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지만 그저 개인사에 가까움을 먼저 양해 구합니다.
한국말이 말 만드는데는 좋습니다. 국뽕 이라니 어감하며, 그 짧은 음절에 표현하고 싶은 여러 감정을 섞을 수 있는..
건설적이고 기술적인 논의를 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고 난잡한 언어이나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엔 정말 좋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전 정말 순진한 학생이었고 멍청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른들 말은 거의 다 진심으로 우리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죠.
학교 선생님이 패면 패는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이해 할 수 없지만 뭔가 큰 뜻이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순진하고 불쌍한 호구
역사 교과서를 보며 고구려 땅 영토를 더 넓게 그리며 우리가 이렇게 강했는데 하며
요즘 말로 국뽕에 한껏 취해 살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정말 양심 없는 날강도였고 야비하고 미개하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악마같은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미개하고 졸렬한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막강한 기술경제를 일구고
열강을 상대로 몇 번씩이나 맞짱을 떴는지 따위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반일세뇌의 영향이란걸 감지한건 정말 한참 뒤의 일이었죠.
처음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건 어찌보면 국뽕에 취해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어린 시절 철없을 때 기억이니 비난은 하지 말아주시길..
우리는 한민족이라는데
왜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망하고 그 땅에 들어선
여진족의 나라 금나라 부터는 우리 역사가 아닌거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런 말은 안하더군요. 역사책을 나름 읽었지만 그런 인식의 단절을 설명해주는 책은 제 기억에 없었고
이렇다 할 담론도 볼 수 없었죠. 적어도 그때 당시엔
모두 그냥 어물쩡 넘어갑니다. 만주벌판을 누볐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어물쩡 넘어갑니다.
제 의문에 구차한 설명을 해준건
고구려인은 귀족이고 말갈족(여진족)은 피지배층이었다는 것.
문제는 그 피지배층이 수적으로 90%에 달했다는 겁니다.
뭔가 이상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습니다.
고구려 발해까지는 여진족이 우리 민족의 일원이었는데 통일신라 이후 우리 역사가 아닌 것처럼 넘어가더니
끝내 오랑캐가 되어 쳐들어왔다.
이것이 제가 본 '이상한' 역사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저는 한민족이라는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지부조화를 끌고 계속 나이를 먹습니다.
그 한민족이라는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걸 깨달은 것도 나중에 생각이란 걸 좀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그 수많은 외침을 당하고 공녀를 착출당하고 강간 당하고 꼭 외세침략이 아니더라도 임진왜란(이 용어도 맘에 안들지만 넘어갑니다 그냥) 시기에 귀화한 일본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 이미 고조선 역사에도 중국에서 귀화한 위만이라는 세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자가 당착적인 역사 서술은 계속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군에 입대를 하고 사격 훈련을 받으며
사격장에 써있는 표어가 제 인지부조화 리스트에 또하나의 획을 긋습니다.
'한미동맹과 자주국방은 하나다'
대충 이렇게 쓰여있었던듯..
이게 뭔 소립니까?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 정도?의 머리에 논리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말이 아닙니까?
예전에 모 경제학자가 일제시대에 경제성장을 연구했다가 욕을 먹는걸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도 그 경제학자가 친일파라고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친일파는 제가 아는 최악의 욕 중 하나였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조선시대의 비루했던 사진 자료들이 떠돌고.. 생각해보십시요 그게 근대화 직전의 모습이라면
그 이전의 삶은 어떠했을지.. 저의 아버지도 50년생이신데
어릴때 한국은 아프리카 정도 수준이었다고.. 그게 50~60년대 이야기 입니다.
그보다 좀 앞선 일본의 근대화 직전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난쟁이 똥자루인건 사실인 듯 보이지만
그 세련된 인프라의 흔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북한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북조선이 정말로 지상낙원이라고 믿고 있다가
처음으로 외국의 선진문물을 보고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깨닫는 순간 처럼
저도 제가 불쌍히 여기던 북한의 주민과 별 다를바없는 세뇌된 인간이었다는 걸 깨달은거죠
그렇게 눈뜬 장님마냥 살던 시절의 가린 눈꺼풀을 벗겨내고 보니
객관적인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시스템이 얼마나 미개한지.. 얼마나 약자를 짓밟는지.. 얼마나 졸렬한 역사를 가졌는지
지배층은 무능하고 대중은 무지하고 그런데 그 무능하고 무지한 인간들이 이기심은 얼마나 심한지..
그리고 반일감정에서 벗어나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생 어거지를 쓰고 있는지도 보였습니다.
처음에 혐한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일본은 역시 일말의 양심이 없는 승냥이 같은 인간들이라 여겼는데
그들이 왜 그런 단어를 쓰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부터 전 제 어릴 때 시점으로 보면 친일파 매국노같은 인간이 되고 맙니다.
조선에 희망이 없음을 알고 일찌감치 근대화를 이룬 일본에 나라를 팔아 넘긴 세력이 친일파 매국노 세력이죠.
그렇다고 제가 나라를 팔 생각까진 없지만.. 이 나라에 희망이 없음을 인지 하고 맙니다.
나라를 떠나고 싶은 지경에 이른 겁니다.
여담으로 전 국민학교 시절 담임선생한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성장한 이후까지도 전 제가 뭔가 선생님한테 잘못해서 선생님이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진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그 새끼가 저희 엄마한테 껄떡대는걸 엄마가 안받아줬답니다.
녹색어머니회니 뭐니 해서 학교에 자꾸 불러내는데 생까고 안간거죠. 추파를 던지니까
아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걸 알면서도 당시엔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권위주의와 불의를 맞설 생각도 못하고 자식의 불이익마저 감수하는 머저리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지금 세상도 크게 달라진 거 같진 않습니다. 사회적인 불의에 섣불리 맞서지 못하는 점은 좌절스럽게 똑같죠.
한줄요약:
순진한 국뽕 국민학생이 이민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사는 소시민으로 전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