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는 사람들은 알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항상 주장했던 것은 실증주의 역사의 중요성이다.
아니 실증주의 역사가 뭐고 실증주의 역사가 어째서 중요한지 이야기 해 보자고 할텐데,
그러면 어째서 실증주의 역사가 중요한지 알아보자.
현실을 직시하자.
현실을 직시하자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말 그대로 현실을 직시하자는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럴듯한 주장을 펼쳐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증거가 없으면 단지 잘 쓰여진 문학 작품일 뿐이고,
심지어 증거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라도 꼬투리를 잡아서
어떻게든 증거 불충분으로 허구의 상상력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혹시 당신들은 당신들이 잘 쓴 글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가 그것은 착각이다.
외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의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언제라도 물어 뜯을려고 준비중이다.
절대로 착각하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실증주의 역사를 하는가?
사실 이것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철저히 증거 위주로만 가고 개론서에 나와있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한국에 대해 유리한 증거가 나올 수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이것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 하겠다.
아무튼 철저히 증거 위주로만 하면 상당히 반박하기가 힘들어 지고,
설령 반박을 한다 하더라도 증거 몇개만 가지고 오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실증주의 역사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면 한국에 대해 유리한 증거가 나올 가능성은 있는가?
이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
솔직히 과거에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이란 정도라면
실증주의 역사를 하다가 오히려 국뽕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지만 한국은 이란이 아니다.
오히려 증거만 가지고 보면 한국에 유리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발해를 세웠다는 대조영조차
동시기에 활동하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r loðbrók)보다 기록이 없을 지경이다.
심지어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증거 불충분으로 덴마크인인지 스웨덴인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말고도 고구려나 신라 백제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서를 봐야 알 수 있을 지경이다.
게다가 여기서 내가 몇번 이야기 했지만 내 전공인 언어학쪽에서도 한국에 유리한 증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한국 학자들이 국뽕을 위해 실증주의 역사를 피할 지경이다.
실제로도 이런 성향은 한국 국문학자들한테서 잘 나타나는데,
한국 국문학자들은 사실만 가지고 하면 한국에 불리하니까 이미 폐지된 학설을 주장하거나
일부 말도 안되는 주장을 지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한 대로 그냥 증거 우선주의로 밀고 나가면 된다. 어차피 한국에 유리한 증거는 거의 없다.
게다가 그 내용이 개론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라면 더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말한 대로 그냥 사실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아무튼 이번에는 이 정도만 알길 바라며 앞으로 사실주의 역사관에 기반해서 글을 쓰겠다.
여기 있는 애들도 앞으로 그러길 바란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금나라 같은 여진족 국가가 아니라 기자 조선의 후계를 자칭했냐고 물어 보면 도망가거나 조선이 여진이라는 중국어학으로 철저히 깨진 헛소리나 들고 오지만. 그러고 보면 발해가 우수한 퉁구스 에벤키 여진족 국가라고 하면서 금나라의 후계가 아니라 고구려의 후계를 자칭한 것은 또 어떻게 된 것이냐고 그 새끼들한테 물어 보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