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Hatfelt
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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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학은 과학이지만 경제학자는 대부분 과학자가 아니다. 경제학자는 정치가, 성직자, 선전가처럼 행동하며 자기 신조에 맞지 않는 증거는 무시한다. 경제학자는 과학자다운 엄격한 자세를 갖추지 않고 과학자와 같은 명성만 원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성장둔화는 이런 자기기만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그들은 구시대의 경제학을 고수하며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 신조에 어긋나는 데이터는 숨기거나 무시한다. 물론 경제학이라는 낡은 분야는 계속해서 학문적 권위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경제학자들이 중앙은행과 재정부처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이들이 계속해서 케케묵은 학설에 집착한다면 탁상공론을 양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부를 파괴하고 말 것이다. 이런 주제를 지금 논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너무도 많은 것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p.12~13

    자본시장의 상호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날마다 매입인, 매도인, 중개인 간에 수조 달러 규모로 이루어지는 주식, 채권, 통화, 상품, 파생금융상품 등의 거래다. 거래 규모로 따지면 자본시장만큼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사회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적응 역시 자본시장의 속성이다. 헤지펀드는 어떤 상품이 손실을 보면 재빨리 전략을 수정하여 그 상품을 정리하거나 투자액을 두 배로 늘린다. 이들의 전략 수정은 시장에 참여한 다른 투자자들의 행동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즉 시장 가격에 따라 행동을 바꿔나간다는 이야기다. 자본시장은 분명 복잡계에 속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복잡하기로 치면 단연 최고다. 기존 위험 모형의 약점은 복잡계가 균형계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함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된다. 각국 중앙 은행과 뉴욕 월가의 균형 모형이 미래 예측과 위험관리 측면에서 줄 곧 시원찮은 성과를 내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모든 분석이 동일한 데이터에서 출발하지만 같은 데이터라도 부실한 모형에 입력하면 부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복잡성 이론을 활용하는 투자자들은 주류 분석가들과의 격차가 엄청나며 훨씬 정확한 예측을 산출한다. 
    --- p.23

    공황이 닥치고 투자자들이 앞다퉈 돈을 회수하려 할 때 정책입안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대응책 중 하나를 내놓는다. 첫째, 돈을 최대한 찍어내 자금 수요를 충족하고 투자자들이 자금을 즉각 회수할 수 있도록 한다. 중앙은행 본연의 최종 대출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물론 최종 화폐 발행자 역할을 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 둘째, 시스템을 동결하는 식으로 시장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동결 조치로는 은행 폐쇄, 거래소 폐장, 자산운용회사의 자산 매각 금지 등이 있다. 2008년 당시 각국 정부는 첫 번째 방법을 택했다. 중앙은행들이 시장경색을 해소하고 자산가격의 폭락을 막기 위해 돈을 찍어내 시장에 공급했다. 그런데 그다음 닥칠 공황에 대해서는 정부가 두 번째 방법을 택할 조짐이 나타났다. 다시 한 번 공황이 일어나면 정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할 것이다. “안 됩니다. 당신은 돈을 회수할 수 없어요. 시스템이 폐쇄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사태를 정리한 다음에 연락을 드릴게요.”
    --- pp.42~43

    특별인출권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트리핀의 딜레마’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리핀의 딜레마란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1960년 미 의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내놓은 경제학적 역설을 말한다. 트리핀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준비통화를 발행하는 나라가 정상 교역에 필요한 준비자산을 제공하다 보면 지속적인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적자를 감당하다 보면 그 나라는 결국 파산에 이른다는 것이다. 국제 교역 무대에서 준비통화 발행국이 파산하면 교역상대국은 준비통화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고 대금으로 다른 통화 수단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특별인출권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발행 주체인 국제통화기금은 국가가 아니므로 적자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인출권은 얼마를 발행하든 신뢰도 추락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국제통화기금은 교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인출권을 거부할 교역상대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은 모든 교역국을 포괄한다. 
    --- pp.111∼112

    금융시장의 행동은 양자택일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런 선택은 일련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오늘 주식을 거래할 거예요? IBM 주식을 검토하고 있나요? 살 건가요, 팔 건가요? 대규모 거래인가요, 소규모 거래인가요?” 같은 질문에 우리는 모두 ‘예’나 ‘아니요’로 답할 수 있다. 이때 ‘예’는 숫자 1로, ‘아니요’는 숫자 0으로 표시할 수 있다. 답을 ‘0011010011’처럼 1과 0의 수열로 표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수열을 컴퓨터 신호로 변환하여 대규모 데이터 세트와 시계열 데이터로 만들면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이런 패턴은 시장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꽤 정확하게 보여준다.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과 교수 버턴 말킬이 제시한 랜덤워크 모형에 따르면 금융시장의 결정은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 만취한 사람은 내딛는 발걸음마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가다가도 뒷걸음질을 칠 때도 있다. 자기가 그처럼 걷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전에 내딛은 발걸음과 상관없이 모든 발걸음이 무작위적이다. 기억도, 피드백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 pp.175∼176

    1998년과 2008년의 위기는 상황은 달랐지만 그 원리는 같았다. 정말로 걱정스러운 것은 1998년과 2008년의 공황을 통해 다음 공황을 예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두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특히 엘리트는 위기가 일어날 때마다 구제의 규모를 확대했을 뿐이다. 그러나 다음 번에 일어날 공황은 규모가 너무도 크고 구제금융 액수는 그처럼 엄청난 공황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1998년이나 2008년이나 동일한 재료로 빚어진 위기였다. 과도한 레버리지, 파생금융상품, 구닥다리 위험 모형에 대한 의존 등등. LTCM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이를 적용했더라면 2008년의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월가와 워싱턴DC는 1998년의 일에 눈을 감았다. 그린스펀 연준 의장과 로런스 서머스 재무장관 등 정책입안자들은 잘못된 위험 모형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린스펀이나 서머스나 교훈을 얻기는커녕 한 술 더 떠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와 파생금융상품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2008년 붕괴가 불가피해졌다. 오늘날에도 교훈이 묵살되고 있다. 월가는 위험관리 이론 같은 엉터리 모형에 의존하며 안이하게 돌아가고 있다. 다음에는 1998년과 2008년의 공황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다음번에는 세계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 pp.189∼190

    세렝게티 초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늘날 통화 엘리트의 사고방식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사례다. 통화 엘리트는 무리를 이룬다. 이들은 비밀스러운 지하조직이라기보다 각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관료, 학자, 언론인, 두뇌 집단의 일원 등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의 무리다. 보스턴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세계 곳곳에서 자산운용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대통령과 총리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적절한 때 자리를 물려줄 후배나 제자를 거느린 사람들도 무리의 일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리 구성원에 변동이 생긴다. 오늘날의 엘리트 명단에는 예컨대 크리스틴 라가르드, 마리오 드라기, 로런스 서머스 같은 사람들이 포함된다. 과거에는 장 클로드 트리셰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통화 엘리트들은 로버트 루빈이 그랬듯 공공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다보스포럼이나 콜로라도 주 애스펀에서 열린 아이디어 페스티벌이 개최될 때 은밀하게 열리는 비공식 만찬에 참석하여 인사를 나눈다. 그들은 회의록이 남지 않는 국제결제은행의 비밀회의에서 만난다. 그들은 세계 금융뿐 아니라 세계 정치를 좌우한다. 정치에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p.322

    뉴욕 경찰이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비극적인 일이며 경찰들의 태업도 이해가 가는 바다. 그러나 세수 감소로 경찰이 저소득층 지역에서 쓰는 수법이 본의 아니게 드러났다. 정지 후 신체 수색에 걸려드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경찰 살해범들이 아니다. 그들은 바깥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거나 길을 걷던 가난한 사람들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마주치는 경찰들은 사실상 무장한 국세 징수원들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오늘날의 경찰 활동이 무장한 상태로 세금을 징수하는 행위로 변질되었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재산 몰수다. 경찰은 아직 유죄 판결을 받지도 않은 시민에게서 현금, 자동차, 배, 집을 뺏는다. 이때 입증 책임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에게 떠넘겨진다. 몰수된 자산을 돌려받으려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야 뜻이다. 이런 입증 책임의 전환은 미국 법의 무죄 추정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현상이다. --- pp.38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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