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해군이든 인조든 어차피 청나라는 쳐들어왔다.
광해군 중립외교 어쩌고 하는데, 실상은 사르후전투에서 조선군이 거의 전멸을 당했을 때 강홍립이?어쩔수 없이 항복한 것뿐이다. 광해군의 비밀지시같은건 없었다. 광해군 이새끼는 명나라에서 임진왜란 피해 복구하라고 준 돈을 궁궐짓는데 쓴 놈이다. 그리고 대청외교는 인조나 광해군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둘 다 청나라한테 기었다.
병자호란의 큰 원인은 경제적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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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자호란 당시 중국의 상황
지금이야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의 주인이 된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청나라는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청나라가 요동을 차지하니까 명나라는 교역중단이라는 경제제재를 가하게 된다. 병자호란 직전, 청나라의 상황은 명나라의 경제제재와 기근으로 나라가 절단나기 직전이었다.
당시 조선이 명나라 버리고 청나라로 갈아탔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당시 중원 땅에는 쇠퇴하긴 했지만 명나라가 건재하고 있었고, 청나라는 아직 만리장성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는건 지금으로 치면 일본이?미국을 멸망시킨다는 것과 같은 소리이다.(청나라가 만리장성을 넘은건 명나라가 멸망한 뒤, 오삼계가 산해관 성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당시엔 현실적인 인식이었다?해도, 명나라가 멸망한 뒤의 유교탈레반들이 보이는 여전히 명나라를 숭상하는?태도는 도저히 쉴드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위와 같은 상황 때문에 인조가 심양으로 가서 청황제에게 인사라도 드리지 않는 한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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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의 준비
청나라가 전격전을 벌인 이유도 왕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근데 청나라를 막을 군대는 이미 이괄의 난으로 날려버린지 오래였다. 사실상 의주-평양-개성-한양까지의 길이 무방비상태였다.
전쟁직전 청사신 용골대(타다라 잉굴다이)가 왔는데, 인조와 조선정부는 냉대를 했다. 게다가 유교탈레반 새끼들은 용골대에게 돌팔매질까지 했다. 당시 상황은?잘 대해줘도 전쟁이 일어날까 말까였다. 인조 이새끼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뿔사하고 사자를 보내서 용골대를 달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국경을 넘은 뒤였다. 그리고 6일전 적이 강을 건넜다는 보고가 왔고, 곧바로 한양 인근에 적이 왔다는 보고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