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은 급증하는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지만 묘안을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검찰은 앞서 지난 2007년부터 형사조정제도를 도입해 민사분쟁적 성격이 짙은 경미한 사건을 조정을 통해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고소·고발 사건 수 자체가 감소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역부족인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남고소·고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조정·중재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민간조사업(사립탐정제도)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해 평균 50만건… 고소·고발 범람= 대검찰청에 따르면 매년 접수되는 고소·고발 건수는 2010년 47만7584건에서 2011년 45만5026건, 2012년 48만9684건으로 늘어났다. 2013년에는 51만2561건을 기록해 50만건대에 올라섰다. 2014년이 49만5436건으로 약간 줄었지만 지난해 51만2679건으로 최근 6년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표 참조>. 고소·고발 범람시대인 셈이다.
인구 1만명당 한해 평균 고소·고발건수로 계산하면 80건에 달한다. 일본이 1만명당 1.3건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무려 60배 이상 많은 수치다. 그러나 실제 혐의가 입증돼 기소로 이어지는 비율은 전체 고소·고발 사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불기소율(혐의없음, 기소유예, 공소권없음, 각하, 기소중지 등 포함)이 2010년 62%에서 2014년 65%, 2015년 67%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수사력 낭비를 초래하는 남고소·고발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대검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고소·고발 사건의 수사과정에 녹음·녹화제도를 도입해 조서작성 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2010년에는 '고소사건 전담검사'를 도입해 민사분쟁적 성격이 짙은 악성 고소·고발사건을 걸러내는 제도를 시행한 바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재경지검의 한 형사부장검사는 "남고소·고발에 따른 수사력 낭비가 검찰의 고민거리로 떠오른 지 15년이 넘었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어 매년 악순환이 반복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민사분쟁적 사건도 고소부터= 가장 큰 문제는 민사사건의 형사화다. 개인간 채무와 관련된 사기나 횡령, 배임 등의 고소는 대부분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고소부터 한다. 고소제기를 통해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합의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민사소송에 이용할 증거수집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명예훼손 등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민사적 해결방안은 당사자가 직접 원인 규명 등을 해야 할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재산을 빼돌리면 판결문을 받아도 휴지조각이 되는 등 해결방안이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형사는 간편하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 채권자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들 역시 오랫동안 의뢰인이 찾아오면 형사고소나 고발을 하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미국의 경우 발로 뛰면서 증거를 수집하는 변호사도 많지만 한국에서는 드물다. 증거수집을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고소부터 하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운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민사소송의 경우 증인이 출석도 잘 안하고 증거물 협조도 잘 안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형사고소의 경우 검찰 조사에 협조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인이 증거수집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검찰 조서 작성후 이를 민사소송에 증거로 제출하는 관행이 뿌리깊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간통죄가 폐지되기 이전에는 이혼소송에서 위자료를 받기 위한 유력한 증거수집 수단이 형사고소였다"며 "증거수집을 해야 민사소송에서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일반인이 하기란 쉽지 않다. 간통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사건에도 이런 경우가 상당수"라고 했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는 "법이론적으로 형법은 보충적 해결수단이자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최초 수단인 민사적 해결 방안이 실효성과 신속성이 있어야 한다"며 "민사소송은 제한기한이나 구속기간이 없다보니 처리기간도 지연되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조사업 활성화 해야"= 법조계에서는 민간 주도의 조정 및 중재 제도 활성화 방안을 비롯해 악성 고소·고발 사건을 걸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무고죄와 위증죄에 대한 처벌을 높이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김일수 교수는 "현실적으로 무고죄가 있지만 큰 사건이 아니고서는 무고죄가 널리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과실무고죄가 없어서 잘 모르고 고소했다고 하면 처벌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며 "미국처럼 과실무고죄 도입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수사·재판 비용을 책임자에게 부담시키거나 민사적 합의를 위한 무분별한 고소를 막기 위해 재판 도중 합의를 금지하는 제도의 도입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형사고소가 급증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기소중지절차, 조건부불기소처분 제도를 도입해 우선 민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그게 안 되면 형사로 처리하도록 법률로 명문화했다.
사립탐정제도로 불리는 민간조사업을 활성화시키는 방안도 있다. 신동운 교수는 "본질적 처방은 바로 민간조사업의 활성화"라며 "고소·고발 수가 늘어나고 있고,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저렴한 비용으로 증거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음성적으로 심부름센터만 활성화되고 있다"며 "민간조사업을 도입하고 전문적인 기구를 통해 투명하게 감독하게 한다면 고소·고발 범람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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