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일부 몇몇분들이 구소련에 대해 (부분적으로라도) 천민자본주의나 패권국의 횡포에 맞선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쓰는 글인데
소련은 절대로 사회주의도 아니었고 모종의 진보적인 국가도 아니었으며 반패권주의도 더욱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러시아 혁명직후 1928년도까지는 그래도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의 복지랑 권리, 생활권이 우선시되었고 소득격차수준도 5대 1 정도에서 올라가지 못하게 규제되었으며 (최하위 소득보다 5배를 넘는 월급을 받다가 적발시 그 공산당원은 가차없이 쫓겨났으며 이것조차도 혁명의 국제적 확산과 그로인한 지원으로 러시아가 발전되기 전까지의 타협책.)
기업과 공장은 노동자들이 통제하고 경영했으며 국가의 관료들은 선거로 뽑히고 잘못할시 언제든 소환됬습니다.
가정차원에서는 아동학대를 일삼는 부모를 자녀들이 광장 등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폭로하고 고발하는일이 적극 장려되었고 그렇게 해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폭행하는 악습을 끊어내려했고
학교에서는 시험과 과제가 사라지고 교사,교수에게 존칭을 붙이고 경의를 표하는 것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직장에서는 공장 관리들이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일방적인 명령, 지시를하고 하대하는 일도 금지시켰죠.
군대에서는 정치장교들을 통해 제정 시절 빈발했던 구타, 가혹행위, 각종 악습들을 적발하고 처벌되도록 규정까지 되어있었습니다. (참고로 제정때 장교에 대한 항명, 폭행, 사살 등이 빈발했던것도, 적백내전때 농민들이 적군편에 선것도 중요이유중 하나가 바로 군내의 극심한 악습 때문이었습니다)
1928년까지는 이러한 노력들이 진지하게 시도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1928년 이후 그러한 성과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볼셰비키 고참 혁명가들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는 반혁명을 수행했는데
이때부터는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 혹은 <관료적 군사적 국가자본주의> 라고 불러야 적당합니다.
러시아혁명때 스탈린의 반혁명 이전에 나아가려했던 방향 및 사회주의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원칙은 (위에서도 일부 말했지만) 이러하기 때문이죠.
모든 기업 공장 들의 국유화와 노동자들의 경영 및 통제.
경제계획에서 서민들에 대한 보편적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최우선
산업에서는 식량, 옷, 각종 생필품에 대한 생산을 최우선
소득격차가 5대 1을 넘지 않게 할것. (이것도 사회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이고 갈수록 이 격차는 줄어드는게 원칙입니다)
정치관료들에 대한 선거로 선출 및 원할시 언제든 소환.
모든 주민들이 정치와 행정에 대해 조금씩 교육받고 점차적으로 순번을 정해 정치,행정에 참여해서 정부와 국가의 점진적인 사멸을 이행.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대립을 극복하기위해 농업의 기계화와 농촌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 및 투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대립을 극복하는 방향으로의 산업화와 기계화 촉진.
직업간의 분업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계획.
가족제도의 점진적인 소멸.
봉건시대 때부터 내려온 각종 악폐습들 (한국으로 치면 효도사상, 경로사상, 선후배 기수문화 등의 유교적 악습들) 의 철저한 타파.
레닌이 통치할때는 이런 쪽으로 어느정도는 노력이 진지하게 시도됫습니다.
국제적 혁명확산이 실패하고 백국의 내전과 제국주의 14개 열강의 침략으로 러시아의 공업과 인프라가 80프로 이상이 파괴되어서 극심한 빈곤과 피폐가 러시아를 엄습했고 (어떤 학자는 무려 수백년 문명의 후퇴가 벌어졌다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혁명 러시아가 고립까지 되니
부족한 식량과 재원의 분배관리와 경제회복을 위해 관료들의 권한이 대폭 커질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어 여러 한계에 봉착했지만, 그래도 방향만큼은 어떻게든 그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이 집권하고 고참 볼셰비키들을 전부 죽인뒤 자신을 따르는 관료집단들을 지배자로 만드는 반동적 독재체제를 수립한 뒤에는 어떻게 됫습니까? 위에서 말한 요소들과는 180도 정 반대방향으로 갔습니다.
스탈린 집권이후에는
산업들은 국유화만 되어있을뿐 노동자들의 경영참가와 생산통제는 철저히 폐지되었습니다. 심지어 파업권같은 기초권리조차 사형에 처해질 정도였습니다.
관료집단들의 수입은 서민들의 수십배 심지어 100배 이상으로 급증했습니다. 반면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실질임금은 절반이하까지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경제계획에서는 중공업이 최우선시되어서 식량과 생필품에 대한 생산비중은 최하위로 추락했습니다. 그 결과 소련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나날이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국가예산에서도 군사비지출이 최우선시되어 복지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질이 형편없이 추락했습니다. 일례로 스탈린 집권이후 소련의 보건의료 지출이 세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도시와 농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직업간의 대립과 분리, 분업의 극복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되려 고착화하는 쪽으로 경제계획과 산업발전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농촌의 상황은 강제적 집산화로인해 초토화하기도 했습니다.
관료집단들의 국영기업 등에서 나오는 수입착복으로 부정부패가 끝간데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관료들은 고급사치품을 국영상점에서 싼 가격으로 구입하는반면, 서민들은 싸구려 빵을 사기위해서도 몇시간씩 줄을 서야 했습니다.
성과급제, 도급제 등의 도입으로 노동자들끼리도, 같은 직업군들끼리도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소련 장교와 병사간의 월급차이는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훨씬 심하게 벌어졌습니다.
소련 병사들내에 레닌시절에 폐지된 계급제도가 부활해서 권위주의가 극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장교내의 계급제도도 더욱 위계화했고요. 군내의 구타와 악습도 본격 부활했고 말이죠.
학교에선 숨막히는 주입식 교육과 시험제도도 부활했고 교사와 교수는 학생들에 대해 다시 권위적 압제자의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가족제도의 점진적 해체계획은 중단됫고 되려 가족이 미화됫으며 자녀가 학대와 구타를 고발하고 폭로하는 장려도 사라졌습니다.
직장에선 공장관리가 다시 노동자에게 일방적 지시를 내리는 존재가 됫고 잠시 자리비우거나 지각했다고 자르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리고 잘린 노동자는 식량배급권도 빼앗기고 국가주택도 박탈됫습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인민전선 (공산당과 노동자는 공산주의 혁명 일으킬 생각은 절대 하지말고 민주적 부르주아들과 협조해라는 이론) 을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들에게 강요해서 프랑스, 스페인, 중국, 일본, 조선 등등에서 1920년대 중반이나 1929년 대공황당시 분출하려했던 혁명을 사보타주하고 파괴했으며
2차대전이후 동유럽 여러국가들을 <세계혁명의 확산> 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관료 독재체제를 본딴 식민지로 재편해서 착취와 수탈을 일삼았으며 이에 조금이라도 반대할시 <민족주의적 편향> 이라면서 군대를 보내 잔혹한 진압과 학살까지 일삼는 명백한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만행까지 일삼았습니다.
이후 세계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을뻔한 핵무기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는건 모두가 잘 알겁니다.
이러한 것이 구소련의 실체이며 이건 모두가 잘 알겁니다.
따라서 소련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대안을 (부분적이라도) 보여준 모종의 진보적인 면이 있던 국가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지들부터가 식민주의적 수탈을 앞장서서 자행했고요.
1928년 스탈린이 반동적 관료독재체제를 수립한 이후 1991년 망할때까지의 일관된 소련의 진짜 실체입니다.
그따위 야만적 생지옥은 망해버리는게 마땅한 <타락한 노동자 국가> 혹은 <관료적 군사적 국가자본주의> 이고 스탈린주의 관료도당이 모든걸 다 해먹고 세습한 잔혹한 계급사회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라거나 혹은 모종의 진보적 면이 있었다는 일부의 의견은 제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