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 글을 써주신 분의 말을 빌리고 내 생각을 더해?'듣기' 즉 청해의 효율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시간이 없다면 맨 밑에 2문단이 내 주장이니 그것만 읽어라 얻는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듣기는 (일상적 회화에 있어)우선 자발적인 사고를 요하지 않으며 고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상황을 구축하지 않은상태에서 학습할 수 있다.
수동적인 상태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아주 말도 안되는 노력이 없으면 결실이 없다는 공식을 송두리째 엎어버리는 사기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그냥 많이 듣기만 해도 정황을 파악할 능력이 되면 해당소리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알수 있게 된다. 동일한 영상을 보는 반복 학습의 문제점을 여기서 알 수있다. 정황을 이상하게 파악하면 머리에 이상한 의미가 들어박히게 된다. 그 확률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상황을 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지 않기에 읽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받아들일 수 있다. (실험실의 예외적인 학자들을 제외하고서는 평생 들은 말과 평생 읽은 말의 양, 어느게 더 많은지는 불보듯 뻔할 거다.) 이게 나는 듣기를 가장 먼저 해야하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본다. 다양한 상황을 접해야하는게 타언어 능력을 얻음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인데 듣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도 인간은 언어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다른 동물들의 의사소통과 비교해 봤을 때 상당히 고도화된 상황을 표현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문자가 발명된지 만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과 문맹이 존재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된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인간은 아직 문자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회화만이 우리의 본능에 있고 문자는 타고나는 능력이 아닌것이다. 즉 문자는 인간이 배우기에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새가 나는법을 타고나며 거미가 거미집을 짓는법을 타고나듯이 인간은 회화능력을 타고나지만 문자는 후천적인 훈련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자는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결코 회화이전에 문자가 올 수는 없다.
우리는 분명 듣기를 먼저해야 한다. 듣기이후 회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런 본능적 능력을 이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게 읽고 쓰는 단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모국어로써 이런 이성적인 사고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회화이외의 것을 배워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 나라에서 문자로써 제작되는 여러 정보들을 습득한다는 이득을 제쳐두더라도 나는 배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루하더라도 조금만 참아주길 바란다. 여기 내용을 읽지 않으면 아래 내용을 봐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이런 얘기들은 내가 주장하는 바를 피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이기에 설명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간의 문명의 발전과정을 살펴보자면 본능적인 발달이후에 인간은 축적이라는 것을 몰랐다. 자신의 생애에 있어 자손만을 남기고 그 자손을 위해 남겨주는 것은 물질로서 존재하지 못했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대간의 가르침이나 유아기때의 보호로써 이루어졌다. 즉 저장할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저장되었던 것은 유전정보였고 거기엔 본능만이 있었다.?기록의 발견으로?인간은 자신의 생애의 지식을 저장할 수 있었다. 어떤 도구가 좋았으며 어떤 풀이 독이있는지를 이제는 한 세대가?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유전정보로 남기는게 아니라 후천적인 가르침으로 유전정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종으로써 아주 독창적인 생존방식을 습득했던 것이다.?
초창기 때의 문자는 문자라기 보다 기록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상형문자는 그림의 상징화로써 존재했지만 이를 문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문자라는 본질이 결국 의미의 상징화이기 때문이다. 모 영화에서 숟가락은 왜 숟가락인지를 물어보는 대사가 있다. 숟가락을 젓가락이라고 불러도 되고 젓가락을 숟가락이라고 불러도 사실상 아무 문제도 없다. 이미 만들어진 체제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문자를 본능적으로 받으들이려면 결국 회화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게 가장 좋다. 앞에 문자는 본능이 아니라는 말을 줄줄 늘어놨지만 회화를 떼어놓은 상태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맨처음 문자는 결코 회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과 회화가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역으로 생각해본다면 문자를 회화로 변환시키는 능력만 있다면 문자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자 이게 내가 생각하는 문자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문자 역시 회화의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상황을 접하는게 회화실력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문자는 그 상황의 가지수를?몇십배 대폭 늘려줄 수 있는 엄청난 수단이다. 결국 문자는 회화의 효율성을 높여주는데 기여를 하기에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것이다.
이나라에서 쓰레기 교육을 가르친다고 그 중에서 좋은게 없는게 아니다. 가장 좋은 구라는 언제나 99퍼센트의 진실에 그것을 살짝 왜곡시키는 개소리가 중간에 섞여있는 말이다. 참고로 이나라는 좋은 구라를 치고 있지 않으니까 저 비율을 기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