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왜 어렵게 됐나 부처는 쉽게 말했는데
지난 8일 전북 고창 선운사를 찾았다. 재연(60)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2011년 설립된 선운사 초기불교 불학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초기불교 대학원은 한국불교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조계종단은 초기불교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경계해왔다. 한국 선불교 특유의 화두(話頭) 참선이 흔들리까 싶어서였다. 그런데도 총무원은 초기불교 대학원 설립을 승인했다. 불교 공부의 또 다른 축인 초기불교 경전 연구를 인정한 것이다.
고대 인도 팔리어 경전 13년 공부
재연 스님은 10대 중반 출가해 30대 초반 인도로 건너갔다. 인도 중서부 푸나대학에서 13년간 팔리어 경전을 공부했다. 국내 ‘푸나학파’ 1세대다. 고대 인도어로 된 팔리어 경전은 부처님 원뜻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력으로 미뤄 학승(學僧)일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님은 선 굵은 선승에 가까웠다. 말투가 거침없었다.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현 조계종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했다. 한국불교는 한문 번역 과정에서 내용이 심각하게 왜곡된 불교를 받아들였다, 스님들은 엘리트 의식에 빠져 불교를 어렵게만 몰고 간다, 초기불교 경전을 공부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는 것이었다. 가령 스님은 사찰은 쥐 죽은 듯 조용해야 한다는 통념부터 꼬집었다. 태국의 사찰에서는 젊은이들이 노래하고 연애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스님은 “절이 시끄러우면 공부에 방해된다고요. 방해는 무슨 방해! 연애하는 청춘 남녀를 바라보며 ‘아, 인간이란 저런 거구나. 내 안에도 저런 욕망이 있는데 난 이렇게 극복하고 승화한다’ 이런 생각을 해야 진정한 대승이고 수행자죠”라고 했다.
사찰이 청정공간이어야 한다는 오해는 수행자의 엘리트 의식, 또 그 엘리트 의식은 불교 공부는 어려고 특별한 공부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팔리어 경전에 비해 부처님 가르침을 어렵게 풀이한 한역(漢譯) 경전만 접하다 보니 생긴 폐단이라고 한다.
스님은 “어떤 불경도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연기(緣起) 사상, 그 속에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무아(無我) 사상, 이 두 가지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 전체를 영어단어 8개로 표현한 한 외국 여성학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Everything is interrelated. It changes. So pay attention(모든 건 서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변한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라 혹은 현재에 충실하라)’. 문장은 간결하지만 그 안에 연기와 무아의 깨달음이 녹아 있지 않느냐는 거다.
한문 번역 과정서 경전 뜻 왜곡
더 심각한 문제는 뭘 모르는 지도 모르는 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스님들의 태도다. 재연 스님은 “불교 역시 시대적 산물이다. 그 역사적 발전과정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덮어 놓고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은 수준이 낮다는 투의 위험한 발언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거다. 자기만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기복불교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일그러진 신앙의 모습이다.
스님이 제시한 해결책은 역시 초기불교 경전 공부다.
대표적인 불교 용어인 윤회의 경우 산스크리트어 원어(原語)인 ‘삼사라(samsara)’의 뜻을 따져보면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윤회는 단순히 ‘탈출해야 할 인생의 연쇄’쯤이 아니라 ‘심리적 부침을 거듭하며 흘러가는 이 세상, 혹은 사람’이란 뜻이라는 거다. 그렇게 이해해야 ‘지금, 여기’에 더 충실하자는 불교의 대전제가 납득된다는 거다.
고창=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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