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길어지겠네…
어쩌다 들어왔는데 강남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있길래 몇 자 적어보려고 해.
나처럼 여성혐오가 뭔지 몰랐던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보기 싫다면 그냥 안 읽으면 되고.
뉴스에서 몇 번 나왔으니까 다들 알거야. 강남 살인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20대 여자가 노래방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칼 든 미친놈한테 살해당한 일이잖아.
처음엔 이게 무슨 대수라고 싶었어. 사람이야 매일 죽고 뉴스에 날만한 떠들석한 일도 아니잖아.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뎌진 나도 참.. 헬조선 사람이네..)
근데 이 일이 커지고 여혐여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당황스럽더라고. 이게 왜 여혐이야?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그랬어. 여자들이 여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성 불평등을 다 여혐이라고 싸잡아 이야기하는거야.
그래서 여성혐오가 아니라 그냥 불평등 이야기 아니냐고 하니까 여성혐오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 해줬는데
강남 살인사건에 대해서 지켜보니 이제야 알겠더라고. 이게 왜 여성혐오 때문에 일어난 살인 사건인지.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전공지식도 모르는 그냥 닝겐이야.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일단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여자를 존나게 미워함' 이 아니더라고. 여자한테 갖는 모든 차별적 시선을 말하는거라네.
전문용어라는데 왜 이딴 식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좋은 뜻으로라도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여성으로 먼저 인식하면 그게 차별.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받아야한다... 이것도 차별적 시선인거야. 고로 여혐이지.
심지어 여자도 여혐을 가지고 있어. 왜냐면 이건 사회적인 문제의 차별이니까.
'여자'. '여성적'에 따라오는 모든 프레임을 여혐이라고 한다는거야.
찾아보면 남자끼리의 차별에도 여혐이 들어가있어. 일반적으로 '여성스러운 짓'을 남자가 하면 존나 놀림받잖아.
여성적인게 나쁜가? 해가 되나? 애초에 여성적인게 뭔데?
여자는 약하다, 여자는 여리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 여자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여자는 깔끔하다, 여자는 예쁘다
이게 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적 시선, 여혐인거야. 존나 방대하지. 솔직히 이딴거 다 생각하면서 어떻게 사냐.
그런데 강남 살인사건에 대해서 좀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꼈어.
강남 살인사건이 공용 화장실에서 일어난거 알지?
그 화장실에서 범인이 1시간 동안 기다렸다는 것도 알아?
보니까 강남 뒷골목 유흥가도 아니고 수노래방이라더라고. 체인점이니까 가본 사람은 알거야. 나름 인테리어도 밝고 깨끗한 노래방이야.
그런 건물 공용 화장실에 1시간 동안이나 죽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화장실 간 사람이 죽은 여자 하나 뿐일까?
당연히 아니지. 그 화장실에 다녀온 남자도 있었어. 그 남자도 범인을 봤고. 상당히 께름칙했지만 그냥 지나갔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살인사건이 일어난거야.
피해자가 들어올 때까지, 자그마치 1시간동안이나 그 안에서 기다렸던거야.
정말 묻지마 범죄였으면 눈에 뵈는게 없어서 들어오면 일단 찌른다는게 묻지마 범죄 아니야?
그런데 범인은 1시간 동안이나 공용 화장실에서 기다려서 여자를 죽였어.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를 기다려서.
평소에 여자들이 자길 무시해서 저지른 범죄라는데... 과연 여자만 무시했을까?
누군가 말하는걸 봤는데 정말 콕 찝어서 잘 말해놨더라.
숱한 남자들도, 사회도 범인을 무시해왔겠지만 범인한텐 '여자조차' 자기를 무시하는 걸 참을 수 없던게 아니냐고
여자는 자기를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자길 무시했다는거지.
이걸 차별이 아니면 뭐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어. 이게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이유야.
뉴스에서 강력범죄의 여성 피해자 수를 보여주는 이유도 비슷해.
어째서 여자가 이런 범죄의 타겟이 되는가? 이게 논지인거야.
먹고 살아가는건 똑같은데 남자와 달리 불특정 다수의 여자들은 이런 식의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는거지.
밤에 길거리 걸어봤어?
우습게도 나는 지금까지 사람 하나 없는 스산한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한번도 위험하단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어.
가끔 여자가 앞서가다가 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속도가 빨라지더라고.
나는 그냥 머쓱했는데, 몇몇 사람들은 뒤에서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 취급 당하는게 불쾌하기도 하겠지.
그치만 내가 그 앞서가는 여자였다면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이었을거야. 내가 범죄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
지뢰를 밟아서 터지는걸 봐야 지뢰인지 알지. 운 나쁘면 그대로 비명횡사하는거야.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이런 위협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아왔었어.
여자들이야 조심하면 된다고, 늦게 다니지 말라고 말하잖아.
근데 퇴근하다가 죽고, 환한 강남에서 죽고... 솔직히 여기서 뭘 더 조심해야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비좁은 버스 안에서 성희롱 당하는건 일도 아니라더라.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터놓는걸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어.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크고작은 일들의 피해자가 되는거야.
범인들이 피해자를 고를 때 어떤식으로 고르는지 알지?
제일 약해보이는 사람. 저항력이 약한 사람.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어린 애, 노인, 그리고 여자.
정신지체가 있는 여자, 장애가 있는 여자, 여자 애, 할머니.
똑같은 사람 안에서도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아.
흔히 '사람' 을 생각 할 때도 기본적으로 건장한 표준 남성을 떠올리지.
여자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간단해 같이 살아가는 사회인데 왜 여자라는 이유로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냐는거야.
마치 흑인이라는 이유로 어디서 폭행당하고 살해당할지 불안해하며 살았던 시대랑 똑같은 거지.
이런건 흔히 있던 일인데... 맞아. 그리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게 이상한 사회야.
이건 단순한 불평등을 떠나 사회적인 차원의 차별인거야.
쓰다보니 말이 길어졌네.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을 몰랐던 사람이 있으면 알았으면 해서 썼어.
강남 살인사건이 커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이상하다고 치부하는 것보다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봤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