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할머니는 한글을 모르십니다.
적어둔 전화번호가 누구껀지 읽어달라는 말에, 오늘 다시금 깨달은 사실입니다.
여자가 무슨 글이냐며, 그리고 지독히 가난한 시대에 생업에 몰리며, 글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이모, 삼촌을 공장다니며 뒷바라지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TV자막이나 간판도 겨우 띄엄띄엄 읽을 수 있으니,
수많은 문자의 홍수속에서 얼마나 답답하실지.
산업화 시대, 대학을 가고싶었지만, 상고에 진학했던 엄마.
똑똑한 엄마였지만, 자식 둘을 대학 보낼 여유는 없다고,
아들이 먼저라며 삼촌을 밀어줬던 할아버지.
지지리도 공부하기 싫어했던 삼촌은 결국 기름때 묻혀가며 일을하고 있고,
엄마는 학원도 운영하시다가 지금은 부동산 매매업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도,
정치를 모르는 엄마도
선거일의 한표는 꼭 행사합니다.
대개 기준은 유명한 사람, 또는 될만한 사람입니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민주주의를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과도기입니다.
더 큰 가치를 위해 끌어안고 감내해야될 부분입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할머니와 엄마에게 당해 선거의 쟁점을 설명해줍니다.
할머니는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다행히도 엄마는 대화가 통합니다.
비록 권위주의 교육이었지만, 할머니에겐 없는 이해와 비판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예측되는 현상을 설명해주면 이해할 수 있는겁니다.
위정자들은 정직하되 어리숙한 민중들을 교묘히 이용 해왔습니다.
북풍, 이미지메이킹, 복지불안조성, 지역분열... 뻔히 보이는 수지만,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세대에겐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계급배반적인 투표는 앞으로 조금씩 감소될겁니다. 30년 정도 지나면 가시적으로 꽤 보이겠지요.
그 전까지 헬조선의 지옥불 온도가 떨어지는 것은 체감하기 어려울겁니다.
그래도 온도는 떨어집니다.
역사에 점프는 없습니다. 정-반-합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어갑니다.
개인으로서 옳은 정 (또는 옳은 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비판해야 겠지요.
아직 가난탈출과 민주화의 시절을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가난탈출과 민주화가 시대의 목표였던 사람들과 함께 공기를 나눠마시고 있기때문이죠.
흔들리지 말고, 싸움을 길게 봅시다.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이겠지만 분명 온도는 떨어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