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당신은NERD
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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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유행하는 어휘 중 헬조선이라는 게 있다. 기원은 한 4~5년 정도 전에 DC 등에서 가끔 등장했던 어휘였고, 정확한 표현은 헬조선이 아닌 "헬조센"이었다. 이 어휘의 본래 의미는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조선은 미개한 중세 봉건 국가였고, 일본제국에 의한 멸망은 필연적이었으며, 일본제국은 한반도 근대화의 1등 공신이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조선의 미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이 한국을 멸시하는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조센이라는 표현이 헬에 결합되어 있던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일제 시대에 한반도인의 삶의 질이 높아졌는가가 오히려 중요한 이슈이지만, 굶어죽어가던 농민이 노예가 되어 묽으나마 곡물죽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삶의 질의 향상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뭐라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이 용어가 갑자기 유행하게 된 데에는 블리자드의 공헌이 크다. 첫째로 블리자드는 와우에 지옥불반도라는 지명을 만들어 한국과 지옥을 연결짓는 단초를 제공했고(그래서 누군가 지옥불반도 지도를 고쳐서 SNS에서 인기를 끈 것이 헬조선 대유행의 시작), 둘째로는 디아블로3에 불지옥으로 번안된 난이도를 만들어서 지옥불반도와 유사한 불지옥반도라는 표현도 함께 유행하게끔 만들었다. (반도 역시 일본이 한국을 멸시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불지옥반도, 지옥불반도 등이 유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 짧은 표현에 대한 욕구가 생겼을 것이고, 거기서 과거에 잠시 등장해서 막 널리 쓰이지는 못했으나 베충이들 사이에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던 헬조센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수 있겠고, 그렇게 해서 젊은 세대가 진영을 가리지않고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대유행시켰다는 것이 현재 본인이 파악하고 있는 헬조선이라는 어휘의 역사이다.

 

 

그렇게 해서, 경향신문이 이 헬조선의 사회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의미망 분석을 통해서 기사를 몇 개 작성했는데, 헬조선과 밀접한 키워드가 미개와 노오력이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봐서 알 것이다. 노오력이 노오력을 해서 헬조선을 탈출하라는 건지 노오력을 해도 헬조선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건지는 진영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 나라는 미개함 때문에 버티기 힘든 지옥같은 곳이고 엄청난 노력을 요구당한다는 게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감하는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던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다. 그냥 헬조선이 이런 의미로 쓰인다는 것 뿐, 이게 어떤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는 않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죽창과 탈조선이다. 죽창이 가리키는 건,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어서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건 옆사람 배때지를 찌르는 것 외에는 실효성도 의문시되는 조악한 죽창 뿐이라는 초라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그나마 보통은 죽창조차 없지만, 간신히 죽창을 쥐었을 때조차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죽을 힘을 짜내 옆에 있는 기득권 편드는 꼰대의 배때지에 죽창 한 방 찔러줄 수 있을 따름이다. 죽창만 가지고는 총칼로 무장한 기득권을 상대로 혁명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탈조선은, 이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비주류 사회 최하위층으로나마 정상적인 시민 공동체가 존재하는 선진국으로 탈출하는 게 헬조선의 주류 노예로 살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현실 인식이다. (물론 현실의 탈조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심지어 탈조선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주지도 않지만.)

 

헬조선닷컴이라는 싸이트에 가보면 재미있는 표어가 있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죽창맨이라는 만화에 나왔던 표현이라고 한다. 사이트 로고도 죽창이다. 사이트에는 반체제적인 혁명의지 넘치는 과격한 글이 넘쳐나야 할 것 같다. 헌데, 헬조선닷컴의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한국의 미개성과 전근대성에 대한 비아냥, 탈조선에 대한 얘기만 나올 뿐 죽창 들고 혁명하자는 얘기는 없다. 간헐적으로 꼰대에 대한 소소한 복수담이 나오곤 하지만,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는 헬조선 노예들에게는 꼰대들에게 죽창질을 할 여건은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이들의 생사여탈권은 꼰대들이 쥐고 있고, 대다수의 헬조선 노예들은 묵묵히 헬조선 꼰대들의 꼰대질을 들으며 탈조선의 꿈만 꿀 따름이다. (사실 사이트 표어는 죽창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데, 배곪아서 등과 배가 붙은 사람과 배때지에 기름이 넘치는 사람이 죽창을 맞았을 때의 치명도는 매우 다를 것 같다. 물론 배때지에 기름이 넘치는 사람 옆에는 대체로 총이나 곤봉으로 무장한 경비가 붙어 있겠지.)

 

헬조선 담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냥 두면 영원히 개선되지 않고 더 나빠지겠지만 우리가 힘을 모아 뭘 해볼 수도 없다. 죽창을 외치지만 실은 현실에는 우리가 쥘 죽창조차 없고, 설령 죽창이 쥐어져도 혁명은 언감생심이다. 옆에서 함께 죽창을 외치는 저 친구도 나랑 같이 죽창 들고 꼰대들에게 죽빵을 날릴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그냥 혼자 얌전히 탈조선의 꿈이나 꾸는 수 밖에 없다. 죽창을 외치는 이들의 관심사는 사실 죽창이 아닌 탈조선이고, 이들의 감정은 혁명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냥 학습된 무기력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MB 정권 광우병 파동때만 해도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자발적 시민운동이 발흥하던 초창기에는 정권을 무너뜨리든 저들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지만, 공권력을 동원한 MB의 탄압일로에 온갖 운동들은 속절없이 스러져갔다. 정권은 낙하산을 통한 방송사 장악하고 종편을 출범시키며 언론에서 어떠한 시민운동도 무시해버리도록 만들었고, 검경과 사법부는 정권의 충직한 개 역할을 자임하며 (노무현 정권 시절 권력과 싸우던 그들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다.) 힘들게 모인 시민들을 그야말로 박살을 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몇 몇 운동권 인사들은 운동의 방향을 자기들 멋대로 이끌어가고자 했지만 결국 운동의 추진력을 분산시키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며 정권의 쁘락치 역할을 수행, 항쟁의 작은 불씨마저 남김없이 꺼버리고 말았다.

 

결국, 사람들의 희망은 2012년에 몰려있는 총선과 대선을 통한 정권 교체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으나, 현실에 나타난 건 50대 이상의 시민의식 결핍과 철학의 부재와 영문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단결력으로, 휴거라도 발생해서 50대 이상만 하늘로 들어올려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향후 30년은 절대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을 따름이다. 그 와중에 민주당은 스스로 내부에서부터 자멸하며 자신들이 대권을 가져올 실력도 의지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사람들을 완벽하게 절망의 구덩이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요는, 지금의 헬조선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50대 이상의 민정당에 대한 편집증적 지지는 광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떠한 설득이나 협박도 먹히지 않는다는 게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민정당 집권기 내내 공동체는 붕괴하고 사회 시스템은 박살나고 있고 이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시민 저항도 효과적으로 분쇄되고 있다. 그렇다고 저들이 기조를 바꿔서 기득권의 사익 추구에 제동을 걸고 박살난 사회 시스템을 원상복귀할 리도 없어 보인다.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봐야 돌아오는 건 민정당을 광신하는 기성세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류의 꼰대질 뿐이다. 이 상황에서 당장 삶이 무너지고 있는 2~30대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난 7년 여 민정당 정권에서 2~30대가 얻은 건, 앞으로 절대 상황이 좋아질 리 없다는 확신에 가득찬 절망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 뿐이다. 그저 유일한 희망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옆에 있는 꼰대의 배때지에 죽창 한 방 날려주는 것 뿐이다. 희망은 존재하지 않고 무너진 공동체와 학습된 무기력만이 존재하는 상태. 이것이 헬조선과 죽창과 탈조선의 의미인 것이다.

 

헬조선 담론이 에너지로 분출되지 않고 각자도생 탈조선으로 끝나는 것은, 헬조선은 어떤 집단의 에너지의 응축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발산되는 어떤 에너지의 파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헬조선 담론의 에너지를 모아서 혁명의 에너지로 전환해보자는 양반이 있다면 꿈 깨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헬조선 담론은 블랙홀을 만들어내기 위한 질량이 아니라, 과거에 응축된 질량이 붕괴하며 방출한 우주복사의 흔적일 따름이다.

 

http://l17690.blog.me/220483342385






  • 진짜 제가 가입했을 때, 그러니까 작년 하반기 정도에는 그래도 엎조선하자는 의견도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뭐랄까 엎조선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많아지긴 했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살기 힘들수록 들고일어나야한다는 것보다는 살기 힘드니까 그런 현실에 순응하며 살자고 느끼는 것 같고, 저는 그것을 노량진에서 느꼈습니다. 취업이 안 되는 현실 속에서 공무원이라도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것을 종교처럼 맹신적으로 믿고 합격해서 공무원이 된다는 꿈으로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면서 오늘도 헐렁한 츄리닝 입고 책가방을 들고 학원에 가는 것만 무한반복하는 2030대, 명퇴당한 405060대 모두 공무원이 되서 살아남아야지 라는 생각만으로 무기력하게, 소극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니 답이 없다고 봅니다. 제가 노량진에서 혁명 이야기하면 전한길 교재로 쳐맞는다고 하는 게 괜히 말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아무튼, 저는 저를 비롯해서 엎조선을 외치는 분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허한 메아리로 끝난다는 것이 안타깝고, 저 같은 경우에는 공노비를 준비하면서 혁명을 생각하고, 공노비가 되고 나서도 혁명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무원 합격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 라고 정하기도 했습니다.
  • 준비하는 시험에 대해 서로 소기의 성과를 반드시 거두고 직접 만나서 좋은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 위로 감사합니다. 정말로 저는 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뭔가 변화를 외쳐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테러범에 발갱이라고 싸잡아서 욕한다고 해도 그렇기에 저는 가만히 숨죽여서 기다릴 겁니다.
  • KAOS
    16.03.03
    중국의 유명한 격언 중 하나가 생각나네요.. 때가 오기 전까지는 칼날을 철저히 숨겨라.. 이 사이트 가입해서 댓글 달고, 헬추하면서 활동한지도 몇개월이 됐습니다. 쩝, 글쓴분 말씀대로 엎조선은 어불성설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한심하게 살아가는건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이곳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국가가 되어야합니다. 나중에 공노비 합격하시고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고 싶네요. 저도 님처럼 아직은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간 때가옵니다. blazing님이나, john님 말대로 헬조선은 언젠간 무너집니다. 그럼 그날 같이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해지십쇼. 그리고 만납시다.
  • 제가 그 중국 속담을 직접 듣고 생각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의미만 맞으면 되니까 크게 상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앉아서 가만히 당하고 있을 바에는 공노비 되서 혁명(엎조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합격하면 저도 님을 꼭 직접 만나뵈고 싶습니다.
  • KAOS
    16.03.04
    그럼, 그날 만날수 있었으면 하네요. 강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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