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했습니다.
어려서 부터 '좋은' 대학에 오려 했고, 대학에서는 오매불망하던 '좋은'회사에 들어가려고 온갖 노력을 해 드디어 취직이 된 것이지요.
회사원이 되려고 자그마치 20~30년을 바쳤으니 목표를 달성한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들의 전반부 인생은 그저 취직을 하기 위한 과정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들어온 직장에서 한국인들은 행복을 느끼나요?
한국인의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경악스러운 사실이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무덤덤합니다.
최근 몇 해 동안 1위 자리를 멕시코에 넘겨줬다는 통계를 보고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씁쓸할 뿐입니다.직장생활을 통해 인간다움의 가치를 구현한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있을까요?
한국의 회사들은 대체로 사원을 일개 부속품으로 만듭니다. 특히나 대기업이 그렇지요.
부서 간에도 협동보다는 경쟁을 통해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사원 전체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지요.
이렇게 살다 보면 어느덧 회한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기껏 이런 생활을 하려고 지금까지 공부를 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딴에는 용기를 내어 직장을 바꾸기도 하는데 바꾼다고 대수가 아니지요.
기계처럼 사는 똑같은 삶이 되풀이되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남들 사는 모양대로 결혼을 합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그냥 묵묵히 회사를 다녀야 합니다.
아무리 괴롭고 스트레스가 쌓여도 회사를 때려치울 수 업습니다.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 오손도손 살겠다는 소박한 꿈은 현실의 무게에 질식할 지경입니다.
이제는 일터를 바꾸기보다 직장 내에서 승진하는 데 절대적인 관심을 쏟습니다.
평사원에서 대리, 대리에서 과장, 과장에서 차장, 차장에서 부장 등등 올라갈 계단이 많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큰 회사에 들어왔건만 또다시 승진 준비를 합니다.
입사동기에게 뒤쳐질 순 없겠지요.
그러니 자기계발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정체되면 낙오하니까요.
또 그러다 보니 자식이 태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 왔던 한국인의 일생이 후대를 통해 반복됩니다.
태어난 자식에 대한 양육과 교육이 시작되니 말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신의 존립 기반을 아이에게서 찾는다고 합니다.
아기를 낳은 엄마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아빠들은 지긋지긋한 회사지만 자식을 위해 참고 다닌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식들의 현존이 이른바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자식이 귀중하고 예쁘니 당연할 테지요.
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존립 기반을 남에게 두면 안 됩니다.
사람이 자신으로 서지 않고 가장 중요한 가치를 남에게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제대로 서지 못할 때 발생하는 병리적인 상태입니다.
자신이 제대로 선 다음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예컨대 연애를 할 때 자신이 자신으로 서지 못한다면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연인 사이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그 관계는 반드시 파탄이 난다는 것이지요.
의존을 당하는 사람이 지나친 하중을 받으면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애할 때 서로를 아끼는 건 당연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은 당연할 테지만 자식을 위해 과도한 희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책임을 방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의 존재 근거가 남이 될 정도로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자식을 위한 전면적이고 일방적인 희생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연인이나 부모자식 그리고 그 어떤 사람들의 관계에서든?
지나친 희생과 의존은 오히려 훗날 서로의 관계를 불신과 증오의 관계로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 사이에 가장 좋은 관계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성숙인격으로 만나 진정으로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자리이타' 즉 '스스로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게 먼저이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게 먼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한구에서는 거의 불간으해 보입니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행복이 가능할까요?
한국 부모들은 자식이 취직할 때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전적으로 뒷바라지하지만 부모로서 할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자녀의 결혼식도 부모가 맡아야 하는 부담입니다.
예식장 비용은 물론이고 신혼여행 경비마저 대워쟈 할 판입니다.
내 자식의 결혼식이 남들 보기에 초라할 순 없겠지요.
부모들은 자식들의 결혼을 위해 수천 재지 수억 원을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자식이 결혼해서 살 집도 부모가 여력이 닿든다면 전세 정도는 구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부모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식이든 신혼집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젊은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그토록 희생하고 헌신하며 자녀를 키웠건만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는 힘을 외려 빼앗아 버린 겁니다.
어쨌든 인내하고 희생하여 자식을 교육시키고 취직과 결혼까지 성공시켰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자녀가 아이를 낳으면 이제 손주 돌보는 일이 기다립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60대를 훌쩍 넘기고 일흔의 언저리에 와 있게 되지요.
한국인들 특히나 여성들은 이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 시간이 생갑니다.
물론 그동안 틈팀이 여행도 가고 자기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온전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이렇게 인생의 후반기에 진입한 뒤에야 가능합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노쇠해진 육체로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은 제약될 테지요.
제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예기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로 한국인들의 인생은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평생을 자기가 아닌 남을 위해서만 살다가 죽음을 맞습니다.
아, 이게 웝니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일생에서 행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