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2. 조직 내부의 도덕성 및 기강의 해이

 

앞선 글에서는 학생운동 조직의 제도적인 문제점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 글은, 학생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부끄러워할 가장 은밀한 치부에 속하는, 그러한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약점들이야말로 보수우익에서 '운동권'을 비난하는데 가장 자주 이용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성인군자는 하나의 이상입니다. 예수나 부처 쯤 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a 솔까말, 예수도 젊은 시절에 신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격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부처도 수행길에 떠나기 이전에는 전형적인 쾌락주의적 인도 귀족왕족의 삶을 살았잖아요)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드러내기 부끄러운 치부를 갖고 있는 것이 정상이지요.

 

예컨데, 칼 맑스는 이후 150년이 넘도록 노동계급에게 엄청난 무기가 된 이론들을 만들어냈고, 그의 영향력은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기점으로 오늘날까지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질적으로 중류계급 쁘띠 부르주아지 배경의 인물이고,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취향의 것들을 좋아했으며, 생활비의 많은 부분이 그의 아내인 예니 베스트팔렌의 취향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지요. 또, 그 가난한 와중에도 하녀를 두고 생활을 했으며, 그 하녀와의 불륜으로 인해 사생아를 두었다는 의혹도 있지요. 레닌도 아내인 크룹스카야를 두고 이네사 아르망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며, 매혹적이며 정열적인 20세기의 혁명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도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에 아내인 일다 가데아를 버리고 알레이다에게로 갔지요. 그것도, 누가 보기에도 매우 뻔뻔한 변명의 말을 남긴 채 말이지요. 극도로 소소한 세력으로 출발하여, 거대한 국민당 세력을 뒤엎고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온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을 매혹시킨 모택동이,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그 권력에 취해 여자들을 그렇게 끼고 구시대의 황제처럼 살았을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정의로운 길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종종 매혹되고, 심지어는 그들을 숭배하기에 이르기 때문에 때로는 그들도 단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 반대로, 정의로운 길을 걷겠다는 신념을 지닌 사람들은 때로는 그 정당성에 스스로 도취되어, 자신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들에게 희망과 대의를 고취시키기 위해서 고통스럽더라도 보다 도덕적이고 올바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고는 합니다. 털어서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깨끗할 수는 없다고 해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정도의 도덕은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한 도덕성과 기강을, 9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학생운동처럼 격하고 극적인 상황을 겪다보면,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동요하는 감정으로 인해 숱한 실수가 나오기도 하고요. 3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무서운 경찰의 진압을 앞에 두고, 건물 안에서 농성을 하다보면 옆에 앉아서 함께 투쟁하고 있는 이성이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붉은 색은 3배 쯤 강하다"라든지, "눈 위의 여인은 3배 쯤 아름답다"라는 법칙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옆에서 투쟁하는 여인은 3배 쯤 섹시하다"는 것도 있다는 말이지라. (-_-a;;;;;;;;;;;;;;;)

 

(..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 그 유혹은 정말로, 강렬합니다.)

 

오래 동안 같은 전장에서 싸운 군인들이 뜨거운 전우애가 생기는 것처럼, (==; 어쩌면.. 테베의 신성보병대처럼 단순히 우정이 아닌 애정이 생길 수도 있는 것처럼) 오래동안 활동을 함께 해오며, 극한의 상황을 함께 자주 겪게 되는 남녀지간에 뭔가 썸싱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이 단순한 우연을 넘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하게 된다면 분명히 어떤 면에서 조직 내부의 기강이 크게 해이해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70년대와 80년대 학생운동을 탐탁치 않게 보던 다른 학생들은 종종 학생운동가들은 모두 발랑까져서 아무나 하고 자고 다닌다는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만... 그토록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도 대체로 학생운동과 같은 진보운동에 투신하는 사람들이 자유연애와 자유로운 성적관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특히 운동에 투신하면서 감정적 동요와 흥분을 자주 맛보게 되는 만큼, 그것이 연애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빈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

 

물론, 이것은 학생운동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 세계 어느 조직이든간에 이와 비슷한 일들은 늘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학생운동의 경우, 미래를 내다보기 힘든 위험한 길이었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격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그러한 인간관계가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기는 커녕, 일종의 "낭만"으로 취급되다 보니, 어느 새인가, 학생운동을 함께 하는 여성 운동가들, 여성 대학생들 등을 은근히 연애의 대상이나 섹스 파트너로 보는 심각하게 뒤틀린 시각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 까지는 여성들을 동등하게 바라보려는 페미니스트 시각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앞서 학생운동의 조직차원에서의 문제에 언급한 "선후배 관계"까지 여기에 꼬이다보면..

 

<저속하지만 현실적인 표현 ON>

"격한 투쟁 속에서 어여쁜 여자 후배가 보이면 아랫도리가 '불끈' 하고.. 어떻게해서든 접근하여 꼬셔보려고 하고... 스스로를 쿨하고 열정적인 혁명적 투쟁가로 포장하여 은근히 선후배적 강압관계 속에서 (오늘날이라면 일종의 '데이트강간'에 준할) 상황으로 끌고가는.."

<저속하지만 현실적인 표현 OFF>

 

 

..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학생운동 단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죠.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그것을 은폐하려고 들었고, 특히나 운동조직의 간부급과 관련하여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 피해 여성이 문제를 삼기 시작하면 그 입막음을 하기 위해 더러운 짓을 하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괴물과 싸우다 괴물과 닮게 되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진보운동에서 성추행이라든지 성폭력에 대한 뉴스나 소식은 대체로 모두 위와 같은 경우에서 나오는 겁니다. 특히, 강경하고, 투쟁적이고, 마쵸적이며 남성중심적인 투쟁문화 속에서 여성은 항상 위와 같은 식의 굴욕과 수모를 "대의를 위해" 참아와야 했고, 그것을 모두들 당연하게 여겼지요.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70년대와 80년대에는 그러한 것이 큰 문제로 떠오르지 않고 은폐되어 있었지만, 상황이 바뀌어 90년대가 되면서부터는 노동운동이나 반정부운동 같은 "큰 운동" 뿐만이 아니라, 여성, 아동, 환경, 문화 등의 "부문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페미니즘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운동이 얼마나 쇼비니즘적이었는지, 남성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여성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보수단체에서, 운동권에서의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애초에 운동권의 여성운동가들이 내부에서 먼저 그것을 밝히고 고발하며 공론화를 시키고, 남성운동가들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기 때문입니다.

 

....

 

"성적인 문란함"은 학생운동가들이 어떠한 식으로 그 기강을 잃기 시작했는지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앞서 '조직차원에서의 문제'에 밝힌 것처럼, 90년대의 학생운동가들은 여러 면에서 이전 시대의 운동가들에 비해 질적으로 뒤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는 기존의 운동이 익숙하게 여겨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조용하지만 격동적인 세월이었습니다. 80년대 이후에 나라는 장기적인 호황을 누려기 시작했고, 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노동운동 등을 통해 제도적이나마 여러 권리가 보장되고, 구시대처럼 눈에 드러나는 폭압적인 무력으로 국민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지요.

 

국민들의 생활수준 및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기 시작했고, 먹고 살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국민들이 강경하고 위험한 투쟁에 염증을 느끼는 기미가 완연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은 이전 시대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태어난 오늘날의 20대들은, 나라가 88올림픽을 치루는 것을 보았고, 국민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컴퓨터와 게임기라는 것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보았으며, 고등학생이 되는 즈음해서 PC통신과 인터넷, 스타크래프트 등에 익숙해져버린 완전히 새로운 세대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학생운동은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표면적으로는 위와 같은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70년대와 80년대에 서로 동맹을 이루고 있던 [좌파계열 민족주의/노동운동]과, [중도우파계열 자유주의적 제도권 정치투쟁가]들이 서로 결별하기 시작한, 매우 위험한 시대가 90년대였습니다. 대중적이고 민중적인 저항을 대표하던 민족주의 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제도권 정치에의 입성을 시도한 (김영삼이나 김대중씨와 같은) 자유주의적 정치운동은 오래 동안 반독재/반유신 투쟁을 함께 해왔습니다만, 제도권 정치에 진입을 한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던 자유주의 운동세력은 옛 동맹자들을 배신하고, 이승만이 친일파를 받아들이듯 올드라이트와 새로운 동맹을 맺어나갔다는 사실은 예전에 올린 글, <90년대 역사특강>에서 밝힌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질적으로 저하된 학생운동 지도부는 이러한 사실을 미연에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학생운동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진보운동 전체가 다 그러한 대실수를 저지른 것은 마찬가지였긴 합니다만...) 그러다보니, 학생운동의 세력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는 학생운동의 지도부는 낡은 투쟁의 방법론을 고수했으며,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을 하며, 그들도 부담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수위는 낮지만 보다 개방적이고 광범위한 투쟁방식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운동가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운동은 격한 투쟁 속에서 강의실에 들어올 새도 없이 거리로 달려나갔다지만, 분명 90년대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운동가들은 "강의실에서 보다 현장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변명 아래에, 수업과 성적을 등한시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을 포섭하려고 하기는 커녕 무시하고 우습게 알며, 책 한권 읽지 않고, 토론과 세미나 한 번 하지도 않은 채 시위 있는 날에는 무작정 거리로 달려나가고, 시위가 없는 날에는 학생회실에서 수업도 안들어가고 노닥거리기나 하는 "한량"들이 되어갔습니다. 세대가 다르다고 해도, 정치나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해도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지요. 존경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한 눈에 알아봅니다. 운동가들 스스로가 수업에 나오지도 않고 띵까띵까 노는 한량짓을 하는데, 누가 그들의 대의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전체적으로 풍기는 문란해지고, 이론적인 무장과 현실파악능력은 느슨해진 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총체적인 기강의 해이에 시달리다보니 효과적인 운동과 투쟁이 힘들어지고, 새로운 인재는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고립과 세력의 축소만 악순환처럼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이 공부를 하지 않는 무식한 무리들이 이 상황에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무엇이 있을까요?

 

"빠이(쇠파이프)"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가는 것 밖에 모릅니다. -_-a  옛날옛적에 내려오는대로, 1년의 계졀에 따라 잡힌 투쟁 스케쥴을 그저 따라가면서, 필요한 날 사람을 모아 동원하여 무작정 시위를 벌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게 되는겁니다.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지성적인 분석을 통해, 현대 정치의 흐름 및 사회의 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운동가들이, 정의의 대의에 취해 겉멋만 부리는 한량집단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들은 입으로 맑스와 레닌을 존경한다고 했지만, 맑스가 당대 최고의 정치경제학자로서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연구와 독서를 했으며, 레닌 역시 엄청난 독서 및 연구를 통해 러시아의 걸출한 정치이론가이자 제국주의 이론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 듯 합니다.

 

이러한 총체적인 기강의 해이 및 도덕성의 저하가 학생운동의 몰락을 부추긴 또 하나이 내부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계속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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