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John
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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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버러지.jpg

동요버러지새끼덜은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에 박살나고도 기여히 민란을 일으켜서는 동녕부로 인정받았는데, 동녕부의 수도가 하필 그 김정은이 버러지새끼가 사는 그 곳이었다고 칸다.

 

본인의 삼한정통론에 따르면 남헬쥬신 새끼덜은 본디 삼한국의 한국 새끼덜이고, 북헬쥬신 새끼덜 중에서도 평안도 새끼덜은 애초에 고구려가 아닌 동녕부의 거란족튀기새끼덜인 것이다.

고구려는 거란새끼덜과는 조금 종자가 다른 것들이고. 물론 많이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중국사의 치부인 것이다. 애초에 북경은 연운16주 시절에 거란족들이 세운 도시이지만 나중에 여진족 새끼덜에게 슈킹당하고, 그걸 또 몽골새끼덜이 슈킹했던 것이다. 따라서 거란족 새끼덜은 실상은 북경이라는 도시의 선주민들인 것이다.

북경이라는 곳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고 쫓아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털린 것들이 토낀 곳이 하필이면 헬쥬신의 평안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원나라 놈들은 지덜이 북경의 원주민들을 턴 것이 조금은 미안해서는 평양을 수도로 하는 동녕부에서 그들이 자치를 할 수 있는 것을 허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쿠빌라이칸의 부마집안임을 자처하던 공민왕이라는 새끼의 눈에는 쳐 먹고 싶은 맛집 영토였고, 그래서 동녕부를 쳐 공격했는데, 정사에서는 그렇게 적지 않았지만 때마침 몽골의 사할린 공략집단들이 함경도의 쌍성총관부에서 여몽연합군의 열도의 간사이와 큐슈 공략대이다가 일이 없어진 삼별초마냥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들의 수장이 이성계였고, 함경도의 사할린 공략집단들은 군량과 치중을 모두 고려에게 의존하고 있어서 고려조새끼덜을 삥뜯지 않으면 당장 군대가 굶어 뒈지는 상황이라서 하필 때마침 바얀테무르(=공민왕)새끼가 동녕부새끼덜과 마찰을 일으키던 그 때에 뒷치기를 시전해서는 개성을 슈킹하고 군사적으로 슈킹했다고 본다.

 

몽골사에서 빈번한 내전을 고려하면 몽골의 봉건집단끼리는 같은 계열이 아니면 애초에 종사도 하지 않던 것들인데, 이를테면 주치칸국 밑에 있던 놈이 차가타이 칸국에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희대의 으리 없는 놈으로 찍혀서는 어중이떠중이 취급이나 받는 것이었던 것이다. 몽골의 봉건제는 그게 극심한 나라였고, 같은 신민이라도 만호가 다르면 나는 누구누구 만호 밑인 놈이고, 너는 금마 밑인 놈으로 간주되던 편가르기가 극심한 시대가 바로 몽골지대시기임을 고려하면 쌍성총관부 출신인 이성계가 충렬카칸국에 붙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겠다. 

되려 같은 원제국끼리라도 소속이 다르면 별개의 국가나 다름없던 분리주의가 강한 시절임을 고려하면 쌍성총관부 새끼덜은 충렬카칸국을 군사력으로 슈킹하고서는 공민왕 새끼도 그냥 대가리 썰어서 죽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애초에 이성계는 쌍성총관부의 합당한 지배자였던 조씨 새끼덜을 슈킹한 놈이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신빙성이 높은 것과 추측을 추리고, 일반론들을 추리자면 요따구가 되게 된다. 1점에서 5점까지 매겼다.

 

1) 연운16주의 거란인들이 북경의 실질적인 설립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축출되었고, 그에 따라서 포선만노를 따라나서는 엑소더스가 자행되었다.(솔리드한 팩트, 팩트 등급5)

 

2) 징기스칸의 집단은 대몽골제국을 이루어낸 강자지존의 법도로 금나라를 정복하고 몽골놈들의 판도를 이루었다.(=노골적인 구라, 구라 등급 5)

=>실제로는 북경의 여진족 문관집단 등이 거란족의 대규모 반란과 여진족 군대의 와해에 직면해서 징기스칸을 불러들인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여진족들은 원나라내내 북경에서의 권리를 인정받았고, 연경의 여진계 문돌이 집단은 원나라에서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에도 비록 카더라 구라지만 여진족 관료밑에서 마르코 폴로가 초기 이력을 쌓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론상으로는 징기스칸은 금의 신하였기 때문에 북경의 금나라 문돌이들이 불러들여서는 거란족 진압을 명이라고 적고 청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는 금의 유명무실해진 왕권이 땅에 떨어지면서 징기스칸의 집단이 곧 연경의 주인집단으로 선포되었다. 반면에 거란족들의 반란은 곧 몽골군대에 의해서 진압되었고, 북경과 연운 16주에서 거란족들이 싸그리 박해를 당해서 축출되어서는 민족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게 바로 현대의 평안인들의 원조이다.(뭐 이거는 본인의 견해니까 팩트 등급은 낮다고 치자)

 

3) 거란족들이 한반도로의 진입을 시도했지만 곧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의해서 완전히 박살이 났고, 곧 모두 사로잡혀서 뒈진 놈들 빼고는 노오예가 되어서는 반절은 몽골놈들에게 노예로 팔리고, 반절은 고려의 국가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나중에 최탄이라는 놈을 우두머리로 반란을 일으켜서는 고려계 지배성분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축출하고 원나라에 귀부하기를 청해서는 동녕부를 세운 것이다.

조선새끼덜이 쓴 고려사에는 이 것을 민족반란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고려계 지배성분들은 최탄의 나라에서 완전히 살상당하였고, 이후에 영원히 평안도에서 조선식 지배체제가 들어서지 않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에 최탄과 그 무리들은 모두 포선만노를 따라나섰던 자들로 보여진다.

최탄의 직분인 영리라는 것은 거란계 관노들을 통솔할 명령권을 가졌던 거란계 하급 관리자들로 보여지는 것들이고, 영리, 교위, 호랑장 요런 하급통솔집단들이 지휘체계를 전복했다는 것도 특징적인 것으로 민족주의가 깔려있었다고 보여진다.

 

최탄은 서경유수 최연(崔年), 판관(判官) 유찬(柳粲), 사록(司錄) 조영불(曹英紱), 용주수(龍州守) 유희량(庾希亮), 영주수(靈州守) 목덕창(睦德昌), 철주수(鐵州守) 김정화(金鼎和), 선주수(宣州守) 김의(金義), 자주수(慈州守) 김윤(金潤)을 죽였고, 나머지 여러 성의 관원과 인리들도 모조리 주살했다.

 

고려사의 일부분만은 받아들이자면 최탄은 고려계의 평안도내의 지휘서열에 있는 거의 모든 자들을 죽였고, 일말의 상류층 중심의 연속성을 가진 정권이 아닌 완전히 상이한 지배집단이 평안도에 들어선 것이다. 이 것은 민족주의적인 것이고, 따라서 고려계 통치집단은 관원에서 인리에 이르는 가장 말단까지 싸그리 숙청되었다. 여러모로 거란족들의 민족적인 반란이 일어나서는 전복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그에 따라서 조선시대 내내 평안도의 통치집단은 삼한지역과 상이한 차이를 가졌던 것이다.

 

게다가 어떠한 이유에선지 원나라의 사정에 밝았고, 원에 귀부하면 된다는 것을 실행하였다. (본인의 비정이지만 팩트 1점이라고 치자)

 

4)최탄과 그 무리들은 포선만노를 따라나섰던 무리들의 자손들인가?(가능성 높음. 3점)

 

5)평안도 집단들이 조선조의 통치를 받아들인 이유는 공민왕이 정복을 해서가 아니라 홍건적의 공격으로부터 고려조가 구원군을 보내서는 평안도 지역으로 보냈기 때문에 남쪽 정권의 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소싯적 국사 교과서에 쳐 나오던 공민왕의 자주 수복이라는 기사는 아주 웃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공민왕은 단지 동녕부는 마 거란족 새끼들은 만주로 꺼지라는 의미의 주청을 원에 한 것이고, 그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사서에는 쌍성총관부라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 원사에는 등장하지 않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에만 등장한다. 여말선초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원래 이름은 따로 있는데 조선 측에서 일부러 '쌍성총관부'라는 이름으로 기재한 듯하다.

 

쌍성총관부라는 것은 속지적인 통치기구라기 보다는 사할린에 군대를 파병하기 위한 임시적 기구였던 것으로 보여지고, 이성계의 증조부라는 이행리라는 놈은 원의 일본 원정에 참전했다고 조선새끼덜은 엉터리로 비정했지만 실제로는 이행리라는 놈은 원의 사할린 원정에 참전했을 것이다.

기록이 오락가락 하는 이유는 함경도 새끼덜이 당시만 해도 기록문명조차도 아닌 미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것들이 기록문명이 된 것이 바로 조선왕조이다.

 

게다가 이행리라는 놈이 1280년대에 사할린 원정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없는 것이다. 당시에는 나얀의 대반란이 일어났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성계의 집단은 나얀의 반란 이후에 인스톨된 집단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이행리라는 이성계의 증조부가 1280년대에 일본에 참전했다는 것은 카더라라는 기억에 의거한 짜맞추기인 것이다.

당시에 잊혀진 전쟁이던 원의 사할린 군대의 히스토리를 완전히 망각한 증거를 가지고 대애충 짜맞춘 것이다.

 

되려 이성계의 조상은 1295년의 사할린의 키지호 전투에 참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원나라새끼덜은 전쟁을 할 때에 정복지의 피정복민들을 끌고 가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다만 그러한 군대들은 사후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아주 유명하였다. 원의 일본침략전쟁에 동원된 고려와 남송의 수군들도 관리가 안 되다가 삼별초의 난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할린 공략집단이 1295년에 아이누새끼덜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1305년에 반격을 한번 받았지만 곧 1308년에 아이누 새끼덜은 몽골에게 항복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1295년의 참전집단에게 공적과 인센티브를 제시했을 것이다.

 

이성계의 증조부가 일본 원정에 참전했다면 이성계집단에 대한 특권은 지나치게 길게 유지된 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삼별초의 난 때에 연좌되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지역도 전혀 맞지 않는다. 되려 이성계의 조부가 1295년~1308년까지 원나라에서 일련의 군공을 세웠고, 그에 따라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다고 추정하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1335년생이 이성계는 제법 중한 집안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성계의 조부가 1295년에 어떠한 식으로든 공을 세웠고, 그 것으로 말미암아서 1308년까지 혹은 그 이후에 돌아가는 상황과 맞물려서 승진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이성계의 증조부가 20대쯤에 1295년에 공적을 세우고, 1290년대생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1310년대생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1330년대생 이성계를 낳은 것이다. 

이성계의 증조부의 전성기는 대략 23살에 쏘가리로 1295년에 공훈을 세웠다고 치면 1272년생이 되고, 45세인 1310년대 중반까지 사할린의 일이 잘 풀리면서 승진도 하고 꽤나 힘이 있었을 것이고, 이성계가 태어나지 직전까지는 힘이 있던 노인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이성계의 애비와 삼촌새끼덜이 죄다 목에 힘 좀 주고 댕겼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정작 사할린 공략집단은 1308년에 아이누새끼덜이 항복을 한 이후부터 허술하게 관리되기 시작하였고, 이성계의 애비 시절에는 그래도 원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지만 이성계의 대에는 아마도 존나게 빡친 세대들이 이성계를 구심점으로 들고 일어나서는 조소생이라는 High Commander 새끼를 축출하고서는 반란을 일으켰다고 본다.

 

그러한 일반적인 관계를 고려하면 공민왕의 홍건적과의 전쟁에 반란종자에 불과한 이성계의 무리들이 참전했을 가능성은 1도 없는 것이다.

 

이성계의 이름은 홍건족의 고려에 대한 2차 침공 당시에 개경을 수복하던 세력이라고 쳐 나오는데, 실상은 군내 반란을 일으킨 이성계가 쿠빌라이칸의 외손인 공민왕 밑에서 복무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되려 정황을 보면 홍건족의 공세로 공민왕이 경상도까지 도망을 가자 이성계새끼가 개성을 낼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성계가 조소생을 쫓아내고 반란을 일으킨게 1356년이고, 1361년에 홍건적에 의해서 개성이 털리고, 공민왕 바얀테무르 새끼는 안동으로 토꼈던 것이다.

그리고 1362년에는 분명히 개성에서 지휘관 이성계의 이름이 나오는 집단이 홍건적을 포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공민왕의 북방영토수복이라는 것은 그 이후인 1369년에 이인임, 이성계로 하여금 동녕부를 정복하도록 했다는데 이게 개구라인 것이다. 이미 1359년에 동녕부 인간들은 고려놈들과 홍건적을 상대로 같이 싸우면서 동질성이 확립되고, 정치적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홍건적의 침략을 야기한 평안도 지역에서 몽골의 집단이 금방 세를 회복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인임이라는 자는 1359년에 쓰리스타 달고는 평양방어사령관이 된 놈인데 1369년에 다시 등장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스타들이 그렇게 수명이 길지는 않은게 통상적이므로 말이다.

1359년에 서경존무사로 임명되었던 이인임이 1368년에 서북면 도통사로 다시 나온다는 것은 복붙의 흔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인임은 1312년 생인데, 당시의 수명을 고려하면 1359년에 커리어 끝 찍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인 것이다. 

 

이성계 새끼는 1361년에 개성을 슈킹하고 역사까지 주작한 것이다. 정작 1365년과 66년부터 왜구의 침략이 발생했다고 칸다. 그러나 본인은 그 것을 왜구가 아니라 여느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의 인구집단과 이성계의 무리새끼덜이 쌈박질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 쫓겨난 놈들이 그렇게 대규모로 한반도로 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되려 이성계새끼가 1361년에 개성을 슈킹하고 나서 전국적인 반발집단들이 1365년에는 아주 본격적으로 출물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1361년에서 1369년까지의 역사가 모두 주작인 것이다. 공민왕이라는 놈은 1374년에 뒈졌는데 반쯤 유폐되어 있다고 혹은 이미 슈킹당한 것을 이성계 집단이 공민왕 이제 뒈졌다고 발표만 1374년에 한 것이다.

 

1361년에 이미 이성계 집단은 개성을 접수했고, 공민왕을 괴뢰로 만들던가 유폐시켰으며 그에 대한 전국적인 반발이 나오는 것들을 최무선과 최영 따위를 보내서는 군사력으로 진압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1380년의 진포해전세력과 황산대첩은 공민왕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던 왕당파 잔당그룹을 박살낸 것으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공민왕과 그의 자손들은 죄다 제명에 못 뒈졌고, 공민왕 또한 홍륜에게 살해당한 것임을 고려하면 당시의 고려인들의 그 누구라도 공민왕이 이미 괴뢰였음을 알고있었을 것이다. 1374년에 최종적으로 공민왕이 살처분 되자 1380년에 결국 공민왕 추종세력이 삼남지역에서 크게 일어났지만 싸그리 총균쇠로 이성계 집단이 박살내버린 것이다.

 

역성혁명이라는 개소리 또한 실상은 그러한 거대한 내전에 의한 정치적 단절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

 

외국과의 비교론을 펼치자면 왕정이라는 집단의 정통성은 꽤나 오래가는 편이다. 보통 천년정도는 기본으로 가는 것이다. 영국왕실 따위를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중간에 폐위나 살해등의 사건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인 명분을 통상적으로 뭐 오랑캐침략집단이나 전복으로 잡은 놈들이라고 할 지라도 전대의 명분을 유지하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천년 왕조가 되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프톨레마이오스의 클레오파트라 같은 놈들도 실제로는 미스르의 오랜 전제주의의 파라오임을 강조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3000년 파라오제는 그들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이며, 굳이 단절적인 명제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 집단은 굳이 편리한 과거집단과의 연속성을 조금 자신에게 맞는 버전으로 바꿔서는 고려조 35대 국왕이 되는 대신에 역성혁명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낸 정도전 새끼의 아갈파이팅 워딩을 빌려서는 신왕조의 1대임을 선언했던 것이다. 곧 그는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그 것은 어쩌면 애초에 총균쇠로 한반도의 모든 세력을 군사력으로 꺽고 집권한 집단의 한계였을 수 있다. 이성계는 당시에 닥치고 죽이고 또 죽였다. 황해도와 경기도 새끼덜은 1261년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새끼덜은 1280년에 싸그리 몰살을 시켰던 것이다.

애초에 이성계 집단에게 구체제의 연속성을 가졌다는 말은 그야말로 맞지 않는 옷이었을 것이다. 그 원인이 바로 왜구토벌과 홍건적의 난 당시의 공훈으로 묘사된 것들의 실상을 반영하는것이다.

 

즉 이성계새끼는 왜구를 토벌한게 아니라 한국인 공민왕 폐위 반발집단을 군사력으로 박살내고 왕이 된 것이다. 그러한 뒤에는 그들을 싸그리 사서에는 왜구의 무리였다고 대놓고 모욕하였다.

왜냐면 자신을 폐위시키려고 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아지발도 설화에 따르면 아지발도는 남원성을 딴 뒤에 광주에서 세를 불리고, 군세를 정비한 다음에 개성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 것은 왜구집단이 보여줄 수는 없는 군사적 기동인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의 똘마니새끼가 역성혁명이론을 펼친 것은 그렇게해서 집권한 악랄한 집단으로써는 도저히 구체제 왕정의 계승성을 가졌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서이고 그냥 공민왕 씨발 내가 쳐 죽이고, 불만있는 개자슥들은 내가 죄다 군사력으로 토벌하고 조까고 힘으로 왕된거라는 강자지존의 논거를 역성혁명이라고 한 것이다. 

 

다만 한 사회의 집권집단을 싸그리 쳐 죽였으니 부자새끼덜이 자원을 독점하는 폐단은 많이 줄어서는 조세와 부역의 부담이 크게 경감하고 이성계집권기에 서민들 살림살이는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른다.

그걸 가지고 존나게 왕조개창의 이득으로 선전했던 것이 정도전이라는 놈의 사상체계인 것이다.

 

하여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평양의 인구집단은 삼남새끼덜이 이성계 집단과 투쟁하다가 왕창 쪽수가 깍여나가는 와중에도 1259년과 1261년의 의 홍건적 침략을 만회사는 전후사회내에서 애새끼나 쑴풍쑴풍 쳐 낳고서는 평안지역의 통치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확립했을 것이다.

 

그러한 고로 평안도 지역에는 이조시대 내내 양반지주전호제가 자리잡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한 거란족들의 독자적 체제가 오늘날 북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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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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