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온달장군님과 평강공주마마
고구려인들은 온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려고 하였는데 시신을 담은 관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평강공주가 와서는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며
"생과 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이제 편안히 가시옵소서."
라고 애원하자 그제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얼마나 감동적인 사랑이냐...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
2.논개
주변의 사람들이 몽땅 일본도에 절단되어, 어육이 되어 버렸음.
(조선측 기록에 의하면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죽은 자가 6만여, 일본측에서는 이것이 과장된 기록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일본측 자신의 사료에서도 일본군이 취한 수급만 2만이 넘고, 그외에 엄청난 수의 포로를 포획했으며 익사한 자의 수도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하고 있다.
전투 후 일본군은 진주성을 때려부셔 평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임란 후 진주 일대의 인구가 너무 급감해 행정구역이 개편되기까지 했다.)
약하고 여린 여자이지만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지 않았겠니?
(논개는 진주 관기였다. 계사년(1593)에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를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마침내 성은 함락되고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
이때 논개는 분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서 있었으니 아래는 만길 낭떠러지였다.
사람의 혼이라도 삼킬 듯 파도가 넘실거렸다. 왜병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침을 삼켰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왜장 하나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논개는 요염한 웃음을 흘리면서 왜장을 맞았다.
왜장의 손이 그녀의 연약한 몸을 잡자 논개는 왜장을 힘껏 끌어안는가 싶더니, 마침내 몸을 만길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다. 두 사람은 모두 익사했다.
유몽인-어우야담-)
논개는 우리의 누나이고 여동생이야~~
우리의 누나와 여동생은 60-70년대 구로공단에도 대구섬유공단 등에도 있었고, 일본 정신대에도 청량리588에도, 파주 용주골에도....다 거기에 있었어.
온몸을 던져서 모든 것을 걸고서--- 가족들...병든 부모, 굶주린 동생들---을 구하려 희생하지 않았니??
이런 것을 날조다 국뽕이다고 하는 새끼들은....
깨시민을 가장한 쓰레귀나 정신질환자야~~~
국뽕보다도 훨 심각하고 나쁜 놈들이야.
국뽕은 나름대로 대부분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야.
그 성실함과 정직함이 "쥬인님들"에게 세뇌당하고 이용당했을 뿐이야.
니들 깨시민을 가장한 쓰레귀,정신질환자는 일일히 닉네임을 언급하지 않겠다.
알아서 반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