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급진개화파가 주도한 시민혁명인 갑신의거의 새로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갑신의거는 기존에는 단순히 신분제를 철폐하고 헌정주의를 실현하려고했다 라고만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친겁니다.
다름아니라 갑신의거는 기존의 (그리고 아직까지도 굳건히 버티는) 유교적 악습까지 모조리 깨부수려고한 문화적 개인주의 혁명이기도 한겁니다.
그 증거가 바로 당시 갑신의거에 참여한 이규완 이라는 무사의 증언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일이냐면
갑신의거가 실패해서 개화파들이 망명했을때,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의 양반 명문가 출신 개화파들은 자신들의 공식적인 주장과는 달리 일상에서 양반 및 유교적 관습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괜찮은 건물에 숙소를 잡고 낮은 신분 출신인 동료들에게 잔심부름과 시중 등을 시켰으며
심지어 같은 양반 출신 개화파 중에서도 나이로 철저히 서열을 갈랐습니다. 대표적으로 서광범은 자신의 친척동생인 서재필을 마치 하인 부리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 떠넘기고 잡일 등을 서재필 혼자서 다 하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자 참다참다못한 이규완 이라는 무사가 개화파들이 다 모였을때 이렇게 따졌습니다.
<당신들이 평소에 입만 열면 말하는, 신분과 나이에 따른 폐단을 없애겠다는게 바로 이런걸 뜻하는 것이었느냐?!> 라고.
그러자 김옥균은 여기에 대해 사과를 하고 그 뒤로 어리거나 낮은 신분의 개화파들이 시중들거나 잔심부름을 하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규완이 한 말중 <나이> 가 언급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김옥균 등의 급진개화파는 단순한 신분철폐나 법치주의만을 추구한게 아니라 유교문화까지도 모조리 갈아엎으려고 한 것입니다.
<나이> 는 유교문화에서 가장 핵심 중 하나입니다. 장유유서와 경로사상으로 상징되듯 <나이> 가 유교에서 사람들 사이의 서열을 가르는 핵심 요소이고, 지금도 나이서열에 따른 폐해를 우리는 고스란히 겪고 있습니다. 1살이라도 더 많으면 형 누나이고, 연장자가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고 이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패륜이니 무례니 하는 온갖 개만도 못한 부당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무려 100년 전에, 그것도 당시 조선의 최상층에 속한 김옥균 등의 급진개화파들은 이미 그걸 없애려고 했다는 겁니다. 이걸 알고나서는 식겁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 헬조선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걸 훨씬 옛날 시대의 개화파들이 꿈꾸고 실천까지 하려고 했었단 사실을.
정리하자면, 갑신의거는 신분철폐 등의 법적 영역에서는 시민혁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키려한, 유교문화를 철저히 박살내고 관습상으로까지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과 자아를 확립하려고 한, 개인주의에 입각한 문화혁명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때 갑신의거가 성공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서구 못지않은 개인주의 문화가 확립된 국가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래서 그때 갑신의거를 반대하고 무너뜨리기까지 했던 그리고 지금도 갑신의거를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옛시대와 현시대 모두의 절대다수 조선 피지배층 개새끼들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