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육헬윤회
15.12.16
조회 수 320
추천 수 4
댓글 2








헬조선은 이미 자체완결적이고 자체강화적인 체제로 굳어졌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헬조선 계율은, 모든 종류의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게다가 마치 노력하면 출세가 가능할 거라는 기만까지 주입하는 2중의 기만장치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생각과 논리의 흐름마저도 획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남과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남들이 다른 생각을 억압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 그 틀을 뛰어넘는 생각 자체가 안 되는 거다. 헬조선식으로 사고하도록 끊임없는 의식화를 강요받는다는 말이다. 그 생각의 담장을 뛰어 넘기 위해, 내가 쓰는 간단한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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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방법은 “대우가 참인지 확인하기”이다. 여기서 대우는, 중학교 1학년 수학에 배우는 명제의 역·이·대우에 나오는 그 대우이다. 명제 p → q(p이면 q이다)의 대우는 ~q → ~p (p가 아니면 q가 아니다)이다. 대우가 중요한 이유는, 명제가 참일 경우 그 대우도 참이고, 명제가 거짓일 경우에는 그 대우도 거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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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헬조선을 풍미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사실 이 문장은 형식만 명제이고 원래 뜻은 당위이지만, 형식논리를 따라가 보자. 명제는 참일수도 거짓일 수도 있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 이 문장은 참인 명제가 되도록 강요되었다. 청춘이랑 아픈게 뭔 상관인데? 그런데 웃기게도 많은 청년들은 여기에 공명했다. 내가 이 헛된 울림에서 한 발 비켜서 그들을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대우가 헛소리였기 때문이다. “청춘이 아니면 아프지 않다.” 혹은, “나는 늙었으니 안 아파.” 아마 그 뒤에는 “너나 아파라” 정도의 말이 생략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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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안해서 가난한 거다는 책망은, 가난하지 않은 자들은 노력을 해서 그런거라는 대우로 귀결된다. 뭐 완전히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긴 하지만, 원래 명제 보다는 대우의 설득력이 떨어져 보이지 않나? 그런데 둘은 사실 똑같은 소리이다. 애매한 소리가 있다면 그 대우가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해 보면 좋다는 예시이다. 단, 대우를 찾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가난하다의 부정은 가난하지 않다이지, 부자이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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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는 사실 아무런 추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냥 말장난에 불과하다. 생각해 봐라. “사람은 포유류이다”의 대우는 “포유류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같은 뻔한 말장난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유용하다. 그것은 아마도, 명제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혹은 거짓이라고 강요하든지, 아니면 단어의 의미가 심각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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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사실 명제가 아니라서 이 방법을 적용할 수가 없다.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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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방법은, “더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기”이다. 이건 앞선 방법과 달리 기계적으로 되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더 극단적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은, 생각을 하는 고통을 감정적인 에너지가 좀 덜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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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나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표 차이가 이명박 vs 정동영 때 처럼 났다면, 지금 상황은 더 개판일 것이다.
2) 임진왜란 이후로는 조선이 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당시 왜군의 일부가 동남해안 일대를 기반으로 현지화에 성공했다면 한반도는 그 때부터 분단상황일 것이다.
3) 박정희 시대 동안 경제가 성장했다고 하지만,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성장이었다면 수도권 집중·도농격차 등의 문제가 완화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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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은, 어느 정도는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작용도 한다. 어떤 개인적인 불행이 닥쳤을 때, 실은 이보다 더 나쁜 방식으로 그 불행이 닥쳤을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Die Religion ist das Opium des Volkes. 하지만 이것이 구지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게, 이런 다른 상황을 가정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보다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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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역사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왜 그런 가정은 실현되지 않았을까를 탐구하면서 (책을 찾아본다는 말이다), 인간과 인간 집단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고찰할 꺼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교과서에서, 혹은 주류 사회가 강요하는 해석 이상의 안목을 확실히 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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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적인 탈조선이라는 말을 일종의 자위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연습을 통해서 헬조선이 강요하는 생각과 정신의 굴레를 살짝살짝 벗어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실 도피적인 느낌이 드는 정신적 탈조선이라기 보다는, 헬조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런 연습의 과실은 순수하게 자기 자신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그 활동을 (종 奴자가 들어가는) 노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연습, 단련, 훈련 정도의 표현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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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소소한 방법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그런 말이다.






  • 임병화
    15.12.16
    역사를 가정하는건 좋은 생각은 아닌듯..
  • 육헬윤회
    15.12.16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끝에, 그렇다면 왜 그 가정은 현실로 실현되지 않았는가를 실증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썼습니다. 사실응 그게 핵심이지요. 그런 연습이 있어야, 현실에서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의미있는 추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참정할 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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