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머냐?
동명그룹 검색 하면 나온다
https://namu.wiki/w/동명그룹
▲신군부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작성한 강석진 회장의 포기 각서
하지만 1979년 장남 강정남에게 사장직을 맡긴 후 방만한 운영과 해외 원목 가격 상승, 국내 건설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80년 국보위에 의해 표면상 강제 헌납 명분으로 1980년에 어이없게 강탈당해 사라지고 말았고 계열사들은 한국산업은행의 관리를 받다가 정리되거나 각자 다른 기업에 매각됐다. 일설에 의하면 박정희 시기였던 1969년에 김대만 당시 부산직할시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 이를 강석진 회장이 변호하다가 같은 시기 동명불원[2]을 고급묘로 이장하는 것이 차지철의 시야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해체 원인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이건 명백한 거짓이다. 이후 1980년 국보위가 들어서자마자 동명목재 노동자 투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투쟁이 그룹 자체를 와해시켰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전두환 정부 시절 비슷한 이유로 희생된 국제그룹과 비교하면 둘 다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성장한 재벌이었던 공통점이 있고 당연하게도 두 그룹의 창업자 모두 말로를 어이없게 맞이하였다.
2008년에야 진실화해위원회가 신군부에 의한 강탈이라고 밝혔지만 실의에 빠진 강석진 회장은 동명목재를 강탈 당한 후 화병을 얻어서 1984년에 이미 작고했고, 아들 강정남 전 사장 등 후손들이 1988년 청원서를 내고 1997년 국가를 상대로 반환 소송을 걸어 1998년 1심 승소를 거뒀지만 이후 2000년 2심, 2002년 상고심에서 각각 패소당했다. 2010년에도 국가 및 부산시, 해운대구 등을 상대로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가 2011년 1~2심 전부 시효가 지나 번번이 기각 당하고 말았다. 공장 터는 현재의 동명공고 남쪽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옛 계열사 중에 구 오너 가문이 소유하는 거라고는 동명대학교와 동명공업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동명문화학원 정도다. 그 외에 동래구에 있는 해바라기 맨션도 계열사 동명개발이 금양이라는 건설업체와 공동으로 건설한 것이고 현재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