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볼커는 1979년 10월 6일에 예의 그 유명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박통은 10월 26일에 뒈진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 같은 그 두 사건은 실제로는 인과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볼커가 취임하기 전에도 미국의 기준금리는 11.5프로로 크게 올라있었다는 것이다.

볼커는 1979년 8월부터 연준 의장에 취임했지만 G.밀러가 연준 의장이던 1978년 4월부터 미국은 이미 금리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오늘날 파월이 원화를 씹창낸 그 짓을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자행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엔달러 환율은 1979년 1월에 달러당 197.76엔이던 것이 1979년 12월에는 240.37엔으로 1979년 한해에만 20프로 이상 떡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박통이 오일 쇼크 때에 단행한 고정환율제로 말미암아서 한국의 원화 환율은 변동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1979년에도 원/달러 환율은 조까라 마이신 1달라에 484원이었던 것이다. 1979년의 볼커의 정책은 인플레이션도 잡겠다는 것이지만 각국 통화에 대한 달러의 위상을 높이고 미제국의 슈프리머시를 대대적으로 강화할 목적도 있었지만 정작 헬조센의 원화는 조까라 마이신 고정환율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 헬조센 경제에 대해서 미국이 쓸 카드도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 한국경제는 수입개방을 전혀 하지 않은 체제여서 애초에 달러지출을 통한 수입시장경제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만약에 정부가 원한다면 심지어 양담배 금지 따위의 조치를 통해서 더욱 허리띠를 졸라멜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수출흑자는 여전해서 고정환율제는 유지해서는 원화가치가 고평가된다고 한들 그에 따른 달러 유동성 부담은 거의 없는 상태로 미국이 장난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냉전 시대로써 미국이 대놓고 한국에 대해서 무역제제 따위를 했다가는 아시아에 어떠한 격랑이 몰아칠지도 예측불허였던 상황이었고 말이다.
하여간 당시에 한국은 조까라 마이신 미국의 말을 안 듣던 꼴이 된 것이다. 미국은 아마도 대내외의 채널을 통해서 박정희를 압박했을테지만 원화를 절하시켜줘봤자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번 돈을 스스로 깎는 꼬라지 밖에 안된다는 직관적인 사실을 아무리 무식한 군바리라도 깨달았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과 대치중인 국가 아닌가? 그냥 조까고 뭐라는거야 이 개새끼들이라고 무시했던 것으로 보여지고 그래서 미국이 골치덩어리인 박정희를 죽인 것이다.
정작 미국 개새끼들은 폴커가 미국의 경기를 죽였다고 후일에는 평가하기도 했었고, 정작 일본의 떨어진 엔화를 다시 높여서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여야 된다는 개짓을 80년대에는 시전했으니까 아주 웃긴 오락가락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원달라 환율을 고정환율로 묶은 것은 오히려 미국에도 이득이었던 셈이 된 것이다. 볼커의 금리 인상으로 약세가 된 엔화를 프라자 합의로 다시 높였던 개지랄 참극을 벌였던 미국의 오락가락을 고려하면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폴 볼커의 금리 인상은 일본을 겨냥한 측면이 매우 강했다는 것이다. 달러가 엔화에 대해서 강세가 되는 상황을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볼커가 취임하기 전해인 1978년에 이미 미국은 상당한 금리를 올렸지만 엔화는 오히려 일본 경제의 수출 호조로 말미암아서 1978년 10월에는 일시적으로 달러당 175엔까지 엔화 강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작 나중에 프라자합의에서는 엔화강세를 강요할 거면서 1978년에는 되려 엔화의 위상이 달라보다 높아지는 것을 경계해서 볼커 개새끼가 금리를 더욱 높인 것이다.
프라자합의로 결과적으로 미국은 엔화가치를 달러당 240엔에서 120엔으로 무려 두배로 절상해서는 일본의 수출 호조를 꺾으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볼커의 고금리가 아니었으면 달라당 240엔이 될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작 프라자합의에서는 엔화 좀 다시 강세로 만들자고 할 것이면서 정작 한국이 고정환율제를 시행한다고서는 박정희나 죽였다가 진실인 것이다.
그리고 프라자합의로도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무역적자는 어차피 해소되지 않았따는게 함정. 프라자 합의로 엔화만 지나치가 강세가 되어서는 일본국의 국가경쟁력만 약화되었지만, 정작 풍선효과로 일본의 경쟁력은 고스란히 헬조센과 대만의 수출 경쟁력으로 이전되었을 뿐이고,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았다. 다만 헬조센의 환율은 병신이 되었고, MB노믹스라는 개지랄병을 맞고 나서부터는 원화만 약세가 되어서는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원화와 엔화는 묘하게 커플링 되어 있고, 달러당 1354원과 157엔을 기록중이다. 만약에 올해의 반도체 특수가 아니었다면 달라당 1550원과 157엔으로 앞의 두자리 숫자는 15로 비슷하게 갔을 것이다.
물론 그 조차도 2015년만 해도 달라당 3.04리라이다가 지금은 달라당 48.94리라로 무려 16배가 폭락한 튀르키예 리라에 비하면 선방한게 요지랄이라지만 말이다.
2026년에는 헬조센의 원화가 반도체 특수를 통해서 조금 반등해서는 1800원 간다고 그 지랄하다가 1300대로 들어오면서 헬조센의 지옥불반도 온도가 조금은 착해졌다고 칸다. 이 앞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전대갈이 진짜 더러운 매국노이고, 박정희는 애국자였던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달러당 484원이 오늘날까지 유지되었으면 오늘날 헬조센의 1인당 GDP는 10만불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프라자 합의가 없었고 등등의 나비효과가 발생했다면 그만큼 성장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3만 7천불은 돌파하지 않았을까?
여하튼 1970년대에는 전세계의 화폐를 후려치려고 했던 그 나라가 1980년대에는 되려 각국 화폐가 지나치게 약하다고 지랄병을 하다가 나중에는 헬조센이 환율조작국이라느니 개지랄병을 했다는 것이다.
미제국 개새끼들의 환율 물타기는 참으로 알아주는 더러운 개짓인 것이다. 그런데 또 지금 연준 개새끼들이 금리 쳐 올린다고 지랄병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뉴욕에 핵폭탄을 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깥아서 살긋나? 이미 서울의 물가는 뉴욕만큼 비싼데 말이다. 헬조센의 저출산은 모두 미국 때문이다. 미국 때문에 세마 병신새끼 결혼도 못하고 딸잡치고 사는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