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성숙도(Science Maturity Level):과학연구를 발전과정에 따라 분류하기 2013년 4월 5일
어떤 과학 발표가 구체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고 연구의 추세나 앞으로 가능한 결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이 세미나가 영감을 주고 즐거웠다고 말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 결과가 빠져 있다고 불평합니다.
이것은 취향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구체적인 가설이 있고 이를 증명하거나 기각하는 발표를 좋아합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비록 아직 분명한 정의가 확립되지 않은 분야라도, 미래에 어떤 연구들이 가능할지를 그려볼 수 있는 발표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둘 중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지는 않습니다.
과학이란 예측에서 가설을 거쳐 증명된 사실로 발전하며 모든 종류의 발표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다음 다섯 단계의 과학적 성숙도에 따른 분류(SML:Science Maturity Level)는 발표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1. 이 발표는 미래에 검증가능한 가설이나 데이터를 나오게 할 수 있는 분야, 그리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이 발표는 심지어 오늘날의 과학과 경쟁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표 역시 과학적 창의력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며 사람들을 놀라도록, 또 즐겁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2. 발표자는 검증가능한 가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자료를 얻는 방법이나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은 오늘날의 과학수준에서는 아직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 발표는 지루할수도 있지만, 학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3. 이 단계에서 발표자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모든 과학적인 방법들을 적용합니다. 가설과 데이터를 비교하고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기존의 학설을 단순히 보강하거나 또는 너무 새로운 내용이기에 아직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4. 이 단계에서는 발표자는 가설과 자료를 통해 명확한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이 연구는 학계의 뜨거운 주제이며, 곧 다른 연구자들이 이 결과를 보강하거나 반대하는 자신들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5. 발표자는 이미 학계의 정설이 된 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와 계산결과들을 종합해서 제시합니다.
이 발표는 이 분야 연구의 패러다임 및 그 근원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훗날 교과서 또는 박사논문이 이 발표를 바탕으로 쓰여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지위를 빼앗긴 과거의 패러다임에 대한 회고도 이 단계에 속합니다. 이런 발표 역시 새로운 통찰력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https://Scilogs.spektrum.de/?ref=scilo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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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버려야 할 과학적 아이디어 V – 과학이 과학자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2014년 1월 28일
-Edge.org 재단의 질문인 ‘어떤 과학적 아이디어를 버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일리노이 대학의 인류학자 케이트 클랜시는 우리가 과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해 나는 과학자들의 현장연구 경험을 조사하는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60% 이상의 응답자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20%는 성추행의 경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응답에서 성적인 측면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들은 예고 없는 야근과 화장실 이용의 금지, 언어적 폭력과 따돌림, 심지어 급식의 금지와 같은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말했습니다. 이러한 행위의 주동자들은 고참 과학자였고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하며 내가 놀란 사실은, 이런 현실에 대한 어떠한 선행연구나 자료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의 진보가 주는 보상은 막대합니다. 안정된 정교수 자리가 주어지며, 수백만달러의 연구비를 받을 수 있고 때로 뉴욕타임즈의 표지에 오르거나 운이 좋다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보상들은 과학의 진보를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이든 감수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디어, 곧 “과학이 과학자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과학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과학계를 너무나 이상적으로 여기는데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계가 철저하게 학문적 성과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이를 수행하는 학자가 누구인지,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득수준과 직업, 학위자의 비율은 인종, 성, 그리고 인간의 여러 다양성에 크게 의존하며 과학계의 구성원들 역시 이들 요소들에 의해 정해집니다. 과학계를 최대한의 선의를 가지고 바라본다 하여도, 과학계를 이끄는 것은 사람들이며 이들은 무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를 다룬 연구들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의미하는 바를 모든 과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회가 가진 무의식적 편견이 과학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의 의미는 곧 과학계 내부에서도 약자와 소수자들을 과로와 괴롭힘과 같은 방법으로 착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과학자들을 일벌레로 인식하고 있는 점도 문제가 됩니다. 과학자들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논의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논의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시간과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런 논의가 이미 과학계에 편안하게 자리잡은 자들의 사치로만 생각됩니다. 실험실의 막내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논의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과로와 착취에 기반한 연구가 인간적이고 평등한 연구환경에서의 연구보다 더 효율적인 것도 아닙니다.
최근 한 사회관계연구는 여성이 실험실의 주변인이 아니라 동등한 협력관계가 될 때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한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실험실 내에 지켜야 할 것들을 분명히 하고 부당한 행위를 누구나 지적할 수 있게 만들었을 때 직업환경이 개선되고 보다 생산적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는 과학 자체를 위해서도 과학자의 삶이 과학의 진보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많은 고참 과학자들 역시 여러가지 위협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쫓겨날 수 있다는 걱정과 정교수가 되지 못할지 모른다는 걱정, 연구를 위한 지원금이 끊어질 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포가 미래의 과학자들을 쫓아내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문적 성공의 기준은 생존력이나 부당한 처우를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학문 자체에 대한 기여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노조가 설립되어야 하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참 과학자들 역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작업환경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진보를 위한 조건입니다. (Scientific American)
https://blogs.scientificamerican.com/context-and-variation/the-edgee28099s-annual-question-the-way-we-produce-and-advance-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