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52e3jo3q0g8
상식적으로 임진왜란 천년전에 쳐 망한 고구려와 조선을 연계해서 생각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 문맥상으로 보자면 이 때의 고구려란 거란이라고 간주해야 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거란이 몽골과 여진에 의해서 망하는 과정에서 고구려계들이 대거 고려로 넘어와서는 항쟁했던 것이다.
징기스칸의 금나라 합병 당시에 거란족들의 대대적인 반란이 있었다는 부분은 사서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인 것이다.
본좌가 수차례 주장했듯이 고려와 구리와 거란은 모두 같은 음가를 가진 방언정도이고, 고려와 거란은 똑같은 것이다. 후대에 고려사에서 거란과의 투쟁을 기록한 것 조차도 이조시대의 신진사대부와 사림이라고 카는 실상은 다루가치 자손 캐시기 새끼덜의 날조일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명사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거란과 고구려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보여지며, 이여송의 집안은 거란 출신인 것이다. 명대에만 하더라도 그러한 부분이 실존했다는 것이다.
그 강성한 거란집단이 왜구에게 털렸다니까 어이가 없어 하는 것이 당시의 명나라 지배집단의 논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