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jurchen이라고도 하고, jurchen의 발음기호가 바로 jusin 즉 조선이다. 즉, 여진이 곧 조선이다.
퉁구스만주어족 혹은 퉁구스족:서던퉁구스랑 노던퉁구스, 그리고 아무르 퉁구스로 나뉜다.
https://en.wikipedia.org/wiki/Tungusic_peoples
서던 퉁구스의 대부분은 jurchen, 즉 여진을 가르친다. 여진의 다른 이름은 조선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Tungusic_languages
자, 이거 다 내가 지어낸 게 아니라 위키에도 나오는 인정받는 야그란다.
노던 퉁구스에는 에벤, 에벤키, 오로치-우데기 이렇게 3대 언어가 있고, 사우던에는 만주와 나나이가 있는데, 만주가 대세란다. 만주라는 것은 16세기 이후에 여진이 이름을 달리한 것 뿐이다.
즉 만주가 여진, jurchen, 조선이 된다.
그런데, https://en.wikipedia.org/wiki/Khabarovsk_Krai 를 보면 알겠지만, 노던퉁구스라고해서 동시베리아에 꼭 사는 것은 아니고, 서던퉁구스라고해서 쑹화강 유역에만 사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아무르퉁구스들의 지역으로 분류되는 하바롭스크 지역에조차 소수의 만주족이 있는 형편이다.
동여진:여진이지만, 노던퉁구스애들이랑 같은 동네에 사는 애들. 여진 혹은 만주는 서던퉁구스의 대세이고, 갸들이 금나라 사서에도 적기를 동여진애들은 좀 미개하다고 적었다.
아무르퉁구스:아무르강 유역인. 행정구역 상으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하바롭스크 크라이에 사는 퉁구스계를 가르친다. 그러나, 조선과 러시아의 역사기록을 감안하면 이들은 원래는 한반도의 함경도 지역에서 살다가 한인들과 슬라브인들에게 밀려서, 점차 북쪽으로 밀려나서 지금은 하바롭스크지역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무르퉁구스는 노던퉁구스와 가깝고, 한반도에서 살던 노던퉁구스가 아무르강연안으로 밀려난 것이 바로 아무르퉁구스이다.
한반도에서는 주로 조선시대에 4군6진개척등과 함께 주로 경상도의 농민들을 이주시키는 등 조선왕조의 개척개간정책에 따라서 밀리고,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서마저 Primorsky Krai는 부동항 찾겠다고 쳐내려온 슬라브새끼들한테 빼았겨서, 결과적으로 아메리카인디오들이 다코다 황무지로 쫓겨난 마냥, 하바롭스크 지역으로 쫓겨난 노던퉁구스가 바로 아무르퉁구스인 것이다.
위에서 붙인 위키피디아의 퉁구스어 관련 글을 참조하면, 오로치의 경우에는 확실히 한때 남쪽에서 살던 흔적이 뚜렸해서, 남퉁구스들과의 어휘교환이 뚜렸한 수준이라고 한다.
자 여기서,
옥저=오로치인 것으로 보인다.
즉, 동예는 jurchen이지만, 한때는 노던퉁구스가 대세였던 함경도에서 그들 사이에 존재한 만주여진계를 가르친다.
이들이 동예라고 불리는 이유는 예=여진이지만, 쑹화강보다 동쪽 지역에서 산다는 의미이다.
옥저는 오로치인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동예의 경우에는 이성계새끼가 쌍성총관부를 고려에 팔아먹은 이후에 상당히 많은 수가 남퉁구스여진계인 완안부에 합류했다고 사서에 나온다.
조선중기에 조상들의 고토를 찾겠다고 함경도일대를 침공한 니탕개가 바로 가장 대표적인 동예인이다.
즉, 니탕개는 그의 가까운 조상까지는 대대로 함경도에 거주하다가 조선왕조의 폭정 혹은 군사분쟁에 의해서 압록강밖으로 축출되었다가, 함께 축출된 동여진족들을 규합, 이들을 이끌고, 조선을 상대로 그들의 고토탈환을 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만주와 연해주로 축출된 동여진과 본디 동북3성에서 살던 여진은 재결합했던 것 같고, 그러한 와중에 청의 건국세력인 완안부로 그 것은 규합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와중에도 소수의 여진계는 연해주인 프리모스키랑 하바롭스크 관구에서 북퉁구스카들과 사는 쪽을 택하고 있고, 이들은 지금도 러시아의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읍루=읍루는 아이누를 말하는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Ainu_people
https://en.wikipedia.org/wiki/Takeda_Nobuhiro
일본측 기록에 의하면, 1456년에 야마토원숭이들을 상대로 일으킨 최후의 반란이후에 급속하게 약해져서, 유명무실해졌다. 당시에 이누족의 리더를 죽인 것이 바로 전국시대에 전국다이묘집안으로 유명한 다케다가문의 노부히로라는 놈이고, 뭐 익히 아는 다케다 신겐의 먼 할아버지뻘쯤 되는 인물이 되긋다. 정작 본인은 가키자키가문으로 입양되어서, 가키자키가문의 가독을 이어받았지만 말이다.
뭐 다케다건 카키자키이건 신장의 야망이라고 일본전국시대게임에 꽤나 등장하는 이름이 되긋다.
그리고, 그러한 패퇴를 당하기 이전의 아이누는 조몬 문명을 창시했을 정도로 꽤나 문명화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시베리아계인 니브히들을 침략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특정한 시점에서는 읍루가 아이누이고, 아이누들이 아무르강유역이나 해안가에 침략한 시기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읍루는 조몬인들이 아무르강으로 침략한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축치캄차카어족
숙신은 축치라고 생각된다.
https//ko.wikipedia.org/wiki/축치어
https://en.wikipedia.org/wiki/Chukotko-Kamchatkan_languages
축치캄차카어는 말그대로 캄차카반도에서 대세인 언어이다. 한국어, 이누어들과 함께 역시나 고립어이고, 편의상으로는 고시베리아어라고 분류되지만, 이 것은 분류를 위한 분류이다.
축치어 사용 권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맥은 에벤 혹은 에벤키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 윗지도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발해지도이다.
그러나, 보라색으로 굵직하게 칠해놓은 것은 조금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는데, 가장 위의 사진에서 점으로 되어 있는 퉁구스족의 분포현황을 감안하자.
발해가 사는 저땅은 절대로 한반도처럼 전국전체가 살만한 땅이 아님을 절대적으로 감안해야 한다.
저게 색칠짓거리는 아주 거창하게 해놨지만, 실제로 살만한 땅은 해안가와 쑹화강일대, 그리고 랴오닝강 일대에 국한된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도와 평안도의 해안가일대와 지금 북한에서는 양강도로 불리는 압록강중류의 분지지대와 그 맞은 편인 지린성의 압록강유역 정도가 사람 사는 곳이다.
일제시대의 기록에서조차 평안, 함경도의 인구의 80프로는 해안가에서 산다고 했을 정도다.
그림상으로는 발해가 지금의 중국의 동북 3성을 왕창 떼먹은 것처럼 나오지만 발해의 5경은 실상은 대부분 러시아쪽의 연해주쪽에 몰려 있다.
북방계지배왕조인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그들 스스로를 정복자들의 후예로 인지한 인서울북촌의 특권계급들의 후예인 현재의 인서울학자들은 고구려가 망해서 발해로 간 것으로 연구성과의 합의를 봤지만, 정작 중국의 위나라말기에 쓰여진 위지동이전은 오로치(=옥저), 축치(=숙신), 에벤키(=예맥), 아이누(=읍누) 이런 종족들을 아주 상세하게 파고들어서 기록한 신빙성이 매우 높은 기록이고, 그러한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는 후한 광무제 유수라는 놈이 랴오닝성에 살던 궁이라는 한족이 거의 확실한 자가 왕망을 몰아내는데 공을 많이 세웠다고해서 고구려왕이라는 작위를 준 것이 고구려라는 이름의 기원이고, 그 타이틀을 후일 퉁구스카계 왕조에서 우려먹었던 것 같다.
그 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고구려이다.
그러나, 그 고구려인들의 치마를 들추면, 그들은 쑹화강의 jurchen이고, 이들은 후일 청조의 여진족이나 금의 여진족들과 같은 종족인 것이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광개토대왕릉비에서 읍루나 숙신등이 거론되는 것 역시 그 것은 한반도역사하고는 전혀 무관한 현재의 중국지린성의 국내성이라는 곳에서 탄생한 고구려라는 퉁구스카계민족들의 나라에 대해서 아이누들이나 축치캄차카인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조공한 것을 두고는 복속이라고 뻥구라 좀 친 것이고, 원래 동양개새끼들이 그런 뻥구라를 잘 쳤어요.
중국새끼들도 한반도와 베트남을 실효지배한 적은 거의 없음에도 한국인과 베트남인들이 교역 좀 하자고 사절단 보내면, 지들 역사상으로는 한인과 베트남이 복속했음 ㅋㄷㅋㄷ 이 지랄했고, 뭐 그런 뻥구라차원에서 응당 쑹화강과 연해주에 존재한 퉁구스카인 고구려세력에 대해서 교역파트너가 될 수 밖에 없는 축치캄차카인들이나 아이누족들이 사절 좀 보냈다고, 개뻥구라 친 것이 바로 광개토대왕릉비의 내용인 것이다.
물론, 고구려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복속시킬 힘도 없었고, 지리적으로도 이들은 동떨어진 곳에 있다.
여기에 조금 더 심하게 뻥구라를 치면, 오늘날의 한국인인 항궈인 삼한이나 일본인인 왜까지 복속시켰다고 구라질을 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조선시대에 각 왕조의 시조를 제사지내던 관습에 따라서, 신라는 박혁거세, 백제는 비류, 온조, 고구려에 대해서는 추모(=주몽)을 제사지내던 그 제사상의 관습에 따라서 유교사학자들이 전혀 실증적이지 않은 짜맞춘 역사를 쓴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문제인 것인데, 박혁거세건 비류, 온조건 추모이건, 심지어 단군, 기자조차 그 것은 유교제사를 위해 존재한 상상속의 인물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백제는 심각하게 근구수왕때부터 성립한 나라이고, 고구려는 광개토와 고국원왕부자때부터 그리고 신라는 신라토성들과 관계해서 혁거세의 박씨가 존재했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경주지역에 경주 박씨라는 박씨는 존재치 않는다.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19344
정작 소위 경주박씨라는 박씨는 영해(영덕군 영해면)박씨의 시조 박제상의 21대손인 박도덕을 중조로 하고 있고, 이들은 관적지만 경주일 뿐 실지로는 개경의 예의 조선조의 양반들과 같은 중부지방의 엘리트들이고, 경주 박씨라는 본적은 애초에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고려조의 창업공신인 왕건의 심복이었던, 한란이라는 북방계 새끼가 기자의 후예라고해서 청주 한씨를 자처했듯이, 박씨라는 성도 완전히 위조된 것이고, 혁거세라는 것은 전혀 기원이 없는 고려창업세력인 북방계정복자들의 족보주작관련 창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본좌의 외가인 월성(=경주) 손씨는 경주 지역에서 대대로 호족이었다고 하는데, 그 것조차 실은 조선조에 김종직의 문인이었다는 손중돈이라는 놈이 세운 족보란다.
즉, 대부분의 한국족보는 조선시대에 주작된 것이고, 그 진짜 권력역학은 고려, 조선조의 개국공신이거나 그들과 수학관계로부터 기인하고, 족보라는 것은 그 개새끼들이 걍 한국역사에 나오는 놈들 아무거나 지들과 역은 것이라는 것이다.
김종직만해도 김종직의 아비인 김숙자가 길재라고해서 개경에서 이름 높던 씹선비의 제자였고, 길재라는 놈은 뭐 몽골계 권문세족중에서 당시 원대에 성립한 과거와 관련한 관학의 대가정도인 유교지배술의 마스터이던 놈인데, 그 놈이 이숭계밑에서는 관직 못한다고해서 틀어박힌 것을 사림이라고 하는데, 그 사림들을 세조라는 놈이 자기 조카 쳐죽이고 왕된뒤에 심복으로 많이 부렸고, 그 와중에 길재의 제자의 아들이라고해서 김종직계가 등용된 와중에 김종직의 동문새끼인 강남새끼같은 본디는 개경양아치인 새끼가 하나 있어서 관직에 오르고 나서 월성 손씨를 자처한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A0%EC%82%B0_%EA%B9%80%EC%94%A8
김종직이라는 놈도 존나 말이 선산 김씨지 실은 선산 김씨는 죄다 강남양아치인, 소싯적에는 강남이 개경이었는데, 개경양아치가 자기는 신라계라고 족보 쓴거란다.
그래서, 정작 파보니까 선산이 구미인데, 실은 김추라는 놈도 개성새끼이고, 김선궁이라는 놈도 개성새끼라고 나오는 판이다.
즉, 이 것들은 모두 개성과 한성에서 옹립된 퉁구스계왕조들의 정복자들이 토착한인지배계급으로써 행사하기 위해서 창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 인서울및 인개성 지배계급들은 그들의 고토가 고구려와 발해에 있다는 인식으로써 본디는 그들의 정복자지배계급으로써의 선민사상이 반영된 것이 바로 고토론이라는 것인데, 그 것이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의 공간사내에서 반일감정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등에 엎고, 진성 한국계인 한인들에게조차 고토론이라는 것이 인서울지배계급들에 의해서 교육을 통해서 강요, 세뇌된 것이고, 이에 대해서 일본은 그 것을 당시 일본이 강점하고 있던 만주지역과 만주사변을 통해서 중국과 전쟁하게 된 당시의 역사적인 문제때문에 한인들에게 만주고토론을 펼치는 것이 그들의 전쟁프로파간다에 유리하므로, 그러한 인서울 왕당파잔당새끼들의 역사주작및 선동세뇌질을 방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 고구려와 발해는 퉁구스계왕조임이 분명하고, 그 것은 그들이 교역및 외교파트너로 삼는 아이누들이나 축치인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들의 속지적인 강역문제가 어떤 특정지역의 역학을 반영하는 지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이는 중국과 왜가 관계의 대상이 되는 한반도의 한인들과는 명백하게 구분되는 차별성으로써 속지적인 차원에서 볼 때에 고구려와 삼한은 절대적으로 diffent place, different people에 의한 다른 지역, 다른 민족에 의한 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제계급들 학자들의 물타기가 그 것은 인종적으로 똑같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논거에 의하면 한국인들도 아주 옛날에는 만주에서 들어왔을 터이므로, 만주에 있던 그 왕국들과는 같은 종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인종과 민족을 착각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고, 그러한 경로상의 일치는 유전자형질의 일치를 뜻하는 것이지 문화, 언어의 일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면, 동북3성과 화북인 허베이성의 사람들도 인류이동의 경로상에 있고, 인종적으로 거의 유사한데, 과연 그렇다면 허베이성의 중국인들과 한반도의 한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말인가?
허베이성-만주(=동북3성)-한반도의 사람들의 동질성은 어디까지나 인종적인 유전형질의 문제로 제약하는 것이 바른 관점일까? 아니면 인류이동경로따위나 유전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관점일까?
만주인과 한반도인이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 중국인과 한국인도 같은 민족인 것이라고 하는 괴랄한 관점이 도출될 뿐이고, 이는 완전히 역사전개상의 현실은 도외시한 관점이다.
화북과 만주, 한반도의 사람들은 인종적으로는 유사하고, 그들의 매우 먼 조상은 분명 시베리아나 천산산맥으로부터 건너온 같은 혈통일 수는 있으나, 근대적인 민족의 관점으로는 별개의 민족이고, 중국인들에게는 중국사가 만주인들에게는 퉁구스카역사와 금, 청, 고구려로 되는 중국인들과 한국인들과도 관계하게 되는 역사가, 한국인은 또한 별개의 민족이고 별개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10세기부터 퉁구스카들의 남하가 군사적으로 성공하게 되고, 12세기부터는 몽골의 남하정복에 이들이 편승하면서, 북경, 천진의 지배계급들과 서울, 개성, 평양의 지배계급들은 심각하게 여진-몽골계의 근본을 지니게 되었고, 동북공정이건 한국의 고구려사에 대한 고토인식이건 그 것은 중국인과 한인들 피지배계급의 진정한 역사적인 관점을 반영하지 않는 북경및 서울 앙시앵레짐새끼들의 관점인 것이다.
정작 진짜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그들의 지배하에서 천년이상 전제주의의 지배를 받았고, 또한 그들의 역사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강제당한 것이라고보는 것이 올바른 관점일 것이다.
본인이 누차 주장하지만, 고려조와 조선조의 퉁구스-여진계에 의해서 순수 한인국가인 백제와 고려가 복속당하고, 고려조의 국권만 쌍성총관부의 여진-몽골계 오랑캐인 이성계라는 놈이 강탈하던 상황에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참한인은 천년 이상 그저 복속당해서 그들의 노예로써만 기능하였고, 그러한 남부민들이 중부지방지배계급에 대해서 대등한 정치적인 입지를 지니게 된 것은 동학도들의 난부터 시작해서 광주사태, 부마항쟁으로 귀결된 불과 50년도 안되는 일이다.
즉, 참 한민족은 북방계지배계급의 노예로써 천년동안 지배당하다가 근자에 이르러서야 노예신분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법적으로 대등한 공민권은 일제에 의해서, 참정권은 70~80년대의 투쟁에 의해서 획득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인서울북방계지배계급들의 후예들에 의해서 종속된 상태이고, 특히 문화나 역사관에서는 그러한 선민지배정복자계급들의 관점이 여실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 발해및 고구려가 고토라고 주장하는 인서울엘리트들의 사관에서 도출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사를 바로잡자면, 한인들의 기원은 바로 우리땅인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가 곧 우리민족이 난 땅이고, 황해도 혹은 평안도새끼인 단군이라는 새끼나 심지어는 허베이성새끼인 쌀도 안 먹는 먼두 쳐 먹는 새끼인 기자라는 새끼 따위가 아직도 우리조상이고, 그들이 이 국가를 세웠다고 비정되는 것이 유교꼰대새끼들이나 다름 없는 인서울지배계급 사가들의 관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