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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곡을 쓸 수 없다” 작곡가 류재준 절필 선언
ㆍ한국 음악계 배타성에 질려…자발적인 절필이 아니라 한국이 내 음악 내쫓은 것
ㆍ‘앙상블 오푸스’도 해체
“나는 더 이상 곡을 쓸 수 없다. 앙상블 오푸스도 해체하겠다.”
작곡가 류재준(46·사진)이 절필 의사를 밝혔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폴란드 크라쿠프 음악원 출신인 그는 유럽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작곡가다. 그가 쓴 <진혼 교향곡>은 2008년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이 세계 초연해 호평받은 작품이다. 또 <첼로 협주곡>과 <마림바 협주곡>을 영국 로열필하모닉이 연주한 음반이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지난 10년간 한국 음악계의 배타성에 질려버렸다”며 “내가 한국에서 음악을 하면서 사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격정적으로 털어놓은 첫 번째 절필 사유는 음악계와의 갈등이었다. 특히 그는 한국 작곡계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한국 작곡가들은 이상합니다. 세력화돼 있어요. 그들만의 소사이어티를 만들어서 밀어주고 끌어줍니다. 지난 수십년간 그렇게 해왔어요. 솔직히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곡가가 누가 있습니까? 진은숙 선생과 저밖에 없어요. 저는 차치하고라도 진은숙의 작품 정도는 음대 작곡과에서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안 해요. 배척하는 거죠. 저도 그렇게 천덕꾸러기처럼 당해 왔습니다. 제가 하도 돈이 궁해서 6년쯤 전에 대한민국 작곡상에 제 작품 <진혼 교향곡>을 출품한 적이 있어요. 등수 안에도 못 들었습니다.”
작곡가 류재준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는 한국 작곡가들의 실력에 대해서도 돌직구를 날렸다. “아예 연주할 수 없는 곡들을 쓰는 작곡가들이 허다합니다. 왜 그런 곡을 쓰겠습니까? 악기를 모르니까요. 공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곡을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어서 그는 “그동안 음악계에서 배척당한 기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면서 “지난번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 심사에서 나를 떨어뜨린 것은 한국 사회에서 나를 아예 내쫓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2009년부터 이어져온 서울국제음악제(SIMF)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달 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행사 지원사업 공모 심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예술위와 정면충돌한 적이 있다. “작곡가가 세월호나 용산참사 같은 사태에 관심을 두는 것이 마뜩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지난해 작곡했던 <마림바 협주곡> 2악장은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올해 서울국제음악제는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류재준은 “간신히 수습해 다음달 27일 예정대로 막을 올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앙상블 오푸스’에 대해서는 “돈이 없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할 수 없이 해산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류재준이 2009년 창단해 지금껏 예술감독을 맡아온 연주단체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김소옥, 첼리스트 백나영·김민지·심준호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는 “올해 10월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면서 “단원들에게도 다 얘기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위촉받은 작품으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한국 연주회를 열어 왔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저는 테크닉으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가 아닙니다. 러시아의 쇼스타코비치, 또 저의 스승인 펜데레츠키가 그런 것처럼 음악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저의 예술관입니다. 할 이야기가 있어야 곡이 나오는 거죠. <첼로 소나타> <첼로 협주곡> 같은 제 작품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저의 작곡 행위는 한국에서 배척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창작을 하기 어렵습니다. 자발적인 절필이 아닙니다. 지금의 한국이 저의 음악을 내쫓은 겁니다.”
<문학수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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