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관객 동원 했죠?
후속편으로 노량을 제작한다는 그런 얘기도 있어요
이순신의 해전이 26전 26승인데 왜 하필 한산해전을 가장 큰 업적으로 올렸을까요?
일단 26전 26승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혹은 21전 21승이라고도 하고 28전 28승이라고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작은 소규모 전투가 많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수가 달라지는 거죠
그 수많은 전투들 중에 많은 수의 적선과 싸우거나 많은 수의 적선을 격침 시킨 전투는 4 전투 입니다
부산포해전 한산해전 노량해전 명량해전
그래서 이 4개 전투를 이순신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죠
그런데 왜 하필 한산해전이 메인 일까요?
각 해전을 요약 설명 하겠습니다.
부산포 해전 : 조선수군 170 여척에 부산포 일본군 본진으로 쳐들어 갔지만 일본군은 언덕위의 성에서 화포로 응전하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당시 부산포에는 일본의 선박이 500척도 넘게 정박 해 있었고 그 선박 대부분이 안전 지대로 피신해 정박했지만 공간상의 이유로 상당수의 선박은 보호하지 못하게 되어 일본군은 대략 100여척이 넘게 잃었죠
하지만 양측모두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배만 많이 격침됬죠
일방적으로 일본군이 싸움을 기피한 전투이고 일본군 병력손실이 거의 없어서 부산포 해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건 한계가 있습니다
한산해전 : 양측 모두 대규모로 선단을 형성하고 싸운 전투인데요 조선측 56척 일본측 73척으로 일본의 숫적 우세인듯 하지만
조선측 56척은 판옥선의 수만 집계 한 것일뿐 그외 기타 선박이 더 있음이 유력함(그로 부터 약 2달 후에 치뤄진 부산포 해전에서 조선측이 판옥선 70여척에 협선및 포작선 100여척을 동원 한 것을 근거로 유추할수 있음)
그리고 조선측 선박이 승선인원이 더 많아서 전체 병력면에서도 조선군이 일본군을 상당한 차이로 압도 한 것이 한산해전
명량해전 : 13 vs 133 + 200 으로 얘기하지만
일본측의 200척은 한참 뒤에 뒤따라오던 선박이고
133척이 명량해협에 접근한 함대임
그리고 조선측 13척은 판옥선만 집계 한 것이지 실제로 사료를 보면 대략 40여척에 달하는협선이나 포작선 이 같이 전투를 치른것으로 기록됨
그리고 명량해전을 주요전투로 꼽을수 없는 이유는 반박의 가능성 때문임
짧은 시간 좁은 물길과 강한 물살이라는 자연적 여건을 활용하여 일본수군을 저지시킨것은 사실
하지만 불과 하루 남짓 저지 시켰을뿐 그렇게 단시간 저지 시킨후에 조선수군은 전라북도와 충청도 경계 지역 까지 빠르게 도주하였고
일본수군이 추격하다가 놓치고 회군함
이게 무슨 말이냐면 겨우 하루 남딧 저지 시킨것이 전략상에 이렇다 할 의미가 없다는 말임
노량해전 : 노량해전을 띄우려 하니 걸리는 점이 있음 노량해전에는 명나라 수군이 전력적 숫적으로 주축임 조선수군에 비해 명나라 수군이 2배이상으로 투입된 전투
그리고 이순신은 전사했음
노량해전을 띄우려 하면 이거 명나라수군이 한것 아닌가요? 이런 반박이 가능해서 띄워주기가 힘들게됨
그리고 이순신 장군 자살설(일부러 위험한 곳에 나서서 지휘) 은둔설 전사설 이 있는데
전사설이 맞다고 보면 됨
그게 왜 그렇냐면 위에서 언급한 이순신의 4대 해전중에 노량해전은 그 의미가 다름
한산해전은 일본수군이 처음으로 결집해서
조선함대와 싸운 전투로 여기서 패배 이후
일본군에겐 사실상 해전금지령이 내림
부산포 해전은 한산해전 이후로 사실상 해전금지령이 내린 후로 일본측이 전투를 기피했음
명량해전의 경우는 일본군이 좁은 해협으로 진입하다가 여의치가 않자 잠시 숨돌리고 다시 진입
이 3가지 해전의 공통점은 일본측 입장에서는 굳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전투라는 것임
그러하기에 일본측이 전투를 기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섰기에
조선측 피해가 적음
그해 반하여 노량해전은 성격이 다름
순천왜성에 고립된 고니시유키나카 가
일본으로 탈출하는 물길을 명조연합수군이 차단하고 있었고 그것을 반드시 뚫어야 일본으로 철수가 가능함 육상에서는 명나라 제독 유정이 길을 막고 있었고
그래서 고니시가 순천에서 뱃길로 철수를 하고 경상도 사천에 주둔하던 시마즈 가문의 부대가 고니시의 철수를 돕기위해 노량으로 진출하게 되니
명조 연합수군 입장에서도 예전과 달리 한쪽에서 나오는 일본수군이 아니라 양측에서 나오는 일본수군과 싸워야 했고
예전과는 달리 일본입장에서는 반드시 싸워야 할 전투여서 필사적일수 밖에 없었음
그러니 양측이 뒤엉켜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순신이 전사함
그리고 노량해전에서의 일본군은 그 지휘관이 고니시 유키나카와 시마즈 요시히로 로
일본측에서도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장군이었음 그이전에 도도다카도라 구키 요시타카 구루지마 미치후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같은
일본장군들과는 레벨이 다른 장군들임
그런데 국뽕 학자들은 그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으니
그 이전에는 인명피해 적게 잘만 싸웠는데 왜 노량에서는 이순신이 전사했는가?
그렇게 의문을 품고 답으로 끼워 맞춘것이
은둔설 자살설 임 ㅎㅎㅎ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