁과 사회주의와 노동자권력의 강령의 기초 아래에서만 구성되어야 한다고 확고히 주장한다.

    이 사상에는 그 어떤 위선이나 부정직함이 없다. 실질적으로 맑스주의가 중간계급 또는 중간계급의 하층에게 말하는 것은 이러하다.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 치명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해결할 자기 고유의 강령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문제들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강령과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여러분은 직장과 음식과 안정된 삶을 원한다. 어떤 형태이든 간에,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여러분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혁명과 사회주의를 통해서 이 모든 것들은 보장될 수 있고 여러분의 기초적 바람은 꾸준히 더 나은 수준으로 충족될 것이다.’ 이러한 호소는 이룰 수 있고 이루어져야만 한다. 사실이기 때문이고, 중간계급을 프롤레타리아 편으로 견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민전선은 그 주장이 온통 엉터리이다. 인민전선은 중간계급 전취와 거리가 멀고, 필연적으로 그들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파시즘이 필요로 하는 대중적 지지부대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맑스주의 분석은 보여준다.

     

     

    5 인민전선은 파시즘을 저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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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개괄적 답변을 살펴보았다. 답변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인민전선은 파시즘을 저지할 수 없다. 인민전선 이론은 파시즘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 기초해 있다. 그 이론은 파시즘을 쇠퇴기 자본주의의 통상적인 발전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극단적 반동분자 써클의 음모라고 설명한다. 파시즘은 어떤 개인이나 그룹으로 인한 발전이 아니라(사실, 금융자본은 파시즘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한다. 파시즘은 의회주의 통치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본성에 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타도라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저지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온존하는 한, 파시즘의 원인이 온존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자본주의 타도 투쟁을 공공연히 포기한다. 따라서 파시즘을 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냐, 파시즘이냐”가 현재의 근본문제라는 말로 인민전선 정책을 합리화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문제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 볼 때―바로 그것이 맑스주의의 관점인데―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엔 근본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자본주의 지배질서의 한 형태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형태인 파시즘으로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시즘의 토양이 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품 안에서, 파시즘은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우고 성숙한다.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갈 때 근본적 권력이동은 없다. 같은 계급이 다른 방식으로 계속 지배한다. 급진적 선동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은 의미 있는 사회혁명을 수행하지 않는다.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것은, 사회민주당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묘사한 바이마르헌법의 틀 속에서였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중년과 노년 사이보다 더 이렇다 할 근본적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노년은 중년과 다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하나는 다른 하나로 전이한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노년에 이르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정확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파괴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시즘을 낳을 것이다. 제3장의 긴 인용문에서 그 전체 과정이 명확히 묘사되었다. 지배계급이 일정한 양보를 통해 “노동계급 내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억압 정책”을 선택하며 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한다. 즉, 민주주의 통치에서 반드시 파시스트 통치로 넘어가는 것이다. 만약 노동계급 지도자들이 독일 금융자본 대변인 절반만큼의 객관성이라도 가지고 생각하고 쓸 수 있다면 참 다행일 것이다.

    ‘인민전선은 단지 파시즘을 저지하기에 무력한 것만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우리가 가로막지 않는다면, 이 정책은 파시즘의 승리를 필연적으로 만든다. 왜냐 하면 자본주의 연속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면 파시즘이 승리할 것이다. 중간계급을 파시스트 참주선동에 넘겨주기 때문에, 또한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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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파시즘보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더 나은 것 아니냐?’라는 반대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그래도 파시즘보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노동계급이 건질 것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 최소한, 조직하고 선동하고 자기를 방어할 기회 등의 권리를 가지는 반면 파시즘은 모든 권리와 조직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인민전선 지지 주장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다. 이 주장에는 인민전선 제안자들이 그것을 통해 대중을 인민전선 지지로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희망하는, 가장 위험하고 교묘한 함정이 들어 있다.

    진실은 이렇다. 추상적으로 볼 때 자본가 독재의 다른 형태와 다르지 않은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노동계급은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 노동계급의 이해는 사회주의 혁명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 아래 일부 존재하는 구체적인 민주적 권리들에 관심이 있다.

    지금 사용되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그것은 국가조직의 특별한 형태인 자본주의 의회권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그럴 때 그것은, 부르주아 국가라는 특별한 사회 기구를 의미한다. 이 기구는 지배계급의 집행도구이고 그것을 통해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일 때 그것은, 피착취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의 온전한 적이 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핵심임무는 이 국가 기구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정치도구이고 사회주의 건설의 기관인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하는 것이다. 자본가 국가를 방어하자는 의미에서 “민주주의 방어”는 계급의 적을 방어하자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인 지금, 결코, 어느 상황이건,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올바른 전략이 될 수 없다.

    다음으로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특정한 구체적 ‘민주적’ 권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 권리들은 역사적 기원과 사회 기능의 측면에서 많이 다르고, 그에 따라 그 권리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태도는 마땅히 달라야 한다. 그것들은 대략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첫째 범주는 부르주아 재산권을 구성하고 강화하는 특별한 ‘권리’들이다. 이것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권리, 임노동을 고용할 권리, 사적 이윤을 위해 독점할 권리, 개인과 사기업이 언론과 전화와 라디오 등 선전기관을 통제할 권리, 이윤을 위해 과학과 발명의 산물을 감춰둘 권리 등을 포함한다. 그 권리들은 부르주아 자신이 특별한 봉건제와 노예주의 권리를 파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가 파괴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는 이 ‘민주적’ 권리들을 방어하고 유지하는 것을 그 첫 번째 기능으로 한다. 그리하여 이 권리들을 향한 투쟁은 곧 부르주아 국가를 향한 투쟁과 동일한 것이 된다.

    (2) 두 번째 범주의 민주적 권리들이 있는데, 권력을 향한 부르주아지의 투쟁에 역사적 기원이 있기는 해도, 다른 사회적 위치를 점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보통 ‘시민 자유권’으로 불리는데,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구속영장제도, 청원, 공공 비종교 교육 등이 그것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이 권리들은 지배계급이 자신이 유리한 대로 이용된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라는 구호 아래, 신문사가 노동자들의 조합구성을 막기도 하고, 노회한 변호사는 조사와 범죄처벌을 피하는 용도로 구속영장제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번째 범주의 ‘민주적 권리’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태도는 첫 번째 범주에 대한 것처럼 단순하고 직접적인 반대는 아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부르주아지의 오용에도 불구하고 이 권리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계급의 이해 방어와 권력투쟁을 위한 준비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 소유주의 실질적인 선전 독점을 허용하는 것이 그 주된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는 혁명가와 노동언론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집회 방어는 최소한, 집회의 자유 방어를 위해 제기될 수 있다. 구속영장제도는 계급투쟁 수감자를 돕기 위한 법적 무기로 이용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두 번째 범주의 권리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태도는 다른데, 그 까닭은 계급이 사라진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 구조의 일부로서 그것들을 더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임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3) 자본주의 민주주의 아래에서 ‘민주적 권리’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 권리라고 불리는 세 번째 범주의 권리들이 있다. 쟁의 방어와 파업과 조직을 위한 권리들이 그것들이다. 이 권리들의 역사적 근원은 모두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 국가에 맞선 프롤레타리아 고유의 투쟁에 있다. 이 세 번째 범주의 권리를 지켜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    *

    우리는 세 번째 범주의 구체적 권리들을 명확하게 방어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위한 것일 때 두 번째 범주 역시 방어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떻게 이 권리들을 방어할 수 있는가?

    인민전선 옹호자는 우리가 구별한 ‘민주주의’의 두 가지 내용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라는 의미의 ‘민주주의’와 특정한 사회적 권리들로서의 ‘민주주의’를 체계적으로 혼란시킨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권리들의 방어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방어와 필연적으로 묶여있다고 믿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인민전선은, 다른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나 자유주의 자본주의 선전과 완전히 똑같아진다. 자유주의 언론이 “우익이든 좌익이든, 독재”에 맞서서 ‘민주주의 방어’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하는 바로 그 접근법이다.

    진실은, 자유주의자나 인민전선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이다. 민주적 권리 방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와 연계되어 있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 맞설 때에만 오직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살펴보자.

    자본주의 지배에 필수적인 권리들은 첫 번째 범주의 것뿐이다. 이 범주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재산권을 요약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범주(이른바 ‘시민 자유권’)는 봉건 귀족들을 완전히 제압하는 투쟁에서 부르주아에게 요긴했었고, 자본주의가 역동적이고 확장되는 동안에는 만족스러운 사회적 장식품으로서 역할을 지속한다. 부르주아지가 결코 기꺼워하지 않는 세 번째 범주는 노동자의 계급투쟁으로 빼앗아낸 것이고, 자본주의가 충분히 건강하여 그러한 양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오직 이 ‘프롤레타리아 권리’가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지 않을 때에만 부르주아지가 용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질서로서의 자본주의는 지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내리막길이 가파르면, 부르주아지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범주의 권리 행사를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정도로 억압하려 든다(두 번째 범주의 권리들은 부르주아지 자신이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점-제국주의의 영속적 위기에, 이 권리들을 행사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에 상당히 위험하다. 양보조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민심은 들썩인다. 만약 이 구체적 권리들을 행사하여 프롤레타리아 지도부가 조직하고 표현하게 한다면, 자본주의는 혁명적 전복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파시즘은 세 번째 범주의 권리들(이른바 ‘프롤레타리아 권리’)을 완전히 제거하고, 두 번째 범주의 것을 (최소한 두 번째 것들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적용될 때) 실질적으로 제거한다.

    이 구체적 권리들의 억제는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파시즘의 권력 장악은 단지 이 과정의 완성일 뿐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우리는 그것을 목도했고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다. 정부 집행기관은 점점 더, 하나씩 둘씩 정부 ‘포고문’ 등을 발표하며, 통제하려고 든다. 강제 중재와 검열이 도입되고, 집회의 자유는 제한된다. 피켓팅은 금지되거나 숫자나 행위가 제한된다.

    ‘민주적’ 권리 억압 조치를 먼저 도입한 것은 ‘민주’ 국가 그 자체이다. 게다가 사회민주당 다수파, 노동당 정부 또는 인민전선 정부가 주도하는 민주 국가가 그러한 조치를 도입한다. 이것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것이고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블룸 정권은 정치 조직을 억압하고 언론과 선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강제 중재와 파업 노동자를 억압하는 여러 종류의 조치를 도입했다. 물론 파시스트에 ‘한 방’ 먹인다는 구실을 대며 그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정부는 자기 손으로 프랑스 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위기에 빠진 지금 시기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방어는 결국 민주적 권리의 제거를 방어하는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그러나 진실의 결론에 도달한다. 민주적 권리들은 오직 독립적인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방어될 수 있고, 그러한 투쟁은 그 자체로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기관인 부르주아 국가와 점점 더 극심하게 충돌할 것이다. 인민전선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방어 호소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파괴할 덫을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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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의 세계 무대 등장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새로운 전략적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적 억압 정책’으로서의 파시즘은 두 범주의 민주적 권리 파괴 완수라는 그 최종목적을 수행한다. 그리고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운동 전략에서 이 민주적 권리 방어는 이전보다 새롭고 커다란 중요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이전 시기보다 더 심대한 중요성을 지닌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방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해서이거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의 동맹이나 그에 굴종하는 것을 통해서가 전혀 아니다. 그것들은 인민전선의 치명적 실책이다. 반드시 독립적인 계급적 방어이어야 하고, 최종 분석에 따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와 나란히 서서가 아니라 그에 정면으로 맞서서 그 작업을 행해야 한다.

    권력을 향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에서 민주적 권리들은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들이 위협받을 때면 언제나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그 저항을 조직하는 선두에 설 것이다. 그 저항은 반드시 가장 먼저, 강력하고 전투적인 파업 방어와 대규모 시위 그리고 대중 집회, 조합조직화, 그리고 최종적으로, 노동자 정당방위대와 노동자 평의회 등 대중 행동에 의존해야 한다.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등 법적 방법은 물론 배제되지는 않는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대법원 캠페인 같이, 국가 기구의 ‘민주주의화’를 호소하는 캠페인이나 파시스트 국가들에서 민주주의 형태를 다시 도입하자는 캠페인(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등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직접적 형태의 대중 행동이 항상 우선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민주적 권리들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대중행동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더 첨예해지면, 파시스트 깡패들은 파업 방어선과 노동자 집회를 파괴하기 위해 나선다. 다시 한 번 노동자는, 가장 우선적으로, 독립된 조직과 대중행동으로 자신의 권리를 방어해야 한다. 계급적 힘을 통해 그들은 반드시 파시스트를 직접 손봐야 한다. 민주적 정부는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할 능력도 없다. 역사가 우리에게 명백히 증명해 보인 것처럼, 민주적 정부는 최종적으로 오직 그 고삐를 파시스트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 또는 스페인에서처럼, 만약 그것이 투쟁하는 체할 경우, 그것은 오직 노동자의 집어삼킬 듯한 계급적 압력이 그렇게 하길 강요하기 때문이다[이 글은 스페인내전이 진행 중인 1937년에 쓰인 것이다. 노동인민의 사회혁명 압력을 인민전선 정부로 버텨내던 스페인 자본주의는 결국 1939년 파시스트 프랑코에게 권력을 넘겼고, 15,000~50,000명 가량 학살당하며 노동계급은 한 세대가 궤멸했다.].

    민주적 권리 방어 투쟁은 이 시기 엄청나게 중요하다. 이것은 상당한 대중을 동원할 수 있고 공동전선 전술을 가장 성과 있게 구사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노동계급 지도부 아래에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집단들과 더불어 중간계급을 끌어낼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로도 굴복이 아닌 방식으로, “중간계급”에 접근하는 길을 제공한다. 게다가 이 투쟁은 지금 혁명적 투쟁이다. 그것을 통해,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라는 배신과 환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파시스트의 길이 차단되고 저지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적 권리의 보호는 자본주의 질서 아래에서 무한정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그 권리를 방어하는 결의에 찬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류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제6장 프랑스의 인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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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2월, 주로 상류층 학생이나 미성년으로 이루어진 파시스트 깡패, 반동 그리고 왕당파 무리들이 파리의 의회 강 건너편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2월 12일, 노동계급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에 응답했다. 자발적인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 일련의 사건은 이후 일어날 사태에 대한 중요한 전조였다. 그 사건은 프랑스 위기가 더 이상 법이나 의회적 수단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쉽게 잦아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이제 의사당을 떠나서 거리와 공장으로 문제가 옮겨지고 있다는 것, 프랑스는 혁명이라는 절정을 향해 가차 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 앞으로 몇 년 내에 프랑스 운명이 파시스트의 것이 될지 아니면 노동자의 것이 될지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사태의 근저에는 물론 프랑스 경제 상황이 깔려있었다. 이미 통화가치 절하를 이루었고, 거대 산업자본이 비교적 적고, 프랑스의 농업방식과 잘 경작된 많은 수의 소규모 농가들, 막대한 금 보유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여전히 얻는 혜택 등 프랑스 경제의 특별한 조건은 세계경제의 위기를 지연시켜오던 터였다. 그러나 한 박자 늦은 위기가 프랑스를 강타하자, 베르사유 체제의 붕괴로 인해 악화된 그 조건들은 프랑스의 회복력을 갉아먹었다. 1933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회복기에 프랑스는 적절한 회복을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1935년의 생산을 1928~29년의 생산과 비교한 프랑스의 수치는 다른 열강들보다 낮았다. 프랑스는 막다른 궁지에 몰린 것이 분명했다. 두 가지 길만 존재했다. 노동자혁명과 사회주의를 통한 프랑스 경제의 구원, 아니면 파시즘이라는 압박을 통한 해체의 지연.

    그러나 프랑스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서 나온 이 명약관화한 결론은 부르주아지와 혁명적 맑스주의자들만 알아차렸다. 그런데 후자는 수도 적고 영향력도 작았다. 부르주아지는 적절한 결론을 내렸고, 독일 부르주아지가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체계적으로 파시즘으로의 이양을 준비했다. 학생과 철없는 귀족들의 손으로부터 파시즘 운동이 시작되었고, 진정한 대중적 기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권총, 곤봉, 기관총과 비행기 등 사태를 최종적으로 결정지을 무장을 준비했다.

    맑스주의자 또한 적절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권력 장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계급적 힘을 준비하는 데에 집중할 것, 의회 활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축소할 것을 호소했다. 그들은 대중적 공동전선을 호소했고,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민병대(workers’ militia) 건설을 호소했다. 공장, 가게, 농촌 그리고 군대의 위원회 건설에 착수할 것을 호소했다. 혁명적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권력이 이 위원회들로 즉, 소비에트국가로 권력이 이양될 것이었다. 광범한 대중 행동, 대담성과 결단력 그리고 계급투쟁을 첨예하게 진전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것들이 그들의 구호였고 이것들만이 프랑스 노동계급의 희망이었다.

    프랑스 사회당의 개량주의 지도부와, 다른 한편으로 코민테른의 지침으로 그 당시 막 개량주의로 방향을 틀던 스탈린주의자들은 상당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위기의 깊이는 한 꺼풀 씌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혁명적 상황이라고? 말도 안 되는 공상이야. 노동자민병대와 공장위원회라고? 종파주의자들의 바보 같은 도발이고 망상일 뿐이야. 위대한 프랑스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민주적 자본주의를 회복하며, 적으로부터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 진짜 할 일이지.’ 그들은 내부의 적 즉, 프랑스 반혁명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진짜 적은 히틀러나 독일 나치가 아니었다.

    1934년 여름 사회당과 공산당은 그들이 공동전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사안에 대한 행동’을 의미하는 진정한 공동전선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것이었다. 먼저, 불가결한 권리인 상호 비판을 포기할 것을 약속한 ‘불가침 조약’이었고, 둘째로, 이른바 프랑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순전히 방어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 국내 정치의 열쇠는 급진당에 있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중도 정당이고, 자본주의 소유권에 대한 확고한 방어자인 이 당은 1934년 가장 큰 당이었다. 이들의 선전은 주로 중간계급을 향한 것이었고, 중간계급 안에는 급진당 당원이 많았다. 자본가들의 식탁에서 남은 찌꺼기들을 그들에게 약속했다. 수십 년 간의 안정기 동안, 급진당은 종종 권력을 잡았는데, 한번은 우익정당과의 연립으로, 다음번엔 좌익정당(주로 사회당)과의 연립으로 정부를 구성했다. 두 세력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부패한 당이었다. 1934년 이어진 추문으로 부패가 적나라하게 알려졌다. 더 근본적으로 위기의 압력으로 중간계급은 급진당에서는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충성을 거두어들이고 새로운 출구를 찾고 있었다. 2월 6일 그 날, 급진당이 정부를 맡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과 상류층 자식들로 이루어진 무질서한 시위 앞에서 급진당은 그들이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서 어떤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였다. 급진당은 꼬리를 감추고 내뺐다. 그들의 정치적 운명에 대한 공포로, 정부를 즉각 내놓고 숨어버렸다.

    결론은 분명했다. 파시즘에 맞서고 사회주의를 향한 길에 중간계급 하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문제는 급진당으로부터 그들을 떼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경제위기와 급진당이 해온 실정(失政)은 이 변화를 촉진했다. 정치적으로 말해 비교적 단순한 과업이었다. 그들의 노선과 지도부는 대중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프롤레타리아 정당들의 단호하고 독립적인 계급정책으로 급진당을 쉽게 파괴할 수 있었다. 급진당의 이전 지지자 가운데 하층부위 상당수는, 노동자정당들의 정책에 관계없이, 노동자정당들로 넘어오고 있었다. (1935년에 지지투표가 크게 감소하고 1936년에는 더 많이 빠진 것이 보여주듯) 급진당은 해체되고 있다. 그러나 그 해체는 대단히 위험스럽게도 지연되고 있고, 결단력 없는 좌익의 정책과 날카롭게 대비되는 단호한 정책을 보여주는 우익 정당들이 그 해체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얻고 있다.

    급진당을 대하는 전략에 대한 맑스주의적 해답(사실 너무나 상식적인)과 정반대로, 공산당과 사회당의 정책들 모두는 급진당을 떠받쳐주는 화해주의 쪽으로 흘렀다. 공산당과 사회당 그리고 급진당이 1935년 수립한 프랑스의 인민전선이 그 실질적인 조직 형태였다. 그리고 급진당과의 연합 유지에 노동자정당들의 전망 전체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인민전선의 정책이 급진당에 의해 지배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급진당 정책과의 결별은 즉시 인민전선을 깨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급진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노동자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부여받은 신망으로 그들의 목숨은 유지되었고, 대중들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줄 시간은 더 길어졌다. 인민전선 이데올로기는 그 허위의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 그 ‘좌익’ 노선의 공허함에 신물이 난 대중들은 점점 더 많이 파시스트 진영으로 넘어간다.

    인민전선 정책은 다른 것이 될 수 없었다. 인민전선은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파시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구하고 방어하는 것은 단지 급진당의 전통적 정책이었다. 그 정책은 역사에 의해 그리고 1934년에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고,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을 대중들도 점점 더 깨달아가고 있었다. 인민전선은 단순히 급진당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해결책이라고 제출된 것이다. 인민전선 강령은 급진당 강령을 다시 쓴 것에 불과하다(그리고 그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급진당이 가입하지 않았을 테니까). 사실 그것은 루스벨트 뉴딜 정책보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다. ‘좋은 정부’, 국가동맹(League of Nations), 공공 근로, 신용과 은행기관 개혁, 세제의 ‘민주적 개혁’, 실업과 소비물가 상승 반대, 그리고 (가장 노골적으로) “개미 주식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 마지막 항목은, 의심의 여지없이, ‘부르주아 사상으로 오염된’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 등이 인민전선의 정치조항들이다.

    급진당에 대한 이 낯 뜨거운 굴복 뒤에 무엇이 깔려있는가? 그 이유는 다음처럼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그 굴복의 대가로 스탈린주의자는 급진당의 프랑스-소비에트 협약[독일 파시즘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와 소련이 1935년에 체결한 협약] 지지를 얻었다. 개량주의적인 프랑스 사회당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방어 노선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단지, 중간계급 내에서 선전해 온 급진당과의 역할분담을 통해, 노동계급 내에서 그 노선을 선전해 왔을 뿐이다. 그리하여 위기의 때에, 사회당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친족 옆에 자리했다. 개량주의에게는, 파시즘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나 모두 똑같이 치명적인 것이다. 그리고 공산당처럼, 사회당은 그 둘을 인민전선을 통해 회피하려 한다. 두 노동자정당 모두의 경우에, 그들은 다가오는 전쟁 준비 방책으로 인민전선을 통한 급진당과의 연합을 대안으로 여긴다. 전쟁이 벌어지면, 독일 제국주의에 맞서 프랑스 제국주의 편에 서라고 프랑스 대중에게 선동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스탈린의 ‘소련 방어’ 사상을 수행하기 위해서이고, 그 본성상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 매어 있는 사회당은 결정적인 모든 순간에 부르주아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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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진당과의 협조 정책이고 계급협조주의 정책인 인민전선 정책의 성과가 무르익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프랑스 프롤레타리아를 오도하는 것이 인민전선의 중대한 범죄이다. 인민전선은 노동계급이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유일한 해결책인 권력을 향한 혁명적 계급투쟁을 준비하고 수행하지 못하게 방해해 왔다. 그 대신에 그것은 노동계급을 계급협조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에 의존하도록 속여 왔다. 즉, 인민전선은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적대계급의 선한 의지에 의존하고, 독립적 힘 기르기를 포기하도록 가르친다.

    1935년, 동업자 급진당의 눈치를 보던 스탈린주의자들은 툴롱과 브레스트의 총파업을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무산시켰다. 인민전선은 노동자에게 프랑스국가를 부를 것과 프랑스 삼색기를 들 것을 강제하고, 인터내셔널가나 붉은 깃발을 지나치게 앞세우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인민전선은 1935년 지방선거에서의 보잘것없는 승리를 파시즘에 크게 한 방 먹인 것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리고 1936년 의회선거에서 다수가 된 것을 기뻐한다. 그들 정책의 논리는 인민전선에 참여한 자들이 2년 징집법에 대한 반대 투쟁을 포기하도록 하고, 프랑스 제국주의의 무장 계획에 대한 신실한 지지자가 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인민전선이 파시즘을 어느 정도는 막아내지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민전선에 의해 저해되지 않고, 계급 역관계와 금융자본이 원하는 속도에 따라 파시즘은 꾸준히 발전했다. 1934년 프랑스의 파시즘 운동은 충분히 깊고 진지하지 않았다. 사회의 거품 같은 자들이 그 운동을 채우고 이끌었다. 그리고 대중운동의 기초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독립적인 노동자 행동인 2월 12일의 총파업은 그것에 한방 먹였고 그 운동은 주춤했다. 그리고 1935년 조선소 파업으로 더 억제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힘을 얻고 더 적절한 모습으로 되기 위해서 움츠러들었을 뿐이었다. 도리오[Jacques Doriot(1898~1945): 인민전선이 공식적으로 채택되기 전인 1931년 인민전선을 주창했다가 공산당에서 제명당한 이후 파시스트가 됨] 같은 중요한 대중 지도자들을 얻었다. 1936년 일시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선거 때문이 아니라 (파시스트들은 문제가 의회에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중도정당이 표를 잃는 동안, 좌익 정당 지지표가 늘어가는 그 만큼, 우익 정당을 지지하는 표도 늘었다.) 6월에 있었던 강력하고 자발적인 총파업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파시즘은 전진했다. 이번에는 큰 길 위에서이다. 조직을 ‘불법화’한 법령을 비웃으며, 그냥 그 이름만 바꾸었다. 그리고 인민전선과 인민전선 정부의 실패, 약점, 모순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1936년 봄 인민전선은 정부를 구성했다. 성과는 어떠한가? 인민전선에 참여한 정당 지도부의 지도 없이 일어난, 8백만 이상의 노동자가 참여한 엄청난 6월 파업 물결에 직면하여, 급진당과 스탈린주의 지지자들과 더불어 블룸 정부는 대중의 물결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겁먹었다. 그들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만큼 어떻게 끝내야 할지도 알아야 한다(스탈린주의 지도부의 말에서 인용).”라고 노동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진짜 개량주의자들처럼, (3장의 인용문에 있는) 독일 금융자본의 이론가가 묘사한 모습 그대로 행동했다. “혁명이 사회정치적 수단으로 굴절되는 것은 공장과 거리의 투쟁이 의회와 내각으로 이전되는 것과 상응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위로부터의’ 타협으로 굴절되는 것이다.” 대중의 공격으로 후퇴하며, 정부는 자본가계급과의 협약을 통해 몇몇 법조항들을 통과시켰다. 진짜 이득은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정부의 시혜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자본가들이 그 양보를 직접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불과 몇 개월 동안에, 노동자에 대한 양보조치는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정부가 취한 인플레이션 조치와 화폐가치 절하로 인한 생활비 상승으로 남김없이 상쇄되었다.

    블룸 정부는, 여타의 모든 연립정부가 그러하듯, 자본가 정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프랑스 제국주의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이해관계 속에서, 베르사유 조약의 자투리를 지켜내기 위해 유례없는 군비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해 2월 3일자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인민전선 정부에 참여한 모든 당이 그 국방예산을 승인했다는 것이다(심지어, 코민테른 7차 총회에서, 프랑스 공산주의자는 국방예산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디미트로프가 주장했음에도). 게다가, 파시즘으로 넘어가고 있는 폴란드에 대한 국방원조를 모든 당이 찬성했다. 블룸 정부는 스페인 위기에 대해 위선적인 ‘중립’ 정책을 교묘하게 꾀하고 있다. 다른 한편, 스페인 노동자들에 대한 원조를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이제 국제적 보이콧 운동의 선두에 섰다. 이 정부는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과 강제중재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파업 현장에 기동대를 파견한다. 시리아에서 막 시작된 반란을 진압하고, 인도차이나[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혁명가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는 프랑스 식민통치를 지속하고 있다. 이 정부는 혁명 언론 발간을 막고(예를 들어, <Lutte de classes(계급투쟁)>), 프랑스 혁명가들을 감옥에 가두고 있다. 블룸은 개인적으로 전보를 보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11월의 승리[1936년 11월, 민주당 후보 루스벨트의 대통령 재선]를 축하했다. 인민전선의 모든 정당은 독일의 위협에 맞선 모든 프랑스인의 대동단결을 선언했고, 서로 애국주의 경쟁을 하고 있다. 지난 전쟁에서 사회당 당원 살렝그로[Roger Salengro(1890~1936): 사회당원, 블룸 정부의 내무장관, 1차 대전 때 독일정부에 포로가 된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이라는 극우파의 비방에 시달리다가 자살]가 충분히 애국적이지 않았다는 (인민전선 정부가 격노하며 부정한) 혐의는 그 해 가장 큰 정치스캔들이 되었다. 공산당 지도자 토레즈는 인민전선을 ‘프랑스 전선’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 일은 가장 충격적인 일인데, 프랑스 제국주의와 더불어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 민족적 단결을 추구하는 ‘민족전선’이 프랑스에서, 1914년 그때처럼, 다시 건설되고 있다.

    몇 달 동안 줄곧 비실거리고 우유부단하고 고분고분하게 지내던 인민전선 정부는 딱 한 번 단호하고 박력 있게 행동했다. 그 행동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중요 식민지인 모로코가 독일로부터 위협당했던 1월에 일어났다. 인민전선 정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각 반응하여,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전리품을 목숨을 걸고 지키라고 함대에게 명령하였다.

    그러나 인민전선의 수면 밑으로,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위기는 계속되고 깊어가고 있다. 6월 총파업 뒤 소강기 다음,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금의 파업 물결은 6월처럼 폭넓고 전국적이지는 않지만 매일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투쟁은 6월처럼 가벼운 기분이 아니라, 엄숙하고 더 비장하게 전개되고 있다. 피해갈 수 없는 위기의 충격 아래에서, 인민전선이 할 수 있고 할 모든 행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계급군대는 천천히 대오를 정렬하고 있다. 마침내 결전을 맞이할 것이다. 그 결과 파시즘이 승리한다면 장차 수십 년 간 유럽 프롤레타리아를 후퇴시키거나, 그렇지 않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후자를 성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반드시 그들의 경험을 통해 배워서, 인민전선의 거짓되고 우리를 좀먹는 배신적인 정책과 단호히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과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적 계급투쟁의 길로 나서야 한다. 이것 없이 승리는 불가능하며, 파시즘은 필연이다.

     

    제7장 스페인의 인민전선

     

    스페인의 위기는 새로운 것도 뜻밖의 것도 아니었다. 현대가 밝아오는 짧고 어수선한 영광의 시기에, 지배자들의 근시안적 정책과 북쪽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다시 어둠 속으로 스페인은 내던져졌다. 3백년 이상 무지와 천박함 속에서 근근이 살아왔다. 반봉건적 영주들과 군주제, 대토지 소유자들, 소규모의 부도덕한 토착자본가들, 그리고 외국투자자들이 스페인 인민들을 착취하고 억압했다. 스페인에서 자본주의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전 시대의 잔재와 자본주의가 희망 없이 뒤섞인 속에서 경제는 뒤처졌다. 자본주의가 세계적 규모로 후퇴하고, 열강들이 죽을힘을 다해 착취 대상을 찾아 싸우고 있는 지금, 자본주의는 스페인 경제 문제를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

    수백만의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게 된다면? 은행과 신용기관은 토지담보 융자를 하고 있으므로 토지를 분배하는 것은 은행 전반 즉, 스페인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이다. 스페인 산업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기초 위에서 이것은 세계에 시장을 개방하고 그 침투를 확대하는 것이다. 세계 시장이 열강들에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나라의 선진기술로 생산되는 값싼 상품의 압력으로 인해 국내 시장은 토착자본가들의 손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교회와 정치의 분리, 국가의 세속화 그리고 교회가 가진 정치권력의 몰수는? 교회 그 자체가 스페인에서 거대 자본가이다. 군대 민주화는? 권력의 기초로서 군대는 반동의 손아귀 안에 있다. 모로코의 해방과 바스크와 카탈로니아 지방의 자치는? 스페인 자본주의는 모로코와 소수 민족들의 착취에 기초해 있다.

    자본주의는 스페인의 중요문제들을 단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 오직 노동자 혁명과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물론 고립된 스페인 혁명만으로는 아니다. 자본주의 질서와 자본주의 소유관계를 분쇄할 사회주의는, 농민에게 토지를 주고, 산업의 사회화를 확대하고, 억압기구로서의 교회를 해체하고, 노동자농민군대를 건설하고, 이베리아 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개량주의자의 것이 아니다. 1931년 왕이 퇴위한 뒤, 스페인 사회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연립정부에 입각했다. 연립정부의 희망 없는 허약함과 정책의 완전한 파산이 확인되는 데는 2년으로 족했다. 1933년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우익 연립정부는 정부를 장악했다. 개량주의자의 의회적 수단에 방해받지 않으며 반동은 계속 진군했다. 그러나 각성한 노동자들은 자기의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었다. 1934년, 파업은 순식간에 번졌다. 10월, 노동자들은 혁명적 총파업을 승인할 수밖에 없도록 지도자들을 강제했고, 총파업은 봉기로 발전했다. 이 봉기는 외인부대에 유혈진압 당했지만 굉장한 용기와 영웅적 행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전혀 낙담하거나 후퇴하지 않고 그 투쟁을 통해 훨씬 강해졌고, 반혁명 세력은 기가 꺾였다. 다시 한 번, 대중의 이해를 관철시킬 무기는 계급협조나 개량주의가 아니라 혁명적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노동자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사기는 높았고, 조직화의 의지는 강했다. 그들은 혹독한 경험을 통해 배웠고, 사회주의와 권력을 향한 혁명투쟁으로 나아갈 길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전에 재앙으로 이끌었던 개량주의 정책을 이름만 바꾼 그 인민전선이 시작되었다. 1935년 노동자정당들과 이른바 ‘좌파’ 부르주아정당들이 인민전선 강령에 서명했다. 그 문서는 프랑스의 것과 거의 같은 것이었고 뉴딜정책보다 약간 오른쪽 내용이었다. 그것은 민주적 자본주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고, 사회주의적 요구와 유사한 것은 단순히 암묵적으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렇지만, 인민전선 정당들은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했고(소수당과 작은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1936년 2월 아자냐가 수반이 된 정부가 구성되었다. 프랑스에서처럼, 인민전선 정책은 처음부터 ‘공화제’ 부르주아지의 정책이었고, 이었으며, 일 것이다. 그 노선과 단절하고 프롤레타리아 노선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민전선 정책과 단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개량주의자들에 따르면, 그 단절은 물론 ‘반혁명’일 것이다. 1936년 2월과 7월 사이에 그 인민전선의 본질이 얼마나 충실히 드러났는가! 대중들은 정부선거를 통해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토지를 넘겨받기 시작했고, 파업에 돌입했으며, 공장과 철도를 통제하려고 했다. 처음에 주춤하고 물러나던 정부는 정신을 차린 다음, ‘질서’를 위해 공화주의 동맹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또는 반동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토지를 차지하려는 농민들에게 경비대를 스스럼없이 보냈고, 파업 중단을 명령했으며, 파업참가자를 체포하고, 노동자 집회를 해산시켰다. 정부는 정당 신문의 긴 칼럼을 검열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인민전선을 지지한 공산당의 신문도! 5월, 경비대에 의해 23명의 농민이 살해당했고 30명이 부상당했다. 내무장관은 노고를 치하하는 전보를 경비대에 보냈다.

    한편 포르투갈, 영국,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은 반혁명은 그 세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들은 군대를 통솔했는데, 정부는 군대에 손댈 생각조차 감히 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로코를 통제했으나, 정부는 모로코를 손댈 엄두를 못 냈다.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작전을 시작했고 들고 일어설 시간을 선택했다. 다른 한편,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계급을 준비시키는 것이 정부와 인민전선 정책에 의해 막혀있었다. 자신의 민병대를 조직하고 무장시킬 수 없고, 행동을 지휘할 공장과 농민위원회를 선출하지 못했다. 그 지도자들은 정부 즉,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집행위원회를 전적으로 믿으라고, 정부가 파시스트들을 다룰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인민전선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항하여 대중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고 이 행동은 시행착오를 통해 더 단단해졌다. 2월과 7월 사이, 노동자의 잇따른 파업과 농민의 토지 점거가 이어졌다.

    7월 17일, 반혁명이 일어났다. 파시즘에 대한 방어자인 인민전선 정부의 응답은 ‘파시스트와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자의 무장은 안 된다.’였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손을 묶어두지 않았다. 조직을 시작했고 무기고와 군대막사에서 무기를 탈취했다. 대중의 행동으로 궁지에 몰린 정부는 정책을 변경했고, 무기를 나누어 주었고 반혁명에 저항할 것을 호소했다. 인민전선주의의 배신적 행각으로 가로막히고 방해를 받았지만, 직접적 계급 행동이 진정하고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7월에 노동자와 농민이 훈련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인민전선에 있다. 스페인 파시즘은 비교적 작고 대중적 영향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혁명정책이 있었다면 노동자들의 날카로운 몇 방으로 반혁명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보는 것처럼 내전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수만 명이 이미 목숨을 잃었고 수 천 명이 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인민전선의 범죄는 7월에 멈추지 않는다.

    내전이 시작한 첫 몇 주 동안,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은 공장과 가게와 마을에서 자신의 평의회와 위원회를 자발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치안대와 사실상의 혁명법정을 조직했다. 노동자 붉은 군대의 기초인 독립적인 계급 전투부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새 국가 즉, 혁명적 노동자국가의 기초를 놓았다. 부르주아국가와 국가기구로부터 빼앗아 자신의 손에 권력을 움켜쥔 그 국가는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하고 파시스트와 혁명전쟁을 수행할 것이었다. 그리고 오직 그와 같은 국가 그와 같은 전쟁만이 스페인에서 노동자의 승리를 보장한다. 파시스트에 맞선 전쟁은 반드시 혁명전쟁이고, 혁명전망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군사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 관점에서 진실이다. 프랑코의 아프리카 기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무어인[아프리카 북서부에 사는 사람]들이 스페인 노동자 편에 서도록, 모로코에 해방이 주어져야 한다. 바스크와 카탈로니아 지방의 전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 지방에 자치가 승인되어야 한다. 농민과 노동자 사이의 진정한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하여 프랑코의 선전이 파고들 수 없도록, 토지는 농민들에게 즉시 분배되어야 한다. [자본가의] 생산 방해를 막기 위해, 공장은 노동자가 통제해야 한다. 혁명을 위해 온전히 싸울 수 있고, 노동자와 농민을 향해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무장력을 획득하기 위해,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노동자군대가 건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혁명적 행동이고 따라서 그 정부의 이름이 ‘인민전선’으로 불리건 어떻건 간에, 부르주아 정부에 의해서는 수행될 수 없는 것들이다. 스페인 맑스주의자의 임무는 노동자권력의 확대를 이끌고 고무하는 것이다. 프랑코에 맞선 전쟁을 노동자권력과 사회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노동자‧농민‧병사위원회로 이전하는 전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스페인 노동자정당들의 인민전선 지도자들은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했다. 내전의 첫 몇 주 동안, 인민전선 정부가 보잘것없는 껍데기만 남았을 때, 공산당과 사회당이 인민전선 정부에 입각했다. 그리고 ‘스페인의 레닌’이라 칭송되는 까바예로가 부르주아 연립정부의 수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혁명적 길에서 이탈했다. 자기 계급의 조직들, 자기 위원회와 평의회에 대한 자신감을 버리고 정부를 믿으라고 배웠다. 투쟁은 파시즘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라는 배신적 정책으로 후퇴했다. 까바예로는 목소리를 높이던 ‘소비에트’에 대한 언급을 내려놓았고, 그의 관심은 오직 ‘민주적 공화제’를 지키는 것에 있다고 스페인과 세계를 향해 천명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결과는 도출되고 있다. 정부는, 부르주아정부로서,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확장을 막아서고 있다. 그리고 이미 획득한 성과들을 점차적으로 되돌리고 있다. ‘통합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진정한 노동자군대를 향한 발전을 저지했고, 노동자민병대를 공화군으로 재편성했다.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 정의를 강화하던 도시의 노동자 치안대를 일소했고, 노동자 투쟁의 배신자로 이미 입증된 기구 그리고 인물들을 묶어서 공화국 경찰을 설립했다. 효율적 생산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공장통제를 파괴했다. 예산의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이 까바예로 정부가 자랑해 마지않는 위대한 성과이다! 이러한 길을 따라, 인민전선 정부는 자본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2차 저지선이 되었다. 만약에, 이 정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프랑코를 패퇴시키는 데에 성공한다면, 인민전선으로 더 강화된 자본주의 질서에 묶인 채일 것이다. 인민전선과 단절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스페인의 진짜 비극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피가 헛되이 쓰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영웅적 희생이, 해방을 가져오기는커녕, 그들이 시작한 그 자리인 자본주의 착취의 소유관계에 손과 발이 묶인 채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카탈로니아 인민전선은 보다 더 배신적 역할을 했다. 카탈로니아는 스페인 다른 지역보다 노동자권력이 더 많이 진출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전선 사상의 포로가 된 카탈로니아의 노동자정당들은, 국가권력의 접수로 나아가는 대신 카탈로니아 연립정부에 들어갔다. 심지어 다른 당들과 달리, 스페인 문제는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가 아니라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라는 노선을 추상적이나마 고수하던 P.O.U.M[Partido Obrero de Unificación Marxista: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스페인전쟁과 혁명영화 [랜드 앤드 프리덤]이 다루지 않은 사실들을 통해 스페인 혁명과 P.O.U.M의 정치적 한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역시 인민전선 정부에 들어갔다. 지금 스페인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정책의 결과는 즉각 명백히 드러났다. 노동자들은 혁명적 길에서 비켜서고 있다. 정부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미끄러져 들어갔던 군대, 경찰, 공장 같은 권력기구들을 다시 추스르고 있다. 심지어 P.O.U.M이 설명하는 것처럼, 정부가 이른바 ‘노동자정부’가 되었으니, 노동자의 자치위원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길을 따라, 프랑코가 군사전선에서 패배할 것에 대비해, 연립정부의 자본가계급이 자본주의 재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11월과 12월 카탈로니아 정부의 진면목이 세계에 갑작스럽게 알려졌다. 정부의 좌파 공화당의 대표들이 파리에서 비밀리에 ‘단독강화’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좌파 공화당 대표 가운데 한 명을 통해, 노동자정당들의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음모가 드러났다. P.O.U.M에 대한 작전이 (소련 총영사 안토노프 오브센코를 포함한) 스탈린주의자들이 협조한 가운데 공화정당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P.O.U.M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라는 구호를 고수하는 파괴적이고 반혁명적인 세력이라는 구실에서였다. P.O.U.M이 정부에서 쫓겨나면서 그 작전은 절정에 이르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자원조를 중단하겠다는 소련의 협박 아래에서였다. 자신들의 명확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필요 때문에, P.O.U.M은 다시 혁명노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민전선과의 단절을 호소하면서 혁명전쟁으로의 전환과 노동자권력의 구축을 주장했다.

    P.O.U.M이 혁명의 길로 귀환한 것에 대한 인민전선의 응답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부르주아적 기초 위에 ‘통일명령’을 충성스럽게 이행할 군대를 구성하면서, 인민전선의 지도자들은 혁명전쟁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P.O.U.M이 프랑코의 군사적 정치적 동맹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드리드에 있는 P.O.U.M의 라디오송신국이 습격당해 방송이 중단되었고, 기관지는 금지되었다. P.O.U.M 지도자들의 반역과 반혁명 혐의를 심사하기 위해 스탈린주의자 1명, 사회당 1명, ‘좌파 공화당원’ 2명으로 구성된 ‘인민법정’이 구성되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의 주도 아래 P.O.U.M의 물리적 절멸을 위한 작전은 지속되었고, 민병대와 노동자 대중조직 평회원들의 저항에 직면할 때에만 그 작전이 저지되었다. 놀랄 것이 하나도 없다. 개량주의자들의 그와 같은 태도는 일찍이 독일에서 룩셈부르크와 리프르네히트에 대한 대응을 통해 목도된 바 있다. 인민전선의 계급협조주의 정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파시즘의 반혁명보다 더 참기 힘들어 한다.

     

    제8장 미국의 인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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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미국에서는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인민전선이 많이 진전되지는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미국에는 ‘인민전선’이 수립되지 않았다. 미국은 프랑스처럼 혁명적 위기에 직면해 있지 않고, 스페인과 같은 내전의 한가운데 있지도 않다. 현대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역사적 과제는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에 있고, 오직 노동자혁명과 사회주의만이 미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직접적 투쟁이라는 의미로, 그 과제는 아직 제기되지 않았다. 미국 프롤레타리아가 먼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조직할 권리, 산별노조, 민주적 권리의 일반적 행사, 강력한 노조와 실업자 운동, 빈민구제와 노조의 지위, 의식적인 대중적 혁명정당 등’ 보다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요구들이다.

    인민전선이라는 개량주의 전략은 노동자를 패배시키는 한편, 오직 노동자의 독립적인 혁명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국가권력 문제가 프롤레타리아에게 유리하게 해결될 수 있다. 보다 기초적인 단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인민전선의 계급협조주의 방식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치명적으로 갉아먹으며, 오직 온당한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는 옹호될 수 있다. 이 나라에서 공산당의 지원 아래 노동운동에 침투하고 있는 인민전선은 상당히 진전되었고, 그 재앙적 효과는 이미 여러 현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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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인민전선 전략의 결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36년 선거이다. 지지자의 사회구성으로 보나 그가 내세우는 정치 강령으로 보나, 루스벨트는 사실상 인민전선 후보였다. 그가 자본주의의 신실하고 유력한 방어자라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농민 그리고 중간계급의 하층 부위의 상당수가 그를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민전선 이데올로기의 주창자들은, 스스로든 아니면 떠밀려서든, 루스벨트 진영으로 들어간다. 다른 많은 경우처럼 또는 공산당 스스로 그러하듯, 애매모호하고 알아듣기 힘든 이론적 설명을 통해.

    공산당은 선거운동의 초점을 ‘진보냐 반동이냐’,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로 제기해야 했다. 그리고 ‘랜던-허스트-자유동맹[Alfred Landon: (1887~1987) 1936년 공화당대통령후보/William R Hearst: 1863~1951 신문 체인을 거느린 언론사업가. 민주당 정치인이고 루스벨트 열성지지자였으나 1935년 루스벨트 반대편에 섬/Liberty League: 부유한 자본가들이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반대하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체제를 지향하며 1934년에 만든 정치단체]’에서 파시즘 세력을 발견해야 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서든 랜던을 낙선시키자!”를 중심 구호로 내걸어야 했다. 그리고 이 구호의, 동조자들 다수의 해석에 따른, 현실적 의미는 루스벨트에게 투표하라는 것이었다. 브라우더[Earl Russell Browder: (1891~1973) 미국공산당 지도자. 1930년대와 40년대 당서기. 미국과 소련의 공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았으나, 전쟁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당에서 제명됨]는 그것이 스탈린주의 선거운동의 핵심 방향이었다는 것을 상당히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그는 이렇게 자랑한다. “랜던을 떨어뜨리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인민 절대다수와 공유한 그 목표는…모든 예상을 상당히 뛰어넘어 성취되었다. 이 성과를 끌어내는 데에 있어서, 우리 역할에 대한 아무런 과장도 없이, 이 투쟁에서 공산주의자 각각의 역할은 미국 내 다른 정치조직 구성원의 그것보다 몇 배의 무게를 지니는 것이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명목상으로 독립적인, 현장의 공산당 선거후보자[Tickets: 당이 일괄 제출하는 후보인 명부]들에게 사과의 뜻을 길게 전했다. 만약 “노동자농민당(Farmer-Labor party)이 전국적으로 선거후보자의 제일 첫머리에 루스벨트를 올려놓았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의 후보들을 내세우는 대신에, 루스벨트가 이끄는 그 후보들을 지지했을 것인가? 그런 조건에서 우리는 거의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나는 과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상, 많은 지역에서 심지어 공산당에 의해, 공식적으로건 또는 당원 개인적으로건, 그러한 일이 행해졌다. 미네소타에서, 워싱턴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루스벨트가 그 공천후보자들의 제일 앞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없이, 노동자농민당을 지지했고, ‘진보’ 연대를 지지했다. 뉴욕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선거운동에 돌입한 미국노동당을 완전히 지지했다. 그 지도자들이 노골적으로 선언했던 것처럼 오직 루스벨트에 노동자 표를 몰아주기 위한 것이었다. 공산당 당원들은 개별적으로 미국노동당에 가입하여 그 연단에서 루스벨트 지지발언을 했다.

    인민전선 정책은 루스벨트에 대해 완전히 반맑스주의적 분석을 한다. 그를 더 이상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 수장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에게 가하는 비판은 그가 ‘인민의 요구’에 충분히 응하지 않는다거나, 그에 대한 일정한 양의 압력이 없으면 그를 진보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것이 고작이다. 심지어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그 주인들의 분부대로 실업자들에 대한 일자리를 루스벨트가 삭감했을 때, 그리고 심지어 자동차노조의 파업에 대한 지지를 루스벨트가 거부했을 때에도, 스탈린주의자들의 비판은 부드럽고 ‘충성스런’ 기조를 유지했다. 자본주의 사회 전복이라는 혁명적 목표를 포기한 공산당은 ‘20세기 미국주의 정당’이 되었다. 인민전선으로 제한된 그 목표는 민주적 자본주의 틀 내에서 ‘압력 단체’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계급의 적 마음에 들 수 있도록, 이른바 ‘교양 있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대가로 소련과의 우호에 대한 추상적 약속과 파시즘에 대한 고상한 언사를 받아내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위협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를 보장하고 계급투쟁을 잠재우는 역할을 기꺼이 한다.

     

    3

    개량주의 정치노선은 ‘순수한 정치’의 영역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항상 모든 계급투쟁 현장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인민전선 전략이 발전되어 노동조합 활동과 실업자 조직들 내에서의 공산당의 활동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다가올 몇 달 동안 이 발전은 더 거침없이 전개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전선의 기초는 계급협조주의이고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 개량주의가 노동조합 현장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고 있다.

    반동적인 노동조합 관료들은 노동계급 내에 있는 적대계급의 하수인인가? 그들의 정책은 노동조합 내에서 전투적 계급의식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가? 이것이 맑스주의가 항상 가르쳐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스탈린주의 문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그런 교훈을 발견할 수 없다. 어디에도 노동조합 관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설명, 심지어 언급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너무 역겨워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가끔씩 개인적 비판을 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최소로 유지한다. 가능한 한 많은 관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자본가들 일부와의 안정적 연대를 구축하려는 스탈린주의 정책은 그들로 하여금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성장시킬) 임금과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을 꺼리도록 강제한다. 그것을 국가의 노동전문가와 정부가 임명한 중재자들과의 비밀스러운 양보합의로 대체해 버린다. 노동조합 내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작업은 대중적이고 몰계급적인 인민전선 성취라는 목표에 종속되는 것이어야 한다. 전투적 파업을 준비하고 승리하는 것보다 흑인총회[Negro Congress: 대공황기인 1935년에 결성된 흑인 인권단체], 또는 미국연맹회의(American League Conference), 또는 농민노동자진보연대(Farmer-Labor-Progressive), 또는 사회보장연금기구(Social Security Assembly) 등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고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직 폭넓게 인식되고 있지 않지만, 그 결과는 이미 노동운동 내에 넓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공공산업진흥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연좌농성에서 스탈린주의자들과 그 지도선들은 왜 평화적이어야 하고 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입을 모아 설명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노동자동맹(Workers’ Alliance)의 새 정책은 ‘분쟁 종식’을 위해 파업을 반드시 포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1월에 워싱턴에서 열린 실업자 시위에서 전투적 구호나 플래카드는 단 하나도 허용되지 않았다. 시위 전체는 정부구호기관과의 우호적 대화 창구를 만드는 것을 위해 조직되었다. 교사동맹(Federation of Teachers)에서, 정부 교육위원회에 대항한 전면투쟁은 반대되었고, (뉴욕의 교사동맹:Teachers’ Guild 같은) 이중조직은 회유되었으며, CIO[산별노조총회(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 AFL에서 산별조직을 주장하다 제명된 노동자들이 만든 전국노조. 1955년 AFL-CIO로 통합됨]의 방침을 지지하면서 AFL[미국노동연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1886년 기술수준과 직업별로 조직된 노동조합] 집행위원회를 반대하는 공개투쟁은 회피되었다. 식당노동자조합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오랜 모리배들과 긴밀히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제3기 때 야성적이었던 모피노동자들은 ‘교양’ 있어졌고, 노동조합 내의 진보적이고 혁명적 인자들과 맞서는 데에 그들의 에너지를 쏟는다. 모피노동자 지도자로서 지난 5년 동안 길들여지지 않는 사자처럼 포효했던 벤 골드는 지금은 가장 온순한 양처럼 연설한다. 통합 섬유노동조합 총회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반동적인 관료 구조에 나섰다. 지난 해, 태평양 연안의 해양노동조합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국제선원연맹(International Seamen’s Union:I.S.U.)의 권고를 받아들이라고 선원들을 설득했고, 이어서 파업을 막으려 시도하고, (루스벨트에 타격을 가하지 않기 위해) 파업을 선거 이후로 미룰 것을 주장했다. 마침내 선원노조의 전투적 태도에 직면해서야 물러섰다.

    이러한 경향은 계속되고 더 늘어날 것이다. 인민전선의 기치 아래 있는 공산당은 노동조합 내에서 점점 더 반동적인 세력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노동조합 내의 진보적 운동은 그와 함께가 아니라 그에 맞서서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AFL-CIO 갈등에 관한 스탈린주의 정책으로 뚜렷이 뒷받침된다. 맑스주의자들이 분명히 말해 왔지만, 노동조합 내의 진보적 운동은 반드시 ‘산업별노동조합주의, 기초공업의 조직화, 계급투쟁 정책, 노동조합 민주주의’ 같은 기본적 구호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단 하나이든 아니면 전체이든, 이 구호들은 AFL의 노선과 정책을 부정하고, 물론 비판적으로, CIO를 지지하게 한다. 이것은 CIO의 정책과 지도부가 노동자의 요구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공해서가 아니라(사실, 그 근저의 계급협조주의와 노동조합 민주주의 침해를 통해, 지금 그리고 미래에 더욱 더 노동자의 요구에 맞서 행동할 것이다.), 현재의 조건으로 인해, CIO의 방향이 노동운동의 진보적 방향과 지금 일치하기 때문이다. 반면, AFL의 관료들이 지금 부패하고 낡은 방향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AFL 관료들에 맞서서, 맑스주의자들은 반드시 진심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CIO를 지지해야 한다. 지금 오직 그러한 태도만이 진보적 노동조합운동과 양립가능하다.

    그러나 다음 시기의 공산당 정책은 ‘단결’이라는 하나의 구호를 중심으로 공식화된다. 위에서 언급한 연설에서 브라우더는, “우리는 AFL과 노동조합의 단결을 위해 우리의 노력을 배가해야한다.…만약 노조 일부는 CIO로 가고 다른 하나는 AFL로 가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이 나뉘는 것은 해로운 일이다.…어떤 상황에서도, 그 노동조합에 분열을 낳는 투쟁을 그러한 방식으로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예를 들어 중공업의 일부를 조직한다고 가정할 때, 이 새로운 노조들이 기계공노동조합에 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연합노동조합(Amalgamated Association)에 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속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마지막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해 왔다. 이것이 상호경쟁과 분열 격화 우려가 있는 곳에서, 새로 조직된 노동자들을 기계공노동조합의 관할권으로부터 떼어내 다른 산업노조로 이동시키는 것에 우리는 우리의 힘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단결이라는 매력적인 목표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으며, 분열을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항상, 추상적 구호로서의 단결이 아니라, 단결의 구체적 내용이다. 그리고 현재 노동운동의 환경 속에서, 단결을 위한 투쟁은 위에서 열거한 구호 아래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조직으로 표현하면 AFL집행위원회에 맞선 CIO 운동 지지가 될 것이다. 그러한 투쟁만이, 패배가 아니라 진보의 방향으로 AFL을 재통합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은 CIO 집행부의 운동 배신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재통합은 물론 일정한 협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노동자들은 반드시, 새로운 연맹을 건설할 필요성 등 모든 결과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진정으로 진보적 운동은 그러한 사건의 기초를 만들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산당의 ‘단결’ 운동은 진보적 투쟁을 엇나가게 한다. 양보할, 실제로는 투항할, 의사를 미리 표명하면서, AFL 집행위원회 정책에 맞선 날카롭고 의미 있는 투쟁을 그들은 가로막는다. 동시에 그들은 CIO 집행부에서는 반동적 경향의 성장을 돕는다. 태평양해양노조연맹에서, 교사협의회 총회에서 그리고 AFL 총회에서처럼 그 해악적 결과는 이미 몇몇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고,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각각의 사례들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영향력은 CIO에 대한 명확한 지지를 억누르고 있다.

     

    4

    다른 영역에서도 인민전선 실천은 비슷하게 확인된다. 청년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코민테른 7차 총회에 이어 그리고 청년코민테른 총회에서, 이 나라의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프롤레타리아 청년 정치조직을 폭넓고 비계급적이고 비정치적인 청년운동(즉, 인민전선)으로 해소하라는 안이 채택되었다. 청년사회주의동맹(Young Peoples’ Socialist League)의 입장이 이를 불가능하게 했을 때, 청년공산주의동맹(YCL)은 같은 인민전선적 기초 위에 미국청년회의(American Youth Congress)를 건설하는 것을 통해 같은 결과를 만들려고 했다. YCL은 YMCA(기독교청년회: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와 종교적 청년조직들의 환심을 사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 맞선 동맹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학생운동에서, YCL은 미국학생조합[American Student Union: 1935년 YCL과 YPSL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좌익 학생단체. 군사화 반대투쟁을 전개]을 노골적인 인민전선 강령과 조직형태로 바꾸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인민전선 정책을 ‘반전 운동’에 적용하는 것이다. 평화주의 조직 다수를 통해 그리고 특히 전쟁/파시즘반대미국동맹[American League against War and Fascism: 미국공산당과 평화주의자들이 결합하여 유럽 나치즘에 대한 우려로 1933년 결성. 1937년 평화/민주주의미국동맹으로 개칭]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통해, 스탈린주의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의 폭넓고, 비계급적인 인민전선’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인민전선 정책의 계급협조주의 성격은 이 조직들 내의 스탈린주의적 태도를 통해 뚜렷이 드러난다. 전쟁은 ‘자본주의 내적 갈등을 통해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질서에 맞선 혁명적 계급투쟁만이 전쟁을 진정 막아설 수 있다.’라는 전쟁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을, 그들은 애초에 배제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스탈린주의자들은 ‘어떤 사회 계급이나 조직에 속해 있건, 자본주의에 반대하건 그렇지 않건, 모든 사람은 전쟁반대를 위해 ‘단결’할 수 있다.’라는 견해를 고수한다.

    이 ‘반전 운동’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 무장에 대한 공격을 스탈린주의자들이 포기해왔다는 사실을 통해 드러난다.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이 나라의 강력한 전진인) 부에노스아이레스회의[Buenos Aires Conference: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일본의 중국 침략, 스페인 내전 등으로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임박한 전쟁에 대해 미국과 남미국가와의 공조를 확인한 1936년 아르헨티나 수도에서 열린 회의]를 ‘세계 평화’를 향한 위대한 진전이라면서 환영하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전쟁에서 정부를 지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는 짓이라고 그들을 비난한다. 진실은 물론, 스탈린주의자들이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에서 정부를 지지하고 그러한 지지를 향해 대중을 동원할 준비를 인민전선을 통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9장 인민전선의 실제 의미

    1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의 도래라는 측면에서만 지금의 모든 중요 정치행동은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모든 국가의 정부와 모든 중요 정당과 조직들 모두의 행동에 적용된다. 진지한 정치인이라면 새로운 전쟁의 임박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1935년~1936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전쟁]이나 스페인 내전은 전쟁의 서막이다. 그 두 사건은 사회 갈등이 의회 내에서나 국가동맹[League of Nations, UN의 전신]이나 회의 그리고 조약 등 외교적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규모로 전개될 전쟁은, 즉각 그리고 전면적으로, 경쟁하는 열강들의 목숨을 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질서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결정적 시험이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쟁 이후 인류는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 결박된 채로 그리하여 문명은 파괴되어 야만의 나락으로 처박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끔찍한 전망 속에 나타나거나, 아니면 프롤레타리아가 전쟁 위기를 자본주의 족쇄를 벗어버리는 기회로, 노동자 혁명 성취의 기회로, 그리하여 인류에게 사회주의 사회라는 찬란한 미래를 열어젖히는 기회로 이용하거나.

    그와 같은 위기 속에서, 모든 정부와 정당은 전쟁 준비에 그들의 정책을 맞추고 있다. 그들에게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전쟁 준비는 동시에 여러 전선에서 진행된다. 물론 무엇보다도 1914년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모든 나라의 군비 확장이 가장 뚜렷한 전선이다. 이와 더불어 국가경제를 전쟁수행에 적합한 형태로 조직하는 것이 뒤따른다. 동시에, 각 나라 지휘부는, 가장 유리한 동맹을 맺고 잠재적 적이 될 동맹과 단절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수단들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정부는 전쟁 수행을 위해 자기 국경 내의 단결을 성취해야 한다. 이 전쟁은 부르주아 국가의 생사를 건 투쟁이다. 만약 국가의 단결이 성취되지 않으면, 전쟁에 임하는 그 국가의 능력은 거의 필연적으로 전쟁에서 질 정도로 약화된다. 그러나 국가의 단결 성취는, 국가를 내부적으로 분열시키는 계급투쟁을 반드시 억압하고 금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쟁 지속을 위해 계급적 이해를 뛰어넘은 국가의 단결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단결과 계급투쟁의 억압은, 계급투쟁 주창자들을 처형이나 투옥 등으로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에 더해,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념적 수단이다. 최고의 충성은 국가를 향해야 하고 국가 방어를 통해서 자신들의 이해가 최대로 실현된다고, 대중을 가르치는 선전을 조직하는 것이다. 만약 이 교훈을 강화하기 위한 어떤 공식이 발견된다면, 국가 단결의 성취라는 문제는 거의 해결될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 이념적 준비는 자본주의 국가와 부르주아 교육기관을 통해서 직접 수행된다. 학교, 언론, 라디오 방송, 교회 등은 애국적 의무와 충성심을 대중의 머릿속에 주입한다. 그러나 많은 수의 대중은, 부르주아지의 참모습을 목도한 그들의 경험을 통해 부르주아지들을 불신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한 큰 이념적 준비는 대중 속에서 활동하고, 그들을 위해 발언하는 체하는 부르주아지의 하수인을 통해서 수행된다. 이것이 개량주의의 역사적 역할이다. 그리고 1914년에, 전쟁 지지를 위한 단결을 위해 각 나라의 대중을 그 국가와 화해시켰던 유럽 사민당 개량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독일에서 개량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계급투쟁은 차르[러시아 황제] 통치가 종식될 때까지 연기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카이저[독일 황제]가 패배할 때까지라고 설명되었고 다른 나라도 비슷한 식이었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지도자들을 통해 대중들은 제국주의 학살로 인도되었다.

    ‘물리적 수단’과 이념적 수단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파시스트 국가는 이미 국가단결을 성취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모든 국가들은 파시스트 형태의 정부를 채택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러나 민주적 국가들 내에서 국가 단결은 아직 충분할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쟁 우려가 고조됨에 따라, 그것을 이루려는 시도는 점점 더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민전선은 임박한 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민주적 국가들 내의 국가 단결 성취를 준비하는 핵심 형태이다. 인민전선이라는 구호 아래, 대중들은 이른바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를 위한 투쟁을 향해 행진하게 된다. 기초적 공식은 아주 단순하다. ‘파시즘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하자.’, ‘우리 국가(프랑스, 영국, 미국)는 민주적이고 독일은 파시스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나라를 독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

    인민전선은 사회애국주의의 최신 형태이다. 그 새로운 형태를 통해 1914년의 배신이 재탕되고 있다.

     

    2

    전통적 개량주의자들이 인민전선이라는 구호를 왜 받아들이는지(전통적인 적대감 때문에 간혹 그들이 그 구호에 근거한 스탈린주의자들과의 즉각적 동맹을 거부하는 경우에서조차)를 이해하는 것은 쉽다. 그들은 항상 이러한 정책을 펴고 실천해 왔다. 개량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의 부르주아 하수인일 뿐이다. 개량주의는 항상 민주적 자본주의 방어를 위한 전쟁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그들의 운명이 민주적 자본주의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코민테른은 인민전선 운동을 주도하고 그 가장 충실한 지지자가 되는가?

    그 대답 역시 그리 어렵지 않다. 스탈린주의 정책은 소련의 자급자족 성취에 매여있다. 스탈린주의와 맑스주의를 갈라놓은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나라들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확장하는 투쟁과 결합해야만 소련이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남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라는 입장을 맑스주의자들은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스탈린주의가 국가의 자급자족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한, 가능한 한 지금의 국제 정세를 유지하는(그 동안에 자급자족이 달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속에서 소련을 방어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그럴 의지가 있다면 어떤 국가와도 동맹을 추구한다.

    임박한 전쟁에서 독일과 일본이 소련을 적대할 것이고 그 공격의 예봉을 독일이 맡을 것(우리가 첫 번째 장에서 행한 설명 즉, 독일 파시즘이 ‘최악’의 형태라는 디미트로프의 주장은 바로 그 때문이다.)이라고 소련은 믿고 있다. 이탈리아가 어느 방향으로 붙을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그것은 왜 라데크[Karl Radek (1885~1939): 러시아 혁명가,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 1936년 소련헌법 작성에 참여. 1937년 모스크바조작재판에서 반역혐의로 숙청당함] 재판에 독일과 일본이 언급되었지만, 이탈리아는 언급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준다). 프랑스와 영국과 동맹을 맺을 기회를 가지고 있고, 미국과는 호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독일의 ‘전통적’ 적수인 프랑스와의 군사동맹에 기대한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노동자국가와 모든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사회적 골은 두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보다 더 극복되기 어렵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들 내에서 코민테른 지부들의 활동은 스탈린주의 정책에 온전히 복종한다. 만약 코민테른 지부들이 계급투쟁 정책을 수행한다면, 그들은 개별 부르주아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들의 (계급투쟁 억압을 필요로 하는) 국가 단결의 성취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두 개의 난관이 뒤따른다. 그럴 경우 부르주아 국가들은 소련을 동맹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만약 동맹이 되더라도, 그들은 국가 단결을 이루어내지 못해 내부적으로 약화되어 군사 파트너로서 효용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둘이다[1943년 코민테른의 해산은, 바로 이러한 논리 속에서, 1941년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에 돌입한 소련이 연합군의 신뢰를 얻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탈린주의는 반드시 그 동맹자들에게 믿을만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잠재적이고 실재적인 동맹 상대들의 전쟁 준비를 도와야 한다. 군사 동맹에 대한 대가로,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억제하여, 동맹 국가의 국가 단결 성취를 도와야 한다.

    인민전선은 이러한 일을 이루는 핵심 수단이다. 인민전선은 계급협조를 위해 계급투쟁을 포기한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모두 수용할 만한 입장인) 민주주의 방어를 위해,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을 비난한다. 인민전선에서 ‘국가 전선’으로 이행할 길을 닦는다. 이는 이미 프랑스에서 완전히 공개적으로 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인민전선은 임박한 전쟁 준비의 일부이다. 이것이 그 실제 의미의 최종적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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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통틀어, 혁명적 맑스주의자들 또한 전쟁에 대비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고 그들만이, 전쟁에 맞서는 투쟁을 준비한다. 그들은 민주적이건 파시스트적이건 어떤 자본주의 정부에 대한 지지도 부정하는 혁명적 패배주의를 드높이 주창한다. 레닌이 그렇게 했듯이, 그들은 계급투쟁을 더욱 가차 없이 진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가 승리할 계급투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기회로 전쟁 위기를 이용할 준비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소련에 대한 진정한 방어를 준비한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인민전선을 통해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열강들과의 동맹을 통해 소련의 방어가 아니라 패배를 준비한다. 첫 번째 노동자국가의 방어는 국제노동계급에 달려있다. 다른 나라로의 노동자혁명의 확대만이 노동자국가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 궁극의 결론이다. 프랑스, 영국 또는 미국의 이른바 ‘원조’에 대한 대가는 혁명의 청산과 자본주의 소유관계의 부활일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에 나치 독재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이다. 파시스트 독재는 자본주의에 ‘불편’을 초래하지만, 노동자의 승리는 치명타이다. 소련의 방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스탈린주의 외교정책은 납치범에게 아이 돌보는 일을 맡기는 격이다. 소련의 진정한 방어는 세계에서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주의 정책이 계급투쟁을 세계적으로 억압하는 한, 소련 방어는 스탈린 관료집단과 더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 맞서 수행되어야 한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용서 없는 투쟁은 소련 방어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임박한 전쟁과 소련 방어를 위해 맑스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전선의 이론과 실천, 정책과 구호 그리고 체계에 대한 확고부동한 타격이어야 한다. 인민전선은 노동자들에게 패배를 운명 짓는다. 인민전선의 계급협조주의에 맞서서, 맑스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공동전선을 제기한다. 그를 통해 노동계급의 단결이 성취될 것이고 그 동맹자들이 얻어질 것이고 권력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인민전선 정책과 그리고 그들이 의미하는 모든 것과의 완전한 단절만이 그 자신과 인류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프롤레타리아가 나아가도록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리고 세계 사회주의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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