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요즘 개백수모드라서 존니 옛날 동영상인 지로상의 스시 그거를 쳐 보고 있는데, 참고로 본인도 군대다닐 적에 취사병정도 해 본 놈임.
그런데, 실제로 요리의 세계에서는 분자에 관한 야그를 조금은 한단 말야. 물론, 그래봤자 그 기술은 절대적으로 경험에 의해서 습득되는 전통적인 요소지만말야.
그런데,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 저러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분명히 양자적이라거나 분자적으로 어떠한 식으로든 잘 정렬된 리드미컬하게 짜여진 에너지의 흐름일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것의 묘는 그 흐름을 사람의 손이라고 하는 양자적인 간섭으로써 절묘하게 엮는 것이 그 도.
그렇다면 여기서, 역시나 우리가 인지하는 그 모든 것은 메트릭스에서나 볼 법한 에너지의 흐름에 불과하다는 것인지 그런 생각이 나온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 것이 모두 허인가? 그런데, 허가 존재하려면 실이 있어야 되요.
결국 진리란 것도 도그마의 단면이니까. 결국 모순은 그 흐름자체인가? 그렇다면 그 흐름은 뭐지? 이를테면 영적 존재인 그 무언가를 틀에 가두고 부려먹기 위한 영혼의 도가니 같은 거야? 그런 생각말야.
그러니까 이런거야. 와우로 치자면, 영혼의 도가니라고 존나 밥통만한 통에 영혼을 존나 쳐 집어넣어서 뭐 한 수백억의 우주영혼을 빨아들여서 가둔 가두리통이 하나 있는데, 그 통의 밥통의 스탠으로 된 내장재의 금속고유파형에서 나오는 스펙트럼이 우리가 겨우 인지하는 우주인거야.
우리는 실제로는 존니 씨발 아주 좃된 영혼의 도가니에 빨린 드레나이같은 것이고, 우리의 실체는 영혼없는 육신이 되어서 아제로스계에서 몬스터짓이나 하고 있고, 그리가 갖힌 그 밥통내장재의 고유성분에 따라서 그 머티리얼들이 뿜어내는 양자에너지파장들이 서로 간섭하고 섭동하고, 또 벽에 튕겨서 다시 다른 벽에 튕길 때까지 피드백되고, 투영되고, 뭐 슬릿에 그림자가 투영되듯이 그렇게 되는거지.
뭐 우리가 우주라고 인지하는 것은 그 밥통의 스탠판을 보면 산화도에 따라서 조금 하얀 부분도 있고, 상대적으로 어두운 부분도 있잖아. 그 정도를 은하수나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이다. 요즘 말로는 성운이라고해서 우주의 클라우드지.
물론 피차 그 속에 갖힌 어떤 영혼새끼가 자기가 구원자라고 패드립 쎄리는 것은 당연히 씹구라이고, 뭐 그런 것인덧.
존니 웃긴 것이 그런 것인데, 존니 그럼 아주 좃댄 개새끼들이 이 우주의 영이고, 그 밥통을 밥통 밖의 전사가 돌진으로 박살내던가 법사가 화염구로 아작내던가 아니면 퀘스트 완료하고 퀘템 누지르면, 거기서 승천하는 영혼들이 존니 빠져나오고, 빈 밥통하나 띡 남듯이 그리 되는게 진짜 우주의 진리라면 확실히 속세는 헬이 맞는듯.
그런데, 그렇게 풀린 새끼들은 어떻게 될까? 또 그 새끼들 그 밖의 우주에서 지들이 본디 가졌던 심상에 따라서 아주 악한 새끼들은 불타는 군단의 심장부인 그 저주받은 뒤틀린 황천과 마르둠으로 쳐 기어들어가서는 불타는 군단의 악령이 되고, 반면 괜춘한 새끼들은 또 다른 곳에서 안식처를 얻으며, 아제로스나 그 외 불타는 군단에게 정복당하지 않은 곳에서 어떤 모습을 얻어서 다시 태어나서는 또다른 세계에서 도그마의 심상인 선과 악의 싸움을 계속하는 그런 존재인거야.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지성을 가진 그 모든 것들은 존재의 의미를 지니며, 존재는 불멸인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 존재하는 것의 심상만이 중요하고, 그 것은 그들의 행위의 반영이다.
결국 행하는 바와 같이 그 것들은 모두 그들이 속할 곳으로 떨어져서 그 곳의 일부가 되어서 또 다른 투쟁을 계속한다.
그 것이 천국과 지옥? 이 거는 조금 과장된 표현인 것 같고, 기냥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스크립트가 있는데, 그 것의 심상이 하나는 오토봇이고 하나는 사이버트론이에요. 그래서, 그 것들이 어떤 육신으로 다운로드되면 그 것들은 눈을 뜨는 순간 이미 선악은 정해져 있는 거야. 그게 바로 결정론이라는 거에요.
즉, 행위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에 간다. 그런 말이 아니라, 그런 말대로라면 존니 악한 새끼도 위선적으로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냐 그런게 아니지.
되려 행위는 니 본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네 본질이라는 거에요. 니 본질이 또한 발휘되면 거기서는 행위의 컨시컨스가 나오겠지.
본질은 성악이냐 성선이냐 그렇게 보는 것이 또한 위선적인 구시대인들의 세계관이자 그들의 사회구조에서 그렇고 그런 부분의 기저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그들의 술책이자 물타기였겠지.
그런데, 본성은 선하다는 말은 이런 말은 되는거 같아요. 뭔 말이냐면 프로이트적인 에고와 이드를 말할 때에 이드는 선이고 에고는 악이라고.
뭐 걍 이런거야. 씨발 아주 반사회적이고, 비양심적인 짓거리를 하는 개년이 하나 있는데, 그 개년이 이제 좀 그 개년의 좌뇌의 이드가 그년에게 속삭이면서 이리 사는거 그거 아니다 그럴려는데, 그러면 씨발 인생 잘 못 배운 년은 그 순간 느껴지는 심의 내적갈등에 의한 스트레스가 몸도 또한 녹초로 만드는 그순간 씨발 뭐 금요일밤에 클럽에 가서 존나 개같이 번 돈으로 씨발 아무 놈 걍 기럭지 되고, 남성이 좀 뚜렸한 새끼한테 존나 그 이드의 몸을 맡겨서는 존나 씹갱뱅당하고나면 담날부터 갑자기 그 이드에 잠시 몸을 맡긴 그 개년의 에고는 충족되어 있고, 또 다시 텐프로업소나 금융사기나 치는 업소나 정치판이나 법조계 그런 판에 나가서는 이제 또 개구라치고 댕기는 거야.
그 때의 이드는 선에 가깝고, 에고는 악이지.
여기서 양면성은 같이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중요해. 그러므로, 선택은 존재하는 것이고, 필요한 순간 이드만 아주 조금 개방해서 더러운 육욕따위나 채울 때만 이드의 사람이 되어 에고이스트로 사는 것이냐, 에고야 말로 선택의 순간에만 조금 개방시키고, 그 외에는 본성이 가진 선함, 자연스러움으로 사냐 그런 문제에 한정해서는 성선설일 것 같지만, 사실 양면적이니까 성선도 성악도 아니지. 둘 다 있는거지.
그러나 어찌되었건 니가 네 행위를 통제하는 그 것 이상으로 네 영혼의 본질에 의해서 네가 속할 곳에 너는 속할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또한 좌뇌와 우뇌는 양존할테니까 너는 선택할 수 있어.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택은 지금의 너로 귀결될꺼야.
어제의 너가 오늘의 너이고, 오늘의 너가 내일의 너이다. 여기서 내적 준거랄 것도 실은 네 선택이며, 뒤틀린 황천에서 태어나도 죽을 때는 아제로스의 꿈동산에서 죽을 수 있듯이 네 존재가 곧 그러하다. 그러나 그 전에 너는 알아야 한다. 최소한 무지만큼으로부터는 끄집어 내 주는 것이 현자나 선지자이다. 그러나 선택은 니꺼다.
아마도 조지 칼린의 말처럼 인간은 디게 타락한 존재이고, 되려 닭이나 짐승이 decent한 gentleman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건 너무 간 야그(=종족의 우상)이지만, 걍 모사적으로는 그렇단 말이다.
자유경제는 사실 철학적인 문제로 간다면 그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구현되는 시장을 말하는 것이지. 그러나 인간은 또한 도그마적이고, 권위나 권력에 기대는 특징조차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항상 무신론이나 아나키즘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항상 정치학이나 외교학이나 그러한 것들의 틀이 없이는 그 것들을 기술할 수 없으며, 그 것이 없어지는 세상이라는 것 역시 도그마의 겹슬릿과 같은 실제 세상이 아닌 절대적인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라는 거에요.
요컨데, 불타는 군단같은 새끼들한테는 책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인문과 인문분과도 전혀 없으며, 그들에게는 오로지 세상을 일통정복한다는 그 한가지 사명과 그들의 절대군주 그 것만이 존재하잖아. 그 심상외에는 또 그들대로는 법도 있으며, rank도 있고, 계급=class도 있고, 종족도 있어요.
자 난 인간을 비판하려는게 아냐? 심지어 지금의 세계인 중국과 미국 그런 야그도 아니라고, 평소에 내가 중국을 좀 깠지만.
미국내에도 아나코 리버랄이 있고, 중국인 중에서도 마오이즘의 규범으로써의 그 것이 타락한 공산당 상층들에 의해서 훼손되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단지 개인과 그의 존재에 대해서만 너 자신에 대해서 알라는 거야.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말했고.
사회탓? 사회탓 하지마. 헬조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선택은 너의 것이지.
윤회라는게 어찌보면 더 한층 지독한 응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