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Uriginal
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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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99624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992475

 

이 기사에 대한 대부분의 코멘트가 여기 새끼들 역사관을 대변하는 것 같다.

민족주의에 근거한 유사역사학을 주장하는 놈들의 역사관을 까면 발광하는 모습이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된다.






  • 옛다 관심. 불쌍한 븅신새끼.
  • Uriginal
    17.08.24

    여기에 글 쓴 것도 없고 헬조선 게시판에서 터줏대감 좆목이나 쳐 하면서 죽창 쳐 박으러 여기까지 기어오는 너 새끼가 관심 구걸하는 개병신 새끼 아니냐? 이 씨발새끼야

  • 응 아님.
    너 언제 쯤 정신차릴래?
  • Uriginal
    17.08.24
    국뽕 역사관 환빠 민족주의 역사관 사라질 때까지 한다. 북방계 기마민족 타령 여진족 동조론 같은 개병신 같은 주장이 사라지고 john이나 리아퉁구스 같은 씹버러지들이 굴복할 때까지 한다 이 개새끼야.
  • ㅇㅇ 영원히 복수심에 불타 재가되도록 활활 타오르렴.
    활활.
  • Uriginal
    17.08.24
    하든 말든 신경 끄고 아가리 쳐 닫고 꺼지라고 시비 쳐 걸러 오지 말고 헬조선 게시판에서 좆목이나 하고 홍위병 마녀사냥이나 쳐 하고 있으라고
  • (화르륵) 앗 뜨거.
    불이 아주 잘~ 타는구나.  활활.
  • Uriginal
    17.08.24

    뭐 어쩌라고 이 병신 새끼야. 너 새끼도 한국 새끼들이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기마민족으로서 중국을 쳐 밟은 위대한 민족이며 그것에 반하는 모든 주장은 식민사학자 매국노들의 중화주의적 음모라고 쳐 믿고 있는 거 맞잖아. 그 순간부터 쳐 찢여 죽여야 할 국뽕 확정인거다 이 씹새끼야.

  • ㅋㅋㅋㅋ 나를 까는 것은 국뽕nida.

    나를 반대하는 것은 민좆주의자 인 것입 nida.
     
    ㅋㅋㅋㅋ 언제쯤 지나야 자기가 그냥 븅신이라 까임을 당하는 것인지 이해하게 될것인가?
     
     
  • Uriginal
    17.08.24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여기서 할 짓 없이 와서 시비 걸고 죽창 쳐 박고 가는 새끼들은 뭘 명분으로 발광을 쳐 하냐고 씨발놈아
    나한테 반발하는 이유를 쳐 대 보라니까 쳐 도망가는 새끼들 아니냐. 비겁하고 졸렬한 죠센징 표본 그 자체인 새끼들이
  • 아니 그냥 너를 까는건 말도안되는 일반화와 딱지 붙이기 그리고 너의 그 졸열한 복수심과 집요함 때문이다.

    여기서 허구언날 민좆주의가 까이고 환뽕 따위 쓰래기 취급하고
    국뽕은 정신병자로 보는게

    이 사이트인데 

    너는 대체 언제까지 븅신질 하며 쉐도우 복싱할꺼냐?
  • Uriginal
    17.08.24

    민족주의 역사관 까려고 한국은 그냥 중국 속국이라고 하니까 john이나 리아퉁구스 같은 새끼들이 나를 중화주의자로 몰아서 반발하고 북방계 타령 알타이 기마민족 타령이 전부 허황된 개소리라고 하면 그 새끼들이 또 나타나서 북방 지배층 여진족=이성계 타령하면서 개소리를 짖어대는데 무슨 쉐도우복싱 타령이냐고.

    민족 자부심 무너뜨리는 역사관을 퍼뜨리는데 나타나서 하나하나 훼방 놓고 이상한 것 가지고 트집 잡아서 인종주의니 순혈주의니 개소리 쳐 짖어대는 새끼들과 그 새끼들을 신격화하고 교주로 떠받들고 진영논리로 내가 그 새끼들에게 반기를 든다는 이유로 뗴로 몰려와서 집단공격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뭐 너 같은 추종자 좀비 새끼들은 나같이 여기에 소속감 따위 없고 신격화에 동참하지 않으니 나를 눈엣가시로 보고 어떻게든 날 물어뜯고 싶겠지.
  • ㅇㅇ 그래라. 그럼 앞으로도 졸열하게 화이팅.!
  • ㆍㆍ
    17.10.29

    제1장 인민전선 이론과 그 기원

    1

    인민전선(People’s Front)이라는 구호는 코민테른과 그 지부들에 의해 처음 제출되었다. 1933년 말에 나타나서 한 동안 서서히 읊조려지다가 1935년 여름에 열린 제7차 코민테른 총회에서 이론적 표현으로 승인되었다. 그 이후로 아주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전세계 프롤레타리아 전략의 핵심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한 동안 이 정책과 구호들은 코민테른 바깥 진영과 그 동조자들의 맹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저항은 상당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량주의자와 사회애국주의자들은 처음에는 코민테른의 ‘진실성’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이른바 ‘제3기’라는 코민테른의 이전 전략과 연결지어 생각했다. 그들의 머리는 ‘사회파시즘’,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 복수 ‘적색노조’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저항은 서서히 극복되었다. 코민테른은 이제 사회파시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은 폐기되었으며, 적색노조는 청산되었다.

    그리고 하나둘씩 개량주의 정당들은 인민전선 구호로 인입되었다. 프랑스에서, 그 이후 곧바로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이 공식적으로 수립되었다.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러자 개량주의자와 사회애국주의자들의 뒤를 이어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넘어왔다. 예를 들어 이 나라[미국]에서, 주도적 자유주의 간행물인 Nation and The New Republic은 진심어린 인민전선주의자가 되었다. 지금 노동운동 내에서, 운동에 동조하는 사회 조직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이 인민전선에 대해 견고한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반대파의 이름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다.

     

    2

    인민전선 운동은 특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시작되었다. 간략하게라도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전후 혁명 물결 속에서 노동운동의 연이은 패배는 히틀러의 승리로 그 정점에 도달했다. 히틀러는 독일의 강력한 노동계급 대중정당들의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승리를 거두었다. 파시즘의 진격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 히틀러의 승리로 인해,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 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셋째: 인민전선의 기원을 가지고 있는 소련 내에서 1933년 이후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강제에 의하여 가혹하게 진행된 농민 집단화와 중공업 구축을 특히 강조한 1차 5개년 계획은 2차 5개년 계획으로 이어졌다. 새 계획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중공업에 맞선 ‘소비재’, 농민 달래기, 스타하노프주의의 도입에 대한 강조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임금과 처우 차등을 부추겼는데, 그로 인해 노동대중으로부터 멀어진 노동귀족들이 양산되었고,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경제적 특권이 철폐되었다. 이 모든 그리고 다른 유사한 변화들은 1936년에 채택된 신헌법으로 뚜렷하게 집약되었다. 그것은 소비에트 정치권력의 기초가 의회주의 형태의 국민투표제에 있다는 것을 법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넷째: 이 기간 동안 이른바 소련 외교의 ‘리트비노프 시기’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 소련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LN):국제연합(UN)의 전신]에 가입했고, 프랑스와 소련 사이에 체결된 군사협약은 이 시기 연이은 조약들과 동맹들을 집약한 것이었다.

    뒤에서 계속 보여주겠지만, 이 네 가지 중요 특징들은 인민전선 정책 이해에 필요한 배경이 된다.

     

    3

    인민전선 이론과 그 정당화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문서는 최근 코민테른 서기가 된 디미트로프의 제7차 총회 연설과 코민테른 이론가 마누일스키가 집필한 『7차 총회의 과업』이다. 그러므로 인민전선론에 대한 내 설명은 이 저작들에 기초한다.

    지금 역사적 시기의 성격 ‘분석’과 더불어 우리는 시작했다. 스탈린주의 성전(聖典)에 따르면, 이 시기 “주된 위험은 파시즘”이다. 그로부터 인민전선은 원래 ‘반파시즘’ 인민전선으로 알려졌다. 7차 총회에서 마누일스키는 16쪽에서, “포화를 파시즘에 돌렸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거기엔, ‘좋은’ 그리고 ‘나쁜’ 파시즘 등 다양한 종류의 파시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장 나쁜 종류의 파시즘이 독일 형태의 파시즘이다. 디미트로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장 반동적 형태의 파시즘은 독일 형태의 파시즘이다…. 독일 파시즘은 국제 반혁명의 창끝처럼, 제국주의 전쟁의 주된 도발자처럼, 전 세계 피억압인민의 조국인 소련 박멸 운동의 주창자처럼 행동한다(강조는 모두 디미트로프의 것).”

    지금 파시즘은 단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농민과 중간계급 일반 그리고 심지어 특히 ‘소상공인’ 부르주아지의 특정 분파까지 위협한다고 우리는 듣고 있다. 사실, 파시즘은 지배계급의 악독한 소수 분파(2백 개의 주식시장 큰손들이 프랑스 은행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프랑스에서 ‘200 가문들’이라고 알려진)의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 디미트로프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파시즘 권력은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국수적이고 가장 제국주의적 분자들의 공포 독재를 연다. …파시즘은 극단적 제국주의자들의 이해를 위해 행동한다. …기존 부르주아 정당들에 실망하여 등 돌리는 대중들을 가로채는 파시즘은 부르주아지의 가장 반동적 부문의 이해에 기초한다.” 마누일스키는 거의 같은 얘기를 반복하면서 다만 자신의 심리적 수식을 덧붙인다. “…파시즘은 금융자본 요소들의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국수적이고 가장 제국주의적 독재 형태의 뻔뻔한 개막을 의미한다.[제국주의의 ‘정도’라는 문제는 대단히 미묘한 문제이다.]”

    게다가 전쟁을 낳는 것이 파시즘이다. 마누일스키는 말한다. “점증하는 세계 제국주의 전쟁 위협은 모든 계급, 나라와 국가 권력을 전쟁과 평화라는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놓고 있다. 전쟁으로 몰아가고 그 발발을 촉진하는 세력의 중심에 파시즘이 있다….” 이 생각은 반복되고 반복되어 이제 스탈린주의의 상투적 문구가 되었다.

    코민테른 논리에 따르면, 이 전제들로부터, 지금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의제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마누일스키는 말한다. “지금의 정세는 다르다. 오늘 대부분 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지 않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아니면 파시즘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디미르토프는 부연 설명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모든 조건에서 항상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10월 혁명 시기에 러시아 볼셰비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라는 구호 아래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립에 반대했던 모든 정치정당에 맞서 생사의 투쟁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나라에서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지금 파시스트 반혁명은 가장 야만적인 착취 체제를 수립하고 피억압인민을 굴종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지금 여러 나라의 피억압 인민은 선택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선택이다.”

    이것이 인민전선 전술과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이다. 그리고 사실 이 근거로부터 인민전선은 충분히 정당성을 가진다. 단지 딱 하나의 문제가 있다. 즉, 이 근거 자체가 거짓이라는 점이다.

    현재 역사적 시기의 성격에 대한 정의를 통해, 우리의 코민테른 문필가들은 이미 프롤레타리아의 전략을 암시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는 명백하게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는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한 다른 사회 계급들과 동맹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다시피, 이것은 농민들과 전반적인 중간 계급 그리고 부르주아의 비(非)파시스트 또는 ‘반(反)파시스트’ 분파를 포괄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서 ‘반파시스트 부르주아지’까지의 이 모든 사회 집단들은 파시즘에 맞선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공동 강령으로 단결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 디미트로프는 충고한다. “우리는 반드시 파시즘에 맞선 광범위한 반파시스트 인민전선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파시즘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라는 공동의 강령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 계급과 집단들의 폭넓은 단결, 이것이 바로 가장 권위 있는 주창자들에 의해 옹호되고 정의된 인민전선이다.

    인민전선의 공언된 목표는 단지 일상 투쟁과 선동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정부를 장악할 수도 있다. 디미트로프는 말한다. “오직 부분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위해 공동전선[다음 문장에서 보이듯, 인민전선을 의미]을 옹호하는 것이냐, 공동전선의 기초 위에서 정부 구성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 책임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완전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공동전선이나 또는 반파시스트 인민전선 정부 구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러한 정부 구성을 지지한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러한 인민전선 운동과 인민전선 정부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선생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1) 인민전선은 중간계급, 심지어 비프롤레타리아 조직과 정당들을 프롤레타리아 쪽으로 끌어올 것이다.

    디미트로프는 말한다. “파시즘에 맞선 투쟁으로 피억압인민을 동원할 때, 프롤레타리아 공동전선에 기초한 폭넓은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의 구축은 특별히 중요한 임무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전체 투쟁의 성공은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피억압 농민과 심지어 산업이 발달한 나라 인구 다수를 구성하는 도시 소부르주아 사이의 투쟁동맹 구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을 건설할 때, 상당한 수의 피억압 농민과 도시 소부르주아 대중들이 소속된 그러한 조직과 정당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이 정당과 조직들 다수는 정치 경제적으로 여전히 부르주아지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그것을 따르고 있다. 이 조직과 정당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이것은 이 조직들에 접근하는 우리의 임무를 다양하게 만든다. 종종 많은 회원들은 그 지도부의 진짜 정치적 성격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정 상황에서 우리는, 그 부르주아 지도부에 관계없이, 이 정당과 조직들 또는 그 정당 조직들의 일정한 분파를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프랑스에서 급진당(Radical Party)과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 같은 경우이다.”

     

    (2) 인민전선은 전쟁을 막을 수 있다(우리가 보다시피, 이 주장들은 전혀 조심스럽지 않다.).

    “이 범세계적 전선이 현실화되고 실행되는 정도에 따라, 파시스트와 다른 제국주의 전쟁 선동가들이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사악한 손모가지가 강력한 전쟁 반대 전선의 도끼에 의해 잘려나갈지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디미트로프는 말한다.

    마누일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1914년 전쟁 전야에 비해 더욱 성공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투쟁할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 오늘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적대를 이용하는 소련에 의지하여, 세계 프롤레타리아는 전쟁에 맞선 광범한 인민전선 구축 기회를 가지고 있다. 단지 다른 계급들뿐만 아니라 전쟁에 의해 그 자주권이 위협받는 약소국과 그 인민들도 그 전선에 들어올 것이다.”

     

    (3) 인민전선은 파시즘을 격퇴할 수 있다.

    디미트로프는 말한다. “부르주아 독재를 직접적으로 철폐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고, 특정한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 공동전선 운동과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은 파시즘을 격퇴하고 억누를[이것은 디미트로프가 하는 최소 주장이다.―버넘 ] 위치에 설 수 있는가?”

    마누일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인민전선 구성] 경험을 통해, 프랑스 프롤레타리아는 세계 노동계급 운동을 풍부히 했고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서 벌어진 것과 달리) 파시즘에 맞선 적시의 행동은 커다란 희생과 패배의 고통을 피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얼 브로우더는 그의 팸플릿 『미국의 인민전선』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 나라에 파시즘의 위험을 알리고 그 위험을 격퇴하기 위해 이 나라를 조직할 진보 세력의 공동전선[인민전선을 의미]을 위한 커다란 요구가 있다.”

     

    (4) 마지막으로, 인민전선 정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이행 단계가 된다.

    마누일스키는 ‘낡은’ 형태의 사회민주주의 연립정부와 새 형태의 인민전선 정부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 [사회민주주의 연립]정부는 파시스트 독재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다. 다른 정부[인민전선]는 반드시 노동계급이 승리하는 길을 닦을 것이다.”

    ***

    이 요약이 소련 관료와 코민테른이 역사적 위기에 처한 전 세계 인민을 속이고 배신하는 이데올로기의 뼈대이다.

     

     

    2 인민전선 이론 분석

     

    1

    인민전선이 새로운 정책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오산이다. 새로운 구호인 것은 맞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단지 새로운 기회를 위해 낡은 정책이 새 단장을 한 것일 뿐이다.

    그 옹호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인민전선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추가적인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인민전선은 계급협조 및 연립정부 이론과 정책에 단지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현대 노동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그 이론과 정책들은 개량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민전선은 계급협조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공동의 강령에 기초하여 다양한 계급과 계급 분파를 대표하는 조직과 정당의 단결을 꾀하는 것이다. 디미트로프와 마누일스키가 정의하는 바와 같이, 인민전선 정부는 그 조직 정당들의 연합에 의한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 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 가지고 따지는 것은 별로 득 될 것이 없다. 인민전선의 정직한 지지자들 가운데에는 계급협조나 연립정부와 같은 것을 거부하고 싫어할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계급협조와 연립정부는 주의에 대한 배신이므로 적개심을 품어야 한다고 이전에 배웠기 때문이다. 사실 바로 이러한 훈련이 코민테른이 ‘인민전선’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발명해야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게 하면 과거의 표현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사람들도 [새로운 표현은]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에서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실상을 따져본다면,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인민전선은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계급협조주의이고 연립정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최대화할 것이라는 근거로 프롤레타리아의 이름 아래 그런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개량주의는 항상 그러한 근거로 정당화돼 왔다. 그렇지 않다면 프롤레타리아에게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개량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인민전선 구호에 합류했다는 점은 인민전선과 전통적인 계급협조 그리고 연립정부 정책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에 대한 뚜렷한 표식이다. 개량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은 지금까지 항상 그 정책들 편에 섰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인민전선 즉, 스탈린주의가 자신들의 정책 즉, 개량주의로 넘어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그들은, 여전히 코민테른을 낯설어하고 스탈린이 자신들을 집어삼킬 기회로 그 개량주의 선물을 이용할지 모른다고 두려워 하면서도, 그런 변화를 환영한다.

     

    2

    인민전선과 공동전선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탈린주의 대변인들은 그 둘을 섞어버리기를 원하고, 인민전선은 공동전선이 “더 높은 수준”에서 논리적으로 확장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유사하게, 인민전선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마치 공동전선을 반대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에게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공동전선의 편에서 그리고 공동전선을 위해 일관되게 투쟁해 왔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사실,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공동전선 전술을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코민테른이 히틀러의 승리를 용인했고, 이것은 주의자들이 코민테른에 가한 주된 비판 가운데 하나였다. 이 비판에 대하여 당시 코민테른은, 주의자들을 사회민주주의자 즉, 사회파시스트에 굴종한 자들이라고 딱지 붙인 바 있다. 공동전선에 대한 가장 훌륭한 방어는 그 당시 독일에서 트로츠키가 쓴 팸플릿들[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1930-1932)]에 담겨 있다.

    공동전선은 인민전선과 전혀 다른 것이다. 공동전선은 특정 사안에 대한 공동행동을 위해 서로 다른 정치노선을 지니고 있는 둘 이상의 정당이나 조직들 사이의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합의에는 공동의 정치 강령 문제는 전혀 끼어들지 않는다. 각 조직은 자신의 강령을 고스란히 지니고 그것을 개진할 권리를 가지며 공동전선에 합의한 다른 조직의 전반적 잘못이나 공동전선의 합의를 온당하게 수행하지 못한 잘못을 비판할 권리를 지닌다. 그리하여 공동전선 내의 각 조직은 조직적 독립성을 온전히 지키게 된다. 동시에, 공동전선에 참여하는 모든 조직들이 승인한 행동을 통해 가장 넓은 형태의 단결이 성취된다.

    서로 전혀 다른 정치노선을 지니고 있거나 최종 사회 목표가 다를지라도, 특정한 하나의 실천 또는 일련의 실천에 대해서는 함께 지지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전선을 수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속자 방어, 파업 지지, 시민의 자유나 그 밖의 민주적 권리 공격에 대한 저항, 법원 강제명령 거부, 시위 개최 등의 사안에 대해서 공동전선은 즉각 구성될 수 있다. 사회적 위기가 더욱 진전되면, 노동자 정당방위대 건설, 파시스트 깡패에 맞선 방어, 노동자 농민 병사 위원회의 건설 등을 중심으로 공동전선이 건설되어야 한다. 그런 사안을 중심으로 공동전선을 건설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투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를 통해 가장 폭넓게 투쟁 세력이 조직될 수 있고, 동시에 그들이 충성하는 조직이나 정당의 사상과 전술이 과연 가치 있고 믿을만한 것인지를 대중들이 비교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공동전선을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공동전선에 대해 가장 능동적이고 가장 일관된 옹호자이다. 반면에, 스탈린주의자들이 지금 개량적 인민전선에 기초하여 진정한 공동전선에 저항하고 맞서 싸우는 것처럼, 개량주의자는 항상 공동전선을 내키지 않아하기 때문에 반드시 강제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것이 가능하겠는가?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사상과 원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해를 대변한다. 결과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를 위한 공동투쟁은은 주의자들이 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동투쟁의] 기초는 넓을수록 더욱 좋다. 동시에맑주의자는 자신의 사상과 방법을 더 넓은 대중 광장에서 알리고 설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중들이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면 개량주의로부터 벗어나 혁명진영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민전선은 애초에 특정 사안을 위한 공동행동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먼저, 인민전선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통 강령을 수용할 것을 제시한다. 이것이 인민전선과 공동전선의 핵심적 차이이다.

    어떤 정치노선인가?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확인한 바 있다. 인민전선의 강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를 위한 강령이다. 즉, 자본주의 형태 가운데 하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강령인가? 그것은 당연하게도 프롤레타리아의 강령이 아니다. 『공산당 선언』 이래로 혁명가들이 주창한 프롤레타리아 강령은 노동자 권력과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구호로 요약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모든 경우에 국가권력을 위한 투쟁을 제기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의 당면 전술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혁명적 위기 상황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항상 그리고 모든 경우에 근본적 강령은 같다. 즉, 자본주의의 타도와 노동자권력 그리고 사회주의인 것이다. 이 강령은 현대 사회 계급 갈등의 기초를 표현하고 사회 문제들은 오직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고 사회주의는 오직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권력 장악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하다는 주의자의 이해를 집약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전위인 혁명정당의 임무는 항상, 이 근본 강령을 온전히 하고 전면에 내세우며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강령 속에서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독립은 혁명정당으로 표현되며, 혁명정당은 프롤레타리아의 독립된 역사적 운명을 실현한다.

    프롤레타리아에게, 그 정당을 통해 자신의 독립된 강령을 포기하는 것은 계급으로서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인민전선의 의미이다. 인민전선 속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적 독립을 포기하고 자신의 계급적 목표를 버리는 것이다. 주의가 가르치듯 그 자신의 이해를 실현할 바로 그 목표 말이다. 인민전선 강령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사회 집단의 목표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오직 자본주의의 전복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가 실현될 수 있다고 역사가 가르치는 바로 그 때에 자본주의 방어라는 목표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질서를 가장 편안하게 보존하기 위한 중간계급의 방법론에 굴종하는 것이다. 인민전선은 그리하여, 온전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프롤레타리아적이고 반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민전선은 반드시 그러하다. 인민전선의 수립은, 정의 그대로, 노동계급 정당과 비노동계급 정당 사이의 공통강령에 대한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비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자신의 존재에서 벗어나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 되지 않는 한, 프롤레타리아 강령 즉,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에 동의할 수 없다. 만약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거기엔 인민전선을 위한 기초가 사라지고 오직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단결만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민전선은 항상 프롤레타리아 강령의 포기이고 비프롤레타리아 이해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굴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민전선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뿐이다. 1936년 12월 4일 중앙위원회 보고에서, 얼 브라우더[(1891~1973)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까지 미국공산당 총서기]는 이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의 사회주의 강령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것이 될 그들 자신의 강령에 기초하여 단결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들[다수의 ‘인민’]을 조직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버넘의 강조]”

     

    3

    인민전선 정당화를 위한 이론적 기초를 찾으려는 코민테른 옹호자들은 지금의 역사적 상황을 반(反맑스주의적으로 분석한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파시즘, 전쟁, 프롤레타리아의 책무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들에서 반드시 주의를 오염시킨다.

    이전 장에서 다루었던 디미트로프-마누일스키의 분석과 비교하기 위해, 지금 시기에 대한 주의의 분석을 간단히 요약해 보도록 하자.

    맑스주의는 항상 모든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 문제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주의에 따르면, 현대 사회 즉,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모순과 투쟁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전복되고 부르주아지가 패배하여 계급으로서 사라질 때까지, 이 모순은 반드시 지속되고 점점 더 깊어진다. 현대 사회의 두 기초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역사적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그리하여 독립된 정치 강령을 제출할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부르주아지의 강령은 자본주의 질서의 방어이고, 프롤레타리아의 강령은 그것을 전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 계급들은 항상 기본 모순의 한쪽이나 다른 한쪽을 지지하게 된다.

    이러한 주의 기본 원칙들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코민테른이 세계를 ‘전쟁 도발자’와 ‘평화 애호자’로 나누고, 두 적대 진영은 ‘민주주의’와 ‘파시즘’이라고 선언하며,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문제가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의와 무관한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방어 강령을 선전하는 것은 단지 부르주아 사상 가운데 하나를 노동계급 진영 안으로 불어넣는 것이다.

    맑스주의가 가르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위대한 진보적 시기를 거쳤다. 봉건 사회의 질곡을 깨뜨리고 현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과 통신을 혁명적으로 일깨우고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킬 물질적 기초를 놓은 계급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건설자인 부르주아지이다. 그 진보적 시기 동안에도, 자본주의는 날카롭고 맹렬한 모순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파괴적 경제 위기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 각각의 위기 이후에 자본주의는 더 강해지고 새로운 높이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 제국주의로 발전된 자본주의는 일반적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 체제는 자기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있다. 한때 진보적인 요소였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창조한 것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순과 위기는 배가 되었다. 각각의 위기 이후에 자본주의는 더 강해지지 않고 약해진다. 영구적 실업, 불안정, 기아, 대중적 불만은 점점 심해진다. 거대한 사회 격변은 증가하고 규모가 더 커지고 더 격렬해진다. 유례없는 규모로 거대해진, 전쟁과 혁명은 다음의 새로운 분출 이전까지 잠잠하게 만드는 유일한 일반 법칙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자본주의 질서의 일반적 쇠퇴 속에서, 국제적 차원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은 유일한 해결책이다. 문명이 무참하게 파괴되지 않는다면, 점증하는 쇠퇴를 막을 대안으로 이것 밖에 다른 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주의 가르침에 따르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며, 바로 그것을 통해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독재를 행사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은 자본주의의 진보적 국면에서 나타나는 부르주아 독재의 ‘보통’ 형태이다. 그러나 주의는 자본주의 다른 형태에서처럼 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반대한다. 왜냐하면 주의는 자본주의 일반과 부르주아 통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의 전복과 부르주아의 패배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부르주아지는 깊어지는 사회 갈등을 의회 민주주의라는 기본 질서 안에 가두어두기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는다. 계급통치의 수단으로 민주주의는 너무 어쭙잖고, 서투르고, 느리며 비효율적이고 미덥지 않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지는 중간계급의 불만을 가짜 급진주의 선동으로 조종하는 방식으로, 파시즘이라는 강철 군화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파시즘은 누구의 음모도 아니다. 어느 특별한 사악한 의지나 잘못된 의도로 인한 것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파시즘 또는 파시스트 형태의 정부는, 온전히 평범한 발전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인 의회주의가 (반드시 일반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자본주의의 진보적 국면에서 보통의 기제인 것처럼, (반드시 일반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자본주의 질서가 쇠퇴하고 해체되는 시기에 자본주의 질서를 위한 보통의 기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근본적인 사회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의가 그러하듯, 사회 문제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그 반대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파시즘은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시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결과물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시즘의 준비이고 그 전조이다.

    전쟁 문제에도 비슷한 분석이 적용된다. 제국주의 전쟁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모순으로 인한 것이다. 값싼 원료와 시장과 자본 수출의 기회를 위해 강제되는 모든 자본주의 세력들로 인한 것이다. 이 요인들은 파시스트 국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작동한다. 파시즘은, 비록 그것이 전쟁을 촉진하기는 하지만, 전쟁의 원인은 아니다. 전쟁과 파시즘은 모두 자본주의의 결과물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이나 전쟁을 향한 움직임은 즉각 파시즘을 낳는 요인이 된다. 전쟁에 직면하거나 직면하게 될 국가는 그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전체주의 국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파시즘과 전쟁은 오직 자본주의의 전복을 통해서만 저지할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보존하기 위한 인민전선이나, 그러한 생각에 기초한 모든 전략은, 전쟁과 파시즘에 대항한 투쟁에서 무용지물이며 오히려 그것들을 필연적으로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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