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노인
1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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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날론의 개발: 이승기의 결정적 역할

193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폴리비닐알코올(poly vinyl alcohol; PVA) 계열의 합성섬유 연구가 열심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 동경제국대학 부설 화학섬유 연구소의 핵심 멤버로 이승기라는 조선인 연구자가 있었다. 그는 여기서 '합성1호'라는 시제품의 개발에 성공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상용화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승기는 해방 후 귀국해 한동안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북한 측의 적극적인 영입 제안을 받고 제자들과 함께 월북한다. 당시 한 제자의 표현을 빌면 "서울대 응용화학과가 통채로 넘어갔다"고 할 정도였다. 이어 그는 그간의 연구를 기반으로 북한에서 '합성 1호'의 상용화를 추진해 2.8 비날론 공장(앞에서 김정일이 방문한 바로 그 공장) 1단계가 준공된 1961년부터 PVA계열 합성섬유를 생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비날론이다.

다른 한편으로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일본에도 PVA계열 합성섬유 연구가 대량으로 축적되어 있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쿠라시키 레이온, 닛신방적 등의 기업을 통해 유사한 섬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은 이를 비닐론(vinyl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2. 우리 식대로: '주체섬유'의 길로 접어든 비날론

그러나 한 뿌리에서 출발한 PVA 섬유를 둘러싼 일본과 북한의 연구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다. 문제는 비날론이 의류용 섬유로서 몇 가지 심각한 약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폴리비닐알코올(PVA) 섬유는 의류섬유로서의 사용이 제한되어 왔는데, 가장 큰 원인은 PVA 특유의 수용성에 있다. 초기에는 PVA의 내수성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가교 등의 구조적 개선을 시도하였으나, 의류용 섬유의 주류가 되는 데는 실패하였다. 또 다른 문제점은 … 급격한 염료흡착으로 다양한 수준의 염색 및 가공성을 부여하는 것이 어려웠다 … PVA 섬유의 의류용으로의 응용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PVA의 구조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김삼수 외, 2002:33]


… 물론 기술은 앞으로도 발달할 여지가 있으니까 PVA가 영원히 의류용 주요 섬유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개선은 지난 50년 동안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론 북한도 그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탈북자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나 비날론은 원래 의류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섬유입니다. 저도 북한에서 살면서 비날론으로 만든 옷을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셔츠나 동복이 나오는데 너무도 번들거리고 주름이 많이 가서 탄광이나 광산 같은 데서 노동자들이 작업복으로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산사업소들에서 배를 견인하는 밧줄로 많이 사용하였고, 청소용 밀대를 만들 때 썼습니다. [정영, 2010]



일본은 2차대전 이후 서방 경제권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면화, 양모 같은 천연섬유의 원료나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 더 경쟁력 있는 합성섬유 기술을 도입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따라서 일본은 굳이 비닐론을 개량해 의류용으로 쓰는 수고를 하는 대신 주로 산업용 섬유로 특화시켜 개발해 나갔다.

한편 북한은 생각이 달랐다.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무역보다는 자급자족 자력갱생을 목표로 하는 국가였다. 그리고 비날론의 원료인 석탄과 석회석은 북한에 풍부한 자원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비날론을 가지고 북한에 부족한 자원을 대체하는 수입대체전략을 쓰기로 결심한다.
 

북한에서 면화 증산을 통해 섬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면을 대체하거나 면과 섞어 씀으로서 면의 소비를 줄일 수 있는 합성 섬유가 대단히 긴요했다. 나일론이나 아크릴 섬유 등에 비해 흡습성이 높은 비날론은 면직물의 대용품을 만드는 데 적합했으므로 북한에서는 비날론 공업화를 통해 면직물의 수급을 맞추고자 했던 것이다. (p.126)

리승기의 자서전에는 “우선 나일론 공장과 니트론(아크릴) 공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 하지만 논쟁은 “비날론은 면(棉)에 가까워 아이들의 옷으로부터 어른들의 의복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옷을 만들 수 있는 대중성 있는 섬유”라는 김일성의 주장으로 종식되고, 내각결정으로 연산 1만톤 규모의 비날론 공장을 본궁 지역에 건설할 것이 결정되었다. (p.127) [김태호,2001]


이처럼 나일론이나 아크릴 대신 비날론에 투자해야된다는 주장을 관철시킨 이 사업의 최대 후원자는 김일성이었고, 비날론을 갖고 면을 대체해 옷을 만들라는 사업 목표를 제시한 것도 김일성이었다. 이 때문에 나일론이나 아크릴 생산을 주장했던 이들은 뒤에 '귀족적인 섬유'를 옹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승기가 일본에서 '합성 1호' 연구를 하던 시절, 이 합성섬유의 목표는 주로 나일론, 견사나 양모를 대체하는 것이었지 면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면을 대체하는 것은 북한에서 새로 부과된 정치사회적 목표였다.
 

비날론이 지니는 이와 같은 특수한 의미 때문에 북한에서는 비날론 공업화의 역사를 북한 체제 건설의 역사와 나란히 서술하고 있다. 즉 리승기가 일본에서 비날론을 처음으로 개발한 1930년대 후반에는 “나라가 없던 탓으로 이 발명은 은을 낼 수 없었”으며, 비날론의 본격적인 연구는 “수령님과 당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적인 주장이다.(p.113)

북한의 기록은 “비날론 공업화의 지름길을 열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9년 3월 25일 오랜 세월 갈대와 쑥대만이 무성하던 성천강 기슭을 찾으시어 비날론공장터를 잡아주시고 그 건설방향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고 [전한다.] (p.128) [김태호,2001]


이런 식으로 '수령님'과 비날론은 깊은 관계로 엮이게 된다. 비날론이란 이름을 지은 것도 김일성이며 이후 비날론은 '주체섬유'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는다.

PVA 섬유가 합성섬유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북한에만 해당되는 아주 예외적 현상인데, 수령의 결단에 의해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비날론을 의복용 섬유로 대량 생산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북한의 공업 전체에서 섬유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5.9%로 기계 및 금속공업 다음으로 높은 편 … 그러나 섬유원료, 직물분야의 국제경쟁력은 매우 열악한데, 이는 섬유산업의 중심이 비날론과 비스코스로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원료의 자급자족정책을 내세워 석회석과 무연탄, 목재나 갈대 등 원료의 자체조달이 가능한 부문을 중점 육성하였기 때문 [김삼수 외, 2002:34]


세계 섬유의류산업의 현 상황으로 볼 때, 굳이 비날론을 구매해 직물이나 의류를 제조하겠다는 해외 바이어가 흔할 리 없다. 특히 앞서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본 것 같은, 북한이 제조할 수 있는 그런 품질의 직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것이 서두에서 내가 언급했던 '무역지향적 경제정책과의 모순'의 중요한 이유다. 도대체가 국가원수가 앞장서서 희소한 공업력을 비날론에 올인하고 있어서야 섬유산업으로 수출이 되겠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국제시장에 접근하고자 하는 나라의 태도가 아니다.


3. 한편, 지금 일본에서는

사실 일본에서는 계속된 기술개발을 통해 이 PVA 섬유(비닐론)을 산업용 고부가가치 섬유로 포지셔닝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고강도, 고탄성화가 가능해짐에 따라 건축재료, 고무보강용으로서 뿐 아니라 산업용 섬유 전 분야에 다량 사용되며, 특히 석면의 대체품으로 PVA 섬유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 중에 고강력 PVA 섬유의 개발 연구는 수년간 산업계, 학계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PVA 섬유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김효대 외,2002:35]

현재 기술적 수준이나, 생산량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는 일본의 Kuraray사이며, 일본에서 이용되는 PVA 섬유제조기술에 의하면 다양한 용도의 산업용 PVA 섬유 제조가 가능하다. Kuraray는 1950년부터 지속적이고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현재의 PVA 산업을 일궈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 현재는 PVA 시장에서 독점적 우월권을 향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효대 외,2004:13]



그럼 혹시 북한도 이런 경향에서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일의 발언을 다시 떠올려 보도록 하자.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일 김 위원장이 폭포치며 쏟아지는 비날론을 보면서 “우리 인민들에게 질 좋은 비날론 옷감을 더 많이 보내줄 수 있게 되였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하면서 “나는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은 '위대한 수령'의 유지를 이어받아 의연히 자급자족 원칙에 따라 내수용 비날론 옷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기술 개발 방향은 지금까지 그 쪽에만 맞춰져 있었다. (16년 간이나 공장이 조업중단했었는데 품질이 괜찮겠느냐든가 하는 '사소한' 문제들은 접어놓도록 하자.)

반면 현재의 일본이 보유한 산업용 섬유 기술은 1950년대 이후 반 세기에 걸쳐 꾸준히 쌓아올린 것으로, 반 세기 전 이승기가 가지고 간 기술에 기반한 북한의 기술과는 이미 크게 달라졌다. 쉽게 말해서 이승기가 북한으로 가지고 간 기술은 20세기 전반의 기술이고, 일본의 현 기술은 21세기의 것인 셈이다.


4. 북한의 석탄화학: 20세기 전반의 기술

조금 전에 북한의 비날론 기술은 기본적으로 20세기 전반의 기술에 기반한 것으로, 일본은 이미 그런 기술에서 멀어진지 오래라고 지적했는데, 조금 더 보충해 보기로 하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북한의 비날론 공업은 기본적으로 석회석과 석탄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석탄화학공업이다. 반면 일본은 반 세기 전 같은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석유화학을 통해 비닐론을 만들고 있다. 주원료부터 달라진 것이다.

또한 이 낡은 기술은 서방의 기술에 비해 에너지를 몇 배로 쓰고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일본질소비료]에서 건설한 흥남의 공장군은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발달된 전력 고소비형 석탄화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석탄화학이 아직 세계 화학공업의 주류를 이루던 시절 건설된 비날론 공장도 마찬가지로 전력 고소비형이었다. 그런데 세계 화학공업의 주류가 미국식 석유화학으로 바뀌면서 석탄에 바탕을 둔 유럽식 전력 고소비형 화학공업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그에 따라 북한의 비날론 공업도 세계 화학공업의 주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비록 부존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립노선을 추구하는 북한으로서는 석회석과 전력을 이용한 카바이드 공업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석유화학 분야를 외면함으로써 북한의 화학공업이 세계 화학공업의 흐름에서 멀어졌으며,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는 현재 북한의 에너지 사정으로는 이러한 방식의 산업 발전을 지속시키기 힘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김태호,2001:132]



이런 평가는 다른 데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비날론은 생산과정에서 막대한 전력과 석탄을 소비하기 때문에 나일론 등 다른 합성섬유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의 현재 전력과 석탄 생산 형편을 고려하면 2·8비날론의 정상가동은 매우 어렵다. 설사 정상가동이 된다 해도 해외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이 공장은 1961년부터 1994년까지 정상가동됐던 기간에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하,2010]

 

http://m.egloos.zum.com/sonnet/v/4389149

 

결론 : meanwhile in North Korea






  • 블레이징
    17.05.07
    ㅋ 마지막에 "한편 북헬조선에서는..." 이 참 와닿는 글이었다.
  • 이거 알아봤는데 지들이 만들어 놓고 옷으로도 못 만들어 입는 쓰레기 천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우끼끼 거리는 병신들이라는 걸 느꼈다. 무슨 자력갱생 주체 드립 치면서 백날 이빨 깐다고 질이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만들었다고 자위질하는 북헬센숭들은 참 가관이다.
  • 그냥 남이건 북이건 우끼끼 헛소리는 고질병인듯요.
    그나마 남헬은 미일의 영향이 있어 조선시대급 미개에서는 조금 벗어났는데, 북쪽은 그것도 없으니 오리지날 조선의 그걸 가지고 있는지두...
  • 노인
    17.05.07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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