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사이트 생기기 사작할때부터 눈팅을 했지만 가입은 얼마전에, 글은 지금 처음 써보네요. 제 인생사를 들려드릴께요. 제가 한글로 작문을 해본적이 없어서 말투가 매우 이상해도 이해를 해주세요.
솔직히 멀해서 저는 태어날때부터 한 동수저정도 됐습니다. 여유는 있었지만 절때 부유한편은 아니였습니다. 옛날 15년전에 강남 땅값이 지금의 절반이하였을때 집을사둬서 지금 가격이 어마어마하는 집에서 살고있습니다. 영어 유치원도 비싼거 엄청다니고 좋은거 다먹으면서 컸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2학년을 케나다에서 유학생으로 살았습니다. 영어 유치원도 다니고 미취학 아동이 받을수있는 교육은 다받아서 케나다에들에 비해서 성적이 뛰어났습니다. 심지어 영어, 영어받아쓰기도 제가 가장 잘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한국에 돌아와보니 교실크기는 절반 이하이고, 애들은 2배고, 유교 탈레반 선생들이 많아서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문화권 자체가 한국 문화권이 아니였거든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다행히 담임 선생이 좋아서 적응을 했고 성적은 최상위권으로 진입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할때애는 정말 성적표가 흠이 없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전에 어머니가 중학교 수학은 어렵다 라고 충고를 해주셔서 수학은 2배이상 공부하고 중간고사를 봤습니다. 비극은 요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시험 평균이 70점이 나온겁니다. 저는 왜 70이 나온건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기말고사 준비를 더욱 열심히 하였지만 기말은 평균이 55점이 나왔습니다. 그뒤로 중학교는 포기하고 희망없이 살아왔습니다. 우리 아빠는 헬조선 꼰대의 끝판왕입니다. 제가 시험을 개같이 맞으니 맨날 구박하고 혼났습니다. 케나다에 공부잘하라고 보냈는데 왜이리 못하냐 케나다 보내는데 2억이 들었다... 맨날 혼났습니다. 저는 매우 조용하고 착한아이였습니다. 사춘기가 왔을때도 그누구도 사춘기가 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제가 착하고 성격에 변화가 없으니까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가 사춘기가 안왔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3학년때 정치에 관심이 생기고 사회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핬습니다. 한국 미국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뒤에 마침내 제성적이 나쁜지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였습니다. 같은 수업을 받으면 제가 월등히 잘했습니다. 제가 중1때 토플 학원을 잠깐 다녔을때 같이 수업하는 대학생들보다도 실력이 빨리 증가했습니다. 드디어 알았습니다. 제가 공부를 못했던 이유는 바로 제가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이후로 정기적으로 학원을 다닌적이 없습니다. 강남애들은 학원에서 다배우니까 선생들이 칠판에 몇분간 낙서질을 하고 나머지 30분은 애들이랑 떠들고, 제가 배울수가 없었습니다. 가르치질 않는데 어떻해 배우나요? 물론 존경할만한 선생이 한두명씩 있었죠. 존경할만한 선생님이 과학선생이였던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때. 그때 제 과학성적이 30점때였는데 그선생이 가르칠때는 성적이 80점때로 올라갔습니다. 그선생이 없어진뒤에는 40점으로 폭락했습니다. 그니까 짧게 말해서 강남에들은 학원을 다니니까 수업을 안듣고 선생도 수업을 제대로 안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에서는 시험평균이 너무 높으면 인위적으로 줄이라고합니다. 시험을 더 어렵게 내라는거죠. 선생이 좆같고 시험이 어려우니 당연히 저는 시험을 못보겠죠. 오히려 강북에 살았으면 제가 공부를 잘했을겁니다. 강북은 학생들이 학원을 많이 안가는걸 아니까 수업을 성실하게 합니다. 애들 수준도 낮으니 시험도 쉽습니다. 이제 이걸 깨달은후 한국에서 살면 희망이 없다는 확신이 생겨서 미국으로 학교를 갈 준비를 하게됍니다. 아빠가 꼰대라서 설득하는게 피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는 찬성하셨습니다. 엄마하고 아빠가 별거중이시고 우리거 크면 이혼한다 하셨습니다. 엄마가 아빠를 설득하는것이 불가능해서 제가 설득을 했습니다. 한국에대한이야기 헬조선인이유 제가 공부를 못한이유 옛날에는 공부를 잘했었다 등등.. 설득하는데 꼬벅 1년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빠가 허락만한거지 학비를 대주겠다라고 한적이없습니다.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아빠랑 인연을 완전히 끝는한이 있더라도 무저건 미국에 갈겁니다.
아빠가 미국을 가더라도 9월까지 학교를 다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학기가 9월에 시작하거든요. 고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시설, 학생들의 상태, 선생들이 더 않좋았습니다. 수학선생은 5분간 칠판에 공식몇게 써놓고 애들이랑 첫사랑 이야기를하고 자기는 대학교때 성에대힌 과학을 배웠다면서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애들은 너무가 미개했습니다. 원시인보다도 더 미개한 수준이였습니다.재대로 수업하는 선생들한테 대들고 벌점줄려고하명 지랄하고 수업이 난장판입니다. 침팬지 우리보다 심한 수준이였습니다. 요기가 강남이고 이아이들이 이나라를 이끌어갈 사람들이라는게 믿겨지지가 않았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있는 3개월동안 공황장애하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학비고민하고 지금 이순간에 지옥같음 학교에 있는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다행이 아빠가 학비룰 안대주면 도와주겠다라고 하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 이제 학비문제는 해결이 됐습니다. 지금이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5월 끝나자마자 자퇴해서 정신을 정화하고 책을 읽으면서 천천히 미국갈 준비를 할겁니다.
미래에 제 계획은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교를 간뒤에 미국에서 계속 정착하는게 목표입니다. 가면 대학준비하고 공부밖에 안할겁니다. 미국에 간다는 생각만해도 눈물이 줄줄 흐르네요. 여러분도 빨리 탈조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미국에가서 적응을 하면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운영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몇년간 요기올라온 글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여러분. 핼추 부탁드립니다.
우선 탈조선을 축하합니다.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온 경험이 있으면 지금 학생이라도 센국의 부조리를 많이 체감 할것입니다. 센국은 빈부격차 극심, 세대 간 갈등, 센숭 둘만 모여도 갑을, 위아래 나누려는 서열의식, 지금 상황에서는 결코 국민통합, 희망있는 미래는 절대로 요원하고 지금 인격체인 센숭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악연의 연결고리, 불행의 딜레마는 센국에 있는한 피할수 없을 것입니다. 나이 드신 분도 미국에 가려고 노력하는 시대에 일찍 미국 가서 미국 고등,대학 인맥 만들고 헤쳐 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