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공산주의자
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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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탈리아의 경험이 남긴 교훈

이탈리아 파시즘은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봉기를 개량주의자들이 배신한 즉각적인 결과였다. 제 1차 제국주의 세계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탈리아 혁명운동은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1920년 9월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산업시설을 장악해 버렸다. 노동계급의 독재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 상황을 제대로 조직하고 이로부터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필요한 결론만 내리면 되었다. 이때 사민당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대담하고 영웅적인 투쟁이 끝난 후 사민당의 기권으로 노동계급은 권력의 공백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렇게 혁명운동이 머뭇거린 상황이야말로 파시즘이 성장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9월이 되자 혁명의 전진은 멈추었다. 11월이 되자 이미 파시스트들이 대대적으로 데모에 나서고 이들에 의해 볼로냐가 점령당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9월의 대재앙 이후에도 방어적 싸움을 수행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은 한가지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한 진지를 하나 하나씩 적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공손한 행동으로 부르조아 계급의 “여론”이 파시즘의 등장을 좋지 않게 보기를 사민당은 기대했다. 더욱이 이 개량주의자들은 빅토르 에마누엘 3세(주 30)의 도움을 크게 기대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이들은 노동자들이 무쏠리니의 깡패들과 싸우는 것을 있는 힘을 다해 막았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르조아 계급의 상층부와 함께 국왕은 파시즘의 편으로 붙어버렸다. 순종으로는 파시즘이 제지될 수 없음을 마지막 순간에야 실감한 사민당은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촉구했다. 그러나 총파업은 대실패로 끝났다. 화약이 폭발할까 두려워 물을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끼얹은 것이었다.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불을 당겼으나 화약은 폭발하지 않았다.

등장한 지 2년만에 파시즘은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1921년과 1922년의 불황에 뒤이은 호경기 덕분에 이들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권력을 공고히 했다. 파시스트들은 후퇴하는 노동계급을 소자본가 계급의 공격력을 이용하여 압살시켰다. 그러나 단 한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정권을 장악한 직후 무쏠리니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과거의 모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 2년간 헌법은 그대로 존속되었다. 파시스트 정권은 연립정부의 성격을 띠었다. 한편 파시스트 깡패들은 곤봉, 단도, 권총 등을 가지고 학살을 자행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서서히 모든 독자적 대중조직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파시스트 정권이 탄생했다.

무쏠리니는 권력을 공고히 한 대가로 파시스트 당 자체를 관료화시켰다. 소자본가 계급의 끓어오르는 힘을 활용한 후 파시즘은 부르조아 국가의 강제력으로 이 계급마저 압살시켰다. 그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단결시켰던 소자본가 대중이 변화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 실망하면서 무쏠리니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가장 즉시 현실화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이었다. 관료화된 파시즘은 군사 독재와 경찰 독재의 다른 형태로 밀접히 다가간다. 그리고 더 이상 과거에 누렸던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파시즘의 가장 주요한 정치적 기반인 소자본가 계급은 이미 소진되었다. 역사적 관성으로만 파시스트 정부는 노동계급을 계속 분열과 무기력 상태로 묶어 놓을 수 있다. 따라서 계급 역관계는 자동적으로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변한다. 이 변화는 필연적으로 혁명을 부르기 마련이다. 파시즘의 몰락은 유럽 역사의 가장 재앙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듯이 이러한 과정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파시스트 정권은 10년간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오래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날짜를 맞추는 내기를 걸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독일에서 히틀러가 승리할 경우 무쏠리니는 자기 정권의 생명력을 새로 오랫동안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히틀러의 몰락은 무쏠리니의 패망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히틀러에 대한 정책에서 독일사민당은 이탈리아 사민당에 비해 조금도 나은 것이 없었다.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이 들떠서 행한 오류들을 하나도 빼지 않은 채 굼뜨게 반복했을 뿐이다. 이탈리아 사민당은 파시즘을 전후의 정신병이라고 설명했으며 독일 사민당은 “베르사이유” 또는 위기 상황의 정신병으로 본다. 어느 경우이든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과정에서 등장하는 대중운동인 파시즘의 유기적 성격에 눈을 감고 있다.

노동자들의 혁명적 진출에 겁을 집어먹고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은 “국가”에 희망을 걸었다. 이들의 구호는, “빅또르 에마누엘! 도와주세요! 개입해 주세요!”였다. 그러나 독일사민당은 헌법에 충성하는 왕과 같은 민주적 버팀목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대통령으로 만족해야 한다. “힌덴부르크!(주 31) 도와주세요! 개입해 주세요!”

무쏠리니와의 싸움에서 뒤꽁무니를 치면서 뚜라띠(주 32)는 “남자다운 데가 있어야 겁장이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격언을 발명했다. 독일 개량주의자들은 구호를 제출하는데 있어서 이탈리아 개량주의자들보다는 활기가 부족하다. 이들은 외친다, “대중의 인기를 누리지 못해도 용감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적과 비겁하게 영합해서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같은 노선은 같은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사민당 지도부에 의해서 사태가 결정된다면 히틀러의 명줄은 보장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기는 독일공산당도 마찬가지라고 인정해야한다.

이탈리아공산당은 파시즘과 거의 동시에 탄생했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을 권좌에 앉힌 혁명의 썰물은 공산당의 발전을 지체시켰다. 공산당은 파시즘의 치명적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혁명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공동전선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보였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종류의 소아병에 걸려있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태어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의 눈에는 파시즘이 “자본주의 반동”으로만 보였다. 노동계급에 대항하여 소자본가 대중을 동원하는 파시즘의 특수성을 공산당은 인식할 수 없었다. 그람시(주 33)를 제외하고 공산당 지도부는 파시즘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이탈리아 동지들이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노동자 혁명이 실패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생명을 부지하고 반혁명이 성공한 마당에 반혁명 공세가 더 있을 수 있겠는가? 부르조아 계급이 자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이탈리아공산당 노선의 정수였다. 더욱이 이탈리아 파시즘은 당시 새로운 현상이었으며 형성 단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좀더 경험이 풍부한 공산당이라 할지라도 이탈리아 파시즘의 특수한 성격을 그리 쉽게 판별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재 독일공산당 지도부의 노선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출범 노선과 단 한자도 틀리지 않는다. 파시즘은 자본주의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다양한 유형의 자본주의 반동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이러한 속류 급진주의는 독일공산당이 이탈리아 공산당보다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더 적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비극적 경험으로 맑스주의가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받지 않았던가. 파시즘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과 파시즘의 권력 장악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마찬가지이다. 파시즘의 특수성을 무시하면 파시즘에 대한 투쟁 의지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물론 비난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코민테른 지도부의 몫이다. 다른 누구보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높일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마누일스키와 함께 스탈린은 이들에게 강요했다: 당신들의 파멸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무시하시오. 톨리아티가 사회파시즘론으로 얼마나 재빨리 전향했는지를 우리는 이미 보았다.

볼셰비키주의는 후진국 현상이라고 치부하면서 꽤 오랫동안 국제사민주의는 자신을 위로했다. 파시즘에 대해서도 똑같은 피난처를 찾았다. 이제 독일사민당은 이 편안한 생각이 틀렸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을 지지했던 소자본가 대중은 파시즘으로 넘어갔거나 가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들은 공산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파시즘과 볼셰비키주의 만이 성장하고 있다. 비록 러시아와 이탈리아가 독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진적이지만 이 두 나라는 제국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에 고유한 정치적 격전장이 되었다. 선진국 독일은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과정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독일 정세가 제기하는 근본 문제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해결책은 어디에 있는가? --- 러시아식인가 아니면 이탈리아식인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구조가 볼셰비키주의나 파시즘으로 이행하는 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탈리아는 독일에 비해 소자본가와 농민 계층이 더 많다. 독일의 경우 농업과 임업에 종사하고 있는 980만 인구에 비해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850만이나 된다. 즉 거의 두 배나 된다.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그 인구가 각각 1,030만과 640만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총계는 독일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노동계급이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을 결코 반영하지 못한다. 심지어 독일에서 실업자의 엄청난 숫자는 독일 노동계급의 사회적 힘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사회적 힘을 어떻게 혁명정치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 ---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탈리아의 9월 패배와 같은 역사적 사건은 독일공산당의 경우 1923년에 일어났다. 이로부터 8년 이상이 지난 지금 패배의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대가 성장했다. 1922년의 이탈리아 공산당보다 지금의 독일공산당은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다. 노동계급의 막강한 상대적 비중, 마지막 패배로부터 지나간 상당한 시간, 공산당의 상당한 힘 --- 이 3가지 장점은 현 정치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최대 장점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장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1932년 텔만의 입장은 1922년 보르디가(주 34)의 입장을 재생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위험한 징조이다. 그러나 이점에서도 10년 전에는 없었던 보충적인 장점이 있다. 독일의 혁명운동 내에는 지난 10년의 경험에 의거하고 있는 맑스주의 반대파가 존재한다. 이 반대파는 수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사태의 전개로 인해 대단한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는 아주 약한 충격도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좌익반대파의 비판적 충격은 노동계급 전위의 정치에 시기 적절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8. 공동전선을 통해 -- 공동전선의 최고기관인 소비에트로

소비에트에 대한 말로만의 찬사는 소비에트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잘못된 생각만큼이나 “좌익”에 유행을 이루고 있다. 대개의 경우 소비에트는 국가권력 쟁취 기관, 봉기 기관, 노동계급 독재 기관으로 규정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이러한 규정들이 올바르다. 그러나 이 규정들이 소비에트의 역사적 역할들을 전부 다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규정들은 국가권력 쟁취 투쟁에서 왜 소비에트가 필요한 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경제투쟁의 기본적 공동전선 형태인 것과 똑같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 투쟁의 시기에 소비에트는 공동전선의 가장 수준 높은 형태이다. 이것이 올바른 설명이다.

소비에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혁명 승리의 기적을 이룰 수 없다. 다만 노동계급의 장점과 단점을 다 포괄하는 계급적 표현일 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리고 오직 이 때문에 소비에트는 국가권력 쟁취를 위한 혁명적 투쟁 상황에서 모든 정치적 경향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조직적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 준혁명적 상황에서 공동전선 기관인 소비에트의 역사적 역할을 가장 선진적인 독일 노동자들은 아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혁명 준비기에 공산당이 다른 모든 정당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깃발 아래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면 소비에트는 전혀 필요 없을 것이다. 후진국과 선진국에서 공히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 직전에 공산당이 노동자 대다수를 결집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역사는 대답하고 있다.

현재 최선진국 독일에서 노동계급은 국가권력 쟁취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은 노동계급을 전혀 단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의미에서 혁명적 상황이란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모든 부위 아니면 최소한 절대 다수가 체제전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통일시키려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바로 혁명적 상황이다. 물론 노동자들이 이 강한 욕구를 실현시킬 방법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과 절연하고 공산당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은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단일한 방식으로 성숙되지는 않는다. 모든 정치 과정들이 급속히 전개되는 혁명적 시기에도 노동계급 내부는 깊이 분열되어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당을 초월해서 계급 전체를 포괄할 조직의 필요성은 절박해진다. 이러한 필요를 조직으로 현실화시키는 것 --- 바로 이것이 소비에트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소비에트의 거대한 역할이다. 혁명적 상황에서 노동계급 단결의 가장 높은 조직적 표현으로 소비에트가 등장한다. 텔만, 노이만, 레멜러는 미래 “소비에트 독일”에 대해서 계속 글도 쓰고 연설도 한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정책은 소비에트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

실제 투쟁 현장에서 떨어져 대중의 정서와 맥박을 직접 느끼지 못한 가운데 독일 소비에트 탄생으로 인도할 가교적 투쟁 형태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장위원회의 확대된 형태로 독일 소비에트가 탄생될 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필자가 한때 제시한 바 있다. 이 가설은 1923년 경험에 주로 의거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가능성은 아니다. 궁핍과 실업의 압력과 더불어 파시즘의 공세에 직면하여 혁명적 단결의 필요성이 소비에트 형태로 즉시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공장위원회 형태는 생략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든 소비에트는 노동계급의 장단점, 내적 모순, 이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강한 욕구 등의 조직적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공동전선 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현재 노동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반씩 나누어 갖고 있다. 사민당 지도부는 자기 당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쫓아내는 일을 제일 잘하고 있다. 반면 공산당 지도부는 온 힘을 다해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고 있다. 이 결과 제 3의 정당이 형성되었고 공산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천천히 상황이 변하고 있다. 공산당의 정책이 전부 옳아도 노동계급의 혁명적 단결의 필요성은 공산당의 영향력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빨리 커질 것이다. 따라서 소비에트 수립의 필요성은 지금 더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소비에트 수립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공장에서 시작하여 노동계급 정당과 조직들이 소비에트의 절박한 필요성과 소비에트 수립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즉 소비에트가 혁명적 시기에 가장 높은 수준의 공동전선 구현체이므로 혁명 준비기에 소비에트 수립을 준비할 공동전선 정책이 있어야 한다.

1917년의 6개월 동안 러시아 소비에트는 화해주의자들인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이 점은 다시 상기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당으로서 혁명적 독자성을 단 한순간도 버리지 않은 채 볼셰비키당은 소비에트 내에서 소수파로서 규율을 준수했다. 독일의 경우 소비에트 수립 바로 그 순간부터 독일공산당은 1917년 3월 러시아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당이 차지했던 지위보다 더 큰 지위를 점할 것이다. 이 점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공산당이 금방 소비에트 다수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공동전선 기관인 소비에트의 의의를 조금도 손상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를 점하고 있는 사민당, 카톨릭 정당, 무소속 노동자들은 여전히 수백만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대중을 보유한 소수 정당들을 뛰어 넘으려는 것은 가장 혁명적 상황에서조차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아직 즐거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공산당은 노동계급 내에서 소수당이다. 이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소비에트 수립의 확실한 수단이 웰스, 힐퍼딩, 브라이트샤이트 등 개량주의자들과의 사전 합의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1918년 힐퍼딩은 바이마르 헌법의 정신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헌법 속에 소비에트를 포함시키는 방법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머리는 사민당의 개량주의 정신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바이마르 헌법에 파시스트 깡패들의 숙소를 포함시키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 노동계급의 일반적 조건이 소비에트 수립을 허용하는 순간 소비에트를 수립해야 한다. 사민당 지도부의 의지는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 조건을 성숙시키려면 사민당 대중을 지도부와 분리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작업이 이미 끝났다고 가장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반동적인 지도자들로부터 수백만의 사민당 대중들을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지도자들”과도 소비에트를 수립할 용의가 있음을 우선 대중에게 보여야 한다.

그러나 1918년과 1919년에 걸쳐 에버트, 샤이데만, 하저 등이 꾸몄던 흉계를 반복하기 위해 현재 사민당 지도부는 소비에트라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가능성을 미리 배제해서는 안된다. 사태의 결과는 이 신사양반들의 검은 마음보다는 역사가 이들을 꼼짝못하게 만드는 정도와 방법에 달려있다.

공산당과 사민당 노동자들이 집단적 조직으로 수립하는 최초의 중요한 지방 소비에트의 탄생은 전체 독일 노동계급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민당 및 무소속 노동자 뿐 아니라 카톨릭 및 자유당 노동자도 소비에트 수립의 구심력을 오래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마치 자석 양끝에 쇳가루가 모이는 것처럼 조직활동에 가장 익숙해 있는 독일 노동계급의 모든 부위가 소비에트로 모일 것이다. 소비에트 내부에서 공산당은 노동계급 혁명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우면서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사민당 지도부가 대중의 압력을 마비시키는 일에 공산당 지도부가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사민당의 절대 다수 노동자들과 사민당 당기구의 상당 부분이 소비에트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민당, 노동조합, 기타 조직들과 명확한 실제적 과업을 수행할 것을 명시한 합의를 공산당은 수락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민당과는 소비에트를 수립할 수 없다는 의도를 너무 명백히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공산당만의 소비에트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노동계급 정당들과 합의를 도출하고 공동행동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은 소비에트 수립을 거부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러한 추론에 대해 [적기]지는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대응할 것이고 2 곱하기 2가 4이듯이 필자가 브뤼닝의 앞잡이이며 웰스의 비밀동맹자라고 증명하려 들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비난을 모두 감수할 용의가 있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있다: 다른 노동계급 조직들과 공동전선 수립을 위한 합의에 도달하지 않고 어떻게 독일에서 소비에트가 수립될 수 있는 지를 [적기]지는 독일 노동계급에게 설명해야 한다.

소비에트가 공동전선 기관이라는 점을 좀더 명확히 해명하기 위해 할러-메르서부르크의 지방 공산당 신문 [계급투쟁]에 실린 견해를 소개하겠다. 대단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 조직들은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반파시즘 방어동맹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황한 이론적 설명은 필요없다. 역사가 이미 독일 노동계급에게 이 문제에 대한 준엄한 선생이 되었다.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모든 노동자들이 참여한 잡탕 공동전선 때문에 독일 노동계급은 1918년 1919년 혁명에서 패배했다.” 이것은 정말이지 피상적인 말장난의 모범적인 예가 아닌가!

1918년 1919년 당시 공동전선은 주로 소비에트를 통해 구현되었다. 이때 스파르타쿠스 동맹(주 36)의 소비에트 참여는 옳았는가? 위에서 인용한 신문의 정확한 논조에 의하면 틀렸다. 그러나 당시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노동계급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사민당이 주도한 소비에트를 자신의 소비에트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소비에트 불참은 이 조직을 혁명으로부터 고립시켰을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라는 공동전선이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잡탕이었다면 이것은 소비에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당시 노동계급 내부의 정치상황이 문제였다. 즉 사민당의 위세에 비해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너무 허약했다. 공동전선은 강력한 혁명정당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다만 후자가 더 강력해지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소비에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나게 좋은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서 허약한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초좌익 노선을 폈으며 때 이른 시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스파르타쿠스 동맹이 공동전선 즉 소비에트에 불참했다면 동맹의 약점들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이 양반들이 1918년 1919년 경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최소한 레닌의 [좌파 공산주의 -- 소아병]은 읽었는가? 스탈린 정권은 공포의 지적 파멸을 초래했다. 소련의 소비에트를 관료화시킨 후 이 사이비 혁명가들은 소비에트를 당기구의 도구 정도로만 보고 있다. 소비에트는 노동자 의회로 창설되었으며 정치적 차이와는 무관하게 모든 노동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가능성을 제공했기에 대중들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소비에트의 거대한 교육적 혁명적 힘이 있었다. 이 중요한 의의는 지금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모든 것은 망각의 늪으로 빠졌고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 되어 왜곡되었다. 몇 번이나 천벌을 받아도 싼 관료집단이다!

당과 소비에트의 상호관계는 혁명 정치에서 결정적이다. 현재 공산당 노선은 당이 소비에트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돈을 더욱 부추길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후고 우르반스는 소비에트로 당을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 신문] 타전 보도에 따르면 노동계급을 지도력하고 있다는 공산당의 허세에 반박하여 우르반스는 1월 어느 베를린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지도부는 소비에트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유일한 당의 의지나 판단이 아니라 대중 자신들에 의해서 당지도부가 선출되어야 한다.(열렬한 박수갈채.)” 공산당이 노동자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이들의 화를 돋구고 있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관료적 위세에 대한 모든 항거는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러나 우르반스의 견해는 맑스주의와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소비에트를 선출해야 하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를 선출하느냐이다. 다른 조직들이 “가진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함께 우리는 소비에트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스스로”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 투쟁을 지도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비에트에 대한 조잡한 숭배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소비에트를 지도하는 당에 달려있다. 따라서 우르반스와는 정반대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소비에트를 지도할 수 있는 공산당의 권리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공동전선의 토대를 가지고, 오직 대중조직들을 통해서만 독일공산당은 이후 소비에트 내에서 지도적 위치를 장악하여 노동계급을 국가권력 장악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9.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SAP)

과대망상증에 빠진 관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앵무새들만이 뜻도 모르는 수식어를 반복한다. 오직 이들만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사회파시즘” 또는 “반혁명”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는 공산주의보다 개량주의에 더 가깝다. 그리고 사민당과 결별한 후에도 여전히 개량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런 조직에게 미리 신뢰를 보내는 것은 경박할 뿐 아니라 값싼 낙관주의이다. 따라서 좌익 반대파는 이 정당의 지도자 우르반스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조금도 지지 않는다.

사회주의노동자당에게는 강령이 없다. 강령적 내용을 담고 있는 공식 문서가 강령인 것은 아니다. 당의 혁명투쟁 경험 그리고 중핵들의 피와 살이 된 투쟁 교훈들과 결합되어 있을 경우에만 공식 문서는 강령의 의미가 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에는 이런 것이 없다. 러시아 혁명, 이 혁명의 단계들, 혁명과정에서 발생한 분파 투쟁, 1923년 독일의 위기, 불가리아 내전(주 37), 중국 혁명, 1926년 영국 총파업, 스페인의 혁명적 위기 등은 정치투쟁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 중핵들에게는 이러한 투쟁들이 피와 살이 되지 못했다. 그저 신문 스크랩의 희미한 기억일 뿐이다.

노동자 정당은 공동전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동전선은 나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경험이 풍부하고 투쟁으로 단련된 혁명정당만이 공동전선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어쨌든 공동전선 자체가 혁명정당의 강령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이 정책에 목을 매고 있다. 이 결과 공동전선 정책은 이 당을 압도하면서 당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조류들 사이의 갈등을 얼버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중도주의의 역할이 바로 이 갈등 얼버무리기이다.

이 당의 일간지는 50대 50의 정신으로 물들어 있다. 스트뢰벨(주 38)이 당을 나갔지만 이 신문은 여전히 반(半)평화주의 노선을 걷고 있으며 맑스주의와는 무관하다. 이 신문에 간간이 실리는 혁명적 내용의 기사들은 이 신문의 노선을 변화시키기보다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이 신문은 브뤼닝 앞으로 보낸 쿠에스터(주 39)의 군국주의 편지에 열광하고 있다. 이 편지는 사실 무미건조할 뿐 아니라 철저히 소자본가적이다. 장관을 역임한 덴마크의 어느 “사회주의자”는 너무 모욕적인 조건으로는 정부 파견단의 일원이 될 수 없음을 천명했다. 이 편지는 이 행동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중도주의는 사소한 일에서 만족을 구한다. 그러나 혁명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혁명은 모든 것,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공산당의 노동조합 정책 즉 노동조합을 분열시켜 혁명적 노동조합(주 40)을 건설하는 정책을 비난한다. 물론 공산당의 노동조합 정책은 대단히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로조프스키의 지도력은 국제 노동계급 전위에게 많은 희생을 가져왔다. 그러나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정책 역시 오류로 가득하다. 공산당의 오류는 노동계급 대오를 “분열”시키고 사민당 노동조합을 “약화”시킨 것에 있지 않다. 현재 노동조합 지도부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에게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민당 노동조합의 약화는 부르조아 계급의 약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공산당이 사민주의자 라이파트의 조직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약화”시키는 데에 있다. 바로 이것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산당의 범죄행위이다. 단결이라는 추상적인 원칙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하수인들을 노동조합에서 몰아내야 하는 구체적인 필요 때문에 공산당은 반동적 노동조합에서 활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에 의해 이 정책의 혁명적이며 공격적인 측면은 개량주의 노동조합들의 단결이라는 원칙에 종속되고 있다.

이 정당은 공산당이 폭동주의(putschism)로 기울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 비난은 공산당의 활동방식과 실제 사실에 의해서 올바른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비난의 권리를 가지려면 우선 행동을 통해 노동자 혁명의 기본 문제들에 대해 자기 태도를 분명히 해야한다. 멘셰비키들은 언제나 볼셰비키당의 노선을 소수봉기주의(Blanquism)와 모험주의 즉 폭동주의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레닌주의 전략은 폭동주의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레닌은 노동계급의 투쟁과정에서 “봉기라는 기예”의 의의를 이해했으며 남들도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이런 점에서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비판은 파울 레비(주 42)의 권위에 기대면 기댈수록 더욱 의심스러워진다. 레비는 공산당의 소아병에 겁을 집어먹고 세련되었지만 노쇠한 사민당을 선택했다. 독일의 1921년 3월 봉기와 관련하여 긴밀한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레닌은 레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양반은 완전히 제정신을 잃었군.” 그리고 재치있게 이렇게 덧붙였다: “최소한 이 양반은 잃을 것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양반들은 잃을 것조차 없었다.” “다른” 양반들이란 벨라 쿤(주 43), 탈하이머 등이었다. 파울 레비에게 두뇌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공산당에서 사민당으로 점프를 한 사람이 노동계급 정당의 지도자가 될 자격은 없다. 정신이상 상태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한 레비의 최후는 그의 정치적 궤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중도주의는 한 정치적 단계에서 다음 정치적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적 노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별 정치가에게는 중도주의가 제 2의 천성이 될 수 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는 사민당에 대해 절망하여 이 당을 나온 관료, 변호사,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나이로 보아 정치교육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절망한 사민주의자가 혁명가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경향의 가장 훌륭한 예는 게오르크 레데부어(주 44)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1919년에 있었던 그의 재판 보도문을 우연히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두 번 이상 속으로 이 늙은 투사의 성실성, 열정, 고상한 천성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 레데부어 역시 중도주의로부터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계급투쟁의 가장 높은 형태인 대중 행동, 이것의 준비, 이 투쟁에 대한 당의 전적인 지도 책임 등의 사안이 제기될 때마다 레데부어는 중도주의의 가장 훌륭한 대표가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리이프크네히트, 룩셈부르크, 우리와는 정치노선이 다르다.

독일사민당의 급진파가 피억압 민족의 투쟁에 대해 수동적이라고 스탈린이 비난한 바 있다. 그러자 레데부어는 화를 내며 바로 이 민족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커다란 주도력을 행사했음을 주지시켰다. 개인적으로 그는 독일사민당의 국수주의를 언제나 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강력한 민족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었다. 그는 언제나 러시아, 폴란드, 그 밖의 나라 출신 망명 혁명가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이들은 노혁명가인 그에 대해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사민당 관료들은 그를 “레데부로프” 또는 “레데부르스키” 등으로 부르면서 그가 이들의 친구인 사실을 빈정거렸다.

스탈린은 당시의 상황이나 저작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 문제에서는 옳았다. 레닌의 일반적 견해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의 견해를 반박하는 것을 통해 레데부어는 레닌의 올바름을 입증했을 뿐이다. 자신이 논문들을 통해 민족문제에 대한 제 2 인터내셔널 정당들의 자기만족감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램지 맥도널드(주 45)는 폭격기를 동원하여 인도의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그는 분노하고 항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힐퍼딩이나 웰스는 물론이고 오토 바우어(주 46)와도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명예롭게 확인시켰다. 이들 독일 사민주의자들도 인도와 같은 식민지가 있었을 경우 민주적 폭격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족문제에 대한 레베두어의 노선도 중도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요구한다: 식민지 억압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의회에서 식민지 공채에 반대하는 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분쇄된 식민지 봉기의 희생자들을 두려움 없이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등등. 그러나 그는 식민지 봉기 준비에는 가담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일은 그에게는 폭동주의, 모험주의, 볼셰비키주의일 뿐이다. 그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볼셰비키주의는 아무리 후진적인 피억압 민족도 정치의 주체로 간주한다. 이들의 민족자결권을 인정하고 이 권리의 억압을 의회에서 항의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피억압 민족들의 투쟁에 개입해 제국주의 억압자에 대한 이들의 투쟁을 고취시킨다. 이들의 투쟁을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계시킨다. 중국, 인도, 아랍 등의 피억압 민족들에게 봉기의 기예를 가르친다. 그리고 문화민족임을 자처하는 제국주의자들 앞에서 이러한 정치 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바로 이 점에서 볼셰비키주의는 혁명적 맑스주의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유일한 주체이다. 그러나 중도주의는 그렇지 않다.

민족문제만으로 노동자 정당의 정책이 평가될 수는 없다. 민족문제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맑스주의자에게 하나의 원칙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이 국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동조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중도주의 조직, 그룹 또는 개인들이다.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이들은 개량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바로 이들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이중 안젤리카 발라바노프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새로이 창립한 당을 2.5 인터내셔널과 통합시키려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주 47)

레옹 블룸은 전쟁배상금 지불에 찬성하고 우스티릭(주 48)이라는 은행가를 후원하는 사회주의자이다. 그런데 그가 자이데위츠의 신문에서는 “동지”로 불리고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레옹 블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가? 아니다. 원칙의 결여, 성격의 결여, 지조의 결여이다. 관료들은 이것을 “치사한 비난”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소한 행동들은 소비에트를 추상적으로 그리고 말로만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뚜렷하게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소비에트를 인정한다고 골백번 말한들 혁명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는 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블룸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바보로 규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블룸과 같은 자들에 대해 증오심과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가가 아니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막스 아들러(주 49)와 같은 정도로 오토 바우어 “동지”와 거리를 두고 있다. 로전펠트와 자이데위츠에게 바우어는 이론적인 적수 그것도 일시적인 적수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우리에게 그는 오스트리아 노동계급을 죽음의 늪으로 인도한 화해할 수 없는 적이다.

막스 아들러는 중도주의를 아주 예민하게 보여주는 온도계이다. 이런 온도계의 유용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온도계는 날씨의 변화는 기록할 수 있지만 날씨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상황에서 막스 아들러는 철학적인 슬픔을 느끼며 다시 한 번 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숨을 쉬면서 이 불가피성을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제 2와 제 3 인터내셔널이 통합이 되면 아주 좋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민주적 방식으로 사회주의가 수립되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방법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야만국가 뿐만 아니라 문명국가에서도 아 이런!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니! 그러나 혁명을 슬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혁명은 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막스 아들러가 생각할 혁명적 상황은 있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들러와 같은 양반은 과거의 혁명을 정당화하고 미래 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이 순간 결코 혁명을 촉구할 수가 없다. 제국주의 전쟁이나 러시아 혁명도 이들 늙어빠진 사민주의 좌파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들은 가망이 없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온도계는 될 수 있지만 혁명 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다.

9월 말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모든 노동자 조직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전국에서 집회가 개최되어 모든 경향의 연설가들이 똑같은 시간을 할애 받아 연설한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하다. 공산당과 사민당이 브란틀러와 우르반스 그리고 영향력이 미미한 다른 조직들의 대표들과 연단을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공동전선의 목적은 공산당과 사민당 대중의 단결이다. 대중기반이 없는 다른 정치조직들과의 합의가 아니다.

로전펠트-브란틀러-우르반스 연합은 공동전선을 위한 선전연합(propaganda bloc)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연합이 불가능한 것은 바로 선전 영역이다. 선전은 명확한 원칙과 강령에 기초해야 한다. 행진은 따로 하되 목표물에 대한 타격은 함께 하는 것이 공동전선이다. 연합은 실제적인 대중행동을 위해서만 필요하다. 원칙의 기반도 공유하지 않은 채 지도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합의 즉 선전연합은 혼란만 가중시킨다.

노동자 공동전선이 대통령 후보를 지명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후보는 명확한 강령을 전제로 해서만 지명될 수 있다. 당은 선거기간이라고 해서 지지자들을 추동시키고 그 역량을 모을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당의 후보는 투쟁의 직접적 목표를 위해 다른 조직들과 맺은 합의를 어떤 경우에도 거스를 수 없다. 당의 정식 회원이든 아니든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텔만 후보를 최대한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는 텔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깃발이다. 우리는 모든 정당에 대항해서 공산주의의 정치적 목표를 방어할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의해서 공산당 평당원들에게 유포된 편견을 분쇄하면서 좌익반대파는 대중의 대자적 계급의식을 고취시킬 것이다.(저자 주: 불행하게도 [연속혁명]지에 사설은 아니지만 공산당, 사민당 등의 연합에 의한 노동자 단일 후보를 주창하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독일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입장을 비난해야 한다.)

개량주의 좌파나 중도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간 노동자 조직에 대해 볼셰비키당은 어떤 정책을 취했는가?

1917년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약 4천명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지구간 조직이 존재했다. 당시 뻬쩨르부르그의 볼셰비키 조직은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볼셰비키당의 뻬쩨르부르그 위원회는 이 지구간 조직과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합의를 도출하기 시작했고 이 조직의 모든 계획에 대해 조언했다. 이를 통해 완전한 조직 통합이 속도를 붙였다.

물론 이 조직의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볼셰비키당과 가까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에만 이런 일이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멘셰비키-국제주의자들 (마르토프 그룹)이 사회애국주의자들과 결렬했을 때 볼셰비키당은 전자와 공동행동을 조직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그리고 이것이 불가능했을 때 그 책임은 대부분의 경우 마르토프 그룹에게 있었다. 사실을 덧붙이자면 이 그룹은 쩨레텔리, 단 등과 행보를 같이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멘셰비키 진영에 남았다.

그리고 훨씬 넓은 범위에서 이 전술은 사회혁명당 좌파에게도 적용되었다. 심지어 볼셰비키당은 봉기기관인 혁명전쟁위원회에 사회혁명당 좌파의 일부를 끌어들이기까지 하였다. 물론 당시 사회혁명당 좌파는 여전히 케렌스키 당에 속해 있었다. 혁명전쟁위원회의 목적은 케렌스키 당을 전복시키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이 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은 사회혁명당 좌파의 정치 논리에 부합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보더라도 사회혁명당 좌파가 모든 문제에서 논리정연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명쾌한 논리를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구상에서 혁명은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볼셰비키당은 사회혁명당 좌파와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연합을 체결했다. 지금 독일공산당이 쓰는 말로 하면 “코르닐로프주의자” 좌파 또는 “파시스트” 좌파와 연합한 셈이었다. 이 연합은 이 경향이 혁명정부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키기 전까지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좌로 기우는 중도주의자들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경험을 레닌은 이렇게 요약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올바른 전술은 중도주의자들의 동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양보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계급 쪽으로 기우는 분자들과 결합하여 자본가계급 쪽으로 기우는 분자들에 대해 투쟁할 때는 언제나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 ‘어떤 타협도 무조건 거부하며 우리의 진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단정은 혁명적 노동계급을 강화시키는 데 해가 될 뿐이다. ...” 이 문제에서도 볼셰비키당의 전술은 독일공산당의 관료적 최후통첩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

텔만과 레멜러가 새로 창당된 독자 정당인 공산당에 들어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이들이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쓴다면 사민당과 결별하고 공산당에 들어와 이 정당을 좌로 기울도록 애쓸 당시 자신들의 정치적 감수성을 회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들에게 “왕당파 반동 세력의 좌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하자. 아마 이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비난하는 자가 술에 취했거나 미쳤다고 결론 내리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규정하는 방식이 바로 이러하다!

레닌의 독자 정당 탄생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 보자: “1917년 러시아의 경우와 같이 노동자들이 우에서 좌로 선회했는데도 독일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이 즉시 강화되지 못하고 ‘독립사민당’이라는 중도정당이 먼저 탄생했다. 그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 물론 독일공산주의자들의 잘못된 전술에 하나의 원인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정직하고 두려움 없이 인정하고 이것을 교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이들의 오류는 공공연히 생기는 ‘좌파’ 소아병의 온갖 증상에 해당된다. 이 병이 더 잘 그리고 더 빨리 치유되면 될수록 조직에게 이로울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지금 독일공산당은 당시 스파르타쿠스동맹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만약 중도 독자 정당이 다시 탄생한다면 이 현상에 대한 책임은 공산당에게 더욱 크게 돌아갈 것이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은 모순적인 현상이다. 물론 사민당 노동자들이 바로 공산당에 합류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공산당의 정책과 지도부가 과거와 달라야 한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을 평가하는 기준은 이상적 수준의 공산당이 아니라 지금의 공산당이 되어야 한다. 관료적 최후통첩이나 휘두르는 공산당이 존재하는 한 사민당의 붕괴는 그만큼 저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탄생은 불가피하며 진보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 진보적인 현상은 이 정당의 중도주의 지도부에 의해서 지극히 약화되어있다. 이 지도부가 당을 철저히 장악할 경우 이 당은 몰락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성격을 일부 지니고 있다고 해서 중도주의와 화해하는 것은 이 정당의 진보적 역할을 청산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 정당을 주도하고 있는 화해주의 및 타협주의 분자들은 술수에 능한 자들이고 당내의 갈등들을 적절히 봉합하고 위기상황을 지연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술수는 사태가 정말 심각해지기 전까지만 효과를 발휘한다. 혁명적 위기가 폭발하는 바로 그 순간 당은 위기에 빠질 것이고 이때 노동계급 분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당의 노동자들이 당내 중도주의 경향을 제거하도록 적시에 조언하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임무이다. 이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비판을 자제하면 안된다. 중도주의자들의 좋은 의도를 올바른 행동으로 인정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사물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언사로 대체하지 말고 반드시 제대로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리고 비방할 것이 아니라 비판해야 한다. 공동행동의 길을 찾아야 하며 주먹을 쥐고 결별할 차비를 하면 안된다.

중도 정당의 좌파에 대해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과의 타협을 두려워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들과 타협할 적절한 방식을 찾는 것이 공산주의자의 의무이다. 즉 이들과의 불가피한 최종적 통합을 촉진할 뿐 아니라 이 정당의 우파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사상적-정치적 투쟁을 방해하지 않을 그런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레닌이 이 명언을 던진 이래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도 이 명언에 추가할 것은 전혀 없다.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가는 파업과 거리투쟁 뿐 아니라 당내에서 올바른 정책을 추구하기 위한 투쟁 한가운데에서 단련된다. 코민테른 창립 당시 가입 조건으로 작성된 ‘21개조’를 보자. 지난 8년의 정치 상황에 ‘21개조’가 적용된 좌익반대파의 정치활동을 보자. 이것에 기초하여 대오 내의 중도주의 경향을 계획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들은 중도주의의 좌파적 외피로만 머무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산당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혁명가들은 로전펠트와 자이데위츠 식으로 사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지는 않는다. 사민당 지도부는 노동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자본가 계급의 첩자들이다. 비록 혼란에 빠져있고 서투르고 능력이 없더라도 공산당 지도부는 올바른 길로 인도된 혁명가 또는 반(半)혁명가들이다. 사민당은 파괴되어야 하며 공산당은 교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가? 그렇다면 진지하게 시도해 본 적은 있는가?

현재의 정치상황은 공산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때 우리는 비판을 통해 사태를 역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제 3” 정당의 창당을 시도하지 않는다.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진정한 지도세력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을 공산당 노동자들이 더 빨리 확신할수록 이들은 우리의 말에 더욱 귀기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임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파시즘의 승리가 확실하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거대한 투쟁을 앞에 두고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으로 이끌 방법을 찾을 뿐이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10. “일반적인” 중도주의와 스탈린 관료집단의 중도주의

코민테른 지도부 그리고 결과적으로 독일공산당의 오류는 레닌의 친숙한 용어를 빌자면 “초좌익적 어리석음”의 범주에 해당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특히 젊을 경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네가 충고했듯이 이 특권은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정치 행동이 상당한 기간동안 특히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서 체계적으로 반복될 경우 이런 어리석은 행동은 경향으로 자리잡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종류의 경향일까? 이 경향은 어떤 역사적 필요에 부응하는가? 이 경향의 사회적 뿌리는 무엇인가?

초좌익 경향은 나라와 시기마다 그 사회적 기초가 다르다. 이 경향은 무정부주의와 블랑키주의, 그리고 이 둘이 다양하게 결합하여 최근에 등장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주 51)에서 가장 철저하게 표현되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주로 만연한 이 경향의 사회적 토양은 빠리의 오래된 전형적인 소규모 공업이었다. 이 경향은 오래 지속되면서 프랑스 초급진주의에 의심의 여지없는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프랑스 초급진주의는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에 어느 정도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대공업 발전, 전쟁, 러시아 혁명은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의 척추를 부러뜨렸다. 급격히 후퇴하면서 이 경향은 타락한 기회주의로 변모했다. 이 두 단계에서 주오(주 52)는 이 경향의 유일무이한 대표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도 이와 함께 변한다.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는 정치적 침체기에만 겉으로 혁명성을 보존했다. 모든 문제를 명백하게 제기하는 혁명기에 이 경향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초급진주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기회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스페인 혁명은 이 나라에 끝까지 남아있는 조합주의 편향을 몰아낼 것이다.

무정부주의와 블랑키주의 분자들은 모든 종류의 여타 초좌익 경향들과 합류한다. 거대한 혁명운동의 주변에는 언제나 폭동주의와 모험주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 증상들의 기수는 노동계급 후진층, 반(半)수공업 계층, 이들의 동료 지식인들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초좌익 경향들은 독자적인 역사적 의의를 갖지 못한 채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친다.

역사 발전이 늦은 후진국은 어엿하게 성장한 세계 노동운동의 시대에도 부르조아 혁명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좌익 인텔리 계층이 종종 가장 극단적인 구호와 투쟁방법을 소자본가 대중이 장악하고 있는 반(半)초보적 운동에 도입한다. 폭동주의와 개인적 테러주의 등을 특징으로 한 러시아 사회혁명당이 바로 이런 유형의 소자본가 정당이다. 서구에서는 공산당이 대중운동에 뿌리를 내린 덕분에 독자적 모험주의 그룹들은 러시아 사회혁명당 만큼의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서구의 젊은 공산당 내부에는 모험주의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러시아 사회혁명당은 부르조아 사회의 진화과정에 영향을 받아 제국주의적 소자본가 정당으로 변모했고 10월 혁명에 반대했다.

그러나 현재 코민테른의 초좌익 노선은 위에서 제시한 어느 역사적 유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코민테른의 우두머리인 소련공산당은 잘 알고 있듯이 공업노동자 계급에 기초해 있으며 좋든 나쁘든 볼셰비키주의 전통에서 나왔다. 코민테른의 각국 지부들도 대부분 노동계급 조직이다. 각국 공산당의 초좌익 정책은 각 나라의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도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등장하고 있다. 각자가 처한 조건들의 차이는 공산당의 초좌익 노선이 공통의 사회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국과 영국에서 동일한 “원칙적” 성격을 가진 사안과 관련하여 초좌익 노선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초좌익 경향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복잡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상황이 결부되어 있다. 즉 초좌익 노선은 현재 코민테른 지도부의 한결같은 또는 기본적인 특징이 아니다. 이 사실 때문에 이 문제는 명료해진다. 코민테른의 현 지도부는 1928년까지 공공연히 기회주의 정책을 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많은 문제에 대해서 멘셰비키주의 편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1924년에서 1927년까지 개량주의자들과의 합의는 의무로 간주되었을 뿐 아니라 당이 자신의 독자성, 비판의 자유, 심지어는 노동계급의 토대를 포기하는  선까지 인정되었다. (저자 주: 몇 년간 지속된 코민테른의 기회주의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 [레닌 이후의 제 3 인터내셔널], [연속혁명론], [현재 누가 코민테른을 주도하고 있는가?] 등의 저작에 자세히 분석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논의는 특정의 초좌익 경향이 아니다. 과거 격심한 초우익적 좌충우돌을 보였던 코민테른이 이제 오랫동안 초좌익적 좌충우돌을 보이고 있다. 이 사실이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코민테른의 이런 외적인 증상들까지도 중도주의가 지금 이 논의의 주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중도주의는 개량주의와 맑스주의 사이에 위치하며 개량주의에서 맑스주의 또는 맑스주의에서 개량주의로 진화하는 모든 단계들을 종종 의미한다. 이것이 중도주의의 형식적 묘사적 측면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와 개량주의는 모두 탄탄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개량주의는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노동계급 관료와 노동귀족층의 특권적 지위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의하면 중도주의는 독자적인 사회적 토대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었다. 노동계급 내부의 다양한 계층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기 다른 시기에 혁명의 길로 나아간다. 장기간의 산업부흥기나 패배 후 정치적 퇴조기에 노동계급은 좌에서 우로 기운다. 그리고 좌로 기울기 시작하는 부위들과 충돌한다. 정치그룹들은 진화과정에서 여러 단계 발전이 지연되면서 이 와중에 일시적인 지도부를 찾아내고 나름의 강령과 조직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경향들이 “중도주의”라는 개념에 포괄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유래, 사회적 구성, 진화의 방향 등이 각기 다른 이 정치그룹들은 서로 가장 잔혹하게 투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중도주의의 다양한 정치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일반적으로 중도주의는 개량주의의 좌파적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중도주의 경향이 개량주의나 맑스주의의 어느 진영에 속하는 지는 기존의 공식으로 금방 알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특정 그룹의 구체적 구성요소와 내적 경향을 매번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적 오류 가운데 일부는 중도주의 좌파적 성향이라고 정당하게 규정할 수 있다. 한술 더떠서 정치적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 사이에 존재한 다양한 경향들의 대다수는 좀더 강하거나 좀더 약한 중도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 관료집단 내의 백치들, 무식쟁이들, 돌팔이들만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중도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맨 위의 스탈린부터 그 이하까지 현재 코민테른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 이론적으로 도덕적으로 이 위대한 여성 혁명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자들은 필자가 “중도주의”를 두 번 이상 남용하여 노동계급 운동 내의 너무 많은 그룹과 경향들을 이 범주에 포괄시키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사실 중도주의 유형의 다종다양함은 이미 말한 바 있듯이 현상 그 자체의 본질일 뿐 용어의 남용은 결코 아니다. 소자본가 계급이 아주 다양하고 모순적인 현상들을 보인다고 맑스주의자들은 분석해 왔다. 그리고 이 분석 때문에 이들은 빈번히 비난받았다. 이 점을 상기하면 중도주의의 다양성이 더 잘 이해될 것이다. 사실 “소자본가”라는 범주에는 처음 보기에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 사고, 경향들이 포괄된다. 소자본가 성향은 농민운동과 도시 개량주의의 급진적 경향을 의미한다. 프랑스 자꼬뱅파와 러시아 나로드니끼는 모두 소자본가 경향이다. 프루동주의자들과 블랑키주의자들도 소자본가 경향이다. 현 시기의 사민주의와 파시즘도 소자본가 경향이다.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자들, “구세군”, 인도의 간디주의 등등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예술 분야로 들어가면 더욱 더 다양한 양상이 전개된다. 그렇다고 맑스주의가 말장난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소자본가 계급이 그 사회 성격 상 대단히 이질적인 요소들을 많이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계급의 맨 밑바닥은 노동계급과 겹쳐지면서 룸펜노동자 계층까지 포괄한다. 이 계급의 맨 꼭대기는 자본가 계급과 겹친다. 오랜 생산형태에 기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산업에 그 기초를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신“중간계급”). 이 계급이 사상적으로 무지개 색조를 보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어떤 의미에서 노동운동 내부의 중도주의는 부르조아 사회의 소자본가 이데올로기와 같은 기능을 한다. 중도주의는 노동계급의 진화, 노동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들의 압력, 노동계급의 혁명적 후퇴와 정치적 성장 등을 반영한다. 따라서 중도주의의 팔레트가 온갖 색깔로 화려한 것은 당연하다! 중도주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 모든 중도주의의 진정한 성격을 탐구해야 한다.

한편 코민테른 지도 분파는 “일반적인 의미”의 중도주의가 아니라 중도주의의 아주 뚜렷한 역사적 구체적 형태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 등장했지만 강력한 사회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소련의 관료집단이다. 스탈린주의 이론가들의 글에는 사회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주의”,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지 않은 지도력, 사상적 전통, 볼셰비키주의의 정신, 이해하기 힘든 “총노선” 등만 등장한다. 그리고 소방수가 호스를 다루듯이 총노선을 휘두르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관료집단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한편 이 관료집단은 육신이 없는 귀신과는 전혀 다르다. 먹고 마시고 자식을 기르고 육중해 보이는 똥배를 가지고 있다. 낭랑한 목소리로 법을 제정하며 자기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직접 뽑고 상관에게 충성을 바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총노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료들은 몇백만을 헤아린다. 몇백만이라! 이 숫자는 10월 혁명 당시 공업노동자의 숫자보다 더 많다. 이 관료들의 대다수는 희생, 자기부정, 위험 등을 수반하는 계급투쟁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이 상당한 숫자의 인간들은 지도층의 일부로서 정치경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생계를 보장받으며 주위의 대중보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한다. 차려 자세를 취하고 서있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실업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필요한 순간에 희생양이 되어 직속상관의 책임을 면해주기만 하면 가장 엄청난 오류조차 용서받는다. 그렇다면 수백만에 이르는 이 지도층은 사회적 비중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노동관료와 노동귀족이 기회주의의 사회적 기초라고 우리는 옛날 책에서 읽어 알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이 현상은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 의해 포위된 후진국 러시아가 노동계급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이 토대 위에 사상 처음 강력한 관료기구가 노동계급 상층부에 형성되었다. 관료집단은 대중 위에 군림하여 법을 하달한다. 엄청난 자원을 손에 쥐고 있으며 내적인 상호책임에 의해 결속되어 있다. 노동자 정부의 정책에 자신의 이해관계, 방법, 법규 등을 끼워 넣는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노동자 정부가 필요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관료집단이 불가피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리고 특히 후진적이며 고립된 나라에서 이 점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이해하고 있다. 소련 관료집단에 대한 숭배는 맑스주의자의 가장 부끄러운 오류이다. 레닌은 당을 자율적인 노동계급 전위로 만들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이 당이 국가기구 위에 군림하여 이것을 통제하고 제어하고 지휘하고 숙정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이를 통해 일국적 차원 뿐만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계급의 이해를 관료집단의 이해보다 더 높은 곳에 두려고 했다. 당의 국가기구 통제를 가능하게 할 첫 번째 조건으로 레닌은 당원 대중의 당기구 통제를 처방으로 제시했다. 소비에트 시기 특히 서거 2년 전 그의 논문, 연설, 편지 등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얼마나 대단한 경각심을 가지고 그가 이 시급한 문제에 마음을 쏟았는지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서거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혁명과 내전을 통틀어 당과 정부를 주도했던 지배층 전체가 일시에 교체되고 제거되고 전멸되었다. 이들 대신 이름도 없는 관료들이 대신 등장했다. 레닌 생전에 관료집단은 강보에 싼 갓난아기였다. 그러나 관료주의에 대한 그의 투쟁은 대단히 격렬했다. 그러나 지금 관료기구는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얻었고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렇다면 진정 누가 이 투쟁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자율을 행사하는 노동계급의 전위로서의 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기구는 국가행정기구와 융합되어 버렸다. 당내에서 총노선을 관철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비밀경찰이다. 관료집단은 당원 대중의 지도부 비판 뿐 아니라 자기 휘하 이론가들의 자신에 대한 발언과 연구마저 금지시켜 버렸다. 좌익반대파는 관료집단의 특수한 역할 및 이해관계에 대해서 공공연히 말한다. 그리고 노동계급과는 전혀 이질적인 새로운 지배층의 육신과 총노선이 분리될 수 없다는 비밀을 폭로한다. 무엇보다도 이 때문에 좌익반대파는 이들의 미칠듯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노동자 국가의 지배집단이므로 자신들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고 관료집단은 결론내린다. 이들은 묻는다: 노동자국가의 관료집단이 어떻게 퇴보할 수 있는가? 이들은 국가와 관료집단을 역사적 과정이 아니라 영구불변의 범주로 간주한다. 성스러운 교회와 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사제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자본주의 세계에서 투쟁하면서 노동계급 위에 군림하게 된 노동자 관료집단이 노스케, 샤이데만, 에버트, 웰스 등의 개량주의 사민당으로 퇴보할 수 있다면 노동자 관료집단이 혁명에서 승리한 노동계급 위에 군림하면서 왜 퇴보할 수 없는가?

소련 관료집단의 지배적이며 통제될 수 없는 지위는 노동계급 혁명가의 심리상태와 많은 측면에서 직접 충돌한다. 국내외 정치에서 자신들의 목적과 결속은 대중의 혁명교육보다 더 우선하며 국제혁명의 임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농, 엔지니어, 행정관료, 중국의 부르조아 지식인, 영국의 노동조합 관료 등의 이해관계와 심리상태는 비숙련 노동자, 빈농, 중국의 봉기 대중, 영국 파업 노동자 등의 심리상태나 요구에 비해 자신들에게 훨씬 가까우며 이해하기가 더 쉽다. 스탈린주의 분파는 이 사실을 수년간 증명해 왔다.

그렇다면 왜 스탈린주의 분파는 일국적 기회주의 노선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노동자 국가의 관료집단이기 때문이다. 국제 사민주의 세력은 부르조아 권력의 토대를 옹호한다. 반면에 소련 관료집단은 10월 혁명에 의해 결정된 사회적 토대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부터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이중적 심리와 정책이 나온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주의이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라는 토대 위에 군림하는 중도주의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이중성은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중도주의 그룹들은 대개의 경우 일시적이거나 과도기적이다. 특정 노동자 부위의 우 또는 좌로의 진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조건 속에서 중도주의는 수백만의 관료집단이라는 형태로 훨씬 더 견고하고 조직화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기회주의 또는 일국주의를 대변하면서도 소련 관료집단은 부농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자신의 토대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운동에서 자신의 “볼셰비키적” 전통과 명성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으로 자신과 아주 가까운 중국 국민당과 암스테르담 관료(주 54)들의 꽁무니를 쫓은 후 소련 관료집단은 사민주의 세력과 매번 날카로이 대립하였다. 이 대립은 세계 자본가 계급의 소련에 대한 적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소련 관료집단의 좌편향 좌충우돌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련 관료집단은 자신들이 기회주의와 일국주의에 특별히 면역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민주의 세력과 날카로이 대립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철두철미한 일국적 개량주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에 맑스주의와 일국적 개량주의 사이에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권력, 자신들이 휘두르는 자원, 자신들의 지위가 내포하는 격심한 모순 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이 관료적 중도주의의 동요현상은 유례가 없는 광범위한 정치적 좌충우돌을 가져왔다. 즉 불가리아와 에스토니아에서의 초좌익 모험주의(주 55)에서 장개석, 라디치, 퍼쓸 등과의 동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영국 파업파괴자들과의 부끄러운 연대에서 대중조직들과의 공동전선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이 좌충우돌은 극과 극을 달렸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자신의 정치 방식과 좌충우돌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당기구를 통해 코민테른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지령을 하달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이 중국 국민당을 지지하자 텔만도 똑같이 행동했다. 1926년 가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 7차 전원회의에서 국민당 대표이자 장개석의 대사인 샤오리치는 텔만, 세마르, 레멜러 등과 “트로츠키주의”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다. 샤오리치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아 중국 국민당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제 7차 전원회의 회의록) 그가 한 말은 허구가 아니다.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1926년판 [적기]지에는 파업파괴자인 영국 노동조합 관료들과 결별할 것을 트로츠키가 요구함으로서 자신의 멘셰비키주의를 증명했다는 내용의 글들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다수 실려있다. 레닌의 주도하에 코민테른 제 3차 그리고 제 4차 세계대회는 텔만, 탈하이머, 벨라 쿤, 프로싸르 등에 대항하여 혁명적 정책들을 정식화했다. 그런데 이 정책들을 실천에 옮겨 대중조직들과의 공동전선을 옹호하는 것이 이제는 “멘셰비키주의”가 되었다.

당원 대중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립적 관료집단이 각국 공산당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극과 극을 달리는 이러한 좌충우돌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모든 악의 근원이 있다!

혁명정당의 힘은 당 전위의 독립성에 있다. 당 전위는 중핵들을 통제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면서 이들을 지지하여 서서히 지도부의 위치로 끌어올린다. 이로서 중핵과 대중, 지도부와 중핵 사이에 연관이 확립되고 이로서 지도부 전체는 내적 자신감을 갖게 된다. 현재 각국 공산당에는 이런 것이 없다. 당 지도부는 임명되고 또한 이들은 자기 부관들을 직접 임명한다. 당원 대중은 임명된 지도부를 인정하도록 강요받는다. 임명된 지도부는 인위적으로 자신들의 공식성을 선전한다. 당의 중핵들은 당을 받치고 있는 대중이 아니라 임명된 지도부에 목을 맨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생계와 영향력의 근원을 상당한 정도 당원 대중 외부에서 찾는다. 이들은 정치 구호들을 투쟁 경험이 아니라 소련의 전보를 통해 조달받는다. 한편 스탈린은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지령을 그대로 따르는 각국 당지도부의 숙청 문서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어느 순간에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자신들이 축출될 것이라는 사실을 각국 당지도부는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코민테른 전체에는 폐쇄 관료층이 형성되어 중도주의라는 이름의 박테리아를 길러내는 배양물이 된다. 소련 관료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는 대단히 안정되어 있고 견고하지만 텔만, 레멜러 등의 중도주의는 정치적 관계가 대단히 불안하다. 대중과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정치적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무오류의 공산당 집행위원회는 엄청난 좌충우돌을 범하고 있다. 진지한 사상투쟁이 불가능하면 할수록 비방, 암시, 중상을 더욱 남발한다. “성격이 거칠고 당에 대한 충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레닌은 스탈린을 평가한 바 있다. 이 평가는 관료집단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관료적 중도주의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에 기초하여 좌익반대파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대한 정책을 결정한다. 즉 소비에트 공화국의 영토와 10월 혁명의 사회적 토대를 이들이 방어하는 한 우리는 이들을 완전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 국가행정기구를 휘두르며 관료적 좌충우돌을 통해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방해할 때 우리는 공개적으로 이들을 비판한다. 관료적 강압을 통해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을 교란시키는 한 우리는 이들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한다.
 

11. 소련의 경제 성공과 체제 관료화 사이의 모순

“일국 차원에서는” 혁명 정치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다. 현재 독일 혁명의 문제는 소련의 정치 지도력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연관은 철저히 이해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는 유산계급의 저항에 대한 대답이다. 자유의 제한은 혁명의 군사적 상황 즉 계급전쟁의 조건 속에서 나온다. 이 관점에서 소비에트 공화국의 내부 안정, 경제 성장, 부르조아 계급의 저항 분쇄 특히 최후의 자본가 계급인 부농 “청산” 등의 성공은 당, 노동조합, 소비에트 등의 민주주의를 소생시킬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결코 지겨워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말한다: “우리는 이미 사회주의 체제로 들어섰다”; 현재의 집단화는 부농 계급을 청산하는 일 그 자체이다; 차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 과정의 마무리 작업이 될 것이다, 등등. 그렇다면 왜 이 과정에서 관료기구는 당, 노동조합, 소비에트를 완벽히 억압했는가? 그리고 왜 관료기구는 국민투표를 통해 집권하는 관료적 군사적 보나파르트 정권을 수립시켰는가? 이와 반대로 혁명 직후 기근과 내전에 시달리던 때에 왜 당의 정치생활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꽃피웠는가? 레닌과 중앙집행위원회를 비판할 권리를 당연시 여긴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은 왜 스탈린과 견해를 조금만 달리해도 당에서 쫓겨나고 행정적 탄압을 받아야 하는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소련 침략 위협은 관료 독재체제의 성장을 설명할 수 없으며 더욱이 정당화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계급들이 어느 정도 청산되었다면 이것은 국가 사멸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이 나라는 관료화나 노동계급 독재가 아닌 오직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외부의 적들을 당당히 물리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필자는 노동계급 독재의 해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며 우리는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로 진입하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는 이와는 전혀 다른 주제를 논하고 있다: 노동계급 독재의 관료적 퇴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재 소련에는 국가 및 당기구에 의존하여 지배계급인 노동계급의 목을 조르는 개인 독재체제가 수립되어 있다. 그런데 이 체제는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당당하고 엄청나며 살인적인 모순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경제는 발전하면서 정치는 왜곡되는 이 기형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련의 경제적 성과는 대단하다.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10월 혁명은 지금쯤 정당화되고도 남는다. 경제성장 관련 계수들의 높은 수치는 생산의 문제에서도 자본주의 방식보다 사회주의 방식이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다는 것을 논란의 여지없이 증명했다. 만약 후진국 러시아가 아닌 선진국에서 사회주의 경제가 시도된다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은 얼마나 더 확연할 것인가!

그러나 10월 혁명이 제기한 문제는 개괄적으로나마 아직도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소련 경제의 근본 원리와 경향만 가지고 이것을 “사회주의”경제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안된다. 소련 경제의 성공은 여전히 낮은 경제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유 산업은 최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이미 졸업한 단계에 이제서야 진입했을 뿐이다. 배급품 상점에서 줄을 서고 있는 근로여성은 그녀 나름대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료들이 경멸적으로 부르는 이 “소비자”의 기준이야말로 결정적이다. 근로여성과 관료들 사이의 이견에 대해 좌익 반대파는 근로여성의 견해를 지지한다. 관료들은 성과를 과장하고 모순들을 어물쩍 넘겨버리고는 근로여성의 비판을 막기 위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다.

작년에 관료집단은 기존의 평등 임금체계에서 차등적 도급체계로 정책을 갑자기 바꾸었다. 현재 소련의 생산력과 전반적 문화 수준은 대단히 낮다. 따라서 노동에 대해 평등하게 임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 이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형태로만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의 일정한 기술력을 전제로 한다. 현재 소련은 낮은 기술력 때문에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형태에도 불구하고 선진 자본주의보다 낮은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기술력의 발전은 생산력을 자동적으로 국경선 너머로 끌고 나간다. 결국 생산력 발전은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너무 일찍 폐기되었던 도급제 임금체계로 다시 정책을 전환시킨 후 관료집단은 평등 임금체계를 “부농”의 원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정말이지 황당한 주장이다. 이로써 스탈린주의자들은 위선과 거짓의 막다른 골목으로 자신들을 몰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평등 임금체계를 너무 빨리 도입했다; 사회주의에 도달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아직 너무 빈곤하므로 반(半)자본주의적 즉 부농 방식의 임금체계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사회주의적 목표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관료들의 현실 날조와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도급제로의 후퇴는 후진 경제의 저항에 의해서 필연화되었다. 특히 너무나 과도한 관료적 행정적 대약진이 추진된 농촌 경제에서 이런 식의 후퇴 조치들이 많이 취해질 것이다.

공업화와 집단화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관료집단이 일방적으로 근로대중에게 명령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소비와 축적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모든 수단을 박탈당했다. 농민의 계급 분화도 경제원리가 아니라 행정 조치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계급을 완전히 청산시키려는 관료집단의 사회 조치들은 기본 과정인 생산력의 발달보다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

이 결과 기본 공업비용의 증가, 품질 저하, 가격 상승, 소비재 품귀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실업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소련의 경제 성장과 관료집단의 경제정책 사이에 빚어지는 모순 때문에 국내 정치의 격심한 긴장이 초래되고 있다. 관료집단은 경제적 요구에 한없이 처지거나(1923-1928) 이것에 놀란 나머지 도약을 시도하여 순전히 행정 조치들을 통해 허비된 시간을 만회하려고 한다(1928-1932). 여기서도 우편향 좌충우돌은 좌편향 좌충우돌로 역전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좌충우돌 후에 관료집단은 경제 현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정서와 자신들의 정책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결과 자신들의 정책이 현실에 뒤지거나 도약하거나 간에 노동자들의 비판을 허용할 수가 없다.

노동자와 농민은 자신의 노동과 장래가 걸린 문제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모든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관료집단이 이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체제의 가장 커다란 위험요인이다! 대중적 저항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심은 관료적 개인적 독재라는 “이중의 족쇄”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공업화와 집단화의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일정 기간 이 조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기간은 짧게 끝날 수도 있다. 노동자 자신이 정치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관료집단을 실제로 통제해야 된다. 상부 단위가 대중에 대해 더 깊은 책임을 느끼면 생산과정이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이 결과 체제 내부 갈등이 줄어들고 낭비적인 경제적 좌충우돌이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과 장비가 좀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것이고 경제성장 계수들은 상승할 것이다.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경제 운영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와 반대로 관료집단의 독재는 비극적이고 경악할 경제적 결과들을 초래할 것이다.

소련의 발전과정에서 스탈린주의 사이비 지도자들이 판을 치던 시기를 개괄하면 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혁명과 내전에 대한 대중의 염증이 관료화의 기본전제이다. 기근과 유행병이 나라 전체를 휩쓸었다. 정치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모두의 생각은 빵 한 조각에 쏠렸다. 전시공산주의 체제에서는 모두 똑같이 기아 수준의 식량을 배급받았다. 신경제정책으로 이행하면서 경제정책이 처음으로 성공하였다.(주 57) 이제 배급품은 좀더 풍부하게 제공되었으며 배급이 필요없는 계층도 생겨났다. 상품경제의 재도입은 기본 비용의 합리적 계산, 초보적 수준의 경영 합리화, 공장의 잉여노동 제거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 상당 기간에 걸쳐 경제적 성공과 실업의 증가가 공존했다.

관료기구의 권한이 실업 때문에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몇 년의 기근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은 실업 공포에 시달렸다. 독립적이며 비판적인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해고되었고 반대파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 이것은 대중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효과적인 무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무기를 휘두를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관료집단은 레닌주의 정당을 결코 압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의 경제적 성공들은 서서히 공업 부문의 실업자들을 없애 나갔다. 그러나 집단화를 통해 은폐된 농촌의 잉여노동력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공업노동자는 실업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일상 경험을 통해 관료집단은 선견지명 및 자기의지 결여가 자신의 임무 수행에 엄청난 장애로 작용하는 것을 알고 있다. 소련의 관변 언론은 불충분한 자유로 노동자의 창발성이 억압되는 개별 기업과 공장들을 폭로하고 있다. 마치 노동계급의 창발성이 공장에서만 억압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당, 소비에트, 노동조합에서 노동계급이 완전히 노예가 되고 있는 가운데 공장만이 산업 민주주의의 오아시스인 것 같다.

현재 노동계급의 심리상태는 1922년 1923년의 경우와는 다르다. 노동계급은 수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장했다. 경제를 회복시키고 상승시킨 업적을 이미 성취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감의 상승은 관료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고 있다.

당이 압살되고 개인 독재와 자의적 정치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소비에트 체제 역시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소비에트 체제는 훨씬 더 강력해 졌으며 이 체제와 관료적 철권통치 사이의 모순은 극단적으로 날카로와졌다. 스탈린 정권은 경제 성공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대신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란다. 이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사를 더 세게 조이고 정교한 아첨 이외에 모든 형태의 “자아비판”을 금지해야 했다.

경제발전이 정치 기반과 모순을 일으킨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조건들 가운데 어떤 것이 불만 요인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정권 반대의 물결은 사회주의적 과업, 소비에트 정치형태, 공산당에 대한 반대가 결코 아니다. 불만은 통치기구와 이것의 인격체인 스탈린에게 향해있다. 소위 “트로츠키주의 밀수품”에 대한 격렬한 투쟁의 첫 단계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 반대세력은 정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강하다. 적은 모든 곳에 있으면서도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적은 공장과 학교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역사학 잡지와 모든 교과서에 침투한다. 역사적 사실과 문서들은 관료집단의 죄를 확정지으면서 이들의 동요와 오류들을 폭로한다. 관료집단은 과거를 평온하게 객관적으로 회상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를 재구성하고 통치기구와 그 수반의 무오류를 의심할 모든 구석들을 덧칠하여 막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성을 상실한 통치집단의 특징들을 모두 목격하고 있다. 야로슬라프스키(주 58)는 믿을 수 없는 인물로 판명이 났다! 이것은 우연한 에피소드나 사소한 일이나 개인적 다툼도 아니다. 첫 단계에서는 관료집단을 강화시킨 경제 성공이 이제 사태의 변증법에 의해 관료집단을 위협하는 상황이 이 사건의 뿌리이다. 지난번 전당대회 즉 스탈린 당기구 회의에서 세 번 네 번 전멸되고 파묻힌 “트로츠키주의”가 “부르조아 반혁명의 전위”라고 선언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어리석고 정치적으로 아주 볼품이 없는 선언은 개인적 보복 차원에서 스탈린이 보유한 아주 “실제적인” 계획들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스탈린을 당서기로 임명하는 문제에 대한 레닌의 경고는 정말이지 농담이 아니었다. “이 요리사는 매운 요리만 만들 것입니다.” 이 요리사는 요리솜씨를 아직 다 발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론 및 행정 분야에서 나사가 조여졌으나 스탈린 개인 독재는 확실히 황혼을 맞고 있다. 통치기구는 온통 금이 가고 있다. 야로슬라프스키라는 틈은 수백 군데에 널려있다. 자명하고도 논란의 여지없는 소련 경제의 성공, 노동계급의 수적인 증대, 집단농장 초기의 성공 위에 새로운 정치위기가 준비되고 있다. 이 사실은 관료적 절대주의의 청산이 곧 소비에트 체제의 해방, 발전, 개화라는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소비에트 체제는 붕괴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관료집단의 최후 시기는 수많은 해악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에게 정치의 중심문제는 권위의 유지이다. 정치적 술수가 부족한 역사학자들은 1917년 당시 스탈린의 업적들을 더 많이 발굴하지 못한 이유만으로 당에서 쫓겨난다. 그렇다면 국민투표로 정당성을 인정받은 이 정권은 1931년 1932년의 오류들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파시즘론을 폐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파시스트들이 먼저 권력을 잡게 한 후 우리가 정권을 잡겠다는 식으로 독일 상황을 정리한 스탈린의 오류를 없는 것으로 덮어버릴 수 있을까?

독일의 객관적 상황은 그 자체로 너무 중대하다. 따라서 독일 공산당 지도부에게 행동의 자유가 있다면 이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좌익반대파가 1917년의 승리로 검증 받은 사상과 구호들을 제기할 때 스탈린 파벌은 오락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전문으로 보낸다. 이 캠페인은 세계 노동계급의 죽고 사는 문제인 독일 혁명의 문제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다만 이 캠페인은 볼셰비즘의 역사와 관련하여 스탈린의 형편없이 날조된 논문을 기초로 진행된다. 세계 사회주의 혁명 완수라는 이 시대의 중대한 과업과 관료집단의 치졸한 사상적 원천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코민테른의 노선은 비열, 무가치, 비극의 극치이다.

스탈린주의 정권의 문제와 독일 혁명의 문제는 절대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묶여있다. 임박한 사태들은 독일 혁명은 물론 러시아 혁명의 이익을 위해서도 이 매듭을 풀거나 잘라버릴 것이다.

12. 브란틀러 그룹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

국제 노동계급과 소련의 이해 사이에는 모순이 있지도 않으며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법칙을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 적용하는 것은 근본부터 잘못이다. 스탈린 정권은 세계혁명 뿐 아니라 소련의 이해와도 더욱 커다란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후고 우르반스는 소련 관료집단의 사회적 기초가 노동자국가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오토 바우어와 함께 우르반스는 모든 계급 위에 기초한 국가의 개념을 설정했다. 그러나 바우어와는 달리 우르반스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현 소비에트 공화국을 그 예로 삼고 있다.

한편 탈하이머는, “소련의 노동계급적(?) 성격과 경제 건설의 사회주의적 성격에 대해 의심하는(?) 트로츠키의 입장”([노동자 정치], 1932년 1월 10일)은 “중도주의”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통해 탈하이머는 노동자 국가를 소련 관료집단과 동일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소련을 국제 노동계급의 관점이 아니라 전적으로 스탈린주의 파벌의 안경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노동계급 혁명의 이론가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하인으로서 논리를 전개한다. 모욕을 당하고 명예에 손상을 입었으나 그는 여전히 하인이며 스탈린 주인님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는 스탈린 정권에 “반대”하면서도 감히 관료집단을 큰 소리로 언급조차 못하고 있다. 관료집단은 여호와와 똑같이 이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지어다.”

독일공산당 소수파인 브란틀러 그룹 안에는 양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고 또 하나는 숲에 가리어 나무를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탈하이머와 우르반스는 서로의 생각이 엇비슷한 것을 알고 소련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는다. 이 행위는 우리의 예상과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옆에 서서 “러시아의 실험”을 의례적으로 “지지”하더라도 부과되는 의무는 전혀 없다. 이 결과 러시아에 대한 지지는 최근 아주 널리 알려진 값싼 상품이 되어버렸다. 온 세상에는 급진적, 반(半)급진적, 인류애적, 평화주의적, “또한 사회주의적” 기자, 관광객, 예술가들이 널려있다. 이들은 브란틀러 그룹과 똑같이 소련과 스탈린을 무조건 지지한다. 레닌과 필자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버너드 쇼는 이제 스탈린의 정책을 흔쾌히 지지하고 있다. 레닌이 살아있던 당시 공산당에 반대했던 막심 고리키도 이제 흔쾌히 스탈린을 지지한다. 프랑스 사민주의자들과 행보를 같이 했던 바뷔스(주 59)도 스탈린을 지지한다. 2류 소자본가 급진주의자들의 월간지 [새로운 대중](New Masses)도 라코프스키에 반대하여 스탈린을 지지한다. 독일의 오시츠키는 파시즘에 대한 필자의 논문에 공감하여 필자의 글을 인용한다. 그는 필자의 스탈린 비판이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참 사회주의자 레데부어는 이렇게 말한다: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핵심 논쟁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회화는 한 나라에서 시행되어 좋은 결말을 이룰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전적으로 스탈린 편이다.” 이런 논조의 예들은 한없이 나열할 수 있다. 소위 이 소련의 “친구들”은 소련의 사회성격 문제를 방관자로서 동정자로서 그리고 가끔 백수로서 바라본다. 물론 뉴욕 증권시장의 친구가 되는 것보다는 소련 5개년 개발계획의 친구가 되는 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중간계급의 좌익에 대한 이러한 수동적 공감은 볼셰비키주의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소련이 크게 실패하는 순간 이들 다수는 마치 바람 앞의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련의 “친구들” 모두와 브란틀러 그룹은 소련에 대한 입장이 다른가? 아마 후자가 진실성이 더 결여되어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차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지지는 소비에트 공화국을 위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좌익반대파와 러시아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인 우리에게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탈하이머는 설교하고 있다. 참으로 혐오스럽다.

라보프스키는 소비에트 혁명의 국경 방어 임무를 직접 맡았다. 그는 소련 경제가 취한 최초의 조치들과 농민에 대한 정책을 세밀하게 입안했다. 우크라이나 빈농위원회의 창설도 주도하였다. 그리고 신경제정책을 독특한 우크라이나 상황에 적용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이 정책의 온갖 우여곡절을 알고 있고 지금도 유배지 바르나울에서 이 정책을 열정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오류에 대해서 경고하고 올바른 방법들을 제안한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오랜 투사 코테 신사제와 스탈린에 의해 총살당한 무랄로프, 카알 그루언스타인, 카스파로바, 노스노프스키, 코시오르, 아우셈, 엘진 부자(父子), 딩겔슈테트, 슘스카야, 솔른체프, 스토팔로프, 포즈난스키, 세르묵스, 블룸킨 그리고 스탈린에 의해 감옥에서 고문으로 죽은 부토프 이외에도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한 수십, 수백, 수천의 사람들 --- 그렇다, 이들은 10월 혁명과 내전에서 싸웠다. 이들은 모두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전선에서 맡은 바 임무를 기꺼이 수행했던 사회주의 건설의 참여자들이었다. 이들이 학교에 가서 탈하이머에게 노동자국가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배워야 하는가?

스탈린의 진보적 정책들은 이미 좌익반대파가 제창했던 것들이다. 이것들을 관료집단이 자기 것으로 이용해 먹고 있다. 좌익반대파는 계획경제, 더 빠른 공업화, 부농에 대한 투쟁, 보다 광범위한 집단화 등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로 수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추방당해 왔다. 그렇다면 브란틀러 그룹을 포함하여 스탈린 정권을 무조건 지지하고 동조하는 친구들이 소련의 경제정책에 대해 기여한 공로는 무엇이었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전혀 없다.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막연하고도 무비판적인 지지 뒤에는 미적지근한 동조 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자기 조국의 국경선 너머에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는 공공연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 독일사람들에게 스탈린 정권은 당연히 쓸모가 거의 없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에게는 좋은 정권이다!”

개량주의자들은 국제 정세를 각국 정세의 합으로 보고 있다. 반면 맑스주의자는 일국의 정책을 국제 정책의 함수로 보고 있다. 이 핵심 문제에서 브란틀러 그룹은 일국적 개량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말로는 아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국제주의 원칙과 국내 정책의 전제 조건 등을 거부한다.

탈하이머의 가장 가까운 동지는 로이였다. 그의 중국 및 인도 정책은 전적으로 스탈린의 동양의 “노동자-농민” 정부론에서 나왔다. 상당한 기간 로이는 인도 민족민주당의 창당 선전가로 나섰다. 즉 노동계급 혁명가가 아니라 소자본가 민족민주주의자로 활동했다. 동시에 그는 브란틀러 그룹의 중앙기구 요인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저자 주: 로이는 최근 영국 노동당 맥도널드 정부에 의해 장기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코민테른 신문들은 이 조치에 대해 항의할 생각이 없다. 장개석과 긴밀히 동맹을 맺을 수는 있어도 제국주의 도살자들에 대항하여 인도의 브란틀러주의자 로이는 절대로 방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브란틀러 그룹의 일국적 기회주의는 소련에 대한 이들의 태도에서 가장 조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말을 빌자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러시아에서는 전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똑같은 스탈린주의 분파인 독일공산당 지도부는 독일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 왜 그런가? 다른 나라의 사정에 어두워 스탈린이 개인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명확한 오류의 경향 즉 정치적 성향이다. 스탈린이 러시아에 대해서 그리고 까쉥, 세마르, 토레즈가 프랑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만큼 텔만과 레멜러는 독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함께 이들은 국제적 분파를 이루면서 각국 정책을 수립한다. 그러나 브란틀러 그룹이 보기에 러시아에서는 비난할 것이 전혀 없는 정책이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혁명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

브란틀러의 입장은 소련에 대입시킬 경우 특히 운이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스탈린을 무조건 지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심에 있어서 좌익반대파보다는 언제나 브란틀러에게 더 가까웠던 라데크는 스탈린에게 투항했다. 브란틀러 역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항하자마자 라데크는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를 “사회 파시스트”라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 스탈린주의 정권을 정신적으로 사모하는 브란틀러 그룹은 이러한 비열한 모순으로부터 감히 기어 나올 시도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목적은 논평할 것도 없이 자명하다. 브란틀러는 스탈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독일공산당의 지도자로 나를 앉히면 러시아에 대한 그대의 무오류를 인정하겠소. 물론 독일에 대한 나의 정책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혁명가들”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존중할 수 있겠는가?

한편 이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코민테른 정책을 대단히 일면적이면서도 부정직하게 비판하고 있다. 코민테른 정책의 유일한 해악은 “초좌익 노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탈린이 4년간이나 장개석과 동맹한 것을 어떻게 “초좌익”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 농민 인터내셔널(주 63)을 초좌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영국 노총 파업파괴자들과의 동맹을 폭동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시아에서 노동자-농민당을 그리고 미국에서 농민-노동당을 수립하는 것을 초좌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더욱이 스탈린의 초좌익 노선의 사회적 성격은 무엇인가? 일시적인 무드인가 아니면 질병의 발작인가? 이론가 탈하이머는 답을 할 수 없다.

한편 이미 오래 전에 좌익반대파는 이 수수께끼를 풀었다. 이 현상은 중도주의의 초좌익적 좌충우돌이다. 그러나 지난 9년간의 정세에 의해서 이미 증명된 이 성격 규정을 브란틀러는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경우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는 스탈린 분파와 함께 우편향 좌충우돌을 늘 범하는 한편 좌편향에 대해서는 반발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그룹이 중도주의 우파 성향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마치 마른 나뭇가지처럼 아름드리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음을 증명했다 --- 이것은 사물의 본성이다. 격심하게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도주의 그룹과 부위들은 좌로 우로 떨려나가게 마련이다.

물론 이들이 모든 일에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텔만과 레멜러에 대항해서 이들은 많은 측면에서 옳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이것이 특별한 현상인 것은 전혀 아니다. 기회주의자들은 모험주의에 대항하여 올바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초좌익 경향도 대중을 전취하는 투쟁에서 권력 장악 투쟁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1923년 말 초좌익 그룹들은 브란틀러를 비판하면서 옳은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들은 1924년과 1925년의 심대한 오류들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스탈린의 사기성이 농후한 “제 3기” 정책을 비판하면서 기존의 올바른 입장들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들의 입장 전반을 올바르게 만들지는 못했다. 각 그룹의 정책은 여러 단계에 걸쳐 분석되어야 한다: 방어적 투쟁의 시기와 공세적 투쟁의 시기, 밀물기와 썰물기, 대중을 획득하는 투쟁의 조건과 권력 장악 투쟁의 조건 등에 따라 달리 분석되어야 한다.

방어와 공세, 공동전선, 총파업 등의 문제만을 하나 하나 전문적으로 다루는 맑스주의 지도부는 존재할 수 없다. 종합적으로 상황 전체를 평가하는 능력, 살아 움직이는 세력들을 분석하고 단계와 전환을 구분하고 이 분석에 기초하여 현 상황에 부합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행동의 체계를 수립하는 능력 등이 있을 때에만 이 모든 방법들을 올바로 적용할 수 있다.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는 “대중 전취 투쟁”의 거의 유일무이한 전문가로 자처한다. 얼굴을 똑바로 세운 후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이 신사양반들은 공동전선에 대한 좌익반대파의 주장 자체가 ... 자신들의 견해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야망을 품을 특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한 번 상상해 보자. 하인츠 노이만에게 곱셈 오류를 설명하고 있는데 어느 용감한 산수 선생이 나타나서 모방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 선생은 우리가 노이만에게 설명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매년 산수의 신비를 설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란틀러 그룹의 허세는 지금처럼 흥미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나마 즐거운 순간을 제공했다. 이 신사 양반들의 전략에 관한 지혜는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에서 이미 천명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좌파”에 대항하여 대중 획득의 기본원리들을 옹호하고 있었다. 필자의 새 저서 [신노선](The New Course)은 공동전선 정책을 쉽게 이해시키는데 초점을 두었으며 당시 코민테른에 의해 여러 나라 언어로 발간되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책의 기본 내용들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독일판 제 70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진지한 혁명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기초적인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회의 일부 ‘좌파’들은 이 전술이 우편향이라고 생각한다.” ... 지노비에프, 부하린, 라데크, 마슬로우, 텔만 등과 함께 탈하이머 자신도 좌파에 속했다.

그리고 그는 비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탈하이머의 정신적 재산을 훔친 후에 좌익반대파는 여기에 기회주의적 해석까지 덧붙인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인다. 이 기이한 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론 과정에서 파시즘 문제를 좀더 명확하게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 소개된 팜플렛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는 의회 절차를 준수해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다; 그가 51%의 득표율을 기록해도 경제적 모순의 증대와 정치적 모순의 격화는 그가 정권을 잡기 전에 폭발할 것이다. 이에 대해 브란틀러 그룹은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계급이 의회를 넘어선 대중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나찌당은 후퇴할 것이라고 트로츠키가 말했다. 이 거짓 주장은 [적기]지의 날조에 비해서 우월한 점이 전혀 없다.

필자는 나찌당이 “평화적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히틀러가 정부를 직접 전복시키거나 연립정부를 구성한 후 다시 정부를 전복시키는 방법을 쓸 것이라고 유추했다. 1923년 브란틀러가 취했던 모험주의 정책을 1932년에 히틀러가 채용할 경우에만 파시즘은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청산될 것이다. 과대평가하지 않더라도 나찌당의 전략가들이 브란틀러 파벌보다는 더 멀리 내다보며 더 강인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욱 심오한 논리는 탈하이머가 제기하는 두 번째 반론이다. 그는 주장한다: 히틀러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잡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자 조직의 파괴 위에서만 자신의 지배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파시즘의 “핵심적 성격”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헌법에 입각하여 권력을 잡든 초헌법적으로 권력을 잡든 그 결과의 차이는 사민당 [전진]지 편집진의 연구 과제가 되도록 노동자들은 조용히 물러서 있자.” ([노동자정치], 1월 10일)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탈하이머의 충고에 귀기울일 경우 이들은 히틀러에 의해 반드시 목이 잘릴 것이다. 이 현명한 선생에게는 파시즘의 “핵심 성격”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이 “핵심 성격”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나는 지에 대해서는 [전진]지 편집진에게 내버려둔다. 파시즘의 인종 학살적 “핵심 성격”은 이들이 권력에 오른 후에야 감지될 수 있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파시즘이 권력을 절대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의 전략을 이해하고 이것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히틀러는 헌법의 틀 내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스스로 “유물론자”로 자처하는 우리 현학자만이 이러한 히틀러의 행동이 대중의 정치의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히틀러의 헌법 존중 태도는 중도주의자들과 연합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포석이다. 그리고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사민주의자들을 속이려는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사민당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을 속이는 일을 좀더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헌법을 들먹이는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헌법을 통해서만 권력을 장악하겠다고 맹세한다면 지금 파시즘의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다. 어쨌든 모든 종류의 선거를 통해 계급 역관계를 몇 번 더 확인할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의거하겠다는 전망을 내놓아 자신의 적들을 마취시킨 후 히틀러는 편리한 때에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려고 한다. 아무리 단순해도 이 군사적 술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이 술수는 이 문제를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중간계급 정당 뿐 아니라 대중의 쉽게 속는 약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더욱 위험하다.

더욱이 히틀러의 술수는 양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적들 뿐 아니라 지지자들까지 속이고 있다. 전투적 기상은 투쟁 특히 공세적 투쟁에는 필수적이다. 전장에서 대판 전투를 벌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때에만 군대는 전투적 기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바이마르 헌법과 너무 오래 연애를 할 경우 그의 군대는 사기를 잃을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그는 때가 되면 셔츠 밑에서 칼을 꺼내 헌법을 무시하는 쿠데타를 기도할 것이다.

파시즘의 “핵심 성격”만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파시즘을 살아있는 정치 현상으로 그리고 의식적이고 교묘한 적으로 파악하면서 그 의중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탈하이머 선생은 혁명가가 되기에는 너무 “사회학적”이다. 탈하이머의 심오함을 히틀러는 유리한 상황 조성에 이용한다. 이것은 아주 명확하다. 왜냐하면 헌법적 환상을 널리 유포하는 [전진]지의 행태와 이 환상에 기초하여 적의 군사적 술수를 폭로하는 탈하이머의 행위가 하나로 뭉쳐졌을 때 히틀러의 전술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그 조직에 포괄되는 대중 때문에 또는 이 조직이 노동운동에 도입할 수 있는 사상적 내용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브란틀러 그룹은 두 가지 가운데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란틀러와 탈하이머는 중도주의의 늪인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과장되게 경멸하고 있다! 사실 이 두 그룹에 비교해서 노동자당은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 이 당은 늪이 아니라 살아있는 시냇물이다. 현재 이 당은 우에서 좌로 움직이면서 공산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시냇물은 그 안에 쓰레기와 진흙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늪은 아니다. “늪”은 바로 브란틀러-탈하이머의 조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조직은 사상적으로 완전히 정체되어 있다.

브란틀러 그룹 내부에는 반대파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룹의 지도자들이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소련 스탈린 관료집단의 분위기에 맞추어 조직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반대파는 불만이 많다.

왈커와 프뢸리히(주 64) 등이 주도하는 반대파는 상당한 기간 브란틀러-탈하이머의 정책을 용인해 왔다. 후자는 특히 소련과 관련하여 잘못된 그리고 의도적 위선과 정치적 거짓으로 범벅된 노선을 걸었다. 물론 이 때문에 조직을 분리하여 나온 쪽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왈커-프뢸리히 그룹은 마침내 이 조직의 완전히 절망적 상황을 인정했다. 이 소수파는 힘없는 레멜러에 대항할 것이 아니라 소련과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 노선과 조직운영에 반기를 들면서 독자적이며 적극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단히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올바르게 해석한다면 이 그룹의 입장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보 전진이라고 볼 수 있다. 명백히 죽은 조직에서 분립한 후 소수파는 이제 국내 특히 국제 상황과 관련하여 새로운 노선을 견지해야할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분립한 소수파는 가까운 미래에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좌파에 집중하여 이 정당을 공산주의 노선으로 획득한 후 이 당의 도움으로 독일공산당의 관료적 보수주의를 해체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은 일반적인 논평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수파가 견지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으며 이 원칙들을 견지하기 위한 투쟁 방법들 역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령은 필수적이다! 강령은 판에 박힌 공산주의 교리문답의 내용을 요약한 문서가 아니다. 노동자 혁명의 문제들은 지난 9년간 공산주의 대오를 분열시켰으며 지금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 문제들에 대한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해답이 바로 강령이다. 이것이 없을 경우 브란틀러 그룹 소수파는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에서 분해되어 이 당의 공산주의로 향한 과정을 촉진하기는커녕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좌익반대파는 소수파의 발전과정을 관심 깊게 그리고 어떠한 편견도 없이 주시할 것이다. 역사상 여러 번 생명력 없는 조직의 분립은 살아남을 수 있는 부위의 진보적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이번 경우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소수파의 운명에 대해서도 이 법칙이 확인된다면 우리는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미래 만 알고 있다. 

 

13. 파업 전략

공산당 지도부는 노동조합 정책에서 당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다. “제 3기” 정책은 개량주의 노동조합에 대항하여 공산당 산하에 독자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대중운동의 파고가 높아지면 기존 개량주의 노동조합들은 파괴되고 이들 내부의 반대파 세력이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Revolutionary Trade Union Opposition)를 조직하여 경제투쟁을 주도할 위원회를 건설할 것이다. 이것이 공산당 지도부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다. 대중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봄의 홍수는 농가의 울타리를 싹 걷어가 버린다. 그런데 로조프스키는 이렇게 생각했다: 울타리를 미리 싹 걷어버리면 봄에 홍수가 날 것이다!

그러나 지도부의 예상과는 달리 개량주의 노동조합은 살아남았다. 대신 공장에서 쫓겨난 것은 공산당원들이었다. 그러자 지도부는 노동조합 정책을 일부 수정하기 시작했다. 미조직 노동자들이 개량주의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촉구하는 행위를 공산당은 거부해왔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탈퇴하는 것에도 반대해왔다. 이제는 공산당 산하 독자 노동조합 조직을 계속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에서 투쟁한다는 내용의 구호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이 새로운 정책은 스스로 사업을 망치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적기]지는 불평한다: 많은 공산당원들은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의 활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선언한다: “왜 우리가 낡은 손수레를 재생시켜야 하는가?” 사실이 그렇다. 왜? 기존 개량주의 노동조합을 장악하고 싶으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 노동조합 좌파에게 지지를 보낼 세력은 바로 이 새로운 노동자 부위가 아닌가. 그러나 이것이 맞다면 공산당은 산하 독자 노동조합을 조직해서는 안된다. 즉 개량주의 노동조합과 경쟁적으로 이들 노동자들을 가입시키는 대항 노동조합을 건설해서는 안된다.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활동에 관한 공산당 지도부의 정책은 다른 분야의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이다. 1월 28일 [적기]지는 뒤셀도르프 금속노동조합의 공산당 노조원들을 비난했다. 이들이 다음과 같은 구호를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브뤼닝 정권을 지지하고 내각에 참여하는 행위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한다.” [적기]지에 따르면 이러한 “기회주의적” 요구들은 허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구들은 개량주의자들이 브뤼닝 정부와 이 정부의 긴급포고령을 반대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악성 농담과 같다! [적기]지는 자기가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들이 대중에 의해 정치적으로 시험받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한편 예외적으로 풍부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활동의 장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사민당은 정치적 소동으로 노동자들을 속일 수단들을 아직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마치 전혀 가망 없는 감옥의 벽과 같이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고 있다. 공산당 산하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에 포괄되어 있는 20만 내지 30만의 노동자들은 개량주의 노동조합 내에서 한없이 소중한 혁명의 효모가 될 수 있다.

1월 하순 베를린에서는 독일 전국에 조직된 공장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활동가들의 회의가 열렸다. [적기]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공장위원회는 공산주의 노동자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1932년 2월 2일). 그러나 회의 참석자들의 소속, 산업분야, 명수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노동계급 내부 세력관계의 모든 변화를 면밀히 공개적으로 기록했던 볼셰비키당과는 정반대로 독일 스탈린주의자들은 러시아 스탈린주의자들을 그대로 본받아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사민당이 장악한 공장위원회가 전체의 84%이며 공산당이 장악한 공장위원회는 4%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기]지는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이 세력관계에는 “제 3기” 정책의 결과가 요약되어 있다. 고립된 공산당 세력을 “공산주의 공동전선”이라고 불러 본들 이것이 정말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자본주의의 장기화된 위기는 노동계급 내부에 가장 극악하고 위험한 분열 즉 고용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초래한다. 현재 개량주의 지도부는 산업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으며 공산당은 실업자 운동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노동계급의 양대 부문 모두가 마비상태에 빠지고 있다. 고용 노동자들은 조금 더 지탱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반면 실업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참을성을 상실한다. 현재 이들의 참을성은 한계에 다다랐으며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다. 고용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조직 형태와 구호를 찾아 공산당이 혁명적 해결의 전망을 열지 못할 경우 실업 노동자들의 성급함은 어쩔 수 없이 공산당에 대한 저항으로 바뀔 것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당의 올바른 정책으로 혁명은 급속히 진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상황에 놓여 갈수록 참을성을 상실한 노동계급의 일 부위는 뻬쩨르부르그에서조차 9월과 10월 볼셰비키당을 등지고 조합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에게 합류했다. 10월 봉기가 제때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노동계급의 붕괴는 격심했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쇠퇴했을 것이다. 현재 독일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을 필요가 없다. 무정부주의적 인민선동에 의식적으로 반동적 정치적 목표들을 결합한 파시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파시즘으로부터 영원히 면역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계급과 소자본가 계급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생긴다. 실업 노동자는 소상인과 행상인이 될 수밖에 없고 파산한 소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과 룸펜노동계급을 양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봉급 생활자, 기술 및 행정직 노동자, 관료의 특정 부위는 과거에 사민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세력 중의 하나였다. 지금 이들은 나찌당으로 넘어갔거나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노동귀족의 일부를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이런 상황이 완료되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찌당은 위에서 노동계급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실업 노동자들을 통해 나찌당이 아래에서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과 희망이 없이는 어떤 계급도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실업 노동자들은 계급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아주 탄탄한 현실적 사회 세력이다. 이들은 현재 참을 수 없는 생활조건을 탈출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혁명만이 독일을 붕괴와 쇠퇴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 특히 독일의 수백만 실업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자 혁명만이 자신들의 붕괴와 쇠퇴를 막을 수 있다.

공산당은 공장과 노동조합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당원의 수가 아무리 증가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와 모순으로 점철된 나라에서 극좌 정당은 수만의 신입 당원들을 모을 수 있다. 특히 “경쟁”을 통해 당원을 늘리려는 목표 하나로 당기구 전체가 혈안이 되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당과 계급 대중 사이의 상호 관계에 달려있다. 공장위원회나 노동조합의 운영을 위해 선출된 한 명의 공산당원은 내일 나가기 위해 오늘 들어온 천명의 오합지졸 신입당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개개인이 당에 가입하는 상황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개량주의자들을 단번에 전멸시킬 순간이 올 때까지 공산당은 계속 투쟁을 연기하고 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사민당이 더 이상 공산당에게 밀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때가 되어서야 공산당은 확실히 사태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파시스트들은 공산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실업 노동자들을 자기 쪽으로 획득할 것이다. 상황이 요구하는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정당은 결코 무사할 수가 없다.

대중투쟁 활성화를 위해 공산당은 산발적인 파업들을 자극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과거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아비판에 열중한다: “아직 우리는 조직 능력이 없다”...“대중 결집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대중 장악력이 아직 부족하다”... 그리고 “우리”라는 대명사는 나중에 반드시 “너희”로 변한다. 소수의 선도적 공세를 통해 노동계급에게 “전기충격을 가하자”는 1921년 3월의 이론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전기충격”이 전혀 필요 없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명확한 전망이다. 그리고 대중운동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마누일스키 또는 로조프스키는 레닌을 군데군데 인용하면서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공산당의 파업 전략이 수립되었음이 명백하다. 사실을 말하면 멘셰비키들은 “파업의 광란”에 반대한 반면 볼셰비키당은 이와 반대로 모든 새로운 파업의 선두에 서서 더욱더 많은 대중을 운동에 가담시켰었다. 이때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부위가 각성한 시기였다. 1905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몇 년의 호황기, 1917년 2월 혁명 첫 몇 달간 볼셰비키당의 전술이 바로 이러했다.

그러나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의 격돌이 시작된 1917년 7월의 볼셰비키당 전술은 또 달랐다. 이때 볼셰비키들은 파업을 자제하고 억제했다. 왜냐하면 이 때의 모든 파업은 결정적인 대결로 비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결정적 대결을 준비할 정치적 전제조건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0월 봉기 이전 몇 개월간에도 볼셰비키당은 모든 파업의 선두에 섰다. 볼셰비키당의 파업 자제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업은 섬유나 가죽산업 등에 종사하는 비교적 후진적인 노동자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볼셰비키당은 혁명의 이해를 위해 어떤 때는 과감하게 파업을 자극했으며 또 어떤 때는 파업을 억제시켰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리 정해진 공식은 없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도 볼셰비키당의 파업 전술은 전반적 상황에 따른 전술의 일부분이었고 선진노동자들에게 부분과 전체의 연관은 언제나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지금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 고용 노동자들은 실업 노동자들을 의식하여 임금 삭감에 저항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수백만의 실업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직된 노동조합의 파업은 당연히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더욱이 고용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들 사이에 정치적 적대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것은 이중적으로 비효과적이다. 물론 좀더 후진적이고 중앙집중화가 덜된 산업에서 산발적인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산업분야의 노동자들은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파업 자제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경향이 많다. 노동계급 내부의 전반적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공산당은 파업을 유도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전술은 소규모 게릴라식 투쟁만을 촉발시킨다. 투쟁이 성공하더라도 파업은 고립과 분산을 면치 못한다.

[붉은 건설](Der Rote Aufbau)지는 공산당 소속 노동자들의 증언을 싣고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금은 개별 산업 차원의 파업은 의미가 없으며 총파업만이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이 공장에서 많이 나돌고 있다. 여기서 “총파업”은 투쟁의 전망을 의미한다. 지금 노동자들은 산발적인 파업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권력과 직접 대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점자본은 브뤼닝 정부의 긴급포고령이라는 언어를 통해 자기들의 이해를 노동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주: 이탈리아 보르디가의 그룹과 같은 일부 초좌익들은 경제투쟁에서만 공동전선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경제투쟁을 정치투쟁과 분리시킬 경우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임금합의가 무시되고 행정명령에 의해 임금이 삭감되는 독일의 예는 이 진실을 어린이에게도 이해시킬 수가 있다. 지나가는 김에 스탈린주의자들이 보르디가 그룹 초기의 넌센스를 많이 부활시키고 있음을 덧붙이고자 한다. “프로메테오 그룹”은 그 동안 배운 것이 전혀 없으며 정치적으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코민테른이 좌충우돌을 일삼고 있는 지금 이 그룹이 정치적으로 우리보다 스탈린주의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여명기에는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를 위해 선동가들이 혁명적 사회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는 일을 종종 자제했다. 노동자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게 만들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이다. 투쟁의 전반적 전망을 명확하게 이해할 경우에만 독일 노동계급의 선진층은 방어적 경제투쟁을 개시할 수 있다. 지금 이들은 공산당 지도부가 투쟁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노동계급 다수를 획득하는 대신 소수에게 “전기충격을 가한다”는) 1921년 3월의 전술에 대해 필자는 코민테른 제 3차 세계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한 바 있다: “노동계급의 절대 다수가 운동에 관심이나 공감을 보이지 않고 그 성공을 의심할 때 그리고 노동계급의 소수가 서둘러 기계적으로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려고 할 때 --- 이때 당의 허울을 쓴 성급한 소수는 노동계급과 불화를 초래하며 파멸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파업투쟁은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다만 파업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직적 전제조건들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는 노동조합의 단결 회복이다. 물론 개량주의 관료들은 이것을 혐오한다. 노동계급의 분열은 지금까지 최상의 방식으로 관료들의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파시즘의 위협이 임박하면 노동조합 내부의 상황이 관료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단결의 기운이 높아간다. 사민당의 라이파트 파벌이 지금 상황에서 단결의 회복을 막는다면 노동조합에서 공산당은 영향력을 즉시 2배 3배 높이게 될 것이다. 단결의 회복만큼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공산당의 활동 폭이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공산당은 과감하게 전술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물가인상으로 인한 생활비의 앙등과 임금 삭감에 반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주창하는 광범위한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고용 노동자와 어깨를 걸고 실업 노동자가 투쟁에 합류해야 한다. 공동전선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산당의 임기 응변 식 소규모 파업들은 투쟁을 심화 확대시킬 수 없을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할 경우” 총파업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고 사민당 좌파는 말한다. 라이파트가 지금 자기 서재에 앉아서 이런 위협성 발언을 과시하듯이 내뱉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적기]지는 그가 룩셈부르크의 편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혁명가 룩셈부르크에 대한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권력 장악의 문제에서 총파업의 독자적 중요성을 과대평가했다. 그러나 총파업은 자의적으로 선언될 수 없으며 노동운동의 역사와 당 및 노동조합의 정책을 통해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을 그녀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 좌파에게 대중파업은 비참한 현실을 은폐하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발명된 허구에 더 가깝다.

지난 몇 년간 프랑스 사회당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총파업으로 대항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심지어 1912년 바젤 대회는 혁명적 봉기로 전쟁에 대항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봉기는 물론 총파업 운운하는 위협마저 배우들의 연극용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파업과 봉기를 대비시킨 것이 아니다. 봉기와 파업에 대한 생기 없고 형식적이며 말 잔치에 지나지 않는 태도가 문제이다. 혁명이라는 추상적 수사로 무장한 개량주의자는 제 1차 세계대전 직전 베벨과 같은 사민주의자와 일반적으로 같은 유형에 속한다. 베벨의 옆에는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총파업을 감행하겠다고 으름짱 놓는 전후 개량주의자가 서 있다.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이다.

물론 공산당 지도자들은 총파업에 대해 훨씬 진지하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명확성은 시급히 확보되어야 한다. 총파업은 아주 중요한 투쟁의 무기이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효력을 발생하지는 않는다. 총파업이 당면한 계급의 적들보다 노동자들을 더 약화시키는 상황도 있다. 따라서 파업은 전략 수립의 중요 요인이지만 다른 모든 전략이 그 속에 용해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총파업은 약자가 강자에 대항할 때 사용하는 투쟁의 무기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투쟁이 시작될 때 자신을 강자로 보기보다는 약자로 보는 쪽이 사용하는 무기이다. 내가 중요한 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경우 적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대포를 사용할 수 없다면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아쇠라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총파업 “사상”이다.

언제나 총파업은 철도, 전신, 경찰, 군대 등을 장악한 강고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의 무기였다. 정부기구를 마비시키면서 총파업은 정부에게 “겁을 주거나” 권력 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었다.

대중은 혁명적 분노로만 단결되어 있을 뿐 군사조직과 군사지도부가 없어서 미리 역관계를 추산하거나 행동계획을 마련할 수 없다. 이때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 바로 총파업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반파시즘 혁명 역시 한두 번의 부문적 격돌을 시작으로 결국 총파업으로 나아갈 것이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현재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 노동계급이 다시 한 번 자신을 단결된 계급으로 느끼고 타도해야 할 적과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파시즘이 이미 권력을 장악하여 국가기구를 확고히 쥐었을 경우에만 총파업은 투쟁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권력장악 기도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총파업이 이용되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코르닐로프가 뻬쩨르부르그로 진군하고 있을 때 볼셰비키당은 물론 소비에트 역시 총파업을 선언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철로에서는 노동자들과 철도 직원들이 혁명군대를 수송하고 코르닐로프 군대를 지체시켰다. 노동자들이 전선으로 강제 배치될 경우에만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다. 혁명전선을 지지하는 산업들은 갑절로 일했다.

10월 봉기 당시에도 총파업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봉기 전야에 공장과 군대의 절대 다수는 볼셰비키당이 장악한 소비에트를 따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촉구하는 것은 적이 아니라 우리를 약화시키는 행위였다. 철도 노동자들은 봉기를 지원하려 했다. 한편 철도 관료들은 중립을 가장한 채 반혁명을 돕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노동자의 총파업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관료들을 압도하여 대세를 장악한 노동자들의 숫자로 결정되었다.

파시스트들의 자극으로 독일에서 부문별로 투쟁이 터질 경우 총파업 촉구는 일반적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총파업이 단행될 경우 도시와 도시, 도시 내 지구와 지구, 공장과 공장 사이에 통신이 두절될 것이다. 그리고 실업 노동자의 결집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파시스트들은 중앙집중 지도부 덕분에 대세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 대중은 너무 오합지졸이어서 노동계급에 의해 격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철도 통신의 문제는 모두 파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권위”가 아니라 군사적 편의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격돌의 순간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 대항해서 통신로가 사용될 것인가?

따라서 지금 독일의 경우 총파업이 아니라 파시스트 격퇴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모든 곳에서 작전 기지, 돌격대, 예비병력, 지방 지도부, 중앙 지도부, 원활한 통신수단, 병력 동원의 기본적 계획 등이 준비되어야 한다.

촌구석인 브룩살과 클링언탈에서는 개량주의 관료 상층부의 보이코트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사회주의노동자당 그리고 노동조합들과 방어 조직들을 수립했다. 포괄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이것은 독일 전역에 응용될 모범 사례이다. 최고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은 브룩살과 클링언탈 노동자들에게 배워야 한다!

독일 노동계급은 강력한 정치 경제 스포츠 조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브뤼닝 정권”과 “히틀러 정권”의 차이가 있다. 물론 이것은 브뤼닝의 미덕 때문이 아니다. 허약한 관료집단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가장 주요하며 기본적이며 최상의 사실은 독일 노동계급이 아직까지도 온갖 다양한 조직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힘이 약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조직 운영에 있다. 브룩살과 클링언탈의 모범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기만 하면 독일의 투쟁 전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조건 속에서 노동계급은 총파업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이며 직접적인 투쟁 방식들을 사용해 파시스트 집단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총파업을 이용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파시스트 집단과 정부 사이의 명확한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럴 경우 공동전선에 기초한 방어위원회 체계는 미리 성공을 예약받은 채 대중파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은 지금 단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핵심적으로 말해서 브룩살과 클링언탈의 방어조직은 왜 수립되었는가? 사소한 것에서도 큰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방어조직은 지방 노동자 소비에트이다. 협소한 지방적 시야 때문에 이 방어조직은 자신이 진정 무엇이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 지를 모른다. 여기서도 양은 질을 결정한다. 이 실험을 베를린으로 옮기면 베를린 노동자 소비에트가 수립된다!    

14.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와 소련과의 경제 협력

혁명적 시기에 제출될 구호들을 논의할 때마다 주의할 것이 있다. 즉 혁명적 시기를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면 안된다. 소비에트는 혁명적 시기에만 수립될 수 있다. 그러면 이 시기는 언제 시작되는가? 달력을 보고 알 수는 없다. 행동을 통해서만 이 시기가 시작되었는지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소비에트는 수립될 수 있을 때에 수립되어야 한다. (저자 주: 중국에서는 스탈린주의자들이 혁명적 격동기에 소비에트 수립을 저지했다. 그리고 퇴조기에 광동 봉기를 결정했을 때도 이들은 봉기 당일에야 소비에트 수립을 호소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그리고 일반적으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소비에트 수립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특별한 경우 대중이 소비에트를 수립하기 훨씬 전에 생산을 통제할 수도 있다.

브란틀러와 그의 좌파적 외피인 우르반스는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생산의 통제를 구호로 들고 나왔다. 이것은 구호의 의미를 퇴색시키자는 불순한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위기가 곧 다가올 지금 대중의 공세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구호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대중의 공세를 위해서도 구호는 제출될 필요가 있다. 구호가 운동의 전망을 확정해주기 때문이다. 구호가 대중에게 파고들기 이전에 반드시 선전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의 측면에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임금 인하와 동시에 가격 인하를 단행하겠다는 브뤼닝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국가 권력 장악을 전혀 생각도 못하는 노동계급 후진층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공업 생산에 필요한 지출액과 상업 이윤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만이 진정한 의미의 가격 인하 투쟁이 될 수 있다. 대중의 절대 다수가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마가린 인상 가격을 확인하기 위해 주부들이 참여하는 노동자 물가통제 위원회는 공업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아주 구체적인 시작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가능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 노동자가 생산을 직접 경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성 노동자의 사고는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는 한참 떨어져 있다. 그러나 혁명의 일반적 과정에 발맞추어 소비 통제에서 생산 통제로 그리고 직접 경영으로 진전하는 것은 그녀에게 더 수월한 경로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산업에 대한 통제는 가동, 부분가동, 폐쇄 상태의 모든 산업에 대한 통제를 의미한다. 이것은 각 분야의 실업 노동자들이 통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제 계획의 청사진을 보유한 공장위원회 지도부의 임무는 가동이 정지된 산업을 다시 가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정부에 의한 산업의 인수 즉 노동자 정부에 의한 자본가 계급의 생산수단 몰수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임금 협약이나 사회보험과 같은 장기적인 “정상적” 상황은 아니다. 이것은 계급전쟁이 최고조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산업의 혁명적 국유화에 이르는 가교로 이해될 수 있는 이행기적 조치이다.

이와 관련하여 브란틀러 그룹은 좌익반대파를 비난한다. 오랫동안 이 구호에 대해 경멸을 보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좌익반대파가 자신들로부터 이 구호를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난은 전혀 뜻밖이다! 노동자에 의한 산업 통제 구호는 1917년 볼셰비키당이 광범위하게 처음 제기했다.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이 캠페인이 전적으로 뻬쩨르부르그 소비에트의 책임 하에 진행되었다. 필자는 이 캠페인을 직접 보았고 참여까지 하였다. 증인 선서를 하건데 탈하이머-브란틀러는 이 구호를 처음 제창하지도 않았으며 이와 관련된 이들의 이론적 정보를 우리가 이용한 적은 결코 없다. “도둑질” 비난은 신중하지 못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두 번째 비난은 훨씬 더 심각하다. 즉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그 동안 내내 이 구호와 캠페인에 반대하더니 갑자기 지금 이 구호를 들고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브란틀러 그룹은 우리가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서 이들은 이 구호에 구현된 혁명 변증법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폭로했다. 이들은 이 구호의 의미를 “대중을 추동하는” 기술적인 처방 정도로 축소시키고 있다. 혁명적 시기에만 적절한 이 구호를 이들은 수년동안 반복해왔다. 이들은 이 사실을 스스로 인용하면서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떡갈나무를 쪼는 딱따구리는 도끼로 나무를 찍는 나뭇꾼이 자기 행위를 도둑질해왔다고 확신할 만하다.

산업에서 이중권력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등장한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바로 이 이중권력 상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탈하이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즉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중권력은 “생산수단의 소유주들과 노동자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도 노동자들은 산업의 완벽한 장악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다. 브란틀러 그룹은 혁명적 구호가 (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거세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들에게 “생산에 대한 통제는 곧 노동자에 의한 산업의 경영”을 의미한다“(1932년 1월 17일). 그렇다면 경영(management)을 왜 통제(control)라는 말로 표현하는가? 인류가 그 동안 사용해온 어법에 따르면 통제는 어느 기관의 작업을 다른 기관이 사찰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통제는 적극적인 선에서 그칠 수도 있고 확실히 장악하는 선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통제는 통제이다. 이 구호는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자본가나 관리자가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행기에 생겨났다. 한편 노동자들은 아직도 국유화에 필요한 정치적 전제조건들을 확보하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경영 능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리고 경영 행위에 필수적인 기구를 수립하지도 않았다. 산업 경영에는 필요 자금 대출, 공장 관리, 제품 판매, 원자재와 새로운 기계의 조달 등 복잡하고 어려운 행위가 수반된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본가 계급을 압박하는 노동계급의 전체적 힘에 의해 공장 내부의 계급 역관계는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통제는 자본가 세력에 대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이 의심의 여지없이 압도적일 경우에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에서 모든 문제가 힘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동자들은 적위군의 도움으로 공장을 장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적 행정적 전제조건들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지식, 기술, 적절한 조직형태가 필요하다. 따라서 일정 기간 노동계급은 경영에 필요한 도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이 기간에 노동계급은 경험 있는 관리자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대신 이들이 모든 장부들을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이들의 유관단체와 행동에 대해서 면밀하게 감독한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개별 공장에서 시작되며 공장위원회가 담당기구가 된다. 산업 분야의 경제적 연관에 따라 이들 기구들은 서로 연합한다. 이 단계에는 아직까지 전체적인 경제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에 의한 통제는 경제계획에 필요한 요소들을 준비할 뿐이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에 의한 산업 경영은 시작 단계부터 상부에서 진행되는 정도가 강하다. 왜냐하면 국가권력과 전반적 경제계획은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기구는 공장위원회가 아니라 중앙집중화된 소비에트이다. 물론 이 경우도 공장위원회는 중요하지만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러시아의 경우 자본가 계급과 함께 기술 인텔리 계층도 볼셰비키당의 이 실험이 몇 주 못 갈 것으로 확신하였다. 모든 종류의 태업(sabotage)을 자행했으며 어떠한 합의도 거부했다. 결국 노동자에 의한 생산 통제 단계는 생략되었다. 더욱이 전쟁은 노동자를 병사로 변모시킴으로서 경제체제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는 러시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정반대의 이유로 인해 더욱 소중하다. 즉 러시아라는 후진국에서 적들에게 포위된 젊고 경험 없는 노동계급은 자본가 계급 및 행정-기술 요원들의 태업에도 불구하고 산업을 경영했다. 그렇다면 선진국 독일의 노동계급이 달성할 수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말한 바 있듯이 노동계급은 사적 자본주의에서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로 최소한의 경제적 진통과 국부의 낭비를 통해 경제가 이행되기를 원한다. 바로 이 때문에 권력 장악이 임박하거나 심지어 가장 대담하고 결정적인 투쟁으로 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노동계급은 기꺼이 공장과 은행에 이행기 기구들을 수립하고자 한다.

혁명기 독일은 러시아의 경우와 다를 수 있을까? 옆에서 관찰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급투쟁의 실제 과정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라는 특별한 단계를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점점 압박을 가하는 한편 유산계급과 행정 요원들이 태업을 자행하는 투쟁의 극심한 갈등은 심지어 일시적인 합의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럴 경우 노동계급은 국가 권력과 함께 산업을 철저히 경영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 산업이 반쯤 마비되고 실업자가 대거 존재하는 독일의 상황에서 이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계급의 강대한 조직, 임기응변이 아니라 체계적인 활동의 정신으로 달성된 노동계급의 높은 교육수준, 혁명에 대한 대중의 느린 공감 등은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단계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더 크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구호를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미리부터 거부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오류가 될 것이다.

어쨌든 러시아보다 더욱 독일에서 통제는 경영과 별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명백하다. 다른 허다한 이행기 요구들과 같이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구호는 그것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상당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과정에는 점진적 형태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형태들을 수립할 용의를 보이면서 노동계급의 전위는 노동계급의 좀더 보수적인 계층들을 혁명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특히 기술, 행정, 은행 요원 등 소자본가 계급의 일부 계층을 중립화시킬 수 있다. 경제 태업을 통해 자본가 계급과 행정직 최상 부위가 노동자의 통제에 전혀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인민은 이로부터 파생되는 극단적인 조치들의 책임이 노동자가 아니라 적대 계급들에게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행정적 의미 이외에 이 구호의 정치적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혁명적 상황에서 이 구호를 제출하여 이 구호에 순전히 개량주의적 성격을 부여한 자들이 있다(노동자 경영 참가 운동 등).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통제를 경영과 구별하자 이것이 소위 중도주의적 표리부동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야말로 이들의 극단적인 정치적 냉소주의를 웅변하고 있다.

산업 경영이 내포하는 문제들을 이해하는 노동자들은 말에 취하기를 원치도 않을 뿐더러 취할 수도 없다. 이들은 말보다 덜 신축적인 생산 재료들을 공장에서 다루는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개량주의 관료들보다 우리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진정한 혁명적 사고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때에 힘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힘 대신 말로만의 열정으로 목을 혹사하는 것도 아니다. 힘이 필요한 경우에는 과감하고 대담하게 완벽히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힘의 한계를 알아야 하며 힘과 술수, 타격과 합의를 언제 적절히 배합해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레닌 서거 기념일에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혁명적 현실주의”와 관련된 달달 외운 구절들을 반복한다. 그리고 나머지 364일 동안 마음대로 이 중요한 원칙을 경멸한다.

개량주의 매춘부 이론가들은 호언쫄런 왕가의 “군사적 사회주의”부터 브뤼닝 정권의 경찰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하여 선포된 긴급포고령들에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발견한다!

부르조아 좌파 이론가들은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꿈꾼다. 그러나 그 동안 자본주의는 계획을 통해서는 생산력을 소진시키는 전쟁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증명해 왔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라도 엄청난 수출입 수치를 통해 드러난 세계시장에 대한 독일의 의존 정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우리는 독일과 소련의 관계를 통해 이 작업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즉 소련의 제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관련하여 그리고 이와 보완적으로 소련과 독일이 광범위한 경제협력 계획을 상세히 입안하기를 제안한다. 이 계획이 수립되면 가장 규모가 큰 수천 개의 공장들이 완전히 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나라 사이의 포괄적인 경제계획을 통해 독일의 실업은 2, 3년 내에 완전히 해결될 것이다.

당연히 독일 자본가들은 이 계획을 입안할 수 없다.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자 조직 특히 노동조합과 독일 기술의 진보적 대표들의 도움으로 소련 정부는 진정으로 거대한 전망을 열어 재낄 완벽히 실현 가능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며 수립해야 한다. 소련과 독일 경제의 자연적 기술적 조직적 자원들을 결합시킬 경우 엄청난 가능성이 열린다. 이에 비해 전쟁 배상금과 관세로 몇 푼 더 받는 것 등의 모든 “문제들”은 얼마나 사소하게 보이겠는가.

독일 공산당은 소비에트 체제 건설의 성공담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 작업은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달콤한 칭송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피상적이다. 더 나쁜 것은 소비에트 경제의 성공담과 난관들을 독일 노동계급의 직접적 이해 즉 실업, 임금 하락, 경제의 전반적인 교착상태 등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공산당은 소련과 독일의 경제협력 문제를 엄격히 실제적인 그리고 동시에 지극히 혁명적인 관점에서 제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그럴 의향도 없었다.

이미 2년도 더 지난 위기의 제 1단계에서 우리는 출판물을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평화공존을 신봉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를 구하려 한다는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들은 단 한가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예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공장 회의에서 그리고 각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논의의 주제로 채택되고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 및 국가 권력 장악 등의 구호와 연결이 될 경우 구체적인 경제협력 계획은 사회주의 혁명의 아주 강력한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제적 차원에서 계획된 경제협력은 외국무역 독점과 생산수단의 국유화 즉 노동계급의 독재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국가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으로 수백만의 새로운 비공산당 노동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타나우 같은 자들은 혁명의 결과 발생하는 산업의 붕괴가 공포스러운 혼란, 기근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독일 노동자들을 무서워 떨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자들은 노동계급에게 고통, 난관, 타락 등 해악만 가져다주는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다. 호언쫄런 왕가의 깃발 아래 노동계급에게 전쟁의 고통을 전가시킨다? 좋다! 사회주의의 깃발 아래 혁명적 희생은? 아니다, 결코 안된다! 이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우리 독일 노동자들”은 “이러한 희생”을 감내하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량주의자들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 노동계급에 대한 아첨인 동시에 비방이다. 불행하게도 독일 노동자들은 참을성이 너무 많다. 사회주의 혁명은 호언쫄런-라이파트-웰스 등이 주창한 전쟁이 노동계급에게 강요한 희생의 100분의 일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15. 가망이 없는 것일까?

단 한 번에 독일 노동계급의 대다수를 공세로 추동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1919년, 1921년, 1923년의 패배가 있었다. “제3기” 모험주의가 있었다. 여기에다 독일 노동계급은 강력한 보수적 조직들에 의해 수족이 완전히 묶여있다. 이 결과 혁명의 전진을 가로막는 강력한 구심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 독일 노동자들의 조직적 단결은 노동계급 대오 내에 파시즘의 침투를 거의 차단시켰다. 따라서 이들은 방어적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다.

공동전선 정책은 일반적으로 공세보다는 방어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보수적 또는 후진적 부위일수록 새로운 성과를 얻기 위해 싸우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지키는 투쟁에 더 쉽게 나선다.

이런 의미에서 브뤼닝의 긴급포고령과 히틀러의 위협은 공동전선 수립의 “이상적인” 경보음이다. 문제는 문자 그대로 가장 초보적이며 명백한 과거의 투쟁 성과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전선은 노동계급의 가장 광범위한 부위들을 포괄할 수 있다. 더욱이 투쟁의 목표는 소자본가 계급의 최하층에서 노동자 거주지구의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의 공감을 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현 상황은 혁명정당에게 엄청나게 유리하다. 방어적 투쟁에서 공세로 나서는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도록 혁명정당에게 강제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목표를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은 채 공산당은 즉각적이고 시급한 행동을 위해 방어적 진지를 지킬 수 있다. “계급 대 계급의 싸움!” 이 정식의 진정한 중요성을 회복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를 노동자들이 물리칠 경우 파시즘은 어쩔 수 없이 공세를 배가할 것이다. 방어를 위한 첫 조치들이 아무리 하찮아도 적의 반응은 즉시 공동전선의 대오를 굳게 다지고 투쟁의 수위를 확대시키며 좀더 과감한 조치들을 강제할 것이다. 그리고 관료들의 반동적 부위를 공동전선에서 몰아낼 것이며 노동자들 사이의 장벽을 약화시켜 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며 결국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조건을 준비할 것이다.

올바른 정책을 통해 공산당이 방어 투쟁의 선두에 설 경우 공세로 전환할 시점에는 개량주의 중도주의 관료 상층부의 동의를 전혀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중이야말로 모든 것을 결정할 주체이다. 대중이 개량주의 지도부와 결별하는 순간 공동전선을 위한 모든 합의사항들은 전혀 의미가 없게 된다. 공동전선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혁명투쟁의 변증법을 오해하는 것이며 공동전선을 투쟁의 발판에서 투쟁의 장애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어려운 정치 상황이 가장 쉬운 정치 상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단 한가지 해결책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투쟁의 목표가 명확히 표현되면 이 목표는 원칙적으로 이미 달성된 것과 같다. 방어의 이름으로 공동전선을 수립하고 공산주의의 깃발 하에 국가권력을 장악하자. 이것이 우리의 투쟁 목표이다.

물론 상황은 어렵다. 사민당의 개량주의는 공산당 사이비 지도부의 초좌익 최후통첩주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부르조아 계급의 관료적 독재는 사민당 개량주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브뤼닝의 관료적 독재는 나라의 경제적 고통을 악화시키면서 파시즘의 위세를 키워가고 있다.

상황은 아주 부담스럽고 위험하지만 가망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10월 혁명의 권위와 물질적 자원을 강탈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아무리 강력해도 전능한 것은 아니다. 계급전쟁의 변증법은 이들보다 더 강력하다. 문제는 이 변증법이 실현되도록 적절한 시기에 행동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좌익”에 속한 많은 자들이 독일의 운명을 비관하고 있다. 이들은 묻는다. 파시즘이 허약하고 공산당이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1923년에도 노동계급은 승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공산당이 그때보다 약화되고 파시즘이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해진 지금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언뜻 보면 이 주장은 항거하기 힘들 정도로 무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다. 1923년은 투쟁할 단계가 아니었다. 공산당은 파시즘의 유령 앞에서 투쟁을 회피했다. 싸움을 안하고 승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에는 파시즘의 위세와 공세가 투쟁을 회피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독일 노동계급이 투쟁을 시작하면 국가 권력을 정복할 수 있으며 정복해야 한다.

어제만 해도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도록 내버려두자. 우리는 두렵지 않다. 이들은 곧 밑천이 거덜날 것이다, 등등.” 이 논리는 공산당 수뇌부를 몇 달 동안 지배했다. 이 노선이 완전히 고착되었다면 히틀러가 노동계급의 목을 자르기 전에 공산당이 이미 노동계급을 클로로포름으로 마취시킨 격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가장 커다란 위험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이 노선을 되풀이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첫 진지를 이미 차지한 것과 같다.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이들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이 노동대중에게 주지되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아주 소중한 승리이다. 이후 모든 선동에서 이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현재 노동계급의 정서는 지극히 침체되어 있다. 이들은 실업과 빈곤으로 고문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지도부의 혼란과 전반적인 혼란으로 더욱 고통받고 있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방법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지도부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데 일조하기는커녕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싸우고 싶어한다.

멀리서 판단하건데 충분히 평가되지 않은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즉 허쉬-둥커의 광부들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일 이들이 계급 전체의 투쟁기구인 소비에트를 수립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들은 오늘 당장 이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이 사항을 물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질문자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중을 경멸하는 거만한 문필가나 웅변가 양반들의 모든 인상주의적 사태 인식보다도 이 사실은 천 배나 더 중요하고 설득력이 있다.

당기구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대오는 명백하게 수동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그런가? 공산당 평당원들은 세포 회의에 참석하기를 더욱 꺼린다.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상부의 지침은 공장이나 거리에서 거의 쓸모가 없다. 대중과 대면할 때 필요한 것과 당의 공식 기구 회의에서 제시되는 것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이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어떠한 모순도 인정하지 않는 허풍 일색의 당기구는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어색한 인위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평당원들은 이것을 참을 수 없다. 당기구 회의에서 공허함과 딱딱함이 감도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투쟁 회피 분위기와는 다르다. 다만 전지전능의 환상에 빠진 돌대가리 지도부에 대한 무언의 항의이자 정치적 혼란을 나타낼 뿐이다.

노동계급 내의 당혹감은 파시스트들의 사기를 드높인다. 이들의 공세는 강화된다. 위험은 증대한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위협이 가까울수록 선진 노동자들의 시각과 청각은 지극히 예민해진다. 그리고 명확하고도 단순한 투쟁지침을 원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브룬스위크를 예로 들면서 뮌젠베르크는 작년 11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점증하는 파시스트들의 공세와 함께 공동전선은 전역에서 원초적인 활력으로 동시에 수립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앙집행위원회의 일원인 그는 왜 이 위원회가 공동전선의 대담한 정책 출발점으로 브룬스위크를 택하지 않았는 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그의 예상은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올바르게 사태를 관찰한 결과이다.

파시스트들의 위협이 임박할수록 사민당 소속 노동자들과 심지어는 당기구의 상당 부위는 급진화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혁명 좌파는 의심의 여지없이 혁명으로 전진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의 분열과 조직분리를 무릅쓰고서라도 공산당은 노선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더욱 불가피하다. 사태가 정확히 이렇게 전개될 것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노선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이들은 이미 어쩔 수 없이 여러 증상을 보이고 있다. 어떤 논쟁은 다른 논쟁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선택되는 어휘는 더욱더 애매모호하다. 구호 역시 더욱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중앙집행위원회보다 앞서서 조직의 임무를 이해한 인사들은 모두 당에서 제거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당노선이 곧 180도 전환될 것임을 암시하는 증상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직까지 증상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반혁명적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수백 톤의 신문용지를 허비하더니 갑자기 노선을 180도 전환하여 좌익반대파의 강령들을 실천하고자 했던 적이 과거 에 몇 번 있었다. 물론 전혀 가망 없을 정도로 시간이 지난 후의 뒷북치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의 경우 노선이 너무 늦게 전환되었으며 그 내용 역시 너무 형편없었다. 이 결과 혁명은 목이 잘렸다(광동 봉기!). 영국에서는 계급의 배신자인 영국 노총이 전술을 “전환”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기존의 합의를 파기해 버렸다. 그러나 1928년 소련에서는 전술이 제때에 전환되어 임박한 파국으로부터 관료 독재체제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지금 열거한 3가지 중요한 사례들의 결과가 각기 달랐던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국의 경우 젊고 경험이 부족한 공산당이 모스크바의 지도력에 맹목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좌익반대파의 목소리는 먼 중국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영국에서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반면 소련에서 좌익반대파는 현장에 있었고 부농 정책에 반대해서 끊임없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과 영국의 경우 스탈린 일당은 먼 거리에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직접 목이 달아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독일의 경우 모든 정치문제들은 공공연히 그리고 시기를 잘 맞추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코민테른 지도부의 권위는 크게 약화되었다. 맑스주의 좌익반대파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계급 전위 가운데 수천 명은 경험이 풍부하고 비판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할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전달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사항들은 독일 노동계급의 정치적 장점들이다.

독일의 좌익반대파는 수적으로 열세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격심한 역사의 전환점에서 사태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철도의 전철수(轉轍手)가 전철기(轉轍機)를 제때에 돌려 무거운 기차를 다른 선로에 옮겨놓듯이 소수의 좌익반대파는 사상 전철기를 강력하고 확실하게 돌려 독일공산당 기차를 그리고 독일 노동계급이라는 더 무거운 기차를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강제할 수 있다.

우리 노선의 올바름은 하루하루 지나면서 행동을 통해 입증될 것이다. 머리 위의 천장이 불길로 인해 터질 때는 가장 완고한 관료들조차 위신에 연연할 수 없을 것이다. 골수까지 비밀스러운 관료들조차 속옷을 입은 채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야 할 것이다. 현실의 전개는 우리 노선의 올바름을 입증할 것이다. 현실은 우리를 지원할 것이다. 

과연 독일공산당이 제때에 전술을 전환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제때라는 말은 누구나 쓰는 의례적인 의미 밖에 없을 것이다. “제3기” 광기만 아니었던들 독일 노동계급은 지금 권력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의회선거 이후 좌익반대파의 행동 프로그램이 실천되었다면 노동계급의 승리는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한 승리를 말할 수 없다. 파시즘의 국가기구 장악 이전에 노동자 투쟁을 촉발할 그런 전술 전환만이 제때에 이루어졌다고 인정될 수 있다.

전술을 전환하려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공산당 내외의 지도적 부위는 투쟁을 회피하면 안된다. 당내에서 그리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관료들의 멍청한 최후통첩주의에 대항해서 공개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요하는 당원은, “그것은 규율 위반이요,”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스탈린식 규율에 대한 위반일 뿐이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진지한 혁명가는 형식적으로라도 규율을 위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율이라는 이름 하에 명백히 해로운 정책을 인정하는 자는 혁명가가 아니라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공산당의 노선 변화를 위해 진지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우르반스 일당처럼 공산당을 새로 창당하려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소규모의 독자 조직을 수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공산당을 새로 창당하는 일은 거대한 작업이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할 중핵들이 마련되었는가? 만약 마련되었다면 수만의 공산당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이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만약 이 중핵들이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지금 공산당을 소생시켜 자신들의 능력을 실험해야 한다.

수백만 공산당 노동자들은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보호 본능 때문에 당에 그냥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공산당 창당을 주창하는 것은 거대한 역사적 사회적 문제 해결의 전야에 스스로를 노동자들과 대립시키는 행위이다. 이 수백만 공산당 노동자들이 이해할 공통의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관료들의 저주, 비방, 탄압을 무시하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에 침투할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노동자들과 같은 것을 원하며 공산당과 다른 이해를 갖지 않고 있으며 우리가 제시하는 노선이 유일한 올바른 노선임을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초급진적 노선을 제시하는 투항자들을 가차없이 폭로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지도자들”의 명확한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나라, 지역, 도시, 구역, 공장에 우리의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당내에 볼셰비키-레닌주의자 핵심그룹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선 전환과 당운영 쇄신을 요구해야 한다. 진지한 지지를 얻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비록 소규모나마 공동전선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 당관료들이 우리를 제명하지 않을까?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들의 전능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공산당과 전체 노동계급은 자유로이 토론해야 한다. 집회를 깨뜨리고 거짓 인용을 자행하고 독이 선 비방을 자행하는 행위 등은 사라져야 한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초 하에 정직한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한다. 1917년 내내 우리는 볼셰비키당 내외의 모든 세력들과 토론했다. 광범위한 토론을 통해 당 임시총회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유일한 토론 주제는,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좌익반대파는 공산당과 사민당 사이에 끼어 있는 단순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공산주의 선동가, 선전가, 조직가들이다. 모든 노력을 공산당에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공산당원들에게 설명하고 이들에게 우리 노선의 올바름을 확신시켜야 한다!

공산당이 공동전선 정책을 실천해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확실히 파시스트들의 공격을 격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파시즘에 대한 단 하나의 의미 있는 승리도 노동계급의 독재로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주도권을 쥐고 있더라도 공산당 내부에는 많은 모순들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좌익반대파의 소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임이 지금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우선 독일 노동자혁명의 승리는 독일공산당 관료들의 스탈린 일당에 대한 의존관계를 청산시킬 것이다.  

독일 노동계급이 승리한 바로 다음날 아니면 권력 장악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코민테른은 붕괴될 것이다. 관료적 중도주의 사상의 공허함, 일국적 한계, 반(反)노동자적 성격 등 모든 것이 독일 혁명의 환한 빛에 의해 한꺼번에 폭로될 것이다. 그리고 독일혁명은 10월혁명보다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을 발할 것이다. 맑스와 레닌의 사상은 독일 노동계급의 지배적인 사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결론

어느 소장수가 황소 몇 마리를 도살장에 끌고 갔다. 그러자 백정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이때 황소 한 마리가 제안했다: “어깨를 맞붙이고 이 백정놈을 뿔로 받아올리자.” 그러자 마누일스키가 운영한 학원에서 정치교육을 받은 황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몽둥이를 들고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온 소장수보다 백정이 어떻게 더 나쁜 놈일 수 있느냐?” 그러자 제안했던 황소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소장수는 나중에도 처치할 수 있어.” 그러자 원칙이 확고한 황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어림없는 소리. 너는 우리의 적들을 왼쪽에서 막아주려고 하는군. 너 자신이 사회-백정(social-butcher)이다.” 결국 황소들은 어깨를 붙이고 대항하기를 거부했다.

--- 이솝 우화에서

"제국주의에 의해서 유린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해방을 제껴두고 베르사이유 조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카우츠키, 힐퍼딩, 오토 바우어 등에게나 걸맞는 중간계급적 일국주의이며 결코 혁명적 국제주의는 아니다“ (레닌: [좌파 공산주의: 소아병]).

우리는 일국적 공산주의를 완전히 거부해야 한다. “인민혁명”과 “민족해방” 등의 구호를 공개적으로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베르사이유 조약 타도!”가 아니라 “소비에트 유럽합중국 만세!”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과학기술의 최고의 성과들과 국제적 분업의 기초하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은 자족적인 일국적 과정이 아니라 국제혁명의 한 부분이다.

독일과 유럽 노동계급의 국가권력 장악은 소련 국경 내에서 폐쇄적이며 자족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보다 한없이 더 진정하며 시급한 과업이다.

노동계급 독재에 대한 내외의 적들에 대항하여 첫 노동자국가인 소련을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소련 방어는 눈을 가리고 진행될 수 없다. 국제 노동계급이 소련 관료집단을 지배해야 한다.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일반화시키는 일국적 개량주의와 테르미도르 경향들을 가차없이 폭로해야한다.

공산당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 4차 코민테른 대회들이 제시한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중적 노동자 조직에게 최후통첩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는 강요될 수 없다; 이것은 획득되어야만 한다.

사민당과 파시즘 모두를 도와주는 사회파시즘론을 거부해야 한다.

(가) 좀더 효과적인 반파시즘 투쟁을 위해서 (나) 사민당 노동자들을 개량주의 지도부와 대립시키기 위해서 사민당과 파시즘 사이의 적대관계를 지속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의 긴요한 이해를 위해 부르조아 계급지배의 정치적 지배형태의 변화를 분석해야 한다.

브뤼닝 정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 지지도 보내서는 안된다!

파시즘에 대항해서 노동자 조직들을 과감하게 그리고 자기희생적으로 방어해야한다.

“계급 대 계급!” 이것은 모든 노동자 조직들이 부르조아 계급에 대항하여 공동전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전선의 실제적 강령은 대중이 환히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조직들과 이루는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조직은 자신의 깃발과 지도부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모든 조직은 행동을 통해 공동전선의 규율을 준수한다.

“계급 대 계급!” 사민당 조직들과 개량주의 노동조합들이 “무쇠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조아 계급과 배신적 동맹을 맺고 있다. 이들이 이것을 깨고 공산당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 조직들과 함께 하도록 쉬지 말고 선동해야 한다.

“계급 대 계급!” 노동계급 공동전선의 최고의 형태인 노동자 소비에트를 위해 선전과 조직 영역에서 준비해 나가자.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도 공산당의 완전한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 강령을 다른 강령이나 노선과 혼합시켜서는 안된다. 원칙에 위배되는 어떠한 합의도 안된다. 일시적 동맹세력들에 대한 완전한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 대통령 후보로 좌익반대파는 당연히 텔만 후보를 지지한다. 공식 공산당 후보 깃발 아래 노동자들을 추동시키는 투쟁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은 선두에 서야 한다.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승리한 혁명을 기초로 당기구를 지배한 소련의 현 지도부가 아니라 10월 혁명을 승리로 이끈 당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한다.

독일공산당 관료지배의 청산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당내 민주주의로 복귀해야 한다.

노동자 공산당원들은 무엇보다도 전술과 전략 문제들에 대해 당내에서 정직하고 진지한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 그룹)의 목소리가 당원들의 귀에 들어가야 한다.

철저한 토론 후 자유로이 선출된 특별 당대회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야 한다.

지도부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사실에 입각한 가차없는 비판, 지도부 좌파에 대한 관심깊고 동지적이며 밀접한 관계 유지, 실제적인 합의를 맺을 용의 확보, 혁명적 좌파와의 좀더 밀접한 유대 등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에 대한 공산당의 올바른 정책이다.

노동조합 정책의 180도 전환; 노동조합의 단결에 기초하여 개량주의 지도부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산업 분야에서 공동전선 정책을 체계적으로 적용시켜야 한다. 명확한 요구들을 내건 강령에 기초하여 개량주의 공장위원회와 합의해야 한다.

가격 인하 투쟁.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투쟁. 이 투쟁을 생산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통제 투쟁으로 전환시키자.

단일 경제계획을 기초로 소련과 경제협력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관심 있는 독일 노동계급 조직들의 참여, 소련 내 해당 기구들에 의한 계획 초안 마련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계획의 기초 하에 독일을 사회주의 체제로 변모시키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노동계급 대오 내에서 비관주의자들과 냉소주의자들을 치명적인 감염 매개물로 인정하고 즉시 몰아내야 한다. 독일 노동계급의 내적 잠재력은 한없이 풍부하다. 이들은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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