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즉 일러전쟁과 을사보호조약 직후 설치된 조선통감부 체제에 대해서인데
사실 그 시절의 조선통감부 체제는 혁명기 초기에 예외없이 나타나는 이중권력 현상이 당시의 개한제국에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즉 기존의 개한제국 조정은 봉건 귀족계급(양반)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권력이었고
조선통감부는 부르주아 계급 (일본+조선 양쪽) 의 이해를 대변하는 권력이었습니다.
이것은 혁명기 초기에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계급
즉 기존 구 체제의 지배계급과 새로 솟아오르는 신 체제의 지배계급이 한 국가 안에서 내전을 벌이는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자신의 역할이 이미 끝난 계급은 절대로 순순히 자발적으로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고서라도 끝까지 어떻게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개한제국의 양반들도 예외가 아니었죠. 그들은 언제나처럼 개한제국의 봉건체제를 무슨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지키려고 했고
반면 당시 조선의 막 생겨나기 시작한 미약한 부르주아 계급(=2차례나 형성된 조선의 개화파 정권이 손쉽게 무너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을 대변하는 개화파들은 일본의 부르주아들과 연합하여 조선의 봉건 기득권세력인 양반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시 통감부 체제는 개한제국이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려던 시민혁명기에 생겨난 이중권력의 상황입니다.
이것은 아까 말한 역사적으로 사회혁명기에 항상 나타납니다.
가장 전형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시기에 초기때 기존의 귀족계급을 대표하는 궁정과 신흥 부르주아들을 대표하는 권력기관인 입법의회로 권력이 양분되었던 것하며 (이것은 1792년 8월 10일 봉기와 이후 루이 16세의 처형에 의해서 비로소 끝나게 됩니다)
러시아혁명 초기때 부르주아들을 대표하던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노동자들을 대표하던 소비에트 이렇게 권력기관이 양분된것 하며
메이지유신 당시 기존의 막부와 천황을 내세운 유신지사들이 세운 정부 이렇게 권력이 양분되어 있었던것 (봉건 지배층을 배표하는 막부의 패배로 이 상황은 끝나게됨)
이렇게 예외없이 봉건제 ㅡ>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ㅡ> 공산주의 (물론 공산주의를 옹호하자는게 절대로 아닙니다. 어쨋든 공산혁명도 일종의 사회혁명이기 때문에 예로 든 것뿐) 이런식의 체제 자체가 송두리째 근본적으로 바뀌는 사회혁명시기에 나타나는게 바로 이중권력 입니다.
말이 좀 새나갔는데 다시 돌아가자면
통감부와 조선 조정. 이 둘은 절대로 오랫동안 양립할 수 없는 180도 상반되는 권력이었습니다
둘 중 하나가 박살나야 했죠. 통감부가 박살나서 조선은 다시 봉건제로 되돌아가던가
아니면 조선조정이 박살나서 조선의 시민혁명이 확실히 완료되던가.
둘 사이에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힘이 밀리는 것은 조선 지배층 쪽이었고 통감부 설립 이후 폭군 고종 폐위, 사법권과 경찰권의 근대화(일본에 양도함으로써 가능해짐), 등에 뒤이어
한일합방의 형태로 시민혁명이 이루어짐으로써 부르주아 계급의 승리로 개한제국의 이중권력 현상은 끝이나게 됩니다.
이후 잘 아시는대로 통감부는 총독부로 바뀌어서 조선의 시민혁명의 성과를 지키고 근대화를 일사천리로 진행시킵니다.
정리 : 조선통감부 체제는 사회혁명기 초기에 항상 나타나는 이중권력 현상,
기존 구 지배층의 권력기관 (조선 조정) vs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기관 (조선통감부)
한마디로 구 지배층과 혁명을 주도하는 신흥세력의 내전상황.
이 상황은 절대 오래 못가고 어느 한쪽이 깨지는 쪽으로 귀결.
한일합방 이라는 시민혁명이 완성됨으로써 구체제의 지배층(조선 조정)이 깨지는 쪽으로 나가고 비로소 근대화 시작.
일제 통치를 어떻게 위대한 시민 혁명이랑 동급취급합니까? 님 혹시 자코뱅주의자 아니신가요? 자코뱅주의자도 이미 뇌에 구더기가 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