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민족성개조
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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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퀴

 

■ 이 글은 무정부주의 국제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의 파리대회를 비판적으로 논평한 것이다. 이 글에서 트로츠키는 무정부주의 지도자의 정치적 · 이론적 파산을 가차 없이 폭로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의 무정부적 조합주의 그룹을 대표하는 이른바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ers’ Association, 스페인어로는 AIT(Asociación Intermcional de los Trabajadores)]의 대회가 12월 8일부터 17일까지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인터내셔널에서 제일 큰 지부는 스페인의 전국노동자연맹(CTN)이다. 그 밖의 조직(스웨덴, 포르투갈, 프랑스, 라틴 아메리카의 조직)은 모두 완전히 보잘것없는 규모이다.

물론 작은 조직이라도 미래의 계급투쟁의 발전을 기대하는 독자적인 혁명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꽤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제노동자협회 소식지(〈보레틴 데 인포르마시온〉(Boletin de información)의 독일어판 67호)에 게재된 간략한 보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빠리 특별대회는 가르시아 올리베르의 정책, 즉 자본가계급에 대한 굴복 정책의 전면적 승리로 끝났다.

지난 1년 동안 몇몇 무정부주의 출판물, 특히 프랑스의 출판물은 스페인 전국노동자연맹의 투쟁방식을 조심스럽게 비판해왔다. 이 비판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 전국노동자연맹의 지도자들은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대신에 부르주아 국가의 장관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정도 국제노동자협회 파리대회가 ‘전국노동자연맹의 노선을 승인’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스페인의 무정부적 조합주의 지도자들은 대회에서 자신들이 자본가계급을 구하기 위해 사회주의혁명을 배신한 것은 완전히 ‘국제 노동자계급의 불충분한 연대’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종류의 설명에 어떤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개량주의적 배신자들은 지금까지 항상 자신의 배신을 노동자계급 탓으로 돌렸다. 사회애국주의자들이 ‘자국의’ 군국주의를 지지한다면, 그것은 물론 자신들이 자본의 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중이 ‘아직 진정한 국제주의를 성숙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지도자가 파업파괴자로 등장한다면, 그것은 대중이 투쟁을 ‘진전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소식지에 게재된 보고는 파리대회에 대한 혁명적 비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른 많은 점에서처럼, 이 점에서도 무정부주의 신사양반들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를 고스란히 모방하고 있다. 왜 하층 집단에 상층부의 견해 차이를 들려주어야 하는가? 이것은 무정부적 부르주아 장관의 권위를 흔들 수밖에 없다. 프랑스 무정부주의자의 ‘좌익적’ 비판에 답하여 대회는 바로 이들이 지난 제국주의 전쟁에서 수행한 것을 상기시켰을 확률이 크다.

우리는 이미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예외적’ 상황 중에는 자기 강령의 원직을 포기해야 한다는 일부 무정부주의 이론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혁명가는 비가내릴 경우, 즉 ‘예외적’ 상황에서는 반드시 새지만,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완벽하게 방수처리가 되는 레인코트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파리대회의 결정은 가르시아 올리베르, 그리고 그와 같은 부류의 정책과 완전히 같은 수준에 있다. 국제노동자협회의 지도자들은 제2 인터내셔널, 제3 인터내셔널,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에 ‘국제 반(反)파시스트 공동전선’의 결성 제안을 호소하기로 결의했다.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이런 투쟁 방법이 발표되었다 :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파시스트 국가의 제품 보이콧’과 … ‘민주주의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

제2 인터내셔널의 지도자 블룸은 분명히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민주주의’ 프랑스의 수상이 되었으며,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을 분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했다. 블룸은 스탈린과 함께, 그리고 가르시아 올리베르의 협력을 얻어 네그린과 프리에토가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혁명을 압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서 주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혁명적 노동자계급과 싸우기 위한 3개 인터내셔널의 공동전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동되어왔다. 이 공동전선에서 전국노동자연맹의 지도자들은 눈부신 역할뿐만 아니라 꽤 추잡한 역할을 맡아왔다!

파리대회는 스페인 무정부주의자의 배신을 전 세계의 무정부주의에 전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특히 국제노동자협회의 총서기가 앞으로는 스페인의 전국노동자연맹에 의해 임명될 것이라는 사실로 표현된다. 바꿔 말하면, 국제노동자협회의 총서기는 지금부터 스페인 부르주아 정부의 관리가 될 것이다.

무정부주의 신사양반들, 반(半)무정부주의 이론가들, 반(半)이론가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여러분은 스페인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전례를 따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수레의 다섯 번째 바퀴(무용지물이라는 뜻-옮긴이) 역할을 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물론 많은 무정부주의자는 마음이 전혀 편치 않다. 그러나 이들은 이 불쾌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화제를 바꾼다. 왜 스페인이나 국제노동자협회 파리대회만을 말하는가 … 가장 뜨거운 쟁점인 … 크론슈타트나 마흐노에 대해서 …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무정부주의 인터내셔널은 그 해체와 붕괴에서 제2, 제3 인터내셔널에 뒤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정직한 무정부주의 노동자라면 그만큼 더 빨리 제4 인터내셔널을 발견할 것이다.

1938년 1월 27일

 

 

고발자역을 하는 배반자

 

■ 이 글은 스탈린주의자의 탄압에 협력한 무정부주의자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반대파 회보〉(1938년 12월) 제72호에 게재되었다.

 

신문의 긴급보도는 〈솔리다리닷 오브레라〉지가 세계 노동자계급이 스페인혁명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위선적인가! 노동자혁명을 지지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탄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기도 한 바로 그 신사양반들이 이런 비난을 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혁명은 봉기한 대중에 의해 실현된 사회강령에 비례하여 국제적 흡인력을 드러내는 법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계급은 스페인혁명이 사회주의를 향한 대중의 진정한 운동인 한, 숨을 죽이고 그 과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네그린 일파가 〈솔리다리닷 오브레라〉 무정부주의자의 지지로 스페인혁명을 질식시키기 시작하자, 노동자의 공감은 경악, 분노, 한층 더 악화된 무관심으로 변해버렸다.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돌린 이러한 비난의 위선성은 특히 통일노동자 당에 대한 바르셀로나 재판[1937년 중순에 스탈린주의 경찰에 체포된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이 1938년 10월,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반역죄와 스파이활동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1937년 5월봉기 에 참여한 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에 비추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우리는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이 파시스트와 관계가 있었다는 고발에 대해서 길게 얘기할 생각이 없다. 전 세계의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비열한 거짓말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검사의 발언 가운데 유일하게 진지한 혐의는 통일노동자당의 ‘극단적’ 혁명적 행동이 해외 즉, 영국과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보고 있는 데서 스페인혁명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말하고 싶은 고발장이다. 이것은 바르셀로나 정부가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허락을 얻어 … 혁명을 수행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페우의 임무는 조지 왕(영국의 국왕), 체임벌린(영국의 수상), 르브룅 대통령(프랑스의 대통령)[알베르 르브룅(Albert Lebrun, 1871~1950) : 프랑스 제3 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1932~40년). 1940년, 페뗑에 정권을 양보했다. 독일에 체포, 억류되었다.] 등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한계를 대중이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이 고상한 목표는 노동자 농민운동을 억압하고, 혁명당을 파괴하고, 사적 재판(kangaroo court)을 조직하는 것 없이는 달성될 수 없었다. 세계 노동자계급은 〈솔리다리닷(!) 오브레라〉의 고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 ‘배신자는 입을 다물어라!’

1938년 10월 22일

 

 

스페인의 비극

 

■ 이 글은 바르셀로나 함락이 가까웠던 시기에 작성되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10월혁명의 승리 이후, 여러 차례 반복된 승리 가능성이 있었던 혁명의 패배, 그것도 혁명지도부의 치명적인 오류에 의한 패배라는 비극(1918~19년의 헝가리혁명, 독일혁명, 오스트리아혁명, 1923년의 독일혁명, 1926~27년의 중국혁명, 그리고 1936~39년의 스페인혁명)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다.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지금 스페인에서 그 결론에 다가가고 있다. 프랑코 측에는 견고한 군대도, 인민의 지지도 없었다. 다만, 나머지 4분의 1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인민의 4분의 3을 피바다에 빠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유산자들의 탐욕만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식인적인 만행조차도 영웅적인 스페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승리를 얻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프랑코는 전선 반대편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는 이 런 도움을 얻었다. 그의 주된 조력자는 볼셰비키당과 노동자혁명의 무덤을 파는 자인 스탈린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수도인 바르셀로나의 함락은 1937년 5월의 바르셀로나 노동자계급의 봉기 학살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인 셈이다.

프랑코 자신이 보잘것없는 인물이고, 그의 도당이 명예, 양심, 군사적 재능도 없는 비열한 모험가들이었다고 하더라도, 프랑코에게는 단연 뛰어난 점이 있었다. 그는 명확하고 확실한 강령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자본주의적 소유, 착취자의 통치, 교회의 지배를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것, 따라서 군주제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一파시스트 국가든 민주주의 국가든一의 유산계급은 당연히 프랑코를 지지했다. 스페인의 자본가계급은 완전히 프랑코 진영으로 넘어가버렸다. 공화주의 진영의 선두에는 버림받은 자본가계급의 ‘민주주의적’ 시종들만이 있었다. 이 신사양반들은 파시즘 진영에 투항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의 영향력과 수입의 원천이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서 변호사, 의원, 저널리스트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의 민주주의적 옹호자들을 필요로(또는 필요로 했던!) 한다. 아사냐 일당의 강령은 과거에 대한 동경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무력하다.

인민전선은 대중이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 참주선동과 환상에 의지했다. 이것은 일정기간 성공을 거뒀다. 지금까지의 혁명의 모든 성과를 확보하고 있던 대중은 혁명이 그 논리적 귀결, 즉 소유관계의 전복, 농민에게로 토지 인도, 노동자에게로 공장 양도에까지 이를 것이라고 계속 믿고 있었다. 혁명의 원동력은 바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대중의 이런 희망에 있었다. 그러나 공화주의 신사양반들은 피억압 대중의 숙원을 짓밟고, 더럽히고, 아니 정말 피로물들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 결과, 지난 2년 동안 공화주의 도당에 대한 농민과 노동자의 증대하는 불신과 증오를 목격했다. 절망이나 활력을 잃은 무관심이 차츰 혁명적 열정과 자기희생 정신을 대체했다. 대중은 자기를 속이고 유린한 자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것이 공화국 군대가 패배한 근본적 원인이 다. 스페인의 혁명적 노동자에 대한 기만과 학살을 고무한 자는 스탈린 이었다. 스페인혁명의 패배는 이미 오점투성이인 크레믈린 일당에 지워지지 않는 새로운 오점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붕괴는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끔찍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지만, 중대한 교훈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다. 피착취 대중에 대한 기만과 배신의 조직적 체계인 스페인 인민전선의 메커니즘은 철저하게 폭로되었다.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구호는 다시 한 번 그 반동적 본질과 공허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본가계급은 착취자의 지배를 영속시키고 싶어 한다. 반면에, 노동자는 착취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한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기본적 계급의 진정한 임무이다.

자본가계급의 신뢰와 보조금을 잃은 가련한 소부르주아 중개업자 도당은 미래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과거를 구출하려고 했다. 이들은 인민전선이라는 딱지를 붙인 정치적인 공동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승리를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탈린의 지도 아래, 가장 끔찍한 패배를 보증했다.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주도권과 혁명적 영웅주의의 훌륭한 역량을 증명했다. 혁명은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철저히 타락한 ‘지도자’들에 의해 붕괴에 이르렀다. 바르셀로나의 함락은 무엇보다도 뼛속까지 썩은 무정부주의뿐만 아니라 제2, 제3 인터내셔널의 몰락도 의미한다.

노동자여, 새로운 길로 전진하자! 국제사회주의혁명의 길로 전진하자!

1939년 2월

 

 

스페인, 스탈린, 예조프

 

■ 이 글은 공화국 정부 붕괴 이후, 스페인혁명에서 저지른 스탈린주의자의 범죄 실태를 망명자들의 증언을 통해 분명히 하려는 목적에서 쓴 글이다. 스페인혁명 중에 게페우의 하수인은 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을 납치, 고문, 학살하는 등 온갖 비열한 범죄를 저지르며 혁명을 내부로부터 파괴하고,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 이러한 범죄는 혁명을 위협하는 트로츠키주의자를 숙청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가장 정직한 혁명가들을 매장하는 것으로 스페인혁명에 대한 최대의 타격이 되었다.

 

게페우의 이전 수장인 예조프[니콜라이 예조프(Nikolai Yezhov, 1895~1938) : 노동자출신으로, 1936~38년에 게페우의 수장으로서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다. 너무도 큰 악평을 샀기 때문에 1938년에 파면, 자살했다.]는 수많은 이유 때문에 치욕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의심할 여지없이 스페인 사태와 관련되어 있다. 공화주의 정부군의 참패는 게페우의 직접적 이고 가장 적극적인 관여로 일어났으며, 이는 게페우와 크레믈린에 있는 그 주인 모두에게 대단히 큰 위험이다.

스탈린이 고용한 국제적 불한당들에 의해 이베리아반도에서 저질러진 무수한 범죄는 지금 불가피하게 표면화되고 있다. 몇 십, 몇 백, 몇 천의 증언자, 희생자, 참가자가 지금 스페인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피난하고 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저지른 게페우의 범죄 행위에 관한 증언을 모든 곳에 전할 것이다. 진실은 모든 나라의 광범위한 주민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공화주의자가 승리를 거두었다면, 많은 사람은 스탈린의 범죄를 묵인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것이다: ‘승자는 심판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혁명가에 대한 파렴치한 학살은 프랑코의 승리를 용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임이 완전히 분명해지고 있다. 눈가림당한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안대가 떨어질 것이다.

자신의 전통적 방식에 따라 스탈린은 예조프를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늦지 않게 해임시키려고 했다 : ‘이 모든 것은 예조프가 범한 죄지, 나의 죄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가, 더욱 더 어리석어 보이기 시작 하는 이런 비열한 책략을 믿을 것인가? 스페인에서의 범죄행위에 대해, 스탈린 자신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다. 코민테른의 배신적 정책과 게페우의 살인적 정책 모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든 게페우의 지배를 빠져나온 사람들이 있다. 스페인의 대학살 이후, 이러한 사람들의 수는 현저하게 증대했다. 꽉 움켜쥔 발톱에서 희생자를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자, 게페우의 하수인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 ‘우리가 멀리까지 미치는 손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라!’ 이런 협박에 대한 공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입을 봉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겁에 질린 이 사람들을 변호하는데 우리의 힘을 다 쏟아야 한다. 모든 나라의 우리의 동지들은 게페우의 모든 이전 희생자와 부분적 희생자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그들의 직접적인 의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이들의 폭로가 대중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 소련에 있는 이들의 친척이 고통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제4 인터내셔널의 조직은 이러한 폭로에 대중적 성격을 부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현재, 이것이야말로 국제 스탈린주의 마피아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대단히 긴급한 임무이다!

1939년 3월 4일

 

 

제국주의의 미스터리

 

■ 파시스트 프랑코와 내전을 벌이고 있던 공화주의 스페인에 대한 지원을 거부해온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민주주의의 친구’, ‘평화의 친구’를 자칭하며 프랑코의 승리 이후, 스페인에 독일과 이탈리아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에 맹렬히 반대했다. 이 글은 이런 제국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의 위선과 음모를 폭로하고 있다.

 

같은 급의 ‘평화’의 친구인 사회주의자 레옹 블룸과 보수주의자 체임벌린은 스페인 사태에 대한 불간섭에 찬성했다. 전(ex)一볼셰비키 스탈린은 전(ex)一멘세비키 대사 마이스키[이반 마이스키(Ivan Maisky, 1884-1975) : 멘셰비키 출신 외교관. 1921년에 입당하여 1922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1932~43년까지 영국 대사를 지냈다.]를 통해서 이들과 손을 잡았다. 계획의 미묘한 차이는 이들이 똑같이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 우호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체임벌린은 현재, 만약 프랑코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와 독일이 이른바 ‘의용병’을 철수시키지 않는다면, 영국은 전쟁에 버금가는 가장 중대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불간섭’ 정책의 유명한 지지자인 급진사회당의 달라디에도 이 문제에서 체임벌린을 전면 지지하고 있다. 이 신사양반들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무력으로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심지어 이 경험 많은 인간애 지지자들의 평화 애호조차 한계가 있다. 체임벌린은 공공연하게 이렇게 말한다 : 이베리아반도에 이탈리아와 독일 병사들이 주둔하는 것은 지중해의 ‘균형’을 깨뜨릴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영국과 프랑스는 결코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프랑코를 도와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압살할 수 있게 된 지금, 이들은 지중해의 ‘균형’을 무력으로 지지할 충분한 각오를 하고 있다. 이 불가사의한 전문용어(‘균형’)는 노예 소유자가 자신의 식민지 점령과 이 점령을 인도하는 해로를 방어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의 신사양반들에게 삼가 질문한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 옹호를 약속한 위대한 동맹을 수립하려면 정확히 어떤 역사적, 정치적, 그 밖의 조건이 필요한가? 프랑스 정부는 ‘인민전선’에 의지했다.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의 투쟁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의무가 더 단호한 형태로 나타날 다른 사례를 생각해낼 수 있는가? ‘인민전선’의 지지를 받는 ‘사회주의(사회당)’ 정부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사회당)’가 이끄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제기되는 문제는 어떤 정부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임무에 전념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와 코민테른의 점쟁이들이 어쩌면 이를 잘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 두 제국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그 지배계급을 대표하여 처음부터 완전히 프랑코를 지지했다. 다만 프랑코의 승리 가능성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며, 프랑코에 대한 자신의 공감이 너무 일찍 발각되어 체면을 깎아 먹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렇지만 프랑코의 승산이 높아짐에 따라,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의 진면목이 더욱 더 분명하게, 더욱 더 공공연하게, 더욱 더 파렴치하게 드러났다. 대영제국이나 프랑스는 모두 식민지, 반(半)식민지, 따라서 약소민족을 민주주의나 심지어 반(半)민주주의 체제를 통하는 것보다도 군사독재를 통해 지배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영국의 보수당 정권과 동맹을 맺는 것은 프랑스 하원의 극우 반동분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소부르주아인 블룸에게도 불변의 계율이다. 이 계율은 프랑스의 증권거래소로부터 나온다. 스페인에 대한 영국의 계획은 처음부터 확고했다. 이들을 싸우게 하자. 누가 승리하든 나라의 경제부흥을 위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독일도 이탈리아도 이 자금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승자는 런던, 부분적으로는 파리에 의지할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조건을 상대에게 명령할 수 있을 것이다.

블룸은 처음부터 영국의 계획을 완벽하게 전수받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준(準)사회주의 정부는 전적으로 프랑스 자본가계급에 의존하고, 프랑스 자본가계급은 영국 자본가계급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블룸은 민주주의의 구제보다 세계평화의 유지가 훨씬 더 신성한 임무라고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영국 자본의 계략을 은폐하고 있었다. 이 더러운 임무를 일부 수행하고 나서 블룸은 프랑스 자본가계급에 의해 야당으로 전락했으며, 다시 스페인 공화주의를 돕는 신성한 의무에 대해서 외칠 기회를 얻었다. 값싼 좌익적 빈말이 없다면, 블룸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 정도까지 배신적인 형태로 프랑스 자본가계급에 봉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모스크바의 외교관도 스페인 민주주의를 위하여 약간 이를 악문 것 같은 말투로 말한다. 이 스페인 민주주의야말로 모스크바의 정책이 파괴한 것이다. 그러나 모스크바는 지금 대단히 신중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암중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보나파르트주의자는 아마 자신들의 지배를 한 주(週)라도 더 연장시킬 수 있다면, 국제 노동자계급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모든 민주주의를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모두 허세로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나 체임벌린, 달라디에, 심 지어 루즈벨트까지 겁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제국주의자가 겁먹지 않는다면, 허세는 처음에 모스크바나 베를린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갈지도 모른다. 자신의 책략을 은폐하기 위해서 크레믈린도당은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 도움이 값이 너무 비싸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거칠게 말하면, 사회애국주의 신사양반들은 의식적인 악당과 얼마간 성실한 바보로 나눠질 수 있다. 그렇지만 중간적이거나 혼합적인 유형이 적지 않다. 일찍이 이 신사양반들은 ‘불간섭’이라는 추잡한 코미디를 견디며 스탈린이 노동자 스페인을 압살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이와 함께 공화주의 스페인도 도살된 것으로 드러나자, 이들은 인민전선이나 ‘민주주의적 동맹’을 전혀 거부하지 않은 채, 항의의 표시로 자신의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제국주의의 의식(儀式)에서 이런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가장 굴욕적이고 가장 파렴치한 소임을 다한다.

스페인 인민의 혈관에는 아직 내뿜지 않은 피가 남아있다. 누가 이것을 먹어치울 것인가? 히틀러一무쏠리니인가, 프랑스 공범자들과 작당한 체임벌린인가? 이 문제는 가까운 장래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역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평화, 민주주의, 인종, 권위, 질서, 균형을 위한투쟁과 다른 다수의 고귀하고 무게를 달 수 없는 일을 위한 투쟁은 새로운 세계분할을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 스페인의 비극은 새로운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길에서 닥친 한 에피소드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모든 색조의 지배계급은 새로운 세계대전을 두려워하면서도 전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인민전선의 허풍은 다른 악당이 혈통, 명예, 인종에 관한 공문구를 같은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계략을 인민대중에게 은폐하려는 일부 제국주의자에게 도움이 된다. 소부르주아 수다쟁이나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사람은 노동자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제국주의자의 전쟁 준비를 더 쉽게 해줄 뿐이다.

요컨대, 다양한 목적에서, 그리고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새로운 인간 살육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전위를 제국주의와 그 추종자로부터 떼어놓음으로서만 인류는 파괴와 파멸로부터 구제될 수 있다. 노동자정치의 완전한 독립, 파시스트적이거나 민주주의적인 제국주의의 의식(儀式)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 그리고 국제 노동자혁명의 완강한, 체계적인, 끈기 있는 준비에 의해서만 인류는 파괴와 파멸로부터 구제될 수 있다!

1939년 3월 4일

 

 

다시 한 번 스페인의 패배 원인에 대해서

 

■ 이 글은 스페인혁명의 패배 원인을 둘러싼 귈레르모 베가스 레온이라는 멕시코 필자의 서론을 비판하며, 혁명의 원칙적 문제를 다시 논한 글이다.

〈사회주의자의 호소〉 1939년 3월 21일자에 처음 게재되었다.

 

우산의 발명자

옛 프랑스의 유머작가는 일찍 이 어느 소부르주아가 어떻게 우산을 발명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썼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던 그는 거리를 지붕으로 덮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그러면 공기의 자유로운 순환을 방해할 것 이다. … 그렇다면 지붕을 이동식으로 해서 각자가 가리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움직이게 하지? 일종의 지렛대를 쥐고 보행자가 지붕을 손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등등. 마침내 그 발명자는 소리쳤다. “흥! 이런, 우산이잖아!” 요즘도 이런 발명자를 ‘좌익’ 사이에서 매번 만날 수 있다!

옛날에 볼셰비키주의는 여러 해 동안 개량주의 정책의 신용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반동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함과 동시에, 스탈린주의자는 자신의 부하들 모두와 더불어 다시 개량주의의 우산을 발명하기 시작했다: ‘인민전선’(자본가계급과의 제휴), 민주적인 조국을 방어하는 노동자계급의 의무(사회애국주의) 등등. 그리고 이들은 이를 완전히 무지의 힘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새로 발명된 우산

그 학식의 깊이, 사상의 정직함, 정치적 입장의 혁명적 성격에서 거의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멕시코의 신문 〈엘 포푸라르〉(El Popular, 대중)에서 우리 독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궐레르모 베가스 레온(Guillermo Vegas León)은 새로 발명된 우산의 도움을 빌려 스페인의 ‘인민전선’ 정책을 옹호하고 나선다. 알다시피, 스페인의 전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반(反)파시즘 전쟁이다. 반(反)파시즘 전쟁에서 공장이나 토지의 장악과 같은 모험에 관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러한 계획은 파시즘의 지지자들만이 제의할 수 있다. 기타 등등. 역사적 사태는 값싼 신문 기삿거리의 왕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레온 씨는 이것과 같은 우산이 러시아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케렌스키의 당)에 의해 사용된 것을 모르고 있다. 이들은 당시, 러시아혁명은 ‘민주주의’혁명이며, 사회주의혁명은 아니라고 싫증 한번 내지 않고 반복하고 있었다. 신생 민주공화국을 위협하고 있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생산수단의 몰수와 같은 모험에 착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호엔쫄레른 가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불한당들이 있다. 이들은 또한 볼셰비키가 어떤 말 못할 이유 때문에 이러한 일을 했던 것이라고 단언했다.

 

혁명의 계급적 성격

혁명이 ‘반(反)파시스트’적인가 노동자적인가, 부르주아적인가 사회주의적인가 하는 것은 정치적 레테르가 아니라 해당국가의 계급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레온에게 대체로 19세기 중반 이후의 사회발전 과정은 간과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 발전과정은 중소 자본가 계급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이들의 체면을 깎고 격하시켰으며, 휩쓸어버렸다. 스페인을 포함하여 현대사회의 주요한 계급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권력을一여하튼 간에 오랜 기간에 걸쳐一장악할 수 없다. 권력은 틀림없이 자본가계급이나 노동자계급 둘 중 하나의 수중에 있을 것이다. 소유재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페인의 자본가계급은 파시즘 진영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파시즘에 대항하여 진지한 투쟁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노동자계급이다. 노동자계급만이 피억압 대중, 무엇보다도 스페인 농민을 결집시킬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력은 사회주의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의 예

그러나一레온 씨는 반대한다一당면한 목표는 반(反)파시즘 투쟁이다. 우리의 모든 힘을 이 당면한 목표에 집중시켜야 한다, 등등. 물론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러나 아무쪼록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왜 반(反)파시즘 투쟁 중에는 토지가 지주의 것이어야 하며, 공장과 제작소가 자본가계급의 것이어야 하는가, 이들은 모두 프랑코 진영에 있는가? 혹시 농민과 노동자가 토지와 공장을 장악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들은 자발적으로 토지와 공장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성숙도를 증명했다. 공화주의자를 자처하는 반동들은 스탈린주의자의 지도 아래, 들리는 바에 따르면 ‘반(反)파시즘’의 이름으로 이 강력한 운동을 분쇄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부르주아적 소유자를 위해서였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현재, 중국은 대(對)일본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 이 전쟁은 확실히 약탈자와 억압자에 대한 방어 전쟁이다. 이 전쟁을 구실로 스탈린 정권의 도움을 받은 장개석 정부는 모든 혁명투쟁, 특히 토지를 위한 농민투쟁을 분쇄했다. 착취자와 스탈린주의자는 ‘지금은 토지문제를 해결할 때가 아니다. 지금의 문제는 천황에 대한 공동의 투쟁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바로 중국의 농민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이들은 토지를 지키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일본 제국주의자에 맞서 싸웠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10월 혁명의 경우를 상기해보아야 한다. 10월 혁명은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 군을 포함하여 3년간에 걸친 전쟁에서 무수한 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승리는 무엇보다도 이 전쟁 내내 농민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었고, 동시에 노동자가 제작소와 공장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보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혁명과 내전의 융합만이 러시아혁명을 정복할 수 없게 했다.

레온 씨 같은 신사양반들은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붙이는 이름에 따라 혁명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것이 현실의 계급투쟁에서 표현되는 방식이나, 혁명적 대중에 의해 어떻게 감지되고 있는지一비록 반드시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닐지라도一에 따라서는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스페인혁명을 자유주의적 속물인 아사냐의 시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르셀로나와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와 세빌랴의 농민의 시각을 통해서 바라본다. 이들은 결코 인민전선이라는 낡은 의회주의의 우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작소와 공장, 토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

 

‘반(反)파시즘’이라는 공허한 추상

‘반(反)파시즘’과 ‘반(反)파시스트’라는 개념 자체는 허구이고 거짓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현상을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아사냐가 ‘반(反)파시스트’인 것은 부르주아 지식인이 의회주의적이거나 그 밖의 경력을 쌓는 것을 파시즘이 방해하는 경우뿐이다. 파시즘과 노동자혁명 중에서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 아사냐는 항상 파시스트 편임이 드러날 것이다. 혁명 7년간에 걸친 그의 정책 전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파시즘 반대, 민주주의 옹호!’ 구호는 전쟁 중에 공화주의 진영 내에는 어떠한 민주주의도 없었고, 또 지금도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수백, 수천만의 대중을 끌어당길 수 없다. 프랑코나 아사냐 진영 모두에는 지금까지 군사독재, 검열, 강제동원, 굶주림, 유혈, 죽음이 존재해 왔다. ‘민주주의 옹호!’라는 추상적 구호는 자유주의적 저널리스트에게는 충분한 것이지만, 피억압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노예상태와 가난 외에는 지킬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동시에 새롭고 더 나은 생활조건을 실현할 수 있을 경우에만 파시즘을 분쇄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따라서 파시즘에 대한 노동자와 빈농의 투쟁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방어적일 수 없으며, 오직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좀 더 ‘권위 있는’ 속물을 따라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거부한다, 따라서 반(反)파시즘 투쟁 중에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한다는 생각은 공상적’이라는 레온의 설교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를 전복하지 않고도 파시즘과 투쟁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최악의, 그리고 가장 반동적인 형태의 유토피아주의다.

 

승리는 가능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신사양반들의 완전한 무지이다. 이들은 민주주의혁명이라는 개념 자체와 그 내적인 계급 구조가 분석一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착수하기 시작한一되어 있는 수많은 문헌이 있는지 낌새도 채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첫 4개 대회의 기본문서 나, 제4 인터내셔널의 이론적 탐구에 대해서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 문서들은 지금 상황에서 반(反)파시즘 투쟁은 권력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 방식에 의하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초보자도 잘 알 수 있게 증명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 신사양반들은 역사를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조건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역할을 배분하고, 승리의 개선문에 대문자로 ‘사회주의혁명의 입구’라고 새기고, 승리를 보증하고, 그 다음에 존경할만한 지도자들을 장관, 대사 등 중요 직책에 취임하도록 정중하게 초대하는 것으로 상상하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다소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고, 위험하다. 기회주의자, 반동적 얼간이, 소부르주아 겁쟁이들은 사회주의혁명이 일정에 오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즉, 볼셰비키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계급적 공포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교양 있는’ 소부르주아 계급의 여론을 멸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충분히 강했다

전국노동자연맹(CNT)과 무정부주의 연합(FAI)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1937년 5월 봉기 이후에 이렇게 말했다 : ‘우리가 바라기만 했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세력이 우리 편이었지만 우리는 어떠한 독재도 바라지 않았다’ 등등. 자본가계급의 무정부주의자 하인이 무엇을 바랐는지 바라지 않았는지는 결국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봉기한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했을 정도로 강력했다고 인정했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배신적인 지도부가 아니라 혁명적인 지도부를 가졌다면, 아사냐의 모든 국가기구를 일소하고, 소비에트 권력을 수립하여 농민에게 토지를, 노동자에게 제작소와 공장을 맡겼을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 되었을 것이며, 정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에는 혁명정당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신에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라고 상상하는 수많은 반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인민전선의 깃발 아래, 사회주의혁명을 질식시키고 프랑코의 승리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독일 나찌의 군사간섭과 영국과 프랑스 ‘민주주의’ 국가의 배신적 행위를 언급함으로써 패배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소리다. 적은 언제나 적일뿐이다. 반동은 항상 할 수 있을 때는 언제나 간섭할 것이다. 제국주의적 ‘민주주의’는 항상 배신할 것 이다. 이것은 노동자혁명의 승리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의 승리 그 자체는 어떤가? 거기에서는 어떠한 간섭도 없었다. 그 대신에 우리는 독일의 경우에는 강력한 노동자계급과 매우 큰 사회주의 정당은 물론 거대한 공산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파시즘에 대해서 승리를 거둘 수 없었는가? 그것은 바로, 이들 나라 모두에서 지도적 정당들이 사회주의혁명만이 파시즘을 패배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反)파시즘’ 투쟁으로 문제를 축소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스페인혁명은 최상의 학교였다. 스페인혁명의 값비싼 교훈을 경솔하게 다루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속임수, 미사여구, 자기만족적 무지, 지적 기생을 집어치워라! 우리는 진지하게, 정직하게 배우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1939년 3월 4일

 

 

계급, 당, 지도부一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왜 패배했는가?

 

노동자계급운동이 얼마나 퇴보했는가는 대중조직의 상태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그 그룹과 매우 많은 그룹이 적극 관여하는 이론적 탐구 수준에 의해서도 측정될 수 있다. 파리에서 발행되고 있는 잡지 〈끄 페르〉(Que Faire, 무엇을 할 것인가)는 몇 가지 이유로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하지만, 실제로는 좌익 부르주아 지식인과 지식인들의 모든 악습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 고립된 노동자들의 경험주의 관점에 철저히 안주하고 있다.

강령이나 어떤 전통도 없으며, 과학적 근거를 결여하고 있는 모든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은 잡지도 통일노동자당에 편승하여 성공하려고 했다. 이들에게는 노동자당이 대중과 승리에 이르는 최단 길을 열어젖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페인혁명과 맺은 이런 관계의 결과를 처음에는 전혀 예상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 이 잡지는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론적으로) 퇴보했다. 이것은 실제로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소부르주아 보수주의와 노동자혁명에 대한 요구 사이의 모순은 이미 극도로 발전해 있다. 따라서 노동자당의 정책을 옹호하거나 수용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정치적, 이론적 영역 모두에서 아득히 퇴보했음을 깨달을 것이다.

〈끄 페르〉지 자체는 아무 중요성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스페인혁명 붕괴의 원인에 대한 이 잡지의 평가가 현재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의 좌익 사이에 넓게 퍼져있는 기본적 특징을 매우 생생하게 폭로하는 한, 우리는 이 평가를 검토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본다.

 

〈끄 페르〉지의 변명

먼저, 카사노바 동지가 쓴 팸플릿 ‘배반당한 스페인’(제4 인터내셔널 스페인지부의 지도자인 M. 카사노바가 혁명 패배 직후인 1939년 3월에 썼다.一옮긴이)에 대한 이 잡지의 논평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왜 혁명이 분쇄되었는가? 필자(카사노바)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공산당이 혁명적 대중이 따르지 않았던 그릇된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대체 왜 이전 지도자들과 결별한 혁명적 대중이 공산당의 기치로 결집했는가? 필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혁명정당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전한 동어 반복이다. 대중의 그릇된 정책이나 당의 미성숙은 그 어느 쪽이든 간에 다 사회세력의 특정 상태(노동자계급의 미성숙, 농민의 독자성 결여)를 나타낸다. 이러한 상태는 사실에 따라 설명되어야 하고, 특히 카사노바 자신에 의해 제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의로 가득 찬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의 그룹이 저지른 행동의 산물이 될 것이다. 이런 행동은 유일하게 혁명을 구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들’의 노력과 일치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마르크스주의적인 길을 모색한 후, 카사노바는 두 번째 길을 선택한다. 그는 우리를 순전한 악마학(demonology)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 패배에 책임이 있는 범죄자는 악마의 두목 스탈린이고, 무정부주의자나 그 밖의 다른 소악마가 스탈린을 부추겼다. 혁명가의 신(神)은 유감스럽게도 1917년에 러시아에서 했던 것처럼, 스페인에 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인물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 “현실에 대해 교회가 경직된 정통적 신념을 기어코 강제하려는 것의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이론적 오만함은 종(種)적으로 완전히 보수적인 속물들에게서 매우 많이 나타나는 진부함, 천박함, 오류가 어떻게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의해 오히려 빛나고 있다.

위에 인용한 글의 필자는 스페인혁명의 패배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회피한다. 그는 단지 ‘사회세력의 상태’ 같은 깊이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할 뿐이다. 모든 설명을 회피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볼셰비키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자들은 모두 이론에 관한 겁쟁이다 : 왜냐하면 확고한 자기 의견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파산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실을 조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염탐한다. 이들은 단지 자신의 학식을 충분히 보여줄 시간이 없는 것처럼 암시와 애매한 생각을 말하는 선에서 그친다. 사실 이들은 뭔가 말해줄만한 학식이 없다. 이들의 오만함은 지식인들의 허풍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필자의 암시와 애매한 생각을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그에 따르면, 대중의 그릇된 정책은 ‘사회세력의 상태를 나타내는’ 즉, 노동자계급의 미성숙과 농민의 독자성 결여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동어반복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이보다 더 밋밋한 동어반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대중의 그릇된 정책’이 대중의 ‘미성숙’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미성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릇된 정책에 빠지기 쉬운 경향이다. 그릇된 정책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주창했는가, 대중인가 지도자인가? 이 점에 대해 필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동어반복을 통해 그는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모든 배반자와 도망자, 그리고 그 변호인들의 이런 고전적인 수법은 스페인 노동자계급과 관련해서 특히 비위에 거슬린다.

 

 

배신자의 궤변

1936년 7월一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一스페인의 노동자는 인민전선의 비호 하에 음모를 꾸민 장교들의 공격을 물리쳤다. 대중은 임시변통으로 의용군을 조직하고, 미래 노동자독재의 거점인 노동자위원회를 수립했다. 이에 반해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조직은 자본가계급이 이 위원회를 파괴하고, 사적 소유에 대한 노동자의 공격을 일소하고, 노동자의용군을 자본가계급의 지휘에 따르도록 도왔다. 게다가 노동자 당은 카탈로니아정부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반(反)혁명 활동에 대한 책임을 직접 떠맡았다.

이 경우, 노동자계급의 ‘미성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지하듯 이것은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한다. 즉, 대중은 올바른 정치노선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과 사회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노동자당의 연립정부를 분쇄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궤변은 어떤 절대적인 성숙의 개념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올바른 지도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기 지도부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는 대중의 완전무결한 상태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숙은 있지도 않고, 또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왜 이와 같은 올바른 혁명적 본능과 탁월한 투쟁자질을 발휘한 노동자가 배신적인 지도부에 복종했는가?一이 박식한 양반들은 이렇게 반론한다.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 털끝만한 복종도 없었다. 노동자의 진로는 언제나 지도부의 노선에 대해서 일정한 각도를 이룬다. 그리 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이 각도는 180도를 이룬다. 그 결과, 지도부는 직간접적으로 노동자를 무력으로 제압하게 된다.

1937년 5월, 카탈로니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도부를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도부에 대항하여 봉기했다. 무정부주의 지도자들一애쓰지 않고 혁명가로 가장한 측은하고 한심한 부르주아들一은 자신의 신문을 통해 수백 번 반복했다 : 5월에 전국노동자연맹이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를 수립하고자 했다면,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이때 무정부주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순수한 충정(衷情)을 표명한 것이다. 노동자당 지도부는 실제로 전국노동자연맹에 질질 끌려 다녔다. 아들은 단지 전국노동자연맹의 정책을 다른 용어로 완전히 감추어주었을 뿐이다. 자본가계급이 ‘미성숙한’ 노동자계급의 5월 봉기를 분쇄하는데 성공한 것은 이 덕분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스페인 대중은 단지 자신의 지도자를 따랐을 뿐이라는 공허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계급과 당, 대중과 지도자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단 하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올바른 길로의 돌파구를 열려고 노력해온 대중은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혁명의 요구에 일치하는 새로운 지도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일임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앞날은 혁명의 다양한 단계가 급속히 바뀌고, 지도부나 지도부의 다양한 부위가 재빨리 계급의 적 진영으로 도망치는 완전히 동적인 과정이다. 그런데도 이 박식한 양반들은 단지 정적인 논의에 사로잡혀 있다 : 왜 전체 노동자 계급은 수준 미달의 지도부를 따랐는가?

 

변증법적 접근

진화론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역사관에서 나온 오랜 경구가 있다 : 모든 국민은 그에 상응하는 정치체제를 갖는다. 그러나 역사는 동일한 국민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매우 다른 정치체제를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게다가 이런 정치체제 의 순서가 동일한 방향으로 즉, 자유주의적 진화론자가 상상한 것처럼, 독재에서 자유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 비밀은 국민이 적대적인 계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급 자체도 상이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각기 다른 지도를 받는 적대적인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모든 국민은 계급으로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인 다른 나라 국민의 영향을 받는다. 정치체제는 ‘국민’의 체계적으로 증대하는 ‘성숙’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계급 사이의 투쟁과 동일한 계급 내부의 다른 계층 사이의 투쟁의 산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외부세력의 행동 즉, 동맹, 대립, 전쟁 등의 산물이다. 여기에다 정치체제는 일단 수립되면, 그 자체로 정치체제를 만들어낸 세력들의 관계보다 훨씬 더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다는 점을 덧붙여야 한다. 바로 이런 역사적 모순에서 혁명이나 쿠데타, 반(反)혁명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증법적 접근이야말로 한 계급의 지도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자유주의자인 체하는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모든 계급은 그에 상응하는 지도부를 갖는다는 격언을 넌지시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제로 지도부는 계급의 단순한 ‘반영’이거나 계급 자신의 자유로운 창조물이 결코 아니다. 지도부는 다른 계급 사이의 충돌이나 해당 계급 안의 다른 계층 사이의 마찰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이렇게 해서 일단 지도부가 세워지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 계급을 초월함으로써 다른 계급의 압력이나 영항을 받기 쉬워진다. 노동자 계급은 이미 완전한 내적 타락을 겪었지만 거대한 사태 속에서 아직까지 이 타락을 발현시킬 기회를 갖지 않은 지도부를 장기간에 걸쳐서 ‘묵인’할 수도 있다.

지도부와 계급 사이의 모순이 날카롭게 폭로되기 위해서는 거대한 역사적 충격이 필요하다. 가장 강력한 역사적 충격은 전쟁과 혁명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종종 부지불식간에 전쟁과 혁명에 기습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 지도부가 그 내적 타락을 드러낸 경우에도 해당 계급이 즉시 새로운 지도부를 임시변통으로 만들 수는 없다. 특히 해당 계급이 그 이전 시기부터 낡은 지도적 정당의 붕괴를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혁명적 중핵을 물려받지 못한 경우에는 그렇다. 계급과 그 지도부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해석 즉, 변증법적이고 스콜라적이지 않은 해석은 〈끄 페르〉지 필자의 형식에 치우친 궤변에 대한 유일한 처방이다.

 

러시아의 노동자는 성숙했는가.

그는 노동자계급의 성숙을 완전히 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혁명의 와중에서 어느 계급의 의식은 혁명의 진로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가장 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1917년 1월이나 심지어 이미 짜르체제를 타도한 3월에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향후 8~9개월 사이에 권력을 장악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었는가?

노동자계급은 당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이질적이었다. 전쟁 중에 벌써 노동자계급의 30~40%가 소부르주아 계급 출신들로 교체되었다. 이들은 대개 반동적이었으며, 후진적인 농민이나 여성, 청년 등이었다. 1917년 3월에 볼셰비키당을 지지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보잘것없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게다가 당내에서는 여러 의견이 대립했다.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즉, 보수적인 사회애국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군대와 농민에 관해서는 상황이 한층 더 불리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 러시아의 전반적인 문화수준이 낮고, 농민이나 병사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계급의 가장 광범한 계층에서도 정치적 경험이 부족했다. 특히 지방에서 그랬다.

볼셰비키주의의 강점은 무엇이었는가? 혁명 초에 명확하고 여러 모로 철저하게 생각한 혁명적 구상은 오직 레닌만이 품고 있었다. 당의 러시아 중핵은 분산되어 있었으며, 상당히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은 선진 노동자 사이에 권위가 있었다. 레닌은 당의 중핵에 대해서 커다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레닌의 정치적 구상은 현실의 혁명발전에 일치했으며, 매번 새로운 사태에 의해 강화되었다. 이러한 강점은 혁명정세 즉, 격렬한 계급투쟁의 상황 속에서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당은 자신의 정책을 신속하게 레닌의 구상에 합치시켰다. 즉, 혁명의 실제적 진로에 합치시켰다. 이 덕분에 당은 수많은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몇 개월 안에 당은 혁명의 발전 자체에 근거함으로써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구호의 올바름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소비에트로 조직된 다수의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자기가 병사와

농민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이런 동적이고 변증법적인 과정이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성숙이나 미성숙이라는 정식에 의해 망라될 수 있는가? 1917년 2월이나 3월에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성숙에서 거대한 요인은 바로 레닌이었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통을 체현 하고 있었다. 레닌의 구호가 대중에게 이르기 위해서는 처음에 비록 그 수가 작더라도 중핵이 존재해야 했다. 중핵과 지도부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했으며, 이 신뢰관계는 과거의 경험 전체에 근거했다. 이런 요소를 미래에 대한 고려로부터 삭제하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혁명을 묵살하고, ‘세력관계’를 추상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의 발전은 바로 노동자계급의 의식의 변화 효과 속에서 세력관계의 끊임없는, 그리고 급속한 변화, 후진적 계층의 선진적 계층으로의 견인, 자신의 힘에 대한 계급의 점증하는 확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당의 구조에서 결정적인 추진력이 지도부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과정의 결정적 추진력은 당이다. 혁명적 시기에서 지도부의 역할과 책임은 거대하다.

 

‘성숙’의 상대성

10월의 승리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성숙’을 나타내는 중대한 증거이다. 그러나 이 성숙은 상대적이다. 몇 년 뒤, 바로 같은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대오에서 자라난 관료주의가 혁명을 질식시키도록 내버려두었다. 승리는 노동자계급의 ‘성숙’의 잘 익은 과실이 결코 아니다. 승리는 전략적 과제이다.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위기의 유리한 조건을 잘 활용해야 한다. 대중의 ‘성숙’ 정도를 출발점으로 삼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적은 결코 전능하지 않다는 사실, 적은 자가당착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있다는 사실, 당당한 외관 뒤에는 공포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대중이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만약 볼셰비키당이 이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면, 노동자혁명의 승리는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소비에트는 반(反)혁명에 의해 분쇄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나라의 얄팍한 현자 양반들은 러시아에서 수적으로 너무 소수이고, 또 미성숙한 노동자계급의 독재를 꿈 꿀 수 있다는 것은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기조의 논문과 책을 썼을 것이다.

 

농민의 보조적 역할

(스페인혁명의 패배 원인으로서) 농민의 ‘독자성 결여’를 언급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미성숙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이고 현학적이며 그릇된 것이다.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독자적으로 혁명적인 강령을 내걸거나 독자적으로 혁명을 주도할 역량을 가진 농민을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목격했는가? 농민이 혁명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스페인 농민은 대담하게 행동했으며,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농민대중 전체를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계급에 대한 결정적 봉기로 본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승리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농민에게 불어넣어야 했다. 그 사이에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주도력 자체는 자신의 조직에 의해 차츰 마비되었다.

노동자계급의 ‘미성숙’, 농민의 ‘독자성 결여’는 역사적 사건에서 최종적이거나 기본적인 요인이 아니다. 계급의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계급 자신, 그 수적인 힘, 경제활동에서의 그 역할이다. 그리고 계급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생산의 특수한 시스템이고, 이 시스템은 생산력의 발전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왜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패배는 낮은 기술 수준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가?

 

개인의 역할

〈끄 페르〉지의 필자는 역사발전 과정의 변증법적인 조건을 기계적 결정론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하거나 악한 개인의 역할을 우습게 여긴다. 역사는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그러나 계급이 자동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지는 않는다. 투쟁의 과정에서 계급 은 다양한 기관을 창출하는데, 이 기관은 중요하고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변형을 겪는다. 이는 또한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물론 히틀러의 전제적 지배를 낳은 커다란 객관적 원인이 있지만, 오늘날 히틀러 개인의 극악한 역사적 역할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결정론’에 사로잡힌 머리 둔한 현학자들뿐이다. 1917년 4월 3일, 레닌이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덕분에 볼셰비키당은 제때에 방향을 바꿨으며,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만약 레닌이 1917년 초에 해외에서 죽었다면 10월 혁명은 ‘어쨌든’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레닌은 역사발전 과정의 살아 움직이는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레닌은 노동자계급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부위의 경험과 통찰력을 체현하고 있었다. 전위를 동원하고, 전위가 노동자계급과 농민 대중을 결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레닌이 혁명의 무대에 때맞춰 나타날 필요가 있었다. 역사적 전환의 결정적 순간에 정치적 지도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전쟁의 결정적 순간에 최고 지휘관의 역할이 결정적 요인인 것과 꼭 마찬가지다. 역사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도자, 당, 강령, 이론 투쟁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스페인의 스탈린주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끄 페르〉지의 필자는 이렇게 묻는다 : “그러나 도대체 왜 이전 지도자들과 결별한 혁명적 대중이 공산당의 기치로 결집했는가?” 문제가 잘못 제기되어 있다. 혁명적 대중이 이전 지도자들 전부와 결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전부터 특정 조직과 연결되어 있던 노동자들은 계속 조직에 밀착하는 동시에 정세를 관찰, 확인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식생활을 일깨운 당과 쉽게 결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민전선 안에서의 상호적 보호는 노동자들을 안심시켰다 :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이상, 틀림없이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 경험이 없지만 생기 넘치는 대중은 자연스럽게 코민테른에 의지했다. 왜냐하면 코민테른은 노동자혁명을 승리로 이끈 유일한 당이었으며, 스페인에 틀림없이 무기를 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민테른은 인민전선이라는 사상을 가장 열심히 옹호하고 있었다. 인민전선은 경험이 없는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고취시켰다. 코민테른은 인민전선 내부에서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가장 열심히 옹호하고 있었다. 이것은 소부르주아 계급과 일부 중 간 자본가계급의 신뢰를 고취시켰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중은 ‘공산당의 기치로 결집했던’ 것이다.

〈끄 페르〉지의 필자는 마치 노동자계급이 좋은 물건이 많은 구둣가게에서 새 신발을 선택하는 것처럼 사태를 그리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도 언제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하물며 새로운 지도부에 관해서는 이러한 선택이 극히 제한적이다. 대중의 광범위한 층이 새로운 지도부가 구 지도부보다 더 확고하고, 더 신뢰할 수 있으며, 더 충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점차적으로만, 그리고 여러 단계를 거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즉, 사태가 신속히 진전된다면, 세력이 약한 당도 당이 혁명의 과정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빈말에 현혹되지 않고 탄압을 무서워하지 않는 견고한 중핵을 가지고 있다면, 강력한 당으로 급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핵을 교육하는 과정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혁명은 이런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까닭에 이러한 당은 혁명에 앞서 존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노동자당의 배신

스페인의 다른 모든 정당들 가운데 왼쪽에 위치해 있던 통일노동자당은 혁명 전에 무정부주의에 견고하게 의지하지 않은 혁명적 노동자 분자들을 결집하고 있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스페인혁명의 발전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도 바로 이 당이었다. 통일노동자당이 대중정당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 정당들을 꺼꾸러뜨려야 했으며, 이는 비타협적인 투쟁에 의해서만, 기존 정당들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노동자당은 기존 정당들을 비판하는 한편으로 모든 근본 문제들에서 자발적으로 기존 정당들을 따랐다. 통일노동자당은 ‘인민’선거연합에 참여했으며, 노동자위원회를 해체시킨 정부에 입각했으며, 이 연립정부를 재건하는 투쟁에 적극 관여했으며, 여러 번 무정부주의 지도부에 굴복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그릇된 노동조합 정책을 실시했다. 결국 통일노동자당은 1937년 5월의 봉기에 대해서 우유부단하고 비(排)혁명적인 태도를 취했다.

물론 일반적인 결정론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노동자당의 정책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그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통일노동자당의 중도주의를 낳은 일련의 원인은 결코 스페인이나 카탈로니아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대한 단순한 반영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각도로 접근하던 두 개의 인과관계가 어느 순간에 적대적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그 이전의 국제적 경험, 모스크바의 영향력, 수많은 패배로부터 받은 영향 등을 고려하면 왜 통일노동자당이 중도주의 정당으로 발전했는지를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통일노동자당의 중도주의적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또 중도주의 정당은 매번 혁명의 브레이크가 되어 매번 자충수를 두고, 경우에 따라서는 혁명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바뀌지도 않는다. 또한 카탈로니아 대중이 통일노동자당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었다는 사실, 통일노동자당 자신은 당 지도부보다 혁명적이었다는 사실이 바뀌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그릇된 정책의 책임을 대중의 ‘미성숙’에 전가하는 것은 정치적 파산자들이 흔히 의지하는 황당무계한 허풍을 떠는 것이다.

 

지도부의 책임

역사가 이렇게 날조되어 있다 : 스페인 대중의 패배에 대한 책임은 대중의 혁명운동을 마비시키거나 간단히 진압했던 정당들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에게 있다. 노동자당의 변호인은 간단하게 지도자의 책임을 부정한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 보편적인 발전의 연쇄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고리로서 패배를 감수하려는 이 무력한 철학은 강령, 당, 패배를 조직했던 개인들과 같은 구체적인 요인을 전혀 문제 삼지 않거나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운명론과 굴종의 철학은 혁명적 행동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정반대 이다.

내전은 정치적 과제가 군사적 수단에 의해 해결되는 과정이다. 만약 이 전쟁의 결과가 ‘계급세력의 상태’에 의해 미리 결정되었다면, 전쟁 자체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조직, 자신의 정책, 자신의 방식, 자신의 지도부를 가지고 있는 전쟁은 이것들에 의해 그 운명이 직접적으로 결정된다. 물론 ‘계급세력의 상태’는 다른 모든 정치적 요인들의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건축물의 토대가 벽, 창, 문, 지붕 등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급의 상태’는 당, 전략, 지도부의 중요성을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는다.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해소시킴으로써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정말로 중도에서 멈춰버렸다. 문제를 가장 ‘완전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이들은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패배는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 때문이라고 선언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런 답은 멍청이라도 할 수 있다.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당과 지도부의 중요성을 최하로 줄임으로써 대체로 혁명 승리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더 유리한 상황을 기대할 근거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전진을 멈췄다. 노동자계급은 수적으로 증대하지 않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전투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키는데다가 계급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실업자군대가 증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농민이 고도의 혁명적 의식에 이를 수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도 전혀 없다. 따라서 〈끄 페르〉지 필자의 분석으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완벽한 비관주의이며, 혁명적 전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해서, 이들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대중의 의식에 대해 제기하고 있는 요구는 완전히 공상적인 것이다. 스페인 노동자와 농민은 모두 혁명정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바로 몇 백, 몇 천만의 계급이다.

계급투쟁의 발전과 반동의 내습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작은 잡지를 발행하며 대중운동은 물론이고 혁명사상의 실제적 발전으로부터도 떨어져 방관자로서 한쪽 구석에서 이론적 습작이나 하고 있는 소규모 서클이나 교회, 성당 등이 존재하는데, 〈끄 페르〉지는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스페인혁명의 압살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자, 스페인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스탈린주의자와 좌익의 통일노동자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의 희생물이 되었다. 이들은 실제로 스페인 노동자계급이 실현하기 시작했던 사회주의혁명을 완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사회주의혁명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 무자비한 탄압, 전위의 학살, 지도자의 처형 외에 다른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은 없다. 물론 통일노동자당은 이것들을 바라지 않았다. 통일노동자당은 한편으로는 공화국 정부에 참여하여 충실한 평화애호 야당으로서 지배정당들의 공동블록에 들어가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내전이 쟁점이 되었을 때, 평화적인 동지적 관계를 수립하려고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통일노동자당은 자기 정책의 모순의 희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지배블록 안에서 가장 일관된 정책을 폈던 것은 스탈린주의자였다. 이들은 부르주아 공화주의 반(反)혁명의 전투적 전위였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노동자혁명을 교살할 수 있음을 스페인과 전 세계 자본가계급에게 입증함으로써 파시즘의 필요성을 없애고 싶어 했다. 이것이 이들 정책의 골자이다. 이들은 현재, 스페인 인민전선의 파산 책임을 게페우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도 게페우의 범죄에는 조금도 관대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사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노동자에게 솔직히 말한다 : 이번 경우, 게페우는 인민전선에 고용된 가장 결연한 부대로서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게페우는 강점이 있었던 것이고, 스탈린의 역사적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오직 무지한 속물들만이 악마의 두목에 대한 시시하고 어리석은 농담으로 이 사실을 요리조리 비켜갈 것 이다.

이런 양반들은 스페인혁명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문제로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를 위하여 모스크바의 아첨꾼들은 스페인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런 기만에 근거하여 인민전선의 배신적 정책을 세웠었다. 이 정책은 비록 스페인혁명이 정말로 부르주아혁명이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혁명은 처음부터 러시아의 1917년 혁명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혁명의 노동자적 성격을 드러냈다. 최근 통일노동자당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양반들은 안드레스 닌의 정책이 너무 ‘좌익적’이었으며, 정말로 올바른 정책은 인민전선의 좌익으로 남는 것이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진짜 불행은 닌이 레닌과 10월 혁명의 권위를 한 몸에 누리면서, 인민전선과 결별할 결심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경솔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체면을 구기고 싶어 하는 빅토르 세르쥬는 닌이 오슬로나 코요아칸의 지령에 따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말로 진지한 인간이라면 감히 혁명의 계급적 내용의 문제를 객쩍은 잡담으로 바꿀 수 있는가?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이 물음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통일노동자당이 부르주아 공화주의자들은 물론이고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나 스탈린주의자와 동맹해 노동자혁명을 공격하고 교살한 부르주아 무정부주의자와 결별하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해 노력했던 반면에, ‘미성숙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권력기관을 수립하고, 기업을 몰수하고, 생산을 통제하려고 애썼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이다! 이러한 ‘잡담’은 단지 ‘경직된 정통적 신념’의 대표자에게나 흥미로운 것이다. 그 대신에 〈끄 페르〉지의 박식한 양반들은 혁명적 계급전략의 모든 문제와는 별개로 노동자계급의 성숙도와 세력관계를 측정하는 특별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 (여기서 중단됨)

1940년 8월 20일, 미완성

 

스페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강령

* (Revolutionary History)(Vol 1 No2, Summer 1988) -‘The Spanish Left in its own words’ 중에서

 

트로츠키주의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1. 파시즘을 패배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노동자혁명이라는 무기이다. 자본가 민주주의라는 썩은 토양에서만 번성하는 파시즘과 그 뿌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착취자를 착취함으로써, 낡은 국가기구의 완전한 파괴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행기 중에 우리는 외국 자본주의 에 의지하여 혼자서 살아남은 자본가계급을 겨냥한 노동자계급의 독재를 수립하기를 바란다. 반면에, 자본가계급은 사적 소유와 부르주아 체 제를 복구시키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의 대표적 사례는 현재 자본가계급, 특히 통일사회당(PSUC)의 부정직한 술책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재야말로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 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의 특권은 사라 질 것이며, 자본주의 착취에서 해방된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2.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동안, 우리는 오래가지 않을 자본주의 체제의 틀 내에서 노동자의 민주주의적 권리를 지킬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어떠한 술책도 부리지 않고 전국노동자연맹-통일노동자당-무정부주의 연합 공동전선의 투쟁을 요구 했다. 우리는 절대로 계급 적이 노동자 조직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우리 정적의 문제라도 말이다. 어제 우리는 통일노동자당의 옹호를 요구했다. 오늘 우리는 인민재판소에서 무정부주의 연합을 배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항의한다. 내일 우리는 무기를 들고 전국노동자연맹을 옹호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 우리는 노동자, 농민, 병사의 혁명위원회 구성을 지지한다. 이들 위원회는 각 공장, 마을, 부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또한 대의원은 다수가 결정한다면 언제라도 소환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위원회는 7월 시기에 이미 구성되었다. 대중의 진정한 바람은 이들 위원회에서 가장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위원회는 혁명의 승리, 공공질서의 유지, 경제와 분배의 통제 방어를 그 임무로 삼을 것이다. 각 당은 자신의 해결책을 제의할 것이고, 대중이 결정할 것이다.

4. 우리는 이른바 인민전선 정부에 반대한다. 이 정부는 실제로 인민의 절대다수를 대표하지 못한다. 우리는 계급협조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노동자계급 대표를 빠뜨릴 함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와의 타협은 필연적으로 배신으로 이어진다. 유일한 해결책은 국가의 관리를 떠맡을 혁명위원회를 도처에서 수립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모든 대의원들이 참석하는 대회를 소집하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 병사위원회 대의원 중에서 중앙위원회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위원회에서 배신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전쟁을 승리로 귀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5. 우리의 목표는 자본가의 완전한 몰수이다. 지금까지 은행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으며, 교환수단은 부르주아 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 우리는 통일사회당이 열정적으로 요구한 ‘시유화’에 명확히 반대한다. 이것은 실제로 신디케이트로부터 기업을 빼앗아 반동정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구호는 완전한 사회화, 혁명위원회 내 경제 위원회의 지도하에 대외무역의 독점 수립이다.

6. 우리는 토지의 국유화 즉, 사적 지주제도의 폐지를 요구한다. 고리 대금업자는 더 이상 농민에게서 토지를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농민이 스스럼없이 동의할 경우에만 농업기업의 집산화를 지지한다. 토지의 분배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토지’라는 원칙에 따라 농민위원회에 의해 실시되어야한다.

7. 우리는 일원화된 지휘체계 하에 중앙집중화된 군대만이 군사적 승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혁명의 군대는 개개 병사들이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장교는 병사집회에서 선출되고 소환될 수 있어야 한다. 급료는 모두가 같아야 한다. 일원화된 지휘체계는 혁명 위원회 내 전쟁위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군대에서 병사의 열정과 그 혁명적 경계심은 물리적, 기술적 부족을 메울 것이다.

8. 우리는 소수민족이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정할 권리를 지지한다. 그리고 분리권을 포함하여 모로코 인민의 절대적 자유를 지지한다. ‘모로코인을 위한 모로코’라는 구호는 공개적으로 선언되자마자, 모로코의 피억압 대중 사이에 봉기를 촉진하고, 파시스트 외인부대에 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틀림없이 모든 노동자들의 자유롭고 형제다운 결합을 스스럼없이 만들어낼 것이다.

9. 우리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체하는 동시에 스페인과 전 세계의 사회주의혁명을 사보타지하고 있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싸운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세계혁명과 전 세계에 걸친 사회주의의 수립이다. 이것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관료층에 의한 노동자 승리의 강탈을 막아낼 유일한 보장책이다. 우리는 제3 인터내셔널의 인민위원들과 제2 인터내셔널의 부르주아 장관들에게나 익숙한 불간섭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개입과 스페인혁명의 유럽혁명으로의 전화를 요구한다.

10. 기존 조직은 우리를 궁지로 이끌고 있다. 파시스트 속물과 전체 자본가계급에 대한 승리는 전적으로 유능한 지도력에 달려있다고 깊이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임무로 삼고 투쟁을 통해 건설될 새로운 혁명정당에 우리의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그 단단한 기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우고, 레닌과 트로츠키로 이어진 과학적 사회주의의 강령일 것이다. 제2, 제3 인터내셔널의 굴욕적인 배신에 직면하여 우리는 사회주의혁명의 세계당일 새로운 제4 인터내셔널로 지조 있는 모든 혁명가를 다시 묶어세울 것이다. 제4 인터내셔널의 더렵혀지지 않은 사회주의의 기치 아래 승리할 것이다! 동지들! 우리는 우리의 첫째 임무가 프랑코 일당을 패주시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군사적 승리는 사회혁명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우리는 공공연히, 술책 부리지 않고 재앙이 될 것 같은 정책에 맞서 싸울 것이다. 사회혁명의 심화는 참호의 공동전선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우리 의용병의 투쟁정신을 북 돋울 것이다. 우리는 1936년 7월 정신이 되살아나가를 바란다. 당시의 열정과 지금의 전쟁과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굴레에서 해방된 사회주의 스페인에서 1936년 7월을 축하할 것이다.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혁명가들에게 호소한다. 와서 함께 하자!

우호적인 토론을 통해서 견해 차이를 말끔히 없애고, 투쟁으로 단결합시다. 우리의 공통된 적을 패주시킵시다!

 

파시즘과 자본주의 타도하자!

스페인 노동자혁명 만세!

세계혁명만세!

 

1937년 7월 19 일 바르셀로나

볼셰비키-레닌주의자 스페인 지부(제4 인터내셔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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