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NCmzMR-ayA
많은 인간들이 중화주의에 입각해서 당나라를 중화제국의 정통으로 보고 북주와 북제와 수나라의 북조들의 존재에 입각해서 나뉜것은 다시 합치고 합친 것은 다시 나뉜다 그 지랄병으로다가 삼국지시대를 비정했음.
북조새끼덜은 대체로 375년 경에 중국으로 침략해온 오호새끼덜로 비정되며, 그 인구집단은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원정 당시에 따라댕기던 오랑캐 집단과 연관이 있다고 칸다.
그런데 정작 고구려계인 거란새끼과 기원후 110년대 경에 이미 전쟁중이었던 것이다. 오호새끼덜보다 훨씬 더 빠른 시대에 한족과 구란새끼덜은 이미 전쟁중이었던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거란 제1왕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고구려이고, 거란 제2왕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요나라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는 거란 제1왕조가 제2왕조보다 역사적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짱개새끼덜은 거란 제1왕조새끼덜과 오호 이전에 이미 수틀린 관계였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가장 최악의 구라는 공손찬 등 공손씨 새끼덜을 한족으로 쳐 묘사한 것이지만 그 것들이야말로 후대의 관점인 것이다. 되려 사마의의 공손연 정벌조차도 후대의 짱개새끼덜의 이해와는 다르게 완전히 다른 종족간의 전쟁이었다고 한다. 사마의 스스로도 공손연이 요동너머의 자신들의 무리들을 믿고서는 토껴버리면 답이 없다고 했다고 하는 것이다.
후대의 개자슥들의 곡해와는 다르게 공손씨들도 초기 거란계 정권들 중의 하나라고 비정하게 되면 후한이라는 나라의 건국시기부터 거란과 한족의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 된다. 그러한 시기에 거란에서는 태조왕에서 모본왕에 이르는 정복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전쟁 군주들이 왕망과 유수 제네레이션 때부터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다소 평이하게 후한시대를 적은 오랑캐새끼덜의 개소리와는 다르게 송나라가 연운 16주의 요나라새끼덜에게 눌리기 훨씬 이전부터 되려 고구려 중심의 동북3성 질서가 잡혀있었고, 되려 한족새끼덜이 수세였다는 것이다.
종교적 관점으로는 고구려의 제천사상이 유연새끼덜에게 전혀져셔는 유연새끼덜이 나중에 중국에 난입한 것들을 5호라고도 하는데, 아틸라 또한 유연의 무리이던 놈이던 것이다.
유연이라고 해봤자 국가라고 보기는 힘들고, 단지 시베리아에 사는 씹미개인들인 것이다. 그들을 찾아갈 지정학적인 위치에 존재하는 문명인이라고는 고구려와 거란새끼덜밖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씹미개인들일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yS53xVp3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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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그렇지만 세상의 끝 야말 요지랄인 곳에 기원후 1세기경에 갈 동기가 있는 유라시아 문명국 인간은 고구려인 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연이라는 것은 국가라기 보다는 되려 시베리아의 씹오랑캐들도 전리품이나 인센티브를 보고서는 거란의 대중국전쟁에 참전한 것들이 많아졌다라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애초에 5호새끼덜 자체가 거란군으로써 중국으로 침략해간 새끼덜이 점차 독자적인 국가세력화 된 것들인 것이다. 중국 개자슥들의 중화주의 착각과는 다르게 모용씨나 북주, 북제의 버러지새끼덜은 실상은 애초에 구란의 똘마니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구란의 전쟁에 나나이족이나 퉁구스새끼덜이 많이 참전했다고 칸다. 나중에 그 퉁구스새끼덜은 세력화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아구다와 금나라새끼덜인 것이다.
구란과 중국의 역학관계를 보면 구란이 되려 중국의 체제를 받아들여서는 이중 지배체제를 확립한 구란이 중국을 다스리는 쪽이었고, 중국이 되려 침략받는 쪽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정복당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부터가 사대주의적인 기술인 것이다.
실제로는 남면관 북면관 제도 따위는 고구려계가 중국새끼덜을 다스리면서 발달한 통치기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경시대가 시작된 이후의 신유교사상가 새끼덜의 접근법과 대도 연경의 정통성에 무게를 주기 위한 후대의 24사라는 개구라 참칭과는 다르게 한족의 전성시대는 전한과 함께 끝이 났고, 후한 때부터는 이미 구란에게 한족새끼덜이 조금씩 쳐 먹히고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구란의 시베리아 오랑캐 용병새끼덜이 나중에는 수나라와 당나라와 관롱집단을 형성했으니 중화새끼덜의 개구라는 전적으로 날조인 것이다. 남북조라는 비정조차도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고구려와 전한이 충돌하던 처음부터 거란계들에게 한족새끼덜은 열위였다고 보는게 맞다는 것이다.
나중에 석경당 새끼에게 요나라의 야율덕광이 주종관계를 강요하는 그 모습이 실제로는 2세기 이후에 이미 성립했을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쭉 한족의 전성기는 전한과 함께 끝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조차도 그러하다면 정작 수나라의 제국주의가 고구려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되려 수나라가 독자적인 한족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거란새끼덜과의 주종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 쳐들어간 거란족 우위 상황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자면 거란이 역사 전체에서 항상 공자였고, 5호새끼덜 정권이나 한족새끼덜은 막아내는 입장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보면 삼국지의 시대에 한나라로부터 기인하는 통일체제가 있었다는 것은 날조일 수 있다고 본다.
되려 전한이 망하고 나서 남북조시대를 손권의 오나라때에 이미 남북조가 시작되어서는 북조새끼덜은 거란의 침략을 받고 있었다고 거란이 한족을 공격하기 시작한 연대기를 앞당겨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한족 슈프리머시가 애초에 부재한 공간사내에서 한족새끼덜의 삼국의 정립이라는 것이 존재했는지는 대단히 미심쩍은 것이다.
조위와 거란이 전쟁을 해서는 사마씨가 군사를 끌고 갔다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역사가 사마천의 이름을 딴 진나라 왕조가 있었다는 것은 조금은 엉터리 충공깽. 사마의라는 한자는 사마(=관직) 의(=사람이름)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사마씨가 있었다는 식으로 후대의 병신새끼덜이 비정했다는 것도 아주 병신같은 짓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