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GG2015.09.17 07:57
그냥 인문학 쪽 고전뿐 아니라 진화심리학이나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게임이론 등 자연과학 쪽 책들을 보시면 답이 좀 나올 듯합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추상력에 의존한 경우가 많아서 당시에는 맞지만 지금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에는 안 맞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1. 자유와 평등은 자연법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불변하는 진리인가?
-> 자유와 평등이 자연법적으로 주어졌다는 주장은 그냥 근대 계몽사상의 산물일 뿐입니다. 물론 이 계몽사상이 결국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혁명, 떠 나가면 러시아 혁명의 사상적 근거가 됐죠. 그 이유 설명하자면 한참 걸리는데, 쉽게 말하면 인간은 원래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근대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에는 정교한 법칙이 있다는 것(뉴턴의 만유인력, 케플러 등의 천문학 연구)을 발견했고, 그렇다면 자연에 이런 법칙이 있다면, 인간사회에도 무엇인가 불변의 법칙이 있을 것이라고 연역추리했고, 그 결과 나온 겁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아주 고대 원시공산사회(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집단 규모도 아주 작았고 생산력 수준이 낮아서 구성원 사이에 빈부격차가 없어 거의 평등했다고 봅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최소한의 물품을 생산해야 하고, 이 생산량이 구성원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난 다음에야 더 가져가는 놈, 덜 가져가는 놈의 구분이 생기는 거죠. 생산력이 발달해야 바로 이 빈부격차가 생기는 겁니다. 생산력이 발달하고 잉여생산물이 축적되면서 계급이 발생했고, 이 계급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 가운데 하나가 종교였지요. 지상의 지배자가 신의 뜻에 따라 지배한다고 하면 그들의 계급 지배, 빈부격차, 하층민에 대한 노예적 지배가 합리화되거든요.

제 생각에는 자유와 평등은 자연법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게 아닙니다. 사회 구조와 특히 물질 생산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자유와 평등은 확보할 수 없습니다. 요즘 지옥불 반도 용어로 바뀌면 비정규직이 이렇게 넘쳐나고, 그나마 노동개악으로 해고 쉽게 하는데 어떻게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나요?

2. 인간은 (필멸자)인데 어째서 불멸인 하늘과 우주를 추구 하는가? 그러면서 왜 하늘과 우주의 법칙인 죽음을 내리면 그에 저항하는가( 백신, 위생) 모순이 아닌가?
->이것은 어려운 문제고 학자들마다 워낙 견해가 다릅니다. 종교인들이 보면 하느님이 있으니까 하늘과 우주 추구는 당연한 거라고 할 것이고, 샤머니즘적으로 봐도 신령님의 존재는 당연합니다. 한데 진화심리학이나 신경과학 쪽으로 보면(이것도 내부에서 의견이 다르지만)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족 자체가 두뇌에 신피질이 생기면서 추상적 상상 능력을 갖게 됐고, 그 결과 하늘이나 우주 추구, 신에 대한 추구등의 감정 또는 생각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종교 유전자>라는 책(정밀한 책은 아니지만 그냥 대중적으로 볼 만 합니다.)을 한번 읽어보세요. 참고로 프랑스 남부나 스페인 북부에 알타미라, 라스코, 쇼베 등 동굴 벽화가 아주 많은데, 거기에 그림을 그린 사람을 샤먼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 하늘과 우주의 법칙인 죽음을 내리면 왜 저항하느냐고요? 그건 진화론으로 간단히 설명됩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도록 프로그램 돼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 즉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 아마도 미생물까지도 갖고 있을 겁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죠? 강아지가 호랑이 안 무서워하면 그냥 잡아 먹히는 거죠. 그러면 그 강아지의 유전자는 후대에 못 남기게 되는 거죠. 더 쇼킹한 것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독수리를 본 적이 없는 병아리가 독수리가 하늘에 뜨면 짱 박혀 숨는다 게 실험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아예 병아리 유전자 자체에 '독수리 같은 놈이 하늘에 뜨면 무조건 줄행랑 처라'라고 배선(wired)돼 있는 거죠,

3. 인간의 자살 또한 자연법에 의거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아닌가?
->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연법이라는 논리 자체가 17~18세기 서유럽 근대의 산물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법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사회계약설을 봅시다. 인간 집단의 구성원들끼리 이리 저리 하자고 계약해서 만들어진 게 사회라는 건데, 여러분 가운데 태어나서 이런 '사회 계약서' 본 적 있는 사람 있어요? 사회게약서에 사인 한 사람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자살은 보장돼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의 유명한 진보주의자 스콧 니어링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존엄하게 삶을 마쳤습니다.한데 자살을 허용하면, 문제는 자살로 가장한 타살이 엄청 많을 거라는 거지요.

4. 내가 1살떄의 세포와 죽기 직전의 세포는 완벽하게 다를진데, 그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는 증거는 있는가?
-> 요건 날카롭네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파이토스가 한 말이었던가? 만물을 유전한다라고....당신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합니다. 인간의 세포는 평생 가는 것도 있지만, 매일 바뀌는 것도 있습니다. 아마 인간의 피부는 일부가 거의 매일 바뀔 거에요.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해도 매일 각종 이물질이 쌓이는데, 그게 대부분 인간의 표피 세포입니다. 또한 인간 내부의 장기 등의 세포도 주기적으로 바뀝니다. 또 1살 때 없던 세포가 나중에 생기기도 하고, 1살 때 있던 세포가 성인이 돼 감에 따라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1살 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모든 물질은 변화의 정도가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설명하면 오차라는 거지요. 어느 한정된 범위 안의 변화는 그 물체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항상성'이라고 하겠죠. 즉 1살 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합니다. 화학 관련 대중 교양서 가운데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알드 호프만이 쓴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라는 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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