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전에 글 올렸었던 사람이고
사정상 뒤늦게 댓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읽고 난 소감은,
"그럴 수도 있겠다"
"리아님같은 여성분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겠다"
이 두가지 였습니다.
이유는, 아직 저역시도, why cpa, why IFC, why IB, why Finance 등등의 질문의 본질에 대답하지 못하는 점이고(형식적으로는, 그리고 추상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논리를 펼칠 지언정)
그것을 잘 이야기 해주신 리아님의 예리함과,
한편으로 저의 가치관가는 상반된 염세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설령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타자에의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주체적인 삶의 모습이 존경스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멋진 여성분이 제 주위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저는 리아님과, 다른 분들에게 그 "세상적인것의 추구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 다.
제가 실패를 겪고, 이겨내기를 반복하면서
무엇인가의 추구가 가져다 주는 효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고,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것
외생적으로 결정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유일무이한, 내생변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전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다.
이러한 "내생변수의 통제"는,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부정적인 외부 환경에 안주하지 않는 자신만이 가진 "비가역성"에 대한 보증수표이다
남과 다르기를 기대하면서
남들과 다른 노력을 하면서
남들과 같은 잣대를 가지고 자신을 "기대" 하지 말아라.
한번의 행운으로, 완벽한 성취를 할수는 있지만,
미래에 대한 항구적인 성취의 기대는 불합리하다.
하지만, 비전에 대한 추구로써
지속적인 "의도적인 미완성"을 경험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 "의도적 미완성"의 자아실현적 예견이고
그러한 미완성은, "완성"이 아닌
"본질에 가까운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이자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의 본모습이다.
그리고, 그 본모습이야말로
"완성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은 한 개인의 존재를 탈피하는 초월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삶"의 의의에 대한 이야기이구요.
그렇다면 "지속적인 추구의 이유 그 자체"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종교적으로 말하는 속세에서 벗어난다에 있다고 봅니다.
불교에서 말하죠, "물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세상적인것으로부터 초연한 삶"이 진리라는 것.
이 말을 보면, 리아님처럼
아예 욕망과 미련을 모두 버리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리아님 존경해요. 그리고, 모두가 무엇인가에 미친 삶을 사는 유토피아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세상적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배제하는게 아니라
그 추구의 과정에서 오는 불확실성과
세상적인것으로부터 초연하며
그 추구의 목적자체도
주체적인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고요.
세상적인것이 세속적이라고 한들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면
저는 옳다고 생각하는거죠.
마치,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의 인간들이 문제인것처럼.
저도 이점에 대해서, 그렇다면 나의 비전은
"주체적인 삶"에 대한 추구의 필연적인 결과인가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렇지만, 그건 제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시해주는 좋은 사실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제가 말했듯이
"이래도 할래"? 라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회의를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치환하여 하는
비전에 대한 추구야 말로
제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겠습니까?
저의 그 수 많은 목표는, 그냥 현재 가지고 있는 소망의 연속적인 루트에 불과합니다.
그 루트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저는 그럴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구요.
또 예를 들자면?
예술가들 중에서도, 특히 화가들을 봐도 그런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초기 작품들을 매니아층들은 선호하고, 그 작품성에 대해서 존중하지만
정작 화가들 자체는, 스스로의 컴플렉스라고 생각하며 초기작품에 서명도 안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한마디로, 화가들이 겪는 컴플렉스는
타자에 의해 부여된 가치는 완성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 의해 부여된 가치는 미완성인것으로부터 오는 괴리인 것이죠.
여기서,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완성과 경지"는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부여한 컴플렉스를 뛰어넘고
그 컴플렉스를 바탕으로 "near wins"를 추구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경지에 도다르게 되어 바라본 초기의 졸작은
앞서 말한대로 "컴플렉스"이기도 하고
"자신이 다다른 경지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진정한 예술가인가"
즉, 그 경지를 초월하는 인간이 되는가 아닌가는
그 컴플렉스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즉,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embrace near wins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가치가 개입될 요소가 전혀 없이 말이죠.
축구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메시는 키가 작습니다.
호날두는 키가 큰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축구팬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메시는 키만 컸으면, 호날두는 그냥 이기는데 말이지"
저는 궁금합니다.
메시가 자신의 작은 키가 호날두를 완전히 누르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지
저는 사실 이럴거 같아요.
작은키가 "메시"만의, "메시"다운 드리블과 스타일을 만들어 주었고
그 작은키를 극복할 만한 edge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edge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에
비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이죠.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 넣는 행위는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다시한번, 존경하는 리아님과 john 또 누구였더라.
아무튼 감사합니다.
군대 곧가네요 ㅋㅋㅋ.
오늘도 공부하고 마음의 정리를 해봅니다.(글 개못쓰는거 이해해 주세요)
저도 생각이 종종 바뀌는지라 확답을 드릴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