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학교 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당시 나의 외삼촌이 우리 집에 왔는데 외삼촌은 혀만 끌끌 차다가 나가버리고 외숙모는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냐고 펑펑 우시더라..
사실 그 집하고 우리 집하고 거리가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였는데 그 정도면 가까웠지.
외삼촌은 약대를 나오고 공직을 선택해서 당시 아마 도청 과장이었을 거다. 외숙모는 초등교사..도청 과장이라는 게 뭐 대수롭지 않은 거 같아도
중소도시에서 그 정도면 파워가 어마어마한 거다. 관할 업체에서는 정말 추석 설날에 선물을 얼마나 많이 보내던지 손으로 들고다니기도 힘들어 수레를 이용해야 할 정도였다.
암튼 그 집에 가면 사실 우리집안이 풍비박산나기 전에도 우리보다는 훨씬 잘 살아서 무슨 치즈같은 거라든가 수입과자 기타 각종 책들(사실 이게 내가 제일 원하는 거), 옷 등등이 많았고..
풍비박산 난 이후에도 나는 가끔 가서 책도 빌려오고 그 집 사촌(연년생이라 나와 동갑 하나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과도 잘 어울리고 그랬다.
한번은 기억나는게 외숙모가 사촌이 입던 옷을 박스에 가득 담아주시더라. 그래서 그걸 들고 집에까지 털래털래 걸어왔는데
집에 오니까 엄마가 화를 내는 거다..새 옷을 사주지 입던 옷을 주냐고..
그런데 나는 사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뭐 그러려니 하고 그 옷들을 그 이후로도 10년 넘게 입고지냈던 거 보면 내가 성격은 무던한 듯하다.
물론 내가 그 사촌 옷 입고 다니다가 시내에서 사촌과 만나면 좀 뻘쭘하긴 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에 들어갔는데(좀 좋은 대학) 외삼촌이 나를 부르더라. 도청에 처음 가봤는데
외삼촌이 나에게 밥을 사주시고 봉투를 하나 주는데 그 안에 100만원이 들어있더라..
당시에 내 입학금+등록금이 57만원이었거든..장학금을 30만원 받았고 나중에 학원에서도 장학금을 주더라? 30만원..
그러니까 그냥 100만원은 꽁으로 생긴 거지..
그 돈 갖고 뭐했는줄 아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샀다..크..진짜 그 거 갖고싶었거든.
암튼 각설하고..이후에 한 번 더 등록금 도움받은 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게 이게 우리 집안은 망했는데 친척이 잘 나가면 사실 그 친척과 있기가 부담스러워진다.
근데..뭐 친척 중에서도 인간같지 않은 것들은 종종 있으니까 그렇다치고 평범한 사람이 친척이면 말이지..그 친척입장에서도 내가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라는 거다.
즐거움을 같이 나누고 슬픔도 나눌 수 있는 게 친척인데 이게 쉽지가 않거든..
내가 외삼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던 건 사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좋은 대학에 가니까 외삼촌은 나의 능력+근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사실 그전에는 내가 가면 외숙모만 반겨주시고 외삼촌은 자기 누나 생각난다면 나에게 잘 아는 체도 안 했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자..내가 뭔가 해보려는데 집안에는 돈이 없고 친척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 있어..그러면 사람 심리라는 게 친척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어있거든..그렇잖아?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말이지. 친척들 역시 나를 관찰하고 있다고..저 집안은 분명히 망했고 교류해봤자 좋은 일 없을 거는 아는데 그 집안에 아들딸이 있는데 걔는 어떨까 이런 식으로 말이지.
그런데 이게 접점이 이뤄지려면 내가 '유망한 자'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밖에 없는 거야..
나중에 도움을 받고서도 입을 싹 닦아버릴 저질 인성이 아니라는 확신도 있어야하고 말이야..
결국 능력+근성+인성..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판단되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생기는 거 아닐까?
그렇지 못하고 그냥 어영부영하거나 도와줘봤자 별 볼 일 없으면 외면하게 되어 있어.
왜 그러냐? 생각해봐. 한 번은 도와줄 수 있어. 근데 능력근성인성이 모두 모자라서 말아먹었는데 그럼 또 도와줘?
자기 자식이 아니면 그렇게 못하는거야..아니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냉정한 부모면 몇 번씩 도와주지는 않아요..
그리도 도와주다가 중간에 그 친척도 여의치 않아서 도움을 중단할 수 있잖아? 그럼 오히려 내게 원망심이 들고 그 친척을 욕하는 경우도 있어.
그럼 그 친척 입장에서는 어떨까? 실컷 도와주고 욕을 먹으니 물에 빠진 사람 살려놓으니 보따리 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말이지.
결국 친척 입장에서는 검증된 자가 아니면 도움을 꺼릴 수밖에 없어요. 이게 친척이 무슨 재벌 정도 되어서 돈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어도 아무런 손해가 나지 않는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외삼촌이 잘 나간다고 해도 기껏해야 부부공무원인데 뭐 등록금을 졸업할 때까지 달라 이것도 말이 안되잖아?
그분은 그러니까 해줄만큼 다 해주신거야..지금도 고맙게 생각해.
자 그러니까 내가 도움을 받고 싶다면 능력+근성+인성..이걸 입증을 해야하는 거야.
물론 저걸 다 입증한다고 해서 도움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가능성은 높아지는 거지.
어차피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높아지는 거잖아?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 이왕이면 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해외유학같은 경우는 얘기를 잘 해야해.
자기 자식도 아닌 애가 해외유학을 가서 그 나라에 정착을 해서 아마도 앞으로 나와 인연도 없을 듯한데 도움을 요청한다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앞으로 내가 만나지도 못할 아이에 대해서 최소 1억 이상 비용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걸 쉽게 내줄 수 있겠어?
사람이 도와주면서 결국은 자신이거나 아니면 자신 아이거나 언젠가는 '나도 도움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리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거거든..
이를테면 해외유학비용이 정말 필요하다면 이를테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캐나다에서 유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정착을 하게 되면 조카(나를 도와줄 사람의 아들)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정착을 하면 내가 당분간 같이 살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든지..이렇게 말이지.
대부분 해외유학/취업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마음이 있기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아..얘를 도와주면 우리 애가 나중에 캐나다 미국 호주등에 가있을때 도움이 되겠구나.
하다못해 어학연수를 한다고 해도 쟤 집에서 지내면 되겠구나..
아니면 호주 여행을 가도 얘 집에서 하루이틀 있으면서 여행가이드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거든..사람심리가 그렇잖아.
그런 식으로 공략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저런 거는 말만 듣고 믿을 수가 없지..그러니까 인성을 볼 수밖에 없는거야.
도와줬는데 입 딱 씻을 애를 누가 도와주겠어?
그러니까 평상시에 잘하고 친척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도움을 베풀고 이런게 평소에 바탕이 되어서
좀 좋은 방향으로 그 사람들 뇌리에 각인되어야 도움받을 수 있지..
이건 친척이 아니라 이웃도 마찬가지지.
평상시에 인사 한 번 안하다가 무슨 귀찮은 일..이를테면 형사사건의 증인이 된다거나 이런 일 부탁하면 쉽게 해주겠어?
그러니까 이웃하고는 마음은 안 통해서 적절히 인사하면서 좀 친해지면 추석때 5천원짜리 양말세트라도 하나씩 주면서 부드럽게 지내는 게 다 일종의 보험인거야.
그래서 평판관리가 중요하지..전직 회사 동료 선후배에게서도 좋은 소리 듣는 게 중요하고..
그러니까 도움을 받고 싶으면(근데 이건 사실 절대적으로 필요해..혼자서 절대로 다 할 수가 없거든)
실력 인성 근성면에서 '괜찮은 놈'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인식시키고
인간관계는 사실 은행과도 같아서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인사를 하거나..요즘에는 SNS 좋잖아? 나도 사실 거의 다 카톡으로 다하거든.
조카/외조카들 생일 요즘에 카톡에 다 뜨잖아..난 그럼 보통 애들이 좋아하는 커피 상품권 같은 거 선물하는데
그럼 걔들도 좋아하잖아..그러면서 서로 안부인사하고 나중에 만나자 이런 말도 하고 (사실 나중에 못 만난다고 해도)
상대방에 대해서 대략 살아가는 모습 파악할 수 있어요.
그렇게 꾸준히 유지해가면서 도움주고받는 관계가 되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척들 중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있으면 이건 좋은거야. 최소한 못 나가는 사람보다는 낫잖아?
내가 주변에서 보면 흙수저가 계속 흙수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흙수저는 친인척들도 거의 다 흙수저에요..
성공하려면 결국 인맥이거든..누군가 나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 기회를 줄 인간들이 흙수저니 기회가 올 턱이 있나?
가끔 만나는 고3짜리가 하나 있는데 걔는 엄마가 새엄마인데 말야. 새엄마가 애한테 알바를 강요해.
강요보다는 제 용돈은 제가 벌어서 쓰라는 것이겠지만
얘는 자기계발을 하고 싶어도 주말과 주중 저녁때에는 항상 알바야. 식당 편의점 등등..
경력에 도움도 안되고 시간만 잡아먹는 알바를 하더란 말이지.
근데 친척들 중에서 금수저가 있다? 이거 도움되는거지..없는 것보다는 100% 도움된다고 봐야해.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도움이 올 수가 있는 거에요.
그리고 친척들도 자기 친척중에서 잘나가는 친척..아니면 해외에 머물고 있는 친척이 있기를 원해요. 그렇잖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났는데 해외에 친척이 살고 있다. 좋은 관계라서 도움받을 수 있다..든든하잖아?
이런 점을 잘 이해해야 해..
최소한 내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를 않을 것이며
도움을 받았을 때 입을 싹 닦지 않을만한 인성이 있고
가능하면
실력과 근성까지 있어서 그들에게 유망주로 인식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늘어나고 도와주지 못하면 오히려 그들이 부채의식을 갖게 되지.
이런 점을 잘 고려해서 판단을 잘 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