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국뽕학자들과는 다르게 쓰는 우리 진짜 역사.
오늘 아주 재미난 결론이 나왔어요.
뭐 델링이가 맨날 하는 말이지만 나보고 글 좀 단순하게 쓰래. 그래서 최대한 신경써서 단순하게 써 본다.
1. 뭐 그 동안 합의된 것이지만 한국문명은 북방계지배를 받게 된 것은 맞음.
2. 당대에 대칭되는 나라가 신라라고해서 당운들이 들어간 반절이 신라 때에 채택된 것이라는 뉘앙스를 국뽕사학자들이 펼치면서 신라방, 신라소 뭐 그런 개지랄을 했을꺼야. 그런데, 신라대에는 심각하게 한자가 그닥 잘 받아들여진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신라는 확실히 토착한인왕조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3. 그렇다면, 한국한자어의 당운은 어떻게 만들어졌냐? 먼저 시기적으로 훨씬 늦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고, 그리고 일부는 R.Strauss가 유교탈레반새끼들이 상중고음을 복원하던 그 지랄로부터 전혀 때 아닌 때에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름대로 복원된 것이고, 아주 맞는 것이었다고 볼 수도 없는 형태로 말이다.
4. 그 것은 유교꼰대들이 고전을 첨삭하거나 주석을 넣으면서 훼손하기도 하는 아주 더러운 주작의 하나이다. 애초에 유교문명권에서는 오리지날리티따위는 개나 쳐 먹으라고 그러한 가치관 가체가 전무했던 것이다. 언어적으로는 그 것은 소위 표준화를 빌미로 수시로 역주행 개작된다.
주로 왕조창업기나 중간에 개혁한답시고 지랄할 때에 역주행개혁이 자행된다.
뭐 지금 한자어 부활하자는 꼰대새끼들이 21세기 언어를 20세기 중엽으로 돌리려는 시도같은 아주 병신같은 짓거리가 수시로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5. 정작 한국문명에서 당식 관제와 공복이 제정되는 것은 고려때이고, 고려때에 이미 당나라는 멸망해 있었다. 당식 관제와 공복은 발해로부터 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로 말미암아 고구려의 한자수준이 백제, 신라보다는 좀 더 뛰어나지 않았냐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것은 지정학적으로는 당연한 것일테이다.
그러나 반대로 발해계가 고려조로 귀순해 올 때에는 토착민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삼한과 고구려는 별개라고 선을 그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발해계의 좀 더 유려한 한자사용계층이 고려조 초기의 시스템을 정비했다는 것이다.
6. 중부지역엘리트계층의 북방국가인 고구려, 발해 계승의식은 그러한 그들만의 특수한 역사성에서 기인하는 여기에 유교조상의식과 결부된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는 그들은 동화된 한인이며, 민주화된 한국사를 고구려나 발해와 결부시키기에는 본인을 포함한 여느 삼남평민들의 존재가 걸린다.
물론 양광도(=양주+광주, 구경기도의 북쪽지역을 일컫는 말)의 commoner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차원에서 한수이남이 대부분의 강역인 남한인들에게 고구려계승의식을 주입하는 것은 또다시 역사의 실제와는 무관한 유교전제적인 관학적인 권위주의적인 주입이라고 생각한다.
'관에서 제정하는 유교전제적인 권위주의적인 주입' 이게 21세기를 관통하는 우리사회에 대한 키워드가 아닐까?
요정도로 해두고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