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도래인들이 간 것은 대부분의 인류학자가 인정하는 것이고,
그러면 이제 일본어가 언제쯤 형성 되었는지 알아볼 것인데,
한번 상대특수가나사용법(上代特殊仮名使い)을 가지고 알아보도록 하겠다.
상대특수가나사용법(上代特殊仮名使い)이 고대 일본어가 지금보다 모음이 많았고,
모음조화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미 여러가지 증거로 인해 인정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어족 류큐어군에 속하는 언어들은 아마미어를 제외하면
극심한 변이를 거쳤기로 유명한데, 일본어하고 오키나와어가 통하지 않는 것도
중세 후기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은 제주도 사투리하고 달리 극심한 변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음에서도 극심한 변화를 거쳤고 i앞의 k는 대부분 palatalised 되었는데,
일부 단어는 그러지 않거나 h나 ɸ로 변한 경우가 있다.
다만 단어에 따라 き㆙ 그러니까 kɛ/kʲɛ처럼 tɕ로 변한 경우가 있다.
대부분 그런 단어는 고대 일본어에서 き㆚이였는데, 이는 ki이다.
또한 이런 것들은 류큐어군에 속하는 언어들끼리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데,
오키나와어에서 き나 きい일 경우 아마미어에서는 くぃ[kɨ]나 く゚ぃ[hɨ]로 대응하며
그리고 야에야마어에서는 きい[ki:]나 ぎ[gi]로 대응한다.
또한 오키나와어에서 ち인 경우에는 아마미어에서 き나 きい로 대응하고,
야에야마어에서는 くぃ[kɨ]나 こぇ[kə]로 대응한다.
이는 상대특수가나사용법(上代特殊仮名使い)이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인 6세기 이전에는
일본어에 모음이 더 많았다는 증거고, i는 i₁하고 i₂ 뿐만 아니라 i₃까지 있었다는 증거이다.
저것들은 각각 ɛ, i, ɨ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에 간 것은 비록 오키나와에 문명이 세워진 것은 11세기지만
대부분 3세기 이전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가끔가다 항해 기술의 부족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히려 항해 기술이 부족해도 과거에는 생존의 문제가 생기면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먼데로 가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은 부산에서 큐슈로 갈 경우 그렇게 멀지도 않다.
아무튼 그러면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으로 언제쯤 갔는지 알아보자.
일단 상대특수가나사용법(上代特殊仮名使い)은 원래 diphthong이였다는 의견이 있는데,
원래 연속된 모음이 합쳐진 것이고 단순화 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는 아이누어의 kamui라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로
고대 일본어에서는 kami였는데, 더 이전에는 kamui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에 도래인들이 3세기 전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오키나와어에서 i가 전부 monophthong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때
이미 3세기 이전에 전부 monophthong이 된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으로 도래인들이 간 것은 아무리 늦어도 BC 3세기 이전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으로 대규모로 도래인들이 간 것은 가야가 멸망하고 나서인 4세기부터인데,
이는 가야가 원래 일본인들이 세운 나라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어에는 한국어에서 온 외래어가 거의 없는데,
한국어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한다고 할 경우 한국어에서 일본어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일본어가 형성될 당시에는 한국어를 쓰던 집단이 한반도로 오지 않았고,
일본어가 형성될 때에는 한국어를 쓰던 집단하고 일본어를 쓰던 집단이 같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를 쓰던 집단이 한반도에 왔을 때는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어를 쓰고 있었으나
이미 도래인들이 일본으로 상당히 많이 이주를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한반도에서 한국어하고 같이 쓰던 가야어는 한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보이나
한국어를 쓰던 집단이 살지 않았던 일본에서 쓰이던 일본어는 한국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가야가 망하고 나서는 일본으로 갔는데, 가야어가 일본어하고 아주 가까운 언어이기도 해서
일본에 가서는 일본어만 쓴 것으로 보인다.
가야어는 일본어에 인명 몇개가 남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귀족들이 주로 쓰던 麻呂(まろ)나 介(すけ)로 보인다.
일단 한국어에서 온 외래어로 보이는데, 麻呂(まろ)는 머리인 것 같고,
원래는 mɑtɛ라고 했는데, 이는 계림유사를 보면 麻帝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신라의 언어에 麻立이 있는 것을 보면 mɑrɛ라는 형태하고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介(すけ)는 한국어 새끼 < saskɛ에서 온 말로 보인다.
또한 표기를 보면 한국어의 영향이 보이는데 介는 끼다라는 말로 중세 한국어에서는 ski-ta라고 했다.
다만 일반적인 단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는 대부분 일본어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일본어의 형성 과정을 보면 대충 이랬을 것 같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알아봐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대충 이랬을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