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살면서 의도적으로 헬조선 가는 걸 등한시했습니다.
어쩌다가 3-4년에 한번 정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다녀오곤 했죠.
5,6년 전인가? 한번 고향집 간 적이 있었어요.
(서울과 멀리 떨어진 중소도시)
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밥 먹고 쉬고 있는데
어머니가 가볍게 산보나 다녀오라고 하시더군요.
집 바로 윗쪽에는 열차 선로가 있었는데
KTX 도입하면서 선로 지하화를 해서
그 기찻길 터는 폴리우레탄을 쭉 깔아놓은 멋진 시민공원이 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그 시민공원을 쭉 따라서 몇 번정도 왕복을 하다보니까
가볍게 땀도 나고 그래서 목도 축일 겸
공원을 벗어나서 번화가 쪽으로 슬슬 걸어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자라났던 곳인데 오랜만에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근데 밤 8시 정도 되었는데 큰길에 쭉 늘어서 있는 온갖 가게들에서는 벌써 쓰레기봉투들을
인도 가장자리에 쌓아놨더라구요.
중간중간에 터져서 나뒹구는 쓰레기들... 음식 쓰레기가 많아서 그런지 악취도 솔솔 풍기고..
술집이나 노래방 앞에는 요란하게 치장을 한 싸구려 개조차량들이
스피커 풀로 틀어놓고 쿵쾅거리고 있고 양아치급도 안되보이는 애들이
삼삼오오 둘러모여서 담배질에 큰소리로 떠들고 욕하고 지들끼리 때리고 캑캑거리면서
장난질 치고 있고 (근데 통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인 행위더군요)...
그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까 참 씁쓸하더군요.
내가 여기 살고 있을 때도 이랬었나..
집으로 와서 아버지한테 "이 동네 참 많이 변했네요" 하고 번화가 쪽 광경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야. 요즘엔 밤되면 큰길가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가만히 집에 있어라.
얼마나 무서운데..." 그러시더라구요.
아니.. 여기가 무슨 야생의 정글도 아니고
뭘 돌아다니지 말라는 건지...
그 때 깨달았습니다.
경제가 추락하는 나라는 제일 먼저 치안이 안 좋아진다는 걸요.
경찰도 그냥 보고 지나칠 정도로 그런 양아치 애들이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다는 건
일하고 공부하는 걸 주업으로 해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겠죠.
일해도 희망이 없고, 공부를 해도 희망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밤에 양아치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껄렁한 양아치짓뿐.
그 동네에서 40년 넘게 사셨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부모님들이
밤마실을 꺼려할 정도로 변해버린 고향 동네를 떠올리면서
이제서야 말할 수 있습니다.
'헬조선은 어쩔 수 없는 헬조선인가보다'
글이 훈훈한 느낌이 들지만 씁슬함이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