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軍事亦祭天,殺牛觀蹄以占吉凶,蹄解者為凶,合者為吉。有敵,諸加自戰,下戶俱擔糧飲食之。 삼국지 부여전
갑골 문화
以殷正月祭天,國中大會,連日飲食歌舞,名曰迎鼓,於是時斷刑獄,解囚徒。 삼국지 부여전
은나라의 역법을 사용
其人形似夫餘,言語不與夫餘句麗同。 삼국지 읍루전
挹婁,古肅愼之國也,在夫餘東北千餘里,東濱大海,南與北沃沮接,不知其北所極,土地多山險. 人形似夫餘,而言語各異。 후한서 읍루전
勿吉國在高句麗北,舊肅愼國也 … 言語獨異。 위서 물길전
勿吉國在高句麗北,一曰靺鞨 … 言語獨異。 북사 물길전
고구려 및 부여는 읍루, 물길 등 퉁구스계 민족과 언어가 달랐다.
作城柵皆員,有似牢獄。 삼국지 부여전
國中有古穢城本穢貊之城也。 진서 부여전
有麻布蠶桑作緜暁候星宿豫知年歳豐約不以珠玉為寶。 삼국지 예전
命有司每年自春三月至秋七月出官穀以百姓家口多少賑貸有差至冬十月還納以為恒式。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부여, 동예, 고구려는 성을 짓거나 농경을 하는 등 전형적인 농업 경제였다.
頗有箕子之遺風 … 其俗多淫祀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구당서
於所居之左立大屋、祭鬼神、又祠零星、社稷。 양서
고구려는 기자, 후직(주나라 시조)에 제사 지냈다.
古者禹治天下,西為西河漁竇,以泄渠、孫、皇之水。北為防、原、泒,注後之邸、嘑池之竇,灑為底柱,鑿為龍門,以利燕代胡貉與西河之民。 묵자
옛날 우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서쪽으로는 서하(西河)와 흑수(黑水)에 수문을 만들어 섬서성의 현포(弦蒲澤)의 물을 빼고 북쪽으로는 원수(原水)와 고수(泒水)를 막아 소여기(昭餘祁;산서성 태원)와 호타하(嘑池;산서성 흔주) 호수를 흘러들게 했으니 저주산을 적시고 용문산(하남성 낙양)까지 물길을 뚫어 연나라, 대나라, 호족, 맥족과 서하의 백성들을 이롭게 했다.
溥彼韓城,燕師所完,以先祖受命,因時百蠻。
王錫韓侯,其追其貊,奄受北國,因以其伯。 시경 한혁
넓은 한성(韓城;하북성 고안현)을 연나라 백성이 쌓다. 조상의 명을 받들어 수많은 오랑캐의 주인이 되다.
주나라 왕이 한후(韓侯)에게 추족, 맥족을 하사하여 북쪽을 맡아 제후가 되다.
선진시대 이전의 문헌에 의하면 예맥은 중국 섬서성, 산서성, 하북성 일대에 살았던 것 같고, 기자의 후손이라는 준왕이 위만에 쫓겨날 때 한반도 남부에서 한왕을 자칭한 것은 한성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실증적 역사에 대해 토론하려고 역사서를 보고 있는데 너무 분량이 많아서 새로 발견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추가하기로 하고
일단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가져왔는데 john이 방해해서 제대로 토론을 못 했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다시 토론해 보려고 하지만
아무튼 이것을 보면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되는지?
그냥 한국인은 고대에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가 운 좋게 독립해서 근현대에 와서 민족주의의 발흥에 따라 그러한 사실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해서 아무 관계도 없는 북방 유목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여 자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