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민족성개조
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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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교훈

 

■ 이 글은 1936년 7월 17~18일에 일어난 프랑코의 반란과 이에 대항하는 스페인 인민의 혁명적 폭발 직후에 썼다.

1936년 2월, 좌익 정당과 부르주아 공화주의 정당의 공동전선 정부인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이 정부는 단호한 혁명정책을 실행할 수 없었으며, 장군•교회•자본가계급• 지주라는 반동연합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반동파는 인민전선 정부의 우유부단을 이용하여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인 모로코와 본토 모두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스페인의 절반을 지배하에 넣었다. 부르주아권력은 오른쪽으로부터는 프랑코의 반란, 왼쪽으로부터는 혁명적 노동자•인민의 반격에 협공을 받고 사실상 분쇄되었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망연자실,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무정부주의자, 공산당, 사회당,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 등으로 결집한 노동자• 인민은 즉시 무장하여 주요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들은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대신에, 부르주아 정당과 공동보조를 취했다. 혁명파의 중심세력인 무정부주의자들은 처음에는 직접 정부에 들어가는 것조차 기피하여 표면상으로 부르주아 정당에 의한 통치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에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의 교훈에 의거하여 노동계급독재와 대담한 사회 혁명만이 스페인혁명을 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의 올바름은 중국혁명처럼, 가장 비참한 유혈패배에 의해 증명되었다.

 

유럽은 노동자계급에게 가혹하고 끔찍한 학교가 되었다. 각국에서는 노동자에게 극심하고 잔혹한 희생을 강요했지만 지금까지 모두 노동자 계급 적(enemies)들의 승리로 끝난(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사태가 잇달아 전개되었다. 기존의 노동자정당의 정책은 이들이 왜 노동자계급을 지도할 수 없는지, 왜 승리를 준비할 능력이 없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글이 작성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스페인의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의 노동자는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승리 소식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확고하게 바라는 것처럼, 만약 이 승리가 획득된다면, 이렇게 말해야만 될 것이다 : 노동자는 그 지도부가 이들의 패배를 초래하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번 승리를 거뒀다. 스페인 노동자계급에게 그만큼 더 큰 명예와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에 속한 사회당과 공산당은 이미 한 차례 혁명을 배반했지만 노동자 농민 덕분에 다시 한 번 승리를 얻었으며, 2월에 '공화주의' 정부를 수립했다. 6개월 뒤, '공화국' 군대는 인민에 대한 전투를 시작했다. 요컨대, 인민전선 정부는 인민의 돈으로 군벌(military caste)을 유지하고, 이들에게 권위, 권력, 무기를 제공했으며, 젊은 노동자 농민에 대한 지휘권을 주었다. 그로 인해 노동자 농민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 준비를 용이하게 해 주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전이 한창인 지금도 인민전선 정부는 승리를 이 중으로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내전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군사적 무기뿐만 아니라 정치적 무기로도 수행된다. 순전히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혁명은 그 적보다 훨씬 더 허약하다. 혁명의 세기는 거대한 대중을 분발하게 하는 그 능력에 있다. 혁명은 군대를 반동적 장교로부터 떼어놓을 수도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직 사회주의혁명 강령을 진지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제출해야한다.

앞으로는 토지, 공장, 상점은 자본가의 수중에서 인민의 수중으로 옮아갈 것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노동자가 권력을 잡고 있는 지역에서는 즉시 이 강령의 실현으로 나아가야 한다. 파시스트 군대는 이러한 강령의 영향에 24시간도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병사는 장교의 손발을 묶어 가장 가까운 노동자 의용군 사령부에 넘길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장관들은 이러한 강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혁명을 억제하는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내전에서 흘린 피보다 몇 십 배나 많은 피를 노동자와 농민에게 흘리게 한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 이 신사양반들은 승리를 거둔 뒤에 다시 노동자를 무장해제 시키고, 사적 소유의 신성한 법칙을 존중하도록 노동자에게 강제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민전선 정책의 진정한 본질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순전한 속임수이고, 헛소리이며, 거짓말이다!

인민전선의 많은 지지자들은 지금, 꾸짖듯이 마드리드의 지배자들에 대해 머리를 가로젓고 있다. 왜 이들은 이런 것을 예견하지 못했는가? 왜 이들은 제때에 군대를 숙청하지 않았는가? 왜 이들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 다른 어느 곳 이상으로 이러한 비판의 소리가 프랑스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인민전선 지도자들의 정책은 스페인에 있는 그 동료들의 정책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스페인의 가혹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레옹 블룸 정부가 군대에 대한 진지한 숙청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단언할 수 있다. 어째서? 노동자 조직이 여전히 급진당과 제휴하고 있고, 따라서 블룸 정부는 자본가계급의 포로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가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했으며, 뭔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불평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짓이다. 이런저런 장관이나 지도자의 통찰력 문제가 결코 아니라, 그 정책의 일반적 방향성의 문제인 것이다. 노동자당은 오직 자본가의 군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포기했을 때에만 급진 자본가 계급과 정치적 동맹관계를 맺는다. 부르주아 지배, 즉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제 유지는 착취자의 군대에 대한 지지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장교단은 자본의 호위병을 대표한다. 이 호위병이 없다면, 자본가계급은 단 하루도 자신을 지킬 수 없다. 개별적인 선발, 그 특수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장교는 사회주의에 대한 비타협적인 적으로서 특수한 집단을 이룬다. 단발적인 예외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모든 부르주아 국가들의 사정이 다 이러하다.

공공연히 파시스트를 자처하는 군사적 허풍선이나 참주선동가는 위험하지 않다. 비교도 안될 만큼 위협적인 것은 노동자혁명이 가까워옴에 따라 장교단이 노동자계급의 사형집행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군대로부터 400명 내지 500명의 반동적 선동가를 제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지금도 모든 것을 예전 그대로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을 노예로 만드는 역사가 오래된 전통이 농축되어 있는 장교단은 뿌리와 가지가 완전히 해체되고, 꺾이고, 분쇄되어야 한다. 장교계급이 지휘하는 막사의 군대는 인민의용군, 즉 무장한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 조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군대는 크고 작은 착취자의 지배와 양립할 수 없다. 공화주의자가 이러한 조치에 동의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민전선 정부 즉, 노동자와 자본가계급의 연립정부는 그 본질 자체에서 관료집단과 장교에 굴복하는 정부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수많은 인명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스페인 사태의 커다란 교훈인 것이다'

노동자계급 지도자의 자본가계급과의 정치적 동맹은 '공화국' 수호로 둔갑되었다, 스페인의 경험은 이 공화국 수호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민주주의자'라는 말처럼,'공화주의자'라는 말은 계급모순을 은폐하는데 도움이 되는 의도적인 속임수이다. 자본가계급은 공화국이 사적 소유를 보호하는 한은 공화주의자이다. 그리고 노동자는 사적 소유를 전복하기 위해 공화국을 이용한다. 바꿔 말하면, 공화국은 노동자에게 가치 있는 것아 되자마자, 자본가계급에게는 그 모든 가치를 상실한다. 프랑스의 급진당은 장교단의 지지를 확신하자 않고는 노동자당과 블륵을 맺을 수 없다. 달라디에가 프랑스 전시내각의 수장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자본가계급은 몇 번이고 이 직책을 달라디에에게 맡겼으며, 그는 결코 이들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 모리스 파즈나 마르쏘 삐베르[마르쏘 삐베르(Marceau Pivert, 1895-1958):교사 출신. 1935년 프랑스사회당내에서 [혁명적 좌익]그룹을 조직. 1936년, 블룸의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했다. 1937년 사회당 지도부가 [혁명적 좌익]그룹의 해산을 명하자 탈당. 1938년, 사회주의노동자농민당(PSOP)을 결성했으며, 전후 사회당에 복귀했다.] 같은 사람들만이 달라디에가 군대로부터의 반동분자나 파시스트 군대의 숙청, 바꿔 말하면 장교단을 해체시킬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람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외침에 의해 방해받는다. '어떻게 장교단을 해체 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군대를 궤멸시키고, 파시즘에 직면한 나라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히틀러와 무쏠리니가 고대하는 바이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해묵고 뻔뻔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1917년에 입헌민주당, 사회혁명당, 멘세비키가 추론한 방식이고, 지금 스페인 인민전선의 지도자들이 추론하고 있는 방식이다. 스페인 노동자는 파시스트에 가장 가까운 적이 스페인의 파시스트 군대 안에서 발견된 경험을 통해 확신할 때까지 이러한 추론을 반쯤 믿고 있었다. 우리의 오랜 친구인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가르쳤던 것은 헛되지 않았다. '주적은 자기 나라 안에 있다!'

〈위마니 떼〉지는 군대는 파시스트를 숙청하라고 눈물로 간청한다. 그러나 이런 간청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장교단을 유지하기로 신임투표를 한다면, 달라디에와 그를 통해 금융자본과 동맹을 맺고, 군대를 달라디에에게 맡기는 동시에, 이 완전한 자본가 군대에게 자본이 아니라 '인민'에게 봉사할 것을 요구한다면, 완전 바보가 된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대중을 의식적으로 속이는 것이다.

사회당과 공산당 지도자는 이렇게 되풀이하여 말한다 : '그러나 우리는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이 민주주의로 히틀러에 대항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교훈에 비추어, 이 정책이 소비에트 연방은 물론이고 민주주의에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장교단은 일단 유리한 순간을 간파하면, 해체된 파시스트 그룹과 손을 잡고 노동자 대중에게 공세를 취할 것이다. 그리고 승리를 거둔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초라한 잔여물을 밟아 으깨고, 소련에 대한 공통투쟁을 위해 히틀러에게 손을 뻗칠 것이다.

스페인 사태에 관해 〈르 포풀레르〉와 〈위마니떼〉지에 실리고 있는 기사는 분노와 혐오감 없이 읽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이들은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의식적으로 사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에게 주요한 교훈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인민전선의 '통일' 즉, 자본가계급과의 통일, 그리고 달라디에와의 우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달라디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위대한 '민주주의자'이다. 그러나 블룸 내각의 공무와 나란히 비공식적으로 장교단 총참모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가? 사실을 직시하는 진지한 사람들은 블룸이 하는 공허한 수사적 방식에 도취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태에 각오가 되어 있다. 달라디에와 군사 지도자들은 노동자가 혁명의 길을 갈 경우에 취할 필요한 조치에 관해서 양해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론 장군들은 자연히 달라디에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그리고 장군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노동자를 완전 정리할 때까지는 달라디에를 지지해주자. 그 다음에 그의 자리 에 좀 더 강력한 인물을 앉히자.' 동시에 사회당과 공산당 지도자들은 매일 이렇게 되풀이하여 말한다 : "달라디에는 우리의 친구이다.' 노동자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당신의 친구를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자본의 오랜 대리인인 달라디에에게 군대를 맡긴 사람들은 노동자의 신뢰를 하찮게 생각한다.

프랑스 노동자계급처럼,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틀림없이 무쏠리니와 히틀러 앞에서 무장해제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적들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국 내의 적을 분쇄해야 한다. 장교단을 분쇄하지 않고 자본가계급을 타도할 수 없다. 또한 자본가계급을 타도하지 않고 장교단을 분쇄할 수 없다. 반(反)혁명이 승리를 거둔 모든 경우에 장교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깊은 사회적 성격을 가진 혁명이 승리를 거둔 모든 경우에는 장교단을 파괴했다. 18세기 말의 프랑스대혁명의 경우가 그랬고, 1917년 10월 혁명의 경우에도 그랬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급진 자본가계급에게 굽실거리는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의 진정한 동맹은 급진주의자를 포함한 자본가계급에 대항하여 수립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힘, 주도력, 용기를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병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알고 있다. 이것이 가짜가 아닌 진정한 노동자 농민 병사의 동맹이다. 바로 이런 동맹이 지금, 스페인 내전의 포화 속에서 수립되어 단련되고 있다. 인민의 승리는 인민전선의 종말과 소비에트 스페인의 시작을 의미한다. 스페인에서 승리한 사회혁명은 필연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로 퍼질 것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 사형집행인에게 이는 어떤 외교협정이나 군사동맹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서운 것이 될 것이다.

 

1936년 7월 30일

 

 

장 루에게 보내는 편지

 

■ 이 글은 스페인의 국제서기국 대표인 장 루 앞으로 보낸 트로츠키의 매우 중요한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트로츠키는 통일노동자당 지도자에 대해서 매우 화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추신에서 이 편지를 닌에게 보여줘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편지가 통일노동자당 지도자와의 화해를 요구하는 비공식적 타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편자 직후(8월 18일), 빅토르 세르쥬에게도 화해적인 편지를 보낸 것으로 미루어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트로츠키의 태도가 8월 전후에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프랑코의 반란에 대한 스페인 인민의 열광적 반격(통일노동자당은 그 중심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소식이 트로츠키에 전해졌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루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며, 스페인에 있던 이탈리아 비밀경찰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이 편지를 쓴 직후,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처하게 되고, 따라서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이 결정적인 몇 개월 동안, 트로츠키는 스페인 정세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스페인의 주류파 볼셰비키一레닌주의자는 트로츠키의 이런 태도를 알지 못한 채,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규탄과 폭로를 정력적으로 펼쳐 통일노동자당과의 관계를 더욱 더 악화시켰다. 그리고 통일노동자당은 9월말에 카탈로니아 정부에 입각해버린다. 트로츠키가 멕시코로 망명한 뒤, 다시 스페인 사태에 개입했을 때는 이미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친애하는 동지[동지 : 장 루(Jean Lous, 1908-1985).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자, 변호사. 프랑스의 국제주의노동자당을 지도. 국제서기국에서 스페인문제를 담당했다.]

당신의 전보는 나로서는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신의 전보는 바르셀로나행 비자를 취득할 수 있을지 어떨 지가一내가 아는 한一아직 결정되지 않은 이 시기에 내가 스페인 사태에 직접 개입한 증거로 해석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비자를 취득한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내가 이 땅에서 겪은 상황 즉, 파시스트의 습격[파시스트의 습격 : 1936년 8월 4일, 노르웨이의 파시스트는 트로츠키의 집을 습격해 문서 일부를 강탈했다,]과 타스 통신의 악명 높은 성명[타스 통신의 악명 높은 성명 : 타스 통신은 모스크바 재판을 통해 트로츠키가 소련에 테러를 감행 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있다고 비난했다.]등에 대해서는 당신도 잘 알 것입니다. 노르웨이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정부는 스탈린-야고다[겐리크 야고다(Genrikh Yagoda, 1891-1938):고참 볼셰비키, 게페우 간부. 1920년부터 체카의 주요 활동에 참가. 1924년에 게페우의 부장관.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내무 인민위원(NKVD). 1938년, 제3차 모스크바 재판의 피고로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당했다.] 일당의 범죄적 만행에 대해서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보입니다.

나탈랴와 나는 즉시 바르셀로나로 갈 준비를 완벽하게 갖출 것입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대한 신중하게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당신도 잘 알겠습니다만 이곳에서는 당신에게 어떠한 조언도 해줄 수 없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지금 직접적인 무장투쟁이 진행 중이고, 상황은 매일 변화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정보가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우린의 행방불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살해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닌이나 안드라데 등이 지난 시기의 기억으로 지금 이 거대한 투쟁을 이끌려는 것은 범죄일 것입니다. 강령과 방법에서 견해 차이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차이는 진실하고 지속적인 화해를 결코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깊은 경험이 나머지 모두를 결정하겠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먼 곳의 일개 관찰자에 지나지 않지만 이 싸움을 도울 전적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장 크게 걱정하는 문제는 통일노동자당과 조합주의자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배타적으로 또는 주로 교의적인 고려에 이끌릴 위험이 대단히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조합주의자들의 모든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통된 적을 패배시켜야 합니다. 투쟁 속에서 가장 뛰어난 조합주의자들의 신뢰를 획득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문제가 동지에게 진부해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얘기하는 것이니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조언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10월 혁명 이전에 우리는 가장 순수한 무정부주의자들과도 함께 일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케렌스키 정부는 자주 볼셰비키와 무정부주의자의 대립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레닌은 이에 단호히 맞섰습니다. 레닌은 그 같은 상황에서 한 명의 무정부주의 투사는 동요하는 100명의 멘셰비키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했습니다. 파시스트에 의해 여러분에게 강제된 내전에서 가장 커다란 위험은 과단성 결여, 애매모호한 정신, 한마디로 멘셰비키주의입니다.

재차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썩 명료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능한 한 정확한 제안을 하기 위해서 뭐든지 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이 공간적 거리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나로서는 있을 수 있는 모든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투쟁 중인 동지들과 상호 이해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가 공동투쟁의 길을 열고 있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꼴 사나울 것입니다.

나는 사전의 도움을 빌어 투쟁의 추이를 자세하게 쫓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4일 내지 5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동료들뿐만 아니라 특히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이유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인사를 보냅니다.

 

〈추신〉

친애하는 루,

당신이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닌이나 그 밖의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보여줘도 괜찮습니다. 이 편지에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외교적인 술책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만 유연성은 견고함과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손발이 묶여 있다는 느낌입니다. 나탈랴와 나의 성공을 빌며.

 

L.T. 씀

1936년 8월 16일

 

 

아바스 통신사와의 인터뷰

 

■ 이 인터뷰는 트로츠키가 멕시코로 망명한 뒤 처음 스페인내전에 대해서 논한 것이다. 아바스 통신사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인 샤를 아바스에 의해 1835년에 파리에서 설립된 최초의 통신사이다.

트로츠키는 이 인터뷰에서 스페인의 노동자 농민이 승리하면 유럽전쟁이 벌어진다는 자본가계급과 스탈린주의자의 예측을 단호히 부정하고, 거꾸로 프랑코의 승리야말로 유럽 전쟁을 앞당기게 된다고 단언했다. 역사는 트로츠키의 예측이 올발랐음을 입증했다. 스페인에 대해 불가침 정책을 취함으로써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는 몇 년 뒤, 공화제의 사형집행서에 서명했다.

 

내가 싫건 좋건 의용병들에게 공화파 전선을 도우라고 '지령'을 내렸다는 것인가? 나는 누구에게도 '지령'을 내린 적이 없으며, 대체로 '지령'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기사를 통해 내 의견을 표명한다. 오직 겁쟁이, 배신자, 파시즘의 하수인들만이 스페인 공화군에 대한 지원을 거부할 수 있다. 모든 혁명가의 첫째 의무는 프랑코, 무쏠리니, 히틀러 도당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

통일노동자당은 스페인 연립정부의 좌익이면서 부분적으로는 야당이다. 이 정당은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이 정당의 당원들, 특히 청년들이 전선에서 투쟁하며 발휘한 영웅주의에 대해 열렬히 공감하면서도 이 정당의 정책을 많은 경우 비판해왔다. 통일노동자당은 '인민' 전선의 선거 연합에 참가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이 연합의 엄호 하에 프랑코 장군은 몇 개월간 걸쳐 지금 스페인을 유린하고 있는 반란을 대담하게 준비했다. 혁명정당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간에 무지와 범죄적 관용정책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질 권리가 없었다. 혁명정당은 대중에게 경계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카탈로니아 연립정부에 입각하는 두 번째 오류를 저질렀다. 전선에서 다른 정당들과 서로 협력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이 정당들이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조금도 없다. 한순간도 군사적 전선을 약화시키는 일 없이, 대중을 혁명적 기치 하에 정치적으로 결집시킬 줄 알아야 한다.

내전에서는 통상의 전쟁에서보다 훨씬 더 정책이 전략을 좌우한다. 군대지휘관인 로버트 리[로버트 리(Robert E. Lee, 1807-1870):미국 남북전쟁의 남부연합 총사령관. 북군의 그란트 장군에게 항복했다.]는 틀림없이 그란트[율리시스 그란트(Ulysses S. Grant, 1822-1885):미국 남북전쟁의 북군 총사령관. 1868년, 군사적 영웅으로서 대통령에 당선(제 18대, 1869~77), 재건정책을 실시했다.] 보다 재능이 있었지만, 노예제 폐지라는 강령이 그란트의 승리를 보증했다. 러시아의 3년에 걸친 내전에서도 군사적 기법과 군사적 기술의 우위성은 대개 적에게 있었다. 그러나 결국, 승리한 것은 볼셰비키의 강령이었다. 노동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농민은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두 체제를 경험을 통해 비교해보고는 마침내 볼셰비키를 지지했다.

합창단을 고음에서부터 지도하고 있는 스탈린주의자는 스페인에서 내각의 수반인 카바예로에게도 우선 군사적인 승리를 거둔 다음에 사회 개혁을 고집하는 정식을 제기했다. 나는 이 정식이 스페인혁명에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두 강령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보지 못하는 근로대중, 특히 농민은 무관심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파시즘이 승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순수 군사적 강점이 파시스트 측에 있기 때문이다. 대담한 사회개혁은 내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파시즘에 대한 승리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지금까지 항상 혁명적 상황에서 기회주의자임을 드러내온 스탈린의 정책은 프랑스의 자본가계급, 특히 인민전선에 대해서 서류상으로 오래전에 전쟁을 선언한 '200대 족벌'을 불안에 떨게 한 공포에 의해 지시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스탈린의 정책은 1917년 케렌스키의 정책보다는 오히려 1918년 독일혁명에서 에베르트와 샤이데만[필립 샤이데만(Philipp Scheidemann, 1865-1939):독일사회민주당 우파. 저1차 세계대전 당시 당내 배외주의파의 지도자. 1919년 수상이었으며, 독일혁명을 진압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 암살에 관여했다.] 이 수행한 정책을 반복하는 것이다. 히틀러의 승리는 에베르트-샤이데만 정책에 대한 징벌이었다. 독일에서 이 징벌은 15년이나 뒤로 미뤄졌지만, 스페인에서는 15개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페인 노동자 농민의 사회적•정치적 승리는 유럽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반동적 겁쟁이에게서 나온 이러한 예언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만약 스페인에서 파시즘이 승리했다면, 프랑스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바이스에 몰렸을 것이다. 프랑코의 독재는 유럽전쟁을 불가피하게 촉진할 것이며, 프랑스로서는 가장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새로운 유럽전쟁은 프랑스인민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이들을 몰락으로 이끌고, 게다가 전 인류에 끔찍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점은 덧붙일 필요도 없다.

이에 반해서, 스페인 노동자 농민의 승리는 틀림없이 무쏠리니와 히틀러체제를 뒤흔들 것이다. 파시스트체제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체주의적 성격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가진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실제로 파시스트 체제는 최초의 진지한 시험에 노출되자마자 내부 폭발로 희생될 것이다. 승리한 러시아혁명은 호엔쫄레른 체제의 힘을 서서히 약화시켰다. 승리한 스페인혁명은 히틀러와 무쏠리니 체제의 토대를 침식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스페인 노동자 농민의 승리만이 평화를 위한 강력한 힘임이 즉시 드러날 것이다.

진정한 스페인 혁명가의 임무는 군사적 전선을 보강하고 강화하며, 소비에트 관료집단의 정치적 후견을 뒤엎고, 대중에게 대담한 사회적 강령을 제시하고, 그로 인해 혁명의 승리를 확보하고, 바로 이런 식으로 평화의 대의를 지키는 것에 있다. 그 가운데에서만 유럽은 구제될 것이다!

 

1937년 2월 19일

 

 

〈노동자투쟁〉편집부에 보내는 편지

 

■ 이 글은 이미 스페인내전이 전면화 되고 있던 단계에서 트로츠키가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의 공식 기관지 〈노동자 투쟁〉(La Lutte Ouvriere) 편집부 앞으로 보낸 편지이다. 많은 점에서 트로츠키와 의견을 달리한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편지 등으로 격렬한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안드레스 닌이 인민전선 정부에 법무장관으로 입각한 것은 트로츠키에게는 계급적 배신행위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통일노동자당과 닌은 국제좌익 반대파 사이에서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이는 종종 통일노동자당의 국제기관지 〈스페인혁명〉의 기사가 각국의 좌익반대파 기관지에 게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로츠키는 이 편지에 나타나 있듯이, 그러한 비원칙적인 태도를 준엄하게 비판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동지들의 신문 제9호(1937년 2월 27일 토요일자)에 통일노동자당의 기관지 〈스페인혁명〉에서 인용한 기사가 동지들의 찬사서문과 함께 게재되어 있습니다. 숨김없게 말하겠습니다. 이것은 통일노동자당 노동자들의 투쟁과 여러분의 연대가 아니라 통일노동자당 지도부의 정책과의 연대이고, 이것은 단지 오류에 불과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의 범죄로 생각됩니다. 때문에 나는 온힘을 다해 공개적으로 항의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전재한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닌과 그 동료들의 정책이 드러내고 있는 지극히 모호하고 다의적인 표현방식 때문입니다. 이들은 "부르주아적 반(反)파시즘"과 "부르주아적 신新)공화국"의 강령에 대해 논쟁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왜 닌은 이 "부르주아적 신(新)공화국"의 장관이 되어야 했습니까?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오류 즉, 진실을 말하자면 일종의 배신인데, 이를 인정했습니까? 부르주아 정부에 있으면서 어떻게 부르주아공화국과 투쟁할 수 있습니까? 부르주아 정부의 "법무"장관으로서 부르주아 국가를 대표하는 동시에, 어떻게 부르주아 국가 타도를 위해 노동자를 동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사태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강령과 사상을 조롱하는 것입니까?

이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는 "독점자본주의의 소멸을 통해 소부르주아 계급의 지도자들이 대두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아사냐, 콤파니스 등의 역할에 대한 성격 규정은 완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신사양반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이 아닙니다. 몰락한, 탈 계급화 된 진짜 소부르주아 계급은 농민, 장인, 피고용인(사무직원)입니다. 아사냐와 그와 같은 부류들은 대자본가계급을 위해서 소자본가계급을 이용하고 있는 정치적 착취자들입니다. 이들은 허수아비처럼 인민대중 진영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는 사회당의 지도자들,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애석하게도 통일노동자당인 것입니다. 이들은(아사냐 콤파니스등)은 감히 사유재산을 손대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로 사유재산에 기초한 "정의"의 옹호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말일 뿐입니다. "독점자본주의" 는 프랑코가 승리할 때까지 죽은 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이에 아사냐와 콤파니스는 자신의 용무를 처리하고, 〈라 바탈랴〉(la Batalla, 전투)지는 "통일노동자당 없이 또는 통일노동자당에 반해서" 아사냐 등은 자신의 용무를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사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회고도 그렇고, 전망도 그렇습니다. "권력 분담"(미안하지만 이는 계급들의 협력입니다)은 오직 "자유에 반대하는 전쟁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력 분담" 즉, 통일노동자당과 부르주아적 신(新)공화국 지도자들과의 협력은 노동자와 농민의 고양을 대단히 무력화시키고,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이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자 이런 엉뚱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오늘, 심지어 전쟁의 수행도 취해야 할 방법에 대해서 결정을 (누구에 의한?) 내릴 필요가 있다." 왜 "오늘"일까요? 어제의 정책이 오늘 나락의 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까? 그리고 나락의 끝에서도 통일노동자당은 배신적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무장한 대중을 고무하는 대신에, 이들에게 계속 설교하고 있습니다.?

대중을 고무하여 배신적 지도자들에 대항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볼셰비키주의의 출발점입니다. 부르주아적 신(新)공화국의 장관이라는 짧은 희극적 역을 연기할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장관들을 내쫓기 위해서, 그리고 사회당이나 스탈린주의 장관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대담하고 공공연하게 노동자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중 안에서, 그리고 대중을 통해서 이 가차 없는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에, 통일노동자당은 노동자국가 지지 입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집산화와 사회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 혁명적 용기의 완전한 결여를 은폐하려는 완전히 추상적인 삼단논법 입니다. 집산화 없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장대중의 직접적 압력에 의해 자본가계급이 축출되어야 하고, 배신적 지도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삼단논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스페인의 마르토프인 닌은 굴복하고 맙니다.

"강력한 군수산업을 자기 수중에 두고 있는 카탈로니아의 노동자계급은 군수품에 관해서 공화국의 중앙정부를 예속 상태(!)로 두고 있다." 부르주아적 신(新)공화국 정부에 대한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이야말로 예속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 정책이 계속된다면, 카탈로니아의 노동자계급은 1871년 파리꼬뮌에 필적하는 끔찍한 재앙의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닌은 6년 동안 오류만 저질러왔습니다. 그는 사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어려움을 피해 다녔습니다. 투쟁하는 대신에, 보잘것없는 연합에 종사해왔습니다. 스페인에서 혁명정당 건설을 지연시켜왔습니다 . 그를 추종하는 지도자들은 모두 같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6년 동안 이들은 스페인의 정력적이고 영웅적인 노동자계급이 가장 끔찍한 패배를 당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애매한 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악순환을 끊지 않습니다. 부르주아공화국에 대항하여 대중을 고무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부르주아공화국에 순응한 다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따금 노동자혁명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여러분은 사이비 볼셰비키 정식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멘셰비키 배신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칭찬을 곁들여 이들의 기사를 전재하고 있습니다.

통일노동자당 노동자는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등의 바보 같은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실을, 그리고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들의 투쟁이고, 이들의 희생인 것입니다. 외교적 술수나 불장난, 애매함을 집어치웁시다. 전쟁과 혁명의 운명이 걸려 있을 때, 가장 가혹한 진실을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닌의 정책과 아무런 공통점도 없으며, 그의 정책을 비호하거나 위장시켜주거나 옹호하는 어떠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1937년 3월 23일

 

 

스페인내전에서의 혁명전략

 

■ 이 글은 모스크바 재판의 거짓말을 폭로하기 위해서 트로츠키와 그의 지지자들이 망명지 멕시코에서 조직한 대항재판(재판장은 듀이)의 일부(스페인혁명에 관한 질의응답 부분)이다.

 

빌스: [칼튼 빌스(Carleton Beals, 1893-1979) : 멕시코에서 교사, 저널리스트로 활동.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온다. 듀이위원회의 위원이었지만, 나중에 사임, 트로츠키에 관해서 비방 중상을 흘렸다.] 이런 방침에 따라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대전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스페인에서의 전쟁이 세계대전의 가장 임박한 위험을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스페인의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트로츠키: '스페인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빌스: 당신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 스페인의 여러 분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트로츠키 : 트로츠키주의자는 없습니다. 지금은 코민테른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코민테른에 의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불리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트로츠키주의자는 코민테른의 선전에서 파시즘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스페인에서 트로츠키주의자는 많지 않습니다一진정한 트로츠키주의자 말입니다. 나는 이를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스페인에는) 통일노동자당이라는 강력한 정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당만이 내가 파시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당의 청년은 우리의 사상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의 정책은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따라서 나는 이를 공공연하게 비판합니다.

빌스 : 그 당의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트로츠키: 닌입니다. 그는 나의 친구입니다. 그를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빌스 : 내가 이것을 거론하는 한 가지 이유는 트로츠키주의자 분파가 스페인의 공화파 운동을 사보타지한다는 비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트로츠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공화파 운동을 사보타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많은 인터뷰나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밝혔다고 봅니다. 스페인에서 승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농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토지는 여러분들의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공장은 여러분들의 것이다.' 이것이 승리를 확보하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프랑스 자본가계급을 겁주지 않기 위해 스탈린은 스페인에서 사적 소유의 호위병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농민은 고상한 정의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습니다. 농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프랑코나, 카바예로나 그 놈이 그놈이다.' 왜냐하면 농민은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내전 중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주로 우리의 군사적 지식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혁명적 강령 때문입니다. 우리는 농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토지다.' 그리고 일찍이 우리에게서 멀어져 백군에게로 간 농민은 볼셰비키를 백군과 비교하여, '볼셰비키가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농민, 수백만의 러시아 농민이 볼셰비키가 더 낫다고 확신했기에, 우리가 승리했던 것입니다.

빌스 : 스탈린이 스페인에서 사적 소유의 호위병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트로츠키 : 스탈린과 코민테른은 스페인에 관해서 사회개혁은 승리 뒤에나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쟁이다. 지금 우리의 일은 전쟁이다.' 농민은 냉담해집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전쟁이 아니다. 어느 쪽 장군이 승리하든 관심이 없다. 장군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농민의 견해입니다. 매우 소박한 말투지만, 농민이 올바른 것입니다. 나는 세련된 외교관들에 반대하여 이 소박한 스페인 농민에 찬성합니다.

빌스 : 그렇다면 당신은 스페인에서 어느 진영이 승리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어느 진영이 전쟁에서 승리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까?

트로츠키: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는 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노동자가 승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보증하건대, 코민테른과 스탈린의 정책이야말로 스페인혁명을 패배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이미 중국혁명과 독일혁명을 패배시켰으며, 이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패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동자혁명은 단 한번밖에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10월 혁명입니다. 그리고 10월 혁명은 스탈린의 방식과 정면으로 대립되었습니다.

빌스 : 그럼, 만약 당신이 스탈린의 지위에 있었다면, 지금 스페인의 경우에 어떤 조치를 취할 것입니까?

트로츠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빌스 : 이를테면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스탈린의 지위에 있었다면, 만약 당신이 소비에트 연방의 운명을 수중에 쥐고 있었다면, 스페인에서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입니까?

트로츠키: 그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코민테른의 혁명적 정당들의 문제이다. 그것은 당의 문제입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모든 부르주아 정당들에 반대할 것입니다.

스톨베르그[벤자민 스톨베르그(Benjamin Stolberg, 1891-1951):미국의 작가, 저널리스트. 노동조합 운동 사가. 듀이위원회의 위원]: 트로츠키 씨, 칼튼 빌스의 질문과 관련된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당신이 1923년 이후에도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경우에 당신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혁명은 구제되거나, 추가로 새로운 승리를 쟁취했을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파시즘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룹니다. 즉, 1923년의 시점에서 당신의 입장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말입니다. 그 경우, 스페인 사태는 현재와는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패배했습니다. 중국과 독일에서 코민테른의 정책은 패배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스페인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는 단지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을 뿐 입니다. 그렇다면 질문하겠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저지른 오류에 더하여 우리는 스페인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페인의 내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정통적이거나, 순수주의적인 입장에서는 꼭 문제에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 스페인에서 당신은 누구 편을 지지할 것입니까?

트로츠키 : 나는 많은 인터뷰나 글을 통해 이미 답변했습니다. 스페인의 모든 트로츠키주의자는 좌익 편에 선 믿을만한 병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는 토론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카바예로 정부의 지도자나 다른 참여인사 모두 배신자입니다. 노동자계급의 지도자는 부르주아 정부에 입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러시아에서 케렌스키 정부에 입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여 케렌스키를 방어하면서도, 그의 정부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밝힌 것처럼, 나는 파시스트에 대항하여 스탈린과 동맹을 맺거나, 프랑스의 파시스트에 대항하여 주오[레옹 주오(Leon Jouhaux,1879-1954):프랑스의 노동운동 지도자, 무정부적 조합주의자, 노동총동맹(CGT)의 총서기. 1919년 이후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와 동맹을 맺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피너티[존 피너티(John F.Finerty,1885-1967):미국의 변호사. 철도부설권의 전문가이지만, 사코와 반제티의 최종 공소심, 톰 무니의 변호를 담당했다. 1937년에는 듀이위원회의 고문 변호사.] : 트로츠키 씨, 만약 현재 당신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고 있다면, 그리고 스페인의 공화주의자들이 당신의 도움을 요청했다면, 당신은 토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조건으로 도와 줄 것입니까?

트로츠키: 그러한 조건은 붙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첫째 문제는 스페인 혁명정당의 태도일 것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본가계급과의 정치적 동맹은 절대 반대한다', 이것이 첫째 조건이다. 둘째 조건은 '여러분은 파시스트와 싸우는 가장 우수한 병사가 되어야 한다.' 셋째 조건은 '여러분은 다른 병사나 농민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들의 나라를 인민의 나라로 전화시켜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대중을 획득할 경우, 자본가계급을 공직에서 내쫓은 다음, 권력을 잡고 사회혁명을 수행할 것이다."'

피너티 : 그렇다면,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스페인의 마르크스주의정당과 동맹을 맺어야만 한다는 것입니까?

트로츠키 : 물론, 나는 파시즘에 대항하여 모든 물질적 수단으로 카바예로를 지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산당에게는 카바예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노동자혁명의 제2장을 준비하기 위해 정부에 입각하지 말 것을 조언할 것입니다.

빌스 : 아사냐가 최초로 정권을 잡았을 때(1931~33년), 아사냐 정부가 반동을 초래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정책 때문이었던 것은 아닙니까?

트로츠키 : 아닙니다, 보수적인 부르주아 정책 때문입니다. 아사냐가 혁명을 반, 아니 3분의 1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 의견은 그러한 혁명은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혁명을 시작했다면, 끝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끝까지 수행하는 혁 명은 사회혁명을 의미합니다.

빌스 : 그러나 당신의 정책을 따르면, 아마도 프랑코가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트로츠키 : 프랑코의 승리는 현재 코민테른의 정책에 의해 보증되어 있습니다. 스페인혁명, 스페인 노동자계급과 농민은 지난 6년 동안 그 노력, 에너지, 헌신으로 다섯 번이나 여섯 번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지배계층은 대중의 혁명적 힘을 방해하고, 사보타지하고, 배신하려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혁명은 노동자계급의 기본적인 힘과 그 지도자들의 정치적 지도에 근거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이 점에서) 스페인의 지도부는 언제나 비참했습니다. 스페인의 노동자계급은 과거 10년 동안 가장 뛰어난 실체적 세력, 가장 뛰어난 혁명적 세력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스페인혁명은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제2 인터내셔널이 그 배신적 정책으로 승리를 방해해온 것을 비난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자본가계급의 기세에 밀린 비겁함, 자본가계급과 프랑코의 기세에 밀린 비겁함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들은 자본가계급과 함께 정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부안의 자본가계급은 사적 소유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카바예로 자신은 사적 소유의 상징에 굴복합니다. 그렇지만 대중은 이 두 체제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골드만[알버트 골드만(Albert Goldman,1897-1960):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 듀이위원회의 트로츠키 변호사. 1930년 소련을 여행, 트로츠키 관점의 올바름을 확신했다. 1933년 미국공산주의자동맹, 1934년, 사회당에 가입.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지도자였지만 1946년에 탈당했다.]: 당신은 승리의 가능성, 프랑코에 대한 카바예로의 군사적 승리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입니까?

트로츠키: 군사적 승리를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대중이 불만과 무관심에 빠져 있고, 승리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군사적 기구가 사회주의 기구가 아니라면, 군사적으로 승리했어도 승리한 체제는 매우 짧은 시간안에 파시스트체제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골드만: 그러나 스페인의 대중은 자신들이 실제로 프랑코와 파시스트에 맞서 투쟁하고 있으며, 실제로 고유한 노동자적 이해를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환상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트로츠키: 유감스럽게도, 대중의 대다수는 모든 환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전의 질질 끄는 성격을 설명해줍니다. 왜냐하면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를 지지하는 군대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인민 전선에서, 선거 승리에서 비롯된 새로운 정부는 따라서 군대와 프랑코를 보호했습니다. 그 때문에 인민전선 정부 아래에서 군대는 봉기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자본가계급은 인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매우 관대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승리한 뒤의 일이다.'

골드만: 그런데, 당신은 30분전에 물어본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았습니다.

빌스 : 나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트로츠키 씨, 당신이나 스탈린 씨가 어떻게 스페인 사태를 구할 생각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제시한 정책들 모두가 내게는 프랑코의 전쟁 승리라는 가장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랑코를 조금도 편들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 이야기의 요점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한편으로 내게는 프랑코 씨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것으로 생각됩니다.

트로츠키: 그 점에 관해서는 내가 동료나 같은 확신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한 실마리, 약간의 실마리에 대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첫 번째 조언은 이제 카바예로 진영에서 가장 뛰어난 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먼저 할 일입니다. 알다시피, 스페인에는 제4 인터내셔널 그룹이 존재하고, 참호에는 일단의 우리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기본적이어서 강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소총으로 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생각을 갖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나는 소박한 농민과 함께 싸우지만, 농민은 정세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당신이 프랑코와 싸우는 것은 옳은 일이다. 우리는 파시스트를 전멸시켜야 한다. 그러나 내전 전과 같은 스페인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프랑코는 내전 전의 스페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랑코의 기반을, 프랑코의 사회적 기반을 근절시켜야 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시스템이다. 내 생각을 납득하겠는가?' 나는 이렇게 농민에게 묻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다음 같은 것을 노동자에게도 설명합니다.

빌스 : 프랑코와 싸울 병사는 보내면서, 왜 같은 목적에 도움이 될 카바예로 정부에 입각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트로츠키 : 그 점은 벌써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케렌스키 정부에 들어가는 것을 딱 잘라 거절했지만, 볼셰비키는 코르닐로프에 대항한 가장 뛰어난 투사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뛰어난 병사와 수병이 볼세비키였습니다. 코르닐로프가 반란을 일으킨 동안, 케렌스키는 발틱함대의 수병들에게 의지하여 동궁의 자신들을 지켜줄 것을 이들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옥중에 있었습니다. 수병들은 케렌스키를 지켜주기로 하고, 내게 대표단을 보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케렌스키를 체포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보호할 것인가.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지금은 케렌스키를 확실히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은 그를 체포할 것이다'(웃음).

골드만: 끝났습니까?

빌스: 그렇습니다.

 

1937년 4월 14일

 

 

스페인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 이 글은 스페인내전에서 혁명세력이 취해야 할 전략과 전술을 재차 정리한 글이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혁명 없이는 공화주의 세력이 승리했더라도 프랑코 체제와 같은 파시즘 체제가 성립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어판 〈반대파 회보〉 제56~57호 (1937년 7~8월)에 크룩스(Crux)라는 가명으로 게재되었다.

 

다시 한 번 기본적인 사실을 검토하자. 프랑코의 군대는 아사냐 즉, 사회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를 비롯하여 나중에는 무정부주의 지도자까지도 포함한 인민전선의 직접적인 비호 하에 수립되었다.

전쟁의 장기적 성격은 인민전선 즉,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보수적인 부르주아 강령의 직접적 결과이다.

인민전선 정책이 나라와 혁명에 대해 지배력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유지할수록, 대중의 피폐와 환멸이라는 위험이, 그리고 파시즘의 군사적 승리라는 위험이 더욱 더 커진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인민의 혁명을 종속시킨 케렌스키, 체레텔리, 에베르트, 샤이데만, 오토 바우어[오토 바우어(Otto Bauer, 1881-1938):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오스트리아-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 1918년의 오스트리아혁명 뒤에 외무장관으로 취임, 오스트리아의 독일 병합을 지지했다. 1921년에 사회주의노동자인터내셔널(2.5 인터내셔널)을 창설했다.] 등과 같은 자들을 모범으로 삼은 그 지도자들에게 있다.

이것은 현재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프랑코에 대한 라르고 카바예로의 군사적 승리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두 적대 진영의 물질적 · 정신적 자원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투쟁의 경과 자체만이 실질적인 세력관계를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군사적 승리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승리, 즉 다른 계급에 대한 한 계급의 승리에 관심이 있다. 공화주의 군대를 전력을 다해 지원할 필요가 있지만, 프랑코 군대에 대한 라르고 카바예로 군대의 승리는 단연코 혁명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민전선의 속물들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 ‘당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도대체 어떤 혁명인가, 민주주의혁명인가 사회주의혁명인가? 프랑코 군대에 대한 타르고 카바예로 군대의 승리는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 즉, 반동에 대한 진보의 승리를 의미한다.’

쓴웃음을 짓지 않고는 이런 주장을 들어줄 수 없다. 1934년 이전에 우리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민주주의조차도 지속적으로 파시즘을 선호하게 된다고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끊임없이 설명했다. 즉, 양자 사이에서 적대적 충돌이 일어날 모든 경우에, 혁명적 노동자계급은 파시즘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이렇게 덧붙였다 : 우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옹호할 수 있고, 또 옹호해야 한다. 이것이 차례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노동계급독재로의 대체를 촉진한다. 이것은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과정에서―심지어 무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노동자계급 정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며, 그 정부에 입각하지도 않지만 인민전선의 모든 정당들에 대한 비판과 행동의 완전한 자유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다음의 단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복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른 어떤 정책도 범죄이며, 내전의 직접적 결과에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붕괴할 운명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결속시킬 시멘트로서 노동자의 피를 이용하려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1923∼29년에 제조된 비참한 코민테른의 편찬물을 잔뜩 읽은 일부 얼간이는 '그러나 당신은 농민을 무시하고 있다!'고 외친다. 가장 빠르게 농민을 '무시하고 있다'고 외치는 것은 공동전선을 대표하여 토지 소유자와 함께 농민의 혁명적 이해를 배신하고 있는 신사양반들이다. 스페인 농민은 노동자계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자신의 열망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사실상 토지 착취자와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몰수의 길로 접어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토지강령을 제시하는 것을 막아온 사람들은 바로 스탈린주의자와 그 새로운 제자인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이다.

스탈린-카바예로 정부는 자신의 군대에 사적 소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적' 호위병의 성격을 불어넣으려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인민전선의 본질이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인민전선은 파시즘의 승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체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의 민주주의적 수호자가 자본의 파시스트적 호위병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 시기는 파시스트적 호위병이 자본의 요구에 훨씬 더 부합하기 때문에 스탈린-카바예로 정부가 군사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그 승리는 견고해지거나 지속될 수 없다. 노동자혁명이 없다면, '민주주의'의 승리는 똑같은 파시즘의 우회로를 의미할 뿐이다.

안드레스 닌은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영웅적 투쟁으로 인해 혁명이 '지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닌은 이런 지연이 통일노동자당 지도부의 직접적인 협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덧붙이는 것을 잊고 있다. 통일노동자당은 혁명의 모든 단계에서 다른 모든 정당들에 대해서 자신의 당을 대치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준비하는 대신에, 사회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 즉 자본가계급에 '결정적으로' 순응했다. 동요와 순응이라는 이 치명적인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혁명이 막 시작된 6년 전에 이미 닌에게 예언했었다. 우리는 분별력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수백 통의 편지와 글을 통해 전개된 닌과 우리의 논쟁을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닌의 현재의 동요는 완전히 지난날의 동요에서 비롯하고 있는 것이다.

닌은 '우리가 카탈로니아 정부에서 추방된 이래, 반동이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우리의 카탈로니아 정부 참여는 자본가계급에게 우리를 내쫓고 스스로를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와 노골적으로 반동의 길에 들어설 기회를 더 손쉽게 제공해주었다.' 통일노동자당은 실제로 지금도 부분적으로 인민전선에 머물러 있다. 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는 카탈로니아 정부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갈 것을 하소연하듯이 설득하려고 한다.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는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가르침을 어떻게든 전국노동자연맹 지도자에게 이해시키려고 공손하게 노력하고 있다.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는 스스로를 인민전선 지도자들에 대한 '혁명적' 조언자로 간주하고 있다. 생기가 없는 이런 입장은 혁명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인민전선 정부에 대해서 대중을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동원할 필요가 있다.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보통의 자유주의자임이 드러난 이런 신사양반들의 배신을 조합주의와 무정부주의 노동자가 알 수 있게 폭로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계급의 가장 악질적 하수인인 스탈린주의자를 가차 없이 공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부르주아 정부의 조언자가 아니라, 혁명적 대중의 지도자임을 통절히 느낄 필요가 있다.

물론 부르주아적 스탈린-카바예로 체제의 민주주의 군대의 순전히 군사적인 승리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 직접적인 결과는 무엇일 것인가? '규율'과 '군대의 통일'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 조직, 특히 그 좌익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현재의 폭력 행위는 바로 보나파르트주의의 각개훈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 군대의 내적 규율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군사적 종속이다. 군사적 승리는 '공화국' 군대 지휘부의 자의식을 엄청난 정도로 끌어올리고, 속속들이 보나파르트주의적 경향으로 물들일 것이다. 이에 반해서, 노동자의 피를 대가로 치른 군사적 승리는 노동자계급 전위의 자의식과 결의를 드높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본의 파시스트 군대에 대한 자본의 공화주의 군대의 승리는 필연적으로 공화주의 진영 내부의 내전을 일으킬 것이다.

이 새로운 내전에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와 반(半)노동자적 농민 대 다수의 신뢰를 획득할 줄 아는 혁명정당을 지도부로 가진 경우에만 승리할 수 있다. 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이러한 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공화주의 진영 내부의 내전은 프랑코 장군의 독재와 성격상 거의 차이가 없는 보나파르트주의의 승리에 이르게 될 우려가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민전선의 정책은 똑같은 파시즘의 우회로인 것이다.

아사냐가 프랑코 군대를 준비시키고 무장시킨 것처럼, 사회주의자의 가면을 쓴 제2의 아사냐인 카바예로는 '공화주의' 장군의 가면을 쓴 제2의 프랑코 군대―스페인판 까베냑[루이 까베냑(Louis Cavaignac, 1802-1857) : 식민지 알제리 원주민의 반란을 토벌하여 이름을 알렸다. 1848년 2월 혁명 후 육군장관, 6월 혁명 진압군 총사령관, 12월 부르주아 공화파를 대표하여 대통령선거에 나섰으나 루이 나폴레옹에게 패배했다.]이나 갈리페[가스통 갈리페(Gaston Galliffet, 1830~1909) : 프랑스의 반동적 장군. 보불전쟁에서 아프리카 기병을 이끌고 활약. 베르사유군을 인솔하여 파리꼬뮌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1899년, 발데크-루소 내각의 육군장관.]―를 준비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경멸받아 마땅하다!

〈라 바탈랴〉지 4월 4일자에 '승리를 위한 13가지 주의사항'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모든 주의사항이 통일노동자당 중앙위원회가 당국에 제의하는 조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통일노동자당은 '노동자와 농민조합, 그리고 병사 대표자 대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노동자, 농민, 병사 대표자 대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통일노동자당이 부르주아적 개량주의 정부에게 이러한 대회의 소집을 공손하게 제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회가 '평화적으로' 부르주아 정부를 대체해야 한다. 혁명적 구호가 공문구로 바뀐 것이다!

네 번째 주의사항은 이렇게 선언한다 : '노동자계급에 의해 통제되는 군대를 창설하자.' 개량주의자와 동맹한 자본가계급이 닌이 통제할 군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노동자당 지도자의 맥빠진 입장이 가장 결정적인 군대 문제에서 가장 치명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다. 군대는 지배계급의 무기일 뿐, 그 밖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군대는 그것을 지휘하는 사람에 의해, 즉 국가권력을 쥔 사람에 의해 통제된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과 그 개량주의적 추종자에 의해 만들어진 군대를 '통제'할 수 없다. 혁명정당은 이러한 군대에 자신의 세포를 건설하고, 군대안의 선진 부위가 노동자 편으로 넘어오도록 준비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혁명적 임무는 자본가계급의 군대에 대한 노동자 '통제'라는 달콤한 공상을 꿈꾸는 통일노동자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호도되고 있다. 통일노동자당의 공식적 입장은 양면적인 태도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양면적인 태도야말로 중도주의의 진수이다.

닌은 ‘혁명은 후퇴한 상태다’라고 심각하게 선언하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이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아마 닌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혁명을 민주주의 단계에서 저지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아무리 보아도 허풍이라는 브레이크 말고는 도움 받을 것이 없다. 만약 닌이 자신의 말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면, 혁명이 노동계급독재로까지 고양되는 것을 이 지도자 양반들이 막고 있는 한, 혁명은 필연적으로 파시즘에 전복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그랬고, 스페인의 경우도 그렇게 될 것이다. 다만,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될 것이다. 스페인의 상황을 끝까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닌이 지금도 여전히 스페인 노동자는 평화적 수단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권력은 스탈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적 개량주의자와 동맹한 군사지도자와 관료의 수중에 있다. 이 신사양반들은 모두 노동자에 대한 투쟁에서 외국 자본가계급과 소비에트 관료집단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적인 권력 획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신과 노동자계급을 속이는 것이다.

3월말에 한 같은 연설에서 닌은 이들이 노동자에게서 총을 빼앗고 싶어 한다고 말했으며, 무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노동자에게 권고했다. 물론 이 조언은 올바르다. 그러나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무장해제 시키고 싶어 하고, 다른 계급, 즉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무기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전이 임박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평화적인 권력 획득이라는 잘못되고 감상적인 전망은 노동계급독재에 관한 닌의 모든 급진적 주장을 뒤엎는다. 게다가 닌의 정책의 본질은 바로 이 감상적인 전망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급진적 주장에서 실천적 결론의 도출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중도주의적 동요 정책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닌의 '트로츠키주의자', 즉 볼셰비키인 체하는 닌을 방해하는 진정한 혁명가들에 대한 반동적 박해는 그의 장밋빛 전망의 필요성에서 나오는 직접적 결과이다.

닌이 노동자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싶어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명백하고 정확하게 바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그러나 반(反)혁명 계획의 입안자를 거명하고, 그들과 그 당에 낙인을 찍고, 인민대중이 그들을 증오의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혁명가의 직접적인 의무이다.

노동자에게 '당신의 무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에게서 무기를 빼앗으려는 자들을 무장해제 하도록 노동자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통일노동자당의 정책은 그 내용과 어조 모두에서 정세의 긴급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다른 정당들에 비해 '좀 더 선진적'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정당들이 아니라, 사태와 계급투쟁의 경과와 비교해야 한다. 혁명의 결과는 결국, 음모와 도당을 일삼는 이런 거드름 피우는 장관들이나 당위원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편으로 수많은 스페인의 노동자 농민과, 다른 한편으로 스페인과 세계의 자본가계급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닌의 국제정책은 그의 국내정책과 꼭 마찬가지로 틀렸다.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는 '우리는 제4인터내셔널을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사사건건 맹세하고 변명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거짓이다! 제4인터내셔널의 노선 외에는 스탈린-카바예로의 노선 밖에 없다.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이 두 노선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갈지자를 그리고 있다. 닌, 안드라데, 고르킨[훌리안 고르킨(Julian Gorkin, 1901-1987) : 스페인 내전 기간의 통일노동자당 총서기. 1938년 10월 열린 재판에서 5년 형을 선고받았다.]의 재주는ㅡ마르크스와 레닌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문제의 명확한 정식화, 정확한 분석, 비판에 대한 정직한 대응을 피하는 것에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혁명의 모든 새로운 단계가 시작될 때마다 부주의가 이들을 잡아챈다. 그런데 최악의 경험은 아직 하지도 않았다!

당신의 친구를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겠다!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스탈린주의의 추종자 역을 하고 있는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SAP)의 가련한 기회주의 도당이나, 존재 권리를 모두 상실한 영국독립노동당(ILP) 지도자, 그리고 그 밖의 강령, 혁명적 규율, 미래도 없는 얼치기 기회주의자, 얼치기 모험주의자와 결부되어 있다. 당신의 친구를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겠다. 통일노동자당 지도부의 국제 정책은 국내 수준에서 자신의 중도주의적 동요를 보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주아 여론의 탯줄을 급격하게, 단호하게, 대담하게 끊지 않으면 안된다. 조합주의 지도부를 포함하여 소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황을 끝까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에게로, 가장 낮고 가장 억압받는 계층에게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의 승리가 저절로 올 것이라는 환상으로 이들을 어르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에게 아무리 쓰더라도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에게 자본의 소부르주아적 하수인에 대한 불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의 운명을 그들의 운명과 불가분하게 연결 짓지 않으면 안 된다. 부르주아 국가에 반대하여 자신의 투쟁조직―소비에트―을 건설하도록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의 통일노동자당 지도부가 이러한 전환을 실행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애석하게도, 혁명 6년 동안의 경험은 이러한 기대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통일노동자당 안팎에 있는 혁명가가 만약 닌, 안드라데, 고르킨을 '설득'하고 '획득'하는 것으로ㅡ닌 등이 라르고 카바예로, 콤파니스 등을 획득하려고한 방식―그 역할을 제한한다면, 파산하고 말 것이다. 혁명가는 노동자가 마음속까지 닌의 동요와 주저에 반항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전선의 통일은 중도주의에 대한 굴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혁명의 이해는 당의 형식적 통일보다 상위에 있다.

현재 통일노동자당의 당원은 얼마나 되는가? 어떤 사람은 2만 5천명 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4만 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지 않는다. 2만 5천 명도, 4만 명도 그 자체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문제는 한편으로 당과 노동자계급과,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과 농촌의 피억압 대중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동요하고 주저하는 지도부를 가진 4만 명의 당은 노동자계급을 흩어지게 하고, 그로 인해 파국을 촉진할 수 있을 뿐이다. 견고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부를 가진 1만 명의 당은 대중에게로 가는 길을 찾고, 스탈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사기꾼과 허풍선이의 영향력을 걷어내고, 파시스트 군대에 대한 공화주의 군대의 단지 일시적이고 불확실한 승리가 아니라, 착취자에 대한 근로자의 완전한 승리를 보증할 수 있다.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승리를 성취할 수 있음을 세 번이나 보여주었다. 모든 문제는 지도부에 있다!

 

1937년 4월 23일

 

 

바르셀로나 봉기

―약간의 예비적 고찰

 

■ 이 글은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5월 사태를 보고받은 직후에 트로츠키가 예비적 고찰로 쓴 소론이다.

카탈로니아 주(州)는 전통적으로 무정부주의자의 거점이고, 스페인혁명 중에도 파시스트 군대를 물리쳐 무정부주의자의 실질적인 지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는 자본가계급과 타협, 부르주아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 정부에 처음에는 스탈린주의 소수정당인 카탈로니아통일사회당도 참가했다. 이 통일사회당은 그 후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여 무정부주의 세력과 대립했다. 1937년 5월 3일, 마침내 스탈린주의 부대는 전국노동자연맹의 거점인 바르셀로나 중앙전화국 습격을 시도했다. 이 공격에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무정부주의계 노동자가 자연발생적으로 대항하면서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사태의 중대함을 이해한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곧바로 전국노동자연맹-무정부주의연합 지도부에 공동투쟁을 제의했지만, 전국노동자연맹-무정부주의연합 지도부는 이를 거부했다. 처음부터 사태의 조기 수습에 급급해한 무정부주의 지도부는 봉기 노동자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 바리케이드를 풀자마자, 스탈린주의자를 주력으로 하는 1만 2천 명의 군대가 카탈로니아에 파견되어 이 지방을 제압했다.

이 사태는 스페인혁명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통일노동자당은 반(反)혁명 봉기를 선동하고 실행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비(非)합법화되었다. 통일노동자당의 최고지도자 닌은 얼마 뒤에 스탈린주의자에 의해 납치, 고문당한 끝에 학살되었다. 이로 인해 혁명세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프랑코 승리의 길을 열었다.

 

최근에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들은 소식은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우리가 정식화하는 결론은 가설적이고 일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 봉기는 그 성격상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보인다. 즉, 봉기는 통일노동자당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발발했다. 이 사실만큼 한 편의 무정부주의, 통일노동자당 지도자와 다른 한편의 노동자대중 사이에 깊이 파여 있는 심연을 설명해주는 것은 없다. 닌에 의해 선전된 "노동자계급은 평화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봉기가 일어났을 때, 통일노동자당의 진짜 입장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거의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이 결정적 순간에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의 입장은 틀림없이 지금까지 이들이 보여준 입장의 단순한 연장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로 이 결정적 순간에 좌익 중도주의의 비일관성이 틀림없이 가장 뚜렷하게, 그리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폭로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1905년과 1917년의 사태 속에서 마르토프의 운명이 이러했다.

좌익 중도주의의 대표인 마르토프의 잘못된 생각이 우리 대오 안에서도 종종 표명된다. 마르토프는 케렌스키-체레텔리-단 체제를 비판하는 가운데에서 볼셰비키에 가까워졌다. 비판의 급진성과 전망의 원대함에서 마르토프는 〈라 바탈랴〉지의 편집자를 훨씬 능가했다. 그러나 마르토프의 의식 한 가운데에는 항상 적들을 설득하고 싶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노동자계급을 계급의 적에게 대립시키려 하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마르토프는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투쟁의 무자비함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혁명투쟁의 지도자 역할이 아니라 패배한 대중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켜섰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마르토프의 왼편에는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혁명정당이 있었다.

스페인의 정세는 매우 다르다.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어제까지만 해도 대중에게 가장 단호한 관점을 표현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적어도 카탈로니아의 노동자계급 전위는 통일노동자당의 글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중이 이 비판을 투쟁을 통해 실현할 준비를 하자마자, 이들은 자기가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었음을 깨달았다. 최근의 봉기도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걱정이 없지 않다.

아니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혹시 기적이 일어나 대중의 압력이 닌에게 볼셰비키 입장을 강제했다면? 그랬다면 정말로 멋질 것이며, 우리는 이 새로운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닌과 공동 활동할 수 있음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는 통일노동자당의 공식 정책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바꾸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긴급보도가 언급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휴전은 무슨 의미인가? 무엇보다 먼저 지도부의 비일관성에 의해 결정된 봉기의 패배인가, 아니면 대중의 압력에 겁을 집어먹은 지도자들의 직접적인 굴복인가?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당장에는 투쟁이 바르셀로나 밖에서 계속될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 공세를 재개할 수 있는가? 스탈린주의-개량주의 인간쓰레기 측의 탄압이 대중의 투쟁에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을까?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섣부르게 예측하는 것은 자제하겠다. 사태의 직접적 경과가 어떠하건 간에 어쨌든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그 결정적인 중요성을 잃지 않는다. 봉기의 여러 가지 오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부사회보다 먼저 패배한 노동자에 확고하게 결합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도부를 용서하거나, 그 비일관성을 은폐하거나, 순전히 감상적인 연대를 구실 삼아 지도부의 오류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인상적인 경험은 통일노동자당의 분열을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매우 커 보인다. 트로츠키주의자를 배격하고, 브란틀러주의자와―스탈린주의의 쓰레기를 버린―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SAP) 지도자들과 우호관계를 맺은 분자들은 분명히 자비를 구함으로써 혁명을 배신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모스크바 관료집단에게 아첨할 것이다. 이에 반해서, 혁명분자들은 제4인터내셔널과 배신 사이에는 어떠한 매개물도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정치적 분화를 용이하게 하고 촉진하기 위해서 우리의 비판은 솔직하고 공공연하고 더 단호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동지들 모두는 우리의 동료 빅토르 세르쥬[빅토르 세르쥬(Victor Serge, 1890-1947) : 처음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1917년 혁명에 매료되어 볼셰비키가 되었다. 코민테른에서 일했으며, 좌익반대파를 지지하여 투옥되었지만 프랑스 지식인들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제4인터내셔널 운동과의 견해 차이, 특히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견해 차이로 결별했다.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어느 혁명가의 회고록』, 『러시아 : 20년 후』 등을 저술했다], 스네블리트[헨리쿠스 스네블리트(Henricus Sneevliet, 1883-1942) : 네덜란드 출신의 인도네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창설자. 1914년 인도네시아사회민주동맹(인도네시아공산당의 전신)을 결성했으나 1918년에 추방되었다. 코민테른 제2차 세계대회에 참가, 아시아 운동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그 책임자로 중국에 파견, 중국공산당의 창설에도 공헌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RSAP)을 창설. 1933년, '4자 선언'에 서명하고,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과 함께 국제공산주의자동맹에 가입했다.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운동에서 멀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나찌에 체포, 처형되었다], 베레켄[조르쥬 베레켄(George Vereecken, 1894-1978) : 벨기에의 트로츠키주의자. 벨기에 공산당의 중앙위원으로 좌익반대파를 지지했다. 1930년대, 제4인터내셔널 벨기에 지부의 지도자. 1936~38년, 스페인혁명 문제를 둘러싸고 트로츠키와 논쟁했다. 전후 『트로츠키주의운동에서의 게페우』 등의 저서를 썼다]등에 의해 인정된 수동적인 관대함이라는 조령모개식 정책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거대한 사건으로부터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결론을 도출해낼 줄 알아야 한다. 1917년 7월 사태와의 유사성은 우리에게 너무도 명백해서 자세하게 논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 차이점이다. 통일노동자당은 여전히 카탈로니아의 조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지도자들은 제때에 사회당에 가입할 기회를 막았으며, 무익한 비타협성으로 자신들의 근본적인 기회주의를 은폐하고 있다. 그러나 카탈로니아의 사태가 사회당과 노동자총연합(UGT) 대오 내에 균열과 분열을 낳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통일노동자당 중핵의 범위 안에서 한정되는 것은 치명적일 것이다. 더욱이 통일노동자당은 앞으로 몇 주 사이에 크게 위축될 것이다. 카탈로니아의 무정부주의 대중과 다른 지역의 사회당과 공산당 대중에게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낡은 외적 형태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창출하는 문제이다.

비록 패배가 심각할지라도(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그 심각을 측정할 수 없다), 결코 결정적이지는 않다. 스페인 자체나 프랑스의 새로운 요소가 새로운 혁명적 고양을 결정할 것이다.

스페인의 10월이 언제 어떻게 올 것인지를, 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감탄할만한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힘이 소진되었다고 그 누구도 미리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10월을 준비하기 위해서 혁명적 전위는 노동자계급 상층의 애매모호, 혼란, 불분명 등에 대해 국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미리 경고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에 대해 제4인터내셔널을 대치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를 결코 대담하게 이끌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브란틀러,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 맥스튼, 페너 브락웨이 패거리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투쟁 바로 직전이나 투쟁이 한창일 때 노동자계급을 배신할 수밖에 없다. 스페인 노동자들은 이제 제4인터내셔널이 사회주의혁명의 과학적 강령, 대중에 대한 신뢰, 모든 종류의 중도주의에 대한 불신, 투쟁을 끝까지 이끌려는 의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이다.

 

1937년 5월 12일

 

 

게페우의 하수인에 의한 안드레스 닌의 암살

 

■ 이 글은 스페인 좌익반대파의 지도자이자 트로츠키의 오랜 친구인 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이 게페우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트로츠키가 쓴 추도문이다. 프랑스어로 처음 발표된 다음에 〈반대파 회보〉(1937년 9~10월, 58~59호)에 게재되었다.

1937년 5월 사건을 계기로 통일노동자당이 프랑코의 하수인이라는 스탈린주의자들의 대대적인 악선전이 자행되어 통일노동자당은 비 합법화되고, 기관지는 발행 금지되었으며, 지도자들이 차례로 체포되었다. 이는 바로 당시 러시아 국내에서 준동하고 있던 대숙청의 폭풍우가 스페인에까지 몰아친 것이었다. 안드레스 닌도 이 와중에 체포되어 게페우에게 지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닌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모스크바 재판의 피고들이 한 것 같은 '자백'은 결코 하지 않았다. 스탈린주의자들은 파시스트를 가장하여 바르셀로나의 감옥에서 닌을 데려가 총살시켜버렸다.

여러 사안에서 대립한 닌을 엄중 비판했지만 트로츠키는 이 글에서 대립의 역사를 숨김없이 밝히면서 성실하게 동지적인 추도를 하고 있다.

 

통일노동자당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이 바르셀로나에서 체포되었을 때, 게페우의 하수인들이 그를 살려두지 않을 것임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스페인 경찰을 수중에 틀어쥐고 있는 게페우가 닌과 통일노동자당 지도부 전체를 프랑코의 ‘하수인’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스탈린의 의도는 그 누가 봐도 명백히 드러났다.

이 비난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스페인혁명에 관해 일자무식인 사람에게도 명백하다. 통일노동자당 당원은 스페인의 모든 전선에서 파시스트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웠다. 닌은 노련하고 청렴결백한 혁명가이다. 그는 소비에트 관료집단의 하수인들에 맞서 스페인과 카탈로니아 인민의 이해를 옹호했다. 이것이 게페우가 바르셀로나 감옥에 대해 잘 준비한 '습격'을 통해 그를 제거한 이유였다. 이 사태에서 공식 스페인 정부당국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가는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게페우가 부추긴 신문의 긴급보도는 닌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부르고 있다. 살해된 이 혁명가는 종종 이런 호칭에 항의했으며, 이 항의는 완전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마우린과 닌이 지도하는 동안 통일노동자당은 줄곧 제4인터내셔널에 적대적 태도를 취했다. 1931~33년 사이에 당시 아직 통일노동자당을 결성하지 않았던 닌은 나와 우호적인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미 1933년 초에 원칙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우리 사이는 완전 결별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근 4년 동안 우리는 논쟁적인 글만을 주고받았다. 통일노동자당은 자신의 대오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쫓아냈다. 게페우는 소비에트 관료집단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이들의 잔혹한 복수가 쉬워진다.

나와 통일노동자당을 갈라놓은 견해 차이와는 완전 별개로, 나는 닌이 소비에트 관료집단에 대항하여 이끈 투쟁에서 옳았던 사람은 닌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권력을 쥔 도당의 외교적 권모술수와 음모로부터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통일노동자당이 스탈린에게 맡겨진 도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스페인 인민의 이해에 반하는 게페우와의 협력을 거부했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죄였다. 그리고 이 죄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

 

1937년 8월 8일

 

 

스페인의 경험을 통한 개인과 사상의 검증

 

■ 이 글은 스페인혁명에서 통일노동자당의 위치와 역할을 둘러싸고 트로츠키와 벨기에 지부의 베레켄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다. 스페인혁명에서 통일노동자당이 혁명정당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베레켄은 동지적 입장에서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비판과 지원에 집중하며,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비판적 타격을 반복한 국제서기국과 스페인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를 비판했다. 트로츠키는 국제서기국과 스페인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논쟁에 개입하여 베레켄이 통일노동자당의 본질을 완전히 오인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트로츠키의 이 비판은 1907~17년 사이에 레닌의 트로츠키 비판을 방불케 한다. 스페인혁명에서 통일노동자당은 멘셰비키보다 훨씬 전투적이고 혁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는 사실상 통일노동자당을 좌익 중도주의로 단정하고, 극소수의 스페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대중적인 좌익 중도주의 세력에 유기적으로 개입할 방법을 배우지 않고 혁명정세를 이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제4인터내셔널에 헌신하는 모든 조직들에게,

스페인혁명은 선진노동자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뿐만 아니라, 혁명전략의 학교로도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 다양한 사상과 개인이 대단히 중요하고, 절대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검증을 받고 있다. 혁명의 중대 사태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태에 대해서 다양한 그룹과 독립적 투사들이 자기 대오 안에서 취하고 있는 정치적 입장을 검토하는 것은 모든 진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의무이다.

 

베레켄 동지와 스네블리트 동지

이 편지에서 나는 특수한 경우지만, 최고로 교훈적인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 즉, 벨기에 지부의 지도적 위원 가운데 한 명인 베레켄 동지의 입장을 검토해 보고 싶다. 베레켄은 올해 6월말에 열린 혁명적사회당(RSP)의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스페인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벨기에 지부의 내부 회보 6~7월호에 발표된 그의 연설 보고는 매우 짧다. 아마 많아야 25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베레켄 동지의 오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오류는 벨기에 지부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 전체에 대해서도 위험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RSAP) 지도자 스네블리트 동지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통일노동자당의 정책과 완전한 일치를 보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어느 정도나 절연한 것인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베레켄 동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베레켄은 좀 더 신중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그의 주장에는 '한편으로', '다른 한편으로'라는 유보조건이 섞여 있다. 통일노동자당에 대해서 그는 우리의 공통된 무기고에서 수많은 주장을 빌려와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스네블리트 동지의 입장보다 그의 중도주의적 입장이 우리의 대오 내에 훨씬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때문에 베레켄의 생각을 주의 깊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중도주의의 특징인 낙관적 숙명론

통일노동자당이 괴멸하기 전, 그리고 스페인에서 스탈린의 하수인(안토노프-오프셴코 등)에 의한 그 지도자의 비열한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 베레켄의 보고가 있었다. 우리는 모스크바나 그 밖의 지역의 불한당들의 중상에 맞서 닌과 그의 동료들의 명성을 흔들림 없이 지킬 것이다. 그러나 닌의 비극적 운명도 우리의 정치적 판단을 바꿀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치적 판단은 감상적 고려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이해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베레켄 동지는 사태의 압력을 받아 통일노동자당이 말하자면, '자동적으로' 왼쪽으로 발전할 것이며, 스페인에서의 우리의 정책이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 한정될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서 완전히 오류를 범했다. 사태는 이 숙명론적이고 낙관적인 예측一중도주의에는 매우 특징적이지만, 결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는 아닌一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이 점에서는 통일노동자당의 정책 전체가 이 같은 숙명론적 낙관주의로 물들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베레켄이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에게 순응했던 것과 꼭 같이, 통일노동자당 지도부는 무정부주의 지도자들이 노동자혁명의 길에 자동적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이들에게 순응했다. 이런 모든 기대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사태는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 지도자들도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내팽개쳤다. 베레켄은 자기 정책의 오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대신에, 훨씬 더 큰 혼란에 의해 전날까지의 정책과 구별되는 새로운 입장으로 몰래 넘어가려고 한다.

 

통일노동자당의 특성

베레켄은 이렇게 보고를 시작한다. '몇 십 년 동안 존속해온 전국노동자연맹-무정부주의연합과는 달리, 통일노동자당은 새롭고, 동질적이지 않으며, 그 좌익은 허약하다.' 이 설명은 스네블리트의 입장뿐만 아니라 베레켄 자신의 이전 입장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약속된 왼쪽으로의 발전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통일노동자당의 이 특성은 고의로 애매해져있다. '좌익은 허약하다'고 할 때, '좌익'이라는 말은 이 문맥에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통일노동자당내의 마르크스주의 분파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좌익 중도주의 분파를 말하는 것인가? 베레켄은 이 질문에 의도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대신해 대답하겠다 : 통일노동자당내 존재했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배제된 이래로 중요성을 가진 마르크스주의 분파는 없다. 그러나 중도주의의 좌익 분파도 허약하다. 이 점에 대해서 베레켄은 올바르다. 그러나 이것은 혁명 6년 동안의 경험의 결과가 아닐 때에만 맞는 말이다. 통일노동자당의 정책은 우익 중도주의자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상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베레켄 동지의 통일노동자당 ‘비판’

그렇다면, 베레켄이 통일노동자당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 '통일노동자당의 오류는 선거 때에 인민전선으로 결집한 것이다. 이들은 무장투쟁에 의해 7월 19일의 이 오류를 바로잡았다. 또 다른 오류는 (카탈로니아)정부에 참여하고, (지방)위원회를 해산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에서 나왔기 때문에 통일노동자당내에서 정화가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얼핏 보기에는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가운데 하나를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베레켄은 통일노동자당과 그 자신의 기회주의적 전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감추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내용 없는 일부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비판자에게 이는 통일노동자당의 단발적인 '오류'의 문제이지, 통일노동자당의 정책 전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말문이 막힌다. 어떤 조직에도 '오류'가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도 오류를 범했으며, 볼셰비키당 전체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근본적 노선의 정확성 덕분에 제때에 교정되었다. 통일노동자당에게 그것은 단발적인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비(非)혁명적이고, 중도주의적인 근본 노선 즉,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오류의 문제이다. 바꿔 말하면, 혁명정당에게 '오류'는 예외이다. 그러나 통일노동자당에게는 약간의 단발적인 교정 단계가 예외인 것이다.

 

1936년 7월 19일

베레켄은 우리에게 통일노동자당이 1936년 7월 19일에 무장투쟁에 참여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물론이다! 노동자계급 전체를 포함하여 이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반(反)혁명 조직뿐이다. 분명히,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통일노동자당의 성격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자신의 정책을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통일노동자당에게도 강제한 대중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어떻게 인민전선 참여라는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가? 혹시 통일노동자당이 자기 정책의 근본적 방향을 변경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7월 19일의 투쟁은 노동자의 실질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단지 꼭 필요한 명석함이나, 투쟁을 끝까지 지속할 용기를 가진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이중권력이라는 애매한 상황으로 끝나버렸다. 통일노동자당의 인민전선 참여는 우연한 '오류'가 아니라, 그 기회주의적 성격의 확실한 흔적이다. 7월 시기에 변화한 것은 당의 중도주의적 성격이 아니라, 외부 정세일 뿐이다. 통일노동자당은 인민전선의 선거기구에 순응했다. 중도주의의 왼쪽으로의 지그재그는 오른쪽으로의 지그재그를 보완하는 것일 뿐, 결코 그것을 바로잡지는 않았다. 그리고 왼쪽으로의 지그재그 중에 통일노동자당은 자신의 잡종적 입장을 전부 그대로 유지했으며,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 미래의 파국을 준비했던 것이다.

 

정부참여

베레켄은 '다른 오류는 (카탈로니아)정부에 참여하고, (지방)위원회를 해산시킨 것이다'라고 말한다. 만약 7월 봉기 참여가 이전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라면, 이 '다른 오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실제로 (카탈로니아)정부 참여는 당의 중도주의적 성격에서 비롯된 새로운 지그재그였다. 스네블리트 동지는 이 참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석하게도 이 애매한 정식은 스네블리트가 혁명의 시대에 계급투쟁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1936년 7월 시기는 카탈로니아 노동자계급이 올바른 지도부를 가졌다면, 새로운 노력이나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권력을 장악하고, 스페인 전역에 걸쳐 노동계급독재의 시대를 열 수 있었을 것이지만, 주로 통일노동자당의 오류에 의해 그 추종자들(스탈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 지도자들)로 대표되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혁명위원회) 사이에 낀 정부를 결과하고 말았다. 노동자의 이해는 모든 권력을 혁명위원회 즉, 스페인 소비에트에 이양함으로써 불확실하고 위험한 정세를 가능한 한 빨리 없애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서, 자본가계급의 임무는 '권력의 통일'을 대신하여 혁명위원회를 없애는 것이었다. 닌의 정부 참여는 노동자계급에 적대하는 자본가계급의 공동계획의 일부였다. 만약 스네블리트가 이러한 것을 '이해한다'면, 그에게는 그만큼 더 나쁜 것이다. 베레켄은 좀 더 신중하다. 그는 정부 참여를 '다른 오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 '오류'는 노동자위원회에 반대하여 자본가계급 정부를 직접 지지하는 것에 있었다!

베레켄은 자기비판의 핵심을 서둘러 이렇게 얼버무린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에서 나왔기 때문에 통일노동자당내에서 정화가 된 것이다: 이미 인용한 것처럼, 베레켄 자신이 좌익이 허약한 균질적이지 않은 당이라는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자신의 성격 규정을 반박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그렇다면 심지어 좌익 중도주의자도 당내에서 연약한 소수파임에 비추어, 어떻게 오류가 '정화'된 것인가? 아니면 혹시 이 '정화'를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배제로 ···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국제서기국에 대한 비판

베레켄은 중도주의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한층 더 나아간다. 그는 통일노동자당의 '오류'를 열거한 뒤, 균형을 잡기 위해 즉시 국제서기국의 '오류'를 열거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다시 한 번 그의 실제 말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국제서기국의 오류 : 파리에 있는 이들은 7월 19일 이후 10일 동안 아무 입장이 없었다. 이들은 사태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브뤼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파리 결의문을 너무 글자 그대로 적용했다. 이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통일노동자당을 혁명적 정책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에서 득을 보아야 했다. 이들은 트로츠키의 편지를 공표함으로써 스스로 닌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이 많은 '죄상'을 읽고 있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제서기국은 일정한 실천적 태만과 심지어 일정한 정치적 오류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들을 통일노동자당의 기회주의적 정책과 같은 수준에 놓는 것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당과 우리 자신의 국제조직 사이에서 부적절한 중재자 역할을 맡으려는 것이다. 베레켄 동지는 이 점에서도 처음은 아니지만, 의기소침하게 하는 판단력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고발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보자.

7월 19일 이후 '10일 동안' 국제서기국은 아무 입장이 없었다! 이것이 올바르다는 점은 일단 인정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정보의 부족인가? 지나치게 신중하기 때문인가? 베레켄은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즉시 '입장'을 갖는 것이 더 좋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 그 입장이 올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서기국은 최고 집행기관이다. 정치적 입장을 취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을 기해야 했다. 실제로 스페인의 투쟁을 직접 지도하지도 않았고, 지도할 수도 없었던 만큼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나 국제서기국이 '10일이 지나서도' 아무 입장이 없었다면, 7월 19일 이후 1년이 지나도록 베레켄 동지는 완전히 잘못된 입장에 빠져 있다. 이것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나쁘다.

 

브뤼셀 회의

베레켄은 '통일노동자당을 혁명적 정책 쪽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브뤼셀에서 열린 가련하고 보잘것없는 중도주의자 회의에 다시 참가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브뤼셀에서, 혁명적 대중 앞에서가 아니라 폐쇄된 회의실에서도 통일노동자당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처음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를 만났던 것처럼! 마치 6년 동안 우리가 이들을 혁명적 정책의 길로 '밀어붙이'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썼다 : 넘칠 정도로 많은 편지 왕래, 대표 파견, 조직적 관계, 수많은 기사와 팸플릿, 마지막으로 공개적인 비판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통일노동자당 지도자는 마르크스주의 정책을 채택하는 대신에, 혁명의 가차 없는 요구에 겁을 집어먹고 분명히 중도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베레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아무래도 중요성이 없는 오류인 것 같다. 겉보기에 굉장한 중요성을 가진 것은 브뤼셀의 중도주의자 회의이고, 거기서 베레켄은 통일노동자당 지도자 한두 명 앞에서 기껏해야 회의 이전에 이미 수백 번이나 말했고 썼던 것을 반복하는 발언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베레켄 동지는 중도주의자를 종파주의로 둘러싼다. 종파주의의 존재에서 절정의 순간은 수많은 회의에서 자기를 과시할 때이다!

 

트로츠키의 편지

끝으로, 베레켄의 마지막 고발은 트로츠키의 편지를 공표한 것이다. 이 편지는 내가 아는 한, 공표를 예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노동자당은 우리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하는 정치적 통찰력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정말로 이 편지의 공표로 잃어버렸음에 틀림없다. 이 편지는 자본가계급과 맺은 블록에 참여한 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우리는 닌의 의도의 순수함을 결코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인민전선 참여를 배신행위라고 보는 정치적 평가는 절대로 올바르다. 따라서 이 편지의 공표를 닌과 '우리의 관계 단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편지의 공표 이전에도 우리는 충분히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 우연적으로 그랬던 것도 아니다 : 그의 정책 전체는 우리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닌이 트로츠키의 편지 공표 3년 전에 우리와 단절했던 것은 어떤 일시적인 기분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베레켄이 추측하는 것처럼, 선거 뒤에 닌이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편지의 공표가 이 진전을 막았다는 것인가?

베레켄의 말은 실제로 약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밖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실상 닌과 그의 동료들은 계속해서 인민전선과 그 뒤의 정부참여가 올바르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이들은 정말로 이 참여의 갱신을 요구했다. 이것은 또한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정치노선의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통일노동자당이 인민전선에 참여한 것의 '오류'를 납득했다고 인정한다면, 이 오류에 대한 신랄한 분석을 포함한 이 편지의 공표가 어째서 통일노동자당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는가? 베레켄은 닌이 이 편지에 화가 났기 때문에, 이전의 옳지 않은 입장으로 돌아갔던 것이라고 말하려는(만약 그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한다면!)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사소한 개인적 자부심에 대한 고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사상에 의해 이끌려온 닌을 너무 모욕하는 것이다.

이상이 베레켄이 통일노동자당의 중도주의 정책과 같은 수준에서 제기한 국제서기국의 '오류'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단지 마르크스주의와 중도주의 사이에서 중개자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보여준다.

 

1937년 5월시기의 예습

베레켄은 그 다음에 올해 5월 사태로 옮아간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통일노동자당은 이 사태를 예측하고 있었으며, 무장하고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태의 범위는 당의 허를 찔렀다. 그러나 어떠한 당도 허를 찔렸을 것이다.'

모든 문장이 죄다 잘못되어 있다. 게다가 우연한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정치노선의 산물인 것이다. 5월 사태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만 '예측'할 수 있었고, 준비할 수 있었다. 즉, 카탈로니아와 스페인 정부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을 선언함으로써, 이들 정부에 대한 모든 정치적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모든 정당, 즉 그 지도 중심, 특히 전국노동자연맹 지도부에 대해 자기 당을 대치함으로써, 대중이 혁명의 지도자와 자본가계급의 추종자를 한순간도 혼동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음으로써 그럴 수 있었다! 물론 군사적 투쟁과 대중의 혁명적 행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 이런 종류의 비타협적 정책은 모든 노동자, 특히 카탈로니아 노동자계급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무정부주의자 사이에서 흔들림 없는 권위를 통일노동자당에게 보증했을 것이다. 통일노동자당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 지도자들의 반(反)혁명정부로의 재 입각을 요구했으며, 동시에 〈라 바탈랴〉지의 모든 호에서 노동자가 투쟁하지 않고도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목표와 함께 통일노동자당은 노동자 농민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부르주아 정부에 의해 소집되는 특별대회라는 어린애 같은 계획에 착수했다. 이것이 바로 통일노동자당이 허를 찔렸으며, 5월 사태가 통일노동자당에게는 단지 파국을 향해 가는 또 하나의 단계일 뿐이었던 이유이다.

베레켄은 이렇게 외친다. '그러나 어떠한 당도 허를 찔렸을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문장은 베레켄이 중도주의 당과 마르크스주의 당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대중봉기가 어떠한 혁명정당도 크건 작건 넘어선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차이는 바로 그 정도에 있다. 여기서도 또한 양은 질로 바뀐다. 중도주의 당은 사태에 넋을 잃어버리고 그 속에 빠져버리는 반면에, 혁명정당은 마지막 결전에서 사태를 지배하고 승리를 확보한다.

 

'공세가 아니라 방어'

베레켄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5월 4일과 5일에 (통일노동자당의) 정책은 올바르다 : 공세가 아니라 방어였다. 권력을 장악하려고 전진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모험주의였을 것이다. 통일노동자당의 커다란 오류는 후퇴 중에 환상을 흩뿌리고, 패배를 승리로 얼렁뚱땅 넘긴 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베레켄은 약제사의 정밀함으로 통일노동자당의 '올바른' 행동과 '오류'를 저울에 달아 비교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 전체는 단지 오류일 따름이다.

5월에 권력 장악으로 나아가는 것이 모험주의였다고 누가, 어디에서 말했는가? 이것은 특히 통일노동자당 자신의 의견은 아니었다. 그 전날 까지도 통일노동자당은 만약 노동자가 하려고만 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고 노동자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노동자는 '하려고 했다.' 어떤 점에서 모험주의인가?

이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관점에서 볼 때, 스탈린주의자 측의 비열한 도발의 요소는 부차적인 중요성밖에 없다. 사태 이후의 모든 보고는 진지함과 자신감을 가진 지도부가 있었다면, 5월봉기의 승리가 확보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만약 노동자가 '하려고만 한다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한 통일노동자당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다. 단,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 유감스럽게도 노동자는 혁명적 지도부가 없었다.

이전의 통일노동자당의 모든 정책이 이러한 주도력을 허용하지 않게 했기 때문에一따라서 오직 이 때문에一통일노동자당은 카탈로니아의 노동자계급을 혁명적 공세로 이끌 수 없었다.

 

1917년 '7월시기'와 1937년 '5월시기'

그렇지만 이 점에서 베레켄 동지는 항변할 수 있다 : '그러나 1917년 7월에 볼셰비키도 권력을 장악하려고 결정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방어투쟁에 한정하고, 할 수 있는 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대중을 사선(line of fire) 밖으로 끌어냈다. 그렇다면 왜 이 정책이 통일노동자당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인가?'

이 주장을 검토해보자. 스네블리트와 베레켄 동지는 스페인이 '러시아는 아니다', '러시아적' 방식을 이 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런 종류의 추상적 설교는 어떤 진지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잘 했건 못 했건 간에,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스페인혁명의 구체적 조건을 분석하려고 노력해왔다. 실제로 그 시작 단계에서 우리는 1917년의 러시아와 같은 사태 발전의 급속한 템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우리는 프랑스대혁명과의 유추를 말했다. 프랑스혁명은 1789년에 시작해 1793년에 그 정점에 이르기 전에 일련의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1917년 7월 페테르부르크의 볼셰비키 전술을 1937년 5월 카탈로니아의 사태에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가 역사적 사건을 결코 도식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러시아가 아니다.' 양자의 다른 특징이 너무 명백하다.

페테르부르크 노동자계급의 무장시위는 혁명 개시 4개월 뒤에, 볼셰비키당이 진정한 볼셰비키 강령(레닌의 4월 테제)을 내놓은 3개월 뒤에 일어났다. 이 거대한 나라의 인민의 압도적 다수가 2월의 환상에서 이제 막 벗어나고 있었다. 전선에는 당시 볼셰비키당에 관한 첫 소문을 접했을 뿐인 1천 200만 명의 군대가 있었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페테르부르크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봉기는 불가피하게 분쇄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이런 것들이 볼셰비키당의 전술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스페인의 5월 사태는 혁명 4개월 뒤가 아니라 6년 뒤에 일어났다. 전국의 인민대중은 거대한 경험을 겪고 있었다. 훨씬 전에 대중은 인민전선의 재탕한 환상뿐만 아니라 1931년의 환상도 잃어버렸다. 대중은 끝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든 지역에서 거듭 보여주었다. 만약 1937년 5월에 카탈로니아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했다면一실제로 1936년 7월에 장악했던 것처럼一이들은 스페인 전역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르주아-스탈린주의 반동세력은 카탈로니아 노동자 분쇄에 가담할 2개 연대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코가 점령한 지역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도 카탈로니아 노동자계급에게로 마음을 돌려, 파시스트 군대를 고립시키고 그 필연적인 해체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외국정부가 불이 붙은 스페인 땅에 자국 군대를 투입하는 위험을 무릅쓸 것인지 의심스럽다. 군사적 간섭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매우 위험할 것이다.

당연히 모든 봉기에는 불확실성과 위험의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후의 사태 추이는 심지어 패배한 경우에도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상황이 현재보다 훨씬 더 유리해졌음을 입증했다. 물론 혁명정당이 존재했다면,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보증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베레켄은 어떤 근거에서 당시 상황에서 카탈로니아의 권력 장악이 '모험주의'였을 것이라고 단언하는가? 아무런 근거도 없다. 다만, 중도주의의 무기력함을 정당화하려는 욕구, 동시에 중도주의의 좌익적 흔적밖에 없었고, 여전히 그런 자신의 정책에 근거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베레켄은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배제를 옹호한다.

끝맺는 말도 보고 전체와 같은 수준이다 : '통일노동자당내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만약 보르디가주의자가 우리 당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우리는 분파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지만 틀림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중도주의의 변호인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볼셰비키-레닌주의자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혁명가인가? 분간하기가 어렵다. 베레켄은 통일노동자당의 민주주의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은 자신의 당에서 혁명가들을 쫓아낸다. 베레켄은 이렇게 말한다 : 기회주의자들이 올바르다, 왜냐하면 버릇없는 혁명가들이 분파를 만들기 때문이다.

베레켄이 처음에 통일노동자당에 대해서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 그것(통일노동자당)은 '새롭고, 동질적이지 않으며, 그 좌익은 허약하다.' 이 동질적이지 않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양한 분파와 소분파로 구성된 당으로부터 통일노동자당은 공공연한 개량주의자, 소부르주아적인 카탈로니아 민족주의자는 물론이고 중도주의자도 아닌 볼셰비키-레닌주의자만을 쫓아내고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인 베레켄은 중도주의자의 탄압을 승인한다. 아시다시피, 그는 통일노동자당의 강령과 전술이라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분파의 권리라는 법리적 문제에 몰두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 중도주의 정당내의 혁명적 분파는 긍정적 사실이다. 혁명정당내의 종파주의나 기회주의 분파는 부정적 사실이다. 베레켄이 문제를 단순한 분파의 존재 권리로 환원시키는 것은 그가 중도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분계선을 완전히 없앴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 점에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통일노동자당내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들 한다. 이것은 사실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존재한다. 우파, 중도주의자, 동요분자를 위한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다만, 볼셰비키-레닌주의자를 위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통일노동자당내의 민주주의의 정도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근본적으로 적대하는 이 당의 중도주의 정책의 실제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용납할 수 없는 돌출 행동

그러나 베레켄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통일노동자당을 옹호하기 위해 그는 카탈로니아의 우리 동지들에 대한 직접적인 중상(딱 들어맞는 표현이다!)에 의지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바르셀로나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 지부는 출세주의자나 모험주의자들로 구성되었다.' 이것을 읽은 사람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회민주주의자인가? 스탈린주의자인가? 적인 자본가계급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 벨기에 지부의 책임있는 위원이 한 말이다. 이것은 사태의 전체 발전과정에 의해 폭로된 오류를 고수할 작정인 것이다! 만약 벨기에 지부의 회보가 바르셀로나 게페우의 하수인 손에 들어가면, 그들은 내일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베레켄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출세주의자나 모험주의자이다. 따라서 이들을 없애야만 한다!'

우리는 분노로 베레켄 동지의 이 용납할 수 없는 돌출 행동을 배격하고, 우리의 모든 국제적 권위를 동원하여 우리의 젊은 바르셀로나 조직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우리 지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렇게 덧붙이겠다. : 바르셀로나의 우리 동지들은 올해 7월 19일의 그 강령적 호소에 따라 보여준 것처럼, 베레켄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깊고, 진지하게 혁명의 임무를 이해하고 있다. 국제서기국의 진짜 '오류'는 오히려 현 시점까지 그의 주장을 비난하지 않은 것이며, 우리 벨기에 지부가 그것을 비난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베레켄 동지가 올바른 노선으로 복귀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견해 차이를 더욱 악화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벨기에 지부와 국제조직의 각기 다른 발전 단계에서 베레켄 동지를 봐왔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계급의 대의에 대한 베레켄 동지의 헌신, 그 에너지, 이 대의에 자신의 모든 힘을 사심 없이 쏟으려는 그 열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젊은 노동자는 이런 점을 베레켄 동지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입장에 관한 한, 유감스럽게도 그는 훨씬 자주 마르크스주의 노선에서 몇 미터씩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일탈한다. 그렇다고 해서 베레켄 동지가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한 편도 아니다. 과거에 우리는 특히 베레켄 동지의 종파주의 경향과 싸웠어야 했다. 그는 벨기에 지부에 적지 않은 해를 일으켰다. 그러나 심지어 그때에도 종파주의가 언제라도 기회주의라는 꽃이 활짝 필 수 있는 봉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비밀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 앞에서 정치적 식물학의 이 법칙이 매우 두드러지게 확인되고 있다. 베레켄 동지는 부차적 중요성을 가진 문제나 조직의 형식적 문제에서 종파주의가 결국 거대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 정치적 문제에서 기회주의에 이를 뿐임을 입증했다.

제4인터내셔널의 내부 생활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다. 베레켄 동지는 이 민주주의를 매우 폭넓게, 때로는 무정부주의적으로도 이용한다. 그래도 민주주의 체제의 이점은 경험과 동지적 토론에 의지하는 압도적 다수가 권위 있는 의견을 자유롭게 정식화하고, 위험한 길에 발을 딛게 된 소수를 제때에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현 시기에 우리 벨기에 지부와 동시에 네덜란드 지부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다.

 

1937년 8월 24일

 

 

스페인 정세에 대한 질문에 답하여

一간결한 요약

 

■ 이 글은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본적 견해를 제시하며, 이른바 '혁명적 패배주의'에서 공화주의 세력의 패배를 바라거나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는 극좌파를 비판한 것이다. 이 글에서 트로츠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파시즘으로부터 방어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1. 네그린과 프랑코 사이의 차이는 쇠퇴하고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차이이다.

2. 어디에서나, 언제까지나, 어떤 곳에서나, 언제라도 혁명적 노동자가 부르주아 체제를 즉시 타도할 만큼 강력하지 않은 경우에는, 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파시즘으로부터 방어하고,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내부에서 자신의 지위를 방어한다.

3. 그렇지만 노동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방식(인민전선, 선거블록, 연립정부 등)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 즉 혁명적 계급투쟁의 방식에 의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한다. 예를 들면, 파시즘에 대한 군사적 투쟁에 참가하면서도 노동자는 자신의 조직, 자신의 권리, 자신의 이해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로부터 계속 방어한다.

4.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것을 낳은 자본주의와 함께 붕괴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파시스트의 봉기 가능성은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징후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개혁'은 노동자계급의 강령이 될 수 없다. 파시즘에 대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은 우리의 노선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복과 노동계급독재의 수립에 종속된 전술적 에피소드일 뿐이다.

5. 인민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가계급과 연합하는 것, 이 인민전선 정부에 참가하는 것, 이러한 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것, 부르주아 정부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독자적 선동과 조직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유리한 경우에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단발마적 고통을 연장시킬 뿐이며, 파시즘의 승리를 더욱 쉽게 할 뿐이다. 반(反)혁명의 직접적 하수인인 스탈린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전국노동자연맹과 통일노동자당 지도자의 정책이기도 한 인민전선 정책은 노동자계급 이해의 관점에서 볼 때, 파멸적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6. 그러나 스탈린-네그린 정부와 프랑코의 정부가 어느 쪽이나 자본주의의 경비견(watchdogs)이라는 것이 사실이라고一그런데 사실이다一해도, 또 스탈린-네그린 정부의 정책이 필연적으로 파시즘의 승리에 이를 것임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해도, 스탈린-네그린과 프랑코 군대 사이의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이다. 스페인 노동자계급과 세계의 노동자계급은 (ㄱ) 프랑코의 군사적 분쇄, (ㄴ) 내전 중에 최대한 빨리 스탈린-네그린 정부의 타도를 준비할 수 있는 정책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7. 이에 반대하여, 두 부르주아 국가 사이의 전쟁 중에 혁명적 노동자계급은 자국의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자국 정부의 패배는 보다 작은 악이다'라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규칙을 서로 싸우고 있는 두 부르주아 정부 사이의 내전에도 적용할 수는 없는가?

적용되지 않는다. 두 부르주아 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그 목적은 제국주의적 정복의 하나이지,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투쟁이 아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문제는 민주주의인가 파시즘인가이다.

자본가계급에게는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차이가 결정적이지 않다.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나 파시즘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소부르주아 대리인 一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의 지도자들一에게 민주주의는 자신의 존속과 영향력의 원천을 의미한다. 파시즘은 이들에게 붕괴와 파멸을 의미한다. 혁명적 노동자계급은 싸우고 있는 양 진영을 같은 가방에 넣어서는 안 된다. 이들의 투쟁을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혁명가는 중립 정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1의 적인 파시즘에 군사적 타격을 가하는 것을 통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8. 프랑코는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이 증오하는 알기 쉬운, 직접적인, 불구대천의 적이다. 네그린, 스탈린, 카바예로 등등은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 농민을 지도하는 덜 분명하고, 더 위장한 적이다. 프랑코와의 투쟁은 물리적인 투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네그린과의 물리적 투쟁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혁명적 분자가 소수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지않아 피할 수 없는 물리적 투쟁은 정치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이 정치적 준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정부의 사악한 군사행동을 규탄하고 폭로하며, 이 사악한 군사행동의 이유가 자본의 이해에 대한 정부의 굴종 때문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9. 이에 반대하여, 두 제국주의 진영(한편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다른 한편에는 영국, 프랑스와 소련)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자신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고, 스페인전쟁은 이 투쟁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역사적 가능성의 의미에서는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 가능성을 오늘날, 내전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과정과 동일시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이 스페인의 사태 발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오늘까지 이것은 스페인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진영과 스페인의 파시즘 진영 사이의 투쟁인 이 사태의 기본적 성격을 바꾸지 못했다.

10. 같은 근거에서 전쟁이 계속된다면, 이 두 진영 사이의 정치적 차이는 제로(0)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오늘 현재는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도 바뀔 수 있다 : 프랑코의 군사적 타격에 영향을 받아 네그린 정부는 예컨대, 코르닐로프에게 타격을 받은 1917년 8월에 케렌스키 정부가 했던 것처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양보도 네그린 정부 타도를 더 잘 준비하기 위해서 이용할 것이다.

11. 예를 들어, 카바예로가 많은 사람이 바랐던 것처럼, 네그린에 대항하는 투쟁에 착수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카바예로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는 일 없이, 이 투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가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투쟁에 필수적인 단호함과 혁명적 강령의 결여를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바예로는 자신의 군대인 노동자총연합(UGT)과 그를 다그쳐 투쟁의 길에 몰아세운 무정부주의자 노동자(CNT)로부터도 비겁하게 도망쳤다. 이 희극적 영웅의 도망은 많은 환상을 쫓아버리고, 진정한 혁명가를 위한 더 많은 여지를 주고, 프랑코에 대한 군사적 투쟁 중에 대중을 네그린에 맞서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12. 하나의 예를 들자. 무기와 군수품을 실은 두 대의 배가 프랑스 또는 미국에서 한 대는 프랑코 측을 향해, 다른 한 대는 네그린 측을 향해 출발했다고 하자. 이 경우, 노동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양쪽 배 모두를 사보타지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프랑코 측을 향한 배만을 사보타지해야 하는가?

우리는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네그린 정부를 지지하는 군수품을 실은 배를 통과시킬 것이다. 우리는 어떤 환상도 없다 : 이 탄환들 가운데, 10발 중 9발은 파시스트에게 발사되겠지만, 적어도 1발은 우리 동지들에게 향할 것이다. 그러나 프랑코 지지 낙인이 찍힌 무기의 경우, 10발 모두가 우리 동지들에게 향할 것이다. 우리는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프랑코를 지지하는 군수품을 실은 배를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스페인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면, 군수품을 실은 배가 봉기노동자의 수중으로 향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강하지 않다면, 우리는 보다 작은 악을 선택할 것이다.

13. 혁명정당인 우리가 네그린을 위해 새로운 의용병을 동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들을 게페우의 수중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네그린 정부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것은? 당찮은 소리다! 우리는 스페인의 우리 동지들을 위해서 돈을 모을 것이다. 만약 국경 너머로 동지를 보낸다면, 우리 자신의 운동을 위한 공동모의로 그렇게 할 것이다.

14.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위한 북미위원회(North American Committee for Spanish Democracy) 같은 위원회나 각종 회의, 노동조합 투쟁 등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노동조합은 정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페인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조직을 위해서 투쟁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한다. 이에 반대하여, 스페인의 노동조합 지도자는 정부와 가깝고, 따라서 이들에게 투쟁자금을 보내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간단한 한 가지 예를 드는 것으로 답하겠다. : 1926년, 영국의 광산노동자 파업 중에 우리는 그 지도자가 영국 정부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던 광산노동자조합에 투쟁자금을 보냈다. 파업위원회는 개량주의자들일 수 있었다. 경영자와 유착하고 있는 이들은 배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가 지도자를 바꿀 수 없는 동안은 이들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이 노동자를 배신할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들에게 투쟁자금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노동자에게 경고했다. 따라서 배신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 '알다시피, 여러분의 지도자는 여러분들을 배신했습니다.'

15. 쌀렘므[아틸리오 쌀렘므(Attilio Salemme) : 미국사회당의 좌파인 [어필 어소시에이션]의 위원, 스페인 문제에 관해서 '부르주아 공화주의 정부에 대한 정치적, 물질적 지원 반대!' 입장을 취했다. 쌀렘므는 1937년에 트로츠키주의자로 제명당해 사회주의노동자당에 입당했다.]결의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공화주의자의 승리를 선호한다"는 캐넌-샤흐트먼-골드먼의 노선은 스탈린주의자의 접근법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적 원조는 정치적 지지를 뜻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폭로하는 "보다 작은 악"인 인민전선 정책이라는 수렁으로의 공개적인 타락이다. ··· 무기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 노동자, 즉 스페인 정부에 군사적이거나 물질적 원조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 노동자는 정부의 스탈린주의자 체카에 의해 총살되고 있다.'

그렇다, 우리 동지가 정부의 체카에 의해 총살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쌀렘므 그룹은 이로부터 어떤 결론을 끌어내는가? 공화파 군대로부터의 탈주인가, 아니면 군사봉기인가? 탈주한다면, 어디로 탈주하는가? 아무려면 프랑코 진영으로의 탈주이기야 하겠는가. 정부가 노동자와 농민을 동원했다면, 이 정부를 군사적으로 원조하는 것에 대한 거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탈주나 봉기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총파업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특히 전시의 총파업은 정부 타도를 목표로 하는, 즉 봉기의 서론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민에게 봉기를 호소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데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 결의문이 작성자의 정치적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페인을 위해서 작성되었다면, 도대체 쌀렘므의 부대가 스페인에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다. 우리가 병사에게 싸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동자(공화파 정부를 '물질적으로 원조'하는 군수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할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권력을 장악할 만큼 강하지 않다면(사실이 그렇듯이), 세력관계에 의해 결정된 물질적 조건 속에서 프랑코에 맞서 군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동시에 우리는 네그린에 대한 봉기를 정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16. 이들의 결의문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혁명적 노동자는 부르주아 정부의 방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오직 노동자 정부만을 방어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들은 오직 제국주의적 충돌에서만 혁명적 패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스페인내전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해는 혁명파에게 혁명적 패배주의나 방어주의를 요구하는 모든 강령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파시즘에 대한 전쟁은 네그린 정부의 방어 이상의 것이다. 우리에게는 노동자 조직이 있다. 스페인, 특히 카탈로니아에는 사회주의적 소유, 집산화된 농장이 있다. 네그린 정부는 이것에 적대적이지만, 지금까지 묵인하고 있다. 우리는 이 획득물을 프랑코로부터 방어해야 한다.

17. 쌀렘므의 결의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혁명파는 어떠한 경우에도 프랑코에 대한 군사적 투쟁의 사보타지를 요구하는 구호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은 혁명적 패배주의 입장에 빠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성명은 자신을 변호한다. 이 '혁명파'는 너무도 혁명적이어서 자신의 입장에 의해 스스로가 비난받는 것처럼 생각되자, '프랑코에 대한 군사적 투쟁의 사보타지'를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런 언질은 이 '혁명파'에게 조금 … 굴욕적이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것은 결의문 작성자가 공화파 군대의 '사보타지'에 대해서만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프랑코 군대에 대한 사보타지를 지지하는가? 작성자는 파시스트 군대 안의 사보타지를 지지하는가? 여기에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이 '생략'은 이 그룹의 입장 전체에서 대단히 특징적이다. 격렬한 표현과 무시무시하게 급진적인 정식의 엄호 아래, 이들은 스스로 에 대한 자신의 확신의 결여를 감추려고 한다. 이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순전히 형식적인 비타협파(school)는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사사건건 비난한다. 따라서 이러한 파의 문하생이 우연히 현실에 눈을 뜨면, 그는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벨기에의 베레켄 동지를 통해 이런 놀랄만한 실례를 접하고 있다.

18. 쌀렘므의 결의문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범죄적으로 히틀러에 대한 힌덴부르크의 승리를 선호했으며,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를 손에 넣은 사회민주주의자나, 랜든[알프레드 랜든(Alfred Landon, 1887-1987) : 미국의 정치인, 실업가. 1912년부터 캔사스주에서 석유회사를 경영, 캔사스 주지사(1933~37). 1936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였지만, 현직의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완패했다.]에 대한 루즈벨트의 승리를 선호한 스탈린주의자는 프랑코에 대한 네그린의 승리를 선호하고, 네그린의 군사독재나 네그린-프랑코의 휴전 둘 중 하나를 손에 넣을 캐넌, 샤흐트먼 일당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타락하고 있다.'

네그린과 프랑코의 내전은 힌덴부르크와 히틀러의 선거 경쟁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힌덴부르크가 히틀러에 대해서 공개적인 군사적 투쟁에 착수했다면, 힌덴부르크는 '보다 작은 악'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보다 큰 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작은 악'을 선택한다. 그러나 힌덴부르크는 '보다 작은 악'이 아니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한 공개적인 투쟁에 돌입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러기를 바랐지만―그것은 어리석은 소망이었다一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가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히틀러에 대항하여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독자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스페인의 경우에서도 우리는 네그린을 정치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네그린의 군사예산에 반대 투표했을 것이다.[저자 주 : 네그린 정부의 군사예산에 찬성 투표하는 것은 그에게 정치적 신임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그것은 범죄이다. 우리의 투표를 무정부주의자 노동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매우 간단하다. : 우리는 이 정부가 전쟁을 수행하고, 숭리를 보장할 능력이 있다는 데에서 조금도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정부가 부자를 옹호하고, 가난한 사람을 굶기고 있다는 것을 규탄한다. 이러한 정부는 분쇄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정부를 대체할 만큼 강력하지 않은 동안, 우리는 그 지휘 아래 전투를 수행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이 정부에 대한 우리의 불신임을 공공연하게 밝힌다. 이것이 이 정부에 대항하여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그 타도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밖의 어떠한 정책도 혁명에 대한 배신일 것이다. -크룩스(Crux, 트로츠키의 필명)] 우리는 군사행동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네그린에게 지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군사행동을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는 파시스트 도당을 격퇴해야 한다.

프랑코에 대항하여 네그린 군대와 함께 투쟁하는 것이 히틀러에 대항하여 힌덴부르크에게 찬성 투표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의회백치병으로 알려져 있는 것의 한 표현이다. 반(反)파시즘 전쟁은 의회주의적 수단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무력으로만 분쇄될 수 있는 반동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책一즉 히틀러에 반대하는 힌덴부르크와의 단순한 의회주의적 연합의 결성一에 반대한 이유였다. 우리는 노동자 의용군 창설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우리는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수행하고 있다. 분명히, '민주주의' 군대의 총사령부는 내일 프랑코와의 휴전에 합의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사실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 사태를 간과할 수도 없다. 우리는 전술적으로 파시스트에 대한 공화주의자의 전쟁을 전략적 목적, 즉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위해서 이용해야한다.

19. 쌀렘므의 결의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 '캐넌과 샤흐트먼은 7월 30일의 총회 보고에서, "예를 들어, 파시스트에 대한 전쟁에서 공화파 군대 안에서 투쟁하는 것과 같은 물질적 원조로 정부를 지지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기본적인 노동자적 의무에 범죄적으로 태만한 사람일 것이다"(강조는 인용자)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캐넌-샤흐트먼에게 묻는다 : 부르주아적 군사규율의 침투에 맞서 싸운 카탈로니아의 혁명적 노동자는 자신의 기본적인 노동자적 의무에 태만했는가? 이들이 부르주아 공화파 군대에 무기를 인도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즉 물질적 원조를 거부했다면, 이들은 노동자적 의무에 태만했던 것인가?…우리가 인민전선을 군사적으로 원조하려고 하지 않았을 때, 번햄[제임스 번햄(James Burnham, 1905~1987) : 당시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의 지도자, 40년 당과 결별했다. 나중에 맥카시즘의 선전가가 되었다.]이 우리에게 퍼부은 비난처럼, 당시 이들이 제5열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여기서는 모든 것이 같은 가방에 들어 있다. 카탈로니아의 노동자는 5월 3~7일에 정부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들은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권력을 위해 싸웠다. 만약 권력을 획득했다면, 프랑코에 대항하는 전쟁을 더 잘 수행할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한 혁명적 지도력을 빠뜨린 채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 패배했다. 이제, 이들은 5월 사태 전보다 10배는 더 약해져 있다. 노동자는 지금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브롱크스나 맨하튼이 아니라 여기 스페인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봉기하여 네그린 정부를 타도하려고 해야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너무 약하고, 지금은 무장해제 되어 있다. 쌀렘므 그룹은 우리의 말을 흉내 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여러분은 장차 네그린 정부의 타도를 위해 대중을 정치적으로 준비시켜야 합니다. 좋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프랑코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프랑코를 분쇄하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또는 '우리는 방어주의자도 패배주의자도 아니다'라는 구호는 원칙적 관점에서 잘못된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파멸적이다. 이는 어떠한 선동적 가치도 없다. 혁명가가 내전중인 양 진영 사이에서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라는 깃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것은 폰티우스 필라투스[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 그리스도를 처형한 유태의 로마총독으로, 처형 판결에 즈음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표시로 손을 씻었다. 즉,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클럽의 구호이지, 혁명정당의 구호는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 조직의 방어에 찬성하고, 프랑코에 대한 혁명의 승리에 찬성한다. 우리는 '방어주의자'이다. '패배주의자'는 네그린-스탈린과 같은 패거리이다. 우리는 가장 뛰어난 투사로서 프랑코에 맞선 투쟁에 참가한다. 동시에, 파시즘에 대한 승리를 위해서 우리는 사회혁명을 선동하고, 네그린의 패배주의 정부를 타도할 준비를 한다. 이러한 태도만이 대중에게 접근할 기회를 줄 것이다.

 

1937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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