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는 같은 지역의 대형병원(이라고 해봤자 작다..다만 군에서는 제일 큰 병원인데 전체 직원 300명 규모)에서 일하고 있다.
며칠 전 놀러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만들었다는(정확히는 어떤 회사에서 만든 툴로 간단하게 제작한 거 같다) 앱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 앱이라는 게 간단히 말하면 병원에는 있는 모든 기물과 기구에 QR코드를 붙이고 그 기구의 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게 만든 간단한 툴인데..
그야말로 심플하다. 예전에 Windows 나오기 전의 Dos를 보는 것처럼 그래픽 없이 오직 내용물로만 꽉 차여져있다.
나는 IT쪽은 문외한이라 설명만 들었는데..
처제 말로는 병원에 있는 각종 용품 등의 재고 및 각종 기구 및 도구의 상태(보수를 한다든가 있잖은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한다.(처제는 이 병원에 작년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느 병실에서는 병원 침대가 다 망가져가는데..그걸 갖고 환자가 컴플레인을 해야 상태를 보고 수리하든가..
이런 식으로 주먹구구로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도시 병원들은 이렇게 운영되지 않겠지만 시골병원은 지금도 그렇다)
그러면서 원장은 직원들에게 '물건'을 제발 좀 아껴쓰기만을 당부하는 거였는데..
처제는 가만히 생각해보고 검색해보다가 이런 종류의 재고관리 및 물품관리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툴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저런 종류의 소프트웨어도 아마 꽤 값이 비쌀텐데
처제는 완전 무료인 툴에서 저런 앱을 만들고..
이제 병원에 있는 모든 기구에 QR코드를 붙여서 그걸 갖고 폰으로 인식만 하며
기구의 성능 및 관리 등이 바로 확인되는 신박한 시스템인 것이다..
이거야말로 병원의 IT화가 아니겠는가..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뭐냐면..사실은 '시간의 절감'이 목표인 것이다.
전에는 재고파악도 안되고 그저 창고에 물건 떨어지면 주문하거나 비싼 물건의 상태가 안 좋으면 원무과에 바꿔달라고 하는..그런 시스템인데
이런 시스템으로 바꾸면 처제 말로는 기물담당자가 3명이면 2명으로 줄일 수 있고 줄인 1명을 예컨대 고객 만족이라든지 이런 쪽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혹시나 사람 자르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시골병원은 항상 구인난에 시달린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느끼는 건데 사람들마다 다른데 이른바 '상향지향적' 속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뭐든지 개선하기를 좋아하고 '좀 더 잘 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에 '하향지향적' 사람은 항상
좀 더 편할 수 없을까? 재미있는 게 없을까? 이런 거를 고민한다..
사실 처제와 내가 함께 일한 적도 있는데..
항상 느끼는 게 어떻게 하면 좀 더 프로세스를 줄일 수 있을까? 불필요한 낭비를 막을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고민한다..그러면서 개선책을 제시하고 심지어 쇼핑도 gmarket에서 쿠폰을 받아서 사면 이만큼 더 싸니 이걸 구매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식의
조언을 한다.
청소를 하나 해도 검색을 해서 이건 알칼리성 저건 산성세재 저건 또 뭐..이런 식으로 청소 하나를 해도 여러 가지 세제를 구비하고 거기에 맞춰서 청소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오너가 처제 같은 직원을 데리고 있으면 너무나 편하다. 뭐든 관리자의 시선을 갖고 일을 하니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20여명 정도 같이 일해봤는데..단 한 명도 처제같은 직원은 없었다..물론 처제니까 좀 더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친인척과도 일해봤는데 그런 사람은 없었다. 한마디로 타고나야 하는 거 같다.
내가 다른 직원보다 30% 정도 더 주고 일을 했는데 속마음을 말하면 50% 더 줘도 전혀 아깝지가 않다...물론 그 이후로 내가 많은 지원을 했지만 말이다.
병원 원장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보너스를 좀 더 주느냐? 이렇게 물어보니..그런 건 없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병원 원장 입장에서는 정말 굴러온 복덩어리일 거 같다.
작년에도 병원에서 무슨 인증을 하는데 처제가 거의 맡아서 했다.
사실 처제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오랜동안 일했다..거기서도 교수들 신임을 얻어서 동료 간호사들 질시가 장난 아니었다고 한다. 항상 일을 시키면 '기대이상'으로 일을 하는데도 SPSS같은 통계 프로그램도 잘 다뤄서 교수의 각종 연구데이터를 책임처리해서 교수 밑에 있는 따까리 의사들조차 질투할 정도였다니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한국은 이게 문제인데..저렇게 동료 중에서 툭 튀어서 잘하면 동료 사이에 질시가 장난이 아니다.
올해 갓 마이스터고를 마치고 회사에 입사한 아이가 있는데..얘가 능력이 좋다. 컴퓨터도 잘 다룬다. 잘 다룬다는 게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수준이 아니라 예전에 화이트해킹도 배운 적이 있어서 보안관리까지 맡는다 한다..사실 직원 50여명의 작은 회사에서 보안같은 데다 무슨 투자를 하겠나..그냥 얘가 알아서 보안쪽으로 파이어월도 만들고 하는 모양이다. 보안이란 게 일단 털리면 해커에게 무조건 비트코인 바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그동안 데이터 날리면 작은 회사라도 몇 천 이상 손해가 나고 고객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면 회사의 명운이 걸리기에..그렇지만 대부분 회사는 보안 개념조차 없는데(역시 한국식의 '소읽고 외양간 고치기' 스킬) 얘가 알아서 보안관리해주고
걔가 들어간 회사는 사료회사인데 직영 농장을 운영한다고 한다..얘는 여기에다가 농장 플러스 목장을 만들어서(사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층은 한우농가이다) 모델 목장을 만들고 좀 더 나아가 여기를 삼양대관령 목장처럼 만들 프로젝트를..물론 윗사람 지시없이 혼자서 계획수행하고 있다..
삼양대관령 목장 가봤는지는 모르겠는데 규모가 한 2만명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보다 훨씬 더 큰 목장이 일본에 있다. 이와테현에 있다는데 이름은 내가 까먹었다. 좌우간 규모만 20만평이 넘을 정도고 이와테현에서는 거의 최고의 관광포인트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게 인접한 군에서는 최근 양떼목장을 만들었는데..그 양떼목장에서 양에게 먹이주는 체험을 하는데 5천원인가 그렇다. 어찌보면 노가다 시키면서 돈 받는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두 SNS에 자기가 행복하다고 알리고 싶기에 서로 노가다하면서 사진찍느라 난리이다..이런 거를 6차 산업이라고 하는데..내가 생각해도 앞으로 농촌의 미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얘는 일본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기 때문에 그 일본 목장에 가보았음은 물론이고(농업계 마이스터고교라서 일본 출장 보내줌) 그걸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이미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친분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참 대단하지 않은가? 얘는 심지어 아직 고교졸업생도 아니고 고3이다..일본어를 잘하다보니 모교인 마이스터고에서 일본 손님이 오면 자동으로 차출되어 통역을 해주고 일본어 공부를 위한 동아리에서 강사로 일(자원봉사)을 한다..
여기에 얘는 농기계기능사와 식육처리 기능사까지 있어서 목장을 한다고 해도 이미 부지가 확보되어 있는 상황에서 소만 입식하면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력이다..
더구나 우리 군은 농업과 관광 외에는 다른 살 길이 없기에 저런 식의 목장을 운영하면서 관광지로 만든다면 군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다..따라서 회사로서도 어쩌면 큰 투자를 하지 않고도 부가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일본의 이와테현 목장같은 경우는 일단 100명 이상 고용을 확실하게 하는데..지금 군에서 그 정도 고용을 만들어낸다면 뭘 못 해주겠는가?
그래서 내가 이 나라에서 생존하는 법을 얘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니가 가진 능력의 80%만 선보여라..이 나라에서는 일을 잘 하면 더 많이 떠맡긴다. 그리고 댓가는 지불하지 않는다.
둘째, 이미 니 능력에 대해서는 윗대가리들 사이에 상당한 교감이 이루어졌을 것이다..그러니까 가끔씩 병가를 내라..기계를 막 굴리면 고장나는 것처럼 너도 막 굴리면 병이 난다는 것을 인식시켜라.
셋째, 대졸자들 야코죽이지 마라..4년간 수천 들여서 쓸데없는 졸업장을 취득한 데 대해서 항상 경의를 표하라. 걔들이 너를 잘 되게는 못해줘도 망하게는 할 수 있다.
넷째, 누구 사람이라는 소리 듣지 마라..오너 다이렉트 아니면 회사 연줄은 별 필요가 없다.
다섯째, 너는 병역특례로 일하고 있는 거니..병역특례 끝마칠 때까지는 적당히 잘 일해주고..그 이후에는 연봉을 2배로 부르던가 아니면 일본으로 이적해라. 차라리 니가 모델로 생각하는 그 목장에 취직해서 목장관리 전반을 배우고 한국고객담당SNS같은 것을 해도 좋고..차라리 그곳에서 몇 년 일하고 나서 니가 생각한 이상에 대해서 대기업들에게 어필해보라. 지금 연봉(대략 실수령 기준 169만원)의 3배 수준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는 선진국에서 일처리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상당한 플러스가산점을 주는데 어쩌면 그게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한계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거 같다..뭐 일본이 더 맞으면 그곳에 살아도 되고(얘는 엄마가 일본인이어서 그곳에서 귀화하거나 사는 데 제약이 없다).
암튼..느끼는 건데 세상은 될놈될 안놈안이고..
연어처럼 급류를 뛰어올라 목표를 도달하려는 인간들 소수와 그냥 안주하면서 재미있는 거 뭐 없나? 이렇게 눈치만 살피는 다수로 나눠져있는 거 같다..
그리고 다수의 질시로 인해 항상 그런 소수는 피해를 입고..
그래서 아마 이건희가 그런 말을 한 거 같다..일하라는 소리 하지 않겠으니 일하려는 자 뒷다리만 붙잡지 말아달라..라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헬조선에서는 '노오력'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