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이 걸어가야할 트랙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건 모든 비주류국가에게 해당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헬조선은 아직까지 미국의 트랙을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헬조선은 역사 속 주연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변방의 한계이자, 소국의 필연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동북아시아의 패권은 중국대륙vs변방오랑캐의 구도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전까지 중국대륙의 지배왕조와 피지배층의 속성만 바뀌었을뿐 지정학적 패권의 이동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패권의 이동한 것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수천년 역사이래 처음으로 해양세력 일본에게 동북아 패권이 넘어갔지만, 그때에도 조선이 변방인건 변함없었습니다.
산업화 이후 유럽대륙과 아메리카대륙, 동북아지역의 패권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패권이 출현하지 않았는데, 산업화 이전에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미비하여 일정수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심히 약해지기 때문이었고, 산업화 이후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각 지역의 패권세력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여 아직 부딪히기 전이었습니다.
각 지역의 패권세력이 부딪힌게 2차세계 대전입니다. 2차 대전의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은 1929년 대공황입니다. 유럽은 지역경제블록 형성으로,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1차 대전 패전이후 막대한 배상책임을 짊어진 독일. 지역 내 월등한 경제력으로 함께 블록을 형성할만한 국가는 없고, 뉴딜에 돈을 쏟아 부을만큼의 풍요는 없는 일본. 결국 경제문제의 돌파구로 선동-선택된 것은 나치와 제국주의 파시즘이었습니다. 대공황이 강제한 전쟁과정에서 각 대륙의 패권들이 충돌합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미국의 글로벌 패권 장악이었습니다.
21c에 와서도 전쟁이후 만들어진 패권에 괄목할만한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EU는 그나마도 미국패권을 견제하는 연합체였는데 브렉시트로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아직 중국은 패권에 덤비는 도전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볼까 합니다. 중국은 분명 미국이 패권을 잃게 된다면 차기 유력 패권국입니다. 미국의 아성을 무너뜨릴 분위기 역시 중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중심의 세계질서가 향후 5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 봅니다. 중국의 급성장은 분명 유효한 변수가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군사력을 중심에 두고 패권을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우선, 하드파워에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있습니다. 소프트파워에는 [문화, 법, 국가적 매력 등]이 있습니다. 패권분석에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은 것이지요. 영국이 좋은 예입니다. 이미 군사적으로 패권국의 지위를 상실했음에도 금융시장, 비틀즈, 브리티쉬락, 영미법에 근거해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제상황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표면적으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장 큰 부분은 값싼 노동시장-잠재성장력이 큰 13억+a의 소비시장이지만, 아직까지 결정적으로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못 됩니다. 먼저, 중국은 미국과 떨어질 수 없는 경제 구조입니다. 중국의 기록적인 성장이 가능한 것은 자국내의 소비도 있지만 수출의존도 역시 무시 못 할 수준입니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수출의존도는 22.6%입니다. 반면 미국은 수출의존도가 9.3%입니다. 수입의존도는 중국이 18.9% 미국이 13.8% 입니다. 한마디로 중국은 무역에 의존도가 미국에 비해 높고 그중에서도 수출의존도는 2.5배 높은 것입니다. 때문에 무역전쟁이 발생하면 버티지 못하고 먼저 나가 떨어질 쪽은 중국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채권관계입니다. 중국은 미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입니다. 미국에 대해서 채권자의 위치에 있으니 유리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채권자이지만 독촉할 수 없는 채권자 입니다. 그 이유는 미 달러가 아직까지 공고한 기축통화라는 점에 있습니다. 중국은 미채권을 포함한 많은 자산을 달러로 쌓아두고 있습니다. 위안화보다 안정적인 화폐이니 당연한 것이지요.
채권을 무기로 미국을 흔든다? 미국이 흔들리는 것은 곧 달러의 하락, 미국 소비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결국 중국이 최대의 미국채를 보유한 만큼 최대의 손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미국 소비의 감소 여파에서 시작되는 세계경제의 불황우려도 아직까지 GDP의 1/5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세계화 이전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의존의 심화된 지금 시대는 패권 교체가 더욱 힘들어진 상황입니다.
결국 [세계체제론]의 월러스타인이 부분적으로는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이미 분업으로 체제화 되었고, 그에 더해 금융이라는 도미노 속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고립을 의미합니다. 기업으로 치자면 중국은 기업본사가 아닌 큰 원청업체 정도의 지위입니다. 중국이 이를 탈피하기 위해선 어떠한 이유로든 미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려야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기축통화는 온라인게임과 마찬가지로 선점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미국보다 정치적으로 안전한 국가이면서 (여기엔 사회안정 및 군사력이 바탕으로 깔립니다. 그리고 미국의 군사력은 비대칭전력을 제외하고는 독보적입니다.) , 세계적인 화폐유통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즉,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함께 갖추어질때 뒤집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미국의 저지 입니다. 미-중이 본격적인 파워게임을 벌이기 전에 중국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갈 가능성 역시 그리 높지습니다. 주의할 것은 작용-반작용 입니다. 중국이 세력을 키워나가는 것은 곧 미국이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이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pivot to Asia 전략과 TPP 협상타결, 일본의 안보 다이아몬드 전략이 그 반작용입니다.
미국의 중동전쟁은 그 동안 미국 외교정책의 1순위가 중동이라는 방증입니다. 중동은 대부분의 지역이 미국주도의 세계질서 하에 길들여졌습니다. 게릴라적인 군사적인 저항은 여전하지만, 경제적인 협력관계까지 흔들리진 않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면 시아파 중심의 국가들과 무장단체들, 그리고 ISIS 정도입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갖는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있지만, 셰일혁명으로 석유의존도가 낮아지고, 중동 오일파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으로, 이전의 미국이 수행했던 중동 전쟁은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 미리 중동지역을 손봐두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국 주도의 TPP는 결국 타결되었고, 중국주도의 RCEP은 유명무실화 되었습니다. TPP가 얼마나 유효할 지는 모르지만, 미국이 동아시아-환태평양 지역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견제속에서 중국이 세를 키우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협력 (예를들면 한국, 동남아 지역을 세력하에 두는)보다는, 내부적인 성장 (하드파워, 소프트파워 양면 모두에서의 성장)이 우선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내부의 모순입니다. 중 국의 일당 - 과두 파벌제는 형식민주제 따위보다 훨신 견고하며,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부정부패를 조정하는 자정요소들과 권력분립, 불안요소 없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요소 등이 이미 갖추어져 있어 서구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크게 불안정한 요소가 없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중국의 가장큰 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폐쇄성에서 기인하는 사회안정이 역설적으로 중국의 내부적인 실력키우기를 저해하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은 이제 겨우 산업화사회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정치는 봉건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습니다. 압축성장을 하고 있지만, 압축성장의 과실만큼 그 이면은 지독히 구린내가 나고 어두울 수 밖에 없습니다. 거품경제속에서 97년 IMF, 유교잔재, 시민의식수준의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한국사회가 침체했듯이, 중국도 압축성장의 부작용에 적어도 한 번을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사회에 만연한 꽌시,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인들의 의식수준, 양극화 현상, 이촌향도로 인한 동부지역 집중발전, 소수민족독립문제, 10년 20년 내로 예상되는 배운세대와 못 배운세대간의 세대갈등 등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산적한 사회갈등을 전인대와 공산당일당체제 하에서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지독히 회의적입니다. 결국 시민참여가 제한된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이죠. 중국이 지금처럼 곧장 성공가도를 달려서 G2의 지위를 다시 회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고인물은 썩는다는 불변의 진리가, 중국 내부에 만연합니다. 시민사회의 본질인 갈등을 분출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왜곡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도약이 이루어질수 있을지 마냥 밝은 대답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상당 기간동안 미국의 패권을 지속될 것입니다. 실리는 한-미-일 공조에서 더 많습니다. 이번 THAAD배치가 마냥 비판 받을 수만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일에 대해서 미사일 방어를 제공하는 대가로 헬조선이 얻는 안보우산이 중국과의 공조보다 낫다는게 THAAD배치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새로운 패권시대를 대비해야하고, 그 패권국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단기적-중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패권질서에서 실리를 챙겨야 함은 물론이고, 패권국 중국과 패권국 미국중 어느쪽에서 헬조선이 더 나은 대접을 받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