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공산주의자
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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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여기서 일부 몇몇분들이 구소련에 대해 (부분적으로라도) 천민자본주의나 패권국의 횡포에 맞선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쓰는 글인데

 

소련은 절대로 사회주의도 아니었고 모종의 진보적인 국가도 아니었으며 반패권주의도 더욱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러시아 혁명직후 1928년도까지는 그래도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의 복지랑 권리, 생활권이 우선시되었고 소득격차수준도 5대 1 정도에서 올라가지 못하게 규제되었으며 (최하위 소득보다 5배를 넘는 월급을 받다가 적발시 그 공산당원은 가차없이 쫓겨났으며 이것조차도 혁명의 국제적 확산과 그로인한 지원으로 러시아가 발전되기 전까지의 타협책.)

 

 

기업과 공장은 노동자들이 통제하고 경영했으며 국가의 관료들은 선거로 뽑히고 잘못할시 언제든 소환됬습니다.

 

가정차원에서는 아동학대를 일삼는 부모를 자녀들이 광장 등의 공개적인 장소에서 폭로하고 고발하는일이 적극 장려되었고 그렇게 해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폭행하는 악습을 끊어내려했고

 

학교에서는 시험과 과제가 사라지고 교사,교수에게 존칭을 붙이고 경의를 표하는 것을 없애려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직장에서는 공장 관리들이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일방적인 명령, 지시를하고 하대하는 일도 금지시켰죠.

 

군대에서는 정치장교들을 통해 제정 시절 빈발했던 구타, 가혹행위, 각종 악습들을 적발하고 처벌되도록 규정까지 되어있었습니다. (참고로 제정때 장교에 대한 항명, 폭행, 사살 등이 빈발했던것도, 적백내전때 농민들이 적군편에 선것도 중요이유중 하나가 바로 군내의 극심한 악습 때문이었습니다)

 

1928년까지는 이러한 노력들이 진지하게 시도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1928년 이후 그러한 성과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볼셰비키 고참 혁명가들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는 반혁명을 수행했는데

 

이때부터는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 혹은 <관료적 군사적 국가자본주의> 라고 불러야 적당합니다.

 

러시아혁명때 스탈린의 반혁명 이전에 나아가려했던 방향 및 사회주의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원칙은 (위에서도 일부 말했지만) 이러하기 때문이죠.

 

 

 

모든 기업 공장 들의 국유화와 노동자들의 경영 및 통제.

 

경제계획에서 서민들에 대한 보편적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최우선

 

산업에서는 식량, 옷, 각종 생필품에 대한 생산을 최우선

 

소득격차가 5대 1을 넘지 않게 할것. (이것도 사회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이고 갈수록 이 격차는 줄어드는게 원칙입니다)

 

정치관료들에 대한 선거로 선출 및 원할시 언제든 소환.

 

모든 주민들이 정치와 행정에 대해 조금씩 교육받고 점차적으로 순번을 정해 정치,행정에 참여해서 정부와 국가의 점진적인 사멸을 이행.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대립을 극복하기위해 농업의 기계화와 농촌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 및 투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대립을 극복하는 방향으로의 산업화와 기계화 촉진.

 

직업간의 분업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계획.

 

가족제도의 점진적인 소멸.

 

봉건시대 때부터 내려온 각종 악폐습들 (한국으로 치면 효도사상, 경로사상, 선후배 기수문화 등의 유교적 악습들) 의 철저한 타파.

 

레닌이 통치할때는 이런 쪽으로 어느정도는 노력이 진지하게 시도됫습니다.

 

국제적 혁명확산이 실패하고 백국의 내전과 제국주의 14개 열강의 침략으로 러시아의 공업과 인프라가 80프로 이상이 파괴되어서 극심한 빈곤과 피폐가 러시아를 엄습했고 (어떤 학자는 무려 수백년 문명의 후퇴가 벌어졌다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혁명 러시아가 고립까지 되니

 

부족한 식량과 재원의 분배관리와 경제회복을 위해 관료들의 권한이 대폭 커질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어 여러 한계에 봉착했지만, 그래도 방향만큼은 어떻게든 그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이 집권하고 고참 볼셰비키들을 전부 죽인뒤 자신을 따르는 관료집단들을 지배자로 만드는 반동적 독재체제를 수립한 뒤에는 어떻게 됫습니까? 위에서 말한 요소들과는 180도 정 반대방향으로 갔습니다.

 

 

스탈린 집권이후에는

 

산업들은 국유화만 되어있을뿐 노동자들의 경영참가와 생산통제는 철저히 폐지되었습니다. 심지어 파업권같은 기초권리조차 사형에 처해질 정도였습니다.

 

관료집단들의 수입은 서민들의 수십배 심지어 100배 이상으로 급증했습니다. 반면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실질임금은 절반이하까지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경제계획에서는 중공업이 최우선시되어서 식량과 생필품에 대한 생산비중은 최하위로 추락했습니다. 그 결과 소련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나날이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국가예산에서도 군사비지출이 최우선시되어 복지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질이 형편없이 추락했습니다. 일례로 스탈린 집권이후 소련의 보건의료 지출이 세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도시와 농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직업간의 대립과 분리, 분업의 극복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되려 고착화하는 쪽으로 경제계획과 산업발전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농촌의 상황은 강제적 집산화로인해 초토화하기도 했습니다.

 

관료집단들의 국영기업 등에서 나오는 수입착복으로 부정부패가 끝간데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관료들은 고급사치품을 국영상점에서 싼 가격으로 구입하는반면, 서민들은 싸구려 빵을 사기위해서도 몇시간씩 줄을 서야 했습니다.

 

성과급제, 도급제 등의 도입으로 노동자들끼리도, 같은 직업군들끼리도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소련 장교와 병사간의 월급차이는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훨씬 심하게 벌어졌습니다.

 

소련 병사들내에 레닌시절에 폐지된 계급제도가 부활해서 권위주의가 극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장교내의 계급제도도 더욱 위계화했고요. 군내의 구타와 악습도 본격 부활했고 말이죠.

 

학교에선 숨막히는 주입식 교육과 시험제도도 부활했고 교사와 교수는 학생들에 대해 다시 권위적 압제자의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가족제도의 점진적 해체계획은 중단됫고 되려 가족이 미화됫으며 자녀가 학대와 구타를 고발하고 폭로하는 장려도 사라졌습니다.

 

직장에선 공장관리가 다시 노동자에게 일방적 지시를 내리는 존재가 됫고 잠시 자리비우거나 지각했다고 자르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리고 잘린 노동자는 식량배급권도 빼앗기고 국가주택도 박탈됫습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인민전선 (공산당과 노동자는 공산주의 혁명 일으킬 생각은 절대 하지말고 민주적 부르주아들과 협조해라는 이론) 을 각국 공산당과 노동자들에게 강요해서 프랑스, 스페인, 중국, 일본, 조선 등등에서 1920년대 중반이나 1929년 대공황당시 분출하려했던 혁명을 사보타주하고 파괴했으며

 

2차대전이후 동유럽 여러국가들을 <세계혁명의 확산> 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관료 독재체제를 본딴 식민지로 재편해서 착취와 수탈을 일삼았으며 이에 조금이라도 반대할시 <민족주의적 편향> 이라면서 군대를 보내 잔혹한 진압과 학살까지 일삼는 명백한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만행까지 일삼았습니다. 

 

이후 세계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을뻔한 핵무기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는건 모두가 잘 알겁니다.

 

 

이러한 것이 구소련의 실체이며 이건 모두가 잘 알겁니다.

 

따라서 소련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대안을 (부분적이라도) 보여준 모종의 진보적인 면이 있던 국가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지들부터가 식민주의적 수탈을 앞장서서 자행했고요.

 

1928년 스탈린이 반동적 관료독재체제를 수립한 이후 1991년 망할때까지의 일관된 소련의 진짜 실체입니다.

 

그따위 야만적 생지옥은 망해버리는게 마땅한 <타락한 노동자 국가> 혹은 <관료적 군사적 국가자본주의> 이고 스탈린주의 관료도당이 모든걸 다 해먹고 세습한 잔혹한 계급사회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라거나 혹은 모종의 진보적 면이 있었다는 일부의 의견은 제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공산주의자Best
    17.04.28
    아! 님과 블레이징님의 소련관련 논쟁글은 이미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님같은 친자본주의 속물들 편을 들려고 이 글을 쓴게 절대 아닙니다.

    그 반대로 진짜 반자본주의 입장에서 구소련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반대하는것이고, 글에도 나와있듯이 소련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 나 <군사적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라는 체제로서, 현재 남북한이나 중국, 동남아 등의 부패한 독재국가, 자본주의 국가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블레이징님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을 100프로 공감하고, 또 그런 입장을 설득력있게 여기에 용기내서 과감하게 펼치는것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이 글 (트로츠키주의적 사회주의 옹호글) 또한 그 사람의 글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어서 쓴 것이니까요

    다만, 구소련이 어째서 반자본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면이 있는 국가였다는 것에 동의를 못할 뿐입니다. 그분의 반자본주의 입장 자체는 크게 공감하되, 소련과 스탈린주의 지지만 동의안하는거죠.

    즉 저는 블레이징 그 사람의 반자본주의 입장과 소련옹호 입장을 따로 떼서 보는 겁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이 글을 블레이징 앞에서 친자본주의 옹호 논리로 이용하는데 써먹으려거든 차라리 안하는게 나을 겁니다. 

    말했듯 님의 속물적 친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은 이 글에는 단 한 문장, 단 한 글자도 없어서 님만 시간날리고 피곤해지기 때문이죠.
  • 달마시안
    17.04.28
    블레이징이 이 글보면 자아분열될듯. ㅋㅋ
  • 아! 님과 블레이징님의 소련관련 논쟁글은 이미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님같은 친자본주의 속물들 편을 들려고 이 글을 쓴게 절대 아닙니다.

    그 반대로 진짜 반자본주의 입장에서 구소련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반대하는것이고, 글에도 나와있듯이 소련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 나 <군사적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라는 체제로서, 현재 남북한이나 중국, 동남아 등의 부패한 독재국가, 자본주의 국가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블레이징님의 반자본주의적인 입장을 100프로 공감하고, 또 그런 입장을 설득력있게 여기에 용기내서 과감하게 펼치는것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이 글 (트로츠키주의적 사회주의 옹호글) 또한 그 사람의 글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어서 쓴 것이니까요

    다만, 구소련이 어째서 반자본주의적이고 진보적인 면이 있는 국가였다는 것에 동의를 못할 뿐입니다. 그분의 반자본주의 입장 자체는 크게 공감하되, 소련과 스탈린주의 지지만 동의안하는거죠.

    즉 저는 블레이징 그 사람의 반자본주의 입장과 소련옹호 입장을 따로 떼서 보는 겁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이 글을 블레이징 앞에서 친자본주의 옹호 논리로 이용하는데 써먹으려거든 차라리 안하는게 나을 겁니다. 

    말했듯 님의 속물적 친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은 이 글에는 단 한 문장, 단 한 글자도 없어서 님만 시간날리고 피곤해지기 때문이죠.
  • 근본적으로, 소련은 지도부 선출에 대해 상향식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한번 지도부가 결정을 내리면 절대 복종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게 화를 불러온 것 같기는 합니다. 
    당시 러시아의 민도와 수준을 감안할 대 레닌의 조치는 혁신적이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지도부에게 권한이 많고 권력분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게 레닌 사후 실패의 요인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있네요.

    시스템의 열악성은 사실상 통치자의 카리스마와 양보에 국가 운영을 의존하는 체제가 되었고, 이로 인해 레닌 사후에 바로 변질되어버린 것이에요.

    이런 문제들은 신생 제국들이 많이 겪는 문제인데, 시스템의 체계화와 정비가 부족하면 통치자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의존하게 되고, 알렉산더의 제국 등 역사를 좌지우지한 많은 제국들이 1-2대만 흘렀을 뿐인데도 망한 건 다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초인공지능의 개발과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보는데...
    영속적인 초인공지능을 국정운영과 경제관제에 적용함으로서 인간의 수명한계와 탐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억제하고, 현대의 관료체제를 넘어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 경제 이상으로 자원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분배가 가능하게 된 뒤에야 사회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어요.
  • 그게 단순히 권력분립의 문제만이 아니었고

    더 큰 근본적인 문제는 물질적 토대에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경제발전의 후진성,

    내전으로 인해 기업, 공장, 인프라의 80프로 이상이 파괴되어서 그로 인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관료들을 통제할 세력이나 방법이 실질적으로 사라져버린데에 있습니다

    (내전으로 경제가 파괴되기 전에는 노동자들이 관료들을 감시, 통제하고 언제든 소환하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공장과 작업장 단위로 조직된 소비에트가 선출된 관료들이 다른짓 못하게 강력하게 감시하는 기반이었는데 공장들과 기업들이 죄다 파괴되어 버렸으니 관료들이 주민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데에 성공할 수 있었던거죠

    게다가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데에 실패하면서 다른 문명국들의 지원을 못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회복이 어려워져 러시아는 극도의 빈곤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식량과 자원의 적절한 배분자로서의, 그리고 경제를 재건하는 역할로서의 관료들의 필요성을 크게 증대시켰고 이것이 관료들이 주민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권력을 크게 증가시킬수 있었던 근원이자 물질적 토대입니다.

    관료들은 그때부터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사용할수 있게 되었고 스탈린은 그들의 대표였습니다. 그러다가 스탈린과 관료도당들의 반혁명이 성공해서 러시아는 반동적 관료독재체제로 떨어진겁니다

    즉 거꾸로 말하자면 내전으로 경제가 파괴되지않고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데 성공했다면 특히 당시 경제강국이었던 독일에서의 혁명이 성공했다면 스탈린주의 독재체제는 수립이 불가능했거나 적어도 최대한 지연될 수는 있었다는 겁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볼때는 그것의 경제적 물질적 토대를 항상 먼저 살펴야합니다. 그래야 역사적 사건이나 앞으로 벌어질 사회현상들을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결론은 요약해서, 러시아혁명이 스탈린주의 관료도당들에게 전복된건 경제파괴랑 혁명의 고립이라는 물질적 토대에 있었지 권력분립의 문제에 있었던게 아닙니다.
  • 그리고 러시아 서민들의 민도라.....   

    그 당시의 러시아 서민들만큼 저항이나 혁명성 등에서 뛰어난 민도를 가진 국민들이 또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당시에 사민당 같은 개량주의나 무정부주의 같이 말로만 혁명집단이고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파트너였던 세력에 빠지지않고 사회주의라는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한 결론으로 혁명을 일으킨게 민도가 뛰어난게 아니고 뭘까요?    

    경제붕괴 이전부터 그 엄혹한 짜르독재 아래에서 과감하게 저항한 러시아 서민들이, 지금 시위랑 파업의 자유가 다 있는데 제대로 저항못하는 (물론 물질적 토대의 원인도 있지만) 한국의 서민들보다 훨씬 민도가 높았습니다.
  • 물론 이러한 의견에도 타당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했던 건 조금 달라서요.

    당시 러시아인들은 교육 수준이 그리 높지 못했고... 사회상을 묘사한 소설이나 기록등을 보면 차르 지지자 등 왕당파도 상당수였어서, 실제로는 지나친 학정으로 인해 도무지 견딜 수 없게 되어 혁명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같은 분야에서 상당히 부족했고, 공산주의 인텔리들과 나머지 계급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는 게 보여져서요.

    물질적인 여건이라면, 그 점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는데...
    일단 그 수준과는 상관없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사회의 부의 분배문제에 인간이 개입하는 한 어느 정도의 왜곡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과 탐욕이 있으며, 사고위 범위와 수준이 편향되어있어 올바른 결론을 항상 내려주기가 어렵거든요.

    게다가 그런 요인들이 없었더라도 러시아의 공업과 사회 생산력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기에 물질적인 요인에 대한 가정은 어렵지 않나 싶네요. 오히려 내전과 1차세계대전으로 개판이던 레닌 시절에는 그나마 혁명 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는데, 오히려 사회가 일정 궤도에 오르니 스탈린이 집권하였죠....

    이건 프랑스 혁명과도 유사한 케이스이기는 한데...
    당장 통치세력에 의해 극도로 고통받게 되면 구 체제가 일격에 무너지고 대안 세력이 수립되기는 하나, 민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과거로 회귀해버리고 하는 것이지요.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제정수립과 부르봉 왕가 부활이 그랬고, 러시아에서도 얼마 안 가 스탈린 같은 사악한 전체주의자가 쉽게 나라를 망칠 수 있었던 것도 그 근저에는 체제의 정비부족과 시민의 민도가 근본적으로 확보되지는 않았었다는 점이 큰 요인이라고 보았었어요.
  • 물질부분부터 일단 먼저 이야기하죠

    러시아의 공업수준이 당시 7대 열강중에서 제일 낮았던게 사실이고 그래서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혁명의 국제적 확산> 으로 인한 지원이 필요했다고. 

    그러나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된게 러시아의 경제붕괴에 일조하고 물질적 빈곤의 고착화를 낳았고 이것이 자원의 배분자로서의 관료권한의 급증을 불가피하게해서 결국 스탈린주의 관료도당의 반동적 독재의 승리를 낳은 하나의 원인이라고.

    혁명이 유럽에서도 성공해서, 특히 당시 경제강국인 독일에서 성공해서 각종 지원을 받았으면 빈곤과 고립을 피할 수 있었을거고 경제를 회생시키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관료의 역할이 크게 줄었을거고 스탈린의 반혁명을 막거나 최대한 지연시켯을건데 국제적 확산에 실패해서 고립ㅡ빈곤ㅡ관료들의 권력증대ㅡ스탈린의 반혁명 이 성공한거라고

    애초 러시아혁명은 <일국에서 시작해서 국제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으로 진행된 것이었고 실제로 당시 유럽 전역이 혁명에 휩싸였으며 영국의 수상이나 장관들이 당시 한 말들을 보면 유럽 전체가 공산혁명으로 뒤덮힐 기세였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유럽의 신생 공산당들이 워낙 전략 전술에 미숙해서 실패했지만 만일 독일에서 혁명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됫을까요? 

    정치적 강국인 러시아+경제강국인 독일

    이 두곳에서 혁명이 성공했다면 고립과 빈곤의 탈출과 관료들의 역할과 권한 대폭감소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혁명에 집어삼켜졌을 겁니다. 즉 스탈린의 독재가 설 자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국제적 혁명확산이 충분히 승산있었으나 직전에 실패해서 러시아에 공산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협소해져서 관료들이 기승을 부릴 토대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걸 공산주의의 잘못이라고 하는건 애초에 맞지 않는거죠


    게다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뒤 스탈린이 집권했다?     
    적백내전과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을 극복한 직후의 러시아의 경제상태를 제대로 공부했으면 합니다

    <문명의 수백년 후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프라와 공장이 철저히 파괴됫고, 그로 인해 관료들을 감시하고 소환할 노동자들이 대부분 죽거나 농촌으로 내려가버려서 관료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된게 사회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뒤에 관료집단이 권력을 차지한게 아니죠. 파괴와 빈곤과 고립속에서 스탈린과 관료도당이 설칠 수 있게 된건데 그게 사회가 일정궤도에 오른뒤에 집권한거라니.... 

    1918년 이후 러시아 적백내전시기의 공업과 인프라 파괴수준이 어느정도 였는지 확실히 공부했으면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에서 주요 대도시인 서울,인천,울산,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이 전부 다 파괴됫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대충 상상이 가시겠죠?)

    또한 러시아 공업수준이 여타 열강들보다 낮았던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낮은 수준이더라도 1917년 도시지역들의 공장들, 인프라들, 기업들이 멀쩡할때의 러시아랑, 1918~1921년 적백내전과 열강과의 전쟁이후 공장과 인프라 기업들의 80프로가 파괴된 뒤의 러시아랑 같이 보는건 아니겠죠? 그리고 관료도당들이 설칠 수 있게된건 명백히 후자의 시기부터이고 그 전에는 노동자들이 서슬퍼렇게 살아있고 공장단위로 조직된 소비에트에서 감시하고 소환하고해서 설치지 못했습니다. 이것만봐도 확실히 차이가큰데 물질적인 면이 큰 영향을 못끼쳤다?.... 사물을 어느정도의 높이에서 봐야 두 시기의 경제를 동일시하게 볼 수 있는지...

    또한 인간의 개입이 부의 분배에 어느정도 왜곡을 초래한다면, 그 인간이 관료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앞서 말한대로 공업지구들이 멀쩡했을땐 공장단위로 조직된 소비에트의 노동자들이 성공적으로 관료들을 감시 통제 소환했으니, 그리고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에 성공했다면 러시아의 공업은 크게 급성장해서 관료들을 견제할 노동자들은 더욱 급증해서 관료들의 권력이나 역할 자체가 더욱 줄어들었을테니 이걸로 해답이 됫고


    혹시 사회주의 이후에도 노동자들끼리의 소득격차를 이야기하는거라면, 애당초 전제 자체가 잘못된겁니다. 사회주의=부의 완전평등 이라는 님 머릿속의 잘못된 이해와 전제 말입니다

    사회주의 이론과 사상에선 결교 부의 완전한 평등을 약속한적이 없기 때문이고, 되려 마르크스든 레닌이든 트로츠키든 할것 없이 <사회주의가 높은 궤도로 발전할때까지 노동의 투입이나 능력에 따른 분배의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라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죠. 

    단지 기업이나 공장 같은 생산수단만을 확실히 사회적 소유로 돌리겠단것 뿐이고, 사회주의 이후에는 소득은 일정정도 노동투입에 따른 격차는 있으나, 생산수단을 누군가가 설혹 어찌해서 사유화 하려고 생각한다쳐도, 생산수단의 공유화가 더 이득이되는 노동자들이 막을테니 이 부분 또한 전혀 걱정할게 못됩니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상은 스탈린주의와 전혀 무관하고, 스탈린주의는 사회주의에서, 러시아혁명과의 연속선에서 생겼다는 님의 말은 애당초 맞지 않는 겁니다. 


  • 으음.. 일단 완전한 기계적인 평등을 의미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구요.
    적백내전과 1차대전으로 인한 내부 혼란은 오히려 레닌 시기로, 1928년 즈음 되면 어느 정도 혼란이 가라앉고 국가가 제도적으로 틀이 잡히기 시작한 시점이니까요. 그 이후 다시 한 번 초기화되는 건 1941년 이후의 2차대전 개전 시점이죠.

    오히려 스탈린의 학정과 독재는 2차대전 개전 전부터 있었으니 그걸 여기에 대입하는 건 좀 아닌 거 같구요.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 오히려 관료조직을 통제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사람수가 그리 많지 않은 집단에서는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기 더 쉽지만 거대화할수록 소수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건 거의 보편적인 흐름에 가깝구요. 마을 단위에서는 마을 개개인의 의사를 묻지만 국가 레벨에서는 그러기도 힘들고, 오히려 이들을 관리하는 소수 집단의 결집력을 강화시키기가 더 쉽기에 과두화하는 걸 생각하면 될듯요.

    사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통치하는 집단은, 아주 작은 자치단체나 소국이 아니면 잘 뜯어보았을 때 하나같이 과두제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걸 잘 통제하느냐 못하느냐는 제도와 근본적인 민도가 좌우하구요.

    그러니 국가가 거대해지는 와중에서도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제도적인 조치가 필수적이었는데, 아무래도 레닌이 집권한 10년남짓의 짧은 기간동안에는 이걸 정비하기가 극도로 어려웠고, 혁명을 빠르게 진행시키기 위해 국가에 너무 역량이 집중된 게 최악의 상황을 불러온 게 아닌가싶기도 하네요. 레닌 시절에는 이런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도자의 역량이 우수했으나, 시민의 감시 체제 구축과 국가의 구조적으로는 전혀 아니었기에 스탈린이 나타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 아, 깜빡한게 있는데

    프랑스의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제정수립이든, 러시아의 스탈린의 관료 부르주아 반혁명이든

    양쪽 다 적어도 시민의 민도 운운하는건 맞지 않습니다

    양쪽 시민들이 독재자를 저지하지 않았거나 혹은 못했으니 민도가 낮은거고 그래서 독재자가 설칠수 있게됫다 이거죠?  

    그런데 양쪽 모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혁명에 나서서 수년간을 내외의 엄청난 적과 싸웠고 경제봉쇄로 인한 빈곤으로 몹시 지쳐있어서 나중엔 그걸 막을 힘이 전혀 없어서 그리된거고

    특히 러시아의 경우 추가댓글로 설명을 다 했고..

    이런데도 민도 운운하는건 애당초 틀린겁니다. 특히 봉건시대의 부르주아 시민혁명이든 근현대시대의 사회주의 혁명이든 제대로된 대중적인 사회혁명 한번 일으켜본적도 없는 나라가 한국인만큼, 

    적어도 한국이 아닌, 제대로 된 사회혁명이 (사회혁명은 사회랑 경제관계가 근본적으로 한번에 바뀌는 혁명으로 한국에서 그리 자랑하는 518 민주화운동 같은 한낱 하찮은 정치혁명 따위랑은 비교도 못할 정도로 근본적인 혁명을 의미.) 일어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라야만이 그 때 그 나라 시민들의 민도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겁니다. 아시겠습니까?
  • 교육수준은 모르겠으나 (물론 동시대 조선의 교육수준이 훨씬 더 형편없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그때의 러시아 교육수준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지 심히 의문스럽긴 합니다)

    러시아인들의 상당수가 짜르를 지지했다라...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이전이라면 하다못해 1차세계대전 직전이라면 님말이 맞겠으나 1차대전 이후로도 상당수가 짜르 지지자였다면 어떻게 2월혁명으로 짜르가 타도된것도 모자라 10월 공산주의 혁명까지 대중적인 성공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시에는 극히 적었던 사람들이 반짜르파 시민들이 혁명 당일에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아났을리는 없고... 참 신기하네요.

    게다가 백번 양보해서 모든걸 다 떠나서 한국은,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봉건시대의 왕비인 민비를 국모라면서 국민 대부분이 숭상하고 조선 봉건야만시대를 긍정하며 봉건적 잔재인 유교를 무려 국교로 섬기고 있고 심지어 대한제국 왕실까지 복귀시켜야한다는 말도 가끔 나오며 

    당시 러시아랑 동시대인 일제시대의 조선에서 터진 3.1 운동의 시발점이 봉건군주인 고종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애도였단걸 고려하면,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당시 러시아 시민들 어느정도가 짜르를 지지했는가를 놓고 민도가 높았다 낮았다 민주주의 의식이 높았다 낮았다 어쩌고하며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나 심히 의문스럽습니다.


  • 참고로 적백내전 이야기 나올까봐 미리 언급하겠는데, 당시의 백군의 상당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 공화파, 멘셰비키 및 사회혁명당 우익 등의 온건 사회주의자 등등이 혼합으로 어우러진 군대였고 왕당파는 일부였기 때문에 

    적백내전때의 백군의 존재가 1905년의 피의 일요일 혹은 1차대전 이후에도 러시아인들 상당수가 친짜르파였단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 다른 부분들은 여러 의문이 남기는 한데.. 최종적으로는 혁명의 성과가 정착하기는 하였으므로 혁명의 시작자체와 완전한 민도 개선까지는 시간갭이 있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 외에는...
    어쨌건 조선놈보다는 낫다라는 건 절대적으로 True입니다. 왕 한번 목베지 못한 조선인보다는 분명 백배천배정도 진보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요.
  • 혁명 특히 사회혁명 자체가 물질적 토대랑 더불어 민도의 우수성이 안갖춰지면 성공자체가 불가능하므로 <혁명 이후에야 민도가 높아졌다>  라는 말 자체가 심각한 어폐입니다

    그리고 헬조선보다는 천배나 나은게 맞으시 님은 프랑스, 러시아의 당시 민도 자체가 낮다느니 떨어진다느니 민주주의 지식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말 자체를 애초부터 꺼내지도 생각하지도 말았어야 했습니다. 
  • 1. 민도에 대한 언급은 헬조선과 상대비교해서 나온 게 아니며, 해당 혁명의 취지(프랑스 혁명, 사회주의 혁명)의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말하는 것이었구요. 세계에서 제일 미개한 민족과 비교하는 건 실례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랑스 혁명이면 몰라도 사회주의 혁명과 사상은 현대 21세기의 전반적인 사회 발전도보다도 더 앞서 있어, 당시의 러시아인들이 그 목표의 완전한 달성에는 실패하였던 게 사실 크게 이상하거나 놀랍다고 보고 있지 않구요.

     
    프랑스 혁명은 결국 시일이 좀 걸렸을 뿐, 최종적으로는 제정이 완전히 종결되고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난 걸 보면, 시대가 흘러 진짜 궤도에 올라 성공했다고 보아야 하지요. 다만 대혁명 시기 그 자체에서는 조금 부족했던 것 뿐.
     
     
    2. 물질적 토대.. 에 대해 말하자면...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배제한 완전한 사회주의에는 현대 21세기의 물질적인 토대도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분야들에 있어 소수에게 그 권한이 집중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인간이 필수적으로 개입해야만 하는 사회 운영의 핵심적인 파트들도 있는데다가 절대적인 부의 량도 그렇게 충분하지많은 않아서요(다른 의미로는 그 생산력의 상당 부분이 자본주의적인 사상의 영향에 의해 지탱 되고 있어서요)
     
    현대에 가능한 타협점은 소위 말하는 복지국가와 약간의 기본 소득제정도가... 현대의 물질적인 토대 위의 한계치라고 보구요. 이것조차 일부 선진 국가군에서나 가능합니다.
  • 헬조선 노예
    17.04.29
    리아트리스님 헬포인트 5 획득하셨습니다. 헬조선에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국가를 변화시키는 게 가능할 정도로 일정 수준까지는 민도가 진보되어있던 건 사실이기는 합니다.
    여기에 구체제가 기본적인 생존욕구조차 채워주지 못하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생존 위협 때문에라도 일단 무너질 수 있고, 일단 무너진 이후에 불완전하지만 혁명 사상이 전파되며 개선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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