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여름방학 때 맹장염에 걸려서 병원에 1주일 간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입원하고 바로 다음 날 미국 원어민 교사가 같은 병실에 들어왔죠. 원어민의 이름은 '셀리'이고 백인 남자였습니다. 처음엔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어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셀리 성격이 워낙 쿨하고 또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서 세명이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죠. 이후 저는 아는 영어 모르는 영어 총동원해서 셀리와 일상 속의 얘기에서부터 역사얘기까지 하면서 꽤나 친해졌습니다.
1주일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때 제가 느꼈던 건 셀리가 저보다 10살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저를 하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또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셀리 입장에선 귀찮을 법도 한데 오히려 저한테 항상 친절하고 제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대해주더군요. 물론 셀리의 직업특성상 영어교사다 보니 영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저한테 최대한 배려를 해준 것일 수도 있고 인종적, 문화적 차이로 저한테 예의를 갖춰서 행동한 걸 가지고 제가 오버해서 생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그때 제가 확실하게 느낀 건 셀리와의 관계에서 위계질서라는 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영어에는 존댓말밖에 없고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한국에서처럼 나이차이로 서열을 나눠서 대접받으려고 하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대게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면서도 사람 사귈때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영어권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연장자한테는 'Sir' 이란 단어를 쓰며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습니다만 한국에서처럼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친밀한 관계에서까지 철저하게 연상연하를 구분해서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놓는 병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싶은 말은 한국의 나일리즘 문화가 참 야만적이고 불필요하며 역겨운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이차이 몇 살 나는 거 가지고 왜 그렇게 서로를 무시하고 대접받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반말했다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등의 심각한 사회적 병폐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그러는 건 이해가 되지만 성인인데도 자기가 빠른년생이니깐 자기한테 누나라고 불러라고 정색하면서 말하던 년이 있었는데 진짜 이년은 정신상태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대로 골빈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요점은 이겁니다.
문화적요인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이 한두살 차이 가지고 서열 정해서 상전 노릇하려는 것들 보면 진짜 한숨 밖에 안나오고 역겹습니다. 그래서 전 저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친하지 않은 사람한텐 무조건 존댓말 쓰고 깍듯이 대합니다. 특히나 나이 물어보고 자기보다 1살이라도 어리면 "내가 나이 많으니깐 말나도 되지?" 하면서 바로 말놓는 새끼들... 진짜 극혐입니다. 이런 것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사람을 사귈 때 나이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과 공감대가 비슷하며 잘 통하는 지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나이차이가 나는 사람과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깨어있는 사회. 그런 평등한 사회가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