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일인데 당시 나와 같은 학원에서 삼수를 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등치가 엄청 컸다. 나보다 더 크고 살이 쪘는데..대략 185에 100킬로는 넘었고 살짝 마동석 필이 나는 애였다.
안경으로 공격성을 가렸지만 그래서 파워가 있는 애였고
인사를 하다가 물어보니 자신은 진*고를 나왔고 농사를 짓고 싶지 않아 아무 대학이든 원서를 넣겠다고 했다.
그때 수능이라는 제도가 도입된 첫해였는데 만점이 200점이었다..나중에 점점 친해지면서 점수를 물어보니 대략 80-85점 정도 맞는다고 하더라.
80점이면 감이 안 오겠지만
당시에 지방사립대학이던 청주대학교..여기 법학과 컷이 대략 125점 정도였고
충북대 법학과가 대략 140점 정도 컷이었다.
그러니까 인서울하려면 대략 150점대는 맞아야하는 것ㄱ이고
80점이면 솔직히 영포자 수포자였고 국어와 사회에서만 조금 맞는다는 얘기인데
한마디로 공부와는 담쌓은 아이라는 뜻이였다. 그가 나온 진*고는 원래 꼴통들이 가는 학교로 유명해서 자갈고교, 벽돌고교 등으로 불리웠는데
거기서 1등도 아니고 중간쯤 하는 애였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근데 얘가 좀 특이한 기술이 있었는데 컴퓨터를 잘 만진다는 거였다..당시만 해도 컴퓨터 다루는 기술은 고급기술이라서(조립이나 a/s등)
나름 뭔가 엣지가 있어보였는데
우리는 주로 컴퓨터에 대한 얘기, 당시에 갓 나왔던 쌍용의 '무쏘' 얘기 등등을 나누곤 했는데
가만 보면 전형적인 이과생이었다..물론 수학영어는 못하는..
암튼 원서전형철이 왔는데 물론 얘가 갈 곳이 있을리가 없었다..
지방사립 가려고 해도 120점 맞아야 하는데 80점 맞고 갈 곳이 있을리 만무하잖나..무슨 요즘처럼 농어촌특례라든지 그런 게 있는 시절도 아니고.
당시 얘가 갈 수 있는 곳은 충청실전(전문대)이라고 해서
여기가 바로 배우 유해진이 들어갔던 곳인데(결국 유해진은 공부와 담 쌓았다는 뜻이지)
여기는 웬만하면 받아주는 곳으로 청주에서 어디도 갈 곳이 없는데 대학을 그래도 꼭 가야겠으면 가는 학교였다..
내가 나온 청주시내 고교의 경우 대략 55명 중에서 대략 50등 정도하면 가는..
암튼 얘는 여기를 가려고 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입시분석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500페이지 정도 되는 진학사의 입시자료책이 있었는데
나는 고3교실에서 어쩌다 굴러다니는 이 책을 구해서 자세히 읽어보곤 했는데(당시만 해도 읽을 거리가 부족했다..인터넷 있었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책)
내가 확인한 게 충북대학교의 경우 몇몇 학과는 일단 경쟁률이 매우 낮고 그나마 짝수해와 홀수해 경쟁률이 상당히 들쭉날쭉인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나마 메이저인 경영학과 같은 곳은 보통 3:1 정도의 경쟁률인데
경제학과는 보통 홀수해 1.3:1 짝수해 2:1 대략 이런 식이었다.
내가 분석해본 바에 의하면 그랬다.
첫째 경영학과는 그나마 잘 팔리는 학과인데 경제학과는 덜 팔린다. 그런데 커트라인은 큰 차이가 없다.(보통 경영이 경제보다 2-3점 높음)
둘째 짝수해와 홀수해 경쟁률 차이가 꽤 나는데 이건 홀수해 경쟁률이 1.3:1 정도이니 짝수해에 시험보는 애들은 전년도 경쟁률만 보고 경쟁률이 낮다고 원서를 집어넣으면서 경쟁률이 상승하고
반면에 짝수해 경쟁률이 2:1 정도 되니 그걸 보고 겁먹은 애들인 원서를 넣지 않는 결과 다시 경쟁률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사범대의 경우에도 경쟁률이 매우 낮았다. 알지 모르겠으나 충북대가 지거국인데 사범대는 컷이 매우 높았다. 문과 기준으로 대략 중경외시? 정도 컷이 나왔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선생을 하려는 애들은 항상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해 충북대학교 컴퓨터교육과가 신설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이런 이론을 추출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사대는 컷은 높고 경쟁률은 낮았다.
컴퓨터 교육과는 첫해이니 입결추측이 불가능하고 어쩌면 막차로 들어올 1-2명 정도는 매우 낮은 점수로도 입학이 가능할 것이다..
라는 이론에 의거..나는 걔에게 강력하게 컴퓨터교육과를 권했다. (컴 만지기 좋아하는 애니까)
당시 컴퓨터교육과는 신설학과였기에 컷은 알 수 없었지만 각종 진학관련 회사에서는 대략 145-150점대 정도를 예측하고 있었는데..
(왜냐면 수학교육과 155 과학교육 150 정도니까 대략 그 정도 컷으로 예상)
얘 점수인 80점으로는 정말 까마득한 점수였다..솔직히 환생해도 나오기 힘든 점수임..더구나 얘는 삼수고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상황..입학하지 못하면 바로 말이다.
어차피 전문대는 전형일자가 달랐기에 내 설득 끝에 얘는 컴교로 원서질을 했고 아니나 다를까..따악 붙어버렸네..이거..
아마 20명 모집에 22명인가 지원해서 1.1;1이었을 것이다. 즉 아마 얘가 꼴찌였을 것으로 예측되니 3명은 80점 수준으로 배짱지원을 한 셈이고
그게 먹힌 것이다..
ㅋㅋ
참 집안의 경사 아니겠나? 청주대학교(지방사립)만 들어가도 집안의 경사인데 충북대학교에 따악 붙었으니
한마디로 세종대나 숭실대 갈 정도의 실력으로 연대 고대에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는..
더구나 얘가 좋아하는 컴퓨터..
얘가 들어가보니 나에게 하는 소리가..
자기만큼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애가 한 명도 없고
신입생환영회 때 컴퓨터 관련 썰을 푸니까 동기 애들이 무슨 하느님 보듯이 하고
삼수생이고 하니 과대표 어떠세요? 그래서 그냥 일사천리로 과대표까지 했다고 하더라..
물론 진*고 나온 과거는 확실하게 세탁을 하고 말이다..
그 해 다음해 내가 걔네 집 근처에서 등산을 하고 어쩌다 버스를 놓쳐서 결국 걔네 집에서 하룻밤 잤는데
아주 그 부모님이 깍듯이 대하고 대접하는게 정말로 생명의 은인 대하듯 하더라.
사실 그때 내가 걔네 집에서 무슨 이상한 전집류의 책을 봤는데 딱 봐도 질이 떨어지고 조악한 게 같잖아 보여서 누가 이런 책을 샀냐고 했더니
충북대에 가서 신입생답게 어리버리하고 있으니
선배라고 하는 애가 와서 대학교에서 교양이 있어야 하니 이런저런 책을 봐야한다고 해서 전집류를 구매한 것이었다..당시에는 이런 사기가 꽤 많았다.
사실 나도 이런 사기를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법적인 부분을 좀 알아봤는데 2주내에 항변권을 구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얘는 그냥 인생 수업한 셈 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결국 내가 소비자보호센터인가 YWCA인가에 대동하고 가서 결국 돈을 되돌려받았다.
18만원인가 그랬는데 당시 컴퓨터교육과 등록금이 60만원 정도 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최소 80만원 정도 되는 돈을 돌려받은 셈.
이게 그 후 몇 년 후에 반복되는데
내 기억으로는 97인거 같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동생이 있었는데
내가 그 집에서 신세를 많이 졌기에 나와도 얘기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얘는 실업계(청주상고)를 갔는데 역시 영어 수학포기자였고
원래는 취업을 목표로 갔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면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수능을 봤는데..갈 데가 없어서 실패하고
재수를 하는 타이밍..
근데 점수를 물어보니 대략 아까 말한 컴교를 간 녀석과 점수가 거의 같더라.
왜냐? 영어포기 수학포기하고 국어와 사회만 좀 깔짝거리면 딱 그 점수가 나오거든..
역시나 이놈도 전문대를 가겠다고 작정하고 있길래
내가 또다시 입시전문서적을 뒤집어까면서 분석해보니..
충북대학교 경제학과는 갈 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딱 오더라는 거다..
그 전해 경쟁률이 이상하게 높았고 짝수해 홀수해 경쟁률 오르내림은 비슷했기에
이 해에도 경쟁률이 대략 1.2:1 정도 예상되었고 잘하면 빵꾸로 붙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력하게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응시를 권유했고
아! 씨발!
얘도 되어버렸네..그려..
물론 꼴찌 입학이다.
근데 얘가 문학회(사실 걔가 여기 후배라서 내가 잘 암)를 나와서 상고출신치고는 상당히 썰을 잘 풀고
어디가서 꿀리지를 않는 애다.
충북대 경제학과만 나와도 당시에는 어디든 취업은 되는 때였는데
대학에 가더니 공부에 재미를 붙여서 열심히 하고
그러다가 3학년때에 국민윤리교육과로 편입을 하더라..
아마 잘은 모르겠는데 같은 학교내에서도 편입이 가능한 모양이더라고..
물론 학점이 매우 좋으니 가능했겠지? 국민윤리교육과는 사실 사범대 꼬래비긴 해도 경제학과보다는 꽤 높은 학과니까..
결국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은 거였다..
국민윤리교육과에 편입하고 뭐 군대도 가고..대략 2004년쯤 졸업했던 거 같은데 열심히 한다는 게 눈에 딱 보였다.
그랬는데 임용시험 탈락!
아, 안타깝더라고..그래서 서산인가에 가서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재수를 하더라.
사실 임용시험은 지금도 그렇지만 만만한 시험이 아니라서 기간제 하면서 패스하기가 어려운데
집안은 어렵고 도움받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고..
그러다니 임용재수에서 딱 합격!
지금은 학교선생이다. 학교에서도 꽤 평이 좋았는지 어쨌건 작년 추석 때 보니까 세종시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더라.
뭐 오랜 시간 얘기할 겨를이 없었는데 세종시 집값이 오를 거라는 소리만 하더라..하긴 놈도 나이가 이제 40이 다 되어가니..
근데 작년에 진짜 다락같이 오른 거 아냐? 그 놈 말 믿고 세종시 집 하나 사놨으면 2억은 버는 건데..아쉽다. 이제는 대출규제가 되어서 최소 현금 3억은 있어야 작은 아파트 하나라도 산다고 하더라.
암튼 걔가 나온 고등학교에서는 걔는 거의 전설이다..
그리고 그 전설이 이뤄지는 데에는 입시패턴분석전문가였던 나의 수고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얘들 만나서 무슨 나 때문에 니가 좋은 대학 들어갔네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는 익명의 포스트에서는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ㅋㅋ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게 일단 사람들에게 잘하라는 것이다.
tit for tat이라는 게 있는데 당한만큼 돌려준다는 뜻인데
저 tit for tat이 사회생활의 기본법칙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거는 일단 처음에 호의를 베풀라는 거다.
호의를 베풀었는데 원수로 갚던가 내가 먼저 미소를 띄고 도움을 주겠다고 했는데 차갑게 거절하는 경우에는 나도 tit for tat에 의거해서
그냥 깡 무시하고 만다.
저 둘은 내가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는 호의를 베풀어 패턴분석서비스를 제공한 것이고
사실 첫번째 애의 경우는 소식이 끊겨서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고 두번째 케이스는 종종 연락을 하는데
어쨌건 과거 일은 과거 일이고 그 때 이후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
'노자'에 보면 공수신퇴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야한다는 것이다.
한나라가 최초로 중원통일을 했을 때 공을 세워서 왕으로 임명된 한신은 결국 한고조(유방)의 경계심을 사서 죽음을 면치 못했고
반면에 지식컨설턴트였던 장량은 통일을 이루자마자 원래 꿈이던 신선이 되겠다고 산으로 들어가서 천수를 누렸고 유방도 그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은혜를 베풀었으면 잊어버려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이 게시판에서도 또라이헬조선인가처럼 시비를 거는 애들이 세상에 좋은 일이 올 수 있겠나?
익명의 게시판이지만 글과 댓글이 오가면서 에너지가 유통되는 것인데 마음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쳐도 첫번째 보는 사람에게 개소리를 늘어놓으면
좋은 일이 있을리가 없지 아니한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인터넷공간에서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약간의 친절을 베풀고 고운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의외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체험을 나는 여러 번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