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John2015.09.13 18:57
ㅋㅋㅋ 삼국지위지동이전의 한편을 보면, 거기 주해에 삼한은 후한말까지도 일부 부족장들이 낙랑에 와서 조공하고 중국관직을 얻어가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난립해있어서 그들이 삼한의 대표세력이었다고 보기는 힘들고, 훗날에 이르러서야 마한에는 백제가 진한에는 신라가 등장해서, 고구려와 비등한 세력을 이루었다고 나옴.

그 것으로 볼 때 기자조선마저도 기본적으로 고려조의 지배계급인 동북3성및 연해주계 중국인들의 모화사상에 의해서 창작된 것이고, 특히 청주한씨등은 기자와 전혀 연관이 없다. 대부분의 기자낭설의 교집합인 청주한씨집안의 중시조는 고려개국백상공신 한란으로써 이로 봤을 때, 단군은 물론이요 기자까지도 실은 동북3성계 짱골라들이 이민족지배체제를 수립한 후에 모화사상에 입각하여 창작한 것이된다.


그렇다면, 그 씹새끼들은 어째서 그런 창작을 했느냐를 통해서 신라, 백제사회를 검증해봐야하는데, 이 때 참고할 것은 일본이 된다.

16세기에 이르러서 실력주의사회로 전환하기 전까지의 일본은 몇몇 고대성씨로부터 이어지는 정통성을 부여받은 귀족들이 representative(대리, 대표주의) 한 형식적인 중앙정부와 각 국의 지도층을 구성하고, 실권은 성주들과 촌주들이 가지는 형태였다.
이 때, 지도층을 구성하는 귀족들은 혈통계승성이 매우 중요시 되어서, 지금도 그 잔재는 천황일가에 남아있는데, 그러한 자들만 대표구실을 하는 체제였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의 삼한계성씨를 분석해보면, 그러한 일본의 블루블러드집안과 연계되는 부분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백제왕가와 천왕가의 결합이지.
그리고, 고려지배계급은 그렇게 최소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삼한계지배계급과 대등한 역사성을 피지배계급에게 납득시키려 드는 한편, 일족성씨가 아닌 직계성씨 사용의 가부장제를 납득시키려고 각종 기원신화를 창조밑 날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 여기서, 현일본의 천황이라는 칭호는 다이호율령의 율령반포에서 나왔음에 주목하자. 그런데, 기록과 사료가 희박한 백제를 빼고, 신라를 보면 신라에서 율령을 반포한 것은 법흥왕이다.
그런데, 법흥왕은 지증왕의 아들이고, 소지왕의 사위가 된다. 즉 소지왕의 딸과 지증왕의 아들이 이후에 신라의 왕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지왕과 지증왕때까지는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쓰다가 법흥왕때부터는 왕이라는 칭호를 쓰게 되고, 또한 율령도 반포하게 된다.

그런데, 법흥왕의 장인인 소지왕때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신라와 백제의 결혼동맹이라는 것이 맺어진다. 이 때, 백제는 이미 율령을 반포한지 오래이고, 따라서 백제는 이미 일본으로 치면 천황체제에 들어섰음을 감안하자.
이에 따르면, 백제왕가가 가장 먼저 율령반포로써 그들집안을 천황가로 격상시켰고, 이후 동성왕때에 신라의 소지마립간계의 여자를 백제왕가가 받아들이는 식으로 신라왕통또한 왕가로써 격상되어서, 소지마립간은 아들이 없어서 후계자인 사위인 법흥왕이 율령반포와 함께 스스로 왕통임을 선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때에 후일 규정되기로는 경주 김씨가 되지만, 실은 소비-지증-법흥계의 방계들도 어느 정도 귀족계급의 격상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이들이 후일 규정되기로는 알지계 경주김씨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주김씨라는 것은 고려조질서에 따른 명칭이고, 알지라는 명칭은 내가 보기에는 일본의 블루블러드인 오우치와 매우 유사하다.

즉 일본식으로 보자면, 백제천황가가 신라왕가를 오우치씨족의 블루블러드로 격상시켜줬다라는 것이 타당한거 같다.
그런데, 오우치(=알지)씨족은 고려조에 들어서 중국식 직계가문개념을 받아들여서 씨족개념에서 가부장적 직계승계개념으로 열화한거 같다. 이 때, 오우치 씨족의 권위라는 것이 신라말에도 여전했기 때문에, 궁예따위조차 자신도 오우치계의 사생아라고 사칭했어야 되어던 것 같고, 그러한 환경에서 고려조의 신지배계급들이 자신들의 혈통에도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족보를 만들고, 개성신화를 창작해서 집어넣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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