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년생이다.
나름 이 사이트에서 몇몇 글을 읽고 생각 정리에 도움을 받았고 해서
옛날 친구를 떠올려 본다.
1.내 동창
고교시절에 알게 되었는데
집이 좀 부자였다..당시에는 소니 워크맨을 갖고 있으면 부자였다. 보통 사람들은 '아이와'나 '삼성', '엘지'의짝퉁 워크맨을 갖고 다녔다..
암튼 그랬는데
영어수업시간이었다. 선생 이름도 기억난다. 강석*이라고..
공부잘하는 애들은 아주 싫어했다. 이 선생은 애들 가르치는 데 의욕이 거의 없었고 45분 수업중 쓸데없는 소리 30분에 15분 수업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암튼 이 선생이 시간을 떼우려고 예를 들어서 7일이면 7번 일어나 교과서 읽어..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친구가 걸렸다. 그래서 영어책을 읽는데..
아니 발음을 완전히 꽈서 미국인처럼(물론 미국인이 아니므로 참 어색하게 들림) 읽는 것이 아닌다. 애들은 엄청 크게 웃었고 그 친구는 그래도 끝까지 발음을 꽈서 읽었다...
그때 애들은 누구나 다 발음이 안 좋았는데 이 친구는 끝까지 미국인처럼 읽으려고 했으니..
그리고 만약 얘가 공부를 잘 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에서 성적이 중간 정도인 앤데 그러니 더욱 우수웠던 것이다.
아무튼 나와는 거의 알고지내는 애도 아닌데..재수학원에서 다시 그 친구를 만났다. 학원에서 그 친구는 좀 예쁘장한 여자애와 연애를 하면서 지냈고 나는 공부에 집중(집에서 재수를 반대하는데 내가 억지로 한 거라서)했다.
이후 우리는 각자 대학에 들어갔는데..내가 우연히 모 대학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대학생 연극이 있다길래 보러갔는데 마침 그 친구가 또 있는 것이 아닌가? 배우는 아니고 조명이었는데..이런 식으로 우리 사이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 연결이 되었다..알고보니 집도 근처였다.
한 번은 이 친구 집에 갔는데..
당시에는 비디오비전이라고 해서 티브이와 비디오를 일체화시켜놓은 장비가 있었다. (사실상 가정 필수품) 그런데 이 티브이 밑에 파란 청테이프로 가려놨더라. 알고보니 이 친구가 비디오를 보면서 한글자막을 보지 않겠다고 그런 청테이프를 붙여놓은 거였다.(요즘처럼 캡션 지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암튼 그 친구는 나름 금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급이었는데..
일단 군대를 돈 주고뺐다.
(당시만 해도 인력자원이 넘치는 시기여서..몇 백 정도 집어주면 군대 빼기는 쉽지 않았다)
솔직히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이 친구의 스타일로 볼 때 군생활은 어려울 거라 짐작되었다..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90년대 중반쯤에 뉴질랜드 어학연수는..요즘 어학연수와는 매우 다르다. 정말 상류층 아니면 어려웠다. 워킹 홀리데이가 있는 시절도 아니고..
암튼 그 친구가 나온 대학은 요즘으로 따지면 지잡대(지방거점 국립대도 아닌 지방 사립. 흔히 돈지랄할다는데)였고 거기에서 회계학과 졸업성적이 1.7이었는데..
(아마 국내기업에서는 모조리 탈락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해외취업에 성공했다..
나중에 들으니 한국에는 조금의 미련도 없고 적성도 안 맞는다 생각해서 고교때부터 한국탈출을 꿈꾸고 공부했다 한다..
처음에는 유럽의 기업에서 취업을 하고 몇 개의 다국적기업을 다녔으며..한 때는 서울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30대중반쯤 이 때 나와 몇 번 만남)
지금은 말레이지아 여자와 결혼해서 싱가포르에 살고 있으며..자기 부모님도 모두 싱가포르에 초청해서 살고 있다. 애들도 셋인가 되는데..뭐 잘 살고 있다.
90년대 한국에서는 대체로 상위 5%안에는 드는 집안이었고 한국사회에 대한 어떤 혐오감을 갖고 있으며 무조건 한국을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탈출한 케이스임.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데 해외출장중일 때가 많음..
2.친구 동생 친구
20대때에 나는 친구집에 가서 신세를 많이 졌는데 나는 부모님이 내 20대 초반에 모두 돌아가셔서 형수님 형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불편하다보니 친구집에서 신세를 많이 졌었다.
뭐 하도 가다보니 친구가 있건없건 친구방에 가서 있다가 친구가 오면 맥주 한 잔하고 자는..그런 일도 다반사였고 그러다보니 그 녀석의 동생 77년생과도 잘 알고 밥도 먹고 했다.(그놈은 지금 선생하고 있음)
그런 와중에 알게 된 녀석인데
일단 동생은 실업계고교를 나왔다..지금도 마찬가지인거 같지만 당시(90년대 후반)에 실업계생이면 공부와는 무관하고 취업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그 학교 나온 애들이 자주 그 집에 몰려들고 했음.
그 때 알게 된 애인데..
얘는 집안이 가난해서 해외취업은 하고 싶은데 학원에 다니거나 할 형편은 안되었다.
당시에는 오성식생활영어라는 것이 인기였는데 카세트테잎과 교재를 묶어서 사면 대략 50만원대였다..
하지만 당시 종이신문에 광고가 나왔는데 테잎을 무단복제 교재 무단복사해서 대략 10만원선이면 살수 있었다..
얘는 이 테잎으로 공부함..하도 많이 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움...외국어라는 것은 실제로 좋은 교재 한 두권을 외우는 게 최선인 거 같더라...
고교졸업후 롯데리아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당시 영국에서 무슨 호텔에서 직원채용하는 게 있었는데..
(당시에 인터넷 초기라서 거기에서 광고를 보았던 듯)
직접 원서를 접수하고(내 듣기로는 원서는 인터넷으로 접수할 수 없어서 직접 영국에 우편으로 보냄)
그러다가 정말 얼마 있다가 전화가 왔다!
당시만 해도 국제전화는 엄청 비싼 때였는데 그 비싼 국제전화로 30분 전화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 30분간 다 외어버린 오성식생활영어 표현을 얼마나 써먹었을지..
암튼 전화면접 합격하고 며칠 후에 비행기 티켓이 한국으로 왔다. 합격은 아니고 이제는 직접 대면면접하는 거..
왕복티켓이 왔는데 합격하면 그냥 영국에서 일하면 되는 것이었고 떨어지면 그 티켓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결과는? 합격?
이후 영국에서 몇 년 호텔업에 종사하다가..다시 한국으로 들어왔고..다시 외국으로 나갔다.
이 친구는 전형적인 흙수저였는데도 해외취업에 성공하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외국으로 나간 케이스..
(한국에서 실업계고교 나오면..정말 잘되도 1류로 인정받기 힘들므로 결국 해외생활을 선택)
이런 두 케이스가 가장 기억에 남음.
공통점은 영어에 올인..
또 하나..
두 케이스 모두 90년대 중후반의 이야기임..당시는 국제경제가 정말 호황이어서..영어만 잘 한다면 취업하기가 아주 쉬웠음.. 그리고 당시에 한국에서 해외취업이라는 거는 극히 드문 상황이어서(심지어 90년대에는 토익이라는 거 자체가 사회에 잘 알려지지도 않음. 토익보다는 소수의 해외유학생을 위한 토플이 더 보편적으로 알려짐) 저런 거는 정말 극히 소수의 용기있는 자만이 쟁취한 상황..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탈조선을 꿈꾸는 분들에게 약간의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